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열정을 말하다>에서 류승완 감독이 한 말에 공감이 갔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간 이런 내용이었다. 취향이 맞지 않는 친구와 억지로 만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120번째

일시: 12월 6일(수)

누구와: 과외 친구들과

마신 양: 겁나게 많이, 마시다 뻗었다...


내게는 20년 이상 된 친구들이 있다. 한때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싫어지게 된 건,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들이 단란주점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였다. 나도 좋아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난 그런 데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억지로 끌려갔는데 돈을 똑같이 부담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난 1차만 끝나고 집에 가고자 했지만, 그들은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분위기 깨진다나 어쩐다나. 어쩌다 한번쯤 간다면 참아 보겠지만, 매번 그러니 고민이 될 수밖에. 난 그런 데가 싫다고 거듭 호소했지만 내 말은 늘 무시됐다.

“우리 나이 때 이런 데 안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넌 도대체 어디 가고 싶은데?”

내가 맥주 마시면 안되냐고 했을 때, 친구가 보여준 반응은 경멸 그 자체였다.

“허이참 나. 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친구들에게 부족한 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었고, 넘쳐나는 건 타락과 방종이었다.


그런 그들을 내치지 못한 건 20년의 세월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게 가장 친하던 애들인데,란 생각이 나로 하여금 싫어 죽겠으면서도 그들의 부름에 응하고, 또 음침한 곳에 간 이유였던 거다. 결국 난 작년 어느 날 단란주점에서 그들과 대판 싸웠고, 뛰쳐나갔고, 다시 안만나기로 결심을 한다. 그로부터 일년, 내가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 역시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작년보다 올해가 더 행복했다면 억지로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이끌려 단란주점에 다니던 그 십수년을 어떻게 견뎠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 멤버 중 한명-알파라고 하자-은 내가 가끔 만나는 ‘과외팀’에도 끼어 있어서, 싫든 좋든 그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난 중1부터 2학년 여름방학까지 과외를 했다). 늘 단란주점을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던 알파는 과외팀마저 버려놓아, 과외팀 역시 2차를 단란주점에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 모임과 달리 과외팀은 매번 그러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고, “그런 데 가지 말자”고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너무 감동을 해 그날 술값을 계산할 뻔했다. 그 뒤 과외팀 모임에 갈 때마저 생겼던 2차 기피증이 말끔히 치료된 건 물론이다.


어제 모임 역시 무척 즐거웠다. 난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들었다. 누군가 말한다.

“2차 어디 갈까?”

알파는 또다시 단란주점을 가자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끈질긴 녀석. 과외팀의 리더는 대번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내가 말했다.

“양재동 빠 갈까?”

내 간청에 이끌려 한번 거길 가봤던 알파가 한심하단 표정을 지으며 타박을 준다.

“그 후진 데 왜 가려고?”

과외팀 리더가 말한다. “야, 그래도 얘가 가자는데 한번 가 보자.”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친구들 모임에선 내 제안이 그토록 소중하게 받아들여진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 그전 모임에서 알파가 “단란주점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윽박질렀을 때, 맥주 마시러 가자는 내 제안이 얼마나 개무시를 당했던가. 억지로 끌고간 양재동 빠가 후지다며 알파가 얼마나 날 타박했던가. 그날 겪었던 수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털이 곤두선다.


친구란, 인생이란 먼 길을 같이 걸어갈 동반자다. 가는 길이 틀린 동반자가 불가능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없는 동반자도 있을 수 없다. 20년의 세월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는 길이 맞는지, 믿을만한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진작에 그들과 결별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지만, 이제라도 내 길을 찾았으니 다행이다 싶다.


* 알파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반성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반성을 해야 할 쪽이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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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0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일이에요..성인 남성들이 여흥을 여자끼고 술먹는 곳에 꼭 가야만 한다는
현실이요..^^ 그만큼 놀문화가 단단히 잘못되도 보통 잘못된게 아니에요..

무스탕 2006-12-0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0년이 훨 넘은 친구들이 있지만 여인네들이어서 그런지 맘은 아주 잘 맞는 편입니다.
놀이 문화도 비슷해서 서로가 편한 부분이지요..
마태님. 친구란 서로에게 신경을 써줘야지 신경이 쓰이게 하면 그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경을 써주고 싶냐 신경 쓰이냐의 차이랄까나..? 자의냐 타의냐.. 하여간 그런거...)

