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붓꽃
연분홍 진달래가 지고 산철쭉이 피기 시작하면 꽃을 찾는 눈길은 땅에서 높이를 점차 높여간다. 그럴때 아직은 아니라는듯 키는 작지만 특이한 모양과 강렬한 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꽃이 있다.
 
삼각형 모양의 보라색 길다란 꽃잎에 선명한 무늬를 새기고 하늘을 향해 마음껏 펼쳤다. 꽃줄기 하나에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에 주로 자라며 큰 군락을 이루는 곳은 별로 없고 대부분 군데군데 모여 핀다.
 
붓꽃 종류 중 가장 먼저 피고 키가 가장 작기 때문에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귀엽고 이쁘다고 '각시붓꽃'이라 한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봄이 가기 전 꽃과 잎이 땅에서 모두 없어지고 만다.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하는 품종이어서 가급적 자생지에서 피어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 같은 시기에 노랑색으로 피는 금붓꽃과 함께 숲으로 마음을 이끄는 꽃이다.
 
비슷한 꽃으로 넓은잎각시붓꽃이 있다. 현장에서 두 종류를 비교하면서 보고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닮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이름이다.
 
피는 모습에서 연유한 듯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월의 숲,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순간순간을 외면 할 수 없다. 그 중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볕을 품고 있는 풀의 새싹이거나 나무의 새잎이다.

그렇거니 하고 그냥 지나치면 머무를 이유를 찿지 못하지만 매순간 자연이 전하는 생명의 기운을 만나기 위해서는 매순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이 싱그러운 봄의 꽃과 새싹을 보면 표현 방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환희에 공감하게 된다.

눈맞춤 하는 순간,
봄이 내 품으로 들어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치의 노래, 정태춘

때때론 "양아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는
하루 종일을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기 위에 앉아
비록 낮은 방바닥 한 구석 좁다란 나의 새장 안에서
울창한 산림과 장엄한 폭포수, 푸르른 창공을 꿈꾼다

나는 그가 깊이 잠드는 것을 결코 본적이 없다 가끔
한 쪽 다리씩 길게 기지개를 켜거나 깜빡 잠을 자는 것 말고는
그는 늘 그 안 막대기 정 가운데에 앉아서 노랠 부르고
또 가끔 깃털을 고르고, 부릴 다듬고 또, 물과 모이를 먹는다

잉꼬는 거기 창살에 끼워 놓은 밀감 조각처럼 지루하고
나는 그에게 이것이 가장 안전한 네 현실이라고 우기고 나야말로
위험한 너의 충동으로부터 가장 선한 보호자라고 타이르며
그의 똥을 치우고, 물을 갈고 또, 배합사료를 준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바로 죽고, 그는 오래 혼자다
어떤 날 아침엔 그의 털이 장판 바닥에 수북하다 나는
날지 마, 날지 마 그건 너의 자학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너의 이념은 그저 너를 깊이 상처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정말 날고픈 하늘을 전혀 본 적 없지만
가끔 화장실의 폭포수 소리 어쩌다,
창 밖 오스트레일리아 초원 굵은 빗소리에
환희의 노래 처럼 또는, 신음 처럼 새장 꼭대기에 매달려
이건 헛된 꿈도 이념도 아니다라고 내게 말한다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

내일 아침도 그는 나와 함께 조간 신문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가라앉는 이유를 그도 잘 알 것이다
우린 서로 살가운 아침 인사도 없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가족 누군가
새장 옆에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내게 말할 것이다
아치의 노래는 그의 자유, 태양빛 영혼 그러나,
아치의 노래는 새장 주위로만 그저 뱅뱅 돌고 ...
아치의 노래는 ...

2001년 3월

https://youtu.be/Zxlf0uwyiD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읽는수요일

5월

​아이야 오늘처럼 온통 세상이 짙푸른 날에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지 말자
바람이 불면
허기진 시절을 향해 흔들리는
기억의 수풀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는다

연락이 두절된 이름들도
나는 아직 수첩에서 지울 수 없어라
하늘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앓으며 뭉게구름 떠내려 가고
낙타처럼 피곤한 무릎으로 주저앉는 산그림자
나는 목이 마르다

아이야 오늘처럼 세상이 온통 짙푸른 날에는
다가오는 날들도 생각하지 말자
인생에는 도처에 이별이 기다리고
한겨울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그 아래
어깨를 늘어뜨리고
모르는 사람 하나 떠나가는 모습
나는 맨발에 사금파리 박히는 아픔을 배우나니

*이외수 선생님의 시 "5월"이다. 5월은 이외수 선생님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시를 여기에 공유 합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晩春 만춘
庭宇寥寥門晝關 정우요요문주관
葛巾烏几對靑山 갈건오궤대청산
桃花落盡春光歇 도화락진춘광헐
蛺蝶如何苦未閒 협접여하고미한
 
늦은 봄
집안은 조용하고 낮에도 문을 닫고
갈건으로 오궤 기대고 청산을 마주본다
복사꽃 다 지고 봄빛도 다하는데
나비는 어찌 저리도 괴로워 편안치 못한가
 
*조선사람 申欽신흠(1566∼1628)의 시다.
봄 기운을 품고 날뛰던 가슴이 어느새 차분해졌다. 경계를 허물어버린 봄 속에 안겨보니 가까이 보아야 비로소 너와 내가 보인다.
 
늦은 봄에 신흠 선생의 마음에 파문을 일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허공을 헤매는 나비의 날개짓을 그냥 보낼 마음이 없었나 보다.
ㆍ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ㆍ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ㆍ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 세가지를 인생 삼락으로 꼽았다는 선생의 마음이 어렴풋이 알듯도 싶다.
 
인생의 즐거움은 먼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