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Pulitzer 수상작 사진모음

출처:www.jinbonuri.com ,200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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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위 사진들은 댈러스모닝뉴스가 차지한 "2004년 퓰리처상 속보사진 보도부문" 수상작들이다. 우리가 왜 이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흐르는 곡은 그룹 CCR의 "WHO'll Stop The Rain"이다.
CCR은 1969년 여름, 폭우속에서 3일간 계속된 "Woodstock Festival"에 참석한다. 이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노래로 만들어 1970년 1월에 발표하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이 "WHO'll Stop Rain the"이다. 발표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라디오 방송을 타는 노래 가운데 하나다.

이후 이 노래는 반전/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곡으로 'rain'은 사회적 혼란을, 또는 쏟아지는 'bullet', 총탄을 의미한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정신적 상처와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그린 닉 놀테 주연의 동명의 영화도 있다.

Long as I remember
The rain been comin' down
Clouds of mystery pourin'
Confusion on the ground
Good men through the ages
Tryin' to find the sun
And I wonder
Still I wonder
Who'll stop the rain

I went down Virginia
Seekin' shelter from the storm
Caught up in the fable
I watched the tower grow
Five year plans and new deals
Wrapped in golden chains
And I wonder
Still I wonder
Who'll stop the rain

Heard the singers playin'
How we cheered for more
The crowd had rushed together
Tryin' to keep warm
Still the rain kept pourin'
Fallin' on my ears
And I wonder
Still I wonder
Who'll stop the rain
내 기억으론 오래됐어
비가 내린지 
기이한 구름들이 땅위에
혼돈을 퍼붓고 있어
어느 시대든 선한 이들은
태양을 찾으려 애쓰지
난 궁금해
여전히 궁금해
누가 이 비를 멈출 건지

난 버지니아에 갔어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를 찾아
우화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탑이 자라나는 걸 보았어
5개년 계획과 뉴딜 정책은
금 사슬로 쌓여 있어
난 궁금해
여전히 궁금해
누가 이 비를 멈출 건지
 
가수들이 노래하는 걸 들었어
우린 얼마나 앵콜을 외쳤었던지
군중들은 우루루 모여들어
체온을 유지하려 애썼어
하지만 비는 계속 퍼부어
내 귓가를 때렸어
난 궁금해
여전히 궁금해
누가 이 비를 멈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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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와 신정아




심형래와 신정아는 학력위조라는 공식적 혐의 외에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공통분모를 보유하고 있다. 먼저 학력위조를 살펴보자. 자의든 타의든 학력위조가 밝혀진 사람들이 혐의를 인정하는데 비해 두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다. 신정아는 입학조차 하지 않은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노라고 강변하고 있으며 심형래는 누구나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과정을 밟은 것을 가지고 고려대를 졸업했다고 속였다. 신정아는 계속 주장을 굽히고 있지 않지만 심형래는 “나는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다”며 발뺌한 것이 다른데, 이미 그렇게 주장한 사실을 송두리째 뒤집으려 드는 것은 신정아 뺨 칠 정도다.

이전에 알려진 심형래의 경력은 “1958년 2남 3녀중 차남으로 태어남. 고려대 식품공학과 졸업. 1982년 제1회 KBS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코미디언으로 데뷔…”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999년에 21세기 북에서 출판된 ‘심형래의 진짜 신나는 도전’에는“남 웃기는 건 취미고,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 대학은 고려대 식품공학과엘 갔다. 내가 식품공학과를 가게 된 배경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옆집 형 때문이었다. 옆집에 사는 형이 식품공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갖가지 화학 재료로 음식의 원료들을 뽑아낸다면서 내 앞에서 실습도 하고 잘난 척을 좀했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창의적인 작업으로 보였다. 다른 학과와 달리 국, 영, 수만 외우면 되는 게 아니라 뭔가 내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는 학과겠구나 생각해 고려대 식품공학과에 원서를 낸 것이다.”라고 적시 되어 있다.

그것 뿐 아니라 2005년 3월 21자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는 “대학교 1학년 때 제 1회 MBC 대학가요제에 나갔다가 떨어졌다”는 내용도 있다. 자신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근거는 충분하다.

