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영장 의자, 옆자리의 엄마가 꺼낸 책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딸롱이가 6살 때 수영을 시작했다. 그 때도 9월이었으니까, 벌써 5년이 되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오리발 사는 데까지가 목표였는데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네 가지 영법을 한 번 쭉 훝었을때, 오리발을 산다. 오리발을 사서, 오리발을 끼고, 자유형부터 다시 배운다. 보통 7개월 길게는 9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 정도는 해야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수영을 해도 영법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들을 한다.), 하다보니 이렇게 오래 하게 되었다. 여자아이가 할 만한 운동이 몇 가지 없다는 것도 이유였고, 검도를 시키기에는 나이가 좀 어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앉아 기다리는 걸 싫어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이유 중의 이유였다. 모래 놀이터가 마음에 안 들기도 했지만, 놀이터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는 게 조금 힘들었다. 아이들끼리 나가 놀라고 하고 안 나가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면야, 아, 세상이 험해서라고 말해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 수영을 오래 하다보니 제법 큰 대회에 나가 금메달, 은메달도 따오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다보니,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듯 하다. 다른 집 엄마들은 이제 고학년인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냐고 하는데, 우리 애들은 학원을 안 다니다 보니, 남는 게 시간, 치이는 게 시간이다. 올초부터 아롱이도 시작하게 되서, 둘 다 어푸어푸 수영을 한다. 

5년차면 대리. 나도 수영계에서 이골이 났다. (흐흐, 이골이 났다.) 처음에는 아이들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지만, 내가 쳐다본다고 아이들 수영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자세가 틀렸다고 내가 교정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이들 모습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닌데, 이런데, 예를 들면 수영장에 나와서까지 책을 읽어야하나 싶지만, 사실 그 시간이 내가 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책 읽을 수 있는 시간. 신경이 쓰이는 건 옆에 앉은 엄마들이다. 대부분 아는 엄마들인데, 혼자 책을 쫘악! 펴기가 좀 그렇다. 다른 층에서 몇 줄 읽다 오기도 하고, 매점에 들어가서 읽기도 하는데, 요즘은 자꾸 매점 주인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시고. 나는 어쩌나 하다가. 

여기까지 써놓은 걸 읽어보니 나, 좀 이상한 사람같다. 아니, 책을 읽으면 얼마나 읽는다고. 한 달에 고작 몇 권씩, 그것도 쉬운 책으로만 읽는데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어야 하나. 하필 그 시간에, 다른 엄마들은 도란도란, 시댁, 친정, 교육, 아이들, 드라마 이야기꽃을 만발하게 피우건만 거기에서 책을 쫙! 펼친단 말이냐. 하지만, 난 수영계 입문 5년차 대리급이다. 그렇게 월수금 1시간씩 5년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다. 딸롱이가 어렸을 때는, 언니들과 얘기하고 노는게 재미있었지만서도, 이젠 아... 오늘은 여기까지.

월요일에 (할려고 했던 이야기가 이제 나온다.^^) 수영장 로비에 들어섰더니, 저 안쪽 두 번째 의자에 DH 엄마가 책을 읽고 있는 거다. 앗싸~ 하면서 나도 옆에 앉아 책을 펼쳤다. 열심히, 뚫어져라 책을 읽다가 옆을 바라보니, 책표지가 A4 종이로 가려져 있다. DH 엄마에게 물었다. 무슨 책인데, 책을 쌌어요? DH 엄마가 말했다. 버릇이라고, 자기가 읽는 책을 남들이 보는게 싫다고. 내가 또 물었다. 그래요? 무슨 책인데요? DH 엄마가 들고 있던 책을 보여주었다. 


 

 

 

 

 

 

 

 

 

 

 

 

 

내가 읽고 있던 책 <살인자의 기억법>. 

둘 다 김영하 작가님 책이다. 이렇게 되기 참 힘든데. 엄마들 이야기 꽃이 만발한 수영장에 나란히 앉아,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보고 있다. 하하 이런. 수영장에서 생긴 일이다. 

