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9급 관원들 - 하찮으나 존엄한 너머의 역사책 6
김인호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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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으나 존엄한 사람들의 진정한 힘

촉망받는 직업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교사나 공무원 등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성이 우선되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직업이 되고 있다. 이는 사회가 불안할수록 안정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리라. 하지만, 속내를 들어다보면 주목받고 있는 직업이 꼭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만큼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변하고 경제적인 이유만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권력의 정점에 서서 권력의 힘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주목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 국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일을 일으키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구조의 하층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명 하급 공무원들이 그들이다.

 

그렇다면 사대부의 나라라고 평가되는 조선시대는 어떠했을까? 왕권의 나라에서 권력을 나눠가지며 나라를 운영한 사람들이 물론 중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이를 유지하는 기반은 말단관리로 표현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민생과 직결되는 사항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일선 행정조직의 하부에서 국민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조선시대 이들은 소유, 구사, 통사, 산원, 마의, 중금, 숙수, 금루관, 의녀, 착호갑사 등과 더불어 목자, 조졸, 염간, 오작인, 망나니, 거골장, 광대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 책 조선의 9급 관원들은 바로 자신들이 살아가던 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는 바로 이들에 의해 조선이라는 사회가 운영되고 유지되었다는 점을 들어 그들이야말로 진정 한 사회를 지탱한 근간이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찾기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조선이라는 사회가 사대부들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만을 기록한 사정과 다름이 없다. 하여 역사에 이런 사람들의 흔적도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움과 만나게 된다.

 

덧붙여 우리는 조선왕조의 시스템이 허점 많은 구멍가게 같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규모와 짜임새를 가졌다. 왕조를 움직이는 뇌와 심장, 그리고 팔과 다리에 해당하는 중앙, 지방의 관리와 아전들까지 망라하면 상당한 숫자였을 것이다. 혹 조선 관료제의 단면을 이해할 때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보너스일 것이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밝힌 저작의 의도가 담긴 말이다. 조선을 실질적으로 유지시켰던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누구도 하기 싫었던 일을 담당했던 하층민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삶을 살핌으로써 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임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삶의 과정에서는 다소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다.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는 점과 조그마한 권력이지만 이를 이용하여 그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현대인들의 표현으로 보면 전문가들이다. 사대부들이 누리는 일상의 기반을 만들어준 사람들이지만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그늘에서 뒤치다꺼리만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조선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법으로 관련된 사건을 추적한다. 살인사건이나 폭력, 사기 등과 관련된 사례를 조선왕조실록이나 여러 가지 문헌을 찾아 내 기록에 근거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려가고 있다. 그렇기에 생생한 역사의 기록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찾아낸 이들의 공통점은하찮으나 존엄한이라는 말에 담겨있다고 보인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성찰로 이끌어가는 말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하찮게 여겨지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다. 하지만 그들의 수고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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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4 -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4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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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 우리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을까?

한 나라가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는 그 나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동북아시아의 변방이며 경제대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미국, 일본, 중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 나라의 정치상황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국제외교관계에서 자국의 실리를 지키고 나라의 장래를 꾸려갈 수 있는지 매 순간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약소국가로써 감당해야할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를 이어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살필 때 중국의 상황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언제나 중요한 문제에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했던 역사적 경험은 차치하고라도 해방 후 자주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국에서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우리 민족이 처했던 운명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할 몫이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 처한 나라의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를 둘러싼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은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깊숙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도 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에 처한 나라는 어떤 정책으로 국내문제와 국제정치적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을까? 국제화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며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대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에서는 더더욱 지혜로운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역사적 교훈을 주목하게 된다. 이 책춘추전국이야기 4 -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는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조건과 매우 흡사한 나라의 경험을 통해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시각이 배경에 깔린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공원국이 주목하는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는 정나라다.

 

정나라는 춘추시대의 막바지에 이르러 2강 체제를 유지했던 진과 초나라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 정나라의 역사를 살펴 그 속에서 약소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고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을 찾아보고 있다. 저자가 시리즈로 발행하고 있는 춘추전국이야기의 4번째 주인공이 바로 정나라 자산이라는 사람의 능수능란한 정치적 활동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정나라 자산의 어떤 정치적 활동이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이지만 실리를 챙기면서도 살아남는 방법이었을까?

