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열풍은 말 그대로 '열풍'이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아니, 어쩌면 한국에서 더 많이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무시하려 하고, 그러면서도 하루키에 대한 관심을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책판매가 시작되는 평일 오전에 대형서점에 사람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작가는 '하루키'라고 한다. 신문 속 사진으로 끝없이 늘어선 줄들을 볼 때, 다시 한 번 하루키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나는 하루키의 책을 한 권만 (끝까지) 읽어봤기에, 하루키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루키의 책을 안 읽고 지나가기는 좀 뭣 해서, 도서관에 책을 예약하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고등학교 1학년, 아니 2학년 때, 숨막히는 입시 공부에 (공부 열심히 안 했는데, '숨막히는 입시'라고 쓸려니, 부끄러워 숨이 막힌다.) 여념이 없던 시절, 친구 집 책장에 꽂힌 '상실의 시대'는 말 그대로 눈길을 끌었다. '숨막히는 입시 제도 하'에서 나의 자랑스러운 '전교 1등' 친구가 사실 집에서는 한가로이 유명 일본 작가의 '책'을 읽고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중에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소설 속 '나'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의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생활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 후에 <해변의 카프카>인지 <태엽감는 새>인지에 도전했다가 '성적인 장면'을 넘어가지 못 하고, 읽기를 그만두었다. 몇 년 전, <1Q84>도 '여자 동성애자 사이의 육체적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막혀 버려 읽기를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 포기'의 대부분은 '성적인 장면'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이 부분을 싫어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이 부분을 불편해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이 부분을 읽기 어려워 하는 걸까. 좀 더 정곡을 찔러 표현하자면, 나는 왜 이렇게 이 부분에 집착하는 걸까. 

20살,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가히 '폭발적 문화 쇼크'를 안겨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성적인 부분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가히 압권이어서, 나는 지하철에서 여러 번 책을 강제로(?) 덮어야만 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도 그랬다. 길지 않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 몇 장이 그렇게도 힘들고 불편했다. 나는 그 부분이 '남성 작가'에 의해, '남자'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달리 생각할 만한 여지가 없었다. 

이후에 박경리의 <토지>를 읽게 되었을 때, 이런 내 예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 어떤 부분도 너무 적나라하지도, 너무 과장되지도, 그렇다고 미화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덤덤했다. 하지만, 홍명희의 <혼불>은 내 예상이 틀렸다고 말해주었다. 소설 속 '희대의 사건'일 수 밖에 없어 사실적 묘사가 필요했던 장면임에도, '생략'에 가깝도록 간단히 그 부분을 넘어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다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나는 왜 이렇게 이 부분에 집착하는 걸까.

벙커 라디오1에서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의 특강'이 있다. 한 달에 한 두번,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데, 강의 내용이 책으로도 묶여 나왔다. 


 



 

 

 

 

 

 

 

 

 

 

 

 

주로 앞부분은 각 주제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뒷부분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강신주 박사의 대답이다. 보통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들까지도 솔직히 질문하는 경우가 많고, 강신주 박사의 대답도 거의 대부분 돌직구이다. 나는 전체는 아니고 일부를 유튜브를 통해 들었는데, '이 죽일 놈의 사랑'이던가, '몸'에 대한 강의에선가 강신주 박사가 한 고등학생을 언급하는 걸 듣게 됐다. 

그 고등학생은 남자 고등학생인데, 모든 것을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보는' 아이였다. 정확히는 그 모임에서 그 고등학생을 지칭하는 말이, '여성을 볼 때, 가능한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보려고 노력하는 고등학생'이었다. 강의를 듣는 사람 대부분은 여성, 그 중에서도 미혼 여성이 대다수이고, 강신주 박사가 강의 중에 그 고등학생을 찾을 때, 웃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물론, 그 고등학생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투의 웃음 소리가 아니었다. 

남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가지고 있는 혈기왕성한 나이의 남자 고등학생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볼 때, 가능한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어떤 이유에서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런 시도를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귀엽고 가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도 알고, 그 고등학생도 알고 있듯이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사람을 보다니. 남자를, 여자를. 여자를, 남자를.

