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딸들」 (Daughters of the Vicar)

초고는 「두 결혼」(Two Marriages)이라는 제목으로 1911년에 씌어졌으나 거듭된 개작에도 불구하고 잡지의 지면을 못 얻고, 다시 한 번 손질을 거쳐 단편집 『프로이센 장교』에 수록되었다. 리비스가 그의 저서 『소설가 D. H. 로런스』 (D. H. Lawrence: Novelist)에서 따로 한 장을 할애하여 거론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지금도 ‘명작 단편선’ 같은 데 흔히 끼는 작품은 못 된다. 그러나 중편 길이에 육박하는 규모뿐 아니라 작품 자체의 무게로도 로런스 소설선의 표제작이 되어 손색이 없다고 본다. (작품해설, 331쪽)

목사의 두 딸들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두 결혼」이라는 제목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목사의 딸들」이 더 나은 것 같다.

“매시 씨가 저한테 청혼을 했어요, 엄마.” 메리가 말했다. 린들리 부인은 계속해서 책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감정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래, 그래서 뭐라 그랬니?”

그들은 둘 다 차분함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답하기 전에 먼저 엄마하고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어요.”

이것은 질문과 같았다. 린들리 부인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부인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긴 의자에서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메리는 입을 꼭 다물고 차분하고 꼿꼿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별로 나쁜 짝이 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더구나.”

어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모두가 냉담하고 마음을 닫아건 채였다. (77쪽)

 혼기가 찬 딸,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딸을 ‘결혼’을 통해 치워버리려 하는 엄마 린들리 부인, 부모의 의도를 알고 있는 사려 깊은 큰 딸 메리,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 아빠 린들리 목사. 메리의 결혼은 이렇게 결정됐다. 결혼하게 될 사람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간직한 채 메리는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녀를 보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콜린즈 목사가 ‘꿩 대신 닭’의 정신으로 일궈낸 청혼을 받아들이는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롯트의 사정이 더 나아 보인다. 그녀도 경제적 상황, 즉 부모님과 남동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결혼을 결정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선택해 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집을 갖게 해 줄 그 사람에게, 기꺼이 갔다. 메리는 아니었다.

메리는 자신이 남편하고 있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사생활은 그녀의 수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감출 수 있었다. 그녀는 철도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의 목사관에 거의 고립된 채 살았다. (79쪽)

그녀의 동생 루이자는 달랐다.

그의 피부는 아름답도록 하얗고 흠이 없었다. 불투명체의 견고한 흰빛이었다. 차츰 루이자는 그것을 보았다. 이 역시 그의 모습이었다. 그것에 그녀는 끌렸다. 그녀의 이질감이 스러졌고, 이들 모자와의 접촉을 꺼리는 마음이 없어졌다. 이 생동하는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녀의 심장은 뜨겁게 고동쳤다. (111쪽)

루이자가 알프레드에게 매력을 느낀 지점이 ‘육체적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랬다. 알프레드는 신분과 외모에서 그녀의 형부 매시 씨와 완벽하게 대비되는데, 루이자는 그의 열등한 신분을 상쇄할 만한, 가히 상쇄할 만한 그의 육체적 매력에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인간은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다. 육체적 매력이라는 것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언제나 속절없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도 아니지 않은가. 인간인 이상 육체를 입어야하고, 육체 속에 살아야하고, 육체를 통해 드러난다.

“내가 가길 원하세요?” 억제된 가운데도 격렬한 고통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마치 그 말들이 그녀 자신의 개입 없이 그녀 속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탄가루 속의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요?” 무엇엔가 떠밀린 듯 그녀 쪽으로 얼굴을 돌리면서 그가 두려움에 젖어 물었다.

“내가 가길 원하세요?” 그녀는 반복했다.

“왜요?” 그도 다시 물었다.

“난 당신과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요.” (128-9쪽)

작품해설에서는 루이자의 ‘숙녀답지 않은’ 적극성이야말로 그녀의 참 용기요 작품의 독창적인 일면이며, 그녀의 접근이 두렵고 괴롭기조차 하면서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꿈’으로 끝까지 회피하지 않고 사랑에 자신을 내맡기는 알프레드 역시 그 나름의 용기와 적극성을 보였다(작품해설 333쪽)고 설명되어 있다.

