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라, 폭풍우가 내리칠지라도
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⑥ 바르바라 은디무루쿤도-쿠루루
 
 바르바라 은디무루쿤도-쿠루루 / 동화작가·부줌부라 부룬디 대학 교수
 <한겨레> 2007 11 01

 
» 바르바라 은디무루쿤도-쿠루루/동화작가·부줌부라 부룬디 대학 교수
 
 
글쓰기란 사회 및 세상과 공유하기에 유난히 어려운 어떤 진실들을 드러내는 왕도(王道) 중 하나다. 따라서 작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삶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의견을 조명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작가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다. 아예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정치적 격동기에는 뜨거운 현안을 소재로 삼거나 자극적 주제를 다룬 글들이 가장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정치, 경제 분야에 보다 많은 흥미를 보이는 독자들로서는 아무래도 소설 등 문학작품에 관심을 덜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자기 재능을 활용하여 분쟁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 글을 통해 제시해보고자 한다. 작가란 지식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작가는 횃불을 들고 미래의 일들을 예견하며 미리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회의 일원이다. 전쟁 기간 중 작가로 살겠다고 정말 선택했다면 이는 예리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갖춘 분석가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물론 비방하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소설을 발표하면 몽상가라느니 비현실적이라느니 하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반면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하면 정치인이냐는 둥의 소리를 듣기도 하며, 동시에 세계를 지배하는 이들의 미움이나 분노를 살 가능성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이든 간에 아마도 작가는 인간의 법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불균형한 세상을 살아갈 위험이 있다.

작가의 행보는 제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가운데 샤를 보들레르의 시에 등장하는 알바트로스의 비상(飛上)처럼 무거워질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용기와 결단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시간과 공간 곳곳에 흩어진 각양각색의 독자들과 호흡을 맞출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입소문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독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남에게 전해들은 내용을 다시금 변형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며 유언비어까지 퍼뜨려 집단 히스테리를 유발할 수도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횃불을 높이 들고 잠재적 독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결은 바로 늘 진실한 태도로 오직 진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작가의 재능과 언어의 마술을 드러내는 소설적 문체로 진리를 감싸는 동시에 겸허하고 침착한 태도로 사건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물론 절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이들이 오직 전쟁만이 평화의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평화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사고만으로는 세상을 안심시키기에 충분치 않다. 굶주린 민족에게 평화는 없으며 집 없는 가족에게도 평화는 없다. 학교에 다닐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학비를 대줄 사람이 없는 고아들에게 평화는 없다. 숨죽인 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인들에게 평화는 없다. 온갖 자연재해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주민들에게 평화는 없다. 주기적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평화는 없다. 언제 원자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세상에 평화는 없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길지만 일단은 이렇게 몇 가지 예로 만족하자.

분쟁지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의 창조자로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여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도전하지 않는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이 맡은 선구자적 역할을 인식하는 용기 있는 작가라면 사회를 좀먹는 해악들을 고발하고 뛰어난 효능의 치료법을 각 상황에 맞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소설적 문체로 잔혹함을 맹비난하든 시적 산문으로 사랑을 노래하든, 무엇이든 좋다. 다만 까마귀를 노랗게, 오렌지를 파랗게 그리는 것만 피하면 이상적이리라. 공포를 물리치고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현재를 반영한 글쓰기를 통해 불의를 몰아내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지지하는 것, 발언권 없는 이들을 대변하는 데에 자기 삶을 바치는 것,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예술가의 머리 위로 벼락과 폭풍우가 내려쳐도 그러려니 하며 너무 좌절하지 않는 것. 분쟁지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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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건진 미국 민요 ‘불멸의 노래’ 되다
세상을 바꾼 노래
⑤ 레드벨리의 <미드나이트 스페셜>(1934년)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1 01

» 미국 민속음악의 현대화에 기여한 두 거인 레드벨리(오른쪽)와 우디 거스리.