이건 내 소설 읽기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소설을 읽을 때, '성적인 요소'에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성적인 요소'을 배제하며 읽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는 소설 속에서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하루키를 읽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다자키 쓰쿠루는 인생을 순조롭게 별문제 없이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명문 공대를 졸업하고 전철 회사에 취직하여 전문직으로 일한다. 능력에 대해 회사에서는 안정적으로 평가한다. 상사에게도 신뢰받는다. 경제적으로도 불안하지 않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도심에 가까운 편리하고 좋은 주택지에 원룸 아파트를 가졌다. 대출도 없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돈이 드는 취미도 없다. (275쪽) 

아무것도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사람 다자키 쓰쿠루. 그는 색채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개성이 없는 사람이다. 쓰쿠루는 스스로를 그렇게 보았다. 나는 개성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색채가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건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색채가 없고, 개성이 없는 듯한 쓰쿠루는 인간 생활에서 또는 현대 생활에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대부분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에,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필요도,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닐까. 이건 16년만에 핀란드에서 만난 구로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넌 다정하고 쿨하고 조용하고, 그 때부터 자기 삶의 방식을 가졌어. 그리고 잘 생기기도 했고." (371쪽) 

다섯 명의 친구 모두 대도시 교외의 '중상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그 중에서도 쓰쿠루의 집이 제일 유복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경제적인 압박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정하고, 쿨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갖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친구로 두고 싶어하는 사람의 품성이다. 게다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의 몇 마디에 훅하는 철없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가능한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느껴지는 모습을 십대 시절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잘 생기기'까지 했다.

 
나는 남자가 아니고, 그리고 '예쁜' 여자도 아니기에, 솔직히 '잘 생겼다'는 그 특별한 혜택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처지는 못 되지만, 굳히 사회학 책을 열고 닫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잘 생겼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참 편안하게, 흘러간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몇 살의 나이로 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잘 생겼다'는 것, 그것은 그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대부분, 플러스로 작용한다. 

부잣집의 다정하고, 쿨하고, 조용한 성격의 남자 고등학생이라니.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돈이 드는 취미도 없는 성인 남자로 성장한 것이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의 '타락하지 않음'이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다자키 쓰쿠루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부족함 없이 누리며 살았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 괴로워한 경험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말로 원하는 것을 고생해서 손에 넣는 기쁨을 맛본 적도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없었다. ... 사라는 드물게 그가 갈구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이다. ... 그리고 지금 와서는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여러 가지를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렬하고 생생한 감정을 품는다는 건 그에게 드문 일이었다. (276쪽) 

그런 쓰쿠루가 진심으로 갈구하는 대상이 나타난다. 사려깊은 사라는 쓰쿠루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애쓴다. 다자키는 그녀의 마음에 감동한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을 좋아한다. 

"당신을 정말 좋아하고, 진심으로 당신을 원해." 쓰쿠루는 그 말을 반복했다. 
"그게 새벽 4시에 나한테 전화해서 전하고 싶은 말인거네?"
"응."
"술 마셨어?"
"아니, 맨 정신이야." 
"그렇구나. 이공계 사람치고는 아주 열정적이네." (406쪽)
 
내겐 '아니면 말고'의 철학으로 기억되는 하루키가 이렇게 말해서, 새벽 4시에 전화해서 '당신을 정말 좋아하고, 진심으로 당신을 원해.'라고 말해서 나는 좀 놀랐다. (아니면 말고~) 

물론, 이게 내가 원하는 바다. 실제로 하루키가 어쩐지는 잘 모르겠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난 쓰쿠루가 사라에게 전화하기를 바랬다. 좀 더 적극적이기를 바랬다. 좀 더 열정적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저 문장을 읽게 됐을 때, 내심 기뻤다. 난 사라가 아닌데. (사라는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새벽 4시여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순례의 해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온 쓰쿠루, 자신이 버림받은 이유를 알게 된 쓰쿠루, 자신에게 매정했던 친구들을 용서한 쓰쿠루, 상처를 직시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쓰쿠루 옆에, 사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는 둘의 결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 놓고 푹 자."라는 그녀의 말에서 행복한 결말을 상상해 본다. 한 번쯤은, 적어도 인생에 한 번쯤은, 쓰쿠루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하루키의 다른 책도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적인 요소'에 집착하지도,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지도 않는 독서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일단 <빨간 책방>에서 내 진정 사랑하는~ 김중혁 작가가 제일 좋아한다는 하루키의 단편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 도전해 봐야겠다. 읽을 책은 많고, 시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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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9-3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단발머리님 글 디게 잘써요! 읽기 시작하면서 한번에 좌르륵 읽히네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저는 무척 좋아했는데, 그 책을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야하다' 라고 얘기하는 걸 많이 들었어요. 자위에 대한것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나, 하는 얘기들을 하더라고요. 그럴때마다 저는 대꾸했죠. '늬들은 친구들하고 야한얘기 얼마든지 하지 않냐,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진 않다해도 친한 친구들과는 얼마든지 야하고 변태같은 얘기들을 주고받을텐데, 그렇게 주고받는 둘사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소설로 옮겨놓은 것 뿐이다. 하루키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야한게 아니다' 라고 말이지요.

