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질은 자기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본질이냐? 고스톱이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일까?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치는 고스톱이, 애니팡이 당장의 내 스트레스는 풀어주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나한테 진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60쪽) 

나는 박웅현의 삶의 태도 여러면에 공감한다. 행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 모두 공감되는 이야기들이다. 본질이 자기 판단에 있다는 자세 역시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게임 얘기를 듣고보니, 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카카오톡' 김범수 '악착같이 살지마' 의외의 조언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7> 김범수 카카오 이상회 의장, 머니투데이, 2011-10-19> 

김범수씨는 PC통신 유니텔을 만들고, 한게임을 만들고, NHN을 만들고, 그리고 카카오톡을 만들었다. 인생에 한 번 대박을 치기도 어려운데, 그는 연거퍼 대박을, 그것도 초대박을 터뜨렸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재학 당시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빠져 살다가, 대학원에 다닐 무렵 후배 사무실에서 BBS(전자게시판시스템, PC통신의 초기형태)를 보고는 '컴퓨터 세상'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남들보다 반발자국씩 앞서가고 있다. 

요점은 이게 아니다. 시대를 내다보고, 사회의 흐름보다 앞서가는, 한 천재의 이야기에 내가 감동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인터뷰 기사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건 바로 이거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혼자 한국으로 돌아온 김범수씨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여기에서 한 번 놀란다. 남들은 못 보내서 안달인데, 고1, 중3 한참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을, 놀자고 꼬시다니. 놀자고 공부를 중단시키다니.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놀게만 했어요. PC방도 자주 갔어요. 저도 게임 잘하고, 와이프도 고수거든요. 딸이 문제였는데 아들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죠. 넷이 게임하다보면 금세 새벽 4시였어요. PC방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행복했어요." 

여기서 두 번째로 놀란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아빠가 PC방에 가서는 새벽 네 시까지 놀아재낀다. 일반적으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롤러코스터급 난코스 교육법이다.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다. 행복했어요. 

박웅현과 김범수를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일단 지하철에서 애니팡이나 고스톱을 치면 안 된다. 그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을 새서 게임을 하는 건 괜찮다. 공부도 하지 말고, 원도 한도 없이 오직 게임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나도 일 좀 해야겠다, 하는 깨달음이 온다. 최선을 다해 놀았으니, 최선을 다해 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내가 우리 아롱이에게 '두 시간 고무 딱지 타임'을 허락하는 이유이다. 

다른 답은 내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의 인정,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존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나의 상황이 완벽할까요? 딸을 하나만 낳은 것, 이 직업을 선택한 것, 원주의 선택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완벽한 선택이란 없습니다.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을 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140-1쪽) 

현재에 충실한 삶은 결국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일테고, 그런 삶이란 선택을 한 후에는, 나의 그 선택을, 나의 모든 세포들의 선택을, 나의 최종 결정을 바로 내가, 믿어주는데 있다고 박웅현이 말한다. 

딸을 하나만 낳은 것, 이 직업을 선택한 것, 원주 청춘콘서트에 가기로 했던 것은 하나의 선택이고, 이젠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아빠의 애절한 권유를 뿌리치고 교대에 가지 않았던 것, 교직을 이수하지 않았던 것 (아니면 성적 때문에 못 했던 것), 교육대학원을 가지 않았던 것,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이건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자세, 게으름에 관한 문제이므로 빼야겠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 것. 

두 가지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무언가를 선택했고, 그리고는 후회했다. 이제는 나의 그 선택들을, 내 세포들의 선택들을, 나의 최종 결정을 믿어주어야겠다.   

모든 인생이 최선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도, 직업도 차선, 차차선의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선택들이 주로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때로는 차선에서 최선을 건져내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226쪽) 

나는 '특별한 일'을 이룰만한 '특별한 재능'도 '특별한 인내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내 인생의 선택은 최선과 가까운 차선, 아니면 차선이었다. 차차선을 선택했지만, 거기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박웅현보다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이유다.