꼬마요정 2006-12-0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여자 끼고 술 마시면 맛있나요? 그런 곳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나중에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 색안경 끼고 보고... 정말 슬픈 일이에요...
마태님은 그런 곳 안 좋아한다니 다행이네요...

또또유스또 2006-12-07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늦은 나이에 그런 동반자 친구를 만났답니다...
정말 소중하고 소중한 친구지요...
님의 글을 읽으니 더욱 그 친구가 고맙네요...
과감히 뿌리칠 수 있었던 님의 용기에..(십몇년이 걸렸지만..^^) 찬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추천도...

balmas 2006-12-0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는 누가 그런데 가자고 한번 얘기나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구경 좀 하게. ^^;
주위에 있는 애들이 다 가난한지라 ...

모1 2006-12-0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참으셨구나...싶네요. 단란주점도 그렇지만 친구의 말을 그렇게 무시하는 행동은 좀 그렇네요.

비로그인 2006-12-0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반성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음.. 담대한 분입니다..


깐따삐야 2006-12-0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파는 무슨 알파... 엑스네요, 엑스!

2006-12-07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12-0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랑 말하지 말아버리세요!! ^^ =3=3=3

2006-12-08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일레스 2006-12-08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서 발로 차버리고 싶습니다. 이런 씨뻘...건 립스틱 짙게 바르고 -_-;;;

진/우맘 2006-12-0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반성하고 돌아오기를.......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

짱꿀라 2006-12-0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란 말을 떠올리면 이런 말이 생각이 나네요. '너 나랑 같이 죽을 수 있어'

2006-12-08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12-0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아앗 그게 보내셨단 말씀이군요 마음만 고운 게 아니라 손도 고우시네^^
산타님/글쎄요...전 옛날이면 몰라도 지금은....자신 없습니다. 제가 이기적으로되었다는..
진우맘님/와와, 님을 웃게 했으니 이번 페이퍼도 성공
페일레스님/립스틱을 바르면 발의 힘이 세진다고 모 박사가 그랬었죠^^
속삭이신 분/잘못한 걸 말했는데 거기에 공감하면 화해의 여지는 있죠. 다시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요...제 경우는 취향이 너무 다른 거라......

마태우스 2006-12-0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근데요...대판 싸우고 두달도 안되어 친구 중 한명의 부친상이 있었어요. 그때 어찌나 뻘쭘하든지...계속 마주칠 일이 있는지라 싸우면 불편하더라구요...
깐따삐야님/로마자의 알파를 알파벳의 엑스보다 더 높게 치시는 건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사님/그러게 말입니다. 일관성이 있더군요^^
새벽별님/그죠? 멋진 친구입니다^^
모1님/제말이 그말입니다. 근데모1님, 궁금한 게 있었어요. 님 동생분은 모2님인가요?
발마스님/아..네..... 죄송합니다. 제가 위화감을조성했군요.... 하지만 저희들은 마음이 가난해요. 책 읽는 애가 하나도 없다는....
유스또님/감사합니다. 님의 추천에 힘입어 3주 연속 서재달인의 길로...아자아자
꼬마요정님/남자들끼리 얘기하는 것에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겁나게 많습니다. 놀이문화가 굉장히 기형적이 되었죠
무스탕님/님 말씀에 동의해요. 다만 같이보낸 세월이 워낙 길어서 그걸 뿌리치지 못했어요...
메피님/그러게요... 단란주점을 다 없애면 좋겠어요. 그곳 여자분들의 수입이 문제겠지만요....


2006-12-09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요일(11/29)과 토요일(12/2)의 술자리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수요일이 나보다 1년 선배 셋(누나 둘, 형 하나)과의 술자리라면 토요일은 내 고교 동창들이 가족을 동반해 만난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수요일과 토요일 모두 중국집에서 모였다는 것, 그리고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난 “술을 한병 시켜야지 않냐”는 제안에 두 번 다 반대의 뜻을 표했다. 수요일엔 속이 안좋았고, 토요일엔 연일 무리한 게 마음에 걸렸기에.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한잔은 마셔야지”라며 술을 시킨다. 남은 술을 처리해 줄 날 믿어서리라. 수요일엔 죽엽청주를, 토요일엔 3만5천원이나 하는 공부가주(공자가 마셨다는 술이다)를 시켰는데, 두 개 다 500ml 짜리였고, 사람들이 한두잔 마시고 나자빠져 남은 술을 나 혼자 책임져야 했던 것도 같았다.


