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없는 한국정치] 박노자 “정책 비전 없이 권력만 추구”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계급·이념적 자기 정체성에 솔직해야
-노동자·서민정당 ‘한쪽’담당할때 복원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 교수는(34) 한국 정당정치 부재의 원인에 대해 “정당들이 정책적 비전 없이 특정 이해 집단의 권력 장악에 대한 욕망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31일 경향신문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정당들이 실체 없는 ‘국민’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갖고 정책 노선을 분명히 할 때 비로소 정당정치가 복원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당정치 부재가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당의 현실과 그 역할에 대해 어떻게 보나.

“‘정상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정당은 어느 특정 계층이나 특정한 사회·정치적 경향을 대변한다. 같은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일지라도 그들이 대변하는 ‘경향’에 따라 차이가 아주 클 수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똑같은 대자본의 이해 대변자이지만, ‘유럽·중국 등 힘의 중심들과의 외교를 통한 미국의 패권 지속 노선’을 대변하는 민주당과 ‘중동 유전 지역에 대한 물리력 행사를 통한 직접 지배’를 원하는 공화당 사이의 정책 차이는 분명하다. 한국의 경우 정책적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정도의 차이’뿐이다. 민노당을 제외한 한국의 정당은 대개 지역 토호와 특정 이해 집단의 행정권력 장악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다. 이는 정책적 비전 등에 의거하지 않는다. 정당은 있어도 제대로 된 정책 경쟁은 없다.”

-노르웨이 등 서구 정당과 비교한다면.

“노르웨이의 경우 주요 정당은 사회주의 좌파당, 노동당, 우파당 등 약 7개나 되고 그 사이의 이념과 정책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극우는 비서구인의 이민을 제한시키자고 하는가 하면, 사회주의좌파당은 미국과의 안보조약 파기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원한다. 한국은 민노당을 제외하고는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한국 정당정치의 구조와 현실 중 어느 부분이 문제이며 원인은 뭔가.

“정당이 자신의 계급적·이념적 배경에 대해 솔직하다는 것은 큰 미덕이다. 노르웨이의 우파는 ‘우리가 자본주의 옹호론자, 중산계층 내지 그 이상의 대변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민노당이 부분적으로 예외이긴 하지만 한국의 정당은 대부분 ‘국민’을 내세운다. 계급·계층적 갈등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국민’은 허구인데, 이 허구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다.”

-정당정치 부재와 관련, 이합집산하는 한국 정당들의 후진성이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합집산의 원인과 그 폐해는.

“지역 토호 및 특정 이해 집단이 만들고 운영하는 정당이다보니 이해 관계의 변화에 따른 이합집산이 불가피하다. 결국 이를 보는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다 같은 도둑놈이야”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신경을 끊어버리는 것은 최대 폐단이다.”

-정당정치의 복원을 위한 대안은.

“노동계급 및 서민(영세민)의 정당인 민노당이 유럽 좌파 정당들처럼 약 30~50%의 지지를 받는 경우에 가능해진다. 좌파 정치가 정치판의 한 쪽을 담당해버리면 다른 쪽의 정치성도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고 성공여부도 불확실하다.”

-의원내각제로의 개편이 해법이 될 수 있나.

“아닌 것 같다. 한국적 현실, 국회의원들이 각종 이해 집단에 어느 정도 종속적인가를 감안한다면 다수의 이해 관계를 위한 합리적 정책의 수립 및 실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종목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