 

춘추시대의 국제정치의 핵심은 명분이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강대국이 약소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문명한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주변 제후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었다. 자국의 실리를 챙기기 위한 전쟁에서 명분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그만큼 덕과 인으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던 시대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나라는 진과 초나라로부터 전쟁의 위협을 수시로 받아야 했던 것은 정나라가 위치한 지리적 조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바로 각국이 노리는 중원의 전략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과 초양국은 각기 서로 강대국을 견재하는 정치적 활동으로 정나라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나라로써는 이러한 상황에서 언강대국의 무력 앞에 나라를 존립하고 실리를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게 된다. 이런 정치적 상황의 중심이 자산이 있었다. 자산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명분과 실리를 적절히 취하면서 정나라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자산은 어떤 정치적 활동을 벌렸을까?

 

저자는 자산의 정치적 활동이 중심이 되는 정나라를 고슴도치로 표현하고 있다. 굳이 가시를 세우지 않아도 범도 곰도 쉽사리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는 고슴도치의 특징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자산은 튼튼한 이론으로 무장한 현실정치인이라고 파악한다. 이는 정나라를 지키고 우지하기 위해 실시했던 정책을 통해 살핀다. 우선 자산은 정나라의 내부개혁을 상황이 변할 때마다 적절하게 실시하며, 국제정세의 변화를 끊임없이 살피고 전쟁에 휩싸이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저 불은 뜨거우니 사람들은 멀찍이서 바라보며 두려워하오. 그래서 불에 타 죽는 사람이 드무오. 허나 물은 나약해서 사람들은 가벼이 보고 들어가서 놀기에 빠져 죽는 이가 많소. 그래서 용기로써 정치를 하기는 어려운 것이오.’

 

자산의 정치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라고 보인다. 자산은 언변이 뛰어나고 행동이 민첩하며 공명정대하고 무욕한데다 엄격함과 관대함을 조화롭게 갖춘 인물로 공자는 그를 사표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이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강탈을 당할 운명에 처한 정나라를 살릴 수 있었으리라. 우리나라가 처한 지리적 위치나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참고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보인다. 정치가로 자신을 내세우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들에게 사표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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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브렌다 매독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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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바나클, 생소한 만남

역사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는 늘 그 사람을 뒷받침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남긴 업적은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상황과 조건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했던 가족이나 이웃, 친구 등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삶의 지향과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족이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 중에서도 특히 배우자의 역할은 지대하다. 서양의 소크라테스의 부인이나 동양의 공자 부인의 경우는 악처로 유명하다. 그 악처와의 관계에서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아 그들의 업적이 이뤄졌다고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경우는 아닐지라도 다시 한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며 부부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생각해 본다. ‘노라 바나클’은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를 있게 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둘은 나에게 지극히 생소한 사람이다. 우선, 제임스 조이스란 사람은 누구일까? ‘제임스 어거스틴 앨로이셔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 2. 2 ~ 1941. 1. 13)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출신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이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율리시즈’와 ‘피네간의 경야’,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등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아일랜드 밖에서 보냈지만, 그의 정신적 가상적 세계는 그의 고향인 더블린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소설가로써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여인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여인이 이 책의 주인공인 ‘노라 바나클’이다. ‘조이스의 작품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도, 노라는 그가 자신의 걸작들의 기초로서 사용했던 고국에 대한 그의 살아있는 끄나풀인, 휴대용 아일랜드로서 봉사했다. 그리고 노라 바나클은 조이스의 모든 작품들의 여성 주인공의 모델 역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라 바나클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와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


노라 바나클(nora barnacle, 1884~1951)은 아일랜드 항구도시 골웨이 출신으로 제빵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외할머니 가족에게 보내져 자랐다. 그곳에서 무료학교를 다녔고 13살에 학교를 떠났고 수공 일을 했으며 호텔에서 하녀 일자리를 구해 일했다. 그녀가 20세에 운명의 남자 조이스를 만나 더블린을 떠나 유럽의 각지를 돌며 생을 마칠 때 까지 함께했다. 이 책은 그녀의 일생을 세계적인 전기 작가 브렌다 매독스가 기록한 책이다.


‘할머니는 너무나 강했어요, 그녀는 바위였어요. 나는 감히 말하거니와,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인즉, 그녀 없이는 단 한 권의 책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조이스의 손자 스티븐 조이스 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조이스와 노라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저자 브렌다 매독스는 노라 조이스의 엄청난 위트와 매력, 그리고 남편에게 준 영감은 제임스 조이스가 세계적인 작가로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20세에 만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고 무명작가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경제활동을 책임졌으며 골웨이로부터 트리에스테, 취리히 등 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가족을 다스렸다. 이는 조이스라는 작가가 작품 속에 노라를 그의 작품 속에 담아내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본다.


