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펠 시리즈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12세기 잉글랜드의 한 수도원에 봉직하는 초로의 수도사가 의문의 사건들을 척척 해결한다. 척보면 착으로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움베르토 에코도 엘리스 피터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권인가 그런데 이번에 5권이 먼전 출간되었다. 시리즈 1권의 부제는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다. 구판에서는 성녀의 유골이었다. 캐드펠 수사는 웨일스의 귀더린에서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는 임무를 띤 순례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우리의 캐드펠은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인간 종이란 원래가 태생적으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나 이 한 몸 바쳐 신을 믿고 따르고 헌신하기로 맹세한 자들 역시 별 수 없다(아니 더하다)고 한다면 신을 믿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유골을 포함한 성유물에 대한 숭배는 이미 종교의 오랜 전통이 되어버렸으나,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당연히 없었던 것들이다. 성유물과는 조금 다르지만 성상 숭배에 대한 이단 논쟁 또한 오래 되었으니 불초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성인의 뼈 한 조각보다는 현생을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리스도교의 성유물 수집 또는 숭배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황후가 325년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황후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져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을 허물고 예수의 무덤을 발굴하여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 바로 성묘교회(예수님 무덤 교회). 황후는 예수가 못 박혔던 십자가, 이른바 참십자가, 예수의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면류관, 예수의 몸을 꿰뚫은 못,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을 감쌌던 수의 등등의 물건을 찾아냈다.(정말?) 황후는 성물의 은닉처를 알고 있는 유대 노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하여 성물들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헬레나 황후는 성물의 일부를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로 보내고 나머지는 성묘교회에 보관하도록 했는데, 7세기 초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자 많은 성유물들이 약탈을 피해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졌다. 그러나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전대미문의 약탈행위가 벌어져 수많은 성유물들은 다시 베네치아와 서유럽 곳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성유물은 처음에는 주로 예수의 최후 수난의 유물들이었는데 나중에는 예수의 보혈, 눈물, 수염, 치아와 같은 신체의 일부분까지 대량으로 나돌았다. 예수는 유대인으로 할례를 받았을 것이므로 할례 시 남긴 포피(包皮)를 보관한 교회만도 13곳이나 된다고 한다.(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승천하였으니 예수의 유골은 당연히 지상에는 없을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여기에 더해서 성모 마리아, 12사도들, 성자, 순교자들의 유해와 물품까지 성유물로 숭배되고 유통되었다. 아래 인용문은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문제의 수도원이 보유하고 있는 성유물의 목록이다. 물론 소설의 내용이지만 중세의 성유물 유행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하나 알려드리면 천주교 수원교구 성요셉 성당 제대 밑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턱뼈가 안치되어 있다.

 

보십시오우리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끝을그의 말에 따라 우리는수정으로 뚜껑을 한 황금 상자 안을 들여다 보았다. (……투명한 뚜껑이 달린자수정 박은 은제 상자에는 주님 달리신 십자가의 한 부분이라는 나무 조각이 있었다. (……남옥 상자에는 십자가에 박혔던 못도 보관되어 있었다시든 장미꽃을 깐 유리병 바닥에는 주님이 쓰셨던 가시면류관의 일부가 들어 있었다바닥에다 마른 꽃잎을 깐 다른 병에는최후의 만찬 때 깔았던 식탁보의 조각이 들어 있었다은줄이 달린 성 마태오의 전대도 있었고보라색 댕기에 묶인 성 안나의 유골진주가 박힌 빨간 벨벳 위에 놓인 베들레헴 마구간의 구유 조각사도 성 요한의 보라색 옷자락로마에서 성 베드로의 발목을 묶었던 사슬 고리 두 개성 아달레르토의 두골성 스데파노의 칼성 마르게리타의 경골성 비탈리스의 손가락뼈성 소피아의 갈비뼈성 에오반의 턱뼈성 크리소스토모스의 어깨뼈성 요셉의 약혼 반지세례요한의 이빨모세의 지팡이성모의 결혼 예복의 장식술 조각… (장미의 이름 하권 755~756)


성유물이라고 다 같은 성유물이 아니다. 등급이 있다고 한다. 3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은 성인의 유해, 2등급은 성인의 유품, 3등급은 성인의 몸에 닿았던 물건이다. 물론 예수나 성모, 사도들은 예외다. 이들에겐 등급이 없다. 옛날의 교회법에는 교회의 제대에 성인의 유해나 유품을 안치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없어졌지만 중세에 기독교가 득세하면서 성당과 수도원은 우후죽순으로 세워지고 이에 따라 성유물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성유물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끌어 모았으므로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권위도 세워주었다.

