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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영우.최양현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3월
평점 :
역사가 우리를 운명지웠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 최영우는 태어났을 때부터 조국은 없었다. 일제의 식민지배 속에서 그에게 항일 의식을 심어준 선생님도, 친구도, 부모도 없었다. 조선인이라는 자각이 미약했다. 최영우는 일제의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가 전쟁범죄 혐의로 수용소에 갖혀지내며 한탄했다. 자신에게 독립운동을 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준 사람이 없기에 식민지 백성으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남방의 포로감시원을 지원했다. 그것이 전쟁 범죄자 혐의로 이어지리라고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23년생 최영우의 삶을 따라가노라면, 답답함과 함께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조선인 처녀의 모습을 보면서 일제에 대한 분노를 느꼈던 그가, 자신의 상관에게 총뿌리를 겨누어야겠다는 의기는 없었던 것일까? 포로들과 대화하던 중에 '너 조선인이지?'라는 포로의 질문에 '아니, 난 일본인이야'라고 비겁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조선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식민지 조선에 내던져진 최영우에게 강렬한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일제의 지배에 순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그의 삶을 보면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사람이 사는 곳에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청년 최영우는 후푸카스 여인과 연애를 한다. 국경과 민족을 넘어 남방의 포로감시원이된 식민지 조선의 청년과 인도네시아의 후푸카스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은 아슬아슬하기만했다. 청년 최영우는 그녀와 함께 한국으로 올 것인가, 현지에 남을까 등등의 다양한 상상을 한다. 안타깝게도 최영우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포로 감시원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인도네시아 현지에 남는 용기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일본군을 탈출해서 인도네시아 후푸카스 여인과 함께 밀림으로 도망쳤다면, 그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는 운명의 사슬을 끊어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영우는 그러하지 못했다. 일본을 위해서 총을 잡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포로를 감시했을 뿐인데도 연합군은 그들을 전범 취급 했다. 수용소에 갖히고 치피낭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했다. 조선 땅을 떠난지 5년만에 고향 남원의 구선동으로 돌아왔지만, 서도역에서 만난 당숙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도 당숙모를 알아보지 못했다. 역사의 풍파가 두사람의 모습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최영우는 사냥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활발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좁은 역사의 선택지를 벗어 던지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그의 삶은 그를 냉소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민족 독립을 위한 삶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의 삶의 선택지에는 독립운동이라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선택하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역사가 휘두르는 칼날 위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다.
책장을 덮고 상념에 잠겼다. 나는 최영우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었다. 그 대답에 선듯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생의 선택지에 놓인 운명을 따라갈 생각만 했지, 나의 정답을 서술해갈 생각은 하지 못해왔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 어제 못 먹은 빵이 생각나기 보다는 도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한다. 나의 인생에 내가 알지 못하는 역동적인 도전이 있을 수도 있다. 마치 최영우가 독립운동이라는 길을 알지 못했듯이 말이다. 혹은 생각만하다가 자신의 꿈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최영우가 일본군을 탈출해서 사랑하는 연인과 인도네시아에 남아 사랑을 이루지 못했듯이 말이다. 최영우의 삶을 보면서 나의 삶이 오버랩된다. 그래, 선택지를 고르려하지 말고, 나의 인생을 서술해나가자. 생각만 하지 말고 소중한 것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고 그곳에 뛰어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