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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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마피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탈핵의 시동을 걸었지만, 제대로 탈핵의 길을 달리기도 전에 정권이 바뀌면서 탈핵도 폐기 되었다. 윤 대통령이 경남 창원의 원전업체를 방문해서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서 안전을 중시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윤 대통령 “안전 중시 버려라…원전업계는 전쟁터” 발언 논란 : 환경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설마 국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했을지 의문이 들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뒷걸음질치는 탈핵! 다시 한번 탈핵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체르노빌 히스토리'를 꺼내들었다. "우리가 이미 일어난 재앙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새로운 체르노빌식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21쪽)라는 세르히 플로히의 지적은 아쉽게도 현실화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바로 그 재앙의 서막이다. 그런데, 우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착잡한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 


  암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는 부인을 한다고 한다. 자신이 암을 걸릴리가 없다며 오진일 것이라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는다. 이러한 일이 체르노빌에서도 일어낫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원전 냉각수 연못에서 낙시를 즐기는 10여명의 낚시꾼들은 핵발전소 폭발이 있었으메도 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방사능 흑연조각이 길에 널려 있는데도 현지 전문가와 모스크바에서 온 전문가는 4호 원전의 폭발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전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켰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앞의 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작동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 체르노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첫번째 사람들이었지만 마지막 사람은 아니었다."(130쪽)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인간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두번의 전 지구적 재앙을 겪고서도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신화를 믿고,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서 안전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비상식적인 인간들이 많다는 현실이 절망적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류의 안전을 헌신짝 취급하는 그들과 함께 지구에 살아야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절망적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재앙을 뒷처리하기 위해서 소련 정부는 소방대원과 군대를 동원했다. 그리고 예비군을 동원하여 방사능 피폭을 당하며 커다란 석관을 원전 4호기에 뒤집어 씌웠다. 60여만의 군인들이 피폭되며 원전을 잠재웠지만, 핵발전소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빈국제학술대회에서 레가소프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경위, 원인 분석, 영향, 원자력 사고 예측 방법을 보고 했다. 그 결과 소련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유사한 사고 예방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소련 지도부는 레가소프의 행위를 탐탁치 못하게 여겼다. 그리고 체르노빌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비밀로 분류했다. 체르노빌과 가까운 오염지역 나로디치에 당국은 주민 정착을 위해서 집을 짓고 있었다. 야로신스카야는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 취재를 했다. 당국은 그녀가 진실을 알릴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야로신스카야는 굴복하지 않았다. 소련이 공산국가이기에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도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도 소련과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위험성을 언론에서 말할 수 없도록 재갈을 물리고, 후쿠시마 근처에 사람들을 안전하다며 정착시키려하고 있다. 핵마피아에  지배당하는 국가의 모습은 비슷한가 보다. 

  302쪽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1990년대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14세 미만 인구중에서 3000건의 감상선암이 등록되었다.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서 벌어진 핵사고에 죄없는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돈과 권력이 없는 주민이 희생되고 있다. 

  체르노빌이라는 재앙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드라치는 "체르노빌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민주화운동에 원동력이 되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이 그 전범이 되었고, 작가협회는 요람이 되었다."라고 말했듯이, 체르노빌의 재앙을 딛고 우크라이나인들이 깨어났다. 더 나아가서 동유럽에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핵사고를 당한 우크라이나는 환경 민족주의로 독립과 반원전 운동을 했다. 우리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원전 마피아들의 입장에서는 가르치기 싫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현실의 지혜를 얻고자한다면 체르노빌 핵사고가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영향을 반드시 가르쳐야한다.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딛고 깨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재앙을 딛고 깨어났다면 일본인들은 아직도 잠들어있다. 오히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아베를 필두로한 극우 정권이 탄탄하게 권력을 장악하며 핵사고의 위험을 감추려했다. 도쿄 올림픽에 후쿠시마 식품을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재앙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일본 국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전에 오제르크 폭발 사고가 있었다. 핵폐기물이 폭발하면서 2000만 퀴리의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이때 미국은 이를 이용해서 소련을 공격하려하지 않았다. 거대한 핵마피아의 본능이 작동하여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믿음을 고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제르크 폭발사고의 교훈을 얻지 못한 소련은 체르노빌 핵사고의 고통을 겪었다. 체르노빌 핵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의 고통을 겪는다. 이제 우리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어야한다. 단세포 동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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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29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탈핵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좁은 나라에서 오히려 거꾸로 가려 하니 황당하고 걱정입니다. 저도 윤 대통령 기사보고 놀랄때가 많아 다시 검색해서 크로스체크 하곤해요. 이 책 추천받았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강나루 2022-07-29 18:44   좋아요 2 | URL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mini74 2022-07-29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체르노빌의 아이들 이런 책을 봤는데 정말 무섭고 끔찍했어요. 걱정이네요. 일본 오염수 방류도 그렇고 ㅠㅠ 주변 엄마들은 김 미리 사 놓으라고 그러네요 ㅠㅠ

