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시간 - 흔적을 찾아 떠나는 겨울 숲
손종례 지음 / 목수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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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빼놓지 않고 숲은 찾는다. 언 땅을 뚫고 올라 꽃을 피우는 봄에는 물론 많은 것을 포용하는 여름 숲의 풍성함도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는 가을 숲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때는 민낯의 겨울 숲이다. 모두를 떠나보내고 텅 비워낸 숲은 또 다른 매력으로 충만하다. 옷을 벗어버린 나무들이 분명하게 숲의 주인공으로서 존재를 드러내고 있기에 나무에 주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좋아 꽃이 피는 때에 나무를 찾긴 하지만 그 호기심의 시간이 지나면 오롯이 나무에 주목하는 시간이 온다. 꽃과 잎으로 구분하던 나무들이 꽃이 지고 잎이 떨어진 후에는 알 수 없는 나무로 바뀌길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나무의 수피로 시선이 머물게 된다. 내가 나무를 알아가는 과정이 그래왔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건너오는 동안 도움을 받았던 것이 나무를 모아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해 놓은 책들이다.

‘겨울 나무의 시간’은 그 흐름을 따라가다 최근에 손에 든 책이다. 이 책은 “겨울에 나무를 구별하는 방법부터, 나무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취하는 생존 전략까지. 겨울 숲에 남아 있는 숲 생명들의 흔적을 쫓으며 새로운 시선으로 겨울나무와 겨울 숲을 보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다.”

병꽃나무, 덜꿩나무, 소태나무, 함박꽃나무, 회나, 산사나무, 광대싸리, 털개회나무, 짝자래나무, 마가목, 물푸레나무, 까막딱따구리, 당단풍나무, 시닥나무, 산앵도나무 등

익숙하거나 생소한 78종의 나무를 대상으로 겨울눈은 물론 겨울눈에서 잎이나 꽃 또는 가지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까지의 모습을 담은 7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겨울나무와 겨울 숲을 안내해주고 있다. 이 책이 더 친근하고 실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저자 손종례가 숲과 나무에 접근하는 시각이 책을 읽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 실무에서 사람들을 숲이나 나무로 안내하는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동물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겨울을 지낸 나무가 꽃을 피우거나 새잎을 내는 과정을 정밀하게 관찰하다보면 경외감마저 일어나곤 한다. 꽃이 궁한 때를 건너오는 동안 함께한 이 책이 전해주는 매력은 멈추지 않은 생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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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억이 그곳에 있었다 - 추억이 오늘의 나를 지켜줍니다
김용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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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억의 공유

 

익숙한 모습의 집그 뒤로 아주 풍선한 한그루 나무가 있다어린 시절은 떠올리게 하는 아주 다정한 모습이라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하나 둘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림들을 챙겨보며 속으로만 좋아했다어느 날 전시회 소식을 접했으나 너무 먼 길이라 아쉽기만 했지만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화가가 발간한 책이 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책과 함께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장바구니에 들었던 책들이 내게로 왔다주문한 기억이 없어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의문이 해소되었다그렇게 해서 spo게 e\온 책이 바로 김용일 화가의 행복한 기억이 그곳에 있었다.

 

손길 닿는 곳에 두고 보내준 이의 마음까지 얹어 아껴가며 읽었다어느 날은 그림을 주목하고 다른 날엔 담긴 글에 주목했다그림과 글 사이를 거듭해서 반복하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흔적을 남길 여유를 찾았다.

 

추억이 오늘의 나를 지켜줍니다.”라는 부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자신이 그린 그림들에 글을 덧붙여 아름다운 한 권의 에세이” 만들어진 것이다어린 시절고향추억 등이 주제다익숙한 모습의 집들과 화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을의 이야기가 마치 내가 살았던 옛날의 시간으로 이끌어 주는 듯 따스함이 함께 한다.

 

수 십 채의 집과 그 집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 아주 크게 그려진 나무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수월리 2019’, ‘상동이내집 2019’, ‘몽석리의가을 2019’, ‘동례마을 2019’, ‘창우네집 2019’ 등을 주목하였다그림 앞에 잡힌 눈길이 빠져나오려면 온갖 몸부림을 쳐야 가능할 정도로 큰 울림이 있다.

 

그림 100여 점그 하나하나가 내 기억 속 풍경처럼 살갑게 다가온다그림 제목 역시 정겨운 이름들이 붙었다화가가 살았던 동네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그림 제목 역시 저절로 따스한 미소가 떠오르게 한다.

 

기억은 힘은 쎄다기억을 한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을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기억이 함유한 감성으로 지금 오늘을 보다 풍부하게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이 책은 화가의 기억이 불러 온 작품들이지만 기억이 가지는 긍정의 힘을 마음 것 발휘되게 만들어 주는 행운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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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아니고서는 - 차라리 노래를 듣는 마음에 관하여
김민아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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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노래

때가 되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계절이 바뀌거나 날씨가 변하거나 특정한 장소를 지날 때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어 위안이 되고 즐거움을 나누게 되며 슬픔을 놓아버리게도 된다. 음악이 아니고서는 적절한 이유를 댈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동안을 건너며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다.

 

“기를 쓰고 배운 것들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렸지만 음악만은 늘 곁에 남아 볼품없는 나를 안아줬다. 그런 음악이 고마워서 이 책을 썼다.”