그리고 심형래의 학력위조가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것을 들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도 틀린 시각이다. 심형래가 개그계에 입문하게 된 경위는 KBS에서 주최한 제 1회 대학 개그 콘테스트에서 동상으로 입상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심형래는 대학생이 아니었다. ‘고려대 식량개발대학원 내 농업기술연수과정인 식품가공과’를 다니는 신분이었다면 대학생이 아닌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형래는 대학 개그콘테스트에 응시하여 당당하게 합격했다.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고려대 재학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때 학력을 위조하여 대학 개그콘테스트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의 심형래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심형래는 신정아와 마찬가지로 출발부터 사기였던 셈이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2000년에 개봉한 용가리의 실패에 대한 것이다. 용가리가 참담하게 실패한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관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7년 전에 개봉된 ‘쥬라기 공원’에 맞춰져 있는 세상에 문외한들의 눈에도 엉성해 보이는 용가리가 통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다. 심형래는 이미 쥬라기 공원과 악연이 있다. 당시로서 최첨단 CG 기술로 인정받은 쥬라기 공원과 함께 개봉되었던 심형래의 작품은 ‘영구와 공룡 쮸쮸’였다. 사람이 공룡 탈을 쓰고 연기하는 수준으로 엄청난 자금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쥬라기 공원과 경쟁이 될 리가 만무했다. 이전에 했던 것처럼 코 묻은 돈을 긁으려다가 된통 당한 셈인데, 그 이후 7년이 지났어도 영구와 공룡 쮸쮸의 수준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심형래는 책임을 자신에게 두지 않았다. 자신의 책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추석 때까지도 끝나지 않은 장면이 있는데 투자자들이 여름방학 때에 개봉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압박에 못 이겨 서둘러 마치게 된 것이 실패의 주범으로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 실패의 원인은 무리하게 간섭하고 요구한 투자자들에 있는 것이며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것이다. 작품성 있는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도 감독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기 마련인데 제작의 모든 과정을 총괄했다면 오죽하겠는가, 축구감독도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해임당하는 세상에 하물며 남의 돈을 끌어 쓴 영화감독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용가리 실패 이후 봉급을 압류당하는 등 자신이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는 침을 튀기면서도 정작 피해를 당했을 투자자들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고 심형래는 용가리가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내용을 보면 황당하기조차 하다. 일단 딴지일보의 인터뷰를 인용하도록 하자,

총: <용가리>가 150만 달러에 일본에 진출했나요?(인터뷰의 총은 딴지일보 총수의 약자다)

: 예. 계약을 했죠, 콤스탁에서.

: 그때 말들이 많았잖습니까? 개봉하기 전에는 신지식인 이야기도 나오고, 텔레비전 광고도 나오고. 기대치가 높았다가 개봉하고 나서는 흥행이 생각만큼은 안 되고…

: 그때도 사실 여름 방학 때 개봉을 하면 안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투자하시는 분들이 그때 개봉 안 하면 고소하겠다… 그런데 그때는 사실 시간을 좀 가지고…. 예를 들어 한 커트를 만들려면 여러 커트가 합작이 되어야 하는데, 그때는 기술력도 좀 딸렸고… 랜더링을 3월에 걸었는데 추석 때까지도 안 끝난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도 겪고 그랬을 때는… 시간을 좀더 줬으면 더 퀄리티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데, 뭐 그때 무조건 개봉을 해야 된다 그렇게 하는 바람에…

: 또 저런 것도 있었잖습니까? 수출액이 실제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실제로는 얼마나 됐나요?

: 그거는 모르겠어요. 배급사 하는 친구가 일체 우리에게 그런 정보를 제공 안 해주고.. 뭐, 일본에 150만 달러에 계약 했는데, 프랑스는 갑자기 만 오 천불에 했다고 그러고. 또 어떤 거는 3천불에 했다고 그러고. 필름 하나 떠서 주는데 5천불인데 어떻게 3천불에 계약을 하냐고. 그건 말이 안 되죠.