강나루 2022-07-29 20:09   좋아요 1 | URL
일본에 할말은 하는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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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이에게는 혹평을 받으며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한다. 또 어떤이에게는 최대의 찬사를 받기도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서평을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는다. 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나도 혹평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바라보기로 했다.

 

1. 색골(色骨)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어들었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조르바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기 보다는 색골이다. 여성의 육체에 탐닉하는 전형적이 색골이다. 이 책을 넘기며 2~3페이지 마다 조르바은 여성에 육체, 그중에서도 엉덩이와 가슴에 탐닉한다.

 

"조르바가 저 과부는 누구인가요?"라고 묻자, 콘도마늘리오는 "씨받이 암말이지요." -114

"두목, 저것 좀 보쇼 저 잡년이 궁둥이 흔드는 것 좀 봐요. 삐뚤빼뚤! 꼬랑지에 기름 잔뜩 오른 암양같군"-38

"애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은 남겨 놓고 죽어간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92

 

이러한 말들은 조르바가 직접하거나 조르바가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내뱉은 말들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 철저히 마초적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머리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르바와 같은 마초가 자유인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자유인은 너무도 많다. 특히 군대에서 그러한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며 노골적인 표현을 섞어 여자를 후리고 다닌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새로운 여자와 잠자리를 갖게 되면 새로운 훈장을 받은 것마냥 자랑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각하는 자유인이 바로 색골들이란 말인가!

조르바는 여성 중에서도 과부에게 유난히 집착한다. 과부는 언제나 정복 가능하며, 그녀들을 혼자 밤을 지내도록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조르바의 주장은 황당하기까지하다. 여성에 대한 존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조르바의 표현은 듣기에 거슬린다. 그런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러한 조르바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조르바, 내 몽당 당신에게 주고 말고요. 당신이 한것 ... 여자 꿰어 차고, 머리를 물들이고, 돈을 쓰고 한거. 당신이 다가져요. 노래나 부릅시다.!"-207

 

돈많은 갑부의 허세가 녹아 있는 문장이다. 계집질하며 자신의 돈을 허락도 없이 낭비한 조르바를 좋아하는 작가는 과연 정상적인 인간인지 의문이든다.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 그리고 주인이 없기에 쉽게 성적 대상으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과부를 탐닉하는 조르바! 돈많은 갑부의 환심을 사서 그의 돈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조르바! 그를 자유인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인생을 무계획적으로 사는 망나니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2. 이드(조르바)와 슈퍼에고(화자) 사이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존 인물 조르바를 모델로 쓰여졌다. 화자가 갈탄을 채굴하러 크래타에 간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화자(작가)의 관계는 너무도 친밀했다. 조르바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그는 사랑스러운 관점에서 묘사하고 긍정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돈을 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화내지 않고 조르바와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현듯, ‘그리스인 조르바와 화자가 같은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르바와 화자는 두명이 아니라 한몸에 있는 두가지 존재라고 보면 이 책의 서술이 쉽게 이해된다. 조르바는 화자의 가슴 속에 꿈틀되고 있는 욕망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드라고 한다. 그리고 화자는 자아(에고)나 슈퍼에고(도덕 등)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화자는 티베트 승려의 수행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본능을 억누르려한다. 그러나 자신의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물결은 잠재울 수 없다. 즉 조르바는 세상의 윤리를 비웃으며 자유롭게 여성들을 탐닉한다. 윤리에 갖힌 자아와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 사이에서 갈등이 펼쳐진다.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이러한 싸움은 욕망(조르바)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결국, 화자는 과부를 안아주라는 조르바의 충고를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화자의 몸에서 풍기는 과부의 비누냄새를 맡은 조르바는 기뻐한다. 욕망의 승리인 것이다.