가장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하루키에게 푹 빠진게 그의 단편 [일곱번째 남자] 때문이었어요. 『렉싱턴의 유령』이란 단편집에 실린 단편인데 그 단편을 읽는데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건지,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너무 잘 느껴지는거에요. 소설과 제가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 때부터 하루키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죠.

단발머리님이 앞으로 읽게 되실 하루키가 궁금해요. 아, 저는 [댄스 댄스 댄스]도 엄청 좋아하는데!!

단발머리 2013-09-30 13:15   좋아요 0 | URL
아하리요~ 다락방님께 칭찬들으니, 점심 안 먹었는데, 완전 배부른데요.

다락방님은 하루키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 저는 그 놈의 '성적인 요소'가 많이 걸려서, 여러번 포기했더랬죠. 그러게요, 진짜 친한 친구들하고는 야한 애기 많이 하지요. 사실, 제 친구들, 약간 순~한 구석이 많은데도, 야한 얘기가 솔솔솔 나온대죠. 제일 신나서 이야기하는 애가 말하길, "엄마한테 물어볼 수가 없어. 너희들한테밖에."

다락방님 말씀이 맞는거 같아요. 하루키가 특별히 더 야한건 아니지요. 제가 그 고등학생처럼, 자꾸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고서 소설을 읽으려고 하니까,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ㅋㅎㅎ 하는 거겠죠.

하루키 단편 <일곱번째 남자>는 처음 들어봐요. (전, 뭐든 처음이네요.^^) 요 위에,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다음에 <렉싱턴의 유령>을 찜~~해야겠어요. 그 다음은 <댄스 댄스 댄스>

다락방님은 하루키에, 빅토르 위고에, 이응준에, 이승우에, 토머스 H. 쿡에, 그 뭐죠, 싱가폴에서 사왔던 원서, 줌파 라히리에, 종횡무진하시느라, 점심 드실 시간이라도 있으시겠어요?

얼른 점심 드세요~ 저는 추석 때 남은 송편 찌고 있어요. 밥 차리기 싫어서.............

도갤러67 2013-09-3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루키 책 망하지 않았나요? 열풍이라고 하기에는.. 인터공원에서 1만원 적립금 줘도 하루 1위하고 말던걸요. 그 비싼 선인세에 이 정도라면.. 이제는 왜 하루키가 안 통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1. 본질은 자기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본질이냐? 고스톱이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일까?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치는 고스톱이, 애니팡이 당장의 내 스트레스는 풀어주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나한테 진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60쪽) 

나는 박웅현의 삶의 태도 여러면에 공감한다. 행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 모두 공감되는 이야기들이다. 본질이 자기 판단에 있다는 자세 역시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게임 얘기를 듣고보니, 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카카오톡' 김범수 '악착같이 살지마' 의외의 조언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7> 김범수 카카오 이상회 의장, 머니투데이, 2011-10-19> 

김범수씨는 PC통신 유니텔을 만들고, 한게임을 만들고, NHN을 만들고, 그리고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인생에 한 번 대박을 치기도 어려운데, 그는 연거퍼 대박을, 그것도 초대박을 터뜨렸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재학 당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빠져 살다가, 대학원에 다닐 무렵 후배 사무실에서 BBS(전자게시판시스템, PC통신의 초기형태)를 보고는 '컴퓨터 세상'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남들보다 반발자국씩 앞서가고 있다. 

요점은 이게 아니다. 시대를 내다보고, 사회의 흐름보다 앞서가는, 한 천재의 이야기에 내가 감동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인터뷰 기사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건 바로 이거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혼자 한국으로 돌아온 김범수씨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여기에서 한 번 놀란다. 남들은 못 보내서 안달인데, 고1, 중3 한참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을, 놀자고 꼬시다니. 놀자고 공부를 중단시키다니.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놀게만 했어요. PC방도 자주 갔어요. 저도 게임 잘하고, 와이프도 고수거든요. 딸이 문제였는데 아들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죠. 넷이 게임하다보면 금세 새벽 4시였어요. PC방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행복했어요." 