난 술을 한 두잔 마시고 마는 스타일은 아니다. 마시려면 머리끝까지 마시던지, 아니면 한방울도 안마셔야 했다. 적당히,란 말은 내 사전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한두잔 마시며 얼큰한 기분을 즐기는 이가 많이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들이 남긴 술은 다 내가 처리해야 할 몫, 술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난 있는 힘껏 마셔서 병을 비우거나, 못마신 건 집에 싸가지고 간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기에 우리집 창고에는 내가 싸온 술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토요일날은 최선을 다한 끝에 병을 비웠지만, 수요일에 남긴 술은 할 수 없이 집에 가져와야 했다.

저는 하이에나입니다


 

그렇긴 해도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언젠가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1.8리터짜리 소주 댓병이 잔뜩 있는 걸 보니 흥분이 된다. “저거 언제 한번 사서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다 옆 코너로 가니 세상에, 3.6리터짜리 소주가 옹골차게 놓여 있다. 그때 내가 한 말, “날 잡아서 아침부터 저거 한병 다 마시면 원이 없겠다.”

남들은 일이 있어야 술을 마시지만, 난 술을 마시기 위해 일을 만든다. 있는 친구는 죄다 술친구고, 회나 삼겹살 같은 건 음식이 아닌, 술을 마시기 위한 수단이다. 12월 스케쥴을 가득 메운 술 약속들에 한편으론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설레 하는 게 바로 나다. 속이 좋으면 좋은대로, 안좋으면 소화제를 먹어가며 무식하게 마셔대는 모습은 황야를 달리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다. 하이에나야, 한달만 고생하자. 1월부턴 좀 쉬게 해줄 테니까.

 

* 여담

참고로 수요일날은 물만두님 댁에서 마셨어요 문패를 보시어요

 

악어를 키우고 있더군요. 혹시...만돌군?


화장실 물이 얼마나 깨끗하면... 8번을 읽어 주세요


 

이건...관계없는 사진입니다만

 
이, 이름이 나와 버리네요. 저희 학교는 본과에 진입하는 선배들한테 도장을 파주는 전통이 있지요. 이 도장을 본과 학생들은 두툼한 시험지 장마다 찍어 댑니다. 이걸 제가, 잠을 쫓으려고 그렸답니다.

 



그림에선 가명을 썼습니다만... 사진의 이름이 너무 선명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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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12-05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짱을 보시는 군요, 대단하십니다. ^*^

기인 2006-12-05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공부가주 ㅜㅠ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 지도교수님 모시고 가서, 그 술을 먹고 땀을 뻘뻘흘리며 중국 요리를 다 쓸어담던 올해 초가 생각나네요. 정말 다시 중국가서 공부가주 마음껏 마시고 싶어요 ㅎㅎ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거의 다 짜가래요;;; 심지어 곡부에서도 그냥 속고 마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곡부에서 마시니 넘 좋았어요 땀나고; ㅋ)

또또유스또 2006-12-0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금새 댓글을 하나 날렸군요 이론...
님은 홀로 달리니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라고 했는데 알라딘이 팅겨냅니다요..
그래도 아무쪼록 조심조심하시며 드시와요...

하루(春) 2006-12-0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비해 술 마신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나요? 어째 작년보다 더한 것 같네요. 몸조심하세요.

다락방 2006-12-0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옷. 술일기를 읽으며 대단하다 느꼈지만 그림에 비하니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림 정말 잘 그리시네요, 마태우스님!!

춤추는인생. 2006-12-0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잘드시는 하이에나님. ^^ 해장국얼큰하게 끓여주실 여우도 빨리 만나시길 바랄께요.^^ 그림을 저토록 섬세하게 잘그리시다니. ^^ 너무 멋져요 *^^*

짱꿀라 2006-12-06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과 인생을 즐기실 줄 아시는 마태님 너무 존경합니다. 저는 언제 그렇게 끝장을 볼 수 있을지요.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존경 꾸벅~~~~~하이에나 사진도 너무 멋져요.

비로그인 2006-12-06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는 드시지 마세요~ 걱정돼요 마태우스님!!

