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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반양장) -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에는 삼국지를 읽고, 30대에는 정관정요를 읽어라.'라는 일본의 어느 정치가의 말이 있다. 한국에서 삼국지는 사내아이라면 몇번이고 읽는 책이지만, 정관정요는 읽었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또한 정관정요에 대한 강의를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찾아보았지만, 관련 강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정도로 정관정요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정관정요'를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별칭 외에도, 고려 광종이 옆에 두고 읽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호족들을 제거하고 고려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광종! 그가 그토록 애독했던 '정관정요'에는 어떠한 내용이 적혀있을까?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무서운 사람 당태종!!

  정관정요가 잘 읽히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는,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쳐들어왔다는 사실도 한가지 이유이다. 우리에게는 원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정관의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룬 존경받는 황제이다. 전쟁광으로 여겨질만한 그가 어떻게 중국인들에게 그토록 존경을 받을까? 정관정요를 읽으며, 그 비밀을 몇가지 알아냈다.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자신의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가 자신이 능력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정관정요의 행간에 당태종의 자제력과 인내력이 속속들이 들어있다.

  당태종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낀 것은 자신이 죽인 형의 신하를 자신의 신하로 품어 앉은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신하를 항상 가까이에 두고 자신에게 간언을 하도록 했다. 그가 죽자 당태종은 몹시도 슬퍼했다. 그 신하의 이름은 '위징'이다. 위징은 태자에게 태종을 죽여 우환을 없애자고 건의를 하기까지 했다. 그런 위징을 당태종은 죽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가 반역을 꾀한다는 고변이 들어오자, 오히려 고발한 자를 서둘러 참수했다. 적의 신하!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적의 신하!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고발을 받은 자! 그를 끌어 안았다. 그러했기에 당태종은 '정관의 치'를 이룰 수 있었다.

  제 40편 신종편은 위징의 장문의 상소문으로 채워져 있다. 날카롭게 당태종을 비판하는 그 상소문을 당태종은 쾌히 받아들이고, 위징에게 황금 10근과 궁궐 구유의 명마 2필을 하사했다. 당태종의 이러한 모습은 당태종을 더욱 두렵게 느껴지게 한다. '정관정요' 곳곳에 자신에게 간언을 한 신하들에게 비단을 비롯한 명주를 20필~40필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재정이 튼실한 중국이기에 황제가 신하에게 막대한 하사품을 내릴 수 있다. 그 재정의 튼실함을 간언을 쾌히 받아들임으로서 이룰 수 있었고, 그렇게 이룬 재정을 신하들에게 쾌히 상으로 내렸다.

  여기서 잠깐, 위징과 고려의 서필은 왕이 내린 상을 받는 태도가 다르다. 당태종은 잘못된 정책을 반대한 위징에게 금항아리, 왕규에게는 명주 50필을 하사했다. 그런데 비슷한 사례가 고려 광종에게도 있다. 서희의 아버지 서필에게 금그릇을 하사했더니, 서필은 신하가 금그릇을 사용하면 왕은 무엇을 사용하릿까? 라며 거절했다. 반면에 위징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한편으로는 위징보다 고려의 서필이 더 충직한 신하라는 느낌이 든다.

  당태종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태자 승건이 간언을 하는 장현소를 말채찍으로 때리고 그가 칟던 북을 찢어버렸다. 그래도 간을 하자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했다. 결국 태자는 폐위된다. 자질이 없는 태자를 폐위시킨 것은 당 태종의 탁월함이다. 주어진 지위를 이용해 갑질하는 사람은 단죄함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자신의 혈육이기에 단죄하지 못하고 제위를 넘겨주었다가 나라가 망하거나 신하에 의해서 폐위되는 경우를 우리는 성종과 연산군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신은 부모의 피골음을 입으로 빨아낼 수 있는가? 당태종은 황제의 신분으로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백암성 전투에서 화살을 맞은 이사마의 상처를 입으로 빨았다. 이를 보고 장졸들이 감격해서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전쟁터에 나간 자신의 아들의 피골음을 '오기'라는 장군이 친히 입으로 빨았다는 소식을 듣자, 그 아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죽을 것이라 한탄했다고 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남성들의 감성을 이용해서 당 태종은 그들이 당 태종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숨을 버릴 수 있도록 했다. 고구려 정벌을 위해서라면 부하들의 피골음도 빨 정도로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당태종의 무서움을  느낀 마직막 사례는, 화난척하여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라는 상소문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일이다. 당태종은 큰 신의를 행하려는 것이지 속임수로 세속 사람을 가르치려는 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님을 강조하며 그 상소문을 물리친다. '한비자'에는 간사한 신하를 알아내기 위해서 거짓으로 신하를 속여서 신하의 본심을 알아보라는 글이 있다. 자신의 손톱을 숨기고 신하들에게 자신의 손톱을 찾도록하면, 한신하가 손톱을 찾았다고 손톱을 들고 온다. 그러면 그 신하는 간신으로 판명나는 것이다. 제왕학의 교본인 '한비자'와는 상반된 당태종의 사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덕치가 법치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당태종의 통치 철학 때문으로 해석해야할까? 아니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자시의 아킬레스건을 숨기기 위한 술책으로 보아야할까? 나의 생각으로는 신하를 속이라는 신하의 건의를 대놓고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득이나 쿠데타로 황위에 오른 자신이 신하들을 속이며 제위를 지키려한다면 그는 신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처지가된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다. 그리고 덕치를 표방하며 신하들의 마음을 얻는 용인술의 달이이 되어갔다.

  정관정요를 읽는 내내, 고구려를 쳐들어온 당태종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지를 뼈속 깊이 느꼈다. 수많은 적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 당태종은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자신의 적까지 품어 자신의 충직한 신하로 만드는 무서운 통치자였다.

 

2. 고구려에 대한 당태종의 집착

  정관정요 제 35편 '정벌'편은 당태종에게 고구려 정벌을 하지 말라는 간언으로 채워져 있다. 정관정요의 곳곳에 고구려 정벌의 위험성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스며들어 있다. 위징은 위나라 이극의 말을 인용하여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멸망한다.'라고 간언했다. 그런데 당태종은 위징의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태종은 너무도 전쟁을 좋아했으며, 북방민족을 정벌하여 '천가한'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또한 고구려 정벌에 과도할 정도로 몰두했다.

  그렇다고 그가  백성의 생활을 돌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당태종은 '밥을 아느냐? 농사 짓기가 힘들다. 농사 짓는 때를 빼앗지 않아야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다.', '너는 배를 아느냐? 배를 임금에 비유하고 물을 백성에 비유할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워 줄 수 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모든 일은 근본에 힘써야하고, 나라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사람은 의식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렇게 당태종은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생업을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그 스스로 말하고 있다. 더욱이 궁중이 습하니 높은 누각을 지어 거주하라는 공경대부의 말을 '많은 경비를 쓰는 것은 부모된 도리가 아니다.'라며 거절한 것이 당태종이다. 그런데 당태종은 고구려원정에 집착한다. 신하들이 고구려를 정벌해서는 안된다는 간언을 올려도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관정요'에도 나와 있듯이, 야광주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사람의 목숨이다. 재물을 사랑한다하여 재물보다 더 귀한 목숨을 잃는다면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당 태종은 당나라 백성의 목숨보다도, 고구려 땅을 더 얻고 싶어했다. 그는 고구려 원정에 당의 백성과 말을 동원해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당의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전쟁의 아비규환에서 목숨을 잃도록 했다.