여기서 두 번째로 놀란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아빠가 PC방에 가서는 새벽 네 시까지 놀아재낀다. 일반적으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롤러코스터급 난코스 교육법이다.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다. 행복했어요. 

박웅현과 김범수를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일단 지하철에서 애니팡이나 고스톱을 치면 안 된다. 그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을 새서 게임을 하는 건 괜찮다. 공부도 하지 말고, 원도 한도 없이 오직 게임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나도 일 좀 해야겠다, 하는 깨달음이 온다. 최선을 다해 놀았으니, 최선을 다해 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내가 우리 아롱이에게 '두 시간 고무 딱지 타임'을 허락하는 이유이다. 

다른 답은 내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의 인정,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존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나의 상황이 완벽할까요? 딸을 하나만 낳은 것, 이 직업을 선택한 것, 원주의 선택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완벽한 선택이란 없습니다.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을 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140-1쪽) 

현재에 충실한 삶은 결국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일테고, 그런 삶이란 선택을 한 후에는, 나의 그 선택을, 나의 모든 세포들의 선택을, 나의 최종 결정을 바로 내가, 믿어주는데 있다고 박웅현이 말한다. 

딸을 하나만 낳은 것, 이 직업을 선택한 것, 원주 청춘콘서트에 가기로 했던 것은 하나의 선택이고, 이젠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아빠의 애절한 권유를 뿌리치고 교대에 가지 않았던 것, 교직을 이수하지 않았던 것 (아니면 성적 때문에 못 했던 것), 교육대학원을 가지 않았던 것,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이건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자세, 게으름에 관한 문제이므로 빼야겠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 것.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무언가를 선택했고, 그리고는 후회했다. 이제는 나의 그 선택들을, 내 세포들의 선택들을, 나의 최종 결정을 믿어주어야겠다.   

모든 인생이 최선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도, 직업도 차선, 차차선의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선택들이 주로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때로는 차선에서 최선을 건져내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226쪽) 

나는 '특별한 일'을 이룰만한 '특별한 재능'도 '특별한 인내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내 인생의 선택은 최선과 가까운 차선, 아니면 차선이었다. 차차선을 선택했지만, 거기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박웅현보다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이유다.

 



2. 박웅현이 추천한 음악과 책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은 전작 <책은 도끼다>에서도 추천한 책이어서 제목이 익숙하다. 나머지 두 권은 처음 보는 책들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가야금 캐논,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숭어>, <바이올린 협주곡>,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 스메타나 <나의 조국>, 데이브 브루벡 퀘텟 <Take 5> 

귀에는 익숙해도 실제로 곡명을 모르는 곡들이 많다. 유투브에서 한 곡씩 찾아듣고 있는데, 참 좋다. 가끔은 모르는 게 많아도 좋을때가 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까. 



 

3. 여기서부터 1시간 20분 걸립니다 
 
시댁과 친정이 20분, 5분거리에 있는 나에게, 20일 오후부터 진짜 휴가가 주어졌다. 어디 가서 재미있게 놀아볼까 고민하다, 서울촌놈 서울구경한다고 '남산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명동에 갔다. 시작부터 조짐이 안 좋더니만,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하자, 엄청나게 늘어선 긴~~줄이 우리를 맞아준다. 일본 관광객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들 같다. 우리처럼 한국만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띌 뿐이다. 표를 끊는 줄이 따로 있고, 케이블카 타는 줄이 따로 있다는 어마어마한 소식도 전해진다. 휴일 근무에, 많은 사람들 때문에 피곤에 지쳐 보이는 남자 직원이 저 쪽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로 외친다. 

"여기서부터 1시간 20분 걸립니다." 

평소 운동량이 극도로 부족한 어른 둘과 어린이 둘은 이미 올라오며 체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 망연자실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  

"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에 와서 타자."   

아쉬운대로 명동 구경에 나섰다. 여기도 위쪽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중국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사람, 여기는 한국인데, 간판은 3분의 1이 일본어로 쓰여있었고, 들리는 소리는 대부분 중국말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랜만에 명동에 나왔던가. 거리는 익숙한데,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온 김에 '명동칼국수'를 먹겠다는 나를 위해, 나보다 더욱 간만에 명동에 입장한 신랑은 스마트폰을 열고서는 이리저리 우리를 이끌었다. 도대체 어디 가는거냐는 애들의 성화를 뒤로 하고, '명동교자' 칼국수집에 도착했으나, 어엇! 여기서도 길다란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반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 도끼가 네 도끼냐'도 아니고, 아롱이는 '이 칼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가 아니다'고 박박 우겨대며 떼를 쓰고, 앉아 있는 손님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에 시끄럽고 산만한 분위기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단 하나의 위로라면 자리에 앉아서도 이거 먹을려고 줄까지 서야 되냐며 툴툴거리던 딸롱이가,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워냈다는 것. 

