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이구, 데뷔하실려고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연기가 주요한 연극이나 영화보다 내가 뮤지컬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야기는 노래로 전해질 때 더 강력해진다고 늘, 생각한다.
노래하는 것과 노래듣는 것,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는 것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주위에 폐를 끼친다. 저번주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사온 지 10개월만에 처음으로 3층에 사시는 여자분을 만났다. 3층이세요? 아, 저희 4층이예요. 저희 애들이 너무 시끄럽지요? 여기까지가 기본 멘트다. 아래층에게는 무조건 공손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한테도 항상 말한다. 5층 누른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면 인사 안 해도 되지만, 3층한테는 무조건 인사해, 무조건!)
그 분이 답한다. 아니요, 아이들 소리는 괜찮은데. 저, 피아노 소리요. 피아노를 많이 치시던데, 노래도 많이 부르시고요. 그리고는 나와 딸을 번갈아 쳐다본다. 도대체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 확인하려는 듯. 내가 말한다. 아, 네....
그 분이 말한다. 저는 노래소리가 하도 많이 나서 어디 데뷔하시려고 준비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리곤, 또 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도대체 데뷔하려는 듯 주구장창 노래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 아, 네.... (그 와중에도 '데뷔'라는 말은 참 듣기 좋았는데, 3층 여자분의 이야기 어디에도 '잘한다'는 말은 없었다. T.T)
지난달에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와서, 악보를 구해서는 제일 유명한 넘버 <나는 나만의 것>을 신나게, 줄기차게 불러댔더니만, 아, 드디어 민원 접수되는구나.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위아래 층에서 노래소리, 피아노 소리 때문에 전화 꽤나 오더니만. 나 혼자 부르는데도, 내 소리가 그렇게도 크고 우렁차단 말이냐. 내 피아노 터치가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2.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노란색 표지에 보통의 책보다 작고 가벼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한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특정 종교의 노래, 특정 양식만을 편식적으로 좋아하기에 사실 김중혁이 말하는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가수들을 알지 못한다. 그냥, 읽는 거다. 내가 김중혁을 좋아하니까, 그를 좋아하니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거다. 그러다가 이 구절을 읽게 됐다.
윤상의 목소리와 피아노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멀어지는 기억을 잡아두려 애쓰지 말라고", 많은 게 흘러갔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하라고. 노래의 마지막 가사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 너의 탓은 아니야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생긴 일들이 누군가의 탓은 아니라고, 우린 그저 잘 받아들이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냥 흘러가는 거라고, 바람처럼, 스쳐 가는 나뭇잎처럼 그냥 지나가는 거라고, 이런 순간들, 짧은 순간들, 자전거 위에서 맞는 바람 같은 순간들. (29쪽)
순간 뭉클해졌다. 윤상의 목소리가 김중혁에게 했던 말을, 김중혁이 나에게 하고 있었다.
'아니 너의 탓은 아니야 그건 너의 탓은 아니야'
지난 3주간은 지옥같은 한 철이었는데, 사정을 써 내려간다면야 A4 2장짜리지만, 요는 이 세상 마음대로 안 되는게 참 많다고 하지만, 자식 일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없더라는 것이다. 이 상황이라는 것이 참 요상해서, 사건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연관관계라는 것이 참 불투명해 내 자식을 탓할 수만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시발점은 내 자식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내게는 '** 어머니'라는 이름 아닌 이름이 있었으니까. 월요일 아침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오후에는 어떤 엄마를 만나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는 이 책을 만났다.
'내 탓이 아니라고' 김중혁이 말해줬다.
책과의 인연을 안 믿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책과의 인연을 믿는 편이다. 지금 내가, 책을 좀처럼 사지않는, 산다면 '고전'이라 불릴만한 '세계 문학'만을 고집하는 내가, 도서관에 신청도 하기 전에, 구매를 결정해 우리집, 우리집 책상 위에서 이 책을 만난건, 우연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나의 무언가가 그 책을 우리집으로, 내게로 이끌어줬다.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난 그 책이, 내게 말해줬다.
'그건 너의 탓은 아니야'
3. 김중혁이 자전거를 타면서 자주 듣는다는 윤상의 노래는
<영원 속에>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윤상의 노래는 다른 것이다. 아마도 제일 유명한 노래일듯하다. 이 글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쓰고 있다. 나는, 울고 싶게 만드는 이런 노래가 좋다.
윤상이 부릅니다. 이별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