비로그인 2006-12-0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좋지요.
술은 즐기는 것.. 하하

저도 언제 술이야기 해야겠습니다.

무스탕 2006-12-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실거에요 ^^;

LAYLA 2006-12-0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도장 너무 좋아보여요 부러워요 ^.^ 그림좋아요 확실히 마태우스님만의 그림 스타일이 있어요!..^,^

마태우스 2006-12-0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어 그래요? 님이 그리 말씀해주시니 더 열시미 그려야겠단 생각이...내친김에 개인전도 한번 할까요^^
무스탕님/이미 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안마시던 사람이 마시는 건 되도, 마시던 사람이 안마시는 건 어려워요
한자님/기대하겠습니다. 참고로 술은 제 좋은 친구입니다
크리미슈슈님/전 테니스코트에 있을 때가 젤 행복하구요 술자리에 있을 때가 그다음...호홋.
산타님/근데 너무 향락주의에 빠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여간 오늘도 한번 달려 보렵니다^^
춤추는인생님/님은 인생을 더 잘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글구 전 전날 먹은 술이 다음날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해장국 같은 건 필요없다오^^
다락방님/섭해요 그림은 찰나의 기교에 불과하지만, 술은 제가 온 정성을 다해 마시는 거대한 사업이라구요^^
하루님/작년보다 줄어들었어요 바빠서 시간이 안났기 때문도 있고, 규정이 강화되어 술 한병은 마신 걸로 치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근데 소주가 소주다워야지 19도가 뭡니까...
유스또님/알라딘 댓글1등 유스또님, 한햇동안 정말 감사드려요. 글구...저도 표범이 더 좋아요^^
기인님/세상에 진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짜라도 제가 돈 안내니 괘않습다. 글구 가짜라 해도 향기는 좋더군요
새벽별님/출타중이더군요
전호인님/제가 잘하는 게 그거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일시: 11월 26일(일)

코스: 소주 --> 소주 --> 맥주


1. 술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선물을 받았다. 미녀가 가져온 봉투를 보고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저거 제건가요?”라고 대놓고 묻기도 했다-진짜로 나 주려고 가져온 거란다.






내용물은 ‘개’였다. 진짜 개처럼 정교한. 엉덩이 근처에 붙은 라벨을 보니 Basset hound라고 씌여 있던데, 어찌나 귀여운지 계속 보고 있어도 행복해진다. 인간은 남을 속이는 데서 어느 정도의 쾌감을 느끼는 종족, 난 술집에 갈 때 일부러 인형을 끌어안고 갔다. 역시나 종업원들의 시선이 다 개 인형에 쏠린다.

“개 데리고 오시면 안됩니다.”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종업원들은, 아마도 불황 때문이겠지만, 모처럼 온 손님을 그런 식으로 내쫓고 싶지 않았는지 멀찌감치 서서 보기만 한다. 재미가 반감된다. 서빙을 하러 테이블에 왔을 때 직접 물어본다.

“이거 진짜 개인 줄 알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놀라는 그, “진짠 줄 알았어요!!”

다른 술집에서 그짓을 한번 더하고,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탈 때는 아예 가방에 넣고 얼굴만 내놓는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애엄마 한분이 개인형을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지금 그 개는 여전히 상자에 담긴 채 내 책상 위에 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 인형을 만들었을까 싶고, 그 미녀분이 내게 이걸 주기 아까웠겠단 생각을 한다. 어쨌든 난 한번 받은 건 절대 안내놓는다. 호호.


2. 고기집에서 고기를 먹었는데, 자리가 방밖에 없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다가 ‘북’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작년엔 잘 맞던 골덴 바지인데, 내가 아직도 성장기라서... 황급히 바지라인을 만져본다. 어디가 터진지 잘 모르겠다. 일단 고기를 먹고 난 뒤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벗어본다. 바지가 터진 건 아니고, 팬티가 찢어졌다. 다행이다. 안그랬다면 월요일날 또 바지 사러 다녀야 할 뻔 했다.


