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라, 폭풍우가 내리칠지라도
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⑥ 바르바라 은디무루쿤도-쿠루루
 
 바르바라 은디무루쿤도-쿠루루 / 동화작가·부줌부라 부룬디 대학 교수
 <한겨레> 2007 11 01

 
» 바르바라 은디무루쿤도-쿠루루/동화작가·부줌부라 부룬디 대학 교수
 
 
글쓰기란 사회 및 세상과 공유하기에 유난히 어려운 어떤 진실들을 드러내는 왕도(王道) 중 하나다. 따라서 작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삶의 다양한 모습에 관한 의견을 조명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작가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다. 아예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정치적 격동기에는 뜨거운 현안을 소재로 삼거나 자극적 주제를 다룬 글들이 가장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정치, 경제 분야에 보다 많은 흥미를 보이는 독자들로서는 아무래도 소설 등 문학작품에 관심을 덜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자기 재능을 활용하여 분쟁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 글을 통해 제시해보고자 한다. 작가란 지식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작가는 횃불을 들고 미래의 일들을 예견하며 미리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회의 일원이다. 전쟁 기간 중 작가로 살겠다고 정말 선택했다면 이는 예리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갖춘 분석가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물론 비방하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소설을 발표하면 몽상가라느니 비현실적이라느니 하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반면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시도하면 정치인이냐는 둥의 소리를 듣기도 하며, 동시에 세계를 지배하는 이들의 미움이나 분노를 살 가능성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이든 간에 아마도 작가는 인간의 법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불균형한 세상을 살아갈 위험이 있다.

작가의 행보는 제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가운데 샤를 보들레르의 시에 등장하는 알바트로스의 비상(飛上)처럼 무거워질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용기와 결단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시간과 공간 곳곳에 흩어진 각양각색의 독자들과 호흡을 맞출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입소문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독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남에게 전해들은 내용을 다시금 변형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며 유언비어까지 퍼뜨려 집단 히스테리를 유발할 수도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횃불을 높이 들고 잠재적 독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결은 바로 늘 진실한 태도로 오직 진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작가의 재능과 언어의 마술을 드러내는 소설적 문체로 진리를 감싸는 동시에 겸허하고 침착한 태도로 사건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물론 절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을 조금이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이들이 오직 전쟁만이 평화의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평화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사고만으로는 세상을 안심시키기에 충분치 않다. 굶주린 민족에게 평화는 없으며 집 없는 가족에게도 평화는 없다. 학교에 다닐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학비를 대줄 사람이 없는 고아들에게 평화는 없다. 숨죽인 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인들에게 평화는 없다. 온갖 자연재해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주민들에게 평화는 없다. 주기적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평화는 없다. 언제 원자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세상에 평화는 없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길지만 일단은 이렇게 몇 가지 예로 만족하자.

분쟁지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의 창조자로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여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도전하지 않는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이 맡은 선구자적 역할을 인식하는 용기 있는 작가라면 사회를 좀먹는 해악들을 고발하고 뛰어난 효능의 치료법을 각 상황에 맞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소설적 문체로 잔혹함을 맹비난하든 시적 산문으로 사랑을 노래하든, 무엇이든 좋다. 다만 까마귀를 노랗게, 오렌지를 파랗게 그리는 것만 피하면 이상적이리라. 공포를 물리치고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현재를 반영한 글쓰기를 통해 불의를 몰아내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지지하는 것, 발언권 없는 이들을 대변하는 데에 자기 삶을 바치는 것,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예술가의 머리 위로 벼락과 폭풍우가 내려쳐도 그러려니 하며 너무 좌절하지 않는 것. 분쟁지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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