 

2. 살인자의 기억을 말하는 리뷰

좋은 리뷰란 어떤 리뷰일까. 짧은 내 생각엔, 리뷰를 읽은 사람이 그 책을 읽고 싶다고 느끼게 해 주는 리뷰가 좋은 리뷰인것 같다. (더 좋은 리뷰는 리뷰를 읽은 사람이 그 책을 꼭 사서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해 주는 리뷰다.ㅋ) 리뷰를 쓴다고 하면 좋은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다. 눈부시게 하얀 컴퓨터 화면에 한 자, 한 자 글자를 찍어나갈 때, 의미없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 다시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좋은 리뷰를 쓸 수 있나. 어떤 리뷰가 좋은 리뷰인가. 

예를 들어, 내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그 줄거리를 요약해, 이를 테면,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건데, 알고 보니 이게 이거라서, 저게 저렇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해준다면, 우연찮게 내 리뷰를 읽게 된 어떤 사람은, 내가 읽었던 박진감 넘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김영하의 이 책, 재미있으면서도 통찰력 있는 이 책, 굉장한 파괴력, 단숨에 읽히지만 긴 후유증을 남기는 (가수 이적) 이 책,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같은 체험을 주는(문학평론가 권희철) 이 책을, 결국엔 읽지 못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이다. 줄거리를 아는 것이 중요한가. 핵심 사건의 시작과 끝, 주인공의 등장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가.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설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김영하의 책에서 그의 '힘'을 발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손을 잡고 (손을 잡고? 좋다~) 그와 함께, 그가 보여주는 세상으로 같이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책은 한글로 씌여 있다.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57쪽)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 가다가 이 구절에서 멈짓하고 말았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 진정한 친구. 그런 친구가 지금 내게는 있는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잘못 하는 경우에라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를 지지해줄 사람. 그런 사람들. 아, 다행이다. 내일, 그들을 만난다.  

은희가 평소답지 않게 말꼬리를 올린다. 저리 발끈하는 걸 보면 그놈과 같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제는 변명조차 하지 않는 은희. 어차피 내가 다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내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기억을 붙잡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놈은 푸른 수염이다."
"무슨 수염? 그 사람 수염 안 길러." 
은희는 교양이 부족하다. (100쪽)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70대 노인이 자신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살인범과 싸우고,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기억과 싸우고,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는 딸과 싸우면서, 그들간의 갈등과 긴장을 다루면서도 아하, 김영하 작가는 잊지 않는다. 숨가쁘게 그를 쫓아가고 있는 나를.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나를. 그가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건지, 내가 그의 이런 수작(?)에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건지 모르겠다. 푸른 수염이라니, 아.. 교양이 부족한 은희라니.   

 

3. '작가의 말'에서 또 울컥. 

난 요즘 왜 이렇게 주제파악이 잘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테다. 물론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작가는 말하고 싶은게 있을테다. 하지만, 난 항상 '작가의 말'에서 울컥한다.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에게 얹혀살았다. 오밤중에야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 일어나는 게으른 아들과 달리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어나 집 안팎을 돌보셨다. 항상 어지러운 내 책상이 보기 싫었을 텐데 용케 잘 참으셨다. 하루는 내가 "누가 아침마다 내 책상만 치워줘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될 텐데"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이층 내 방에 올라와 책상을 말끔히 치운 후,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비우고 물로 말끔히 씻어 다시 갖다놓으셨다. (172-3쪽)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오밤중에야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 일어난다. 뭔가 하는 것 같기는 하고, 뭔가 쓰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런 글들이 도대체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돈은 많이 못 벌어온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 그리고 일년, 이년, 삼년, 사년이 지난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녀 교육에 가정 경제력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환경에서, 학교를 졸업한, 말 그대로 공부를 마친 아들이 집에서 이러고 있는 것을 태연히 볼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교를 졸업했으면 자기의 몫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의 아버지는 그 분이 아들의 일을 얼마나 이해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들을,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는 아들을 그렇게 지켜보고, 기다려 주셨던 것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대단한데, 물로 말끔히 씻어진 재떨이라니. 아들을 사랑하고, 만개할 아들을 기다려주는 아버지의 깊은 정이 느껴진다. 