이건 다 빨래가 밀린 탓이다. 다린 게 몇 개 없어서 좀 작다 싶은, 작년에도 겨우 입었던 걸 가져갔는데, 결국 터진 거다. 그래도 미녀는 그 사실을 모르고, 난 시원해서 좋았다. 무척이나 즐거운 술자리, 덕분에 나의 주말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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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11-2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웃어도 되죠? ㅋㅋㅋ

2006-11-28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1-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강아지인형 안고 술집 들어가시는 마태님이...
"술집 꼬라지 하고는...흥~" 하셨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ㅋㅋㅋㅋ

chika 2006-11-2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정말 우울해서 마태님께 전화해 쌩으로 노래불러주세욧! 할까 했는데, 이 페이퍼로 충분해요~! ㅎㅎㅎ

아영엄마 2006-11-2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 강아지 인형, 느무 이뽀요~~.

마법천자문 2006-11-2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주위에 어떻게 미녀들이 그리 많으신가요? 혹시 김태희 핸드폰 번호 아시면 저한테만 좀 가르쳐주셔요.

2006-11-28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6-11-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하하하~~~~ 배꼽이 달아나 버렸네요. 이를 어쩌누. 팬티가 삭았나 봅니다. ^*^

또또유스또 2006-11-2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인형에 맘을 몽땅 빼앗기셔서 제게 빔을 약하게 쏘신듯 하와요 으흑흑흑..
당첨 안 되었자나여~~~~~ 흑..
그래도 팬티를 찢어가며 빔을 쏘려 고군분투하신 것 같으니.. 감사드려요..^^

다락방 2006-11-2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정말. 하하하

모1 2006-11-28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아지 인형 언듯보고 살아있는 강아지인줄 알았어요. 오호...그나저나 그 찢어지는 소리 크게 나지 않았길 빕니다.

해리포터7 2006-11-2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태우스님..이거 증말 실제상황 맞아요? 어캐요..ㅋㅋㅋ
정말 귀여운 바셋이군요..실물로 보면 좀 슬퍼보이는 개인데 인형이라그런지 정말 귀엽군요^^

클리오 2006-11-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혹시, 팬티까지 다려 입는단 말씀... ?? @.@

기인 2006-11-2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바지 많이 찢어 먹습니다. 울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그건 '성장기'여서가 아니라 바지를 꽉 안 올려 입어서라는데요? ㅋㅋ 으음.. 배바지 패숀이 바지를 안 지찢어먹는 왕도? ^^;

실비 2006-11-2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너ㅜ 귀여워요^^
근데 끝에 2ㅓㄴ째 사건 때에웃고 가요^^

세실 2006-11-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다행입니다. 불행중 다행 ^*^ 긍정의 힘을 보여주시는 군요.
마태님 주변엔 역시 한 센스하는 미녀분들만 계시네요.

치유 2006-11-29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그런데강아지 인형은 왜 슬퍼 보일까요??미녀품에서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ㅋㅋ

깐따삐야 2006-11-2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미남한테 원숭이 인형 선물받고 싶당. 흑.

뽀송이 2006-11-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강아지 넘... 귀여워요!!
유쾌한 술자리는 수명을 연장시키죠~~^^;; ㅋ ㅋ

마냐 2006-11-2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팬티를 다려주는 엄니는 있어도, 팬티 다려주는 마누라는 잘 없죠. 전 문득 마태님이 싱글인 이유를 깨닫슴다..^^;

moonnight 2006-11-2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넘 귀여운 강아지. ^^ 근데, 정말로 속옷도 다려입으시나용. +_+;;;

마태우스 2006-11-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당근이죠 전 재벌2세잖아요^^
마냐님/그,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하여간 전 지금이 좋습니다.
뽀송이님/첨 뵙겠습니다. 수명연장의 꿈은 없구요, 다만 현재를 즐겁게 지내는 게 목표랍니다^^
깐따삐야님/하필이면 왜 원숭이십니까...혹시 원숭이띠?
배꽃님/제품으로 와서 슬픈 게 아니라, 원래 컨셉이 그렇답니다. 슬퍼야 더 잘해주잖습니까^^
세실님/님도 선물주세요!!^^
새벽별님/센스 만점 댓글이옵니다^^
실비님/아아 님은 제 불행에 어이하여 웃으셨습니까....^^
기인님/님은 날씬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님도 그러신단 말인가요. 글구 바지 올려입으면 힘들잖습니까...?
클리오님/저만 그렇군요...으음...몰랐습니다
해리포터님/직접 보면 귀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집에 놔두면 조카들이 괴롭힐까봐 제방에 놔뒀어요.
모1님/소리 별로 안컸어요. 원래 그런 소리는 당사자에게만 크게 들리잖아요
다락방님/졸리님은 정말...하하
유스또님/머라할말이 없습니다. 죄송하단 말밖엔......흑.
전호인님/삭은 게 아니라 작은 겁니다^^
속삭이신 분/그러게요 속옷이라 다행이어요. 댓글을 두번 다는 센스....^^
드루이드님/음...제가 김태희 건 모르구요 그보다 더 미녀이신 세실님 번호는 가르쳐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아영엄마님/님에 비하면....^^
치카님/아닙니다. 노래도 꼭 불러드리겠습니다^^
메피님/제가 원래 뻔뻔한 건 잘 못해서요.... 호호.
속삭/멀 숨겼다구요???
파비님/다른 사람은 몰라도 님은 그러심 안되죠!

