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달력을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한 주 동안 술을 마신 횟수가 단 한번인 거 있죠.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릅니다. 나쁜 일을 하면 벌을 주는 것처럼, 착한 일을 하면 상을 주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전 지난 토요일부터 저 자신에게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이란 당연히, 마음껏 술을 마시도록 하는 거겠지요. 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64번째: 놀러가서(5/27)
고교 2학년 때, 무슨 운이 그리도 좋은지 14반에 배정되었습니다. 거기서 전 평생을 같이 할 친구 다섯을 얻었는데요, 매년 그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놀러가곤 합니다. 제가 혼자 가도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랍니다.
아이들이 가장 경이롭게 다가오는 건 그들이 다른 애를 볼 때랍니다. 일년에 한번은 만나고, 그 나이 때면 성별, 연령, 종교 등에 무관하게 순수한 친구가 될 수 있기에 친구 애들은 서로들 친합니다. 근데 한 친구의 아들이 그보다 다섯 살은 어린 다른 친구의 아들을 열심히 돌봐주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그 애도 어리긴 마찬가지지만, 지가 컸다고 애를 봐주는 장면이 어찌나 대견한지요. 물론 애들한테 최고 인기는 바로 저였습니다. 평소에도 애들을 달고 다니지만, 수영장에 있을 땐 애들 넷이 달라붙어서 안떨어지는 통에 힘이 좀 들었지요.
아 참, 그날이 시상식 첫날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남들은 맥주를 한두잔 했지만 전 소주를 시켜 4분의 3을 비웠고요, 숙소에서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서는 친구가 가져온 발렌타인 17년을, 그리고 포커를 칠 땐 참치캔 안주에 다시금 소주 한병을 먹었답니다. 다 더하면 꽤 양이 되지요? 다음날 전 평소에 없던 숙취에 시달려야 했답니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고 받은 상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65번째: 이작가님과(5/29)
글쓰기 강의를 위해 외부강사를 모셔왔습니다. 일주 전에 심작가님이 오셨을 때 축제를 한다고 학생들이 별로 들어오지 않아 마음이 아팠기에, 과대표한테 “다음 주는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해둔 터였습니다. 그런데 외부강사 분과 함께 강의실 문을 여니 학생이 딱 일곱명 있는 겁니다. 수업이 시작하고 하나 둘씩 학생들이 들어와 열네명이 되긴 했지만, 무지 속상했습니다.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수업을 수요일로 바꿔 주는 대신 “외부강사가 오는 두 번만 월요일에 하자.”고 했었는데,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하게 출석을 부르면서 ‘오늘 안온 애는 다 D야!’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강의보다 심작가님, 그리고 이번에 오신 이작가님이 하신 강의가 훨씬 더 명강의였기에 아쉬움은 컸습니다. 어젠 토론식으로 진행된 <의학개론> 시간이 돛대기 시장이 되는 걸 보면서 한숨만 쉬었어요. 도대체 학생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나요.
어쨌든 그날은 시상식 둘째날이었습니다. 너무도 유쾌하신 이작가님, 그리고 또다른 분과 더불어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한분은 편도선이 부어서, 이작가님은 “요즘 술이 안땡겨서” 맥주만 드셨지만, 착한 어린이인 저는 열심히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날은 아주 곤히 잠이 들었지요.
66번째: 초등학교 친구들과(5/30)
가끔씩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곤 합니다만, 최근 몇 달간엔 통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만날 때마다 제가 바쁜 척을 한 탓이지요. 간만에 보니 반가웠습니다. 야구에 있어서나-전 두산을, 다른 야구광은 LG 팬이죠-정치에 있어서나-저를 좌파라고 부릅니다-견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술을 마실 수 있는 건 역시 어릴 적 친구밖에 없지요. 제 베스트프렌드가 뒤늦게 합류해 더더욱 화기애애했는데요, 어찌된 게 먹은 기억밖에 안나는군요. 벽돌집에서 고기와 열무비빔밥을(전 두그릇 먹었어요), 전날에도 간 ‘황씨포차’에서는 해물볶음과 해물파전, 해물떡볶이, 계란말이를, 3차에서는 뭔지 잘 모르는데 하여튼 맛있는 안주를 먹었답니다. 친구의 말입니다. “오늘 안주는 다 맛있었다.”
제 친구들은 좀 달리는 편이라, 시상식 여부를 떠나 초반부터 원샷을 했습니다. 셋이서 소주 네병을 비웠고, 두명이 더 합류한 2차에선 ‘별’이라는 아주 맛있는 술과 ‘처음처럼’을 마셨습니다. 3차에서 다시 소주를 마시는데, 11시 반이 지나니 힘들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간다고 하니까 “십분만 있다 가. 우리도 곧 갈거야.”라면서 붙잡습니다. 전 알지요. 그 십분이 절대 십분이 아니란 걸. 제 주량이, 체력이 그리 강하지 못한 걸 원망하면서 집에 갔습니다. 나중에 베스트프렌드가 전화한 걸 보니 제가 간 뒤에도 한시간은 더 있다 헤어진 모양입니다.
이로써 3회에 걸친 시상식이 끝났습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오늘 아침 유난히 힘이 드네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착한 일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는^^. 상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