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와 '히말라야의 눈물'
옛날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지금도 의문이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오르려고 하는지. 정말 죽기살기로 죽을똥 살똥 오르고 또 오른다. 정상을 정복한다고 해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뭐 협찬이나 스폰 이런 것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오르는 산악인들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한다. 저기 산이 있으니 오를 수밖에. 산이 어디로 옮겨갈 수도 없고 인간의 마음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니 도리도리 있다없다? 없다. 속수무책이다.
아둔한 소생의 짧은 소견으로는 산악인들을 기어코 오르도록 격려하고 조장하는 동력은 바로 그 자신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타는 욕망일 것이다. 밥도 쌀도 나오지 않는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그 눈덮인 절정을 향하는 마음은 어쩌면 신앙일 수도 있다. 욕망은 집념을 낳고 신앙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의 그 엄청난 노고와 희생이 과연 누구에게 이로울 것인가 의문이다. 인류의 행복에 기여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 가족이나 친구들 - 에게 과연 무엇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다만 자신의 마음을 흡족함으로 채웠을 뿐이다. 물론 그 집념과 용기에서 희망을 얻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나 그들 대부분은 아마도 산으로 갈 사람들일 것이다.
등정의 과정에서 인듀어런스호에서 있었던 일들과 유사한 감동과 눈물의 드라마도 있었고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결고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여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 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말라야 14좌나 아이거 북벽 등에 도전했다가 혹은 성공하고 혹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영화보다도 소설보다도 더 극적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클라이머 보나티가 아이거 북벽 등반중에 부상을 입고 등반을 포기하며 했다는 그 유명한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산의 등정도 인간의 생명 만큼 귀중하지는 않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빛의 이면에는 어둠이 있고 영광 뒤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은 우선 본인 마음에 아주 흡족함을 얻었을 것이고, 나아가 인간 한계에 도전한 불굴의 정신으로 영웅의 칭호를 받고 나아가 전설의 성에 입성하게 될 것이나 그 아름다운 성 아래로는 가족들의 눈물과 탄식이 넘쳐흘러 안개 자욱한 강을 이룰 것이다. 그가 히말라야에 한 번 갈 때마다 그(혹은 그녀)의 아내나 남편 혹은 부모나 자식은 바짝 마른 입술에 녹아난 애간장과 까맣게 탄 속을 하고 하루이틀사흘 한달두달세달 한없이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실재로 몇몇은 돌아오지 못했고 혹은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채 돌아왔다.
석가는 득도를 하고자 하는, 해탈하고자 하는,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엄청난 욕망을 향해 매진 용진 약진하여 결국 욕망을 성취해내었다. 부처가 된 것이다. 욕망을 버려서 해탈한 것이 아니라 욕망에 집착하여 얻은 것이다. 뭐 말장난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연이나 소생은 다시 묻는다. 석가의 득도는 사부대중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산악인의 성취는 과연 누구에게 이로움이 되었던가? 맹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후가 맹자에게 “선생이 저에게 오셨으니 이제 우리나라에 어떤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어찌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의로움’이 있을 뿐입니다.”
히말라야 14좌의 면면을 소개해 올린다. 그야말로 기라성이라는 표현으로도 한참 모자란다. 인테넷에 히말라야 14좌라고 치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1. 에베레스트. 네팔과 중국 국경에 위치. 높이는 8,848m. 초등은 1953년에 이루어졌다. 초등자는 그 유명한 영국의 힐러리경과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다.
2. k-2. 파키스탄에 위치. 높이는 8,611m. 1954년 이탈리아 원정대가 초등에 성공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3 김병준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정상에 올랐다.
3. 칸첸중가. 네팔에 위치 높이는 8,586m. 네팔인들 최고의 성역으로 간주되는 산으로 현지인들은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 1955년 찰스 에반스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서 초등이 되었는데 등정자는 성역을 밟지 말아달라는 현지인의 부탁을 받아들여 정상을 몇 걸음 앞둔 지점에서 등반을 멈추었다고 한다.
4. 로체. 네팔에 위치 높이는 8,516m. 초등은 1956년 에글러가 지휘하는 스위스 원정대에 의해 5월 18일 이루어 졌는데 루이징거와 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해서 정상에 도달했다
5. 마칼루. 네팔과 중국 국경에 위치. 높이는 8,463m 1955년 봄 프랑스 원정대의 J. 프랑코는 9명의 전 대원을 3개 팀으로 나뉘어 연속으로 정상에 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가을 한국산악회의 허영호씨가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6. 초우유. 네팔에 위치. 높이는 8,201m. ‘여신이 거처하는 곳'이란 이름을 가진 우아한 산이다. 1954년 오스트리아 등반대에 의해 초등이 이루어졌다.
7. 다울라기리. 네팔중부에 위치. 높이는 8,167m. 1960년에는 막스 아이젤린이 조직한 스위스 원정대가 5월 13일에 초등에 성공했다
8. 마나슬루. 네팔중부에 위치. 높이는 8,163m. 1956년 마키가 이끄는 일본 원정대의 이마니시와 셰르파 걀첸 노르부가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1972년 김정섭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는 등반 중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10명의 셰르파가 사망하는 사고를 당했다.
9. 낭가 파르밧. 파키스탄에 위치. 높이는 8,125m. 낭가 파르밧의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으로 나눠져 있으며 세계 최초로 8000m이상의 14봉을 최초로 완등한 라인 홀트 메스너도 이곳에서 동생을 잃었다
10. 안나푸르나. 네팔에 위치, 높이는 8,091m 1950년 모리스 에르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본래 공격 목표였던 다울라기리의 등반로를 정찰하기 위해 안나푸르나로 진입했다가 등반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변경, 부적절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감행하여 6월 3일에 정상 정복에 성공하였다.
11. 가셔브룸. 파키스탄에 위치. 높이는 8,068m. k5라는 측량명을 가지고 있다. 1975년 베이스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 홀트 메스너와 패트 하벨러가 등정에 성공. 이 등정은 최초로 무산소 등정으로 이루어진 알파인 방식이었다
12. 브로드 피크. 파키스탄에 위치. 높이는 8,047m. 1957년 슈무크의 지휘 아래 헤르만 불, 슈무크, 디엠 베르거, 빈터 슈텔러 4인조가 최초로 정상에 올랐다.
13. 가셔브룸2.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에 위치. 높이는 8,035m. 측량부호 k4. 1956년에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모라벡의 지휘아래 남서릉을 경유하여 초등에 성공
14. 시샤팡마. 중국 티벳에 위치. 높이는 8,012m. 8,000m이상의 고봉 중 유일하게 중국측에 속해 있어 가장 늦게 등정이 이뤄졌다. 중국 원정대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4년 북면 야북캉가길라 빙하를 넘어 정상 정복에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