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속음악의 현대화에 기여한 두 거인 레드벨리(오른쪽)와 우디 거스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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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은 시간이 정체된 곳이다. 사회로의 포섭을 위해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변화 없는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쇼생크’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이미 수십 번이나 돌려본 리타 헤이워스 영화에 매번 시사회와 같은 열광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포크음악의 보존과 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민속학자 존 로맥스가 구전가요들을 녹음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머물러 있는 음악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1933년 로맥스에게 ‘발견’되었을 때, 허디 레드베터는 폭력상해죄로 복역 중이었다. 본명보다 레드벨리(188?~1949)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타고난 음악재능과 방대한 레퍼토리로 로맥스를 사로잡았다. 블루스와 컨트리의 뿌리였다고 할 노동요, 영가, 춤곡, 동요의 원형질들이 그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권위 있는 음악지 <롤링 스톤>이 레드벨리를 일컬어 “현대 세계와 민속 전통 사이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라고 평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드나이트 스페셜>은 1935년 형기를 마치고 나온 후 레드벨리가 남긴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곡의 하나다. 이미 1920년대부터 이 노래를 불러왔던 레드벨리는 몇 가지 다른 버전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최고의 가스펠 그룹이었던 ‘골든 게이트 쿼텟’과 함께한 녹음이다.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그렇듯, 전승가요를 편곡한 이 곡은 소위 ‘프리즌 블루스’라는 고전적 하위 장르의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어의 몸이 된 처지와 ‘야간특급’ 열차의 불빛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노랫말에, 불완전한 형식의 블루스 악곡을 얹은 이 곡은 그 자체로 음악사의 ‘미싱 링크’를 메우는 살아있는 화석인 것이다.
너바나의 유작 <언플러그드 인 뉴욕>(1994)에서 커트 코베인은 “가장 좋아하는 퍼포머의 노래”라는 소개와 함께 레드벨리의 곡을 연주했다. 그 곡 <웨어 디드 유 슬립 라스트 나이트>를 통해 당대의 젊은이들이 그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 레드벨리는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때로는 함께) 활동했던 우디 거스리가 미국 ‘모던포크의 아버지’로 명성을 남긴데 비하면 초라한 위상이다.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미지의 과거로 사라질 뻔했던 무수한 고전민요들은 레드벨리의 기억 속에 봉인된 덕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아바를 거쳐 유투에 이르기까지. 댄스 팝 가수에서 펑크 록 밴드까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한 수많은 이들이 레드벨리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굿나이트 아이린>, <록 아일랜드 라인>,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 등은 그가 남긴 유산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랑에 관한 최고의 노래들이 실연에 상심한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인생에 관한 최고의 노래들은 그것의 쓴맛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나왔다고 할 것이다. 감옥을 들락거리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궤적을 질주했던 레드벨리의 노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존할 수 있는 힘 또한 그로부터 비롯한 것일 터다.
박은석/음악평론가
내오랜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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