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객잔 - 김명리 산문집
김명리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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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

가을 문턱에서 손에 든 책이다. ‘단풍객잔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끌림이 크다그동안 책과 제법 친하게 지내왔다고 하지만 고백컨데 김명리 시인을 알지 못한다이 첫 만남이 시인의 시 세계로 이어질지도 장담하지 못한다그런 만큼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오롯이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곧 가을이 오리라

양광(陽光)은 등에 따갑고 그늘 쪽은 어느새 스산하다햇빛과 그늘의 스미고 흩어지는 경계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좀 더 오래 머뭇거려도 좋을 시기가 이즈음인 듯하다.“

 

첫 장을 열어 '단풍객잔으로의 초대'라는 짧은 글을 거듭해서 읽으며 시인이 머무는 시절을 짐작만 한다객잔에는 머무는 현재에 대한 주목보다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되돌아봄에 머물러 있다책에 담고자 하는 의의 반영일 수도 있고저자가 머물러 있는 생각의 시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고양이여행...... 일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 보다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스치는 풍경처럼 펼쳐진다단풍이 물들어가는 것이 봄과 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둘러싼 환경과 상호작용으로부터 영향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감정이 이입된 듯 보이지만 먹으로만 그려진 수묵화를 보는 듯 그저 담담하게 읽힌다그림이나 글이나 보고 읽는 이에 따라 다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건너 띄기도 하고 되돌아와 다시 읽기도 하면서 결국 찾아가는 곳은 첫머리 단풍객잔으로의 초대해결되지 않은 갈증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는 듯 반복해서 읽지만 말라가는 단풍잎의 바삭거림으로 남는다단풍이 품고 있는 시간적 이미지와 객잔이 담고자 하는 공간이 오늘로 귀결되는 시점은 언제나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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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 '조지 포크'의 조선 탐사 일기
조지 클레이튼 포크 지음, 사무엘 홀리 엮음, 조법종 외 옮김 / 알파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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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으로 기록한 우리 역사

조선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우리의 역사다그러다보니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시대이며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현실을 돌아보는 데에도 빈번하게 인용되는 시대이기에 그만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반면그 시대를 알아가기에는 남겨진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기록마저도 접근하기에는 여러 장애요소를 가지고 있어 아쉬움이 많다.

 

이 책 화륜선 타고 온 포크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는 그런 측면에서 반갑게 손에 들었다특히외국인의 시각으로 조선시대 마지막을 생생하게 그려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되었다가장 가까운 우리의 역사를 실감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다더욱 특이한 점은 말로만 듣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바탕으로 한 여정이라는 점이다.

 

미국 해군 소속 조지 포크 소위는 1884년 11월 한양을 출발하여 조선의 남쪽 지역을 순회하는 일정에 돌입했다한양에서 수원공주전주나주광주순창운봉함양해인사진주김해부산대구상주문경충주이천광주한양으로 돌아오는 44일간 900마일(1,448km)의 대장정이었다.

 

가마를 타고 관의 도움으로 숙소나 음식경비를 제공받기도 하면서 낯선 환경에 노출되는 어려움을 감내하기도 하고구경꾼들에게 치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어려움을 돌파하기도 한다. ‘조지 포크의 대단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순간에서 느꼈던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이다이 기록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별로 알지 못하는 시대의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화륜선 타고 온 포크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관한 기록이었다삼례에서 전주정읍나주광주순창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생활권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관심가지고 주목하는 지역이기에 조지 포크의 기록에 더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특히주막과 역원을 활용한 여행이 주는 생동감이 살아 있어 좋았다국어를 하는 외국인의 눈으로 1880년대의 조선그것도 내가 사는 지역의 과거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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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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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산다. 그게 오래 되었으니 읽은 책도 서재에 쌓인 책도 제법 된다. 그저 읽기에만 주목했고 책을 수집한다는 것은 염두에 없었다. 그래도 쌓아둔 책이 많아지면서 절판되어 구하지 어려운 책이나 고가의 책이 있기도 하다.


책과 일상을 살다보니 책 이야기를 나누는 어떤 형식의 자리든 관심을 갖게 된다. 책을 이야기하는 책 역시 그 분야 중 하나다


책은 스스로의 운명을 가진다는 말에 동의한다. 저자와 출판사를 떠나 독자와 만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책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관심이 가는 책이 많은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펼처가는 저자와 첫 책으로 만난 인연이 깊다.