위의 내용에 보면 용가리가 일본에 150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확언하다가 갑자기 “배급사 하는 친구가 일체 우리에게 그런 정보를 제공 안 해주고.. 뭐, 일본에 150만 달러에 계약 했는데, 프랑스는 갑자기 만 오 천불에 했다고 그러고. 또 어떤 거는 3천불에 했다고 그러고…”등으로 말이 바뀌고 있다. 실제로 일본 측과 150만 달러에 계약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거기에 국내 개봉 수익금과 2차 시장의 수익을 더하면 그리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부터가 느끼는 체감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심형래는 용가리가 대단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미국 비디오 시장에서 3주 연속으로 대여 1위를 기록 한 것”을 드는데, 과연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미국에 개봉조차 하지 못했던 영화가 어떻게 비디오 대여 1위를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미국에서의 성공에 목마른 언론들이 대서특필하였을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이유가 없었을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나중에는 “미개봉 영화 분야 가운데 1위”라는 해괴한 소리까지 나온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분야의 비디오 시장이 있기나 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의심스러울 뿐이다. 남들은 전부 실패라고 말하는데 오직 심형래만 부인하고 있다. 그것과 신정아가 주장하는 본질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잠시 동아일보 2005년 6월 16일자의 기자를 보자, 그때 심형래는 동아일보 이승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디워’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세계적으로 80억 달러(약 8조 원)를 벌어들여 전 직원에게 30억 원씩 쫙 나눠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말을 들은 영구아트의 직원들이 얼마나 황홀했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80억 달러는커녕, 천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디워의 수입에 얼마나 허탈해 하였을 것인가, 만일 심형래의 말대로 인센티브 계약을 하였다면 겨우 몇 푼 되지도 않는 액수를 손에 쥐게 되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80억 달러를 호언장담했던 결과가 800분지 1일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익에 지나지 않았다면 누가 보아도 결론이 난다. 호언장담의 거품을 제거해도 투자 액수도 건지지 못할 실패가 분명한데도 심형래는 오히려 속편을 입에 담고 나서고 있다. 자신으로 인한 실패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면서 뭔가 큰 건이 있는 양 떠드는 모습은 궁지에 몰린 사기꾼들의 행태와 그리 다르지 않다. 피 같은 남의 돈 끌어들여 세 번째의 실패를 안겨주겠다는 것인가,

내가 보는 심형래는 신정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못하지 않다. 신정아보다는 황우석에 가까운 사람이다. 심형래에게 수여되었던 신지식인 1호의 영광된 칭호는 회수되어야 마땅하다. 그는 다시 개그맨으로 돌아가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오랜꿈 -------------------------------------------------------------------------

내가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양비론'이다. 대한민국 국민들, 치가 떨릴 정도로 '양비론적' 시각을 보여준 적이 많았다. 80년대 군사파시즘에 저항하는 세력들의 불법, 화염병 시위에 대해서 그들은 늘 양비론적 태도로 일관한 적이 많았기에... 군사독재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폭력, 불법 시위는 자제되어야 한다고... 빌어먹을 그 '양비론'...

뜬끔없이 왜 '양비론' 타령이냐고?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전후의 모습에 대한 스케치 하나.

양대 대선 선거 국면 모두 내가 주로 놀던 공간에서 늘 논쟁이 된 것은 진보정당 지지냐, '비판적지지'냐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주로 인터넷 공간('97년의 경우 천리안 같은 통신상에서였지만)이 주를 이루었다. 그때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걸 반대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논리는 한결 같았다. 지금 국면에서 진보정당 찍으면 이회창 당선을 돕는 게 되기 때문에 DJ를 찍어야 한다고....

그리고 DJ 당선후 감격해서 우는 인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DJ정권의 반민중적 정책을 보고선 DJ가 어찌 저럴 수가 있냐며 울분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나 같으면 쪽 팔려서라도 표 안 냈을텐데....

그런 그들이 2002년 대선 국면에서 한 짓도 똑 같았다. 민노당 찍으면 이회창이 집권하는 걸 도와준다며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갖은 욕설과 비방을 다 하고 다녔다. 그런 그들이 노무현 취임 후 4달이 안 되어 이라크 파병 찬성과 화물노조 파업, 철도노조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하는 걸 보고서는 뭐라고 했는 줄 아는가? '노무현이 이렇게 빨리 맛이 갈 줄 몰랐다'나 어쨌다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닭대가리들도 아니고, 선천적 기억상실증 환자라고 해야 하나?

말이나 진보정당 지지자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덜 밉기나 하지. 심지어 지난 대선 때는 97년 선거 때는 진보정당에 투표했다고 구라치며 이번에는 민노당 찍으면 안 된다고 하던 놈들도 있었다. 이들의 미래는 뭘까? 볼 것도 없이 오는 12월 선거때도 반이명박 전선 어쩌고 하며, 범여권 후보(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찍어야 한다고 돌아다니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도 있잖은가.