감옥은 시간이 정체된 곳이다. 사회로의 포섭을 위해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변화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쇼생크’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이미 수십 번이나 돌려본 리타 헤이워스 영화에 매번 시사회와 같은 열광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포크음악의 보존과 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민속학자 존 로맥스가 구전가요들을 녹음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머물러 있는 음악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1933년 로맥스에게 ‘발견’되었을 때, 허디 레드베터는 폭력상해죄로 복역 중이었다. 본명보다 레드벨리(188?~1949)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타고난 음악재능과 방대한 레퍼토리로 로맥스를 사로잡았다. 블루스와 컨트리의 뿌리였다고 할 노동요, 영가, 춤곡, 동요의 원형질들이 그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권위 있는 음악지 <롤링 스톤>이 레드벨리를 일컬어 “현대 세계와 민속 전통 사이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라고 평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드나이트 스페셜>은 1935년 형기를 마치고 나온 후 레드벨리가 남긴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곡의 하나다. 이미 1920년대부터 이 노래를 불러왔던 레드벨리는 몇 가지 다른 버전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최고의 가스펠 그룹이었던 ‘골든 게이트 쿼텟’과 함께한 녹음이다.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그렇듯, 전승가요를 편곡한 이 곡은 소위 ‘프리즌 블루스’라는 고전적 하위 장르의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어의 몸이 된 처지와 ‘야간특급’ 열차의 불빛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노랫말에, 불완전한 형식의 블루스 악곡을 얹은 이 곡은 그 자체로 음악사의 ‘미싱 링크’를 메우는 살아있는 화석인 것이다.

너바나의 유작 <언플러그드 인 뉴욕>(1994)에서 커트 코베인은 “가장 좋아하는 퍼포머의 노래”라는 소개와 함께 레드벨리의 곡을 연주했다. 그 곡 <웨어 디드 유 슬립 라스트 나이트>를 통해 당대의 젊은이들이 그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 레드벨리는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때로는 함께) 활동했던 우디 거스리가 미국 ‘모던포크의 아버지’로 명성을 남긴데 비하면 초라한 위상이다.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미지의 과거로 사라질 뻔했던 무수한 고전민요들은 레드벨리의 기억 속에 봉인된 덕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아바를 거쳐 유투에 이르기까지. 댄스 팝 가수에서 펑크 록 밴드까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한 수많은 이들이 레드벨리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굿나이트 아이린>, <록 아일랜드 라인>,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 등은 그가 남긴 유산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랑에 관한 최고의 노래들이 실연에 상심한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인생에 관한 최고의 노래들은 그것의 쓴맛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나왔다고 할 것이다. 감옥을 들락거리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궤적을 질주했던 레드벨리의 노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존할 수 있는 힘 또한 그로부터 비롯한 것일 터다.

박은석/음악평론가


내오랜꿈 ------------------------------------------------------------


Leadbelly - Cotton Fields

Leadbelly (Huddie Ledbetter, 1888-1949)

리드벨리.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아마도 박은석씨는 차마 그가 살인혐의로 복역했다는 언급은 하지 못하고 그냥 폭력상해죄라고만 언급하고 있지만 그는 살인혐의로 복역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 1918년 살인혐의로 복역하다가 1924년 텍사스 주지사가 그의 노래를 듣고 사면해주었으나, 1930년 다시 살인기도 혐의로 수감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1933년, 당시 Folk Blues 연구가인 John Lomax, Allan Lomax 부자에 의해 이 앨범, <미드나이트 스페셜>의 녹음이 이루어졌는데, 이 앨범에 들어있는 "Governor O.K. Allen"란 곡은 그의 석방 청원을 위해 쓴 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존 로맥스가 이 곡을 녹음하여 교도소장에게 전달하는 등의 구명 운동을 벌였고 얼마 후 리드벨리는 석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시대상황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흑인음악가들이 그랬겠지만, 리드벨리도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낮에는 목화농장에서 목화 따고 밤에는 거리의 술집에서 연주했다 한다. 그런 와중에 살인 및 폭행으로 교도소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내다가 말년에 겨우 판도 내고 공연도 하게 되지만 얼마 못가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흔히 블루스의 양대 계보를 미시시피 지역과 텍사스 지역으로 나누는데 남부 텍사스 지역의 블루스가 미시시피 블루스에 비해 보다 포크적인 요소가 많고 멜로디가 풍부한 편이다. 리드벨리도 텍사스 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성량이 풍부하고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곡은 "Cotton Fields"란 곡인데,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와 CCR이 불러 유명해진 곡이다. 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릴 때부터 일했을 'cotton fields'를 생각하면 노래가 의외로 너무나 경쾌하게 들린다.

