눈을 뜬다는 것은 물리적인 의미와 함께 각성의 의미도 갖는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눈이 머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이 와중에 인간이 집단 속에서 어떻게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지, 반대로 현재의 힘의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눈을 뜨게- 해준다. 그리고 다시 느닷없이 시력을 회복하면서 과연 살아남은 자들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암울한 미래로 떨어질지 관객 스스로 상상하게 만든다.  

힘의 균형이 깨져 나가는 것은 먼저 개인과 국가간의 관계에서부터다. 여기에서 힘이란 부와 권력보다 더 근원적인 물리적 힘, 즉 폭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란 군대와 경찰과 같은 물리적 힘을 갖고 있는 대상이다. 그들은 눈이 먼자들을 격리 수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격리에 저항하는 자들은 군의 총에 의해 사살당한다.  

격리수용된 눈먼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의 문제다. 특히 먹을것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 과정에서 수용인구가 늘어나자 힘의 불균형이 생기게 된다. 한쪽 집단은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여자가 힘의 중심에 서게 되고, 다른 한쪽은 총을 든 남자가 힘을 발휘한다. 총은 곧바로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권력을 휘어잡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 총을 쥔, 즉 힘을 꿰찬 권력은 이 힘을 과용해 성상납과 패물과 같은 재산을 빼앗는다. 눈이 멀었다는 그 한가지 점만으로도 인간은 도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민주적 집단보다 총을 쥔 집단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눈먼 총이라는 힘은 결국 그 눈멈 때문에 파멸에 이른다. 유일한 눈뜬 자에 의해 권력의 치우침은 깨지고, 그 와중에 격리수용을 담당했던 사회마저 무너져내린다. 이제 모든 세상이 눈 멀어 있는 셈이다. 그 속에서 과연 인간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믿음만이 그 결과를 예측가능하도록 해 줄 것이다. 영화는 눈먼 자가 다시 눈을 뜨는 것을 통해 암울한 전개과정에서 한줄기 빛을 내비친다.  

그런데 정녕 우리는 눈을 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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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말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최근의 과학적 성과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겨우 2년 조금 넘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랑을 좌지우지하는 호르몬이 이 기간이 끝나면 멈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별을 맛보기도 하고, 반대로 2년이 아니라 20년을 넘게도 사랑에 빠져 살기도 한다.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콩깍지가 씌여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콩깍지가 씌여 있는 기간만으로 따진다 하더라도 어쩐지 과학이 밝혀낸 호르몬이라는 것은 현실과 더욱 거리가 있어 보인다. 때론 구체적이며 실체적인 어떤 작용보다는 감상적이며 추상적인 것이 보다 현실을 잘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쌍화점>이 인기다. 고려왕과 친위부대 건룡위 수장 홍림, 그리고 왕비라는 세 인물을 둘러싼 사랑과 갈등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세 명의 캐릭터는 나름대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만 개인적으로 주진모가 열연한 고려왕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홍림은 남자들만의 세상에 갇혀 살면서 오직 왕만을 바라보며 살다가 여자(왕비)와의 몸섞임이 가져다 준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소원했던 왕비와의 관계가 대리합궁 한번만으로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장면은 어쩐지 과장돼 보인다. 왕비는 그나마 왕이 관계를 계속 거부해온 터에 홍림을 만나면서 사랑에 눈을 떴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고려왕의 갈등이 사랑의 진면목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사랑했던 홍림을 믿고서 왕비와의 대리합궁을 주선했건만 그에게 돌아온 건 배신의 칼날이었다. 여기에서 사랑은 신뢰의 문제로 바뀐다. 그리고 신뢰의 문제는 진실과 거짓말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왕은 홍림의 첫번째 거짓말에 충격을 받는다. 왕비를 만나러 간 걸 다 알면서도 그의 입에서 진실이 말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에게 들려진건 거짓말이다. 홍림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홍림은 정말로 진심을 다해 왕에게로 돌아가려 했는지 모른다. 그 진심이 왕을 움직였다. 하지만 홍림은 그 진실을 진실되게 간직하지 못했다. 왕비 앞에서 진실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는 거짓이라는 복수의 칼날을 꺼낸다. 왕이 자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거짓 처사를 만든 것에 대한 분노였다. 왕은 마지막까지도 홍림의 진실된 말을 듣지 못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어떤 칼끝보다도 날카롭게 그의 가슴을 후벼팠을 것이다.  

사랑은 진실을 대들보로 삼아 나와 연인의 관계를 굳건하게 버티도록 만들어준다. 거짓은 대들보를 갉아먹는 벌레다. <쌍화점>은 홍림과 왕비의 사랑이 호르몬의 작용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왕과 홍림의 사랑 속에서 진실과 거짓말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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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 집착하는 버릇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흔히 영화든 소설이든 연극이든 선택의 기준이 되는 질문은 "어떤 이야기냐?" "어떤 내용이냐?"가 대부분이다. 스토리를 중심에 두지 않고 캐릭터나 이미지의 충돌 또는 분위기만으로 끌고 가는 것들의 매력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매력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것들도 많다.  