결국 이렇게 멋진 일들이란, 이렇게 멋진 소설이란, 기다려준 아버지, 작가의 아버지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이들이 많지만, 이 소설은 작가 지망생 아들의 재떨이를 매일 비워주신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다. 내가 해외에 모무는 동안 큰 병을 앓으신 후 아직도 투병중이시다. 건강히 오래 사셔서 언젠가 아들이 '꽤 괜찮은 작가'가 되는 날을 보셨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172-3쪽) 

겸손히 말해서 그렇지, 이미 김영하 작가는 '꽤 괜찮은' 작품을 여럿 출간한 "꽤 괜찮은 작가'이다. 

 

갑자기 그의 작품에 만족할거라는데에 알사탕 1만개를 걸으셨던 야클님이 생각난다. 그의 작품이 무척이나 괜찮으니, 알사탕 1만개는 내가 야클님에게 드려야 하는건지.....

 

김영하의 작품은 단편 <옥수수와 나>만 읽어봤는데,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영하 컬렉션>에 눈이 간다. 차근히 읽어봐야겠다. 갈길은 멀고, 시간은 많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을 하다가 이런 좋은 책을 찾았다. <글쓰기의 최소원칙>. 

기쁘다. 상호대차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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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여기 저기 아프다고 하면서 오래 살면 뭐하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거짓말이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오래? 글쎄? 얼마큼 오래? 

85세? 88세? (처음부터 너무 높이 잡았나?) 85세의 나,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이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88세의 나? 하... 한숨이 나온다. 내 외할머니랑 친할머니는 두 분 다 키가 150센티 미만이셨고, 고만고만 도토리 키재기셨는데, 우리 할머니들은 동화책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지는 않으셨지만, 나름대로 얼마나 귀여우셨는지 모른다. 나는? 85세의 나는? 나는 한국 여성 평균 신장보다 10센티가 큰데, 85세의 나는 어떤 할머니려나? 급 우울해진다. 

딸롱이가 사고 싶어했지만, 신랑이 만류해서, 일단 도서관에 신청했더니, 가져가시라 문자가 왔다. 신나게, 재미있게 읽었다. 정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딸롱이를 읽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딸롱이는 벌써 다 읽었단다. 

 

 

 



2. 누가 더 오래 살까? 

 

 

 

 

 

 

정답은 2번. 적게 먹고 적게 움직여야 장수한다. 오늘부로 운동 불허! 


 

 

3. 계절따라 사는 법 


 

 

 

이제 가을이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가을에는 새나라의 어린이구나. 좋구나. 


 

 

4. 생활 습관 양생법 

 

 

 

적게 먹고 적게 말하고 적게 일하고 
적게 듣고 적게 봐라. 
많이 먹으면 몸에 독이 쌓인다. 
말을 많이 하면 기가 상하고 
몸이 피곤하면 이로울 것이 없다. 



 

5. 오늘의 실천 

 

하나하나 실천해 보자. 


오늘의 실천 : 적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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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천년,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가 

망했을 때, 어떻게 하나의 사건만이 그 일의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겠나.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정세가 있었을테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이해될 수 있는 잠재적 요인도 있었으리라. 당시 상황을 돌아볼 때, 외국 열강에 의해 주권을 침탈당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일도 아니고, 개혁과 개방, 신문물의 경제적, 군사적 힘이 강력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오천년,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가 망했을 때, 망해갈 때, 그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징후라는 것이 있다고 본다. 

'전작권 연기'와 '국정원 선거 개입'이 망국의 징후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일로 설마 이 나라가 망하겠는가. 전작권 연기는 미국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 마음 속 꿈이자, 소원이고 지속적으로 얘기되어온 부분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은 이미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라는 초유의 사건이건만, 이것 또한 부정선거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더냐. 공교롭게도 이 두 개의 사건에 동시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일이 뭐가 대수냐. 

그렇다. 아마도 그런 일로 이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란 예비 음모' 사건인가, '예비 내란 음모' 사건까지 세트로 엮을 요량이라면, 이건 진짜 막가자는 거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로 4-5년을 더 가자는거다. 역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 그 중에 제일은 빨강이라.



