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재구성의 신호탄인가?
[서평]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최광은 / 한국사회당 대변인
출처 : <레디앙> 2007-12-17


   
  ▲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 진보정치연구소 | 후마니타스(2007) 표지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를 사흘 남겨두고 공개된 이명박 후보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막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지금,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BBK라는 영문 세 글자만 머릿속에 남는 대선으로 마무리될 것 같다.

대통령 선거라는 공간이 정책과 가치, 비전의 대결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은 정말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고만 것 같아 씁쓸하다.

어제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사회당 중앙당사로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보낸 것이었다.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진보정치연구소 지음, 후마니타스, 2007)라는 책이었는데, 1판 1쇄 발행일이 2007년 12월 10일자였다. 내용을 대략 훑어보고 나니 불현듯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타이밍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좀 더 일찍 발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 국가 비전과 민주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코리아연방공화국 비전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토론되고 경쟁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사회국가, 코리아연방공화국, 사회적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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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공산주의와 다른 ‘우정의 정치학’
연구공간 수유+너머 ‘코뮨주의 선언’ 펴내

강성만 기자
출처 :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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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이른바 '87년 체제의 리바이벌'이라 할 수 있는 '비지론자'들의 아우성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번 17대 대선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다. 적어도 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란 의미에서 그렇다.

그들, 비지론자들이 주로 했던 말 가운데 대표적 사기성 발언은 "지난 번 대선에서는 나도 백기완 선생 지지했었는데, 이번에는 DJ를 지지(해야)한다. 지난 번 대선에서는 진보정당을 지지했었는데 이번에는 노무현을 지지(해야)한다."는 류의 발언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진정한 진보주의자나 좌파는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그 어떤 행위의 대상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올곧게 표현해내는 사람들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대오를 이탈하여 보수야당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뉴라이트'의 기치를 드는 변절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보수정치판으로 가든, 뉴라이트의 기수가 되든-은 솔직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명확하게 공표했다는 점에서. 이도 아니면서 '진보緣, 좌파緣' 하는 사람들은 또 그 얼마나 많은가. 문국현을 이야기하고, 찍을 사람이 없어서 기권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이들이 과연 진보주의자고 좌파일까? 만약 이들이 지난 번 대선 같이 한나라당이라는 극우와 자유주의 정당이 박빙의 승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 뭐라고 말하고 행동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장투쟁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 노선을 통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주의자, 좌파라면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 말고 고민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 두 개의 정당 말고 사민주의나 사회주의적 지향을 당 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정당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진정한 좌파, 진보주의자라면 그 어떤 공간에서든 지금과 같은 선거국면이라면 자신의 이념적 지향에 맞는 행동방침을 드러내고 조직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권한다는 소리, 투표할 사람을 못 찾았다는 소리가 진보주의자, 좌파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이상은 오늘 올리는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와 수유+너머의 <코뮨주의 선언>을 소개하는 글들, 그리고 여러 블로그들에 올라와 있는 대선 관련 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이 사회에 실현하고자 이런 저런 실천방향과 기획을 모색해 나가는 이들의 노력에 대해서 진보연하는 먹물들이 이들의 문제의식을 읽어보거나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책상에 앉아서 조롱하거나 폄하하는 모습들은 솔직히 역겹기까지 하다.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하고 진보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이들이 내놓는 실천의 기획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최광은의 말대로 이 책 『사회 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가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그 어떤 변화를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지는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지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젼으로 선포하는 그룹과는 분명 함께 할 수 있는 차이를 넘어서는 차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위의 두 권의 책과 '자율평론 그룹'에서 지속적으로 번역해내는 네그리의 책들, '새사연'의 차베스에 관한 책들을 비교검토 해봐야겠다. 아무래도 내일로 다가온 투표보다는 투표결과 이후의 연장전이 더 재미 있을 것 같기에 시대에 뒤쳐지지 않을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200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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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못 막는 ‘민족’을 땅에 묻어라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④ -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⑥

강성만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12-14


 
»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 6. 용도폐기 할 때
6. 용도폐기 할 때

지난 5주 동안 네 명의 논자가 민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펼쳤다. ‘민족’ 진영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탈민족’ 진영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임지현 한양대 교수 그리고 중도적 견해를 가진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현 단계 민족 담론의 유효성과 한계를 주제로 비판과 반비판을 전개했다.

