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또 강신주다.

나는 전작주의자가 아니고, 그럴 만한 능력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지만, 강신주니까, 강신주 책이니까 읽는다.

난 강신주가 좋다.

이번에 정해진 서열은 거의 확정적인데, 강신주는 서인국보다 섹시하다. 물론, 서인국 앞의 앞은 홍광호다. 홍광호는 부동의 1위, 강신주랑 서인국 정도가 같이 덤벼야 1위 탈환이 가능하다. 이번 주의 인기투표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날개 돋친 이 길손, 얼마나 기가 죽어 어색한가!

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더니,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 몰골!

골통대로 부리 건드리며 약올리는 사람에.

절뚝거리며, 못 나는 병신 시늉을 해대는 사람!

폭풍 속을 넘나들며 활잡이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를 닮은 것이 바로 시인.

땅 위로 쫓겨나 놀림당하는 마당에서는,

그 거인 같은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하다니.

-보를레르, 「알바트로스」 (『악의 꽃』) (38쪽)

 

알바트로스는 추운 북극 지방에 서식하며, 커다란 날개로 매우 높이 그리고 아주 의연하게 날 수 있는 새로 유명하다(38쪽). 그러나 위엄 있게 하늘을 날던 알바트로스가 땅에 착륙할 때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 한다고 한다. 떼굴떼굴 구르다시피 땅에 착륙하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이 너무나 우습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의연하게 날 수 있게 해 준 알바트로스의 커다란 날개가 땅 위에서는 짐스러울 뿐이다.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하늘의 삶을 꿈꾸지만,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시인의 삶을 닮아있다. 시인은 그의 상상력을 펼치며 창조의 공간을 날아다니는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는 ‘쫓겨나 놀림을 당’할 뿐이다. 시인이 꾸는 꿈, ‘거인 같은 날개’ 때문이다.

살육과 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선택한다면, 장자는 국가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개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전망을 제공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의 사상을 묶는 데 사용되는 ‘도가사상’이나 ‘노장사상’이란 범주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사후에 구성된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86-7쪽)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생각, 그가 전하고자 하는 한 가지 생각이 이 문단에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이 장자는 복잡한 세상사를 뒤로 하고, 흰 수염에 부채를 들고 산 속에서 신선놀음이나 즐기자는 ‘노장사상’으로 간단히 묶여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자가 철저한 국가주의를 통해 개인의 삶보다 공동체, 국가의 존립 및 유지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에 반해, 장자는 각 개인의 삶의 긍정적인 전망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강신주는 장자의 이러한 사상의 배경으로 양주, 송견, 혜시를 꼽았다.

개체의 삶보다는 공동체의 유지를 우선시하게 될 때, 우리 삶은 단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주는 우리의 삶 자체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절대적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162쪽)

 

우리의 삶 자체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절대적 목적이다.

우리 각 개인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절대적 목적이다.

내 삶 자체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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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내 사랑이 그에게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난 안다. 난 그의 책의, 내가 읽고 있는 그의 책의 5분의 1도 이해하지 못 한다. 난 그가 말하는 '인간 본연의 삶,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삶'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난 여기에 그냥 서서, 물끄러미 그를 쳐다볼 뿐이다. 그의 분신, 그의 자식과도 같은 그의 책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죽음>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두려운 문제이자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을, 죽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인문학자 강신주는 제일 먼저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종교를 갖는 것은 인간이 약하기 때문(82쪽)이라는 것이다. 제일 먼저 그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들이 나약해졌을 때 죽음을 생각한다는 이유에서다(85쪽).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하려는 친구를 살리는 방법은 뭘까? 강신주는 말한다. 그를 사랑하면 된다고.

사랑해 준다는 것은 만날 때마다 껴안아 주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 아이가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거죠. “안녕, 왔니?” “오늘 머리 모양이 예쁘네.” 이 한마디 말로도 사람은 죽지 않아요. (88쪽)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 자살했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크게 상처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내 친구에게, 내 소중한 그 친구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그 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단 말인가.