  그의 모순된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가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고구려원정에 집착하지 말았어야했다. 당나라는 충분히 넓다. 그럼에도 그는 고구려 원정에 집착했다. 그가 고구려 원정에 집착한 것과 백성을 사랑한 것, 어느 것이 그의 본심일까? 당태종은 정쟁을 하기 위해서 백성을 사랑했다. 백성이 잘살아야 그들에게 군량미를 착취하고, 그들을 병사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 술을 마시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50대 분들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된다. 체력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다. 경제가 뒷받침 되어야 전쟁을 할 수 있다.

 

3. 위징을 평가하다.

  당태종 제일의 책사는 단연 '위징'이다. 어떤이는 '방현령'을 당 태종 제일의 책사로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현령은 당태종이 화를 내며 꾸짓으면 바로 잘못했다고 꼬리를 내린다. 반면에 위징은 당 태종이 꾸짖어도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해서 당 태종을 설득시킨다. 방현령에게는 없는 당당함과 탄탄한 논리력이 위징에게는 있다. 이것이 바로 충신의 조건이다. 

  위징은 '충언도 의견을 잘 절충해서 조용하고 은근하게 풍자해야한다.'라고 말한다. '한비자' 세난편이나 '카네기 인간 관계론'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올바른 말이라도 함부로 말했다가는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이 진정으로 흥미있어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를 설득해야 설득이 가능하다. 이 어려운 일을 위징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나의 거울을 잃었다.'라고 통곡했다. 당태종이 고구려원정에 실패하자, 위징이 살았다면 말렸을 것이다.라며 한탄한 사실을 보더라도 위징의 충언과 당태종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했다. 각도에 척출사를 파견하려할 때, 신하들은 '위징'을 추천했다. 당태종은 자신을 바로 잡는 사람은 위징이라며 그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위징 대신 이정을 척출사로 파견한다. 만약 그가 오래 살았다면,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국사는 변했을까? 

  그럼, 위징은 어떠한 신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가 올린 상소문을 근거로 그를 평가해보자. 위징은 '설원'을 근거로 신하를 육정과 육사로 나눈다. 바른 신하 여섯과 사악한 신하 여섯! 위징은 육정중에서 어떠한 신하일까? 공문을 준수하고 법령을 받들어 관리를 임명하고 업무를 맡길 때 뇌물을 받지 않고 녹봉은 사양하고 포상은 양보하면서 음식가지 절약하는 신하를 정신이라한다. 신하가 녹봉도 사양한다면 그 신하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신하이다. 아니면, 대기업 회장 처럼 돈이 차고 넘쳐서 녹봉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면 가능한 신하가 정신이다. 위징은 녹봉을 사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당태종이 내린 백금과 비단을 사양하지도 않았다. 그는 '정신'은 아니다.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아첨하지 않고 감히 임금의 존안을 범하면서 면전에서 임금의 과실을 말하는 신하를 '직신'이라한다. 위징은 '정신'이 아니라, '직신'이다. 직신은 왕의 미움을 받아 죽을 수 있음에도, 그는 죽지 않고 당 태종의 '거울'이 되어 당태종의 무한한 신뢰를 받았다.

 

4.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다.

  00000의 갑질 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뒤덮고 있다. 그들의 동영상과 녹취파일을 읽다보면, 과연 그들의 가정교육이 이루어지는 집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관정요'에는 소위 제벌 2세에게 귀감이 되는 격언들이 있다. 당태종은 민가에서 자라 나라를 창업한 왕은 민생의 진위를 알고 패방하지 않지만, 보위를 이은 왕은 태어나면서  부귀를 누리고 백성의 고통을 알지 못해 멸망으로 치닫는다.'고 말한다.  이는 창업주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구었기에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고난을 극복하여 기업이 잘 경영되지만, 재벌 2세, 3세는 주어진 부귀에 취하여 갑질을 하고 회사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는 현실과 너무도 유사하다.

   비단 황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공신에게도 그들의 자녀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다. '요순에게도 불초자식이 있다.' 즉, 소위 공신을 사랑하는 행동이 바로 그들의 자녀를 해치는 원인이된다. 공신자손에게 봉읍을 하사할 때도 그들의 재능과 행적을 보고 주어야한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는데도 분에 넘치는 봉읍을 준다면, 후손은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는 멸문지화를 겪게 된다. 그래서 여러 제후국의 군주로 그들을 대를 이어 책봉한다면 그들은 선조가 이룩한 고난을 망각하고 저절로 고귀함을 얻어 이를 가볍게 취급하여 대대손손 교만함과 사치함을 자행할 것이라 경계해야함을 강조한다. 자수성가한 창업주가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녀에게 세습하면서 벌어지는 폐단을 '정관정요'는 1000년 전에 예견하고 있었다.

  정관정요에는 '존엄한 신분을 굽히고 아랫사람과 교유하는 대의를 밝'힐 것을 강조한다. '깊은 궁궐에서 태어난 여인의 손에서 자란다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알지 못학 또 풍아를 깨치지도 못할것'이라고 경계의 말을 한다. 재벌이 자신의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굴수 있는 황무지를 물려주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지탄을 받지 않았을 것다. 거져 주어진 옥토는 그들에게는 더이상 옥토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일 뿐이며, 자신이 고용한 사원은 자신의 노예로 여겨질 뿐이다. 정관정요는 1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의 금수저, 00항공사의 재벌2세, 3세들에게 경종의 말을 하고 있다. '봉작을 세습케하지 않으면 현인을 등용하는 길이 넓어질 것이다.'라는 정관정요의 말은 오늘날 재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혈통에 의한 세습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부의 되물림을 없애라! 정관정요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재벌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5. '정관정요'가 던져 주는 교훈

  예절은 엄격해야할까? 간소화해야할까? 당 태종은 제왕이라도 살아서는 피휘하지 않도록 했다.과거시험을 볼 때도, 문서를 작성할 때도 역대 황제의 이름을 알아서 그 글자를 피해서 문서를 작성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 태종 이세민은 자시의 이름 '세'와 '민' 두 글자가 연이어 나오지 않으면 피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해줄 수 있는 것이 예절이다. 그 예절이 사람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면 그 예절은 간소화되고 생략해야한다. 이세민은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당신은 맹목적 사랑을 받으면 행복할 것 같은가? 당 태종이 위 의공이 북방 이 민족에게 죽어 간밖에 남지 않자, 신하 홍연이 자신의 간을 꺼낸 뒤에 의홍의 간을 자기 배속에 집어 넣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자, 위징은 예양이 지백을 위해서 조양자를 칼로 찔러 죽이려한 고사를 예로 들어, '임금이 사람을 예로 대우하는 것에 달려 있다. 어찌 사람이 없다하십니까?'라며 당태종에게 일침을 가한다. 여자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위해서 미모를 가꾸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 사실 부모 자식간에도 일방적인 사랑은 없다. 자녀가 재롱을 부리리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려 노력하기에 자녀가 더욱 예뻐보이기 시작하여 사랑을 주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며 정신병이다. 일방적인 충성을 신하에게 요구하는 당태종에게, 위징은 그러한 일방적 사랑은 없다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지를 생각하게하는 일화이다. 

