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폐위된 술탄 압둘하미드 2세
<호랑이 등>에서는 역사소설이다. 소생의 관심사인 만큼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1909년 청년튀르크당에 의해 폐위되어 테살로니키에 유폐된 오스만 제국 34대 술탄 압둘하미드 2세에 관한 소설이다. 스케일에 있어 극동의 작은 반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조선의 고종 비슷한 인물이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3개 대륙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던 제국은 이제 화려했던 영광의 날들을 뒤로 한 채 장려한 낙일은 맞이하고 있었으니 말인즉슨 운명의 황혼을 울고 앉아있는(고딩 때 이런 시를 배운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네...) 형국이라. 어떤 성군, 현군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폐위된 술탄도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모든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을 타고 태어나, 우리는 모두 호랑이 등에서 태어난 거야.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20쪽) 하지만 이건 폭군이자 독재자였고 실패한 군주였던 자의 변명이자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2. 오스만 제국의 형제살해법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제위에 오르면 그날로 자신의 이복 동복 형제들을 모두 죽여야 했다.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정복자 메흐메트 2세가 형제살해법을 최초로 입법화했다. 황가에서 제위에 오른 인물이 그 형제를 제거하는 것은 미래의 걱정거리를 미리 없애서 제위를 공고히 하고 제국을 더 굳건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사례는 무수할 것이나 이렇게 성문법화한 것은 정복자 술탄이 처음이다. 후환을 남겼다가 피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형제 간의 싸움이 내란이 되어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무수했으니, 그 사회적, 국가적 비용을 생각하면 천륜 정도는 눈 딱 감고 끊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공익을 위해서 사익의 희생 감내하는 무슨 숭고한 이념이 있는 것 같지만, 아시다시피 그게 그런 것이 아니다. 권력이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니 바로 권력이 골육보다 중하고 또 그 위에 있는 까닭이다. 저 위대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의 뛰어난 장자 크리스푸스를 폴라의 탑 안에서 가혹하게 고문하여 죽였고, 위대한 술탄 술레이만은 종군 중에 그의 훌륭한 장자 무스타파를 자신의 천막으로 유인하여 활줄로 목졸라 죽였다. (틸다 스윈튼이 나오는 판타지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을 보면 무스타파가 교살되는 장면이 정말 환상적으로 우아하고 현란하게 묘사되고 있다.)
3. 부크크로 책 만들기
소생이 이스탄불에 관심이 많아서 부크크로, 한 도시의 연대기라는 형식으로 <이스탄불>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벌써 한 5년 되었다. 자가출판 플랫폼이라고 ‘부크크’라는 것이 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실 것이고 모르시는 분은 아직 모르시겠으나,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왜 자꾸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인간이 덜떨어지고 한심해서 그런 것이니 양지하시길. 원고만 있으면 누구나 공짜로 책을 낼 수 있다.(단, ISBN 등록비 5천원은 내야한다.)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고 심지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자비출판하느라 수천만원(은 아니고....) 써본 소생으로서는 햐~ 이런 개꿀같은 것이 있나....흐흐... 후루룩쩝쩝쩝 해보려고 달려들어 봤는데....역시나 이 엄혹한 세상에 공짜가 있을리 없다.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책 가격이 비싸게 책정되어 수익 나기가 어렵다. 재료비, 제작비, 유통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도서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저자가 책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소생의 경우 사진없는 46배판 298페이지 15000원으로 책정했다. (사진, 더구나 컬러 사진이 들어가면 가격은 엄청나게 뛴다.) 10% 할인 이런 거 없다. 15000원 중 저자 수익은 720원이다. 가격을 내릴 수도 있는데 14,280원 이하로는 안된다. 저자 수익이 0원이 되기 때문. 물론 가격을 30,000원, 아니 3백만원으로도 책정할 수도 있다. 책값 책정은 저자 마음, 구매는 독자 마음.