이번 논쟁의 큰 축은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는 안 교수의 입론을 따라 형성됐다. 그는 계급연대는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임 교수도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민족 현실론’을 폈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주의의 본질을 배제와 차별로 규정했다.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평등 등 보편 가치가 그 아래 종속되고 개체적 정체성과 ‘개인해방’은 사소한 것으로 전제된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부국강병주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권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근거는 민족이 아니라 개발독재가 파괴한 작은 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이제는 민족주의를 땅에 묻어야 할 때라고 단언했다. 이번 논쟁의 마지막 회가 될 다음 주에는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제3세계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제1세계의 민족주의를 뭉뚱그려서 한통속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자의 정당방위적인 성격과 후자의 공격적·제국주의적 성격을 구별하지 않는 위험을 갖기 때문이다. 사카이 나오키 등 제1세계 지식인들의 ‘탈민족주의론’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주변부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를 은폐하는 기능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의 유사성을 간과하는 진보적 민족주의론에도 큰 문제가 있다. 여전히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설정하는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은 동질적 집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상호 모순적인 성별 계급 등 간의 충돌과 이해관계를 무화시킨다. 계급의식은 몇몇 논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족공동체’에서 더 강력해지는 게 아니라 약화된다. 진보진영에서 자주파와 평등파의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다. ‘우리’의 강조는 ‘내부’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지배적 소수의 이익을 ‘우리 민족’이라는 언술적 가면으로 포장한다. 개인=사회=민족=국가=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것을 ‘삼성 민족주의’라고 부르면 과장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남’ 역시 동질적인 집단으로 타자화된다. ‘미국놈’ ‘미국사람’ ‘미국정부’ ‘미국 시민사회’가 똑같은 이해관계를 지닌 하나의 단위로 간주된다. 거기서 이삼성의 표현대로 ‘한국 내 냉전세력과 미국 내 군사주의 세력 간의 비대칭적 동맹’을 읽어내기란 어렵다.

민족주의는 민족 및 국가의 영원한 유지와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집단주의다. 따라서 생명·평등·인권·자유 등의 보편적 가치는 그것 아래 종속되며 개체적 정체성과 ‘개인해방’은 ‘사소한 것’으로 전제된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나 타민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자동적으로 생산한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행태’나 ‘일시적 부작용’이 아니다. 배제와 차별은 민족주의의 본질이다. ‘가장 유용한 유대관계는 민족의식’(안병욱)이라는 주장은 다양한 집단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위계질서화하는 기능을 한다. 민족이 최고고 그 다음은 계급이고, 성별이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계급·젠더 문제 이전에 국가 간의 이해 대립이 초래한 모순에 더 좌우되고 있다”(안병욱)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민족보다 젠더가 더 중요한 기준일 수가 있고 장애인에게는 장애여부가 계급이나 민족보다 우선하는 범주가 될 수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내 후배(장애인)는 결국 캐나다 이주를 택했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홍석천은 네덜란드로 떠나고 싶어했다. 국적을 넘어서는 월경적 주체를 지향하는 여성주의자에게도 민족은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탈민족적 주체들을 민족의 하위 단위로 포섭할 때 그것은 다중적인 주체의 형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만다. 민족 및 계급해방 다음에 여성해방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해방론’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구분
우리 안의 다양한 모순 무화시켜
오히려 계급의식 약화 불러오고
‘남’에 대한 억압과 차별 자동생산