<놈놈놈>은 스토리만으로 따지자면 빈약하다. 그러나 '추격'이라는 테마로 살펴보면 남다른 재미가 있다. 물론 세 남자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주는 묘미도 만만치않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쫓아가게 되면 다른 무언가가 쫓아오게 되어 있어. 결국 우리 인생이라는 게 쫓고 쫓기는 연속인거지. 피할 길이 없어. 

박도원은 윤태구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윤태구를 쫓게 된다. 그렇다면 박도원이 쫓기는 다른 무언가는 무엇일까. 피할 길 없는 그 무엇 말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꿈을 품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도원은 오히려 그 꿈에 쫓기는 것은 아닐까.  

꿈을 향해 쫓아가기 보다 꿈에게 쫓기는 상황.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잃어버린 땅만큼이나 척박한 황무지일 것이다. 우린 무엇을 쫓고 무엇에게 쫓기고 있는가. 그림자를 쫓지 말고 환상에 쫓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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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맘마미아>는 참 유쾌하다. 소피는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세 명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피는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이들을 직접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이 세 명의 남자가 도착하고 나서 어머니와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그리고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아바>의 노래로 이어간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런 해프닝과는 무관하게 소피가 자아를 찾아 보금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메시지 이외에도 관객의 마음을 슬프게 하면서도 흡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과 소유에 대한 관계다.

<the winner takes it all> 사랑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짝사랑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사랑을 얻어야지만 비로소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승자가 다 갖는 거에요. 패자는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죠. 승리의 옆에서.

승자가 다 가지는 거에요. 패자는 몰락해야 하는 것. 그건 간단하고 명백한 거죠.

게임은 다시 시작됩니다. 연인이든 친구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승자가 모든 걸 갖게 되어 있는걸요.

정말 사랑은 물론 이 사회도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난다. 세 명의 남자가 모두 1/3의 아빠, 1/3의 사랑이라도 갖겠다고 나선다. (실은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은 유전자 입장에선 최상은 아니라하더라도 차상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유아살해인데 자신의 자식일지 모른다는 상황은 이 유아살해를 쉽게 일어나지 못하게 해준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선 이런 상황이 아내의 자발적 도발로 일어난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보면 그녀 혼자만이 승자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사랑게임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런데 사랑은 정말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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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11-0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좋았지요?
맘 편하고 아주 유쾌하게 봤어요. 전 영화본후 한참을 이 영화속에서 살았다지요..

하루살이 2008-11-1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를 흥얼거리면서요 ^^
귓가에 노랫가락이 한동안 머뭅니다
 

만화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신령님이라 불리는 할아버지는 꿈을 통해 미래를 예지한다. 그는 한때 유행했던 볼링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으며 남은 여생을 보낸다. 그가 뱉어내는 말은 삶의 지혜가 번뜩이는데 그것은 모두 볼링의 경험을 통해 쌓아온 것이다.

볼링을 할 때 도랑으르 빠지라고 굴리는 놈은 없어.
스트라이크를 노리고 굴려야 게임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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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로 굴리기보다는
조금은 빗나가게 굴려야 스트라이크가 될 확률이 높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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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레인은 폭 1.06m 야
다들 스트라이크를 노리며 공을 던지지
누구나 공을 레인에 놓는 순간은 한가운데로 갈 줄 알지
하지만 맨 처음의 각도가 2,3도만 틀어지면...
18.28m의 핀까지 갔을 땐 엄청나게 방향이 틀어지거든.
헤드 핀에서 한쪽 끝까진 53센티미터
스트라이크와 골로 빠지는 공의 차이는 기껏해야 그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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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때리려고...
한가운데에 힘껏 던지면...
양 끝에 핀이 남아서, 빅 2라는 스플릿이 되지.
그렇게 되면 좀처럼 점수 내기가 힘들어.
한가운데에서 비껴 나갔다고 너무 걱정마,
약간 비끼는 정도가 좋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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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스트라이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를까, 그래도 볼을 굴릴 때는 스트라이크를 꿈꾼다. 하지만 정확하게 가운데로 굴러간 볼은 스플릿이 된다. 스페어 처리라는 두번째 기회조차도 날려버릴 만큼 어려운 핀 두개가 남는 것이다.

스트라이크라는 욕심이 볼링공(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한가운데라는 과욕은 스페어(도전)의 기회조차 날려버린다. 욕심과 과욕 또는 탐욕과의 구분점을 알 수 있다면 우린 즐거운 볼링(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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