제발 좀 웃기는 짓거리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나는 보수정당 지지자인데, 그 중에 노무현이 가장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거 같다, 그래서 그를 지지한다고만 말하기 바란다. 진보정당 지지자니, 어쩌니 하는 개소리는 하지 말라는 거다. 열린우리당 지지하고 노무현 지지하는 것이 뭐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심지어 이명박이나 한나라당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우리가 심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들의 자유 의사표현을 어찌 막을 수 있는가? 그런데 왜 노무현 지지나 열린 우리당 지지를 쪽팔려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진보정당 지지자이지만 한나라당 같은 수구꼴통의 집권을 막기 위해 차선'을 택하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논리를 펴는가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정아 문제는 분명 사냥감을 포착한 언론의 과잉포장이 빛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신정아 문제라는 권력형 게이트는 애초부터 '사실'로 존재했던 것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참여정부의 모든 '뻘짓'에 대한 비판에 '우리는 깨끗하다', '우리는 정당하다'라며 코웃음 치던 도덕적 우월의식에 태생적으로 잉태되어 있던 '비극'인 셈이다. 해서 나는 신정아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과잉보도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게 대선 국면에까지 이어지는 건 경계한다. 이미 2번이나 경험했던 '차선책' 운운하며, 여당 찍어라는 소리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반면, 심형래 문제는 분명하게 비판하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 안에 살아 꿈뜰거리는 파시즘의 광기가 빚어내는 또다른 비극을 맛보기 싫다면 말이다. 황우석 때나 <디워> 논란 때나 어디 그게 제대로 사고하는 인간들이 보이는 행태인가? '애국', '국익'으로 똘똘 뭉친 '정신병자들'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하나.
토론하면서 예의, 품성 운운하는 넘들. 한때 '수령의 영도론'을 믿던 또라이들의 전유물인줄 알았는데, 인터넷 게시판에 돌아다니는 이 뜬금없음은 또 뭐란 말인가. 진중권이 옳지만 예의 없는 말투, 싸가지 없는 말투 때문에 그의 논리를 인정하지 못한단다. 지랄, 녬병.....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둘.
맹목적 신봉으로 인한 감정의 과잉, 그에 기초한 애국심. 황우석 사건 때나 <디워> 논란 때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건 바로 이것, 빌어먹을 '애국심'이다. 나찌의 출발도 그랬다, 감정의 과잉으로 인한 터무니없는 애국심. 그 애국심이 수백만을 학살하고,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셋.
첫번째와 중복이지만, 싸움판에서 논리가 아니라 '애정', '사랑', '따뜻한 가슴' 운운하는 골빈 넘들.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란에서 진중권의 글에 따라다니는 악성 리플들을 분류하면 두 가지다. 무작정 욕하면서 덤벼드는 과잉지지자들이 그 하나고, 두번째가 바로 가슴, 사랑, 애정 운운하는 부류다. 녬병, 그렇게 풍부한 애정, 따뜻한 가슴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하고 한미FTA 반대 시위 농민이 할복할 때 좀 쓰면 어디가 덧나나? 인터넷의 논쟁에서 논리적인 글에서 따뜻한 가슴 찾는 정도면, 노동자가 분신하면 소녀가장이 분신하면 길거리에 주저 앉아 대성통곡 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의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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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0-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형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읽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데뷔방식도 몰랐고, 학력위조에 대해서도 자세히는 몰랐는데, 어설프게 변명하고 넘어간 격이 되어버렸네요. 데뷔가 '거짓학력' 때문이었다면, 처음부터 사기인 셈이였군요. -_-

내오랜꿈 2007-10-02 00:22   좋아요 0 | URL
사실 전 심형래 '개인'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습니다. 학력 위조 및 거짓말도 그의 인생이겠죠. '사기 인생'?, 뭐 '지 인생 지가 책임' 지겠죠. 저도 '오죽했으면' 학력을 속여야 했겠느냐'?는 동정론이 이는 우리의 현실에 할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심형래(논란)에서 그 어떤 '절망'을 보는 건 네티즌의 행태나 사람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아무리 봐도 중고생들로밖에 안 보이는 애들(그런데 의외로 20대도 많은 모양입니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인터넷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과, 애국심을 들먹이며 심형래를 옹호하는 행태에서 황우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절망'합니다.

바람돌이 2007-10-02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형래와 디워를 둘러싼 공방은 정말 끔찍했죠. 뭐 황우석때부터 끔찍하긴 했었지만...
근데 전 심형래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건 동의하지만 그의 학력 위조 문제는 좀 뺐으면 좋겠어요. 그가 계속 발뺌을 한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의 도덕성 정도의 문제로 생각할수도 있을 것 같고... 오히려 이 문제를 계속 따지고 들어가면 오히려 정작 중요한 논점을 놓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정아때문에 벌어진 최근의 학력위조 논쟁을 보면서 정말 많이 씁쓸했거든요. 연이어 나온 연예인들의 학력위조 공방이나 고백들을 보면 이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학벌에 목매는 나란지 고스란히 증명해주는것 같아서요. 슬펐어요. 결국 문제는 이런 학력위조를 조장하는 사회에 있는 것인데 그걸 계속 마녀사냥하듯이 캐고 들어가는거 영 기분이 별롭니다.
근데 저 위에 세가지는 더 있을 것 같은데... 한 100가지는 안나오나요? ㅎㅎ

내오랜꿈 2007-10-02 00:46   좋아요 0 | URL
그래 좋다... 빼지 뭐.