고정적 우선순위를 두면 서열화와 억압이 발생한다. 가령 사회운동이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에 ‘앞서’ 국가보안법 철폐에 ‘집중’하자는 것은 현실을 단순하게 인식한 것이다. ‘진정한 진보’라는 말은 이래서 위험하다. 우선 순위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족을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그 기준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이성애-비장애인-남성 중심적인 진보적 민족주의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시도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민족주의로부터 나온다는 주장과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이 ‘미국발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지적(김동춘)은 어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전국적으로 일어난 ‘금 모으기 운동’과 ‘선진국 음모론’은 ‘내부’의 단결을 외치며 ‘외부’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되레 재벌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고 한국사회의 내부적 변혁을 오히려 가로 막는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이라는 코드를 통한 한국의 대자본과 한총련의 입장이 이렇게 유사한 때가 있었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닫힌’ 민족주의나 ‘열린’ 민족주의 간에 둘 다 낡은 부국강병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통적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진보적 구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발전주의를 뒷받침하며 그것이 유발하는 모순을 정당화한다. 후진국에 대한 착취나 생태계의 파괴를 ‘우리 민족’의 번영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앙집중적 산업문명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약탈, 환경 공공재 파괴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요즘 유행하는 ‘선진국’ 담론, 통일 담론에도 이런 점이 깊숙이 들어가 있다.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한민족의 경제력 증강’을 위한 것이다. 진보적 민족주의는 국내·국제의 불균등발전과 재분배에 주목하지만 생태적 재앙을 일으키는 ‘부의 확대재생산’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전통질서 깼지만 ‘부국강병’ 내포
후진국 착취·생태계 파괴 정당화
세계화 맞선 국제연대에도 힘못써
친생태적 마을공동체 복원이 대안


자본과 상품이 무차별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운동-노동·환경·여성·비정규직·이주자 운동이 민족이라는 코드에만 의존해 ‘국제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점점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일국적 관점과 운동으로는 불가능해지고 있다. 개인을 넘어서면서도 민족에 안주하지 않으며 민족국가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 시민사회 및 시민운동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개발독재가 파괴한 작은 공동체, 곧 친생태적 풀뿌리 ‘마을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세계화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삶의 구체적인 테두리’(김우창)를 없애나가는 민족주의로 퇴행하는 것을 막으려는 녹색의 정치학이다.

민족주의는 ‘구체적인 힘’이고 민족을 무시한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김동춘)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30년대의 파시즘도 현실적 힘이 아니었던가? 민족의식이 부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그것을 견제해야지 따라가야 할 것인가?

» 권혁범 교수
 
제3세계의 진보적 민족주의가 한때 가졌던 긍정적 역할과 힘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가졌던 반냉전주의 및 반제국주의적 성향은 정당하다. 하지만 후자가 결국 주변부 부르주아의 자본주의적 헤게모니에 흡수되고 말았던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21세기의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고민과 대안 모색에서 필요한 것은 탁석산이 인용한 지수걸의 말대로 민족주의에 대해 ‘겸허한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다.

권혁범/대전대 교수



권혁범 교수는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대(엠허스트)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요 관심분야는 민족주의·환경·페미니즘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2000), <국민으로부터의 탈퇴>(2004),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2006), <우리 안의 파시즘> (2000, 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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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슬픔에서 나의 슬픔을 만나다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

