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이면 히말라야로 간다!

 

"등산가는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 대한 숭앙을 거의 버리지 못한다."

 - 알버트 머메리(1855∼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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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많은 걸 보면 산을 찾는 마음을 이해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삶의 전부를 걸고 히말라야의 험준한 고봉을 오르기 위해 애쓰는 산악인들의 심정을 보통 사람들이 가슴 깊이 공감하기란 더더욱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산을 오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산은 계속 '거기'에 있을 테니까.

 

세상에는 흔히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다. 히말라야에 가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얼마나 선명한 구분인가. 그런데 히말라야에 삶의 전부를 걸다시피 한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히말라야에서 살아서 돌아온 사람과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 얼마나 서늘한 구분인가.

 

영화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산악인'을 다룬 영화다. 이런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산악인들이 오래 전부터 '거기'에 잠들어 있다. 이미 몇 달 전에 개봉되었던 외화 <에베레스트>도 스토리와 배경이 사뭇 비슷했다. 두 영화를 구분하는 가장 확연한 차이라면 한국인 전문 등반가와 외국인 아마추어 등반가를 다뤘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먼저 봤던 <에베레스트>가 잠깐씩 오버랩되는 걸 억누르긴 어려웠다. 그러나 <히말라야>가 <에베레스트>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속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산악인들 사이에 존재했던 '목숨을 걸 만큼 진한 우정'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극도로 위험한 시공간 속으로 온전히 내던지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동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영영 되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희생은 얼마나 숭고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예전부터 전해 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여서 자연스레 영화에 몰입될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걸출한 산악인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엄홍길 대장'이 숱하게 겪었을 엄혹한 상황들이 얼마만큼 절박하고 처절했을지 나는 그게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영화는 곧장 비극 속으로 뛰어들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간절히 '되돌아 가고 싶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 대원이 만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유쾌하면서도 부푼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박무택 대원이 히말라야 원정을 떠나기 위해 원치 않는 결별을 고했던 애인을 다시 만나고 결혼에 이르는 장면들은 그저 순애보처럼 밝기만 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이 그리 멀지 않아 다가올 비극적 운명의 전주들이라는 점에서 그런 장면들조차 서글프게 느껴져 가슴이 더 아렸다.

 

박무택이 에베레스트에서 하산하다가 조난을 당해 행방조차 찾지 못하자 엄대장은 그의 시신이라도 찾아오기 위해 '휴먼 원정대'를 꾸린다. 그렇게 그들은 아무런 명예도 보상도 없고 슬픔만 더할 여정을 시작하지만 끝내 그를 '거기'에 묻고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산을 사랑했던 산 사나이는 그곳에서 영원히 머무를 운명이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에겐 그의 무덤에 다가가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은 살아 있는' 박무택 대원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폭풍이 몰아치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 홀연히 발걸음을 옮긴 백준호 대원의 용기와 희생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부분이 제일 가슴 아팠다. 히말라야에 트레킹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얼마쯤이라도 알 수 있다. 산소가 평지의 절반도 안 되는 고산지대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대략 5,000m ∼5,500m 정도를 오르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거기서도 무려 3,000m씩이나 더 높은 8,000m 이상의 고봉들을 오르고 또 내려오기가 얼마나 힘겨울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나도 2년 전 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을 때 경험해 봤지만 보통 사람들은 해발 고도가 2,800m를 넘어서면서부터 '고산 증세'가 오기 시작하고, 4,500m를 넘어서면 그 증세가 훨씬 더 심해진다. 두통과 어지럼증과 메스꺼움과 호흡 곤란과 의식조차 흐릿해지는 지경에 이르고 자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어진다. 불과 서너 걸음만 옮겨도 숨을 여러 차례 가쁘게 내쉬며 헉헉거릴 수밖에 없고 산소 부족으로 인한 두통과 심한 메스꺼움도 견디기 어렵다.그러니 무려 8,750m에 달하는 그곳에서 시신을 찾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무려 77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시신을 끝내 찾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을 이 땅으로 데려오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셈이다.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뒤 나는 까마득한 옛날에 들었던 '실화'에 대해 궁굼한 게 몇 가지 있어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놀랍게도 이번 영화에서 다룬 얘기가 이미 책으로도 나와 있었다. 책 속에 담긴 몇몇 대목들을 잠깐 살피는 것만으로도 그 당시의 비극적 상황들이 금세 되살아나 다시금 가슴이 아려온다.

 

엄홍길이 박무택의 조난 소식을 들은 것은 얄룽캉(8,505미터) 베이스캠프에서였다.
“뭐라고? 무택이가 어쨌다고”
그는 직직거리는 무전기를 터뜨릴 듯 움켜잡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무택이가 정상 찍고 돌아오다가… 아무래도 조난당한 것 같습니다. 연락도 두절됐습니다.”
엄홍길은 이미 몇 번씩이나 확인한 사실을 묻고 또 물었다.
“무택이가? 나랑 같이 다니던 그 계명대 박무택이가”
엄홍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난 소식을 전해온 원정대장 배해동에게 도리어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럴 리 없어! 걘 조난당할 애가 아니야!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히말라야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많은 산악인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2년 전에 네팔 포카라의 '산악박물관'에 들렀을 때 뜻밖에 마주쳤던 고 박영석 대장과 강기석, 신동민 대원, 고미영 대장 등도 다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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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포카라 '산악박물관'에서 만난 히말라야의 영웅들

 

 -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3극점,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


 

 - 고미영 대장.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등정에 나서 4년간 11좌를 등정하였으나,
    마지막으로 등정한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던 중 '칼날능선'에서 실족하여 사망했다.