  '정관정요'하면 가장 유명한 구절이 '창업과 수성 중에 어느 것이 어려운가?'라는 당 태종의 질문에 위징이 창업은 때를 만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수성은 천하를 얻은 뒤로 본래의 뜻이 교만해져서 백성은 피로해지고 나라는 쇠퇴하기에 수성이 어렵다고 대답한 고사이다. 위징의 지적은 참으로 탁월한 지적이다. 고려가 동북 9성을 개척하고도 쉽게 포기한점이나, 공민왕 시기 이성계가 요동성을 점령하고도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보더라도 '창업'보다 '수성'이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혼을 하는 것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스승의 날을 당신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존치 시켜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스승의 날 의미가 잊혀져가는 요즘, 당 태종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 태종은 황태자에게 조칙을 내려 스승을 이끌어 궁전 위로 모시게하고 직접 배례를 올리며 존중의 마음을 크게 보이라했다. 스승에 대한 존중과 감사가 있어야 참다운교육이 가능하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학부모와 학생이 늘어나는 요즘! 스승의 날을 교사가 더 부담스러워하는 현실! 속에서 당 태종의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적폐교사는 마땅히 속아내야 한다. 그들까지 옹호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이름없는 참교사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여섯가지 사악한 신하, 즉 '육사' 중에서 구신은 농봉만 탐하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부침하며 눈치를 보는 신하들이다.이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변화를 싫어한다. 이들보다 더 나쁜 신하들이 '적신'과 '망국지신'이다. 파당을 짓고 현명한 사람을 모함하고 임금의 악행이 나라안에 두루 알려지게하고 사방의 이웃나라까지 그 소문이 들리게하는 자들이다. 나라를 좀먹고 급기야는 망하게하는 신하들! 요즘도 많이 보이지 않는가? 한국의 정치인인지, 일본의 자민당 2중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자들이 '적신'이요, '망국지신'이다. 

  


  제왕학의 교과서를 말하라면, 단연 '한비자'와 '정관정요'를 꼽을 수 있다. 두 책 모두 제왕이 읽어야할 필독서이지만, 성격을 상당히 다르다. 한비자가 제왕의 관점에서 신하를 부리는 방법을 서술했다면, 정관정요는 신하의 관점에서 정치의 요체를 논한다. 신하의 말을 잘 들었던 당 태종처럼 제왕이 어진 신하의 말을 잘들어 '정관의 치세'를 다시 만들자는 관점에서 씌여진 책이 '정관정요'이다. 상당히 직설적이라서 후대의 황제들이 '정관정요'를 싫어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은 법! 제왕이라면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관정요'를 읽어야한다. 

  물론, 한국의 독자는 중국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한다. 가령, 당 태종이 '고구려를 격파'했다고 표현한 부분은 지나친 자국중심 주의의 극치이다.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쫒기듯이 도망쳐야했으며, 황제가 친히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말채직으로 갈대를 묶는 일을 도와야했다. 음란한 음악을 경계하라는 지적도, 생산력이 낮은 전통시대의 '농본주이ㅡ'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 지적으로 자본주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러한 점을 유의해서 읽는다면 '정관정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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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간관계론 (반양장)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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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힘든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한다. 이는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나의 말하는 태도를 지적하며 불만을 제기한다.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불리한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태도를 걸고 넘어진다고 판단했다. 학연과 지연면에서 직장에서 기댈곳이 없는 나에게는 깔끔한 일처리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직장일에 지칠때면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팟캐스트 '인생내공'을 들으며, 인간관계의 기본에 대해서 알게 되어었고, 인생의 많은 꿀팁들을 얻었다. 그런데, '인생내공'의 조우성 변호사가 인간관계의 고전이라며 데일 카네기의'인간관계론'을 자주 인용했다. 나의 인생에 새로운 윤활류를 칠해줄 수 있는 책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핵심을 관통하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은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이란 무엇일까?

첫째, 비난이나 비평, 불평하지  말라.

둘째,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

셋째, 다른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3가지를 얼마나 유념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너무도 기초적인 인간관계 원칙을 무시하면서 생활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비난이나 비평, 불평하지 말라.'라는 격언부터 살펴보자. 아무리 나쁜 사람도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잔혹한 살인자도 그럴진데, 하물며 보통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재'가 인간에게는 작동한다. 더 나가서 요즘 유행하는 뇌과학적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기 위해서 벌통을 걷어차 봤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성난 벌들의 역습이다. 

  '솔직하고 지지하게 칭친하라.'라는 격언을 되새겨보자. 집나간 주부에게 가출의 이유를 물으면, 가장 많은 이유가, '칭찬의 부족'이었다면 믿기는가? 인간은 칭찬받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꾸중은 잘하면서 칭찬할 일은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칭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불행한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인간은 사랑과 인정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끊임없이 인정 받고 싶어한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자. 그러고 보면,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도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하는 의문을 품어본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카네기가 지적한 인간관계의 기초가, 수많은 변주를 일으켜 많은 자기계발서들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다른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는 격언은 타인을 움직이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져야할 원칙이다. 소와 사자가 사랑을 하자, 소는 사자에게 맛있는 풀을 선물했고, 사자는 가장 맛있는 사슴고기살을 선물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자신의 성의를 무시한다며 슬퍼했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가 자신을 몰라준다고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의 입장에서 상대에게 요구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파악하는 지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유념해야할 격언이다. 


2. 나 자신을 반성하다. 

  나의 인간관계가 넓지 않다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 자신이 그랬다. 학연과 지연을 따지자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다. 나의 불평에 대해서 카네기는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관심을 귀울일 것을 당부한다. 2년 동안 다른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갖도록 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2달이 더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가? 통렬한 반성을 해본다. 어쩌면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받으려면 주어라'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타인에게 먼저 베풀어야한다. 타인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 항상 이웃과 주변의 무든 것에 감사하자! "너희가 있어 행복하고 너희가 있어 감사하다."이를 되뇌이면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자! 그것이 인간관계를 넓히는 첩경이다. 

  당신은 논쟁을 즐기는가? 논쟁을 회피하는가? 나는 논쟁을 즐긴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에서도 여성과 논쟁해서 이기려하지말 것을 당부한다. 내가 사귈 여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상대가 남자라면, 논쟁을 해도 된다는 말이군!!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이후로도 계속 논쟁을 즐겼다. 그런데, 카네기는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논쟁을 피라라고 당부한다. 나로서는 충격적인 글이었다. 논쟁을 회피하는 문화는 한국 처럼 유교적 권위에 의탁해서 자신보다 낮은 사람의 반발을 억누르려는 사회에서만 있는 현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미국인들도 인간관계를 위해서 논쟁을 피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소모적인 논쟁은 줄여야한다. 특히, 흥분해서 항의하러 오는 자는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고 논쟁하지 말자. 강아지와 싸우기 보다는 길을 비켜주는 편이 났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한편,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잘못된 한국의 권위적 문화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논쟁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다. 바로 '생산적 논쟁'이라면 논쟁을 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생산적 논쟁'이란 무엇일까? 과연 지금의 한국사회를 보다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펼쳐져야하는가?라는 종류의 논쟁은 더욱 활성화 되어야할 것이다. 토론은 없어져서는 안된다. 유대인들이 예쉬바에서 하는 하브루타도 일종의 토론이 아니던가? 생산적인 토론이 자연스러운 한국의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우리에게는 있다. 

