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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도 본다.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다.

그것만이 아니다. 어느 때는 걸음을 멈추고 몸과 마음이 그 숲에 동화되도록 고요히 머물러 숨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런 후에 느끼는 숲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면 몇 걸음 앞서 보란듯 꽃을 피우고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는 꽃과 눈맞춤 한다. 적절한 때 그곳에서 멈춘 나와 꽃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꽃이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이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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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난 길을 걷는다. 여럿이 제법 시끄럽게, 가족이 서로를 돌보며,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이랑 둘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혼자도 있다. 모두가 자신들의 목적에 충실한 걸음의 속도로 걷는다. 빠르고 느리고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진 나무와 풀들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제 시간을 제 방법으로 사는 곳이 숲이다. 속은 아우성치지만 겉으론 평화롭기 그지없다.

숲이나 그 숲을 찾는 사람이나 속내와 겉모습의 다름이 이처럼 서로 닮아 있다. 평화와 공존을 추구한다지만 제 자리를 내놓을 마음은 없어 보인다. 다만, 서로에게 필요한 넓고 좁은 거리를 둘 뿐이다.

바위 투성이 계곡의 바위 품에 든 제비꽃이다.
삶, 무엇이 공존을 가능케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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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가 있고 없는 것은 내게 달렸으며, 그 재주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은 남에게 달렸다. 나는 내게 달린 것을 할 뿐이다. 어찌 남에게 달린 것 때문에 궁하고 통하며 기뻐하고 슬퍼하다가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을 그만둘 수 있으랴?"

*조선후기를 살았던 위항시인 홍세태의 글이다. 과하다 싶을 만큼 쏟아지던 비가 그쳐가며 얇아진 구름이 한층 가벼운 몸짓으로 슬그머니 산을 넘는다. 몸이 붙잡힌 까닭으로 마음으로 불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늦게 피어 이미 떠난 꽃들을 바라볼 산벚꽃의 처지를 헤아려 본다. 누굴 탓하랴. 오늘 내가 누려야할 몫이 그것 뿐임이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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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겹으로 쌓여야 깊어진다.

그 쌓여서 두터워지는 사이를 건너지 못하는 게 보통이라서 누군가는 아프고 외롭다.

이쯤에서라도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갈망은 끝이 없는지라 제 발로 수렁으로 들어가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모른다.

당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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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3-11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릅답네요. 필요한 이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轉輾寒衾夜不眠 전전한금야불면

鏡中惟悴只堪憐 경중유췌지감련

何須相別何須苦 하수상별하수고

從古人生未百年 종고인생미백년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오리

무심히 거울 드니 얼굴만 야윗고야

서로의 이별은 서럽고 괴로워라

백년을 못 사는 인생 이별 더욱 서러워라

*두향이 이황과 이별하며 매화분을 건네는 마음이 이와같을까다. 이별 후 살아서는 다시 보지 못했던 그리움이다.

이황 역시 두향을 잊지 못한 것일까. 머리 맡에 둔 매화분을 보며 그리움에 답이라도 하듯 남긴 수많은 매화 시 중에 하나다.

陶山月夜詠梅 도산월야영매

步躡中庭月趁人 보섭중정월진인

梅邊行遶幾回巡 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梅香매향이 강을 건너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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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2-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진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이황의 매화시, 내 블로그(네이버)에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