허나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그가 좀 '악랄'한 것 같다. 내 느낌인지는 몰라도. 근데, 이놈의 나라, 너무 꼴보기 싫어서 한 3년 동안 회사일만 하면서 조용히 살았는데, 회사 그만 두고 시간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자꾸 개입하게 만드네. 책이나 읽고 조용히 살아야 되는데...

너무 많이 열거하면 그기에 해당되는 사람들 하고 원수 져야 되잖아.-.-.

근데, 너무 '단순하게 드러나는 현상'만 보지는 말자. 뭐, 신정아 때문에 학력위조논란이 일어났겠어? 언젠간 일어날 일 아니겠어? 그니깐, 신정아 문제의 핵심, 심형래 문제의 핵심을 보자는 말이다.
 



"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 

언뜻 생각해보면 '혁명'과 '개혁'의 위치가 뒤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를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글을 시작한다.

"혁명의 시대. 누군가 지금을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핀잔받기 십상이다. 혁명의 꿈은 어느새 덧없는 열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 그러나 냉철히 톺아볼 일이다. 과연 그 시기(=1980년대-인용자)가 혁명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의 몇 가지 정황을 이야기하며, 먹물들 사이에 혁명의 담론만 넘쳐났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기실 아무런 준비없이 부닥친 자연발생적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자고 한다.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미FTA 체결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농민, 악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부시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보라고 한다. 일흔을 앞둔 소작 농민과 4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지는 시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평택 대추리 주민의 삶을 앗아가는 시대가 지금 여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왜 혁명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1980년대의 논리가 민중의 삶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영글어가는 시대에...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며 혁명을 준비하자고 한다. 언뜻 보면 이 무슨 철 지난 유행가도 아니고 생뚱맞은 소리인가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무장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 혁명의 시대다.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다. 비단 브라질의 룰라가 보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보라. 미국과 맞서 꿋꿋하게 베네수엘라 경제를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것이다. 과연 '선거혁명'이 유일하게 옳은 노선인지, '선거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에도 '얼빠진' 인간들, 노무현 당선을 일러 '선거혁명'이라고 하던 얼빠진 인간들이 어디 한둘 이었던가? 아마도 2007년 12월에도 '선거혁명'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배네수엘라 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1980년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 10년의 폐해 속에서 싹튼 민중의 저항에서 그 싹을 찾아낸다. 또한 차베스가 우발적 쿠데타의 실패 이후 10년이 지나 합법적 선거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배경에는 40년 동안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정치지형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집권 이후 반혁명 세력에 맞서 진정한 '민중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헌의회', '볼리바리안 헌법' 등이 차베스 집권 이후 행해진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차베스를 군기지에 감금했을 때 보여준 민중들의 '응징'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과정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의렴풋이 기억하는 2002년 그 봄의 며칠 동안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들려왔던 뉴스의 세세한 내막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칫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재판이 된 채 잊혀진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과정을 헤쳐나오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용기는 부러움 그 자체다. 차베스가 집권 이후 3년 동안 인민들에게 준 것을 인민들은 잊지 않고 3일 만에 차베스에게 보답해준 것이었다. 이것은 베네수엘라 선거혁명의 핵심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만 되면 '주둥이'로만 '선거혁명'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허왕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을 거치면서 내용  없는, 알맹이 없는 '개혁'의 허황됨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용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용 이전에 그 내용을 담보하는 '이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념이 아니라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고 그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드러나는 이념적 지향 같은 것.

이외에도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볼리바리안 클럽'의 형성과 활동,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정착되는 과정, 미국의 대외정책에 맞서는 대안적 중남미 지역네트워크 건설 등을 8편의 글들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주목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우리 나라 진보세력도 주목하고 연대를 표방했지만, 이상하게도 베네수엘라 만큼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켜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지는 몰라도 작년부터인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차베스 혁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란 자가 자신을 지지해준 정파의 비위를 맞추느라 '혁명열사릉 참배' 같은 소리나  하고, 무슨 2단계니 3단계니 하는 통일방안을 연출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폼이나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정신 차릴런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역시 이 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중복이라는 느낌도 없진 않다. 아마도 이 책임은 늦게 나온 새사연 쪽에 있을 것이다. 아래 글은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하고 있는 "우리 시대 지식논쟁"에서 인용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넘어선 21C 사회주의가 뜬다
우리시대 지식 논쟁
출처:인터넷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9138.html) 2007/09/30


»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① 왜 대안인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실험은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가 ‘우리시대 지식논쟁’의 두 번째 주제다.