북극곰 2006-12-2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을 보고 천진난만한 마태님땜에 웃다가.. 2.를 보고 또 큭큭큭....
잘 지내시죠? 뒤늦은 댓글을.. ^^
 

 

 

 

 

SMS 서비스 짱.

110번째: 11월 10일(금)


미녀와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맥주 세트 하나를 먹었다. 술이 다 비었을 무렵 난 카운터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하도 긁어서 거의 닳아버린 카드를. 아무 생각없이 싸인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미녀가 화장실에 가 있었기에 할 일도 없고 해서 문자를 확인했다. 카드 회사에서 보낸 문자가 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2만7천원이 아니라 27만원이 찍혀 있었으니까.


난 다시 카운터로 갔다.

“&^^%%*()(*@()))”

카드 전표를 보니 전표에도 27만원으로 되어 있다.

‘내가 그것도 확인 안하고 사인을 했단 말인가.’

종업원은 당황해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승인취소를 시도한다. 20분 쯤 있다가 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온다. 승인취소가 되었다면서. 미안했는지 종업원이 과일안주를 서비스로 준다. 그걸 보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4만5천원짜리 술을 또 시켰다. 다시금 미녀와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마셨다. 새벽 두시, 다시금 카드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금액을 확인하고 사인을 한다.


다음날 아침, 난 엄마가 깨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 전화가 계속 울리더라. 받아봐.”

전화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무려...십여통이다. 테니스를 치기로 했던 친구인데,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황급히 옷을 차려입고 내려갔다. 하지만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몸놀림은 예전만 못했고, 난 그저 라켓만 들고 서 있는 수준의 테니스를 쳐야 했다. 시종 이런 소리를 했다. “술만 안취했으면 저거 칠 수 있었는데.”


역시 두시까지 마시는 건 무리다. 게다가 술에만 취한 게 아니라, 미녀에도 취했으니...


111번째: 지도학생을 추억하며

11월 14일(화)


슬픈 표정으로 술을 사달라고 한 지도학생의 말이다.

“민호(가명) 형 오늘 아침 군대 갔어요.”

민호는 올 5월까지 내 지도학생이었다. 본과 2학년을 두 번 유급하고 세 번째 다니다 결국 학교를 잘렸다. 그는 “미안해서” 내게는 연락하지 못하지만 고교 후배인 이 지도학생과는 그래도 연락을 한단다. 나 역시 마음이 착잡했다. 그 학생이 어려운 처지인데 내가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사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지도학생은 내가 몰랐던 민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작년엔 학교를 거의 안나갔어요. 사귀던 여자가 좀 안만나주고 그랬나봐요. 그 여자애 학교에 가서 며칠씩 기다리고 그랬어요....”

“올해 농구하다가 발을 다쳐서 일주일간 학교를 못갔어요. 그래서 그 과목을 F 맞은 거예요.”

“블록강의(3주간 한 과목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친 뒤 끝나는 과목으로 본 2 때는 이것만 한다)는 다들 1주째 주말부터 공부를 하거든요. 근데 민호 형은 2주째 수요일 지나서 해도 된다고 했어요. 실제로는 금요일부터 시작하기도 했고요.”


하나하나가 다 유급생의 삶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뭐라고 했던가. 여자는 대학 생활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공부를 아주 잘 할 필요도 없고 그냥 기본만 갖추면 삶이 편하다고 그러지 않았던가. 그래서 민호는 “교수님께 미안해서 연락 못드리겠다”고 말했을테고, 같은 이유로 나 역시 그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민호는 군대에 갔다.


