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14일(금)
마신 양: 맥주--> 소주 왕창, 간만에 취했다.
여름과 겨울, 후배들은 후원회비를 받으러 선배들을 찾아다닌다. 그걸 우린 ‘섭외’라고 한다. 어느 선배의 말이다.
“너 몇 기냐? 이걸 물어보고 나면 그 다음에 할 말이 없더라고.”
한 2-3년 차이면 모르겠지만, 십년, 이십년 차이가 나면 정말이지 공통의 소재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이럴 때 선배들은
1) 자기가 써클 다니던 시절 얘기를 해준다. “우리 땐 말이야, 펌프질 해서 물을 구했다고.” 하지만 이건 그 추억을 공유하던 사람들에게나 통할 뿐, 펌프가 뭔지도 모르는 애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2) 공통으로 아는 사람 얘기를 한다. “서민이 걔 아직도 술 많이 먹고 다니냐?” 이거 역시 큰 도움이 안되는 게, 그 소재로 오래 얘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후배가 오면 회비만 줘서 보내는 선배가 많은 것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어색한 시간을 줄이고자 해서다.
그런 점에서 난 탁월한 선배다. 후배가 올 때마다 꼭 밥까지 사줘서 보내는 것은 물론,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 주니까 말이다. 20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과 말이 통하는 이유가 뭘까. 벽을 보고 혼자 대화 연습을 했던 젊은날의 노력이 빛을 보는 걸까? 그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평소 젊은 미녀들과 만나며 젊은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도 중요한 비책일 것이다. 엊그제의 술자리에서도 내 재주는 빛을 발해, 나보다 7년 선배부터 20년 후배까지 모두를 즐겁게 해줬다. 그것도 몇시간 동안이나! 스스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
1) 그거 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 연구, 강의 모든 면에서.
2) 돈을 너무 많이 썼다. 1차에서 맨 위 선배가 사겠다고 했을 때 다른 선배가 “왜 그걸 형이 다 사?” 하면서 돈을 걷었는데, 흑, 그것도 십만원씩이나, 흑. 전날 다른 모임에서 내가 제일 선배라고 카드를 긁었는데, 흑, 그리고 선배들이 2차에서 다 가버리고 나와 학생들만 남았을 때, 근처 횟집에 데려가서 3차를 했는데. 흑. 그 선배님, “공돈 생겨서 사는거야”나는데 그냥 사게 하시지, 흑. 아침에 술이 깨서 카드 전표를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3) 술이 너무 취했다. 웬만큼 취해도 8시 전에는 꼭 일어나는데, 오늘은 열한시까지 잤다. 흑, 내가 상대를 잘못 골랐지. 술을 제일 잘마시는 애랑 술시합을 하다니. 맥주 한잔을 3초만에 마시는 애랑 상대를 왜해? “2분마다 한잔씩 마시자. 20라운드까지 가는거야!”라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4라운드에서 기권하고 말았다. 배가 불러 죽겠는데 나보다 덜나가는 후배는 왜 그리 술을 잘마시는지. 소주도 그렇게 마시다 쓰러져 잘 뻔했는데, 겨우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