둘째, 만듦새가 다소 허접하고 배송이 하 세월이다. 기본적으로 편집, 교정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표지도 무료로 제공되는 표지 디자인이 있다. 부크크에서 나온 책들 표지가 똑 같은 것이 많은 이유다. 물론 유료 편집, 교정도 가능하다. 유료 표지 디자인도 있다. 소생은 30만원 주고 디지인을 맡겼다. 저 표지가 30만원 짜리다. 부크크 도서는 POD(주문형 인쇄) 방식이라고 주문 후 제작에 들어가므로 배송받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당일배송 어쩌고 하는 마당에 성질 급한 사람 속 천불난다. 할인없고 취소, 반품 불가다.
소생이 부크크로 제작한 도서의 판매 및 수익 현황이다.
2020년 17권 12,240원
2021년 13권 9,360원
2022년 3권 2,160원
2023년 3권 2,160원
2024년 11권 7,920원
출간 첫해에는 아무래도 개업빨도 있고 해서 꽤 많이 나갔다. 17권!! (사실 이중 10권은 저자 본인 구매 ㅋㅋ) 2021년이 되자 드디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지 무려 13권이나 나갔다. 셀링 라이크 핫케익!! 책이 엄청나게 팔려나가자 인근 지역의 지가가 천정부지로 마구 올랐다고 한다. 옛말 하나 그른 것이 없다. 이른바 낙양의 지가를 올린다는 것이 바로 이를 일컫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인생이 항상 그렇듯이 큰 성과 뒤에는 모름지기 침체기, 슬럼프가 오기 마련!! 2022년에는 겨우 3권이 팔렸고, 2023년에도 역시 3권. 연이나, 빼어난 책이란 역시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은 것이고, 세상이 어둡고 혼미해도 귀 뚫리고 눈 밝은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올해 초 들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무슨 봇물이 터지듯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느니....아아!!! 아직 7월인데 벌써 물경 11권이나 팔려나가 버린 것이다. 잘 하면 금년에는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에 지난 5년간 총 47권 판매(그중 10권은 자가 구매 ㅋㅋ) 총 수익금은 720원*47권= 33,840원. 여기에서 본인 구매수익 7,200원 빼면 26,640원. 실로 어마어마 엄마엄마하다.
역시 인간은 정신승리. 뭐 있겠나. 무엇보다도 저 책을 만드는 한 일년 정도의 기간은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즐거웠던 시간같다.(그때는 잘 몰랐지만) 뭐가 잘 안되 꿍꿍거릴 때도 많았지만. 무슨 대단한 학문을 한답시고 책상 위에 온갖 책들을 여기저기 펼쳐놓고 인용문을 찾고 인터넷을 뒤져 관련 사진을 찾고, 되지도 않는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입술을 물어뜯고, 송곳으로 궁둥이를 푸욱! 찌르고(이건 아니고!!) 하는 이런 작업들이 돌이켜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무슨 놀이였던 것 같다.
옛날 아카데미사에서 나온 조립식 프라모델을 만들 때는 구멍이 잘 안맞아서 칼로 자르고 본드를 쳐바르고 낑낑거리며 용을 쓰는데, 본드 자국이 덕지덕지 묻어있고 조금 깨어지고 찢어지기도 했지만, 로봇의 손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나, 하나하나 차츰차츰 본체를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그 성취감, 즐거움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요즘 나오는 일본 반다이 프라모델은 정말 기가막히게 구멍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접착제 필요없다. 처음 반다이 조립할 때 정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왠지 그 옛날 손에 본드 묻혀가며 낑낑대며 만들던 아카데미 조립식 생각난다.)
나의 사랑하는 오스만 책장입니다.
오스만 책장의 자매 책장인 역시 나의 사랑하는 이스탄불 책장입니다.
부크크로 책 만들기 전에 600쪽 짜리, 330쪽 짜리 A4 제본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책값 때문에 부크크로 제작할 때는 최종적으로 사진없이 299쪽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