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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평점 :
편지 속 매화가지와
전화 속 달은 같은 마음이다
손편지가 사라진지 한참이나
되었다. 내 학창시절 때만해도 펜팔이라는
것이 있어 손편지로 사귐이 가능한 시절도 있었다. 시절이 변했으니 편지글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것은 당연하다 여기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운 것은 그 손편지에 담았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모양은 달라져도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은 있다.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거의
자유로운 SNS라는 도구가 있어 손편지를
대신해서 즉각적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그 반응을 확인한다. 손편지와 SNS의 차이를 좋고 좋지 않음을
떠나서 그래도 손편지에 담았던 그 정성과 마음은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마음속 정회를 털어놓아 기약 없는
만남을 대신했다”그리운 벗이나
가족, 연인사이 이런 편지를 통해
마음과 마음을 나눴다. 시간을 담보로 한 편지에는 그
담보한 시간만큼 애틋한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기도 했던
편지는 대개 두벌을 썼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보내고 또 하나는 자신이 소중하게 간수하였다고 한다. 또 편지에 서린 상대의 음성은
물론이거니와 종이에 남은 필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 편지만을 따로 묶어 작은 책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 연유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옛사람들의 편지글이
많다. 이 책 ‘한시
러브레터’는 바로 그런 편지글에 주목하여
그 속에 담았던 시를 선별하고 옛사람들의 마음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려 후기 문인인 이규보를
포함하여 조선 시대에 편지로 주고받은 한시들을 모아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려주듯 풀어놓았다
국화꽃에 꽂혀 있는 벗의 시, 병들고 가난하더라도 함께 늙어
가요, 대지팡이를 보낸
뜻,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내용상 구별하더라도 딱히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벗, 가족, 부부, 연인 등 그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편지글 속 마음 나눔이 중심이다.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메
매창의 시다. 매창과 유희경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주고받은 사랑의 노래만으로는 다
알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기약하고 어찌 이리 돌아오지
않나요
뜰에 핀 매화도 지려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가지 위 까치
소리에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
봅니다
그 마음 이옥봉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밤 매화 피니 나무에 봄이
가득
매화 가지 껶어 들고 멀리 그리움
전하고파
강남에서 보냈을 역사는 언제나
찾아올까
만발한 꽃 바람에 지니 정겨운 사람 몹시도
그립네
가을날 매화가지 하나를 시와 함께 보내온 이에게
김창협이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동색이리라.
여기에 더하여 책 읽기를 최고의 낙으로 여기는
유희춘(柳希春)과 술맛과 풍류를 아는 그의 아내
송덕봉(宋德峯)이 주고받은
시, 호연한 기상으로 고을 원님과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돈을 꾸는 편지를 쓴 김호연재의 시뿐 아니라 절친한 벗 사이에, 귀양 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신임하는 임금과 신하가
주고받은 편지시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옛사람들에게 편지는 이렇듯 그
속에 담은 시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은유적으로 전하지만 결코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부럽다. 일생생활을 꾸려가는 모습은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그들의 사람 사귐의 내용과 방법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부러운 것만은
아니다. 편지 속에 꺾은 매화 가지를
보내는 예사람의 마음과 달이 떳다고 전화해 주는 현대인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달라진 환경에 맞게 내용을 더
풍부히 해서 사람 사귐에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