아래에 링크시킨 곡은 <니르바나>의 마지막 유작이 된 'MTV Unplugged' 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불러 더욱 유명해진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이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커트코베인의 그 절규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겠지만 리드벨리의 원곡에는 커트코베인의 절규와는 또다른 슬픔이 묻어난다.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시길.....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Leadbelly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Kurt Cob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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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진보세력의 몰락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출처 : <한국일보> 2007/10/31

진보세력이 몰락했다. 노무현 정권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난공불락처럼 보인다. 좌파 정권이 집권하여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한탄하던 보수세력의 한숨이 엊그제처럼 또렷한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노 정권이 진보개혁 세력임을 자처하고 나오자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맹공격하였다. 노 정권과 이른바 386세력의 미숙하고 오만한 행동들은 보수파 뿐 아니라 국민 다수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 복지와 개혁보다 신자유주의 추구

노 정권은 사적 이익과 직결된 과거사 처리, 보안법 개폐, 사학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을 개혁의 표상으로 추진하였다. 보수파들은 이념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결사 항전하였다. 그래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서로간의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국민의 '개혁 피로'를 유발하였다.

노 정권은 정작 진보 개혁의 핵심이어야 복지 확대, 재벌 개혁 등 사회경제적 개혁은 무시하고 친 재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겼다. 대중은 경제적 어려움을 실감하게 되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다.

돈과 언론을 장악한 보수파들은 무늬만 진보세력이고 실제로는 보수세력에 가까운 정권을 좌파라고 매도하고 보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 성공했다. 국민들은 노 정권이 무능하고 건방진 진보개혁 세력이라고 믿게 되었고, '경제 위기'가 이런 진보정책 때문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를 기록하게 되었고,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하자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벌이게 된다.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리 없었지만, 이 제안은 정권과 한나라당 사이에 아무런 정책 차이가 없었음을 잘 보여주었다.

노 정부의 출범과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로 한국 정치에도 진보세력이 똬리를 틀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였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여전히 보수세력이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문제는 노 세력이 진보개혁세력이라고 국민들을 속였고, 또 국민들이 속았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그들에게는 뚜렷한 이념이나 노선이 없었지만 한나라당에 반대하다 보니 진보인 것처럼 스스로 착각했고, 집권하고 보니 보수세력이 워낙 강해서 저절로 보수의 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들을 싸잡아 좌파라고 공격함으로써 그렇잖아도 좌파 알레르기가 있는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들 수 있었다.

이렇게 진보파 또는 그 잠재력이 몰락하게 되자, 정치인 지식인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보수로의 전향을 선언하고 나왔다.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지자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이 뛰쳐나왔지만,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정치적 명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배가 기우니 배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았는가? 대답이 필요 없다.

● 정치인ㆍ지식인 모두 보수로 전향

무슨 대통합신당? 대통합은 어디 있고 새롭기는 무엇이 새로운가? 달라진 것은 손학규를 영입했다는 것 뿐이다. 그나마 진보적인 천정배 신기남 같은 사람들은 창피스러운 지지도로 대선 경선에서 탈락했고, 승리한 정동영 후보의 이념은 이명박과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 후보로 확정된 뒤 이명박과 좀 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싹을 보이던 진보세력의 성장은 그 싹이 잘리고 말았다. 그렇게 된 가장 큰 까닭은 노무현 사이비 진보세력이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시 힘을 얻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오랜꿈 ----------------------------------------------------------------

* 윗글에 동의하는 점 :
말하고자 하는 전체 논지= 노무현이라는 정신나간 얼치기 개혁집단이 들어와 '진보'라는 이름을 걸레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여 진보세력의 후퇴를 가져왔다. 이를 극복할려면 상당히 힘들 것이다.