반미노선과 기간산업 국유화, 석유판매 대금의 극빈층 지원 등 차베스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지향과 판이하다는 점에서 대안 모델의 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63%의 지지율로 재선된 차베스는 이런 높은 국민적 인기를 기반 삼아, 그가 명명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 정책들을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

높은 주목도만큼이나 평가의 진폭도 넓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있다는 적극적인 긍정론에서부터 재분배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가 연임제한 규정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의구심을 사는 한 요인이다.

이번 논쟁에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다. 김 센터장은 대다수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민중참여 권력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제도'의 심화 확산, '협동조합적 기업'을 통한 15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을 들며 베네수엘라 사회가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경로를 통해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유럽 모델을 한국 사회 대안으로 검토하던 진보학계에서도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직접 베네수엘라를 찾는 학계 인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베네수엘라의 무엇이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를 생생한 현실 속에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고통이 10년쯤 될 무렵인 1998년, 56.2% 지지율로 처음 대통령에 오른 우고 차베스는 이듬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을 제정하면서 새 세기의 문을 열고 헌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그 후 지금까지,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의 쿠데타, 2002년 12월 석 달에 걸친 자본 파업, 2004년 8월 대통령 소환투표로 이어지는 반혁명 세력의 도전을 극복한다. 지난해 12월 63%의 지지율로 다시 재선된 차베스는 주요 기간산업 국유화, 새로운 정당 건설, 국가권력 재편과 헌법 개정 추진을 비롯한 강도 높은 개혁프로그램을 현재 실시하고 있다.

혁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른 2005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지향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처음으로 밝힌다. 20세기 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21세기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재창조하자고 주장했다. 역사의 무덤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남미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실험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혁명이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대안모델로 선뜻 수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은 차베스가 ‘연임제한 철폐’를 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차베스는 지난 8월에 헌법조항 총 350조 가운데 33개 주요 조항을 수정하는 개헌안을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현재의 연임제한 조항 철폐를 제안한 대목이 분명히 들어 있다. 차베스도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의문은 당연히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개헌안에는 다음의 조항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70조에서 “민중들이 직접 통치권을 행사하는 경험, 공직 선출, 국민투표, 민중협의, 대통령을 포함한 중앙선출직 관료의 국민소환, 국민발안, 그리고 공개집회를 통해 민중들의 참여와 주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차베스의 제안이 그것이다. “주권은 민중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자본가들의 반발 맞서 초강수 개혁
빈곤의 늪 지나 4년째 두자릿수 성장
대통령 연임 따른 독재 우려도
직선·소환제 등 민중 참여로 근거 잃어


물론 이를 연임제한 철폐를 무마하기 위한 장식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아닌 베네수엘라의 실제를 보자. 현재 2700만 베네수엘라 국민의 대다수를 포괄하는 2만여 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아래로부터 민중참여 권력으로 창설되어 작동되고 있다. 2004년 소환투표가 이미 실행된 사례를 볼 때 대통령소환 역시 한갓 장식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대통령 견제수단이다. 유신독재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민투표를 악용해서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사실 자체가 아니라, 유신헌법에서 또 하나의 국민적 투표라고 할 수 있는 직선제를 폐기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치한 데 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대통령 직선은 물론이고 지금의 우리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국민소환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연임제한을 민주주의의 절대 조건으로 각인시키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기제가 아니다. 연임제한 철폐를 문제 삼지 않는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이 “프랑스나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영국 같은 나라들도 제한 없는 재선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도 독재국가인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도 절실한 것은 국민의 실질적 참여와 정치기제에 대한 국민의 직접적 통제이다. 참여정부 아래에서 민주주의의 유린은 어디서 벌어졌는가. 다수 국민의 참여 과정도 없고, 국민의 의사와도 다르게 강행된 국회의 일방적 대통령 탄핵,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민주주의는 사실상 유린되었다. 이런 면에서, 지금 베네수엘라는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실험에서, 아래로부터의 새 정당 건설 실험에서, 기업의 노동자 공동경영 제도에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이 지점이다.

정치와 함께 베네수엘라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분야는 바로 경제 시스템이다. 2007년 한국 대선도 경제대통령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절박한 양극화나 비정규직화를 구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성 있는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사회 양극화 현상을 능가하는 빈곤과 침체의 경제를 물려받은 이가 차베스였다. 그는 쿠데타와 자본파업이라는 시련을 극복한 2003년 이후, 빈곤층과 실업률을 꾸준히 줄이면서도, 고성장의 중국에 견줄 10% 수준의 경제성장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기업 내부도 주목할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 참여하는 경영 확산되고
수년간 일자리 150만개 창출
도그마 아닌 생생한 현실 속 변화
미국식 경제만 좇는 한국에 교훈


기업경영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 제도’가 실험·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3만 개 벤처기업 육성을 고창하는 사이, 비록 첨단 벤처는 아니지만 다양한 생산적 산업분야에서 ‘협동조합적 기업’이 베네수엘라에서 수년 간 18만 개 이상 만들어지고 있다. 15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음은 물론이다. 자영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대략 30만 개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이번 개헌안에는 하루 법정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조처가 포함되어 있다. “정규적이고 생산적인 고용을 늘리고 비공식 무문 경제와 실업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개정 목적이다.