 

2. 고집불통 시아버지와 여우 며느리의 한 판 승부는 

결국엔 일본의 승리로 마감된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났다는 사람들은 그녀를 세련되고 지적이며 총명한 여인이었다고 기억했다. 강렬하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성격. 정세에 대한 빼어난 이해와 판단력. 위기 상황에도 잃지 않는 침착함. 그렇다. 문제는 그녀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집안에 한 명 더 있었다는 것. 10년 섭정을 통해 백성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으나,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며느리와 원수가 되었고, 중국에서의 유폐생활과 귀국 후 가택연금 생활에서도 권력에 대한 의지를 불살랐던 흥성대원군. 

작가님도 평하시기를 

 

보기 드문 영걸들이 한 시대에 나와 세상을 위해 쓰이지 않고

서로 싸우는 데 소진하고 말았다.(169쪽)



 

 



물론이다. 명성황후와 고종, 흥성대원군이 힘을 합쳤다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을수도 있다. 

영국과의 2차 영일동맹, 미국과의 가쓰라-태프트밀약, 그리고 러시아와의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일본은 세계 열강들에게 한국 보호 즉, 한국 지배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아왔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아니면 영국이 아니면 미국이, 우리를 삼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흥성대원군과 명성황후가 힘을 합해, 당시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각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지혜로운 외교를 해 왔다면, 적어도 일본의 지배가 35년보다는 짧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짧은 생각을 해 본다.  



 

3. 어떤 한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설사 그 일이 '경제적 대가'를 제공받고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그리고 성실히 해 나갔을 때,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줄 수 있다. 10여년 넘는 시간을 <조선왕조실록> 그 방대한 자료를 뒤적이고, 스토리를 짜고, 인물의 특성을 잡아 그림을, 아니 만화를 그리고, 사이 사이 친절한 해설을 덧붙이고, 짬짬히 유머를 구사해 읽는 즐거움을 놓지 않게 해주신 작가 박시백님이 그러하다. 

<작가 후기> 큰 절을 작가님께 돌려드린다. 

 

 



참으로 고마웠고, 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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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쓰기 

이동진의 빨간 책방 39회를 들었다. 김영하의 책 읽어 주는 시간은 김영하의 목소리 때문인지, 내가 청취한 회차가 그랬는지 (위대한 개츠비편) 참, 진지하고 잔잔했다. 이동진의 빨책 39회는 소설가 김중혁씨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한 이야기였다. 게시판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저급유머가 생각보다는 적은 회차였음에도,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모범생인듯 하지만 은근 삐딱한 두 남자의 이야기는 맛깔나게 재미있었다. 특히, 김중혁 작가의 초저음 베이스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하루키를 동네형 또는 하형이라고 부르는 김중혁 작가가 말해주는 하루키의 일상은 단순하면서도 대단했다.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LP집에 갔다가 (김작가의 표현 그대로다. 음반 판매하는 곳?) 조깅을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두부, 낫토, 생선을 사가지고 와서는 맥주 한 잔과 함께 먹는다. 9시쯤 잠자리에 든다. 하루키는 인터넷을 안 한다. 하루키는 써핑도 안 한다. 

하루키의 어마어마한 작업은 이런 성실성과 근면성에 근거한 것이라는데, 하루에 보통 원고지 10매 정도를 쓴다고 한다. 쓰는 걸로 한다면야, 스티븐 킹을 빼놓을 수가 없지. 엄청난 다작인데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도 수두룩하다. 그 역시, 매일 매일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이 쓸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기도 그게 의문이라고. 다른 작가들은 그렇게 안 쓰면 남는 시간에 도대체 뭐하냐고. 이런 멘붕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작가들, 부지런한 작가들의 뇌는 정말 일반 사람들과 다른가. 그 많은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2. 이승우님과 다락방님 



 

 

 

 

 

 

 

 

 

 

 

 

 

 

 

2009년이던가, 도서관에서 그의 책들을 발견했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책들은 새 책처럼 깨끗했고, 하늘색, 노란색 자그마한 책들은 예뻤다. 난 '이승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이런 구절들을 적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문학의 문장은, 실용문과 달라서 정보의 직접적이고 빠른 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간접적이고 우회하는 방법을 택한다. 할 수 있는 한, 소통을 지연시키는 것, 그것이 문학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말하는 것이 문학의 언어이다. 호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은유한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64쪽) 