역시, 그래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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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1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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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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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인류 역사의 증거

올 봄 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내 집에 나무를 심으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지인에게도 나무를 선물했던 것이다한그루 나무가 주는 의미가 작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꺼이 동참 했다나무가 뿌리내리고 자리는 동안 나무를 함께 심었던 사람을 기억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나무와 맺은 인연으로 사람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직접 나무를 선물하고 또 나무 심기를 권한다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나무가 몇 그루 있다금목서회화나무쪽동백나무배롱나무백당나무모과나무모란라일락 등이 그것이다.

 

또한어딘가를 방문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오래된 나무다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든 당산나무의 역할을 하는 나무든 가리지 않고 홀로 선 나무나 숲을 이룬 나무도 가리지 않고 찾아본다나무의 위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나무가 성장하도록 쌓였을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무와 사람이 어떤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끼치며 성장 해 왔는지에 주목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케빈 홉스와 데이비드 웨스트의 나무 이야기이 책은 인류의 삶을 바꾼 100가지 흥미로운 나무 이야기” 다루고 있다생태학적 시각과 더불어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은행나무주목회양목무화과나무유칼립투스복숭아나무올리브호두나무옻나무백향목뽕나무흑단양벚나무사과나무월계수매화나무가죽나무네군도단풍커피나무팥배나무미국감나무마호가니백합나무바나나참오동메타세쿼이아자작나무 등


거슬러 올라가면 2억 5천만 년의 역사를 가진 은행나무로부터 각 대륙에 걸쳐있는 특징적인 나무와 열매를 비롯하여 목재나 기름 등 나무의 부산물을 이용해온 인류의 역사가 담겼다인류의 생존과 뗄 수 없는 식물 그 중에서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나무를 골라 기본적인 생태학적 특성을 기반으로 인류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고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로부터 이름부터 생소한 나무까지 다양하게 있어 흥미로움을 더해준다여기에 나무의 특징을 잘 살린 티보 에렘의 나무 세밀화는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독립적으로도 훌륭한 나무 이미지를 전달해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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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귓속말
이만근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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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남긴 풍경 속으로 

봄볕엔 특유의 리듬이 있다매서운 겨울의 눈보라를 이겨낸 여유로움과 펼쳐질 앞날에 대한 기대가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의 속내가 아지랑이의 그것과 닮았다스멀거리듯 피어나는 자잘한 리듬은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가라앉은 마음을 깨워 바람결에 실려 오는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여유로움이 있다.

 

봄볕의 그 리듬과 꼭 닮은 문장을 만난다펼쳐보는 페이지 마다 틈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의 설렘이 있고틈과 여백이 주는 여유와 넉넉함이 리듬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닮았다길지 않은 문장을 무리 없이 건너기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저자가 꺼내놓은 속내가 가볍지 않지만 봄날 나들이 하듯 다소 느긋한 발걸음으로 함께 걷기에도 좋다.

 

이만근의 책, ‘풍경의 귓속말이다풍경은 나를 배재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다언 듯 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지만 어떤 정경이나 상황이든 산이나 들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이든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풍경이 된다그 속에서 듣게 되는 귓속말은 봄날 아지랑이가 전하는 온기와 닮았다.

 

"사람도물건도옷도마음도말도소설이나 시를 짓기에는 성격상 민망해서최소한의 문장만 남겨진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다애초에 무엇이 되기 위해 꿈꾸지 않았던 기질이 빚은 문장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를 둘러싼 풍경에서 나와 비슷한 또는 나와 다를 무엇인가를 하나씩 들어내다 보니 남은 결정체가 최소한의 문장으로 남아 민낯의 나와 마주하는 순간을 만난다면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짫은 문장 하나에 넘어져 일어나기까지 봄이 가진 시간을 다 써야할지라도 기꺼이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것은 계절에서 풍경으로 바뀐’ 이만근의 귓속말이 품고 있는 온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고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저자 이만근의 섬세한 마음에 온기 가득한 편집자의 배려가 만나 따뜻한 책으로 태어났다익숙해져버려서 더 이상 온기를 전해주지 못하는 풍경을 새롭고 낯설게 볼 기회를 펼쳐 놓았다책 속에서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사이 봄이 여물어 가겠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들 어떤가누구나 세월이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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