어떤 추석은 이렇게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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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9-2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범수 에피소드는 글쎄요.... 결과가 합리화 시켜준 굉장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명동교자에 줄서서 칼국수 먹던 기억이 나네요. 강남역 근처에 있는 강남교자도 같은 명동교자 출신이 만든 칼국수라 맛과 서비스 내용(면 리필, 김치 서비스 등)이 거의 동일하답니다.^^

단발머리 2013-09-23 19:11   좋아요 0 | URL
아하...그럴까요. 저는 '좋아하는 일 하다가 대박친 사람들'에게 너무 약한거 있죠. 제가 아직 어린가봐요^^

강남교자도 맛과 서비스가 비슷하다면 거기서도 줄을 서야하는지 궁금하네요.
저흰 다행히 신랑이 눈치있게 3층으로 가겠다고 해서 많이 기다리진 않았는데, 먹고 내려올 때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란.... 아.....

야클 2013-09-23 21:44   좋아요 0 | URL
콩국수를 많이 찾던 7,8월엔 12시 쯤 가면 10 ~ 15명 정도 줄을 섰는데 요즘엔 아무때나 가도 줄을 설 정도는 아니더군요.

단발머리 2013-09-23 23:1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갔던 명동은 2층까지 가려는 줄이 도로에까지 쭈욱 이어져서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올 여름은 콩국수를 먹지 못 하고 지나갔네요.
콩국수가 먹고 싶군요.........아...콩국수...
 

 

 

1. 여긴 뭐, 똑같지 뭐. 


 

아침에 싱가폴에 사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거긴, 별 일 없냐? 어. 
여긴 추워졌어. 매미소리보다 귀뚜라미 소리가 더 잘 들린다면 가을입니다, 그런다니까. 어제는 자다가 추워서 오리털이불 꺼냈어. 음. 
거긴 똑같냐? 여긴 뭐, 똑같지 뭐. 
야, 항상 여름도 지겹겠다. 음, 좀 그렇지 뭐.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지만, 항상 여름도 좀 그렇긴 하다. 


 

2.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음악의 계절이다. 가을엔 (책 따위에) 눈을 뺏겨서는 안 된다. 자연의 모든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밤이 오기 전의 노을처럼 곧 겨울이 되어 색을 잃어버릴 많은 것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자기 빛을 발하고 있는데,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나무들은 얼마나 선명한데, 책 같은 거 보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가을을 보아야 한다. (책을 꼭 봐야겠다면 김중혁의 책을 수줍게 추천해본다. 김중혁의 책을 읽다 보면 곧 하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수줍게 주장해본다.) (185쪽)  

 

 

 

 

자기의 책을, 수줍게 추천하는 이 사람 때문에 웃는다. 그 덩치에 수줍게라니요. 덩치답지 않게 참, 귀여우십니다. 

3. 민음사 책은 많이 샀는데 

 

 

 

 



알라딘 only 노트를 보고야 말았다. 아, 민음사 책들은 저번에 많이 사두었는데. 겨울양식도 아니고, 읽지는 못했고 사 두기만 했는데. 나 혼자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삼아야하는 건지 어쩐지. 

 

아니다, 나는야 내일 종일 부침개 부치는라 애쓰실 몸, 그냥 확! 결제해 버릴까. 일단 책을 세 개만 골라보자. 

일단은, 골라놓고~~~  

 

 

 

 

 

 

 

 

 

 

 

 

 

 

 

 

 

 

 

 

책 구입의 변

 

1) 집에 있는 책은 <상실의 시대>지,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다.

 

2) <지상의 노래>에서 '압살롬'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 이야기가 이 이야기인지 확인 좀 해 봐야겠다.