모든 만남은 영원할 수 없다. 조르바와 화자는 헤어진다. 욕망이 충족되었으니 욕망에 대한 갈망은 전처럼 강할 수는 없다. 조르바와 헤어진 화자는 조르바가 독일에 올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르바를 찾아가지 않는다. 결국 조르바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화자는 욕망에서 해방된다. 계율을 어겼다고 모두가 파계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계율을 어기고 더 위대한 스님이 된 원효처럼 화자는 과부와 잠자리를 가지고 나서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3.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조르바

그리스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존재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그리스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적인 신부를 죽였다. 그런데, 거리에서 그 신부의 자녀를 마주치자 조르바는 자신이 가진 돈과 바구니까지 그 아이들에게 준다. 조르바는 그리스 민족주의 열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지만, 민족주의라는 열풍이 때로는 불쌍한 아이들의 아버지를 살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르바는 적들에게 쫓기다가 어느 과부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과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육체도 탐닉한다. 과부가 다음에 또 오라고 말했다. 조르바는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그때 그 과부도 죽었을 것이라고 조르바는 추측한다.

아마도 조르바는 이때 과부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유난히도 과부에 탐닉하는지도 모른다. 성적으로만 과부를 탐닉한 것이 아니다. 맨손으로 칼을 쥔 놈을 상대로 결투를 했다. 과부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성당에 들어가려하는 과부를 크래타의 남자들이 돌을 던지며 죽이려했다. 그녀가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그녀를 내쫓으면 될 것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광기에 사로잡힌 크래타 남성들은 과부를 죽이려했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위해서 싸운 것은 조르바였다. 그는 승리했으나 그녀를 살리지 못했다. 조르바는 다시 한번 과부를 살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결정적 기회를 잃어버렸다.

조르바가 사랑했고, 미래까지 약속한 부블리나 부인이 죽어갔다. 물론 그녀도 과부이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친다. 그런데, 크래타 사람들은 냉혹했다. 그녀 앞에서 ", 어서 서둘러, 어서 죽어야지. 이여편네야"라고 말하고, "그래야 우리도 뭐하나 가져갈 것 아닌가"라는 말을 죽어가는 부블리나 부인 앞에서 말한다. 그녀가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래타 사람들은 그녀의 물건과 가축들을 하나둘 가져갔다. 크래타인들에게 과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그녀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라며 기뻐했다.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가 크래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스 독립 전쟁 과정에서 과부를 살리지 못한 그는 목숨을 걸고 한명의 과부를 살리려했다. 그러나 그는 살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과 미래를 약속한 과부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조르바에게 과부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 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랑해야만하는 존재였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갖혀있는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그이기에 고상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했고, 그래서 노골적인 뒷거리의 용어로 그녀들을 묘사했을 뿐이다.

 

 

조르바는 성당을 싫어했다. 조르바와 화자가 하룻밤 묵었던 수도원에서는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조르바는 수도사를 저주했고, 수도사의 소굴인 수도원을 격멸했다.

 

"그래요 두목, 내 수중에만 들어오면 수도원은 기적의 공간이 될 겁니다."-319

 

위선적인 수도승을 바라보며 타락할대로 타락한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심지어 조르바는 자하리아에게 수도원에 불을 지라고 부추긴다. 자하리아는 수도원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조르바는 아마도 과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크래타인의 저변에는 크리스트교의 왜곡된 윤리의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수도승과 수도원은 저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화자는 곳곳에 불교적 언어를 사용해서 크리스트교를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겉으로는 고상한척, 사랑으로 세상을 이끄는 존재인척하지만, 실제로는 불쌍한 중생을 착취하는 크리스트교의 윤리에서 맞서서 조르바는 싸웠다. 그는 자유인이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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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29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도 명작이라고 해서
결국 읽기는 했었는데...