내가 데뷔작을 쓸 무렵(결핵 요양을 한답시고 빈둥거리던 1981년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짜증스러웠다) 글의 길이 막힐 때면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들추어 읽던 책이 <소문의 벽>과 바로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길이 보였다. 읽던 책을 덮고 원고를 쓰고, 원고를 쓰다 말고 책을 다시 집어 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소설을 살다. 38쪽)

다락방님은 여러 번 작가 '이승우'에 대해 말했다. 작가 중의 작가라고, 이승우 작가님이 작가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나도 그의 작품에 여러 번 도전하려 했지만, 사실 그의 작품은 편하게 앉아 쉽게 읽을만한 것들이 아닌 것 같아 좀처럼 시작하지 못 했다. 이번에는 다락방님의 추천으로 <지상의 노래>부터 읽어보마 결심했다. 


 

3. 아껴서 읽고 싶은 책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좀 더 노골적인 착각이 이루어졌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예전 주일학교 여선생을 보았다고 느꼈다. 그녀가 주일학교 여선생을 정말로 닮았는가, 얼마나 닮았는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많이 닮았을 수도 있고 조금 닮았을 수도 있고 전혀 닮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 만난 사람이 과거의 누군가와 닮아서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에게 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과거의 누군가가 불러내졌다는 것이다. 이 길은 새로 만난 사람을 통해 과거의 누군가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 과거의 누군가를 통해, 그를 이용해서 새로 만난 사람에게 가는 길이다. 과거의 누군가에게 가기 위해서는 새로 만난 여자가 과거의 그  사람과 실제로 닮아야 하지만, 새로 만난 사람에게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가 과거의 누군가와 닮아야 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누군가와 닮았다는 발견 혹은 암시만으로 충분하다. (48쪽) 

떠오르지 않은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고, 떠오른 세 사람은, 떠올랐음에도, 혹은 떠올랐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었다. 대개의 사정이 그렇다. 연락하는 데 거리낄 이유가 없는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떠오르지 않는다. 연락하는 데 거리낌이 있거나 아예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떠오른다. 연락할 수 없기 때문에 떠오르고, 떠올랐기 때문에 연락할 수 없다. (309-310쪽) 

그의 문장은 진지하다. 그의 문장은 꾸밈이 없다. 그리고, 아주 찰지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그의 걸음을 따라가면서 난 생각했다. 아, 아껴서 읽는다는게 이런 거구나. 한 문장, 한 문장 내가 읽어버려 이제는 내 뒤로 던져지는 문장들이 이렇게 아깝구나. 너무나 아쉽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갔다. 

박 중위의 외출이 잦아진 것은 연희를 알게 된 다음부터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일어날 거라고 예상되는 모든 증세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한 상대에게 할 거라고 집작되는 모든 행동을 다 했다. 그는 자주 하늘을 쳐다보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공부를 하지 못했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주 편지를 썼고 선물 공세를 했고 그녀의 집 근처를 배회했다. 때때로 호소했고 가끔 윽박질렀다. 퇴근 시간에 맞춰 미장원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기다리기도 했다. (58쪽) 

나중엔 박 중위의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표현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적어도 58쪽에서의 박 중위는 순수한 모습이다. 하늘을 쳐다보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다. 때때로 호소하고 가끔 윽박지르는 사랑.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부장은 준비해 온 것을 쓸 수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대화를 이어 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안위했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지내시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헬기에서 내리기 직전에 부장이 그 한마디를 했다. ...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한정효에게 다시 한 사람은 장이었다. 그는 불편하지 않게 모시겠다고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지시대로 했다. 철저히 지켰고 감시했고 보고했다. 그러나 편안히 모시지는 않았다. (195쪽)  

권력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 그리고 이제 막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 
이제 막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이제 권력의 자리를 떠나가는 사람에게 말한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지내시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말했을지 몰라도, 이 말을 했던 사람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지내시도록 조처하는게 어떤 것인지"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이 간단한 문장의 1%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까. 진심이라는게 있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 책엔 좋은 문장이 참 많다. 좋은 문장이 참 많지만, 이 문장처럼 날 슬픔에 빠져들게 하는 문장은 없었다. 