 

김민아의 책 “음악이 아니고서는”에는 “차라리 노래를 듣는 마음에 관하여”라는 부제라 붙어 있다. 독자들이 어디에 주목하는지는 독자들마다 다르지만 차라리 노래를 듣는 마음 앞에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싶은 공감으로 들었던 책이다.

 

여기에는 30 곡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대부분 익히 아는 노래들이다. 나나 시몬, 김민기, 정밀아, 콜드플레이, 정태춘, 조용필, 이소라, 이은하, 한영애, 자우림, 윤상 등의 노래들에 관한 저자의 단상이 음악처럼 흐르고 있다. 지극히 사소한 개인사도 있고 시대를 건너오면서 담론을 형성했던 묵직한 이야기도 있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으로 노래가 있고 그것을 공유하는 마음들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노래가 특정한 감정과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간다. 그 노래들로 인해 훨씬 풍부해진 감정으로 충만한 시간을 누려온 이들이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일주일에 한번 악기가 들어 있는 작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적당히 나이 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사뭇 진지한 시간을 보낸다. 누구하나 특출난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누린다. 자그마한 악기에서 나오는 장쾌한 소리에 매료된 사람들의 모습이 악기가 들려주는 리듬에 마음을 맡기고 있다. 우리 악기 피리다.

 

내 마음의 상태를 무엇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을 때 적절한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서 들었던 악기가 피리다. 이 악기를 핑게 삼아 노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중심에 노래기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차라리 노래를 듣는 마음으로 음악이 아니고서는”에 공감한다면 만나 봐도 충분히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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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객잔 - 김명리 산문집
김명리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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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

가을 문턱에서 손에 든 책이다. ‘단풍객잔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끌림이 크다그동안 책과 제법 친하게 지내왔다고 하지만 고백컨데 김명리 시인을 알지 못한다이 첫 만남이 시인의 시 세계로 이어질지도 장담하지 못한다그런 만큼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오롯이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곧 가을이 오리라

양광(陽光)은 등에 따갑고 그늘 쪽은 어느새 스산하다햇빛과 그늘의 스미고 흩어지는 경계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좀 더 오래 머뭇거려도 좋을 시기가 이즈음인 듯하다.“

 

첫 장을 열어 '단풍객잔으로의 초대'라는 짧은 글을 거듭해서 읽으며 시인이 머무는 시절을 짐작만 한다객잔에는 머무는 현재에 대한 주목보다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되돌아봄에 머물러 있다책에 담고자 하는 의의 반영일 수도 있고저자가 머물러 있는 생각의 시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고양이여행...... 일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 보다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스치는 풍경처럼 펼쳐진다단풍이 물들어가는 것이 봄과 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둘러싼 환경과 상호작용으로부터 영향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감정이 이입된 듯 보이지만 먹으로만 그려진 수묵화를 보는 듯 그저 담담하게 읽힌다그림이나 글이나 보고 읽는 이에 따라 다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건너 띄기도 하고 되돌아와 다시 읽기도 하면서 결국 찾아가는 곳은 첫머리 단풍객잔으로의 초대해결되지 않은 갈증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는 듯 반복해서 읽지만 말라가는 단풍잎의 바삭거림으로 남는다단풍이 품고 있는 시간적 이미지와 객잔이 담고자 하는 공간이 오늘로 귀결되는 시점은 언제나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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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 '조지 포크'의 조선 탐사 일기
조지 클레이튼 포크 지음, 사무엘 홀리 엮음, 조법종 외 옮김 / 알파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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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으로 기록한 우리 역사

조선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우리의 역사다그러다보니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시대이며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현실을 돌아보는 데에도 빈번하게 인용되는 시대이기에 그만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반면그 시대를 알아가기에는 남겨진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기록마저도 접근하기에는 여러 장애요소를 가지고 있어 아쉬움이 많다.

 

이 책 화륜선 타고 온 포크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는 그런 측면에서 반갑게 손에 들었다특히외국인의 시각으로 조선시대 마지막을 생생하게 그려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되었다가장 가까운 우리의 역사를 실감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다더욱 특이한 점은 말로만 듣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바탕으로 한 여정이라는 점이다.

 

미국 해군 소속 조지 포크 소위는 1884년 11월 한양을 출발하여 조선의 남쪽 지역을 순회하는 일정에 돌입했다한양에서 수원공주전주나주광주순창운봉함양해인사진주김해부산대구상주문경충주이천광주한양으로 돌아오는 44일간 900마일(1,448km)의 대장정이었다.

 

가마를 타고 관의 도움으로 숙소나 음식경비를 제공받기도 하면서 낯선 환경에 노출되는 어려움을 감내하기도 하고구경꾼들에게 치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어려움을 돌파하기도 한다. ‘조지 포크의 대단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순간에서 느꼈던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이다이 기록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별로 알지 못하는 시대의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화륜선 타고 온 포크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관한 기록이었다삼례에서 전주정읍나주광주순창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생활권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관심가지고 주목하는 지역이기에 조지 포크의 기록에 더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특히주막과 역원을 활용한 여행이 주는 생동감이 살아 있어 좋았다국어를 하는 외국인의 눈으로 1880년대의 조선그것도 내가 사는 지역의 과거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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