‘너’의 죽음은 나도 파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 이게 우리한테 제일 중요하죠.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너랑 놀고, 너랑 산책하고, 너랑 밥 먹는 것인데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면 ‘나’마저도 죽을 수 있어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 너의 죽음인 거죠. 여러분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진짜 중요한 건 ‘너’의 죽음이에요. (91쪽)

걱정할 것 없는 1인칭 ‘나’의 죽음, 아무런 느낌이 없는 3인칭 ‘그들’의 죽음, 그리고 2인칭 ‘너’의 죽음. ‘내가 사랑하는 너’가 죽었을 때, 이것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 된다. ‘너’의 죽음은 ‘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강신주의 마지막 당부.

살아있는 행복은 ‘너’가 있는 곳에서 찾을 수 있으니, 친구든 애인이든 아니면 어떤 시인이든 책이든, ‘너’를 꼭 찾으셔야 돼요. 사랑하는 ‘너’를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너’,

‘너’를 꼭 찾으라.

내가 사랑하는 ‘너’의 부탁이다.

‘너’를 꼭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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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강신주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강남에 살지 않아도 섹시하다.

강신주의 학부때 전공은 화학공학. 석사는 서울대에서, 박사는 연세대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학위를 받았다. 정확히는 중국철학, 동양철학자인데, 서양철학에도 조예가 깊다. 깊은 정도가 아니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좌우로 종횡무진, 동서양 고전과 한국의 현대시를 거침없이 인용하고 설명한다. 각 분야의 철학 전공자들이 보기에 강신주의 자르고, 찌르고, 정리하는 여러 가지 논제들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강신주’만큼 여러 철학자들의 주요 사상과 현대적 해석을 나같은 철학 문외한에게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현재까지 인터뷰집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을 포함해 단행본 18권을 써냈고, 총 12권으로 기획된 제자백가 시리즈를 비롯해 다른 저작들도 작업 중이다. 하루에 4명분의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고, 지방 도시 어디에서든 강연을 요청하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감히 말한다. 삶과 앎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 라고.

이 책의 부제는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에 대해 치밀하게 추적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길들이고 자극하여 끝없이 상품을 소비하게 합니다. 그 결과 노동으로 얻은 화폐는 소비되고, 그럼 또다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지요. (21쪽)

우리와 우리 이웃들은 산업자본에 고용되어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내지요.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얻은 임금을 자신과 이웃이 만들어낸 상품들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산업자본의 소비 전략을 통해 결국 자신이 만든 상품을 스스로 구매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의 임금 가치보다 훨씬 더 비싸게 소비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핵심 비밀이자 신비입니다. (362쪽)

소비할 때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어, 이젠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물건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아닌 ‘신상품’을 ‘소유’하기 위해, ‘소비’하는 나 자신을 ‘확인 받기’ 위해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우리는, ‘소비’하는 것이다.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삶의 환경과는 현격히 구별되는 이런 자극적이고 복잡한 도시의 사건들에 일일이 반응하면, 우리는 대도시에서 하루도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과 무관한 모든 일은 그저 냉담히 남의 일로 간주해야 합니다.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는 일도 피해야 합니다. 오직 나와 직접 관련된 일에만 정서적으로 반응할 뿐입니다.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지적으로 파악하여 그 사건으로부터 받게 될 정서적 충격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만 합니다. (85-6쪽)