세상의 권력은 그들의 구별된 공간인 천산을 침범하고 파괴하여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범하고 파괴하는 권력이 행사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콤에 다름 아님을 그들의 구별된 삶과 특별한 죽음으로 증거했다. (346쪽) 

세상이 자신들을 버리기 전에, 세상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버리고, 세상을 버렸던 천산 공동체 형제들. 작은 방에 한 사람씩 고요히 누워, 자신들을 부르는 나팔소리를 기다린다. 나팔소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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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8-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저는 [지상의 노래]를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지상의 노래 읽으면서 몇 번이나 멈췄었어요. 아, 이거 다 읽기 싫은데, 다 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말이지요. 뒤에 책장이 적어질수록 안타깝더라고요. 저는 이 문장이 아주 자지러지게 좋았어요.


헤브론 성이 그에게 도피성인 것은, 그가 세상에서 범한 과거의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앞으로 범할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더 그랬다. 지은 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는 도피성이 필요했다. (p.115)


지은 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도 도피성이 필요하다니. 캬~ 정말 죽이지 않아요? 인간 내면의 깊숙한 부분을 아주 푹- 찔러요.

단발머리 2013-08-28 13:12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승우 작가님껀 아껴서 하나하나 읽어볼 생각이예요.

저도 이 구절 기억나요.
지은 죄 뿐 아니라, '지을 죄로부터'의 격리. 너무 멋지고, 근사해요. 전 <생의 이면>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이승우 작가님이 신학을 공부하신것 같아요. 맞나요?

인간, 신, 구원, 죄에 대한 통찰이 아주 엄청나죠.
한국의 '나다니엘 호손'이라 쓰고, '이승우'님이라 읽습니다. *^^*
 


1. 가족 삼각형 

2007년이던가, 아니면 2008년 처음 읽게 된 그녀의 책 <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공부하며, 밥 먹으며, 함께 생활하는 지식공동체'가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그녀가 실제적으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3년 전, 흥분해서 내게 그 책을 소개했던 신랑은, 그 때의 자기를 잊어버리고선 "자기야, 이것 봐! 자기야, 이것 좀 봐!"하며 호들갑을 떠는 날 심그렁하게 쳐다봤다.

 

 

 

 

 

 

 

 

 

 

 

 

 

 

삶을 앎으로, 밥과 지식을 함께 나누며, 생활하는 그녀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공동체 생활도 흥미로웠지만, 나의 시선을 끈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자기 복제는 아메바도 하는 일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만 쏟아지는 애정과 관심이 뭐 대단한 일이냐." 
 
오래전이라, 그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같다. 그 때도, 지금도 난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부모가 젊건, 나이가 많건 큰 차이가 없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한대, 무한정, 무조건이다. 

마음 속 작은 소리로, '작가님은 자식을 안 낳아봐서 그래요.'라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녀의 말이 옳다. 본능에 충실한 삶, 자식에게만, 오직 혈연적 관계가 확인되는 자기 자식에게만 애정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장화홍련전>의 계모 허씨 부인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다만, 그녀의 지극한 자식 사랑은 자신과 자식의 파멸을 가져왔을 뿐이다.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핵가족이 정착되면서 효, 우정과 의리, 이웃과의 정, 야생동물 및 천지만물과의 연대감 절기에 따른 신체적 리듬 등 다소 비효율적이고(정량화가 어렵고) 애매한 가치와 관계들은 한큐에 정리되었다. 이제 사람들의 욕망은 핵가족의 일촌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다시 말해 스위트 홈의 망상이 무의식의 영토를 점령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언덕 위의 하얀집, 앞치마를 두른 미모의 엄마, 사무직 아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치는 아이, 이것이 핵가족이 연출할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나의운명사용설명서, 163-4쪽) 

음양오행이 펼치는 '별들의 생성소멸'이 졸지에 가족삼각형 안에 갇혀 버린 형국이다. (나의운명사용설명서, 167쪽)

일단 내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그게 부모된 나의 의무이자 도리이다. 행복한 사람,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바른 사람으로, 당당한 사람으로 잘 키워내야 한다. 사회에 도움, 아니, 사회에 도움까지는 됐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리고. 그리고 반드시. 나의 에너지와 애정은 가정의 삼각형을 넘어서야 한다. 