물론 이런 실험이 고전적 사회주의의 국유화라는 잣대로 보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제도는 ‘사적 소유를 포함해서 다양한 독립적인 경제단위가 공존하는 일종의 혼합경제 시스템’이다. 과거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현실적 경로를 통해서 경제구조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차베스 정부가 전혀 미국과의 교역량을 줄이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는 실제가 아닌 레토릭(수사)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개혁을 착실히 수행하면서도 세계경제와의 교류를 폭력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있는 지점은 거꾸로 높게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반신자유주의가 실제가 아닌 레토릭으로 그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집단과 진보학계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실제적인 국민 삶을 한발자국씩 전진시키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대안은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다.

»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2006년 세계사회포럼에서 차베스는, “우리는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따라 모델을 복사하는 것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큰 잘못 중에 하나였다. 자주성과 다양성, 모든 공동체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통해 21세기에 새로운 경로를 여행할 사회주의 배너를 다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는 미국식 모델을 복사해온 과정이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미국식 모델에 더욱 가깝게 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경험이 진정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김병권씨는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1964년생이며 대안사회의 주체 형성과 중소기업 역할 재규정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저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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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새사연 신서 2
김병권. 손우정. 안태환. 여경훈. 이상동. 정희용. 한우림 지음 / 시대의창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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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 

언뜻 생각해보면 '혁명'과 '개혁'의 위치가 뒤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를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글을 시작한다.

"혁명의 시대. 누군가 지금을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핀잔받기 십상이다. 혁명의 꿈은 어느새 덧없는 열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 그러나 냉철히 톺아볼 일이다. 과연 그 시기(=1980년대-인용자)가 혁명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의 몇 가지 정황을 이야기하며, 먹물들 사이에 혁명의 담론만 넘쳐났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기실 아무런 준비없이 부닥친 자연발생적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자고 한다.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미FTA 체결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농민, 악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부시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보라고 한다. 일흔을 앞둔 소작 농민과 4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지는 시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평택 대추리 주민의 삶을 앗아가는 시대가 지금 여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왜 혁명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1980년대의 논리가 민중의 삶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영글어가는 시대에...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며 혁명을 준비하자고 한다. 언뜻 보면 이 무슨 철 지난 유행가도 아니고 생뚱맞은 소리인가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무장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 혁명의 시대다.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다. 비단 브라질의 룰라가 보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보라. 미국과 맞서 꿋꿋하게 베네수엘라 경제를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것이다. 과연 '선거혁명'이 유일하게 옳은 노선인지, '선거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에도 '얼빠진' 인간들, 노무현 당선을 일러 '선거혁명'이라고 하던 얼빠진 인간들이 어디 한 둘 이었던가? 아마도 2007년 12월에도 '선거혁명'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배네수엘라 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1980년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 10년의 폐해 속에서 싹튼 민중의 저항에서 그 싹을 찾아낸다. 또한 차베스가 우발적 쿠데타의 실패 이후 10년이 지나 합법적 선거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배경에는 40년 동안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정치지형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집권 이후 반혁명 세력에 맞서 진정한 '민중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헌의회', '볼리바리안 헌법' 등이 차베스 집권 이후 행해진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차베스를 군기지에 감금했을 때 보여준 민중들의 '응징'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과정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의렴풋이 기억하는 2002년 그 봄의 며칠 동안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들려왔던 뉴스의 세세한 내막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칫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재판이 된 채 잊혀진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과정을 헤쳐나오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용기는 부러움 그 자체다. 차베스가 집권 이후 3년 동안 인민들에게 준 것을 인민들은 잊지 않고 3일 만에 차베스에게 보답해준 것이었다. 이것은 베네수엘라 선거혁명의 핵심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만 되면 '주둥이'로만 '선거혁명'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허왕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을 거치면서 내용  없는, 알맹이 없는 '개혁'의 허황됨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용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용 이전에 그 내용을 담보하는 '이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념이 아니라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고 그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드러나는 이념적 지향 같은 것.