한승동 기자
출처 : <한겨레 > 2007-12-14


» 너의 슬픔에서 나의 슬픔을 만나다
 

서경식 김상봉 지음/돌베개·1만7000원

김상봉-서경식 교수, 8개월간 9차례 나눈 ‘현실 진단’
신자유주의라는 갇힌 세계 넘어설 다양한 세계 사유


“지난해 어느 지방 대학에서 강연을 한 뒤에 40대 교수 한 분이 저를 보고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의 망령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지난해 이른 봄부터 난생 처음 ‘조국’에서 장기체류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반을 넘긴 그 ‘망령’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면서 자본주의 고도화와 더불어 물질적 풍요(라기보다는 돈)에 매몰된 일본 지식인들이 자조적으로 얘기한 ‘자발적 노예화’, ‘안락 전체주의’를 떠올렸다. 그는 안락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런 전체주의가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20~30년간에 걸쳐 진행됐으나 한국에선 불과 5~10 사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며, “이 나라의 대학과 엘리트(지식인)들에 대해 제가 지녔던 동경이 환상은 아닐까 하는 괴로운 의문이 요즘 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연구교수 생활을 하며 강연회 등을 통해 각계 사람들과 활발하게 접촉해온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56). 내년 2월 복교를 앞두고 2년 예정의 조국체험 말기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 ‘과거의 망령’ 발언은 이제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을까. “선생님도 이 사회에서 외로운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선생님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났다고 해서 이 사회 전체에 아직 희망을 가져도 좋은지도 의문이고요.” 실망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나, ‘섬세한 기질’의 그가 논점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한 방편일 뿐 아직 결론을 서두를 리는 없다.

그가 ‘선생님’으로 지칭한 대화 상대는 김상봉(49) 전남대 철학과 교수. 두 사람은 돌베개 출판사가 출판한 <만남>을 위해 지난 5월19일부터 8월15일까지 아홉차례 만나 총 40여시간에 걸쳐 얘기를 나눴다. 기획자는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서 교수에게 “‘탈민족주의/민족주의 비판’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는 걸 느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섬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던진 질문은 깐깐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여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일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위기의식이 행간에서 묻어난다. 그만큼 지금 한국사회에서 절실한 질문이기도 하다.

대담은 비정규직 문제, 민족주의문제, 통일문제, 교육문제 등 현안들을 통해 언어와 교양·예술·종교·형이상학 등 다방면에 걸친 주제들을 다룬다. 기획자의 질문은 김 교수가 인용한 서 교수의 다음과 같은 필생의 질문과 상통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디아스포라 기행>) 바로 김 교수가 매달린 화두이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 ‘나’는 “내가 존재하는 장소일 뿐 아직 아무런 내용도 없는 것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는 …비존재와도 같은 것”이다. 현실적인 나는 언제나 그 장소가 내용을 통해 채워질 때에만 참된 의미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내 존재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바로 나의 경험이며, 그 경험의 총체가 ‘세계’다. 따라서 세계는 오직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의 의식 속에서 열리는 지평이며, 주체의 경험이 달라지면 각자의 세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곧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물음”이며, “철학이 자기의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가 ‘거리의 철악자’로 현실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학벌체제’와 ‘도덕교육의 파시즘’ 타파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
 
 
그래서 되돌아본 “내가 살아온 역사와 사회”는 “치명적인 분열과 단절” 속에 빠져 있었고, 그것은 서구 제1세계와는 달리 ‘자기 땅에서 추방된’ 식민지배에서 초래된 자기상실의 결과였다. 그런데 자기상실은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의 혼란을 초래하지만 또한 “타자적 정신과의 만남을 통한 정신의 임신이며 바로 그런 까닭에 현재 우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동요는 새로운 정신을 잉태하기 위한 입덧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타자를 배제한 제1세계의 ‘홀로주체성’에 대비되는 ‘서로주체성’이 거기서 나왔다. 지배자의 철학이 아닌 참된 철학은 고통과 경악과 절망, 곧 슬픔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이며, “철학은 너의 슬픔 속에서 나의 슬픔을 보고 끊임없이 이 슬픔과 저 슬픔을 만나게 함으로써 더 보편적인 슬픔의 바다로 나아간다.” “오직 타인의 슬픔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통해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슬픔이 보편적인 형식을 얻을 때 그런 정신이야말로 철학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교수에게 온 가족이 질곡의 삶을 산 재일동포 서 교수야말로 “걸어다니는 철학”이다.