나 역시 이 작품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루이자가 현대적 의미에서도 매우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로런스가 이 작품을 쓰고, 100여년이 지났지만, 연애 및 결혼에 있어 남성 우위의 문화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는 결혼 시 여자의 학력이 남자보다 더 높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건 어디까지나 ‘남성 우위’의 ‘기타 기반조건’이 확인된 후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더욱 극명하다.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의 여자 주인공들보다 돈이 많다. 집안이 좋다. 학벌이 좋다. 외모가 좋다. 이 네 가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조건은 당연히 ‘돈’이다. 그도저도 안 되면 ‘나이’라도 많아야한다. 사랑에 빠지기 전, 사랑에 빠진 후에라도 여자 주인공들은 항상 남자 주인공들보다 돈이 적기에, 집안이 좋지 않기에, 학벌이 좋지 않기에, 외모가 좋지 않기에, 나이가 어리기에, 연애와 결혼의 주도권을 빼앗기기 쉽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난다.

책은 1년 전에 2권 초반까지 읽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는 브론스키가 안나보다 연하로 그려졌다. 다른 조건, 이를 테면, 경제력이나 집안, 학벌등도 안나가 크게 부러워할 상황은 아닌 듯 싶다. 오직 외모, 그리고 ‘저돌적 구애’로 브론스키는 안나를 얻는다. 물론, 나는 안나가 브론스키에게 ‘돌진할 만한 여지’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가능했던 여러 요인 중 가장 주요한 것을 안나의 ‘바람끼’라고 진단했다.

「목사의 딸들」로 돌아와서, 알프레드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빛나는 그의 육체’, 그의 몸뚱아리 하나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휘어감는 이 느낌에 대해서, 이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에게 ‘루이자’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알프레드는 말한다.

“어떻게 할 거요?” 그가 물었다.

“뭘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답하기가 겸연쩍었다.

“나를 말이오.” 그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녀가 웃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그녀에게로 내밀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132쪽)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여성 상위 시대 - 사랑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여성의 주도적 역할’이 아주 적절하게 그려진 작품이라 생각된다.

상대를 원하는 자신의 욕망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규범적 제재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도 뜨겁다. 흔하다고 할 수 있는 분홍색이지만 흐리멍텅한 분홍이 아니라, 야무진 분홍이다. 거칠지만, 마음에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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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

나는 왜 쓰고 싶어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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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위기를 겪은 후, 떡볶이, 요구르트, 술빵등 간식의 힘으로 간신히 버텨오던 우리 독서모임은 저번달에 딸롱이가 주축이 되어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다. 한 달에 한 번, 자신들은 쉬고, 엄마들이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거였다. 자신들은 평가를 하겠단다. 처음에 엄마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순서를 갖는 걸로 이해했으나, 아이들은 엄마 세 명이 모두 다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엄마들은 준/비/를/ 했다.

 

 

 

 

 

H언니는 이 책을 선택했다. 짧게 좀 하라는 끊이지 않는 원성 속에서도 아이들은 장발장을 감옥에 가두어야만 했던 그의 ‘소소한 죄’와 그에 대한 ‘엄청난 형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왜 탈옥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J언니는 이 책을 선택했다. 책과 작가에 대한 소개 및 설명이 잔잔하게 이어졌고, 초등학생의 글쓰기 연습에 있어서 ‘일기쓰기’와 ‘독서록쓰기’가 매우 유용함을 전해주었다.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질병 흑사병, 천연두, 황열병, 콜레라, 결핵, 독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1346년, 고열을 발생시키고, 구역질나는 악취에, 사망자에게 고통스러운 검은 자국을 남기는 이름 모를 질병이 유럽에 도래했다. 고통 받은 사람의 절반이 사망하고, 4년도 채 안 되어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이 질병 때문에 사망했다. 떼죽음, 역병, 페스트라고 불리던 "흑사병" 때문이었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이라고 불리는 박테리아 때문에 생기는데, 이 세균은 설치류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 속에 사는 기생충이다.