  당신은 사람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수천달러를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는, 자신의 이름은 영원히 남기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원래 사람이름을 외우는 것에 소질이 없다며,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했다. 이제 오늘 부터 이름을 외우려 노력하자. 주말에 연수에 가서, 같은 모둠의 선생님들의 이름을 외워 보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어 보였다. 집중해서 한분 한분의 이름을 외우고,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니, 친근감은 확실히 달아올랐다. 당신도 시도해 보지 않으련가?

  상대방이 실수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나는 상대방의 실수에 "체면"을 세워주는 현명함을 발휘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할 때, 이책에 소개된 제이콥 부인은 아들과 집근처의 공사장을 청소를 한 후에, 다음날 공사장 인부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공사장 인부들에게 곧바로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암시했다. 물론 효과는 만점이었다.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팟캐스트에서도 사람은 헤어질 때,뒷정리를 잘해야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보는 사람이라고 무안을 주며 해고를 한다면, 상대는 자신에게 상처가 주어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상처를 준, 회사에 복수한다. 왜일까? 아마도 해고당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소모품 취급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 헤어지면서도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자. 헤어짐의 미학을 지키자.

  당신은 경청을 얼마나하는가? 과거 나는 경청을 하지 않았다. 타인이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으니,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카네기는 상대가 스스로 자시의 말을 하도록 경청하라고 당부한다. 만약 내가 나의 생각을 강요한다며, 그는 이에 저항할 것이다.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그 생각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부터 도전 받는 우리 자존심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자. 정치와 종교에 관해서 나의 입장을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절대 수긍하려하지 않는다. 그럼 그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하면서 가르치고, 새로운 사실을 제안할 때는 마치 그 사람이 잊어버렸던 것을 우연히 다시 생각하게 된 것 처럼 제안하라.'라는 격언을 명심하자. 강요한다고 그들이 나의 말에 수긍하지 않는다. 용수철은 누를 수록, 더욱 반발력이 강해진다. 


3. 나의 주변을 되돌아 보다. 

  '인간관계론'을 읽으면서, 달리 인간관계론을 공부하지 않고서도 인간관계를 잘맺는 주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첫인상을 좋게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정답은 '미소'이다. 항상 미소를 짓고, 상대에게 먼저 다가간다면, 상대도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 것이다. 이런 분이 같은 사무실에 있다. 최00이라는분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항상 타인과 이야기할 때, 웃으면서 경청한다.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나, 그녀는 첫인상을 좋게하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나도 웃음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군대에서 웃는 나에게 "쪼개지마!"라는 선임병의 윽박지름을 들으며, 웃음을 잃어갔다. 강압적인 군대문화는 우리사회의 웃음을 도둑질해갔다. 이제 다시 웃음을 되찾아야겠다. 우리 사회에 웃음을 되돌려 주어야겠다. 

  동기를 유발하는 가장 주된 요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일 '그 자체'이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야근을 자처하고, 주인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 집에 들어가서 아들과 놀라며 체근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 일 그자체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 일 그자체가 좋으면, 그 어떤 보상보다도 자신에게 행복을 준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싫어하는 일은 아니다. 80% 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러나, 99%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자. 언젠가 나도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리라...


4. 고전에서 배우다. 

  데일 카네기는 '공자'와 '부처'를 비롯해서, '도덕경'을 이 책의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방대한 그의 독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동양고전의 일부분을 읽는 듯한 착각을 한다.

  Begin in a friendly way. 우호적이 태도로 말을 시작하라. 라는 격언을 읽으면서, 노자의 '상선약수'가 떠올랐다. 화를 내기 보다는 우호적인 태도로 상대를 설득시키라는 이 격언은, 가장 약한 것처럼 보이는 물이 바위를 둟듯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 가장 다루기 힘든 항의자는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기 보다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조목조목 원칙을 들이대며 반박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부드러움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라! 라는 격언을 읽으면서, '한비자'의 '시우'가 떠올랐다. 나의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한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고마워하리라 생각하지 말자. 농부가 아무때나 오는 비를 달가워하지 않듯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호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장마철의 비는 홍수를 불러 일으키 듯이, 상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호의는 불쾌감을 가중시킨다. 가뭄의 단비가 농부의 갈라진 가슴을 치유하듯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줄 때만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링컨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작전실패를 한, 장군에게 비난의 편지를 섰으나, 보내지 않은 예화를 읽을 때는, 손자병법이 떠올랐다. 군주가 일선 장군의 군사작전에 간섭하지 않아야, 일선 장군은 자유로운 작전을 펼칠 수 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군대에서도 적용시킬 수 있는 책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흥미를 착고 말할라. 라는 격언은 '지피지기'를 하라는 손자병법의 말과 잘 어울렸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도, 나의 관심사와 타인의 관심사를 잘 파악하고,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추어 대화하라는 말이다. 

  고전은 진정으로 상통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고전에서 크게 깨우친다면, 그 진리는 학문과 사회의 벽을 타고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많은 지혜를 전하고 있다. '공감'의 중요성, '결정과정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도록하라.' '작은 긍정을 유도하라' 등의 수많은 꿀팁들은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랑하자! 감사하자! 나의 주변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복을 축복하며, 그들을 칭찬하자!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진리를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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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통일토크 - 남북관계 현장 30년: 이론과 실제
정세현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정세현!! 그의 이름은 외교분야의 달인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팟케스트 벙커1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특강을 들었을때, 그의 내공에 자못 놀랐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시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통일부 장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내공을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다가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급격히 화해무드로 접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위대한 여정을 살펴보고 이를 정세현의 탁월한 식견으로 그 맥락을 파악해보고 싶어졌다. 그의 식견을 느껴보자!

 

1. 우리도 변하듯, 북한도 변해왔다. 북한을 바로 알자!!