서 교수는 생활보수주의, 국가주의, 아류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신자유주의로 귀결된 87년체제를 식민지 구조의 연장으로 파악한다. 이건 닫힌 세계다. “고통스럽고 어두운 지하실만이 닫힌 세계가 아닙니다. 네온사인 요란한 유혹이 있고,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널려 있는 가운데서 당뇨병으로 죽어가야 하는 이런 세계도 하나의 닫힌 세계인 거지요. 다소 비약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도 그런 닫힌 세계, ‘이런 것이 성공적인 삶이다’라는 일원적인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그 외부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넘어서서 굉장히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것, “그것이 교양의 역할”이다. 김 교수에게 교양은 “올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힘”이며 그것은 유영모·함석헌의 사상에서 내려오는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예술 역시 타자성으로의 초월, 곧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교양, 예술과 더불어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하는 공적 주체를 키우는 교육을 통해 제대로 지킬 수 있다.

조국생활 중간결산 쯤에 해당할까. 두 교수의 대담 주제들은 이미 그들의 여러 저작들을 통해 어느 정도 낯이 익지만 서 교수의 장기체류 체험과 대담형식이라는 중대한 변수를 깔고 있는 만큼 ‘철학적 깊이와 역사 담론의 넓은 폭’이 새롭게 다가온다.

[관련기사]
 
 




역사를 고민하는 두 디아스포라

한승동 기자
출처 : <한겨레 > 2007-12-14 


» 대담 중인 서경식(왼쪽) 교수와 김상봉 교수.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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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1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이 책 기대만빵이에요. 월요일에 온다는데.

내오랜꿈 2007-12-15 01:24   좋아요 0 | URL
벌써 주문하셨군요.

서경식의 책을 몇 권 접했는데, 다른 책보다 <소년의 눈물>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아 있습니다. 처음 읽은 서경식의 책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북유럽 대사들 "한국 대선 이상해요"
권영길 후보와 간담회서 '솔직한 관전평'

윤태곤/기자
출처 : <프레시안> 2007-12-07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강소국'들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의 한국 주재 대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참 이상하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3개국 대사들은 모두 "인물 중심 선거를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눈에는 위장전입, 탈세, 주가조작, 파업 엄단이 주요 이슈인 '한국적 현실'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인 모양이다.
  
  이들과 간담회를 가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그래도 당신네가 우리랑 제일 비슷하다'는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공약에 대해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망상가들의 망상'이라고 집중 공격이 심해 '내가 혹시 몽상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 정도다"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핀란드 대사 "인물중심정당이란 것도 있구나"

▲ 권영길 후보와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적 현실'에 의문을 표시한 킴 데이비드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 라르스 바리외 스웨덴 대사, 디드릭 톤셋 노르웨이 대사
  7일 오전 권영길 후보는 라르사 바리외 스웨덴 대사, 킴 데이비르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 디드릭 톤셋 노르웨이 대사와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민노당의 정책과 북구 3개국의 정책을 비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바리외 스웨덴 대사와 톤셋 노르웨이 대사는 "한국의 선거가 정책적 대립보다는 개인 중심이다"면서 "북유럽에서는 정당정책이 선거의 중심이다"고 말했다.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도 "한국정치에서 '인물중심 정당'이 생기는 게 의아했다"고 거들었다.
  
  특히 톤셋 대사는 "민노당의 구체적 정책대안이 눈에 띄고 북유럽과 유사한 선거 캠페인이다"고 평가하면서 "다른 후보들도 거시정책을 제시하지만, 실현방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톤셋 대사는 "후보들이 경제성장을 말하기는 하는데,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고찰해야 할 경제학자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가"라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스웨덴 대사 "산별협약이 스웨덴 산업발전의 기반"
  
  3개국 대사들의 '대선 관전평' 앞에서 '권 후보는 이들에게 "보육, 교육, 의료, 산재문제 등에 대해 국가 역할이 전혀 없는데,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들은 전적으로 개인들이 책임지고 있고 더욱더 이런 경향들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오늘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권 후보는 "보육,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보장제도 이야기하면, 국민들과 다른 정당들은 '실현불가능하다'고 비판해서 북유럽을 예를들어 사회보장제도를 설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지난 해 정권 교체 이후 한국의 언론과 기업가들로부터 '복지병에 걸린 나라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는 괴이한 찬사를 받았던 스웨덴의 바리외 대사는 "신임 총리가 '복지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효율화 노력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면서 "스웨덴의 복지시스템 유지는 사회적 합의다"고 강조했다.
  