 

3) '너대니얼 호손'은 학교 다닐때 제일 좋아했던 작가이다. 교수님도 읽지 않으셨겠지만, 졸업 논문도 그에 대해 썼다. (정확히는, 나는 '나다니엘 호손'에 대해 썼다.^^) 도의상 이 책도 읽어주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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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9-1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1,2번은 저와 상황과 이유가 같아요!! >.<
저 노트 있어도 쓸 일이 없던데 그런데도 반드시 노트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뭐죠? Orz

단발머리 2013-09-17 13:4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약속 많으셔서, 노트 필요하실텐데. 앗! 노트는 다이어리가 아니군요.ㅋㅎㅎ

그러게요~~ 저도 저번에 받은 '안나 카레니나' 노트가 집에 잘~ 있거든요. 몇 개는 딴 분 드리고 제일 예쁜건만 가지고 있는데, 저 노트들도 갖고 싶어요.

노트 쓸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느낌이! 팍팍!
 

 

 

 

 

 

 

 

 

 

 

 

 

1. 글쓰기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당연히 작가들에 대한 책들도 좋아한다.

 

 

1)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 (19쪽)

 

 

 

 

글쓰기 책을 여러권 읽어봤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충격적(!)인 책이다. 정말 글을 쓰고 싶은지 묻고, 묻고, 다시 한 번 묻는다. 그것이 정말 원하는 일인지 묻고, 묻고, 다시 한 번 묻는다. 실제로 문장을 고쳐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뒷부분은 읽지 못 했다.

 

2) 소설을 살다

 

 

소설 쓰기가 막힐 때, 소설을 읽었다는 이승우 작가님의 말은,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데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3) 나는 쓰는대로 이루어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글은 감흥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에 접했을 때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흥분이 고스란히 글의 행간에 저장되었다가 읽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주위에 생기와 부러움을 퍼뜨리듯,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쓴 글은 읽는 이를 자극한다. 반대로 의무감에서 혹은 관심이 덜 무르익었을 때 쓴 글은 '식은 피자'처럼 식욕을 돋우지 못한다. ... 그래서 윌리엄 진서도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대,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무엇보다 삶과 사랑에 빠져라. 생에 대한 열렬한 에너지가 독자를 매료시킬 것이니, 그것이 매력 있는 저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55쪽)

 

약간 (약간이 아니라 조금 많이?) 자기계발서 같은 면이 없지 않으나, 일단 읽었을 때는 글쓰기에 대한 각오를 불끈 들게하는 책이다.

 

4) 작가가 작가에게

 

 

성공적인 작가 생활을 하고 싶다면 가장 기초적인 규칙부터 마련해야 한다. 기본이 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 이 규칙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규칙 1. 매주 일정 분량의 글을 써라 (33쪽)

규칙 2. 종이에 당신의 목표를 써라!

 

왜? 종이에 당신의 목표를 적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두뇌는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적어둔 목표를 자주 읽어보라. 매일같이 읽는 것이 좋다. 필요에 따라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는 것도 좋다. 그 목표들은 항상 당신의 눈앞에 있어야 한다. 가능한 구체적일수록 좋다.

 

나는 일주일에 5,000 단어를 쓸 것이다.

3월 1일까지 소설을 끝낼 것이다.

9월 15일까지 내가 쓰는 장르를 다루는 에이전시 여섯 곳을 찾아낼 것이다.

12월 10일에 나는 가장 괜찮은 에이전시 세 곳에 원고를 보낼 것이다. (246쪽)

 

 매주 일정 분량,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임은 확실하다.

 

 5)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6) 작가 수업

 

 

 

 

 

 

 

 

 

 

 

7) 안정효의 글쓰기만보

 

 

  위의 세 책은 도전했다 끝까지 읽는데 실패한 책이다. 『뼛속~』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만두었고 (어떤 분위기인지는 직접 읽어보시면 알시겠지만서도(^^), 약간 신비주의적 분위기라 해야 하나, 모든 예술의 종국은 그러하리라 생각하지만, 약간 으스스한 것도 사실이다. 제목부터 그렇다. 뼛속이라니...), 『작가 수업』은 내가 도서관에 신청한 책인데 안 읽혀서 끝까지 읽지 못 했다. 안정효의 책 역시 반 정도 밖에 읽지 못 했다.

 

 

 

 

 8) 나는 오직 글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작가의 성장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벌처럼 한마디를 쏘았다. 몸과 마음이 따가왔다.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어요." (98쪽)

 

 

 

 

 

 

 

결국 작가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오직 글 쓰고 책을 읽을 때에만 행복한 사람들.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지 않는다면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테고, 돈 주면서 글 쓰고 책 읽으라하면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다.