산업 자본주의는 대도시의 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생산공간과 소비공간이 하나로 통일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산업자본의 잉여가치가 더욱 증대되기 때문(79쪽)이다. 즉, ‘대도시가 화폐 경제의 본거지’가 되기에, 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될 때, 대도시의 등장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대도시의 생활은 시골에서의 생활과 판이하게 다르다. 시골에서의 삶의 규칙으로 대도시에서 살아간다면, 그는 금새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 반대는 또 어떤가. 대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껴 시골에 가서 생활하게 된다면, 그 역시 시골의 촘촘한 인간관계, 누구네 집에 수저,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고 지내는 시골의 삶에 곧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도시에서의 삶이 주는 선물은 ‘자유’다. 거리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난 혼자 울 수 있고, 혼자 웃을 수 있다. 물론 혼자 밥 먹을 수 있고, 혼자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도시에서의 삶은 자유롭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반대편에는 ‘고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리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지금 내 마음을, 내 심정과 아픔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셔야 한다. 자유롭되 고독하게 살 것인가. 답답하지만 인정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서 살 것인가.

당시 파리 상점들은 눈부실 만큼 화려한 장식들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이려는 미적 전략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자 종업원들이 대거 채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32쪽)

이처럼 백화점은 고가의 상품을 사는 사람과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훈련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목받는다는 도취감, 그리고 주목받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입니다. (134쪽)

백화점의 초기 형태 아케이드, 특히 19세기의 아케이드는 수많은 노숙자와 창녀들이 빈번하게 출입했던 장소였다. 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노숙자와 걸인들이 꼬여들었고, 아케이드 안의 남성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수많은 창녀가 모여들었다. (130쪽) 하지만, 부르주아 사회가 발달하면서 경제적 부를 소비하는 실제 계층으로서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131쪽) 백화점의 주요 고객이 중산층 여성으로 상정된 순간, 남자 종업원들의 출현은 당연하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친구의 어머니가 백화점 화장품 C넬 매장에 들르셨다. 아이크림이 다 떨어져서 새로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아이크림을 판매한 직원은 친구 어머니에게 ‘무료 메이크업’을 받아보시라고 권했다. 친구가 다른 곳을 구경하고 돌아와 C넬 매장에 돌아와 보니, 어머나! 친구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팔자 주름, 미간 주름, 주름이란 주름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잡티란 잡티는 모두 사라진 모습이었다. 친구 말대로라면 5살은, 아니 10살은 더 어려보인다 했다.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신 친구 어머니는 그 날 C넬 매장에서 ‘무료 메이크업’에 사용된 화장품 몇 가지를 구입하셨다. 몇 가지만 해도 70만원이 훌쩍 넘었다.

여기까지는, 쉽게 그려지는 그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상황이다. 희한한 건 그 다음이다. 얼마 후, 친구 어머니는 C넬 매장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안내 전화를 받고, 그 백화점 9층식당가를 방문하셨다. 식사를 대접하기 전, 정말 이쁘게 생긴, 연예인 뺨치게 꽃같이 예쁜 20대 초반의 ‘꽃미남’들이 대거 그 음식점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어머님들(나이로 보면 확실히 그 꽃미남들의 어머님뻘이시다.)의 한쪽 손을 다정하게 부여잡고, 이번에 새로 출시된 수분 크림을 손등에 콕콕 찍어 바르고는, 곱디 고운 꽃미남들의 손으로 어루만지더라는 것이다. 물론 “너무 촉촉하고 부드럽죠?” 라는 멘트와 함께.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님들 거의 대부분 그 수분 크림을 구매하셨다 한다. 모든 분들에게 그 크림이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분들이 감동받은 것은 확실한 듯하다. 갈비탕 1인분이 12,000원이던가 15,000원이었다는데, 그 크림은 한 개당 20만원이 족히 넘는 가격이니, C넬은 계산 한 번 야무지게 잘 했다.

