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시인의 시 '푸른밤'이다. 맑고 깊어 더 푸른밤이 되는 때다. 그 푸른 기운에 비춰 가만히 들여다보니 보이는 것은 그토록 염원했던 '네'가 아니라 결국 '나'였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10)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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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시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다. 어머니의 다독거림으로 생명을 품는 산, 마음이 먼저 그곳에 깃든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09)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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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바람이 불면

날이 저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한잔 해야지
붉은 얼굴로 나서고 싶다
슬픔은 아직 우리들의 것
바람을 피하면 또 바람
모래를 퍼내면 또 모래
앞이 막히면 또 한잔 해야지
타는 눈으로 나아가고 싶다
목마른 가슴은 아직 우리들의 것
어둠이 내리면 어둠으로 맞서고
노여울 때는 하늘 보고 걸었다

*이시영 시인의 시 '바람이 불면'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리운 것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느친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08)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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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출처

바람이 제 살을 찢어 소리를 만들듯
그리운 건 다 상처에서 왔다

*김주대 시인의 시 '출처'다. 그 상처에서 향기로운 꽃이 핀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07)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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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비가 어디 있으랴마는 처서處暑에 오는 비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다.

더이상 풀들도 자라지 않고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도 하고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도 했다. 또한 옛 선비들은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도 이때가 지나서 했다고 한다. 이미 가을 냄새를 맞았으니 오는대로 누릴 참이다.

무엇이든 때를 만나기 위해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지만 폭염 속에서 만나는 단풍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같은 뿌리에서 났지만 가지가 다르다고 이렇게 먼저 내빼면 어쩌란 말이냐. 어쩌면 날마다 보는 벚나무 단풍은 이미 진행중이라는 것을 잊은듯 발걸음이 잡혔다.

가을은 짐작보다 성질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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