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작일 소생은 소생이 호구의 책으로 삼아 열심히 다니고 있는 공장에 하루 휴가를 냈다. 아침에 일어나 미역국에 밥 말아 김치반찬에 후르륵 호르륵 짭짭쩝쩝해주시고 양치하고 목욕재계하고 빤스와 난닝구도 갈아입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가려고??? 아아아아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을 보러 갔다. 극장 안에는 20대 아가씨 세 명, 20대 커플 한쌍,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 그리고 돼지 한 마리가 전부다. 스타워즈 피규어 하나 없는 주제에 뭐 덕후라고 하기에는 한심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팬심 간직한 한마리 돼지로서 금번 <에피소드 7>이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보는 내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먼저였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프리퀄 3부작으로 끝나지 않고 시퀄 3부작으로 다시 시작하려하고 이제 그 첫 편을 극장에서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뭔가 뭉클뭉클한게 꾸역꾸역 부풀어 오르면서 눈물까지 찔끔 나려고 했다.
살육의 역사도 반복되고 저항의 역사도 반복되고 승리의 역사도 반복된다. 이 모든 역사들이 차례대로 하나의 끝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듯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한데 섞여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서로 물려 돌아가면서 순환하고 반복된다. 경전에 나와있듯이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한세대는 가고 또 한세대는 오는 것이다. 새로운 포스가 한 소녀에게서 깨어나자 이제 한 세월을 풍미했던 영웅은 퇴장한다. 지난날 루크 스카이워커가 운명적으로 제 아비인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베이다)와 대결했듯이 30여년이 흐른 후에 한솔로와 레아공주의 아들인 카일로 렌이 어둠의 기사가 되어 제 아비인 한솔로를 죽인다. 루크와 레아가 쌍둥이 남매이니 루크 스카이워커는 카일로 렌의 외삼촌이 된다. 전편의 중심 테마였던 스카이워커 가계의 비극은 또 다른 형태로 전개될 모양이다.
<에피소드 7>의 시간적 배경은 전편으로부터 30여년 후가 되는데 상황은 그때나 거의 변한 것이 없다. 30여년 전에 ‘새로운 희망’ 루크 스카이워커가 제국을 괴멸시켰지만 어느듯 자라난 어둠의 힘은 또다시 거대해지고 막강해졌다. 제국의 비밀병기 ‘데스스타’는 ‘스타킬러 베이스’로 대체되었고 제국 황제는 ‘퍼스트 오더’가 되었다. 저항세력은 한줌밖에 안되어 약한듯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마지막에는 승리한다. 루크부자의 타투인 행성이 레이의 자쿠행성으로 바뀌었고 소년이 소녀로 변했을 뿐 결국 ‘새로운 희망’은 ‘깨어난 포스’의 다름 아니고 지난 세대의 영웅들은 언제나 세상을 등지고 숨어있다. 오비완이 사막에 숨고 요다가 늪지대에 숨었듯이 루크 스카이워커는 절해고도에 은거한다. ‘새로운 희망’이 은사를 찾아내었듯이 ‘깨어난 포스’도 스승을 찾아낸다. 과거의 젊은 제자는 싸부를 죽였고 이제 젊은 아들은 애비를 죽인다. 부자의 대결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가슴아프게 펼쳐지는데 존 윌리엄스의 장엄한 스타워즈 테마곡은 관객의 감상(感傷)과 우수를 더욱 조장하고 격려한다.
30여년만에 다시 밀레니엄 팔콘호, 한 솔로, 추바카를 보는 기분은 그야말로 감개가 무량무량하다. 달려가 뜨거운 포옹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악수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레이역의 여주인공인 데이지 리들리는 얼굴 생김이나 표정, 몸의 움직임이 마치 소년같은 느낌이다. 그 옛날 아나킨이 다스 베이다로 변신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유년기의 엄마와의 분리불안이었다. 어린 아나킨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엄마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뱀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에피소드 7>을 보니 ‘깨어난 포스’ 레이에게도 유년기에 부모와 이별한 아픈 사연이 있는 듯하다. 레이에게 어떤 출생의 비밀이 있는지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궁금하다.
인종주의자들이 레이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핀 역의 존 보예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영화를 보이콧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우리 쌍제이 감독은 포스 넘치는 의견을 피력했다. “당신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어떤 인종이든, 혹은 자바, 우키, 제다이, 시스 그 누구이든 영화를 즐겨주길 바란다.” 하지만 쌍제이도 아직 인종주의에서 그리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만약 핀이 백인남성이었다면 분명히 레이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을 장면에서 둘은 그냥 포옹을 하고 만다. 소생의 생각에도 스크린에서의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의 키스신은 왠지 어색한 느낌이다. 당연하게도 소생의 편견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있듯이 흑백이고 흑황이고 황백이고 간이 그들이 뭔들 못 할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영화에서 흑백(특히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이 키스하는 장면을 본 기억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