옷은 분명 성교와 관련된 직접적인 성적 욕구의 충족에는 도리어 방해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옷은 성적 욕망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요. 성적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뒤로 미루고 더욱 강한 욕망을 발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145쪽)

‘성적 욕구의 충족에 방해가 되는 ‘옷’ 때문에, 성적 욕구는 뒤로 미뤄지지만, 오히려 더욱 강한 욕망으로 발산된다‘니, 왜 의식주인가 했더니만, 이래서 의식주인가. 인간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란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백화점 2층은 엘레강스 캐주얼, 3층은 디자이너 부띠끄, 4층은 영캐주얼, 5층은 남성복, 골프의류, 6층은 어린이옷, 7층은 주방용품, 8층은 영캐주얼이다. 맞다. 욕망을 표현하고 발산하고자 할 때, 가장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인간은 털갈이를 할 수 없으니. 맞다, 옷을 갈아 입을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욕망들은 그 힘이 너무도 강해서 하루아침에 종식시킬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432쪽)

자본주의에 의한 상처, 그리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413쪽)

지금 이 순간을 내일과 미래와 다음 기회와 바꾸지 말자.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자. 행복해하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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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6-2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으로 강신주에 엇발을 딛어도 될까요?
단발머리님 강력 추천으로 곧 만나게 될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단발머리 2013-06-28 08:50   좋아요 0 | URL
ㅋㅎㅎ 넹, 엇발 내지 한발 내지 두발뛰기 하셔도 완전 만족하실거예요.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다 각각이지요. 일단 강신주님은 제 스탈이죠.
약간 세시고, 강하고, 그러면서도 한쪽 팔로 그러안아 잡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순오기님도 좋아하실까, 궁금해요~~~ *^^*

순오기 2013-06-28 19:42   좋아요 0 | URL
앗 오타~ 첫발을 엇발이라니요 ㅠ ㅠ
쎄고 강하면서도 한쪽팔로 그러안아 주는 스탈이면 완전 로망이잖아요!^^
아이패드로 댓글다느라 엉금엉금~
이젠 골뱅이소면에 막걸리 한잔하러 나가요 ^^

단발머리 2013-06-29 09:39   좋아요 0 | URL
저두 첫발이 엇발ㅋㅎㅎ
아이패드로 댓글달 때, 오타가 우수수지요.

어제 저녁은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아직도 주무시진 않을텐데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침대하고만 이야기 나누는 신랑을 깨워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순오기 2013-06-30 06:04   좋아요 0 | URL
헤헤~ @@
골뱅이소면과 해물파전에 맥주 3병~ 아줌마 둘이 요정도면 됐지요!
배가 너무 불러 남은 안주는 싸와서...아직도 그대로 있네요.
집에서 뭘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오늘은 아버님 생신으로 목포에 갑니다~ ^^
 

작가의 이름만 들어도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소설 속 문장같은 기막힌 문장을 구사하는 정혜윤의 책이 그렇다.

독서 에세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번째 책이고, 페이퍼를 쓰진 못 했지만 『침대와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책, 『사생활의 천재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이렇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인생,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 카프카

매스컴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성공요인을 가지고 있다. 머리가 좋거나, 좋은 학교를 나왔거나 (이전에는 이 두 가지 행운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엔 '돈이 많거나, 좋은 학교를 나왔거나'의 행운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끈기와 열정이 있거나. 그들만의 노하우로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을 이루고,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환호한다. 물론 보고 배울 점이 많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힘이 되는 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하께서도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난관을 여러 번 이겨내셨던 것을 기억하라.), 바로 지금, 지금 현재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나의 안전과 행복을 확인하는 것처럼 잔인한 것도 없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은 그러기 마련이다. 아니, 나는 종종 그럴 때가 있다.

1. 자기 삶의 천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 박수용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소몰이꾼이 되어 시골장을 전전하던 한 아이는 밤마다 이 장, 저장을 옮겨 다닌다. 밤새도록 소 두 세 마리와 함께 산을 넘고 고갯길을 걸어가며, 그는 시장의 시간과 오솔길의 시간, 인간의 규칙과 자연의 규칙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후에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를 따라 숲을 헤메고, 한 해의 절반을 영하 30도의 나무 위나 땅굴 속에서 호랑이를 기다린다. (53쪽)