 

경제원칙에 입각하여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니 가격이 급등하고 가짜 복제품들도 대량으로 나돌게 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또 다른 소설 바우돌리노를 보면 가짜 성유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었는지 잘 나와있다. 바우돌리노는 세례 요한의 가짜 두개골을 다섯 개나 만들어 배낭에 넣어 다니면서 팔아먹었고,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사발을 성배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이야기가 어차피 옆길로 샜으니 몇 가지 중요한 성유물에 대해서 이바구를 좀 풀어보고 싶다. 참십자가, 가시면류관, 성배 3가지만.














참십자가


헬레나 황후는 예수가 못 박혔다는 참십자가를 찾아내어 그 일부를 잘라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로 보냈고 나머지 큰 덩어리는 예루살렘에 남겨두었다. 1187년 십자군이 이 참십자가를 가지고 전쟁에 나섰다가 살라딘에게 약탈을 당했고 그 후 이 참십자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헬레나 황후가 참십자가에서 잘라내어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로 보낸 십자가 조각은 그 후 무수한 파편으로 나뉘어 사방팔방십육방삼십팔방으로 흩어졌는데 유럽의 웬만한 성당과 수도원에는 모두 이 나무 조각을 말 그대로 신줏단지 모시듯 모시고 있다. 현재 참십자가 파편의 60%는 그리스 아토스산의 수도원에 있다고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는 카잔차키스가 아토스산의 라브라스 수도원에서 참십자가를 친견한 장면이 나온다.

   

온통 보석과 진주로 장식한 멋진 십자가 함을 여니 속에는 <진짜 십자가>의 커다란 조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의 목소리는 감격으로 떨렸지만, 나는 어느 참된 기독교인이 언젠가 하던 얘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느 나무나 모두 십자가를 만드는 재료가 되니까 모든 나뭇조각은 <진짜>랍니다.’(영혼의 자서전 1, 284)

 

역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도 이렇게 말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말인즉슨, 도마야! 도마야! 어찌 네 손가락을 내 상처 구멍에 넣어보아야 아느냐? 믿음이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진복자라.

 

참십자가의 조각 파편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자 16세기에 칼뱅이 전 세계에 있는 참십자가 조각을 모두 끌어 모으면 배를 한 척 만들고도 남겠다고 하며 무분별한 성물 숭배를 비판하기도 했다. 중세의 어떤 신학자는 성스러운 유물은 기적의 은사를 입어 일종의 자가 증식을 하기 때문에 계속 늘어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한편 1870년 프랑스의 한 건축가는 참십자가 조각이라고 주장하는 전 세계의 모든 십자가의 양을 조사한 결과, 일반적인 십자가 크기의 1/3 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참십자가 조각이 3개 있다고 한다. 그중 유일하게 교황청의 인증서가 첨부된 것은 천주교 청주교구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가 소유한 것으로 약 3cm 정도 크기라고 한다.

 













가시면류관


가시면류관은 수백년 동안 예루살렘에 보관되어 있다가 1063년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1238년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해진 라틴제국(4차 십자군이 비잔틴 제국을 침략하여 세운 왕국)의 황제 보드앵 2세는 가시면류관을 베네치아에 저당 잡혔다가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팔았다. 가격이 135천 파운드로 당시 프랑스 1년 예산의 절반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이 가시면류관을 봉헌하기 위해 파리 시내에 생트샤펠 성당을 지었다. 성스러운 가시면류관이 베네치아에서 프랑스로 운반되는 장면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나온다.

 

두 명의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베네치아로 파견되어 빚을 치르고 성스러운 면류관을 수령했다그들은 나무 상자를 열고 은으로 된 성물함에 찍힌 대공과 영주들의 봉인을 확인했다이 성물함 안 금으로 된 단지 속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기념비가 들어 있었다베네치아인은 내키지 않았지만 정의와 권력에 굴복했다프리드리히 황제는 자유롭고 영예로운 통행을 보장했으며프랑스 궁정은 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유물을 경건하게 맞이하고자 샹파뉴의 트루아까지 마중을 나갔다왕이 직접 맨발에 속옷 바람으로 이 유물을 자랑스럽게 높이 받들고 운반했다. (로마제국쇠망사 6, 193)


