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여행 중 8.8일 날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이 터키 이스람 예술 박물관이라고 앞서 이야기했다. 이 박물관은 1524년에 지어진 건물로 원래는 오스만 제국의 최고 전성기인 슐레이만 대제 시절의 재상인 이브라힘 파샤의 궁전이다.(왜 저택이라하지 않고 궁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금일은 술레이만 대제와 이브라함 재상, 술레이만의 아내였던 록셀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술레이만은 '솔로몬'의 터키식 발음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슬람은 그리스도교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지혜로운 유대의 왕 솔로몬은 무슬림들에게도 역시 본받아야 할 왕인 것이다. 술레이만은 1520년 즉위해서 장장 46년간 제위에 있었다. 평생 13차례의 대정벌을 감행했고 결국 전장에서 죽었다. 1521년 10만 대군을 동원해 베오그라드를 함락시키고 1522년에는 로도스섬을 점령한다. 로도스는 제주도의 3/4정도 크기로 아나톨리아반도 바로 턱 밑에 위치하고 있는 섬인데 당시에는 베네치아령으로 성요한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어 오스만제국으로서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같은 존재였다. 대제는 6개월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난공불락의 섬을 점령하지만 불굴의 항전에 탄복하여 항복한 기사들이 무사히 섬을 빠져나갈 수 있게 온정을 베풀었다. 기사들은 그 후에 몰타 섬에 정착하고, 몇 십년 후에 다시 몰타섬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 공방전에서는 술탄의 군대가 패한다.
1529년과 1532년 두 차례에 걸쳐 빈을 포위 공격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압박하고 술탄의 위엄을 만방에 떨쳤지만 길어진 보급선과 악천후 등으로 끝내 빈을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이 포위전 때 커피가 유럽으로 처음 전해졌다고 한다. 1538년 해적출신인 오스만의 제독 바르바로사는 교황,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유럽 연합함대를 그리스 북서부 프레베자에서 맞아 대승을 거둔다. 프레베자 해전이다. 이 해전으로 오스만제국은 1571년 레판토 에서 유럽 연합함대에 완패할 때까지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게 된다. 술탄의 군대는 동쪽으로도 진군했다. 1534년, 1548년 1554년 세 차례의 원정을 통해 대제는 아덴, 예맨, 바그다드와 이라크의 대부분, 아르메니아 서부, 소아시아 동부 등을 점령했지만 결정적으로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를 패망시키지는 못했다.
대제의 치세기간 동안에 제국은 문화적으로도 그야말로 백화만발한 황금기를 구가했다. 술래이만 자신이 무하비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기도 했는데 록셀란에게 바친 연애시도 전해지고 있다. 슐레이만 대제 이전의 오스만 제국의 문화는 주로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대제 이후로는 오스만 제국 고유의 예술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건축분야에서는 오스만의 대 건축가이자 이슬람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미마르 시난이 크게 활약했다. 시난은 대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300여개 건축물을 지었다. 구시가지에 있는 술레이마니예 모스크는 시난의 걸작품 중 하나다. 대제는 또한 법률을 집대성하는 등 법체계 확립에 혁혁한 공적이 있어 ‘카누니’ 즉 입법자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대제의 사랑은 순애보에 가깝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제의 딸로 전쟁 중 노예로 잡혀 술탄의 하렘으로 보내진 록셀란이란 여자에게 매혹당한 대제는 술탄은 전통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관습을 깨고 록셀란과 정식으로 혼인을 하고 평생 일부일처를 고수했다. 물론 하렘의 다른 여자들을 전혀 만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대제는 두 번 결혼하지 않았으며 그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록셀란은 5남 1녀를 낳았다. 왕실의 다산은 축복이자 유혈의 씨앗이다. 보위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골육간의 상쟁은 왕실의 피를 타고 태어난 자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대제가 하렘의 다른 여인에게서 얻은 첫째 아들 무스타파는 록셀란의 음모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된다. 1553년의 일이다. 무스타파가 죽자 이복 형을 몹시 따랐던 록셀란의 막내아들 지한기르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지한기르는 곱사등이였다고 하는데 자살했다고도 한다.) 셀림과 바예지드가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다가 바예지드는 패하여 처형되고 셀림은 황태자가 된다. 록셀란은 1558년에 눈을 감는다. 8년 후인 1566년 대제도 원정 중에 죽어서 록셀란과 함께 슐레이마니예 모스크에 묻혔다.
이브라힘 파샤는 그리스 출신으로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렸다가 우연한 기회에 술레이만 대제가 아직 왕자였던 시절에 만나서 그의 시동이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심지어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였다는 소문도 있다. 이브라힘은 술레이만이 술탄에 즉위한 지 삼년만인 1523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제국의 대재상이 된다. 이브라힘은 심지어‘다른 대신들의 눈도 있으니 제발 좀 천천히 승진시켜 달라’고 술탄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어지간 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런 부탁 한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뭐 물론 그런 일이야 내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겠지만.....
어쨋든 대단한 이브라힘은 이듬해에는 술레이만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하지만 어쩔것이냐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권력은 아편과도 같아서 이브라힘도 처음의 겸손함과 현명함을 잃었고, 대 페르시아 전쟁에서 일부 실책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려는 록셀란의 음모에 말려 결국 1536년 술탄의 묵인 하에 암살된다. 슐레이만은 이브라힘에게 자신이 보위에 있는 동안은 절대 그대를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다고 하지만 권력 앞에서 맹세나 약속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아아아!!! 새끼손가락 약속은 깨어지고.....하지만 카누니(입법자)의 호칭으로 불리는 술래이만이다. 대제는 맹세가 마음에 걸려 율법학자들과 상담도 했다고 한다. 상담의 결과는 맹세를 깨는 것에 대해 신에게 회개하는 의미로 모스크에 기부를 하라는 것.