  바리외 대사는 "노동시장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 부담이 커진다는 오해가 있지만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다"면서 "노사간 합의는 지킨다는 신뢰가 바탕되면 노조는 경제발전의 도움이다"고 말했다.
  
  바리외 대사는 "산업별 노사간 협약이 지켜지고 그것이 경제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스웨덴의 산업이 발전했다"고 부연했다.
  
  노르웨이 대사 "북유럽 성공의 기반은 사회연대의식"
  
  이들은 한국의 사회적 의식수준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톤셋 노르웨이 대사는 "저희들의 성공 이유는 모든 계층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고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이다"고 사회연대의식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꼽았다.
  
  톤셋 대사는 "한국은 유교전통이 강하고 가족중심이 강하지만 이제는 민주노동당 등이 사회공동체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고 충고했다.
  
  루오토넨 핀란드 대사도 "핀란드에서는 법질서, 정부기관, 정부당국 등 국가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다"면서 "한국에서는 국가보다는 가족, 동창 등 혈연, 학연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더 큰 것 같다"고 꼬집었다.
  
  루오토넨 대사는 "핀란드에서는 그런 학연의 의미가 없다"면서 "노키아가 제일 큰 회사인데 그 회사 경영자들이 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1시간 10분 여 동안 진행된 간담회를 마친 후 권 후보는 "오늘 세 분 말씀을 듣고 크게 힘을 받아 간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박용진 대변인 역시 "선거 기간에 주한 외국 대사와 정치적 이야기를 나누는 게 관례가 아니었지만 다행히 다들 초청에 응해 주셨다"면서 "서로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박 대변인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사진도 한 장 못 찍었다"고 전했다. 솔직한 고언을 해준 3개국 대사들이 혹여 외교적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이들 역시 오랜만에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간담회 이후 권 후보는 '삼십년 전에 헤어진 동생 만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작 북유럽 대사들과 간담회가 필요한 사람은 권영길 후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게 솔직한 평가다.



스웨덴 대사 "높은 노조조직률은 자산
권영길 북유럽 3국 대사 만나 "사회보장은 꿈 아니라 과제"

김은성 기자
출처:<레디앙>2007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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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커밍아웃'을 기대한다

200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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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쯤 '나는 누구 지지한다'가 아니라 '나는 어느 정당 지지한다'로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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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이유
    from 또다른 시작, 그리고 준비... 2007-12-15 10:16 
    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 뭐..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일하라고 국회의원으로 뽑았으면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국회의원은 입...
  2. 대선후보 복지정책 공약평가
    from 또다른 시작, 그리고 준비... 2007-12-15 10:16 
    [한겨레]각 정당과 대통령 후보가 내놓은 공약은 대통령 선거 뒤 정책으로 전환돼 집행될 내용이다. <한겨레>와 참여연대는 다음 정권의 정책방향을 예측하고, 공약의 타당성·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유...
 
 
sui 2007-12-2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분들은..다들 공부잘해서..울나라왔겠지요?
생각하는 것도 잘 집어내시는군...
다시 태어나면,북유럽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내오랜꿈 2007-12-24 23:3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북유럽 같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요.
공부는,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하세요.^^;
 

[대선서 실종된 비정규직(상)] ‘관객’ 전락한 860만 유권자들

황보연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05


» 16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양수 뉴코아노조 위원장(왼쪽)과 윤성술 뉴코아 순천지부장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농성장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이랜드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선서 실종된 비정규직 (상)