요즘에는 맞지 않는 캐릭이라
그런지 소화해 내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강나루 2022-07-29 18:13   좋아요 1 | URL
저도 읽는 중간중간에 여러번 포기하기 싶었어요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영우.최양현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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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운명지웠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 최영우는 태어났을 때부터 조국은 없었다. 일제의 식민지배 속에서 그에게 항일 의식을 심어준 선생님도, 친구도, 부모도 없었다. 조선인이라는 자각이 미약했다. 최영우는 일제의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가 전쟁범죄 혐의로 수용소에 갖혀지내며 한탄했다. 자신에게 독립운동을 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준 사람이 없기에 식민지 백성으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남방의 포로감시원을 지원했다. 그것이 전쟁 범죄자 혐의로 이어지리라고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3년생 최영우의 삶을 따라가노라면, 답답함과 함께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조선인 처녀의 모습을 보면서 일제에 대한 분노를 느꼈던 그가, 자신의 상관에게 총뿌리를 겨누어야겠다는 의기는 없었던 것일까? 포로들과 대화하던 중에 '너 조선인이지?'라는 포로의 질문에 '아니, 난 일본인이야'라고 비겁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조선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식민지 조선에 내던져진 최영우에게 강렬한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제의 지배에 순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그의 삶을 보면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사람이 사는 곳에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청년 최영우는 후푸카스 여인과 연애를 한다. 국경과 민족을 넘어 남방의 포로감시원이된 식민지 조선의 청년과 인도네시아의 후푸카스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은 아슬아슬하기만했다. 청년 최영우는 그녀와 함께 한국으로 올 것인가, 현지에 남을까 등등의 다양한 상상을 한다. 안타깝게도 최영우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포로 감시원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인도네시아 현지에 남는 용기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일본군을 탈출해서 인도네시아 후푸카스 여인과 함께 밀림으로 도망쳤다면, 그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는 운명의 사슬을 끊어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영우는 그러하지 못했다. 일본을 위해서 총을 잡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포로를 감시했을 뿐인데도 연합군은 그들을 전범 취급 했다. 수용소에 갖히고 치피낭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했다. 조선 땅을 떠난지 5년만에 고향 남원의 구선동으로 돌아왔지만, 서도역에서 만난 당숙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도 당숙모를 알아보지 못했다. 역사의 풍파가 두사람의 모습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최영우는 사냥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활발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좁은 역사의 선택지를 벗어 던지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그의 삶은 그를 냉소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민족 독립을 위한 삶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의 삶의 선택지에는 독립운동이라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선택하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역사가 휘두르는 칼날 위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다.

 

책장을 덮고 상념에 잠겼다. 나는 최영우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었다. 그 대답에 선듯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생의 선택지에 놓인 운명을 따라갈 생각만 했지, 나의 정답을 서술해갈 생각은 하지 못해왔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 어제 못 먹은 빵이 생각나기 보다는 도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한다. 나의 인생에 내가 알지 못하는 역동적인 도전이 있을 수도 있다. 마치 최영우가 독립운동이라는 길을 알지 못했듯이 말이다. 혹은 생각만하다가 자신의 꿈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최영우가 일본군을 탈출해서 사랑하는 연인과 인도네시아에 남아 사랑을 이루지 못했듯이 말이다. 최영우의 삶을 보면서 나의 삶이 오버랩된다. 그래, 선택지를 고르려하지 말고, 나의 인생을 서술해나가자. 생각만 하지 말고 소중한 것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고 그곳에 뛰어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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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9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대부분이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최영우라는 사람과 비슷하게 살지 않았을까요? 특히나 그들의 의식이 형성될 193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일제의 세뇌교육은 강도를 더해가고, 그것의 부당함을 알려주기에는 탄압이 너무 심했고요. 어디서든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건 어려울 뿐 아니라 상당히 행운에 속하는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나루 2022-07-10 10:10   좋아요 1 | URL
˝어디서든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건 어려울뿐 아니라 상당히 행운에 속하는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한다.˝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갑니다.^^

scott 2022-08-10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루님 이달의 당선 추카!
비 피해 없으신지요.
서울 연 이틀 무섭게 폭우가 ㅠ.ㅠ

이 책 최영우 담아 갑니다 ^^

강나루 2022-08-12 07:36   좋아요 0 | URL
다행히 비피해는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할 수 없어서 그것이 불편했습니다.

scott님도 비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2-08-10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영우 아니고 최영우!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8-12 07:3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저도 우영우를 보았는데 재미있어군요^^

mini74 2022-08-10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8-12 07:37   좋아요 0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mini74님도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8-10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8-12 07:3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8-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비 피해 없는 편안한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강나루 2022-08-12 07:38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이하라님도 비피해 없으시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8-11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8-12 07:39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도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bookholic 2022-08-11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늘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금요일, 주말, 광복절 쭉~~ 즐거운 시간 되시길...^^

강나루 2022-08-12 07:39   좋아요 0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이번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8-12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2-08-23 19:53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감사해요^^