록셀란도 이브라힘과 마찬가지로 노예출신이다. 흔히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부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전쟁 통에 포로로 잡혀 술탄의 하렘으로 보내진다. 기록에 의하면 록셀란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우아했다.” 그녀는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명랑한 여인 즉 후렘이란 별명을 얻었다. 물론 록셀란의 초상화도 몇 점 남아있다. 이스탄불 여행 중에 여러 박물관의 기념품 샵에서 록셀란의 초상화가 커다랗게 인쇄된, 지금은 망해버린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화유산’ 크기 만한 도서를 여러 권 본 적이 있다. 책 이야기를 하니 지금와서 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 거대하고 멋진 장정의 록셀란의 이야기 책이나 이슬람 보물에 관한 책이나 박물관에 관한 책을 한 권도 못 산 것이다. 물론 작은 크기의 책은 몇 권 사긴 샀지만.
록셀란이 술레이만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하렘에는 대제의 총애를 받아 무스타파라는 아들까지 낳은 마히데브란(혹은 귈바하르)이라는 여성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록셀란은 하렘 내의 암투에서 승리하여 대제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술레이만은 하렘의 여인들과 결혼하지 않는 오스만의 전통을 무시하고 록셀란과 정식으로 혼인을 한다. 명랑한 여인은 노예의 신분에서 황후가 된 것이다. 록셀란은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궁중 암투에 뛰어들면서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먼저 대제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이브라힘 대재상을 암살하는데 개입한다. 물론 재상 본인의 잘못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록셀란과 재상의 독주를 시기하는 세력들의 영향이 결국 제상을 파멸로 몰았다. 더구나 재상은 대제의 장자인 무스타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록셀란은 또한 인품과 능력이 뛰어났던 무스타파를 음모로 엮어 반역죄로 처형하는데도 깊이 관여한다.
록셀란은 5남 1녀를 두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일찍 죽었다. 또 이복형인 무스타파를 몹시 따랐던 막내 지한기르는 무스타파가 죽자 상심하여 앓다가 죽었다. 또 다른 아들들인 셀림과 바예지드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서로 각축하다 결국 바예지드는 처형되고 셀림이 다음 술탄으로 등극한다. 셀림은 술주정뱅이였다고 한다. 록셀란은 1558년에 죽어서 다행히도 아들 바예지드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또 다른 아들 셀림이 술탄으로 즉위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록셀란 이후로 하렘의 여인들이 술탄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각축하는 궁중 암투가 본격화되어 결국은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록셀란은 오랫동안 제국을 망친 악녀 혹은 팜므파탈로 여겨졌지만 현대에 와서 재평가 되고 있다. 술탄의 노예로 머물러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여 성공을 이룬 진취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우크라이나에는 록셀란의 동상도 있다.
자료를 찾다보니 “무흐테솀 유즈이을”이라는 터키 TV드라마가 있다. 2011 ~ 2014년까지 터키 STAR TV 에서 방영했던 사극인데 무려 139부작이라고 한다. “무스테솀 유즈이을”은 터키어로 “위대한 세기”를 뜻한다. 술레이만 대제와 황후였던 록셀란의 이야기다. 미드처럼 시즌별로 나누어 방영했는데, 오스만 제국 시대의 궁정과 하렘을 화려하게 재현한 영상미와 하렘 여인들의 암투를 흥미진진하게 극화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수출되어 거의 한류 비슷한 터키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스와 거의 원수지간인 그리스에서도 드라마 방영후 터키어 학습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포스터 중 하나다. 중앙은 슐레이만 대제, 왼쪽이 휴렘 술탄(록셀란)이고, 왼쪽 아래는 알바니아 귀족 출신의 마히데브란으로 슐레이만이 록셀란을 만나기 전에 총애했던 하렘의 여인이다. 슐레이만의 장자 무스타파를 낳았다. 대제의 오른쪽은 아마도 대제의 어머니인듯하다.(아닌것 같기도 하다.) 뒷줄 왼쪽은 대제의 여동생인 하티제 술탄으로 후에 이브라힘과 결혼한다. 하티제 술탄은 이브라힘이 처형되고 2년도 안되어 죽었는데, 남편의 죽음에 상심하여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그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
하티제의 오른쪽은 이브라힘 파샤다. 노예 출신으로 대제의 시동이자 친구이자 동지로 초고속 승진을 하여 약관의 나이에 제국의 대재상이 되지만 결국 록셀란과 재상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획책으로 암살된다. 이브라힘의 옆은 아마도 마히데브란의 아들인 무스타파인 것 같다. 슐레이만의 장자다. 총명하고 인품도 뛰어나 유력한 후계자였으나 자신의 아들을 술탄으로 만들려는 록셀란의 음모에 의해 반역죄로 처형된다. 그 옆은 아마도 록셀란의 아들인 셀림 황자인 것 같다(짐작이다.) 나중에 대제의 뒤를 이어 술탄으로 즉위한다. 셀림2세다. 설명이 맞는지 모르겠다.
찾다보니 또 이와 관련된 만화도 나오고 있다. 시노하라 치에의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이라는 만화다. 여기서는 록셀란이 이브라힘을 연모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 같다. 만화에서는 삼인의 관계가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3권까지 일본에서는 6권까지 출간된 모양이다. 이 만화가 언제 처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작가가 터키 드라마를 보고 작품을 구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