민호는 부모님께 그동안 학교에 다닌 걸로 거짓말을 했단다. 군대에 가게 되면서 사실을 털어놓자 부모님이 이러셨단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잘 다녀와라.”

이 말을 들으니 그 부모님께도 미안해진다. “다시 의대에 편입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는 민호에게 겨울방학 때 면회를 가기로 지도학생과 약속했다.


눈을 떴을 때 난 고속버스 안에 있었고, 청소 아줌마가 버스 안을 치우는 중이었다. 황급히 가방을 챙겨 내려 보니 버스를 향해 거대한 물줄기가 퍼부어지고 있다. 그곳은 바로 세차장이었다.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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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지도학생을 추억하며..편은 그럼 꿈이라는 말씀이신가요..??

해적오리 2006-11-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러게요.. 끝이 어째 묘한 뉘앙스가 있네요..

모1 2006-11-1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메피스토님과 같은 생각중...

클리오 2006-11-1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닌데... 다른 페이퍼에서 그 지도학생 이야기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근데 정말 끝부분 뉘앙스가 묘~하네요...

가시장미 2006-11-1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7만원.. ㅋㅋ 고의가 아니였을까.. 의심스럽네요. -_-; 조심하세요! 음주쟁이 형~

마노아 2006-11-1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황.... 꿈일런가 현실일런가... 누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이죠? ^^;;;

마태우스 2006-11-1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아, 꿈은 아니구요 술 마시고 버스타고 왔는데 너무 취해서 못내린 거였어요 꿈이라면 좋겟네요
가시장미님/아니 누가 음주쟁이라고 그래요 저 맘 잡았다구요
클리오님/그죠... 뉘앙스를 신비모드로 했는데 좀 이상한가요?^^
모1님/현실이어요...흑
해적님/아앗 오랜만이어요. 신비주의는 역시 제게 안어울리는 듯
메피님/흑 그 학생, 그날 군대간 거 맞아요...

또또유스또 2006-11-1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민호라는 그학생은 훌륭하신 부모님과 선생님 밑에서 어찌 그리 안타깝게 되었는지...
역시 옛말이 그르지 않네요...
말을 물가로 끌고는 갈 수 있지만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
저도 님의 댓글이 아니었으면 무엇이 꿈얘기이고 생시이야기인지 헷갈릴뻔 했다는...

마태우스 2006-11-1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스또님/민호 부모님 정말 의연하고 멋지시지 않습니까. 근데 그 학생이 배신을 했네요... 제 이미지를 물먹는 말로 바꿔볼까요...
 

 

 

 

 

105번째: 작업의 정석


우리 학교엔 나랑 친한 선생이 두명 있다. 한명은 여자분으로 주량이 세서 내가 좋아하고, 또 한분은 남잔데 교수 치곤 드물게 인간 냄새가 나서 좋아한다. 전자와는 가끔씩 술 대결을 하고, 후자와는 일주에 한번씩 미녀 조교 셋과 더불어 점심 모임을 한다.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엔 점심시간이 너무 짧기에 남자 선생과 저녁을 한번 같이하자고 했고, 그게 성사된 건 10월 24일(화)이었다.


1차에서 소주를 열심히 마시고 2차로 간 오뎅바, 술이 약한 남자선생은 1차만 끝나고 집에 갔고, 요즘 우울해 보이는 조교 한명도 귀가해 버려 2차에는 나랑 미녀 조교 둘만 갔다. 디귿(ㄷ)자 모양의 테이블 중 난 가운데에 앉았고, 미녀 조교는 왼쪽, 오른쪽엔 남자 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즐겁게 수다를 떨며 술을 마시던 중 남자 중 젊은 쪽이 조교 한명에게 말을 건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고뇌에 대해 얘기하는 듯했다. 순간 생각했다. 이게 작업이구나.