러블리땡 2022-08-12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ㅎㅎ 파친코 읽고 있는데 뜬금없지만 리뷰 보니까 왠지 이 책도 관심가네요 ^^

강나루 2022-08-23 19:53   좋아요 0 | URL
책이 얇아서 금방읽을 수 있어요.^^
 
팬데믹 제2국면 -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
우석훈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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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그런데, 과연 그럴까? 신석기인이 구석기 시대로 돌아갈 수 없듯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세대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너무도 많은 변화가 우리에게 밀물들어오듯이 들어왔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회식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회식 없는 사회 생활이 나에게 너무도 행복한 시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곤하게 여러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으로 유명한 우석훈의 '팬데믹 제2국면'을 꺼내어 읽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로 시작한 변화가 어떠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 올지 궁금해서이다. 그 변화가 행복한 변화이길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첫장의 제목은 '우리는 선진국의 간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한 나라,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들어섰다는 체감을 하고 있다. 장미빛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환상을 갖기에 좋은 제목이다. "우리가 겪는 변화는 우리의 연봉이 평균적으로 올라간다는 것"(61쪽)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데, 우석훈은 "우리 나라 안에서 소득이 오른 것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라고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모두의 월급이 오른다는 말은 물가도 그만큼 오른다는 말이다. 나라가 선진국이 되더라도 국민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이 늘어날 것이란다. 여기에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계속 된다면, 팬데믹 양극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올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팬데믹 충격 이후 산업의 패턴을 A,B,C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매우 좋아질 산업인 A형, 충격은 받지만 제자리로 돌아올 B형, 어떻게 해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C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기를 겪었는데,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흉년에 싸게 나온 땅을 사서 만석꾼이 되는 사람도 있다. 대공황 시기, 낙엽 수준으로 떨어진 우량주식을 쓸어 모아 부자가 된사람도 있다. 위기는 기회를 낳기도한다. 

   

  "정치적 노동 바깥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디지털 경제의 충격을 줄이는 일과 팬데믹 충격을 줄이는 일이 같은 방향이라는 점이 중요하다."-191쪽

  

  팬데믹은 4차 산업 혁명으로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4차 산업 혁명에 연착륙할 수 없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는듯하다. 사회가 급속히 비대면 사회로 진입하면서 충격파는 더욱 커질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는 모든 인간이 호모 데우스(신이된 인간)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달이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호모 데우스가 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간의 비극이 펼쳐질 수 있다. 중세 사회에 불어닥친 패스트가 중세를 해체하고 근대로 나가게 했듯이,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 우석훈은 재난 자본주의, 자영업에게 불어닥친 1차, 2차 구조조정, 지방대의 위기, K자 회복 등등의 문제를 지적한다. 우석훈이 제시한 수 많은 문제 상황과 이에 대한 나름의 대책을 살펴보며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기회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된다. 재난 자본주의에 맞서고, 자영업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을 슬기롭게 넘기며, 지방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면서 새롭게 판을 짤 수 있다. 저들이 팬데믹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기회로 삼듯이, 우리도 서민을 위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재설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공감과 단결이 필요하다. 서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대한민국을 재설계한다는 원칙에 합의해야한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에 길들여진 우리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는 원칙에 합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들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석훈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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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 문장
백건필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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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문장'이라는 책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글을 쓸때도 타인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한문장을 쓰고 싶었다. 보충수업 강좌명을 지을 때도 학생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강좌명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이책을 펼쳐들었다. 

  저자 백건필은 심리학을 비롯해서 다양한 카피라이팅 저작들을 농축시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문장'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의 말들 중에서 "관찰을 반복하면 통찰에 이르고 통찰을 반복하면 현찰에 이른다."라는 말은 가장 인상 깊었다. 보통은 관찰하기 보다는 상상할 것을 강조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달리, 관찰을 통해서 통찰에 이르자는 저자의 말은 매우 강력한 울림을 주었다. 해답은 책상위에 있지 않고, 현장에 있다는 진실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광고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광고에서 제시하는 할인 혜택부터 시작해서 제품이 조기 소진될 수 있다는 말들이 모두 백건필이 제시한 '마음을 훔치는 카피라이팅'기법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광고의 카피라이팅을 평가하게 되었다. 역사를 소재로한 영화를 보면서 역사적 고증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분석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제는 광고를 보면서도 그 수준을 평가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세상을 보게된다. 이제는 광고도 달리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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