넘어서야 더 강력해지고, 넘쳐나야 더 풍성해진다. 



2. 팔자를 바꾸고 싶다면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지리'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지리'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31쪽) 

따라서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이 일상을 건너뛰고 다른 방편을 쓰고자 한다면 그건 다 사술이다.... 요컨대, 일상이 습속을 바꾸고 습속이 다시 몸의 생리로, 몸이 또 인연의 장을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 출발은 어디까지나 일상이다. ......단언컨대, 핵심은 오직 일상이다. 일상의 리듬과 몸의 강밀도, 인생과 우주의 통로는 오직 이뿐이다. (124-6쪽) 

저자의 말 대로 이건 생각보다 쉬운 방법이다. 일상의 리듬을 바꿀 때,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일상이 습속을 바꾸고 습속이 몸의 생리로, 몸이 또 인연의 장을 바꾸고, 결국에는 운명을 바꾼다. 일상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일상을 바꾸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금 난감하다. 운동을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독서를 한다. 시간을 정해 집안을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건가. 

그녀가 전해주는 팁 한 가지. 

일간이 뭐건, 사주팔자가 어떤 격과 형식을 가졌건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취해야 하는, 또 취할 수 있는 보편적 용신이 있다. 약속과 청소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시공간과 몸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또 말과 행을 일치시킨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 청소가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유불도를 막론하고 동양의 공부법은 청소를 '쿵푸'의 기초로 삼았다. 쓸고 닦고 정돈하고...  요컨대, 약속과 청소,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인생역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255-6쪽)

이것은 내가 세상에서 들어본 '청소 좀 해라'의 권유의 말 중, 최고이다. 


 
3. 엄마복은 공부운 

일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열 가지의 힘을 '십신'이라고 하는데, 십신, 팔자의 사회적 표상은 이렇다. (133쪽)

 

 

 

 

솔직히 나는 여덟 개의 카드에서부터 이해가 안 됐다. 그냥, 저자가 가는대로 설렁설렁 따라가는 거다. 표를 보면서도 이해는 잘 안 되는데, 흥미로웠던 건, 똑같은 조건이라도 남자와 여자에 따라 각 십신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어느 가정의 아들과 딸이 있어, 엄마, 아빠가 같고 (같고? 엥?), 다니는 초등학교가 같다 하더라도, 무엇보다도 생물학적 성에 의해서 십신의 표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식신은 낳는 기운이니 여성에게는 자식이고, 남성에게는 처가 식구들 혹은 할머니 등에 해당된다. (내가 할머니를 낳는다고? 이것이 우주의 아이러니다. 돌고 돌다 보면 할머니가 곧 나의 자식이 되기도 한다.) (152쪽) 

여성한테 남편이나 애인은 관성. 나를 극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지위나 조건을 규정하는 토대에 해당한다. ... 그럼 남성에게 관성이란? 바로 자식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모양이다. (153쪽)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이 부분. 

공부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충전이고, 문서는 만물을 낳아 주는 대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게 육친으로 따지면 엄마란다. 하여, 엄마복이 있다는 건 공부운이 좋다는 뜻이 된다. (154쪽) 

요즘애들은 엄마복이 많아서, 공부운이 억수로 좋다. 학원 3개는 기본. 웃어야하나, 울어야하나.
 
이제는 가야겠다. 빨래가 다 됐다고, 세탁기가 띵동띵동~~ 노래를 하다가, 지쳐서 노래하기를 멈춰버렸다. 빨래하고, 아니지, 세탁기에게 빨래를 시키고, 널고 개서 옷장에 넣는 건, 약속을 지키는 것에 해당되는지, 청소하는 것에 해당되는지, 그녀에게 묻고 싶다. 

고미숙,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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