<흑사병을 치료하는 의사>

 

 <흑사병을 대하는 유럽인의 자세>

1) 시골로 도피

2) 행성들의 악한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함

3)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를 본 따서, 새로 도착한 배는 40일 동안 고립기간을 가짐

4) 독일 : 채찍 고행 (끝에 쇠가 달린 채찍으로 스스로를 피가 나게 채찍질 하면서 신의 용서를 구함)

5) 유대인 학살 : 유럽에 만연한 반유대주의에 더해 상대적으로 위생적인 환경이었던 유대인들의 거주지에서는 흑사병이 크게 위력을 떨치지 못해, 이 대재앙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 일부의 사람들은 이 질병의 원인이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믿었다. 특별히 1348년과 1349년,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재판하고, 심문하고, 화형에 처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흑사병 이후의 유럽> - 봉건질서가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함

1) 인구의 감소 : 노동임금 인상, 신분제도와 자급자족적 경제질서 붕괴

2) 상인들의 지위 향상 : 자본가들, 은행가들 그리고 무역업자들의 입지가 우세해짐

3) 교회의 권위 손상 : 죄인들과 경건한 이들이 똑같은 수로 죽어감 교회가 더 이상 지식을 독점할 수 없게 됨 교회의 언어인 라틴어의 쇠퇴, 각 나라마다 자국어(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가 번창 죽음, 쇠퇴, 죄 그리고 지옥의 고통을 강조하는 염세주의적 예술 양식 성행

 

 

엄마 세 명이 순서를 마치기까지 대략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이들은 거의 책상에 얼굴을 묻기 일보직전이었다.

 

“얘들아, 어땠니? 재미있었어?”

“아~~~니요. 엄마들은 빠지세요. 그냥 우리끼리 할께요.”

 

 

그래, 그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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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약 1년 동안 EBS-TV <60분 부모> (목요일편) ‘심리학습클리닉’ 프로그램 사례를 보면 초등학생 자녀들은 ‘공부’에 대해 거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공부

나는 공부가? 싫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엄마가 ‘공부해라!’

내 소원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면? 공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공부란 바로 이런 대상이다.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나, 공부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은 순전히 어른들의 생각, 아이들은 결코 이 말에 100% 설득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만난 대다수 아이들은 한 마디로 공부에 대한 동기와 의욕이 없었다. 그들은 공부 때문에 슬프고 공부 때문에 속상하고 공부 때문에 화가 난다고 했다. (6-7쪽)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한다. 물론, 공부가 항상 즐거울 수는 없는 일이다. 배워야하고, 익혀야하고, 거기에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외워야하니, 공부가 참,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기쁨을 빼앗긴다면 그건 너무나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생각에 공부가 정말 싫어지게 하는 말은 바로 ‘공부해라!’인 것 같다. 스스로 해야 재밌는 것이 ‘공부’인데, 스스로 해야 즐거운 것이 ‘공부’인데, 자꾸 '해라, 해라‘ 강요받다보니, 공부가 가장 싫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의 학습량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학습 관련 영어, 수학, 논술 학원에 예체능 학원 태권도, 피아노는 기본에 속한다. 주산에, 바둑에, 중국어에, 로봇에, 아이들은 쉼없이 듣고, 또 듣고, 또 듣는다.

‘잠시 쉬고’ 있는 동안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쉬는 동안을 ‘부화기(incubation period)’라고 부른다. 마치 달걀이 병아리가 되려면 암탉이 스무하루 동안 알을 품고 있어야만 하듯 생각도 품고 있어야 더 나은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 생각할 틈과 여유를 줘보자. 저학년부터 부모가 관심을 두고 기본 생활습관과 자기 관리법 등을 가르쳐왔다면 아이는 이 틈과 여유를 분명히 의미 있게 써 낼 것이다. (139쪽)

 

학원에 다니지 않는 큰아이는 남는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활용한다.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거나, 특기시간에 완성못한 스킬 자수를 두거나, 게임을 하거나, 수학문제집을 풀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자신이 미리 계획한 그 날 그 날의 학습량은 대체로 지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특별히 도와줄 게 없다.

신경을 써야 한다면, 우리 둘째가 되겠다.

학교 갔다오면 닌자고랑 한 판 놀아야되고, 마법천자문도 쭉 읽어봐야되고, 한자맞추기게임도 해야하고, 아빠랑 장기도 한 판 둬야한다. 그래서, 엄마인 내가 자꾸 나서게 된다.

“숙제는 미리 해 놓고 놀아야지~”

“내일 학교에 특별한 준비물은 없어?” 이렇게 말이다.