 

 

9) 우리가 보낸 순간 -소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223쪽)

 

 

 

 

 

 

 

김연수의 격려는 그 누구의 격려보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작가로서 쓰기는 요원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쓴다는 것도 꿈같은 이야기지만, 원하는 삶, 더 나아진 세계를 위해 쓰라는 그의 말은 공감 100%다.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고, 원하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써야겠다. (그런데, 뭘?)

 

10) 유혹하는 글쓰기

 

 

위의 10권 중 다시 읽고 싶은 책 1위다. 영어 원서 이름은 『On writing』인데, 한글책 제목도 잘 뽑은 것 같다. 책 앞부분이 대부분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데, 글쓰기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다. 너무, 너무 재미있다.

 

 

 

 

 

 

 

 

2. 글쓰기의 최소원칙

 

1) 김훈 - 꽃은 피지 않았고, 대신 꽃이 피었다

 

'꽃이 피었다'는 것은 'Flower bloom'이라는 물리적 사실을, 그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고, '꽃은 피었다'는 것은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에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주관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죠. ... '꽃이 피었다'라는 것은 사실을 진술하는 문장이고, '꽃은 피었다'는 것은 의견이나 정서를 진술하는 문장인 것이죠... 내가 쓰고자 원했던 문장은 '꽃이 피었다'였어요. 내가 이걸 만약 '꽃은 피었다'라고 썼으면 나는 망하는 것이에요. (56쪽)

정보와 사실을 명확하게 나누려는 작가의 끈질긴 노력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치열한 노력으로 한 문장, 한 문장 만들어가니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박명수만 노장투혼이 아니다.

 

2) 김영하 -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을 써라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은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지요. 거기서 저는 기본적인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해방감이죠. ...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을 써라. 부모가 보면 안 되는 글을!" (293쪽)

김영하는 이미 자신만의 ‘문체’, 자신만의 ‘색깔’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니, 그가 문장에 대해서 가볍게 여긴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김영하는 문학에서의 중요한 방점을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희열’, 즉 ‘해방감’에 찍었다고 본다.

 

3) 김수이 - 글쓰기는 말하기의 변주 형태

 

눈치챈 불들도 계시겠지만, 글쓰기는 말하기의 변주된 형태로, 글쓰기의 욕망은 말하기의 욕망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문학적 글쓰기의 주체가 고민하는 것과 똑같이 언어의 절대성과 무력함의 문제에 부딪칩니다. (157쪽)

글쓰기는 말하기의 변주된 형태이다. 이것은 모르는바 아니건만,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글을 쓰고자 하는, 아니 무언가를,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쓰고자 하는 내 욕망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내 욕망의 변신이란 말인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가. 나는 왜 말하고 싶어하는가. 나는 누구에게, 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가. 나는 왜 말하고 싶어하는가. 나는 왜 쓰고 싶어하는가.

 

3. 이번주 <런닝맨>에서 뻘에서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 때

 

신랑은 참아가며 웃고, 딸롱이는 소리내어 웃고, 아롱이는 손으로 소파를 두들기며 웃어댔다. 김종국이 깃발에 가까이 다가가며 힘을 다해 손을 뻗었을 때, 화면이 느려지면서 이 노래가 나왔다. 고음을 그렇게 작은 소리로 떨림이나 음처짐 없이 불러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정말 대단하다. 역시 조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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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9-16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님 이런 페이퍼 무척 좋아합니다.
단발머리님께서 왜 이리 글을 잘 쓰시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글쓰기 관련 책은 아무리 자주 접해도 지겹지가 않아요. 너무 관심이 많아도 안 되는데 여하튼 전 이런 페이퍼 보면 울렁거려요. 이 중에 읽은 책은 몇 권 안 되지만 큰 도움 됩니다. 찜했어요. 고맙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어요.

단발머리 2013-09-17 09:09   좋아요 0 | URL
아...... 팜므느와르님께 이런 칭찬을 들으니 하늘로 둥둥 뜨는 기분인데요~~ 이야호!!!

팜므느와르님 따라갈려면 아~~~직도 멀었어요.
저도 그저께 읽은 책들 정리하다가 놀랐어요. 내가 이쪽 책들을 좋아하는구나, 하면서요.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 많아 저도 몇 권은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내일부터 연휴네요.
시댁이 코앞이라 내일 아침부터 시댁에서 먹고 부침개 부치려구요.
팜므느와르님도 맛나 음식 준비만 하지 마시고, 맛난거 많이 드시고, 즐건 추석 되세요~~~
 


 

 

 

 

 

 

 

 

 

 

 

 

 

 

1. 어이구, 데뷔하실려고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연기가 주요한 연극이나 영화보다 내가 뮤지컬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야기는 노래로 전해질 때 더 강력해진다고 늘, 생각한다. 

