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렸다!
장동건이 한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평생에 걸쳐 ‘잘 생겼다’라는 말을 들었을텐데, 이제 그런 말이 지겹지 않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장동건은 ‘잘 생겼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지겹지 않다고 말했다. 그 입장이 안 되어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다는데 크게 동감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 특별히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러 번 들어도 지겹지 않은 말은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수학자들이나 음악가들이 어렸을 때 또는 젊었을 때보다 더 뛰어난 이론을 만들었다거나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일은 굉장히 드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글이 나아집니다. 특히 산문가들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의 경우 말입니다. 그렇다는 건 글쓰기가 재능에 달린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압도적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는 걸 뜻하는 것입니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42쪽)
아이들을 키우면서 ‘타고난 재능’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떤 일을 한다는 것, 그것도 곧잘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눈앞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에만 방점을 찍었을 때,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글쓰기의 많은 부분, 압도적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희망을 준다. 다시 두 손을 불끈 쥐게 되고,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라는 김동률 노래를 내 노래로 착각하게 된다. 물론, 이 ‘훈련’이 어떤 훈련인지, 그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테다.
2. 뜻하지 않게 등장해 버리고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해서 복합어를 만드는 예들 가운데는 동의중복 현상을 보이는 말들이 있습니다. ... 이런 잉여적 표현은 어휘 수준, 특히 명사에서 가장 흔합니다. 예컨대 외갓집, 처갓집, 산채나물, 돌비석, 손수건, 모래사장, 단발머리, 한옥집, 양옥집, 삼월달, 낙숫물, 새신랑 따위가 그 예입니다. (167쪽)
뜻하지 않게 등장해 혼자 웃고, 조용히 밑줄을 긋는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다.
3. 실전편
1. ‘의’가 거듭 반복될 때는 대체로 하나나 둘을 빼는 것이 좋습니다. ... 예컨대 ‘한국의 문화’보다는 ‘한국 문화’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의 문화’는 일본식 표현입니다. (123쪽)
2. 여격조사 ‘-에게’는 유정명사, 즉 사람을 포함한 동물 뒤에 쓰고, ‘-에’는 무정명사, 곧 식물과 무생물 뒤에 씁니다. (164쪽)
3. 어떤 조사든, 주격 조사든 목적격 조사든 보조사든, 빼도 의미를 흩뜨리지 않는다면 빼라! 간략함, 간결함, 그게 좋은 문장의 미덕입니다. (221쪽)
4.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오문입니다. 그런데 저런 표현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 꼭 ‘이유는’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으면 ‘이유는 ~에 있다’거나 ‘이유는 ~ 것이다’거나 ‘이유는 ~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문법에 어긋나는 한국어가 됩니다. (257쪽)
4. 지금 그리고 여기
그러면 한국어는 어디에 속하는가?... 원시 한반도에서 쓰이던 정체불명의 언어에 알타이어가 포개져 이뤄진 것이 한국어라는 주장도 있고요. 아무튼 아직까지는 그 어느 설도 입증되지 않았으니, 한국어는 말하자면 고아 언어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언어인 거지요. 세상에 아무런 친척도 없는 언어 말입니다. ... 한국어는 사실상 고아 언어입니다. 한국어와 친척관계에 있는 언어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325쪽)
세계화의 거센 돌풍 아래 영어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세계 공용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인터넷 상에서도 영어로 작성된 문서의 개수는 기타 모든 언어로 작성된 문서의 개수보다도 더 많다(고 들었다). 영어를 공용화해야한다는 주장은 신문 사설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데, 놀랍고 신비한 이런 칼럼을 쓰는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외국어는 11세 이전에 마스터해야만 하고, 그 외국어는 영어이어야만 한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이미 외국어 학습의 적기를 놓쳐 버렸으니, 방법은 오직 하나다. 자녀들을 미친 사교육, 조기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도 할 말이 좀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실상은 영어로 인한 고통과 수난, 그리고 말도 되지 않은 콩글리시로 인한 치욕의 역사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하게 되는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가 아니고, 아니며, 아니라고 주장하는 바, 나는 위의 문단, 위의 문장이 참 좋았다.
한국어는 고아언어입니다.
고아라는 단어가 주는 처연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용하는 한국어, 내가 말하는 한국어는 고아언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언어다. 친척 관계에 있는 언어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말 그대로 고아언어, 하늘에서 온 말, 천상의 언어다.
북한주민, 해외동포를 합치더라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1억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근래의 가파른 출산율 저하로 보아 한국인의 인구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건 이제 눈앞의 현실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 천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말이다. 내 위치에서, 내 자리에서, 한국어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은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더 아름답고 더 유려한 문장을 쓰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어렵다면, 그 곳까지 도달할 실력과 체력, 훈련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다. 양으로 승부를 지어야겠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말해야겠다.
5. 기쁨의 나팔
이번 설에는 어머님이 세뱃돈을 안 주셨다. 아들들은 안 주시더라도 손자들이랑 며느리들은 꼭 챙겨주셨는데, 올해는 며느리들도 패쓰!라고 하셨다. 다행히 엄마가 세뱃돈을 많이 주셔서 상쾌한 기분으로 교보문고로 향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철이 안 들었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서울에 있어 연휴 내내 서울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인지, 아니면, 연휴를 맞아 책을 보러 나온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교보문고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계산대마다 책을 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로 지나갈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딸롱이는 교과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아무 책도 사지 않았고, 아롱이는 『마법천자문 30 : 눈을 떠라, 전설의 수호자! 용 룡』을 샀다. 내가 사고 싶었던 필립로스의 책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자넨 날 수집했네.”라는 기막힌 문장을 앞세운 『EXIT GHOST』를 구입했다.
화면으로만 보고 원서를 구입했을 때 실망한 경우가 많아 알라딘에게는 메롱!이지만 원서는 직접 살펴보고 구입한다. 자간도 넓고 행간도 넓다. 책사이즈도, 표지도, 두께도 모두 적당하다. 마음에 든다. 이제 읽을 일만 남았는데, 고아언어 한국어도 사랑해줘야 하고, 필립 로스의 문체도 제대로 느껴야 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개학’이라 이름붙여진 기쁨의 나팔은 3월 2일에나 울려 퍼질 예정이다. 아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