‘조이스와 노라’는 생소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보니 이 전기문학인 ‘노라’는 노라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소한 느낌을 전해준다. 내용을 파악하고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는 것이 버겁다는 말이다. 이는 아일랜드나 유럽과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문장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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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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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이율배반적인 두 얼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다.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그 개인이 속한 계층으로 범위가 넓혀졌을 때는 더욱 어려움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어 그나마 의견교환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역사적 인물이라면 자료의 한계나 접할 수 있는 자료의 특성에 의해 더더욱 난감한 상황에 노이게 된다. 하여, 적절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특정계층인 ‘선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비라고 하면 너무도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가 지조, 의리, 강직 등으로 이에 대한 적절한 평가나 기준도 없이 특정한 개인에 대한 이미지가 전체 선비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는 경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평가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거울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나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한 시대를 평가하고 그것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기준에 의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합의가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선비라고 하는 이미지가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다분히 강조되고 주목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라는 책의 저자 계승범이 그다. 저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우리 시대에 통용되고 있는 ‘선비’에 대해 검증을 하자고 나섰다. 우선, 저자는 선비라고 하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선비라는 말에 정신이라는 단어가 붙어 새롭게 만들어진 ‘선비 정신’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따져 보자는 것이다.

 

‘조선’에서 선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선비라는 개념과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유교와 성리학 그리고 조선의 정치다. 이를 통합적으로 살펴야 비로소 선비에 대한 종합적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전재한다. 개인으로써가 아니라 선비가 처한 조건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걸 맞는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비’와 ‘선비 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선비 정신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신적 표상으로 ‘선비 정신’을 이야기 하고 있기에 그 선비 정신이 과연 우리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배계층으로서 자기들 본연의 임무에 태만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지배층이었다.’

 

저자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때론 감정적이기까지 한다. 조선의 정치와 절대 부관할 수 없는 선비가 조선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왔느냐며 그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주장하기도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요약할 수 있는 유교의 이념을 몸에 익힌 선비들이 수신제가와는 별도로 치국평천하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과는 동떨어지는 지극히 편협하고 당파적이었으며 때론 치졸하기까지 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과 시각에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선 듯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선비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도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였고 그런 부분에 익숙해져있는 독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개인의 취향과 지향하는 바에 의해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게 된다면 분명 문제 있는 관점일 것이다. 선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비의 검약한 생활이나 의리, 지조 등 좋게 보이는 부분만을 가져와 그것이 선비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만들어간다면 분명 잘못이다.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시각으로 본 선비의 모습은 그렇게 긍정적인 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선비에 대한 검증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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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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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힘, 분노

2011년 우리 사회에서는 ‘나꼼수’가 유명하다. 그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나가는 몇 사람이 막말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나타내서일까? 아니면 보통사람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거침없이 외치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까?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거침없이 외치는 목소리는 그 다양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경제적으로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말의 내용과 방법이 코너에 몰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2011년 말 한국사회는 각계각층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불투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정치권의 혼란과 끝없이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는 실질경제, 예측 불가능한 남북관계 등 어느 하나도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에서 벗어나 자신이 느끼는 사회적 부조리에 감정을 나타낼 줄 아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온갖 사회구조적 모순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도모할 무엇이 있고 그 일에 나도 담담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이 사회가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는 사람이나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비롯하여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공감하며 아파하고 함께 살아갈 희망을 찾고 있는 것으로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감정의 공유가 출발이다.

 

‘분노하라’는 바로 그런 공유된 감정의 밑바닥에 무엇을 깔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공감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분노’라는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사람, 93세의 노인인 스테판 에셀이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육성이다. 전직 레지스탕스에 참여했고 국제기구에서 국제인권선언 작성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가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현실과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분노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나 외국 이민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대해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던 레지스탕스 정신을 계승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가 대세인 현 국제정치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한다. 우리에게도 당연히 귀기우려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이며 핵심 과제인 것이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기에 적극적으로 분노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분노의 표현으로 비폭력을 이야기한다. 폭력을 부르는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법이 비폭력만 있는 것이 아님도 말하고 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를 수밖에 없지만 폭력으로만 대항한다면 사회 전체 입장에서 볼 때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분노하라’는 한 생을 긍정적으로 살아왔던 노인이 삶에서 얻은 교훈을 젊은이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짧은 글이다. 하지만, 이 글에 담긴 내용을 결코 짧지 않다. 그리고 간단한 문제 또한 아니다.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분노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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