세계에서 한 시간도 기록되어 있지 않던 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1,000시간 가까이 영상으로 기록한 7편의 감동 다큐멘터리로 프랑스 쥘 베른 영화제 관객상, 블라디보스토크 국제 영화제 특별상 'AMBA'를 수상했으며,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출간한 박수용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이다. (81쪽)

 

 그때 나는 사슴 뼈를 보면서 숲과 사슴의 역사를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살아생전 지녔을 사슴의 감성과 살아있을 동안의 투쟁과 생애 마지막 순간의 고뇌를 느꼈습니다. 그 뼈를 보면서, 숲 속에 자신의 역사를 외로운 유적처럼 뼈로 남겨놓은 한 생명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 불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는 뼈 한 조각을 보면서 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0쪽)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 숲을 헤멘다. 땅굴 속에서 호랑이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걸었던 밤길을 생각한다. 시끄러운 시장의 시간, 조용한 오솔길의 시간, 시장에서 통용되는 인간의 규칙, 스스로 움직이는 자연의 규칙.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오랫동안 큰 울림이 되었다.

나 역시 한 열흘쯤은 초연하다가도 한 사흘쯤 가슴이 아픕니다. 비트에서 너무나 그리워했던 삶이지만 도시에 돌아오면 그 삶은 나를 또 슬프게 합니다. 자연 다큐를 하면서 나는 제작비 문제로 고생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를 잃기도 했고 겨우 제작비를 타내면 ‘추후 타사와 5년 동안 방송 행위 금지’ 같은 이상한 서약서를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때 오솔길의 긴 흐름들, 비트에서 지낸 시간들, 호랑이와 함께 지낸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눈 내린 아침 전나무 끝에 매달린 아침 햇살을 생각합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더 큰 것이 있다. 더 큰 것이 있다. 사소한 것들은 잊힌다. 그 오솔길의 끝에.’ (68-9쪽)

 

2.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 변영주 영화감독

변영주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밀애」, 「발레교습소」,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 「화차」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 강덕경 할머니에게서 시작된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자 돈이 딱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강덕경 할머니가 일 년 반을 살았다는 겁니다. 마지막 6개월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갈 때마다 복잡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죽어도 안도, 살아도 안도였습니다. 인간이 이래도 되나 반, 다행이다 반.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돈이 없었던 겁니다. .... 그래서 도망치듯 시나리오를 한 편 썼습니다. 시놉시스를 재밌어하는 제작자들이 있으면 미팅을 갖는 시네마트가 있는데, 저는 도망치듯 그곳에 갔고 정확히 3일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너, 나 안 지키고 딴 데 가서 딴 일 하는구나. 나 확 죽어버린다.' 꼭 이러고 돌아가신 듯했습니다. 「해운대 엘레지」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함께 있자고."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이상해진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91-2쪽)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기억들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강덕경 할머니. 변영주는 강덕경 할머니를 만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이 없는 거다. 할머니를 계속해서 돌볼만한 돈이 떨어진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할머니가 회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교차되는 가운데, 그녀는 그만 할머니의 손을 먼저 놓아 버린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그 때부터 방황은 시작된다. 자신을 학대하고, 원망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젠 자신의 내면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자기를 용서하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고,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도시의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큰 소리, 시끄러운 소리들. 그 소리들에 답하지 않는다. 그 소리들을 가만히 가라앉힌다.

그리고 듣는다.

숲의 소리, 자연의 소리, 조용한 소리, 내면의 소리, 작은 소리.

내 안의 침묵이 끝내 자기 자리를 찾았을 때, 그 소리는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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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개츠비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를 알아야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 읽은 것 같은데, 어느 출판사 것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은 『상실의 시대』를 읽은 직후였고, 또 한 번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닐텐데, 아무튼 나는 그 책을 읽고, 주인공의 이름, ‘개츠비’만을 덜렁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려 했지만, 시간차 공격이 워낙 빈번한 까닭에 영화를 먼저 봤다.