  언론에서 현실 정세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진보적인 모습의 정세현 전장관! 그는 스스로 '반공강사'였다고 말한다. 정부의 입장에서 북한의 한마디 논평도 그 곳에 있는 '저의'를 분석하고, 한국 정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강연을 했던 그가! 가장 진보적이고 식견있는 인사로 변신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흔히 보아왔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진보적으로 변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정세현은 북한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북한의 6.25 때의 북한이 아니고, 5.16 직후의 북한이 아니며, 1970년대 북한도, 1990년대 북한도 지금은 없다고 단언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으로 3대가 바뀌었는데, 어찌 북한에 변화가 없었으랴! 우리는 투철한 반공교육으로 인해서, 북한은 절대 변화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북한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냈다. 북한과 대화하려면, 변화하는 북한을 직시해야한다. 그래야 '지피(知彼) 가 가능한 것이다. 정세현은 우리가 범하는 가장 전형적인 오류를 지적해주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왜? 김일성 우상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권력욕에 의해서 독재를 정당화하고, 권력 세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세현은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소련의 스탈린 우상화, 중국의 마오쩌둥 우상화와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는 맥을 같이한다. 우상화를 통해서 모아진 힘을 경제 발전에 투입한다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거짓말을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이 상상한 것을 진실이락 믿는다. '민족', '종교' 등의 각종 이데올로기를 진실이라 믿고, 기꺼이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그 조직을 위해서 싸운다. '스탈린 우상화'를 비롯한, '김일성 우상화'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이를 소련과 북한의 인민이 믿도록하고, 이렇게 해서 모아진 힘을 경제 발전에 투입했고, 스탈린 시기, 김일성 시기에 경제 발전이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분석한다. 정세현이 '우상화'를 분석한 방식은 유발 하라리가 '상상의 관념'을 설명했을 때의 논리와 그 구조가 같았다. 현실을 단순히 '독재', '세습'이라는 논리로 바라본다면 피상적인 인식밖에는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독재자는 행복할까? 독재자는 행복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 한다. 왜일까? 절대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의심을 해야하며,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치밀해야한다. 2017년 10월 4일 부터 시작된,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의 마무리 환송 오찬에서 정세현은 김정일에게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을 건의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단번에 '실무자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말합디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남측에서 올림픽 단일팀을 제의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사전보고를 받고, 꼼꼼히 이를 살피고 준비했기에 가능한 즉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두개의 한국'에서 보았던 김일성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김영삼정권 시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직접 준비하던 김일성이 과로로 인해서 쓰러졌다는 사실은 독재자의 기본 요건이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챙기며 권력 누수를 막아야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다. 어디 김일성 뿐인가? 제3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김정은이 보여준 모습에서도 치밀한 독재자의 모습이 보여진다. 세심한 부분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연장자로 배려하고, 언론에 호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담이 끝나고 흘러나온 언론의 기사 중에서는, 만찬장에 홍준표 자유 한국당 대표가 초청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북측에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홍준표가 김정은에게 무례한 말을 하면, 허허 웃어 넘기면서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만일 김정은과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남북 정상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고한다. 정말 그들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측의 미녀 응원단들이 버스에서 갑자기 내렸다. 그녀들은 울면서 비를 맞고 있는 김정일의 플래카드를 걷었다. 장군님이 비를 맞는다며.....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세뇌교육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세뇌교육과 김일성 우상화가 미녀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미녀 응원단들이 회초리를 맞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정세현은 그녀들이 회초리를 맞는 이유를 차창 밖을 몰래 보았다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한국의 모습을 보았던 그녀들이 회초리를 맞았을 정도면, 비를 맞는 김정일 사진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이후, 북한에 돌아가서는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김정일의 사진을 들고 울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슬픈 현실을 다시금 엿보게 되었다.

 

2. 북한의 협상 전술

  김영삼 정부시기, 북한의 외교술을 신기에 가깝다라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시키는 '통미봉남'정책에 당시의 남한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약소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외교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세치의 혀로 거란군을 물러가게 했으며, 강동 6주라는 땅까지 얻었던 고려의 서희를 예로들지 않더라도 외교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협상술에는 어떤 것이 있고, 이를 이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할?

  첫째, 굴레에 쓰지 말자! 북한이 자주 쓰는 원칙이 원칙의 굴레이다. 저자 정세현은 7.4남북 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라는 원칙을 받아들인 것은 원칙의 굴레에 씌워진 결과를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은 자주를 들먹이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우리가 말하는 평화와는 다르다. 남한에서 친북한적 정권이 정권을 잡아서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일한다는 논리가 숨어있다고 한다. 자주, 평화라는 원칙 뿐만 아니라, 회담 초기에 일반적인 원칙을 말하고 이에 남한이 동의하면, 이 원칙을 빌미로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으려하는 것이 북한의 협상술이다. 이 원칙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야 우리가 원하는 협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적의 무기를 이용해서 적을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자주통일! 평화통일!을 이용해서, 역으로 북한에게 굴레를 씌울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의 협상술을 역이용하는 협상술을 개발한다면, 우리의 협상 능력은 배가될 것이다.

  둘째, 시한의 굴레에 씌이지 말자! 시한을 정해 놓고 그때까지 협상을 타결해야만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해야한다. 이것은 북한만이 자주쓰는 전술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에서 '일본군' 위안부 회담이 졸속으로 열렸다. 너무도 어이없는 졸속 회담에 많은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센 저항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어찌 정부가 우리를 핍박하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졸속 타결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 외교전문가는, 시한의 굴레에 씌워졌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미국의 오바마에게 '올해말'까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타결하겠다고 말했고, 결국 시한의 굴레 속에서 아베정권은 쉽게 타결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많은 것을 양보하는 어이없는 타결이 이뤄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에게로 전가되었다. 무능한 외교! 무능한 협상력이 어떠한 결과를 빚어내는지 우리는 피부로 느꼈다.

  셋째, 내가 놓은 덧에 내가 걸려들지 말자!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들었는가? 그런데, 이산가족의 숫자가 천만일까? 정세현 전통일부장관은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말은 대북 압박용, 대내 홍보 차원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정확한 조사를 거쳐 만들어진 숫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북의 천만 이산가족이 100명씩 만나면 언제 다만나겠는가?'라는 비판 기사가 종종 신문지상에 떠돈다. 대북 압박용, 대내 홍보용으로 '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또한, 북을 올가 매려고 만든 용어가 때로는 정부를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음에 더욱 놀랍다.

  넷째, 북한의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해라! 북한과 협상을 하면서, 북한이 남한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쏜다며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불평은 타당할까? 물론 타당한 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관심사! 저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국과 수교를 통해서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체제 보장이 된다면,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 이유가 있는가?'라는 북측의 말을 곱씹어보아야한다. 체제 안정을 위해서 강력한 협상카드를 만들기 위해서 핵을 개발하고, 이를 운반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하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다. '체제 보장'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를 문재인 정부는 잘알고 있었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을 이용해서 '한반도 운전자'가 되어 남북이 만나고, 북미를 연결시켜주었다. 물론, 미국의 트럼프가 미국 패권주의를 포기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외교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만약 트럼프가,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 패권주의를 계승했다면, 문재인 정부도 외교력 발휘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고, 북한의 주된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해서 외교력을 발휘할 때만이 좋은 외교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섯째, 받으려면 먼저 주어라! 도덕경에 이런말이 있다. 거두어들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베풀어야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 해야하고, 장차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일으켜세워야한다.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어야한다.(장욕흡지將欲歙之에 필고장지必固張之하고, 장욕약지將欲弱之에 필고강지必固强之하고 장욕폐지將欲廢之에 필고흥지必固興之하고 장욕탈지將欲奪之에 필고여지必固與之하니) 도덕경 제36장에 나와 있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얼어붙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이보다 좋은 전략이 없다. 기존의 보수 정권에서는 If ~ then 방식의 상호주의 외교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남북관계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이를 대북 포용정책으로 변경하고, 그들에게 쌀과 비료를 주었다. 그러자 북한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적힌 쌀자루를 보면서 남한에 대해서 친근감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의 평화와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진보정권들이 지속적으로 북한에게 베풀었기 때문이다. 값진 평화와 귀중한 통일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베풀어야한다. 노자와 정세현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섯째, 철저한 준비와 돌파력을 갖춰라! 외교를 비롯한 각종 협상에서 철저한 준비와 돌파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의 남북관계 성과가 있었던 것은 과거 진보정권이 탁월한 준비와 돌파력이 있었기 때문다. 가장 놀라운 것은 김대중 정부 시기에, 모의 남북 정상회담을 무려 4시간이나 갖고 있었고, 정세현은 북측 대표역할을 맡아서, 남측에서 답변하기 힘든,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해서 말하면서 공략해들어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참모진이 준비한 자료를 보지도 않고 10분 이상 답변을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나이가 76세였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명석하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해서 놀랍지 않지만, 나이가 76세인데도 불구하고 명석한 두뇌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비결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해오던 그의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