이 책에는 아직은 어려 스스로 모든 걸 챙기기 어렵지만, ‘스스로하기’를 배워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좋은 TIp이 있다.

벽의 왼쪽에는 과제 수행 전, 오른쪽은 과제 수행 후로 구분할 수 있도록 링을 걸 수 있는 자리 두 개를 만들어주자. 아이가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색종이에 각각 적어서 코팅카드를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학교숙제-빨간색, 일기-파란색, 준비물 챙기기-노란색, 책가방 챙기기-초록색 등으로 색을 구분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모든 카드는 왼쪽 (과제 수행 전) 자리에 걸려있다. 하나씩 과제를 마칠 때마다 스스로 카드를 오른쪽 자리로 옮기도록 한다. 잠자기 전에 왼쪽에 걸려 있는 카드가 하나도 없으면 칭찬스티커를 준다. (124쪽)

 

며칠 전에도 담임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신 학습지 한 장이 없어져 온 집안을 다 찾았던 일이 있었다. 둘째는 분명 자기가 학교에서 그 학습지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둘째 가방에서 본 일도, 꺼낸 일도 없었다. 매일 내가 둘째의 가방을 챙겨주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는 학교에서 다녀온 후, 알림장과 소식을 전하는 L자 파일을 같이 확인하기로 했다. 이 책에서 제안한 방법을 쓰면 둘째에게 책임감을 심어줄 수도 있고, 스스로 하는 습관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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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호대차로 책을 대출했다.

일반적으로 책의 표지는 반질반질한데, 이 책은 약간, 아주 약~간 질감이 느껴졌다. 색상은 화면으로 볼 때보다 옅은 것 같았다. (이건 인터넷으로 옷 사고 나서 상품후기에 주로 쓰는 말인데... 쩝...) 책을 잡았을 때의 느낌도 좋아서, 이 책도 새 책처럼 깨끗한 편이었지만, 완전 새 책을 잡았을 때의 느낌은 더 좋았으리라 상상할 수 있었다.

책을 펼치고, 뭘 먼저 읽을까.

‘패니와 애니’, 이게 이 책 제목이니까, 제일 대표적인 건가보네, 이거 읽을까.

‘목사의 딸들’, 이 제목 다락방님 페이퍼에서 본 거 같네, 이거 읽을까.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이것도 다락방님 페이퍼에서... 헉.

이게 뭐야,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뭐..... 이를 테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아, 이거 읽어야겠다.

유리창 너머, 아롱이가 헤엄쳐, 헤엄쳐 내게로 온다. 당당하게도 아롱이는 등에 보조판을 떼고서 내게로 오고 있지만, 그것을 자유형이라 부르기에는 아롱이가 너무 자주, 일어선다. 아롱이가 내게 온다. 걸어서 온다. 손을 한 번 흔들어 준다. 오른손 엄지로 ‘최고’라고 말해준다. 아롱이가 뒤를 돈다. 아롱이가 헤엄쳐 선생님께로 간다. 나는 다시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를 읽는다.

"난 너와 말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를 외면하며 말했다.

“하지만, 내 몸에 손을 얹었잖아요.” 그가 말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안 그랬다면 나도 이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으니까. 나를 만지지 말아야 했어요.” ...

“돈 때문이 아니라면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난 네 어머니뻘이라고 해도 좋을 나이야. 어떤 면에서는 이제껏 네 어머니였어.”

“그건 문제가 안 돼요.” 그가 말했다. “머틸다 사촌은 내게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결혼해서 캐나다로 나가요 - 그게 좋을 거예요 - 날 만졌잖아요.”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몸이 떨렸다.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너무 망측해!“ 그녀가 말했다.

“뭐가요?” 그가 반박했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213쪽)

 

아주 잠깐, 순간이었지만, 그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하는 남자와 그 모든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는 여자의 모습이 가감없이 그려지고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졌는지에 대해서는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작품해설을 읽어보니, 로런스(창비쪽 로렌스)는 이 단편을 남자주인공의 이름과 똑같이 『헤이드리언』 으로 바꿔달라고 출판 직전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작품해설, 335쪽) 내 생각에도 이 제목이 훨씬 낫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2. 안나카레니나 설문이후 나는 문학동네 <안나 카레니나>를 구입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의 물음에 성실히 응해주신 하이드님다락방님께 감사~~~~

문학동네판에는 영화교환권이 1장 들어있었다. 책 사이에 끼워놓아 한 동안 잊어버렸다가 확인해보니, 집 주위 영화관에서는 이미 상영이 끝난 상태였다. “어머나! 표를 날리게 생겼네.” 다행히, 충무로 대한극장에서는 아직도 상영 중이었다. 급하게 교환권으로 예매를 하고, 영화를 보러 시내에 나갔다.