난 한번도 모르는 사람에게 작업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같이 간 사람에게 충실했고, 혼자 술을 마실 때도 별반 한눈을 팔지 않았다. 물론 이건 해봤자 안될 걸 알아서 그랬던 거지, 마음마저 없었던 건 아니다. 내 외모가 좀 괜찮았다면 종업원에게 “저기 앉아 있는 미녀에게 마티니 한잔!” 이런 주문을 넣기도 했겠지. 어쨌든 피부가 하얀 그 남자가 작업을 거는 게 참 신선하고 귀엽게 보였다. 작업의 대상이 된 미녀조교는 놀란 와중에도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 좋은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젊다는 게 좋네요. 저렇게 모르는 여자에게 말도 붙이고. 전 마흔이 되고나니 모든 것에 심드렁해지던데.”

그 남자의 답변에 난 기절할 뻔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몇 년만 있으면 마흔이거든요.”

난 그 남자가 한 50정도, 잘 봐줘야 45 정도는 된 줄 알았다. 근데 아직 마흔도 안됐다니. 꼭 대머리라서 그런 건 아니었고, 풍기는 인상이 너무 나이들어 보였는데.


미녀조교가 그다지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남자는 이내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그 다음날부터 미녀 조교가 더 멋져 보인다. 작업의 대상이 되다니 정말 미녀구나 싶어서.

 

 

 

 

 

 

107번째: 무자식 상팔자

11월 3일(금)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무에서 출발해 지금은 죽전에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얻은, 소위 자수성가한 그는 무척 날 환대해 줬다. 1차는 맛있는 돼지갈비에 소주, 2차는 자기 집에서 맥주.


배가 좀 나오긴 했지만,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부인과 사이도 아주 좋고, 내가 아는 한 그 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적도 없다. 그렇게 금술이 좋던 그 부부가 이제 떨어져 살아야 한단다. 12월이면 자기 애들 둘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내야 하기에.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친구는 쓸쓸히 말한다. 난 자식을 외국에 보내는 건 특권층의 일로만 알았다. 하지만 특권층이 아닌 이 친구마저 그렇게 하겠다는 걸 보니 ‘대체 기러기는 어느 단계까지 내려와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남이 하니까 자기도 애들 사교육을 시키고, 역시 남이 하니까 처자식을 외국에 보낸다. 외국에 보내는 돈은 어떻게 감당하는지, 떨어져 사는 걸 감수할 정도로 자식 교육이 중요한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부부는 부부의 삶이 있고, 자식은 그 나름의 삶이 있는 게 아닐까. 꼭 그렇게 해야만 자식들의 경쟁력이 길러지는 걸까. 그러고보면 내게 자식이 없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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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1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고뇌같은 걸로 작업을 걸면...십중팔구 퇴짜..아닐까요..^^

paviana 2006-11-1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죽전까지 오셨는데 연락도 없이 가셨단 말이지요? 음 ...글쿠나....
흑흑흑

비로그인 2006-11-1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태우스님께서 마흔.. 한참 멋질 때입니다.


모1 2006-11-1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5회째/여전히 마태우스님 주위에는 미녀들만 있다..일반인은 과연 존재하는가?
107번째/기러기아빠..쉽지 않은 선택이셨을텐데..그분 대단하시네요. 갑자기 드는 생각..그 분도 마태우스님의 술친구 멤버에 정회원으로 등록?

클리오 2006-11-1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자식이 중요해도, 가족이란 서로 같이 살며 사랑하라고 하는 존재인데, 전 아직까지 기러기 부부들이 이해가 잘 안가요.. 국내 주말부부도 아니고...

다락방 2006-11-1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5/작업의 대상이 되다니. 정말 미녀가 맞나보네요. 부러워라.
107/기러기 아빠라니. 쓸쓸해요. 휴~

마태우스 2006-11-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제마음 아시죠^^
클리오님/책을 읽어보니 부부는 정답이 없다고 하네요. 제가 모든 부부를 이해할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님과 저는 생각이 일치하는군요 반가워요
모1님/일반인도 가끔 있지요^^ 그 친구는 제 조직은 아닙니다....
한자님/그, 그런가요? 한때는 마흔이 되기 싫어서 몸살을 했지요...
속삭이신 분/오랜만이어요 반갑습니다!
파비님/사정이 좀 어려웠어요. 삐지지마세요
메피님/그렇겠지요? 역시 작업엔 유머가 최고겟죠?

마태우스 2006-11-1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범님/어 님은 닉넴으로 보아 아롱이의 아버님,쯤 되는 줄 알았는데... 글구 전 딸의 애교보다 나이든 미녀의 애교가 훨씬 더 좋습니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