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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리고 비, 또 비?.

벼가 쓰러진 논 위엔 새들의 만찬장이 되고 단맛을 품어야 하는 감의 속내는 그늘만 짙어간다. 까실한 햇볕이 필요한 때지만 연 이어 내리는 비로 한해 농사 끝맺음이 헐겁게 되었다. 

때를 기디려 만개한 금목서는 밤을 건너지 못하고 향기를 접었고, 순백으로 피어날 구절초의 꽃잎은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 밖으로 뻗어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없고, 수풀 속의 꽃은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이런 가지각색 그것이 꽃의 큰 구경거리이다."

*조선시대 사람 이옥(1760년 ~ 1815년)의 '화설花說'의 일부다. 꽃보는 마음이 곱기에 종종 찾아서 읽는 문장이다.

몹쓸 비가 준 선물이다. 

떨어진 꽃잎에 걸음을 멈추고 눈맞춤 한다. 계절이 순환하는 때를 기다려 꽃을 피워야하는 나무와 그 꽃을 보고자 나무와 다르지 않을 마음으로 기다린 내가 한 마음이 되는 순간이다. 시간을 넘어선 눈맞춤이 못다한 향기를 품는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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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만한 뜰을 거닐며 지난밤의 흔적을 밟는다. 발길에 채이는 이슬을 털고 옹기종기 피어난 물매화와 눈맞춤이 정답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정호승의 시 '거미줄'의 일부다.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하지만 기다림은 침묵이나 멈춤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날 거리를 밝혔던 무수한 촛불로 인해 몸과 마음에 각인되었기에 충분히 안다.

느긋한 아침이 가볍지 못하는 이유가 밤을 길게 돌아서 온 시간 때문이 아니다. 주목 받고 있는 한 젊은이의 차분하고 결기 있는 목소리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 더 크다.

아름다울 날, 진실이 우뚝 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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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때와 장소,
방법과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다만,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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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러웠던 태풍이 안좋은 뒷끝을 남기고 떠나온 바다로 돌아갔다. 자연의 혹독한 시련 앞에 망연자실 손을 놓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온기다. 

물러간 태풍의 여운이 낮은 구름으로 남았다.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마알간 하늘이 보인다. 볕이 좋아 물폭탄 맞은 벼들도 한숨 돌릴 수 있을듯 하여 다행이다.

갖 피어난 꽃이 미처 향기를 보내기도 전에 나무와 이별을 한다. 나무는 강렬한 향기로 스스로를 알린다. 가을을 건너는 이는 향기를 나누거나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나무 소반에 옮겼다. 매년 나름의 절차를 치루며 거르지 않고 있다.

비로소 가을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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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즐거움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기회는 인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値會心時節 逢會心友生 作會心言語 讀會心詩文 此至樂而何其至稀也 一生凡幾許番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글이다.

최상의 즐거움이 어디 따로 있을까. 절정의 순간이다라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일이다.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는 것이기에 늘 아쉬움만 남는다. 

일상에서 누리는 자잘한 행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매 순간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쌓여 그 사람의 삶의 향기를 결정한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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