자리에 앉아 팝콘을 한참 ‘폭풍흡입’ 하고나서야, 나는 내가 영화관에 혼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아, 처음인가, 영화 보러 혼자 온 거? 생각 좀 하려는데,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스토리가 극장식으로 전개돼,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일까. 이미 자신의 역할을 한 배우들이 있는데 연기한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일까. 사람들은 자꾸 비교하게 될 테니까. 나도 ‘안나’역에 ‘키이라 나이틀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자신만의 ‘안나’를 그려낸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의 관심은 역시 브론스키.  

 

이 정도 외모로 꼬셔주시면, 안 넘어가기 어렵다는 소박한 깨달음.

또 한 가지 깨달음. 오만과 편견에서 키이라 나이틀리의 상대배우였던 이 분.

 

 

이 영화에서는 안나의 오빠 오블론스키로 등장. 외모로 봤을때 유사점을 찾기 매우 어렵지만, 본인은 영화를 보며, 악센트로 알아냈다는. 조금 아쉽.

3. 저번주에는 알라딘서재에 <안나 까레니나>에 대한 페이퍼가 꽤 올라왔다.

나는 아직 문학동네 <안나 카레니나>를 사놓고 읽지도 않았는데, ‘박형규 교수’의 <안나 까레니나>라니. 게다가 저 표지 좀 봐라. 아, 어떻게 해.

아침부터 신랑한테 <안나 까레니나>를 보여줬다. 신랑이 말했다.

“야, 책 사는 게 취미냐? 책은 읽어야지. 집에 있는 책 다 읽었어?”

“자기야~~ 진정해. 책 다 읽고 나서 책 사는 사람이 어딨냐? 그리고, 여기는 (컴퓨터를 가르키며) 나보다 심한 사람들 엄~~청 많아.”

“쳇!”

그리고는 출근해버린 당신이었다. 그런데, 아롱이가 자유형인지, 걸어서인지 내게로 오던 그 시간에 신랑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야, 내가 자기가 쓸데없는 짓 할까봐 그러는 건데.”

‘쓸데없는 짓? 뭐? 뭐 어떤거?’

“<안나 까레니나> 그거 생겼다. 자리 비웠다 오니까, 책상에 하나 올려져있네. ***님이 **들한테만 하나씩 돌리신거 같애. 러시아나 프랑스 문학 그 쪽을 좋아하시거든. 아무튼 이따 그거 가져간다.”

내참, 세상에... 신랑이 안 사준다니, 다른 사람이 사서 준다. 뭐, 이런 경우가 있다니. 나는 감사하고, 기쁘고, 벅차다. 신랑은 책을 건네며 “이건 뭐야, 이건 뭐, 주석이다, 주석”했지만, 나는 책을 품에 꼭 껴안았다.

아, 아름다워라. 아름답도다. 착용샷 한 장 올리시고~~

 

 

이제 읽기만 하면 되겠다. 우하하.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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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4-2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런 안나 카레니나가 있다는 건 단발머리님덕에 처음 알았어요. 뭐, 저는 문동으로 갖고 있는터라 다시 구매할 것 같진 않지만 말예요.

하하하하.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를 읽었을 때의 제 기분이 막 생생히 생각나요. 훗

단발머리 2013-04-24 12:48   좋아요 0 | URL
안나 카레니나는 완전 밀려 있어서, 올해 안에 읽는 것이 목표입니당*^^*

'목사의 딸들'도 너무 좋던데요. 근사한 페이퍼를 쓰고 싶은데, 뭐, 이건 제 자신이 감동의 물결에서 도무지 빠져나올수가 없어서....

저는 책을 빌려서 읽었거든요. '당신이~' 제일 좋지만서도, '목사의 딸들'도 좋으니, 책을 살까~~ 생각중입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