* 윗글에 동의하지 않는 점 :
1. 위에서 언급되는 세력이나 인간 중에 '그나마' 진보적인 인간은 애초부터 없었다. 천정배, 신기남? 글이 너무 밋밋할까바 필자가 끼워넣은 개그로 이해한다.
2. 진보세력은 몰락하지 않았다. 자기 자리를 지켜왔을 뿐이다. 단, 자기 할일을 제대로 못하고, '헛지랄' 하는 세력들과 보조맞추느라 시간낭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 윗글을 읽고 되새겨야 할 교훈 :
1. 다시는 한나라당에 반대하면 '진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2.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는 도둑질을 '차떼기'로 하느냐, '사과박스'로 하느냐의 차이밖에 없다는 것. 곧 도둑이라는 본질의 차이가 없다는 점. 이걸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은 자기도 사과박스에 들어갈 정도의 돈은 도둑질 할 수 있다는 걸 고백하는 것밖에 안 된다!
3. 열린우리당 지지하면 자기가 진보세력이나 개혁세력에 속한다고, 양심적 지식인에 속한다고 '자위'하지 말아야 한다.
4. 그래도 열린우리당이나 그 비슷한 세력 지지한다면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당신의 이념이 그 정도니 노무현정권 지지한다고 하면 되지 얼어죽을 넘의 진보는 왜 팔아 먹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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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0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어제 아침에 신문 보다가 버럭 했었는데.

내오랜꿈 2007-11-02 16:01   좋아요 0 | URL
^.^.
 

[정당없는 한국정치] 정체성 확고한 서구정당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노선 수정땐 치열한 당내 사상투쟁


정당정치가 활성화된 유럽이나 양당제 전통이 뿌리깊은 미국에서도 아웃사이더의 등장, 당원 수 감소, 정당 일체감 약화, 이로 인한 영향력 감소 등을 겪고 있다. 심지어 “머지않은 장래에 정당이 소멸할 것”이란 예측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탈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시민의 가치관이 급변, 세분화된 데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정당을 통하지 않고도 정부와 시민이 직접 소통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정당이 겪고 있는 위기와 한국의 정당정치가 처한 위기는 현상적으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질적으로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정당정치의 심화 정도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탈당과 창당 등 이합집산이 일상화된 한국과 달리 서구의 정당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은 보수당이 창당한 지 175년이 넘었고, 노동당도 10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은 공화당이 152년, 민주당이 178년 전에 만들어졌다. 스웨덴에서는 사민당이 다양한 연정을 통해 60년 동안이나 집권하기도 했다. 한국은 1997년 11월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통합하면서 만들어진 한나라당이 현존하는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최근 들어 ‘아웃사이더’의 출현이 잦아지고는 있지만 서구에서 주요 정치 지도자들은 오랜 정당생활을 통해 경험과 행정 경력을 쌓은 뒤에 배출되는 것이 당연시된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역시 대학 시절부터 학생회장을 역임하며 의회 인턴·전당대회 자원봉사 등 다양한 정당활동을 경험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역시 20대 시절부터 정당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블레어 전 총리가 29세의 새내기 정치인이었던 시절 마이클 푸트 당시 노동당 당수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보수당 집권 시절 야당인 노동당의 예비내각에서 내무·법무·에너지·노동 장관을 두루 거친 뒤 총리에 올랐다. 고든 브라운 현 총리 역시 최장수 재무장관(10년)을 역임했다.