커다란 스크린 화면 가득,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개츠비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오나르도는 <타이타닉>, <로미오와 줄리엣>때처럼 싱그럽지는 않았지만, 원숙한 남성미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개츠비에 딱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생각한다. 데이지를 연기한 캐리 멀리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개츠비의 지독한 사랑에 호응할 만큼, 여신같은 미모를 보여주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쳤다. 영화 개봉에 즈음하여 민음사판을 4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해 두었는데,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했다는 문학동네판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는 민음사판도 문학동네판도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팔아도 되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은 없었고, 나는 김영하 번역의 문학동네판도 구매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해설>에서 이 책의 번역을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했다.

이 소설은 '선량한' 독자를 절망에 빠뜨리는, 플롯도 캐릭터도 없는 오리무중의 문예소설도 아니고, 정처없이 이름 모를 도시를 떠도는 주인공의 상념을 하염없이 좇는 관념소설도 아니다. 이 소설은 능란하게 짜여진 플롯에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이 대결하는 흥미진진한 로맨스다. ...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원고(대형서점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는 대화를 나누었던 두 고등학생)의 논고에 항변하고,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원고인 고등학생 독자의 악의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1920년대와 2000년대라는 팔십 년의 격차, 한국어와 영어의 어쩔 수 없는 다름 때문이라고 변론하려 했던 것이다. (228-9쪽)

민음사의 번역도 괜찮지만, 출판사에서 '젊은' 번역이라고 홍보했듯이, 문학동네 김영하의 번역은 읽기에 편했다. 20대 초반, 기껏해야 20대 후반이었을, 닉과 톰, 데이지와 개츠비가 서로 경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 역시 타당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학동네/김영하>

"닉, 요즘 뭐 해?"

"증권 쪽에서 일해."

"누구랑?"

나는 동료들의 이름을 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인데?" 그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좀 재수 없었다. (22쪽)

<민음사/김욱동>

"닉, 요즘 자넨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채권 일을 하고 있어."

"어느 회사에서?"

나는 회사 이름을 말해 주었다.

"들어 볼 적 없는 회사인데." 그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런 말투에 나는 화가 치밀었다. (28쪽)

"What you doing, Nick?"

"I'm a bond man."

"Who with?" I told him.

"Never heard of them," he remarked decisively.

This annoyed me. (32-3쪽)

가독성면에서 일단 ‘김영하 번역’에 별 하나를 더 준다.

그 장교는 데이지가 말하는 모습을 지그시, 그 또래 여자들이 한 번만 받아봤으면 하는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더라구요. 너무 로맨틱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예요. 그 사람이 바로 제이 개츠비였어요. (96쪽)

'그 또래 여자들이 한 번만 받아봤으면 하는 그런 시선', 물론 그런 시선이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길,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눈빛. 그런 눈길이 있다.

가끔 TV에서 그런 눈길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극 중에서, 연기자들은 그것이 '연기', 즉거짓 감정임을 본인도, 상대방도, 시청자들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척‘이 아닌 ’진심'으로 무언가를 연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진심으로 '사랑'을 '연기'할 때, 가끔 그런 눈길이 나온다. 내가 가장 최근에 TV에서 그런 눈길을 봤던 건, 송승헌, 김태희 주연의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서였다. 송승헌의 눈빛이 그런 눈빛이었다. 달콤하고, 로맨틱한 눈길,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길.

속으로 말했다.

"송승헌, 진짜로 김태희 좋아하는구나. 곧 스캔들 나겠네."

예상은 적중하지 않았고, 스캔들은 없었다. 송승헌이 연기를 잘한건지, 내가 잘못 본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녀는 개츠비를 바라보았다. "저기, 제이."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담배와 불이 붙은 성냥을 카펫 위에 던져버렸다.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원해!"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당신을 사랑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지나가버린 일을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힘없이 흐느꼈다. "한때는 톰을 사랑한 적도 있었어. 그렇지만 당신 역시 사랑했어."