  진보정권의 돌파력도 대단했다. 금강산 관광선 출항일자를 결정할때, 정세현 장관은 국제정세를 생각해서 미루려했으나, 외교안보수석은 APEC 정상들이 모이는 11월 18일을 출항일로 잡았다. 많은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클린턴이 축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돌파력이 없었던들, 남북관계 개선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3. 통일의 필요성과 교훈

  어느 택시기사가 '남한과 북한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것 같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의 좋은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것이다.'라고 장담했다. 너무도 어이가 없었던 나는, 전쟁이 일어나면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며, 만약 핵발전소에 스커드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한반도는 누구도 살수 없는 땅이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놀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주변에는 어리석은 택시기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스타크래프트나 워게임 처럼 전쟁을 생각하고 있다. 전쟁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폭비용을 계산한적이 있다. 기간은 단3일, 인명피해 150만명, 전비 1000억 달러, 복구기가 10년이상, 복구비용 3000억 달러이상이 든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원로'라는 인간들의 말이 생각난다. 그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외국가서 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말을 한 것일까? 어찌 전쟁의 비극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전쟁을 두려워해야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절실히 할수 있지 않은가?

  박근혜 지지 집회에는 태극기 뿐만 아니라, 성조기를 들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미국이 우리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볼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정세현은 미국은 '처 삼촌 벌초하듯이' 우리문제를 다룬다고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보수파여! 그대들이 그토록 믿고 있는 미국은 한국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한국문제는 그들의 수많은 의제중에 하나일 뿐이다. 돈가진자가 자녀를 잘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이 있는자라야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다. 한국문제에 대해서 사랑과 애정이 가장 많은 자는 한국인이다. 결코 미국일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국익을 위해서 한국문제를 테이불에 올려 놓고 협상을 하며, 자국에게 이로운 결정을 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정과 애정, 관심이 있는 자는 바로 우리뿐이다.

  그렇다면, 우선 왜? 통일을 해야하는지 알아보자. 2010년 한국에 왔던 GE-인터네날의 베칼리(Beccalli) 회장은 그의 연설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스위치가 되어 있는 한국이 살 길은기술, 세계화, 북한 이렇게 세가지다.'라고 말했다. 통일의 필요성은 북한에게만 절실한 것이 아니다. 인구절벽! 제조업 절벽!에 휩싸여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돌파구는 통일인 것이다. 특히 남북 교역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떠올려보자. 물론, 이명박 정부까지의 통계를 보았을 때이다. 이책이 이명박 정부 까지의 데이터만 있기 때문에 이를 양해바란다. 대북지원 규모는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많았으나, 남북은 반입 반출량은 보수정권인 이명받 정권시기에 가장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 사실은 남북의 교역이 서로에게 많은 이익이 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통일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다. 또한, 반드시 윈-윈 게임으로 만들어야한다.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독재자들의 장기게임에 국민이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1972년 12월 27일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남한에서는 유신헌법에 의해서 1972년 12월 23일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72년 12월 27일에 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같은날!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김일성은 주석에 취임한다. 7.4 남북 공동성명에 싸인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들은 국민의 염원인 통일을 자신의 독재에 이용하며, 날짜까지 맞추며 독재행보를 했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있어야 되겠는가?

  그럼, 통일은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정세현은 남북이 서로를 용납하는 사용성, 서로 융합하는 상융성, 서로 보충하는 상보성이 갖춰져야 통일을 논의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정치적인 통일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옷도 벗지 않고 목욕을 하려는 미련한 짓이다. 먼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하나로 융합하려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때만이 통일을 논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북한을 떠안아야할까? 정세현은 바로 그 통일비용을 '일본'이 의뢰하지도 않았는데, 계산했다는 점이다. 왜? 일본이 먼저 통일비용을 계산했는가? 일본은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일본 극우파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경제가 살아닌다는 망발도 서슴치 않고 말한다. 결국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계산은 일본의 통일 방해 공작인 셈이다.

  통일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동독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다. 통일이 정치 논리에 빠지지 않아야했으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동독과 서독의 화폐통합을 1:1로 해버렸다. 실정은 4:1인데, 이를 1:1로 교환했으니, 동독의 인건비는 상승했고 동독인들을 고용한다고 해서 이익을 보는 기업은 없어졌다. 또한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 출신 주민의 동독 땅소유를 인정했다. 결국, 땅값이 올라가고 그로인해서 동독에는 비싼 값을 치루고 공장을 세울 기업이 없게 된다. 동독의 실업률은 높아지고, 동서독의 갈등은 높아졌다. 동독에서 배우자. 그들을 반면교사로 활용한다면 통일비용은 줄어들고, 통일의 씨너지는 높아질 것이다.

 

4. '두개의 한국', '한국사'교과서와 비교

  이 책은 '두개의 한국'이라는 책과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책을 비교하게 된다. '대구의 한국'이 밖에서본 남북한의 대립과 화해의 역사라면, '정세현의 통일토크'는 안에서 남북관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땀이 담긴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두개의 한국'에서는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때 남북 정상회담을 시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를 현장성이 강한 이 책에서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에서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은 한마디 설명도 없었으며, 1990년대 노태우 정부에서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노력은 북한의 화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나온 해프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두개의 한국'이 밖에서 바라본 것이기에, '정세현의 통일 토크'라는 책의 현장성과 정확성을 갖기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시기에 남북정상회담 준비설에 관심이 가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은 우리 교과서에서의 서술내용과 다른 내용도 있다. 남북 조절위원회가 중단된 이율르 교과서에서는 팀스피릿 훈련을 빌미로 북한이 중단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정세현은 북한이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빌미로 '비도덕적인 정권'과 대화는 무의미하다며 중단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 아마도 둘다일듯 싶다. 남북 조절위원회 중단 이유가 하나일 필요는 없으니까...