노래하는 것과 노래듣는 것,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는 것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주위에 폐를 끼친다. 저번주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사온 지 10개월만에 처음으로 3층에 사시는 여자분을 만났다. 3층이세요? 아, 저희 4층이예요. 저희 애들이 너무 시끄럽지요? 여기까지가 기본 멘트다. 아래층에게는 무조건 공손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한테도 항상 말한다. 5층 누른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면 인사 안 해도 되지만, 3층한테는 무조건 인사해, 무조건!) 

그 분이 답한다. 아니요, 아이들 소리는 괜찮은데. 저, 피아노 소리요. 피아노를 많이 치시던데, 노래도 많이 부르시고요. 그리고는 나와 딸을 번갈아 쳐다본다. 도대체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 확인하려는 듯. 내가 말한다. 아, 네.... 

그 분이 말한다. 저는 노래소리가 하도 많이 나서 어디 데뷔하시려고 준비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리곤, 또 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도대체 데뷔하려는 듯 주구장창 노래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 아, 네.... (그 와중에도 '데뷔'라는 말은 참 듣기 좋았는데, 3층 여자분의 이야기 어디에도 '잘한다'는 말은 없었다. T.T)  

지난달에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와서, 악보를 구해서는 제일 유명한 넘버 <나는 나만의 것>을 신나게, 줄기차게 불러댔더니만, 아, 드디어 민원 접수되는구나.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위아래 층에서 노래소리, 피아노 소리 때문에 전화 꽤나 오더니만. 나 혼자 부르는데도, 내 소리가 그렇게도 크고 우렁차단 말이냐. 내 피아노 터치가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2.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노란색 표지에 보통의 책보다 작고 가벼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특정 종교의 노래, 특정 양식만을 편식적으로 좋아하기에 사실 김중혁이 말하는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가수들을 알지 못한다. 그냥, 읽는 거다. 내가 김중혁을 좋아하니까, 그를 좋아하니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거다. 그러다가 이 구절을 읽게 됐다. 

윤상의 목소리와 피아노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멀어지는 기억을 잡아두려 애쓰지 말라고", 많은 게 흘러갔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하라고. 노래의 마지막 가사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 너의 탓은 아니야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생긴 일들이 누군가의 탓은 아니라고, 우린 그저 잘 받아들이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냥 흘러가는 거라고, 바람처럼, 스쳐 가는 나뭇잎처럼 그냥 지나가는 거라고, 이런 순간들, 짧은 순간들, 자전거 위에서 맞는 바람 같은 순간들. (29쪽)  

순간 뭉클해졌다. 윤상의 목소리가 김중혁에게 했던 말을, 김중혁이 나에게 하고 있었다. 
'아니 너의 탓은 아니야 그건 너의 탓은 아니야' 

지난 3주간은 지옥같은 한 철이었는데, 사정을 써 내려간다면야 A4 2장짜리지만, 요는 이 세상 마음대로 안 되는게 참 많다고 하지만, 자식 일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없더라는 것이다. 이 상황이라는 것이 참 요상해서, 사건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연관관계라는 것이 참 불투명해 내 자식을 탓할 수만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시발점은 내 자식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내게는 '** 어머니'라는 이름 아닌 이름이 있었으니까. 월요일 아침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오후에는 어떤 엄마를 만나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는 이 책을 만났다. 
'내 탓이 아니라고' 김중혁이 말해줬다. 

책과의 인연을 안 믿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책과의 인연을 믿는 편이다. 지금 내가, 책을 좀처럼 사지않는, 산다면 '고전'이라 불릴만한 '세계 문학'만을 고집하는 내가, 도서관에 신청도 하기 전에, 구매를 결정해 우리집, 우리집 책상 위에서 이 책을 만난건, 우연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나의 무언가가 그 책을 우리집으로, 내게로 이끌어줬다.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난 그 책이, 내게 말해줬다. 
'그건 너의 탓은 아니야' 

 

3. 김중혁이 자전거를 타면서 자주 듣는다는 윤상의 노래는 

<영원 속에>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윤상의 노래는 다른 것이다. 아마도 제일 유명한 노래일듯하다. 이 글도  노래를 들으면서 쓰고 있다. 나는, 울고 싶게 만드는 이런 노래가 좋다. 

윤상이 부릅니다. 이별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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