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매 探梅
타고갈 나귀도 없다. 눈길에 지필묵 지고갈 시종도 없고 매향나눌 벗도 청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못 볼까봐 조바심이는 마음하나 뿐이어서 더 깊고 그윽하다. 매화를 보러가는 마음이 그렇다.

눈 내리는 겨울 날, 봄소식을 기다리며 매화를 찾아나섰던 중국의 맹호연이나 그 이야기를 그린 조선의 심사정이나 심중 소회를 시로 읊은 김시습의 마음이 지금 길을 나선 내 마음이 다르지 않다.

탐매探梅
大枝小枝雪千堆 대지소지설천퇴
溫暖應知次第開 온난응지차제개
玉骨氷魂雖不語 옥골정혼수불어
南條春意最先胚 남조춘의취선배

큰 가지 작은 가지 눈 속에 덮였는데
따뜻한 기운 응당 알아차려 차례로 피어나고
옥골빙혼이야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남쪽 가지 봄뜻 좇아 가장 먼저 망울 맺는구나
-김시습, ‘매월당집(梅月堂集)’ 중에서-

탐매는 눈으로 보는 것이나 향기로 맡는 것보다 빛과 향기 모두를 품는 마음이 먼저다. 마음으로 봄이라 부르면 일렁이는 기운이 눈길을 나서게 하는 이유다.

간밤에 내린 눈 이미 햇살에 사그라지고 없다. 간신히 가지에 걸린 눈 속 매화를 가슴에 품었다.

당신에게 입춘立春날에 입춘첩立春帖을 대신하여 섬진강에 핀 매화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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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진 2025-02-0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섬진강 소학정의 매화로

시작한 탐매행이다. 포근한 날이 이어지니 마음이 더 바빠진다. 꽃 피었다는 소식이 기쁜 것은 꽃 보는 자리에 함께할 벗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친교의 매화'다. 꽃 피니 벗부터 생각나고 그 향기를 나누고 싶어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折梅逢驛使 절매봉사역

寄興嶺頭人 기흥농두인

江南無所有 강남무소유

聊贈一枝春 요증일지춘

매화 가지를 꺾다가 마침 인편을 만났소.

한 다발 묶어 그대에게 보내오.

강남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가지에 봄을 실어 보내오.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이 꽃 한가지를 통해 나눈 우정이 매향梅香처럼 고매하다. 육개는 멀고도 먼 강남에서 매화 한 다발을 친구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꽃이 가는 도중 시든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범엽이 꽃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여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하지 못한 벗들에 대한 아쉬움을 유독 크다. 봄이 도착하기 전 만남을 기약하기에 그 아쉬움을 다독이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남는다.

"강남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가지에 봄을 실어 보내오."

섬진강에 매화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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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의 시전집2 "쓰러진 자의 꿈"에 실린 시 '나목裸木'의 일부다.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확보된 심리적 안정감이 있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짧지 않은 눈맞춤이 가능한 이유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짧은 멈춤을 할 수 있는 내가 좋다.


다 당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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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을 건너느라 수고로웠던 몸과 마음에 틈이라도 부여하려는지 연일 볕이 좋다. 은근히 감춰놓고 지나온 시간을 다독거리는 것도 좋지만 때론 확연히 드러내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 때맞춰 송구영신을 떠올리는 이치가 아닌가 싶다.

혹여, 새해를 맞아 분주할지도 모를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하루를 침잠沈潛 할 기회로 삼자.

거울을 보듯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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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을 소망한다."

언제부턴가 내 일상을 이끄는 문장으로 삼아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와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살아온 지난 시간에 만족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거기에 다시 지난해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이 문장을 빌려와 오늘을 사는 자신을 돌아보는 언덕으로 삼고자 한다.

'과거와 현재', '어제와 오늘'이 서로 다르지 않기에 내가 찾고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의미 역시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새로 맞이하는 시간 앞에 선 모든 이들의 일상이 如如여여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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