그 후 가시면류관은 나폴레옹이 특별히 제작한 성물함에 담겨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9년에 있었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시에 가시면류관을 포함한 성물들은 안전하게 옮겨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트르담으로 옮길 때 벌써 가시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없고 다만 가시가 꽂혀 있던 둥그런 풀 더미만 남아있었다. 칠팔십 개나 되었던 가시는 프랑스 왕들이 어디 선심을 썼거나 팔아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루이 9세는 면류관에서 가시 두 개를 떼어 내어 영국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 가시들은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성배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물 중에 후대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전설과 신비 속에서 수많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성유물이 바로 성배이다. 성배(Holy Chalice)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렸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포도주를 마셨던 잔으로 이 잔의 행방은 비교적 단순하다. 마가는 나중에 이 잔을 가지고 베드로를 따라 로마로 갔고 이 잔은 베드로가 사용했는데 베드로가 순교한 후에는 교회에 귀속되었다. 262년 로마에서 박해가 벌어지자 에스파냐 출신의 성 로렌초가 순교 직전에 이 잔을 에스파냐로 보냈다. 14세기에 에스파냐 왕이 이 잔을 카탈루냐 지역의 발렌시아 대성당에 안치했고 오늘날까지 여기에 보존되어 있다. 높이 17cm, 지름 9cm의 짙은 갈색의 마노 벽옥 잔으로 현재 이 성배는 금으로 된 손잡이와 기둥, 그리고 금, 진주, 보석으로 장식한 받침대 위에 놓여있다. 이 잔은 최후의 만찬에 쓰인 잔으로 간주되어 교황청의 공식적인 성배로 인정받고 있다.

 

이 성배와 약간 다른 의미의 성배(Holy Grail)가 있다. 역시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잔이라는 점은 같은데,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후에 아리마데의 요섭이 이 잔으로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를 담았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포도주 잔은 신약성서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이 성혈을 담은 성배에 대한 이야기는 12세기 프랑스 시인 드 보롱의 <아리마데의 요셉>에서 처음 등장한다. 아리마데의 요섭이 이 성배와 성혈을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루이 9세가 가시면류관 등 각종 성물을 확보하여 위세를 떨치자 이에 자극받은 영국의 헨리 3세는 1247년에 예루살렘 대주교로부터 예수의 피를 구입했다. 성배의 행방이 묘연해 진 것은 그 이후이다. 하지만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져 있으며 템플 기사단이나 시온 수도회 같은 비밀결사들이 성배를 수호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전설로 전해진다. 성배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더 왕과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 고난의 여정을 떠나는 기사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날 이 성배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영향으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끝으로 유골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책 몇 권을 소개한다. 첫째는 베네치아인들이 성 마가의 유골을 훔쳐오는 이야기 등 중세에 횡횡한 성유골 도둑질 이야기를 끌어 모아놓은 거룩한 도둑질이다. 베네치아인들의 성 마가 유골 도둑질은 유명한 이야기다. 4대 복음사가 중 1인인 성 마가는 나중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게 되는데, 9세기경에 베네치아의 두 상인이 이슬람 지역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가의 유골을 돼지고기(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불결하게 여긴다) 속에 넣어 훔쳐 와서(구출해내어) 베네치아의 성마가 교회에 봉헌하게 되고 이로서 마가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둘째는 2000여년전 레반트 지역 인근 갈릴리 호수가에서 처음에는 고기 낚는 어부였다가 나중에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다가 결국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 시몬으로 불리던 그 사람, 예수가 지명한 하늘나라의 키맨 베드로의 유해를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지하에서 발굴하고 확인해내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이야기, 바티칸의 비밀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어부의 무덤이고, 마지막은 성 니콜라우스로부터 시작해서 볼테르, 하이든, 아인슈타인, 히틀러, 단테 등등 죽어서도 잠들지 못하는 위인들의 유해의 수난사를 다룬 무덤의 수난사되겠습니다














추신 : 알라딘 둘러보다 보니 이런 책도 있습니다. <숨겨진 뼈, 드러난 뼈>, 뼈의 5억년 역사에서 최첨단 뼈수술까지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뼈 이야기라는 설명입니다. 뼈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 있다고 하며, 뼈에 관한 일종의 과학 입문서이면서 문화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 뼈 때리는 이야기 가득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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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8-29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룩한 도둑질> 쟁여 두고 싶었는데
결국 절판되었군요. 이래서 읽지 않더라도
일단 사서 쟁여두었어야...

<어부의 무덤>도 땡기네요. 그나마 이
책은 도서관이나 살 수 있다는.

2003년 로마에 가서 수도원에서 유학
중이던 사촌 신부 형님과 로마 성당
투어를 하다가 나눈 대화가 생각나네요.

교회가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성유물들
이 과연 진짜인가라는 질문에, 결국 믿음
의 문제가 아니겠는가라고.
그랬다고 합니다.

붉은돼지 2024-08-29 16:25   좋아요 1 | URL
<거룩한 도둑질>은 사놓은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어부의 무덤>은 대충 훑어봤는데 정말 신기하고 또 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유해라고 과연 특정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책에서 내세우는 이런저런 증거로 볼때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고...저도 바티칸 대성당에 가봤지만요...거대한 제대 아래 네크로폴리스(무덤도시)를 관람할 수 있는 투어도 있다고 하네요..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둘러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