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새사연 신서 2
김병권. 손우정. 안태환. 여경훈. 이상동. 정희용. 한우림 지음 / 시대의창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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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 

언뜻 생각해보면 '혁명'과 '개혁'의 위치가 뒤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를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글을 시작한다.

"혁명의 시대. 누군가 지금을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핀잔받기 십상이다. 혁명의 꿈은 어느새 덧없는 열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 그러나 냉철히 톺아볼 일이다. 과연 그 시기(=1980년대-인용자)가 혁명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의 몇 가지 정황을 이야기하며, 먹물들 사이에 혁명의 담론만 넘쳐났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기실 아무런 준비없이 부닥친 자연발생적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자고 한다.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미FTA 체결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농민, 악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부시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보라고 한다. 일흔을 앞둔 소작 농민과 4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지는 시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평택 대추리 주민의 삶을 앗아가는 시대가 지금 여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왜 혁명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1980년대의 논리가 민중의 삶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영글어가는 시대에...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며 혁명을 준비하자고 한다. 언뜻 보면 이 무슨 철 지난 유행가도 아니고 생뚱맞은 소리인가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무장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 혁명의 시대다.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다. 비단 브라질의 룰라가 보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보라. 미국과 맞서 꿋꿋하게 베네수엘라 경제를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것이다. 과연 '선거혁명'이 유일하게 옳은 노선인지, '선거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에도 '얼빠진' 인간들, 노무현 당선을 일러 '선거혁명'이라고 하던 얼빠진 인간들이 어디 한 둘 이었던가? 아마도 2007년 12월에도 '선거혁명'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배네수엘라 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1980년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 10년의 폐해 속에서 싹튼 민중의 저항에서 그 싹을 찾아낸다. 또한 차베스가 우발적 쿠데타의 실패 이후 10년이 지나 합법적 선거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배경에는 40년 동안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정치지형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집권 이후 반혁명 세력에 맞서 진정한 '민중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헌의회', '볼리바리안 헌법' 등이 차베스 집권 이후 행해진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차베스를 군기지에 감금했을 때 보여준 민중들의 '응징'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과정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의렴풋이 기억하는 2002년 그 봄의 며칠 동안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들려왔던 뉴스의 세세한 내막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칫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재판이 된 채 잊혀진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과정을 헤쳐나오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용기는 부러움 그 자체다. 차베스가 집권 이후 3년 동안 인민들에게 준 것을 인민들은 잊지 않고 3일 만에 차베스에게 보답해준 것이었다. 이것은 베네수엘라 선거혁명의 핵심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만 되면 '주둥이'로만 '선거혁명'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허왕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을 거치면서 내용  없는, 알맹이 없는 '개혁'의 허황됨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용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용 이전에 그 내용을 담보하는 '이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념이 아니라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고 그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드러나는 이념적 지향 같은 것.

이외에도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볼리바리안 클럽'의 형성과 활동,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정착되는 과정, 미국의 대외정책에 맞서는 대안적 중남미 지역네트워크 건설 등을 8편의 글들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주목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우리 나라 진보세력도 주목하고 연대를 표방했지만, 이상하게도 베네수엘라 만큼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켜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지는 몰라도 작년부터인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차베스 혁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란 자가 자신을 지지해준 정파의 비위를 맞추느라 '혁명열사릉 참배' 같은 소리나  하고, 무슨 2단계니 3단계니 하는 통일방안을 연출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폼이나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정신 차릴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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