  1983년 아웅산 테러를 기억하는가?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이었던 나는 방송을 통해서, 테러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수업도중 묵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1984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23회 LA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구성 협의가 있었다. 정세현은 북한에 면죄부를 준다며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협의를 받아들였다. 정세현은 이를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두개의 한국'이라는 책에서는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협상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두개의 한국'의 저자 돈 오퍼도퍼의 분석이 옳은 듯 싶다. 밖에서 본 시각이, 안에서본 시각보다 정확한 경우도 있다. 숲안에서는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246쪽에 '20010년'이라는 오타가 있다. 이를 2010년으로 수정하길 바란다. 이러한 오타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나에게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틔이게 해주었다. 정세현은 고등학교 선생님이 약소국에서 애국하는 길은 외교관이 되어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게 원조를 많이 받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가슴에 담고 외교학과에 진학한다. 그는 대학에서 이용희 교수로부터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국제 정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통일 문제와 관련있다. (중략) 한국에서 국제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입장이 뚜렷해야 한다.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혼동하면 안된다. 항상 '안'과'밖'을 구분하며 '내 나라'입장에서 유불리를 가릴 줄 아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이 말을 1971년 4월 18일 7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는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 연설을 통해서 그 참의미를 개달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참다운 외교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 김대중을 만나서 통일부 장관이 되었다. 그뒤, 노무현 정권에서도 통일부 장관이 되었으며, 지금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많은 조언을 국민에게 해주고 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살라는 계시를 받고 사는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통일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제2, 제3의 정세현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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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5-18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짜 좋은 책 리뷰 잘봤습니다. 서평이 매우 길어 어디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2003년 북한 공연단 그건 일부러 오바한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몇몇 탈북자분들에게 물어본 결과 일반북한사람들이 지도자가 있는 그런 현수막가지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즉 쉽게말해서 2003년 북측응원단이 보였던 논리대로라면 평양 김일성광장에 있는 동상도 비못맞게 우산써야하고 비오는날 김정일 김일성 현수막도 못들고 김씨일가가 들어간 것들은 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무튼 정세현 선생이 쓴 책이다 보니 정말 읽고 싶네요. 몇달전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정세현 선생께서 북에 대해 하는 얘기를 봤는데 정말 옳은 말씀만 하시더군요.

아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진정한 자유는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논하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 부터라 봅니다.

전 북한의 광신도적인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을 안하진 않지만 단순한 반북프로파간다적인 것들은 진심으로 혐오합니다. 그렇기에 전 북한을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려하지만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제 주관을 피력하면 쉽사리 종북 좌파 빨갱이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일반인들에게 까지요.

하루빨리 박정희식 반공적폐를 청산하고 억압받지 않으며 북한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논하고 주장을 피력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나루 2018-05-18 04:52   좋아요 0 | URL
관심 갖고 꼼꼼히 읽으셨네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NamGiKim 2018-05-18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례하겠지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리뷰 퍼가서 제 페이스북에 공유해도 될까요?

강나루 2018-05-18 04:50   좋아요 1 | URL
네 출처만 밝힌다면 좋아요

NamGiKim 2018-05-18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처 밝히고 공유할께요.ㅎㅎ
 
세상 벽암록
윤용진 지음 / 애니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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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문관'을 강신주 방식으로 풀어낸,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 선문답에 대한 책들을 더 읽어 보고 싶었다. 사실 강신주가 '벽암록'을 비롯한 선문답 관련 서적들에 관한 책을 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선문답책들이 쉽게 풀어 놓았다고 말들하지만,  강신주 처럼 쉬우면서도 깊이있는 설명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깊으면서도 쉽게 글을 쓴다는 것은 왠만한 고수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대려도 강신주는 새로운 선문답 관련 책들을 내놓지 않고 있다.그를 기다리느니, 다른 책들을 읽으며 갈증을 해소해 보기로 결심했다. 푸른 바위위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책제목이 '벽암록'이다. 5권으로 풀어 놓은 벽암록이 있지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마추어가 쉽게 풀이한 '세상 벽암록'을 선택해다. 과연 이책은 선문답에 대한 나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었을까?


1.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조린다.
  강신주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를 읽고 이 책을 읽으니, 몇개의 화두는 풀 수가 있었고, 몇개는 저자 윤용진의 풀이를 읽고서 이해를 했다. 그런데, 나의 풀이와 저자 윤용진의 풀이가 다른 부분이 있다. 
  제2칙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에 대한 풀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간택만을 꺼리면 된다. 도의 경지를 말하려는 것도 간택이다. 그러니 도는 명백함도 없다. 라는 조주화상의 말에 수행승이, '명백함이 없다면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조주화상은 '나는 모른다.'라고 답한다. 이에 대해서 저자 윤용진은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크다고 할 수 있는가?', '도 또한 그러하지 않는가?'라고 풀이한다. 이러한 풀이가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행승의 입장에서는 윤용진의 풀이가 오히려 궁금증을 더해주지 않을까?

  도는 간택을 꺼린다. 도의 경지를 말하려는 것도 간택이다. 간택하지 않으니 도는 명백함도 있을 수 없다. 노자가 말했지 않은가? 도를 도라하면 도라할 수 없다고.... 인간의 개념으로 도를 명백히 규정한다면 도는 하나의 도그마로 떨어진다. 인간의 도그마에 의해서 규정된 도를 과연 도라할 수 있겠는가? 한예를 들어보자. 조선 후기 송시열을 중심으로한 노론세력에 의해서 절대화되고 교조적으로 변한 조선의 성리학을 유학의 정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은 주자와 송시열의 사상만을 정통으로 생각하며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한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기까지 했지 않는가? 그들을 학자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고 동의하지 않았다고 칼을 들이 대는 행동은 파시스트들이나 하는 야만적인 행동이다. 절대화된 도는 도가 아닌 것이다.

  제3칙 일면 월면 (日面佛 月面佛)에 대한 풀이도 동의할 수 없다. 몸이 아파 누워있는 마조화상에게 원주스님이 '법체가 어떠하십니까?'라고 묻자, 마조화상이 '일면 월면 (日面佛 月面佛) 이네.'라고 답한다. 일면불의 수명은 단 하루요. 월면불의 수명은 8천 1백세이다. 윤용진은 이를 '수명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풀이한다. 그럴까? 마조화상의 말씀을 너무 낮은 수준에서 풀이한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승에서의 삶은 하루 같이 짧지만(일면불(日面佛)), 저승에서의 삶 혹은 윤회의 삶은 억겁의 시간이다.(월면 (月面佛))라고 해석해야하지 않을까? 마조화상은 지금 이순간의 삶보다는 우주적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조망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각에서 원주스님의 말에 답하고 있다. 불교의 스케일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제20칙 거기엔 뜻이 없다.의 풀이는 너무 의아스럽다. 용아납자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취미화상이 선판을 가져오라 한다. 용아납자에게 선판을 받아 들고는 즉시 내려쳤다. 이를 윤용진은 "분명 거기엔 아무런 뜻도 없다."라고 풀이했다."라고 풀이한다. 선판과 포단을 내리친 것이 어찌, '거기엔 아무런 뜻도 없다.'라고 풀이되는가? 선판과 포단은 참선을 할 때 필요한 것들이다. 나에게 묻지 말고, 네 스스로 좌선하여 깨달으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용아납자'를 깨우치는 스승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제29칙 온 세상이 파멸할 때라는 주제는 불교를 순응적인 종교로 오해하기 쉽도록 풀이를 해놓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행자가 '온 세앙이 파멸할 때' 그것을 따라가겠다고 말하자, 대수화상이 '따라가라!'라고 말한다. 이를 윤용진은 '그날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풀이했다. 얼마나 순응적인 풀이인가! 나는 풀이를 달리한다. 불교의 생각의 넓이와 폭은 헤아릴 수가 없다. 미륵보살도 56억 8천만년 후에 이 세상에 오신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하기에 온 세상이 파멸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금의 우주가 사라지고, 새로운 우주가 생성되는 새로운 종말이자, 새로운 시작의 시점이다. 그러하기에 대우주적 순환 속에서 온 세상의 파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수행자가 '그것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대수화상은 '따라가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제63칙 남전의 일도양단에 대한 풀이도 저자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 선승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서로 다투자. 남전화상이 고양이를 잡아들고서, '말할 수 있다면 이 고양이를 절단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선승들이 말이 없자, 남전화상은 칼로 고양이를 두 동강 내어버렸다. 이를 윤용진은 '한번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듯이 한번 죽은 고양이도 다시 살아올 수 없다.'라고 풀이한다. 남전화상이 분열된 선승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고양이의 생명을 거두었다는 풀이로는 남전화상의 의도를 다 설명할 수 없어 보인다. 고양이에 대한 집착이 선승들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더 나아가서 선승들의 수행을 방해할 것이다. 그 집착을 없애려 고양이를 죽였다고 풀이해야 보다 근본적인 풀이가 되지 않을까?