 - 박영석 대장,
   1989년 랑탕리룽(7,225m)에 최연소 원장대장으로 도전해 동계 세계최초 등반. 
   1991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으나 100m 추락후 이틀 동안 의식을 잃는 사고를 당함.
   2001년 K2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인 최초 14좌 완등, 세계에서는 8번째 기록.
   2004년과 2005년 남극점과 북극점 정복에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 신루트 개척을 위해 나섰다가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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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최초로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에 올라선 역사는 불과 60여 년에 불과하다. 프랑스 원정대장 모리스 에르조그가 안나푸르나에 최초로 올라선 '역사적 그날' 보다 훨씬 더 까마득한 옛날인 1895년 6월에 그 당시로서는 아무도 넘보지 않았던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인 낭가파르밧을 오르기 위해 인도의 봄베이로 떠난 사람이 바로 알버트 머메리였다. 그도 거기서 되돌아오지 못했다. 두차례의 등정 시도가 좌절된 이후 다른 루트를 찾아보기 위해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그는 두 사람의 구르카 병사들을 이끌고 능선 저편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쓴 산악문학의 명저인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의 서문에는 그가 낭가파르밧에서 부인에게 부친 편지도 실려있다.


"우리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설령 낭가파르밧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 거대한 봉우리를 보고, 훈자와 러시아 국경 저편에 있는 위대한 산들을 바라보았으니 후회는 조금도 없소."

 

그리스 비극을 깊이 탐구했던 독일 철학자 니체는『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의 어느 구절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인간의 가치는 자신의 경험에 영원성의 낙인을 찍을 수 있는 정도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박무택 대원과 백장호 대원, 장민 대원은 히말라야에서 끝내 되돌아오지 못함으로써 살아남은 숱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큰 슬픔을 안겨줬지만 그들이 새긴 '영원성의 낙인'은 어쩌면 그만큼 더 깊게 각인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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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나섰던 우리 일행은 정말 운이 좋았다. 단 한 번의 트레킹으로도 우린 많은 산악 영웅들을 만났다. 2010년 4월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오은선 대장과는 우연히 '트레킹 코스'가 겹쳐 여러 차례 만났고, 귀국길에는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엄홍길 대장까지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초인적인 도전에 다시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우리 일행 가운데 막내였던 상준이는 셔츠를 내밀어 오은선 대장님의 멋진 사인을 받았다.

 

 

 - 우리 일행 모두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해주신 '오은선 대장님'

 

 -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서 같은 귀국편 비행기를 타게 된 '엄홍길 대장님'과 함께.


 

 - 엄홍길 대장님으로부터 받았던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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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먼댓글(2) 좋아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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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기 산이 있으니
    from 사의재(四宜齋) 2015-12-26 14:43 
    옛날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지금도 의문이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오르려고 하는지. 정말 죽기살기로 죽을똥 살똥 오르고 또 오른다. 정상을 정복한다고 해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뭐 협찬이나 스폰 이런 것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오르는 산악인들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한다. 저기 산이 있으니 오를 수밖에. 산이 어디로 옮겨갈 수도 없고 인간의 마음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니 도리도리 있다없다? 없다.
  2. 아... 히말라야...
    from Value Investing 2018-10-17 23:50 
    "등산가는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 대한 숭앙을 거의 버리지 못한다." - 알버트 머메리(1855∼1895) * * * 저 멀리 히말라야에서 또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원정 대원들과 현지 가이드를 포함해서 9명이 모두 시신으로 발견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나마 시신 수습은 신속하게 이뤄져 벌써 내일 새벽이면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8000m급
 
 
슈샨보이 2015-12-2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봐야겠네요.

oren 2015-12-23 17:33   좋아요 0 | URL
몰입해서 보면 많이 슬픕니다. 어떤 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계속 울더라구요....

재는재로 2015-12-2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에보러가는데 많이슬픈가보네요

oren 2015-12-24 09:25   좋아요 0 | URL
제 뒷자리에 앉았던 초딩으로 보이는 꼬맹이의 반응도 재미있었습니다.
엄마·아빠랑 형이라 넷이서 영화를 보러 온 모양인데 시작할 때부터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더니 조용해지더군요.
나중에 영화가 끝나고 다들 `숙연한 분위기`였는데 그 꼬마가 아빠한테 자랑스레 말하더라구요.
˝아빠, 난 한 번도 안 울었따~˝
울지 않는 게 큰 자랑일 수도 있더라구요...

그랜드슬램 2017-05-3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겠죠, 누구나 자신에게는 관대하니까요! 한걸음,한걸음이 만들어내는 인생이라는 기적, 박영석 대장이 가장 아쉬운 것 같아요. 진정한 산악인이자 자기 극복의 자유인인데 말이죠!

oren 2017-05-31 11:2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적‘이자 ‘친구‘가 나 자신인 듯해요. 박영석 대장은 ‘랑탕 계곡‘을 걷는 동안에도 많이 생각했답니다. 그의 발자취와 숨결이 ‘거기 높은 설봉 끝자락 어드메에라도‘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듯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