개츠비가 눈을 떴다 다시 감았다. (167쪽)

나는 개츠비가 데이지의 과거에 연연해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만약 그녀의 과거가 문제된다면, 그는 그녀를 찾지도,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과거는 그에게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계속해서 요구한다.

즉, 데이지는 그녀의 남편 '톰'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걸 인정하라는 것이다. 데이지는 말한다. 어느 한 순간, 톰을 사랑한 적도 있었노라고.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다고 말이다. 이건 개츠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오직 데이지만을 사랑했듯이, 데이지도 오직 자신만을 사랑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면, 개츠비의 '완벽한 사랑'은 무너진다. 역시 그가 사랑한 것은 환상 속의 여인 ‘데이지’가 아니라,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이지와 사랑을 나눌, 데이지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랑은 완벽해야 한다는 개츠비의 집착은 데이지를 숨막히게 한다. “당신도 사랑했어.”라는 데이지의 말은 개츠비를 만족시키지 못 한다. 데이지는, 반드시 자기 자신만을, 개츠비만을 사랑해야 했다. 5년 전에도, 5년 동안 계속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개츠비는 ‘사랑에 빠진 남자’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그 여인을 위해 집을 사고, 그 여인을 위해 매일 엄청난 파티를 연다. 오직 사랑하는 여인,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해서다.

하지만, 지독한 그의 사랑이 그가 그녀를 얻은 후에도 지속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의 사랑이 그토록 강렬했던 이유는 그녀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이 지독한 집착으로, 사랑과는 종이 한 장 차이인 집착으로 점철되어 갈 때, 사랑을 받고 있는 대상도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도 결국엔 파멸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결국 가장 위대한 사랑은 ‘짝사랑’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데이지’를 생각하고, ‘데이지’를 상상하고, ‘데이지’를 그리워했던 때, 그 때 ‘개츠비’의 사랑이 가장 완벽했기에 그러하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기에, 사랑의 충만한 느낌이 계속될 수 있기에, 가장 위대한 사랑은 어쩌면 짝사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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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6-2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시 민음사판 번역이 더 좋으네요. 그러니까 번역투에 더 가까운 문장이라고 해야하나요. '재수없었다'는 편하게 읽히고 익숙하지만 '나는 화가 치밀었다'는 소설 속 문장 같아서요. 저도 문동으로 서점에서 딱 한 페이지를 훑었었는데 '자연스러워서' 저는 좀 내키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얼마전에 쟌 님이 이 영화 리뷰를 쓰셨는데요, 단발머리님이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디카프리오가 이 역을 맡으면서 한 인터뷰에 진짜 완전 쑝갔어요. 개츠비를 '자신의 방식대로 근사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말이지요. 제가 혹시 모르니 여기에 가져와 볼게요.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오래된 유적과 같은 신기루를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길잃은 캐릭터다. 이 작품은 기존의 러브 스토리와는 많이 다르다.
개츠비에게 데이지란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단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는 '소유해야만 하는 물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를 소유하고 지워버려야만 자신의 가난하고 보잘것 없었던 과거도 깨끗이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디카프리오, 인터뷰에서 발췌

단발머리 2013-06-21 15:1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쟌님 영화 리뷰도 개츠비 인터뷰도 못 봤네요.

제가 진작부터 알아본 대로 (ㅋㅎㅎ), 역시 디카프리오는 멋지네요.
'데이지란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단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는 '소유해야만 하는 물건'이라니요.
너무 너무 멋져요.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네요. 외모도 되고, 캐릭터 분석도 잘 하고, 연기도 잘하고.
우앗, 완전 일등 신랑감, 아니다, 일등 배우네요.*^^*

다락방님, 신나는 금요일 오후네요. 날씨는 너무 좋구요.
오늘 저녁에도 약속 있으신가요?
시원한 맥주 500에 치킨?!?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