검찰의 비비케이 수사 발표가 나오며 대선 정국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정치공학과 ‘부패 프레임’에 갇힌 ‘2007 대선’ 구도는 요지부동이다.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미래가 담긴 정책 경쟁이 실종되며, 유권자는 그저 ‘관객’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실종된 ‘비정규직 해법’과 외면당한 ‘860만 비정규직 유권자’는 그 대표적 사례다. 비정규직 해법의 실종 배경과 선거 이후 전망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정책선거 사라지며 유력후보들 해법 제시안해
“상황은 더 악화됐는데…” 5년동안 100만명 늘어


“이명박 후보도 ‘비정규직들에게 신경 좀 써 달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왔습니다.”

검찰의 비비케이(BBK) 수사결과 발표에 온 국민의 눈귀가 쏠려 있던 5일 오전 11시께.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 지하철 5~8호선 역사 청소용역업체의 여성노동자 40여명이 빗자루를 들고 섰다. 한나라당사 앞을 쓸며 평화적인 ‘청소 시위’를 벌이던 ㄱ(61)씨는 “월급 100만원으로 일해온 400여명이 도시철도공사의 예산 삭감으로 잘리게 됐다”고 울먹였다. ㄱ씨 등은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 후보 쪽에 이런 사연을 수차례 알렸지만, 답변이 없어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2002년 이맘 때만 해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올해 대선에선 당선권에 있는 유력 후보들의 ‘약속’에는 ‘비정규직 고용 개혁’이 들어 있지 않다.

지난 5년 사이 더욱 악화된 비정규직 실태와는 대조를 이룬다. 지난 8월 현재 비정규직은 861만명(노동계 집계)으로 2002년보다 100만명 가까이 늘었고, 특히 비정규직 중에서도 더욱 열악한 파견·용역 등의 일자리가 급증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비정규직 사정이 더 나빠졌는데도, 이번 대선에선 쟁점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며 “선거에서도 공론화가 제대로 안 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차기 정부가 ‘보완 대책’을 마련할 의지를 보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5일 공개한 각 대선후보들의 비정규직법 개정 관련 답변을 보면, 이런 현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명박 후보는 11개의 질의 중 10개 항목에 대해 찬·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이회창 후보(무소속)의 경우 지난달 20일 민변이 보낸 질의서에 대해 보름이 지난 이날까지 아예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정동영 후보는 “(정부 통계로) 35.9%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임기 내에 25%까지 줄이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행안’은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정 후보 쪽은 차별시정 회피를 위한 외주 용역화 등 현행 비정규직법의 부작용 해소 방안엔 입을 다문 채 “현행 법의 긍정적 효과”를 낙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극화 해소’를 강조해 온 현정부 아래서 되레 양극화가 심화되다 보니,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모든 문제를 해소하려는 기류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며 “비정규직 문제가 조명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도 거기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내부적으로는, 노조 조직률이 10%대에 불과한 양대노총이 각개전투를 펴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지후보 결정을 조합원에 맡겨 가장 친기업적인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을 맞고 있고,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계급투표’를 호소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국노총 전직 간부는 “한국노총은 늘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만 편승하려 하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평소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같은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코스콤 비정규직노조와 기륭전자노조 등 장기간 파업중인 비정규직 노조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5명 가운데 3명이 비정규직인데, 대통령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에 왜 관심이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종된 해법 찾기에 실망한 이들은 여전히 집회와 농성장으로 나가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대선후보들 비정규직법 입장 들어보니
이명박 “시장 원리” 정동영 “부작용 해소”
권영길 “폐기” 문국현“특수고용직 신중”


»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대선후보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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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그룹 노조원들 파업 166일째
추위·무관심속 기댈 곳은 성당·교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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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서 실종된 비정규직 (하)] 전문가들 ‘이것만은 바란다’
기업 외주화 규제방안 급선무
제도적 규율·차단 필요…“사내 하도급 특별법 만들자” 주장도


황보연 기자
출처 : <한인터넷 한겨레> 2007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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