 



2. 박웅현이 추천한 음악과 책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은 전작 <책은 도끼다>에서도 추천한 책이어서 제목이 익숙하다. 나머지 두 권은 처음 보는 책들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가야금 캐논,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숭어>, <바이올린 협주곡>,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 스메타나 <나의 조국>, 데이브 브루벡 퀘텟 <Take 5> 

귀에는 익숙해도 실제로 곡명을 모르는 곡들이 많다. 유투브에서 한 곡씩 찾아듣고 있는데, 참 좋다. 가끔은 모르는 게 많아도 좋을때가 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까. 



 

3. 여기서부터 1시간 20분 걸립니다 
 
시댁과 친정이 20분, 5분거리에 있는 나에게, 20일 오후부터 진짜 휴가가 주어졌다. 어디 가서 재미있게 놀아볼까 고민하다, 서울촌놈 서울구경한다고 '남산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명동에 갔다. 시작부터 조짐이 안 좋더니만,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하자, 엄청나게 늘어선 긴~~줄이 우리를 맞아준다. 일본 관광객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들 같다. 우리처럼 한국만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띌 뿐이다. 표를 끊는 줄이 따로 있고, 케이블카 타는 줄이 따로 있다는 어마어마한 소식도 전해진다. 휴일 근무에, 많은 사람들 때문에 피곤에 지쳐 보이는 남자 직원이 저 쪽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로 외친다. 

"여기서부터 1시간 20분 걸립니다." 

평소 운동량이 극도로 부족한 어른 둘과 어린이 둘은 이미 올라오며 체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 망연자실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  

"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에 와서 타자."   

아쉬운대로 명동 구경에 나섰다. 여기도 위쪽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중국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사람, 여기는 한국인데, 간판은 3분의 1이 일본어로 쓰여있었고, 들리는 소리는 대부분 중국말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랜만에 명동에 나왔던가. 거리는 익숙한데,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온 김에 '명동칼국수'를 먹겠다는 나를 위해, 나보다 더욱 간만에 명동에 입장한 신랑은 스마트폰을 열고서는 이리저리 우리를 이끌었다. 도대체 어디 가는거냐는 애들의 성화를 뒤로 하고, '명동교자' 칼국수집에 도착했으나, 어엇! 여기서도 길다란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반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 도끼가 네 도끼냐'도 아니고, 아롱이는 '이 칼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가 아니다'고 박박 우겨대며 떼를 쓰고, 앉아 있는 손님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에 시끄럽고 산만한 분위기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단 하나의 위로라면 자리에 앉아서도 이거 먹을려고 줄까지 서야 되냐며 툴툴거리던 딸롱이가,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워냈다는 것. 

어떤 추석은 이렇게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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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9-2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범수 에피소드는 글쎄요.... 결과가 합리화 시켜준 굉장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명동교자에 줄서서 칼국수 먹던 기억이 나네요. 강남역 근처에 있는 강남교자도 같은 명동교자 출신이 만든 칼국수라 맛과 서비스 내용(면 리필, 김치 서비스 등)이 거의 동일하답니다.^^

단발머리 2013-09-23 19:11   좋아요 0 | URL
아하...그럴까요. 저는 '좋아하는 일 하다가 대박친 사람들'에게 너무 약한거 있죠. 제가 아직 어린가봐요^^

강남교자도 맛과 서비스가 비슷하다면 거기서도 줄을 서야하는지 궁금하네요.
저흰 다행히 신랑이 눈치있게 3층으로 가겠다고 해서 많이 기다리진 않았는데, 먹고 내려올 때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란.... 아.....

야클 2013-09-23 21:44   좋아요 0 | URL
콩국수를 많이 찾던 7,8월엔 12시 쯤 가면 10 ~ 15명 정도 줄을 섰는데 요즘엔 아무때나 가도 줄을 설 정도는 아니더군요.

단발머리 2013-09-23 23:1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갔던 명동은 2층까지 가려는 줄이 도로에까지 쭈욱 이어져서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올 여름은 콩국수를 먹지 못 하고 지나갔네요.
콩국수가 먹고 싶군요.........아...콩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