 

2. 불친절한 용진씨

  이 책은 대중을 위해서 씌여졌다. 그런데,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대중들을 위해서 보다 친절한 풀이를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제43칙 산놀이를 설명하면서 '오노봉'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또한 제69칙 남전의 일원상 또한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전화상이 혜충국사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깨달은 바가 있어, 혜충국사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라 풀이한다. 그렇다면, 남전화상이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설명해주어야한다. 그러나, 저자 윤용진은 이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 제62칙 우주 가운데 보물은 원문과 저자의 설명을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책에는 우리가 한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혜초"라는 인물의 이름도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혜초가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설명해 놓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화두의 내용을 살펴보면, 혜초스님이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문익화상이 '네가 혜초니라.'라고 말했다. 저자는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자신이 있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문익화상이 일깨우고자 했던 참된 의미는 '네가 부처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려한 것이 아닐까?

  저자 윤용진이 스스로 밝혔듯이, 불교 철학자도 아니요, 스님도 아니기에 깊이 있는 설명을 바랬던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다음에 '벽암록'의 본칙과 송, 수시, 착어, 평창까지 자세히 설명해 놓은 책을 읽을 때, 이 책과 비교하면서 나름의 이해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책은 벽암록의 끝이아니라, 시작점이 셈이다.

 

  불교에 많은 관심이 있는 윤용진이 심혈을 기울여 풀이를 달아 놓았다. 여행을 하면서 틈틈히 볼 수 있는 책이다. 하나의 화두를 읽고 그 뜻풀이를 하고, 이를 윤용진의 풀이와 비교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선문답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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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무척 흥미로운 인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를 고려를 무너 뜨린 역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세계관도 성장하는 법!! 그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장했다. '왕조의 설계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를 만나고 싶어서, 몇년전에 '인간 정도전(문철영)'을 읽었다. 이제 그를 다시한번 만나고 싶어서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라는 책을 꺼내 읽었다. 이덕일 특유의 글재주로 풀어낸 '정도전'을 만나고 싶었다. 이덕일이 바라본 정도전은 어떤 모습일까?

 

1. 이덕일만의 필법

  이전에 읽었던 '인간 정도전'이라는 책보다 이 책은 확실히 흡입력이 있다. 정도전을 다년간 연구한 교수의 책과 비교해도 그 깊이가 절대 얕지 않았다.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제작진과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묶어낸 이 책에는 정도전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배경이 되는 토지문제와 성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이 서술되어 있다. 연기자들이 당시 시대를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하다 보니, 정도전의 숨결보다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고민들을 강의에 담아내려 노력한 듯 하다.

  이덕일의 필법이 흡입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를 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 말했다. 이덕일은 과거의 혁사를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소강사회'를 설명하면서, 현재의 스웨덴을 언급한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그의 설명방식은 역사와 마주하면서 오늘을 생각하고 내일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가 이덕일의 필법에 빠져들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덕일의 필법은 이책을 마무리하면서 빛을 발산한다. 고려말의 상황을 설명하며,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현실을 직면하고 우리가 나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고려의 구가세족이 다수 백성의 토지를 빼앗아 자신들 만의 나라를 만든 결과 고려는 망하고 고려의 왕족들도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지적하며, 부와 권력을 잡은 특권세력이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하는 오늘과 대비시킨다. 오늘날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질문하며 글을 맺는다. 독자들은 깊은 여운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이덕일 필법의 강점이다.

 

2. 알을 깨고 나오자!

  이덕일은 '태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정도전의 행적을 지우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한다. 정도전을 태종 이방원이 반역자로 규정하고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이 행적을 지우지 않은 것은, 정도전이 조선 건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대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초 사관들의 건강한 역사인식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역사를 자기식대로 창조하여 가르치려 했던 '국정화 프로잭트'를 떠올리면, 조선초 사관들의 역사인식이 오늘보다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뿐이아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움을 받아 왜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없다. 왜? 없겠는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기록을 남겨 놓을 때,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록을 없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광개토대왕릉비가 없었다면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초 사관의 건전함이 없었다면,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에 관한 많은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지와라 세이카를 아는가? 모른다면 '강항'은 아는가? 역사에 관심이 있는분이라면 강항의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강항은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가서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주자학을 가르쳤다. 일본에 주자학을 전해준 강항을 생각하며 우리는 많은 우월감을 갖는다. 그러나 그후 일본의 학문은 일취월장하게 된다. 반면 조선의 성리학은 '성리학 유일사상'으로 파탄을 맞이한다. 윤휴가 주자와 다른 주장을 했다고 해서, 그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여버렸다. 우리가 일본에게 문화를 전수해주었고, 일본은 우리의 아류라는 우월감에 취해있을 때, 일본의 이토 진사이는 상인계급의 시각으로 논어를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덕일은 우리에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당부한다. 무조건적인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진 우리를 질타하고 있다. 이덕일이 강한 민족주의 사학자라고 평가한 내게는 이덕일의 이러한 주장이 너무도 신선했다. 우리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여! 라고 주장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덕일은 우리에게 냉정히 역사를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우리의 단단한 선입견이라는 껍질을 벗으라고 망치를 휘두르고 있다.

 

3. 아쉬운점

 이덕일의 책을 읽으며 두가지 아쉬운점이 발견되었다. 75쪽에 '예기' 일부분을 인용한다.

"貨惡其弃於地也 不必藏於 그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은 미워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몸기()자를 써야하는데, 이미이() 자를 써버렸다. 이를 바로 잡으면,

"貨惡其弃於地也 不必藏於己"라고 써야한다. 물론,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놓친 사소한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소한 실수를 줄여주길 바란다.

  이덕일은 과전법을 비롯해서 고려와 조선의 토지제도를 자세히 설명했다. 각종 제도들은 글로만 이해하기에는 무척 힘든 것이 사실이다. 독자를 위해서 도표를 그려서 쉽게 설명해주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이덕일의 책이 읽기 쉽고 재미있다는 강점이 있으나, 독자를 위해서 도표를 그려 제도나 개념들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은 결여되어 있다. 도표를 첨가하는 친절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두번째 만나는 '정도전'!! 그를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유는, 우리 현실이 고려말의 현실과 닮아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전과 같은 위대한 개혁가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리가 정도전이 되어 우리 현실을 하나하나 개혁해 간다면, 고려말과 같은 소용돌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지난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시민들의 모습은 정도전이 부활한 듯한 모습이었다. 고려말에는 정도전을 비롯한 소수의 혁명파 사대부들이 개혁을 추진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다수의 민중들이 혁명을 요구하며 혁명을 추동하고 있다. 이점이 고려말의 현실보다 오늘의 현실이 더 희망적인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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