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달라진 질감으로 얼굴에 닿는 볕이 아깝지만 붙잡을 도리가 없다. 볕 날 때 그 볕에 들어 볕의 온기를 가슴에 품어두는 수밖에.

향기 또한 다르지 않다. 가을볕의 질감으로 안겨드는 향기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가을볕 만큼이나 짧은 향기가 아까워 한 줌 덜어다 그릇에 옮겨두었다.

하늘의 볕을 고스란히 품었으니 볕의 질감을 그대로 닮았다. 색감에서 뚝뚝 떨어지듯 뭉텅이로 덤벼지는 향기에 그만 넋을 잃어 가을날의 한때를 이렇게 품는다. 다소 넘치는 듯하나 치이지 않을만큼이니 충분히 누려도 좋을 가을의 선물이다.

아는 이는 반가움에 가슴이 먼저 부풀고, 처음 본 이는 눈이 먼저 부풀어 이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이 향기다. 

하늘색 종이 봉투에 한 줌 담아서 그리운 이의 가슴에 안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정에세이
-부희령 저, 최연택 그림, 사월의책

읽고 싶은 책은 많고 그보다 훨씬 많은 책들의 홍수 속에 산다. 책을 제법 읽는다고는 하지만 지독한 편식이라 접해보지 못한 분야는 부지기수다. 그러하기에 인연닿아 손에 든 책에 집중한다.

페이스북 친구 부류는 몇가지 구분이 된다. 그중 한 부류가 출판사와 작가 그룹이다. 넓고 넓은 책의 세계에서 책에 대한 정보도 얻고 새로운 작가와 저자들을 알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다.

그렇게 만난 작가와 작품이 제법 많다. 그 모두가 마음에 닿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공간 아니면 또 어디서 그런 귀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부희령, 첫만남이다. 아니 페이스북 친구이니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와 책에 관한 정보 없이 손에 든 책을 펼친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책소개 덕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매화'
계절마다 피는 그 많은 꽃들 중에 놓치지 않고 꼭 눈맞춤하고 싶은 꽃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라지기에 눈맞춤에 대한 갈망도 다르지만 꽃을 보고자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 한자리를 차지하는 꽃이 이 물매화다.


춥고 긴 겨울을 기다려 이른 봄을 맞이하는 마음에 매화가 있다면 봄과 여름 동안 꽃과 눈맞춤으로 풍성했던 마음자리에 오롯이 키워낸 꽃마음이 꼭 이래야 한다며 가을에는 물매화가 있다.


누군가는 벗을, 누군가는 그리운 연인을, 누군가는 살뜰한 부인을 누군가는 공통의 이미지인 아씨를 떠올린다. 유독 사람받는 꽃이기에 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때를 놓치지 않고 피어 눈맞춤할 기회를 준다.


꽃에 투영된 이미지 역시 제 각각이다. 이제 이 꽃은 오매불망하던 꽃과 계절이 네번 바뀌는 동안 다섯번의 청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흥쾌히 자리를 마련해준 이의 눈망울로 기억될 꽃이다.


서리 내리고 눈 올때 까지도 많은 꽃들이 피고지겠지만 올해 내 꽃놀이의 백미는 여기에서 방점을 찍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삼십이화첩 題三十二花帖'

초목의 꽃, 공작새의 깃, 저녁 하늘의 노을, 아름다운 여인

이 네가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인데, 그 중에서도 꽃이 색깔로는 제일 다양하다. 미인을 그리는 경우 입술은 붉게, 눈동자는 검게, 두 볼은 발그레하게 그리고나면 그만이고, 저녁 노을을 그릴 때는 붉지도 푸르지도 않게 어둑어둑한 색을 엷게 칠하면 그만이며, 공작새의 깃을 그리는 것도 빛나는 금빛에다 초록색을 군데군데 찍어 놓으면 그뿐이다.

꽃을 그릴 적에는 몇가지 색을 써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김군金君이 그린 서른 두 폭의 꽃 그림은 초목의 꽃을 다 헤아린다면 천이나 백 가운데 한 둘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색五色도 다 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작새의 깃ㆍ저녁노을ㆍ아름다운 여인의 빛깔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아하! 한 채 훌륭한 정자를 지어 미인을 들여앉히고 병에는 공작새 깃을 꽂고 정원에는 화초를 심어두고서, 난간에 기대어 저무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꼬? 하나 미인은 쉬이 늙고 노을은 쉽게 사그라지니, 나는 김군에게서 이 화첩花帖을 빌려 근심을 잊으련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글이다.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정조가 발탁한 네 명의 규장각 초대 검서관 중의 한 사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군金君은 박제가의 '꽃에 미친 김군'에 나오는 김군과 동일인인 김덕형으로 본다.

물매화, 구절초, 아스타, 미국쑥부쟁이, 은목서, 달리아, 둥근잎나팔꽃, 새박, 당잔대, 꽃범의꼬리, 해국, 버들마편초, 대상화, 산국, 꽃향유?. 요사이 내 뜰에서 만나는 꽃이다. 가깝게 때론 거리를 두고서 하나하나 눈맞춤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침이슬이 꽃잎에 곱게 내려앉았다.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를 지나며 아침마다 마주하는 모습이다. 조그마한 뜰, 잔디에 앉은 이슬을 밟으며 여전히 피고지는 꽃들과 눈맞춤 한다. 내게는 출근하기 전 이 짧은 여유는 빼놓을 수 없는 호사기에 하루를 여는 통과의례로 삼는다.

꽃을 그린 김군이나 그 그림을 보고 심회를 글로 옮긴 유득공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 마음을 흉내라도 내보려고 오늘도 나는 꽃을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소소 小素笑
-윤재윤 저, 최원석 그림, 나무생각

이 책의 부제 '진짜 나로 사는 기쁨'이 무엇인지 짐작은 할 수 있다. 먼길 돌고 돌아와 지천명知天命을 지나고 나니 곁에 두어야할 것과 거리를 둬야할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듯도 하다.

小素笑, 귀한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