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의 담박한 운치, 박꽃
翁老守雀坐南陂 옹로수작좌남피
粟拖狗尾黃雀垂 속타구미황작수
長男中男皆出田 장남중남개출전
田家盡日晝掩扉 전가진일주엄비
鳶蹴鷄兒攫不得 연축계아확불득
群鷄亂啼匏花籬 군계란제포화이
少婦戴棬疑渡溪 소부대권의도계
赤子黃大相追隨 적자황대상추수
늙은이 새 지킨다 언덕 위 앉았건만
개 꼬리 이삭에 참새가 매달렸네.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 다 일 나가고
밭집은 대낮에도 삽짝 문 지처 둔다.
소리개 병아리를 채려다 못 채가니
박꽃 핀 울밑에서 뭇 닭만 요란하다.
며느리 밥을 이고 꼿꼿이 내 건널 제
누른 개 벌거숭이 뒤따라 좇아간다.
*조선사람 박지원의 전가(田家)라는 시다. “이 얼마나 운치 있는 전가(田家) 시인가. 그 중에서도 소리개가 병아리를 채가려다가 그만 놓치자, 닭들이 박꽃 핀 울밑에서 요란하게 지저귄다고 한 것 같은 것은 참으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박꽃 핀 울타리를 특별히 말한 것은 농가의 자연미를 그리는데 있어 그것이 중요한 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박꽃이 비록 다른 이름난 꽃처럼 훌륭한 꽃의 목록에 열거되지는 못하지만, 농촌과는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를 지닌 아름다운 꽃 중에 하나인 것만은 사실이다. 아침에 피는 나팔꽃도 좋지만 저녁에 피는 박꽃은 어스름 달빛 아래서가 가장 보기에 좋다.”
*지금 사는 마을로 터전을 옮기고 나서 어느 해 이웃 마을 사는 아는 이의 초대로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다. 가로등 불빛에 언 듯 비치던 박꽃을 보았고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게 한 그 골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유난히 희고 소박한 박꽃이 여전히 좋다. 기회가 된다면 박을 심고 키워 꽃도 보고 박도 얻어 옛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