서구에서 정당들이 오랜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오래 전부터 도입했다는 당연한 이유 외에도 정당들이 지역·계층·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고 서로 대비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외정책, 이민자 정책, 낙태·피임, 총기 규제 등 각종 정책에 대해 뚜렷하게 대비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의 정당 균열이 1차적으로 지역 연고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당의 정체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노선 변화를 위해선 치열한 당내 노선 투쟁이 벌어진다. 1994년 노동당 당수가 된 블레어 전 총리가 국유화 등 전통적인 노동당 강령을 버리고 중산층 껴안기를 시도하면서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벌인 치열한 ‘사상투쟁’이 한 예다.

명지대 정진민 교수는 “서구의 정당과 한국의 정당은 출발 자체가 다르다”면서 “우리는 정당 정치가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사회가 심대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중첩돼 있다”고 말했다.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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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없는 한국정치] 박노자 “정책 비전 없이 권력만 추구”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계급·이념적 자기 정체성에 솔직해야
-노동자·서민정당 ‘한쪽’담당할때 복원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 교수는(34) 한국 정당정치 부재의 원인에 대해 “정당들이 정책적 비전 없이 특정 이해 집단의 권력 장악에 대한 욕망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31일 경향신문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정당들이 실체 없는 ‘국민’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갖고 정책 노선을 분명히 할 때 비로소 정당정치가 복원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당정치 부재가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당의 현실과 그 역할에 대해 어떻게 보나.

“‘정상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정당은 어느 특정 계층이나 특정한 사회·정치적 경향을 대변한다. 같은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일지라도 그들이 대변하는 ‘경향’에 따라 차이가 아주 클 수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똑같은 대자본의 이해 대변자이지만, ‘유럽·중국 등 힘의 중심들과의 외교를 통한 미국의 패권 지속 노선’을 대변하는 민주당과 ‘중동 유전 지역에 대한 물리력 행사를 통한 직접 지배’를 원하는 공화당 사이의 정책 차이는 분명하다. 한국의 경우 정책적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정도의 차이’뿐이다. 민노당을 제외한 한국의 정당은 대개 지역 토호와 특정 이해 집단의 행정권력 장악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다. 이는 정책적 비전 등에 의거하지 않는다. 정당은 있어도 제대로 된 정책 경쟁은 없다.”

-노르웨이 등 서구 정당과 비교한다면.

“노르웨이의 경우 주요 정당은 사회주의 좌파당, 노동당, 우파당 등 약 7개나 되고 그 사이의 이념과 정책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극우는 비서구인의 이민을 제한시키자고 하는가 하면, 사회주의좌파당은 미국과의 안보조약 파기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원한다. 한국은 민노당을 제외하고는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한국 정당정치의 구조와 현실 중 어느 부분이 문제이며 원인은 뭔가.

“정당이 자신의 계급적·이념적 배경에 대해 솔직하다는 것은 큰 미덕이다. 노르웨이의 우파는 ‘우리가 자본주의 옹호론자, 중산계층 내지 그 이상의 대변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민노당이 부분적으로 예외이긴 하지만 한국의 정당은 대부분 ‘국민’을 내세운다. 계급·계층적 갈등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국민’은 허구인데, 이 허구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다.”

-정당정치 부재와 관련, 이합집산하는 한국 정당들의 후진성이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합집산의 원인과 그 폐해는.

“지역 토호 및 특정 이해 집단이 만들고 운영하는 정당이다보니 이해 관계의 변화에 따른 이합집산이 불가피하다. 결국 이를 보는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다 같은 도둑놈이야”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신경을 끊어버리는 것은 최대 폐단이다.”

-정당정치의 복원을 위한 대안은.

“노동계급 및 서민(영세민)의 정당인 민노당이 유럽 좌파 정당들처럼 약 30~50%의 지지를 받는 경우에 가능해진다. 좌파 정치가 정치판의 한 쪽을 담당해버리면 다른 쪽의 정치성도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고 성공여부도 불확실하다.”

-의원내각제로의 개편이 해법이 될 수 있나.

“아닌 것 같다. 한국적 현실, 국회의원들이 각종 이해 집단에 어느 정도 종속적인가를 감안한다면 다수의 이해 관계를 위한 합리적 정책의 수립 및 실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종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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