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숲이다.

짙어지는 녹음 속으로 아직은 부드러운 햇살이 만나 꽃으로 피어난다. 잎과 햇살 사이를 부지런한 바람이 길을 터주고 있다. 숲이 주는 다독거림으로 옮긴 발걸음이 한없이 느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곡을 오르다 올라다본 잎이 수줍어 보이는 것이 아직은 덜 여물었다. 잎만큼이나 수줍은 볕이 여름으로 가는 길목임을 알려주는듯 환하다. 아직은 겁먹지 말라는 위로와 함께.

적당한 그늘에 아무 곳이나 주저앉아도 좋다. 그렇게 멈춘 걸음에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가슴에 품어 그 싱그러움을 채워둔다.

마주본 빛이 나뭇잎을 통과하는 동안 나도 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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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약이라고 했다.
몇 년 전 어느날 사진 한장으로부터 시작된 꽃앓이가 해가 지날수록 잠잠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져만 갔다. 꽃이 필 때가 되면 수시로 검색하며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 마음졸이며 몇 해가 지났다.

그러는 사이 한 해에는 노고단 오르는 길에서 꽃봉우리 맺힌 것을 보았고 이듬 해에는 같은 길 다른 곳에서 꽃이 진 후의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숨바꼭질 만 하다 정작 꽃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해에 문득 꽃친구가 몇 년 전에 올렸던 꽃사진을 찾았고 바로 전화를 걸어 꽃소식과 함께 보러가자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에서 수줍게 핀 꽃을 처음으로 만났다.

재배하는 작약과는 다른 종류다. 깊은 산에서 자라며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잎의 뒷면에 털이 난 것을 털백작약, 잎의 뒷면에 털이 나고 암술대가 길게 자라서 뒤로 말리며 꽃이 붉은색인 것을 산작약, 산작약 중에서 잎의 뒷면에 털이 없는 것을 민산작약이라고 한다."

곱고 우와하고 단정하다. 달리 무슨 말을 더할 필요가 없다. 보고 있으면 순식간에 넋이 나갈 정도로 매력적이다. 갈증은 해소했으나 그리움이 커졌다. 꽃 필 무렵이면 산 넘고 물 건너 올 꽃소식에 목이 길어질 것이다.

귀한 마음 덕분에 올해는 편하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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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창초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땅에 풀들이 나서 파릇해질 무렵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보라색 꽃들이 여기저기 뭉쳐있다. 초록색의 풀들 사이에 있으니 더 빛난다. 어느덧 제 자리를 잡아가는 나무 사이사이 빈 공간에 민들레, 제비꽃, 광대나물들 틈 사이에 자리잡았다. 유독 작은 키지만 금방 눈에 띈다.

서리가 이슬로 바뀐 봄날 아침 털어내지 못한 이슬을 쓰고 피었다. 이슬방울과 어울어져 더 짙은 색으로 싱그럽게 다가온다. 무리지어 있기에 더 주목하게 된다. 하나하나 뜯어봐도 개성이 살아있지만 모여 그 특별함을 돋보이게 한다. 나약하고 여린 생명들이 사는 방법이다.

가지조개나물, 금란초, 섬자란초라고도 부르는 금창초金瘡草는 쇠붙이로 된 창, 화살, 칼 등으로 입은 상처가 난 곳에 이 풀을 뜯어 발라 치료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때가되면 피고진다. 지금 내 뜰에 지천으로 깔렸다. 땅과 붙어서 자라는 쓰임새가 다양한 금창초는 '참사랑', '희생'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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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지극 정성을 더 하였다.

순하고 깊은 맛이 영낙없이

주인장을 닮았다.

2024년 제주 올티스의 첫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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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절세미인, 작약화 芍藥花

好箇嬌饒百媚姿 호개교요백미자

人言此是醉西施 인언차시취서시

露葩攲倒風擡擧 노파기도풍대거

恰似吳官起舞時 흡사오공궁기무시

아양 떠는 고운 자태 너무도 아리따워

사람들은 이를 두고 취서시(醉西施)라 한다네.

이슬 젖은 꽃 기울면 바람이 들어주니

오나라 궁궐에서 춤추던 때 비슷해라.

*중국에서는 모란을 '꽃의 왕'이라 부르며 꽃 중 제일로 꼽았고, 작약은 '꽃의 재상'이라 해 모란 다음으로 여겼다. “작약이 꽃나라의 재상이라고는 하나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다. 작약의 품종 가운데 예전 중국 오나라의 절세미인 서시(西施)가 술에 취한 모습 같다 해서 붙인 취서시(醉西施)란 것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취서시작약시(醉西施芍藥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작약은 꽃의 모습이 작약(綽約), 가냘프고 맵씨가 있다 해서 작약(芍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이는 억지로 가져다 붙인 말에 지나지 않는 듯하니, 나원(羅願)이 지은 《이아익(爾雅翼)》에는, “음식의 독을 푸는 데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어서 ‘약(藥)’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誰道花無主 수도화무주

龍顔日賜親 용안일사친

宮娥莫相妬 궁아막상투

雖似竟非眞 수사경비진

꽃은 주인 없다고 누가 말했나

임금께서 날마다 친애하시네.

궁궐의 아가씨들 질투 말게나

비슷해도 마침내 진짜 아니니.

“작약이 우리나라 역사에 보이는 것은 지금부터 770년 전인 고려 의종(毅宗) 때 일이다. 의종은 정치보다 놀이를 좋아하여, 하루는 대궐 정원에서 꽃구경을 할 때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작약시를 지어 바치게 했다. 이때 지어 바친 시 가운데 현량(賢良) 황보탁(皇甫倬)의 〈작약〉시가 제일이었다.”

재배하는 작약의 종류는 우선 색깔로만 봐도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이 있으며 많게는 4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산야에 자생하는 작약이라는 이름 붙은 것으로는 주로 깊은 산골에 서식하는 산작약, 백작약, 참작약 등이 있다. 접하기 귀한 꽃으로 겨우 흰색으로 피는 백작약만 보았을 뿐이다.

옛 어른들은 함박꽃으로도 불렀다는 작약을 고향 집에서 얻어와 뜰에도 작약을 심었다. 다양한 색으로 크고 화려하게 피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아서다. 모란이 지고나면 작약이 핀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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