이외에도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볼리바리안 클럽'의 형성과 활동,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정착되는 과정, 미국의 대외정책에 맞서는 대안적 중남미 지역네트워크 건설 등을 8편의 글들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주목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우리 나라 진보세력도 주목하고 연대를 표방했지만, 이상하게도 베네수엘라 만큼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켜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지는 몰라도 작년부터인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차베스 혁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란 자가 자신을 지지해준 정파의 비위를 맞추느라 '혁명열사릉 참배' 같은 소리나  하고, 무슨 2단계니 3단계니 하는 통일방안을 연출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폼이나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정신 차릴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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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대한 단상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인터넷 한겨레신문, 2002년 3월 21일
김훈 기자hoonk@hani.


내오랜꿈********************************************************


이 글은 나이 50이 넘어, 새내기 사회부 기자들이 출입하는 경찰청 출입기자를 자원하느라, 잘 나가는 모주간지 편집국장 자리를 던져버리고 한겨레 신문에 입사했던 김훈 기자의 컬럼성 잡문이다. 기자 세계에서 편집국장이 차지하는 막강한 권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던 그는 그렇게 다시 일선 취재현장에 섰다. 한겨레 내부에서조차 찬반양론이 분분했다던데... 그러나 그의 글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기자 글쓰기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3년, 결국 김훈은 한겨레를 떠났다. 왜 떠났는지에 대해선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떠난 뒤 어느 한겨레 기자가 한겨레 뉴스메일에 연재한 두 편의 글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어차피 글쟁이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글쓰기를 계속 하겠지만, <한겨레> 사회부 기자로서 보여주었던 짧은 칼럼성의 글들은 그야말로 명문으로 인정해주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004/05/01

한겨레를 떠난 이후 그는 완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발표된 글들. 중 단편들을 묶은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그리고 최근의 <남한산성>까지...

이 와중에 <시사저널> 사태가 터졌고, 그는 그 현장에서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후배 기자들에게 모진 소리를 쏟아놓는다. 자신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사저널>에의 말못할 추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론 피투성이로 싸우고 있는 현장의 기자들에게 할 소리는 아닌 듯했다. '왜 적당히 타협해서 좋게 가지 않느냐'는 소리가 그 상황에서 그리 쉽게 나와야 하는 소리인가? 또한 문제의 발단이 된 삼성 구조본의 이학수 관련 기사를 일러 기사의 기본 구성요건도 안 되는 글이라는 막말을 서슴치 않았다. 그게 사주의 횡포,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장의 기자들에게 할 소린가? 자신이 보기에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선 가슴 속에 묻어두어야 할 소리 아닌가?

어쨌든, 그에 대한 글을 하나 써야겠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에서 드러나는 그의 본성이랄까, 지식인의 허위의식 같은 것이랄까. 예컨대 현실역사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말 못하고 숨죽여 지냈던 비겁함이 소설이라는 세트(=가상공간) 안에서는 '너무 할말이 많아지는 역사적 허기'로 나타나는 지식인의 허위의식 같은 것에 대해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200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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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2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언제가 빨리 오면 좋겠군요. 뭐 요즘 할일도 없잖수? ㅎㅎ 근데 저 밥에대산 단상이란 글을 보니 김훈이 정말 글을 잘쓰긴 진짜 잘씁니다. 바로 옆에서 보는듯 그려지는 정경과 그곳에 있을 사람들의 내면까지도 전해지는 듯하군요.
그나저나 추석은 잘 지내셨는지... 언니한테도 안부전해 주시고요.

내오랜꿈 2007-09-30 15:31   좋아요 0 | URL
항상 '언제'일 수 있지. 잠깐 쓰다가 너무 막 나간다 싶어 <칼의 노래>를 다시 읽고 있는데 글쎄... 언제일까?

추석때 '양반집안' 시댁에서 일하느라 고생하셨수! ㅎㅎ 난 뭐 그냥 맹탕 놀았지. 영화 보고, 책 읽고.. 아 참, 추석연휴 동안 래리 고닉의 세계사 시리즈 읽었는데, 이원복 교수가 많이 배워야 하겠더만!

책읽는나무 2007-09-30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세밀하게 묘사하는 김훈의 글솜씨는 인정해줘야할 것같아요.
그러고보니 바람돌이님의 지인이셨군요.
처음 글을 남기나보네요.몰래 들어와 글만 읽고 나갔어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내오랜꿈 2007-09-30 15:35   좋아요 0 | URL
네에, 인정해줘야죠. 전 2002년부터 김훈 '팬'이었습니다. 그가 쓴 기사에 한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글솜씨' 하고 '글'은 좀 다르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저 역시 님의 서재에 갔다가 그냥 나온 적 많습니다.^^

희망찬 10월 맞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