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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내면의 풍경
미셸 슈나이더 지음, 김남주 옮김 / 그책 / 2014년 10월
평점 :
[슈만 내면의 풍경]슈만, 고통과 슬픔과 광기가 음악적 천재성으로 승화되다~
피아노곡으로 유명한 독일의 슈만. 스승의 딸 클라라와의 사람으로 유명한 작곡가 슈만. 그의 음악 작품 속에서 고통과 슬픔과 광기가 휘몰아치며 음악적 천재성으로 승화된 줄 처음 알았다.
슈만의 어린 시절과 그의 성장 과정이 그의 고통과 광기, 음악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누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와 기쁨은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치니까.
슈만은 1810년 6월 8일 독일 색소니 쯔비카우에서 서적 출판과 문필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집착적인 증세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세에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부터 기초교육을 배운 뒤 스스로 작곡하는 경지에 이른다. 16세에 아버지의 죽음이후 어머니의 음악 방해는 계속된다. 그는 어머니의 권고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지만 피아노를 놓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니는 그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기게 한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그에게 운명의 장소가 된다. 그는 비크 박사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어머니를 설득했고, 본격적인 음악 공부와 연주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손가락을 다치게 되자 슈만은 작곡과 지휘, 평론에 심취한다.
비크 박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슈만은 그의 딸 클라라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 183곡의 가곡을 작곡하게 된다. 그 결과 평소 슈베르트를 존경한 그는 슈베르트를 능가하는 가곡을 발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체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멀리 남겨두고 온 피아노와 줄곧 읽고 있던 작가 장 파울 리히터뿐 이었다. 고민이 어찌나 심했던지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59쪽)
하고 싶었던 피아노, 음악공부에 대한 미련이 이토록 강렬할 정도였으니, 그 때 미치지 않은 것이 대단하지 않은가.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한 이후로 제1번 <아베크 변주곡>을 작곡한 이후 1840년 까지는 피아노곡만 작곡할 정도로 피아노 생각뿐이었다.
슈만의 음악에는 비통하고 암담한 내면이 음악으로 승화되었다는 특징이 있다는데…….
누구에게나 오는 고뇌이지만 유독 그가 더욱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가의 예민한 감수성 탓일까. 온 우주의 소리와 움직임이 음악으로 들렸던 천재성의 결과일까.
“누군가 나를 검은 베일과 휘장으로 둘러싸고 파묻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75쪽)
그의 일기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이 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슈만의 내면을 보게 된다. 죽음의 불안을 느끼며 삶과 작별하려는 내면, 이미 유령의 존재나 저승사자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낀 걸까.
슈만은 어머니의 집착적인 기질, 가족들의 이른 죽음에서 충격도 받았으리라.
정신병으로 죽은 누나, 형과 형수의 죽음 등 주변 사람들의 연속적인 죽음으로 그는 정신착란과 강박증세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의 우울증은 점점 악화된다. 결국 그는 라인 강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물론 구출되었지만 말이다. 그는 그의 작품인 <유령 변주곡>의 마지막 곡을 베껴 쓰면서 집을 뛰쳐나갔다는데…….
이 『유령변주곡』 속에서 슈만은 모든 통사적 규칙 너머에 있다. 그는 마치 이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음악 언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마치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것처럼, 음악 너머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26일 일요일 『유령변주곡』을 기보해놓고 그는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라인 강에 몸을 던졌다. (28~29쪽)
이후 그는 정신착란증 증세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클라라와 떨어져 살았고 최후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클라라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된다. 클라라는 슈만과의 재회 이후에 『유령변주곡』을 다른 작품과 분리되어 폐기처분한다. 1939년에 이르러서야 『유령변주곡』 은 출판된다. 그의 죽음만큼이나 『유령변주곡』도 고통의 과정을 겪은 것이다.
밤마다 폭풍우 치듯 천사가 다녀가고, 광풍이 몰아치듯 악마가 다녀가는 날이면 그는 광기 가득한 음악을 만들었으리라. 그렇게 광기가 음악을 낳았지만 그 음악이 다시 그를 광기의 세계로 데려가는 생활의 반복이 그의 음악을 일으켰으리라.
슈만의 피아노곡에는 마음에 대한 끊임없는 분리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인간의 기분과 유머를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 유머를 풍자와 조롱으로 나누고, 기분을 고양과 침체로 나누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이런 양분은 형식과 리듬과 주제 모두에 적용된다. (122쪽)
슬픔과 쾌활함의 의인화가 서로 반복되며 슈만의 작품에 드러난다니, 편집증적인 광기가 극단의 감정을 표출하며 작품 속에서 살아있다니. 유모레스크는 “일주일 동안 피아노 앞을 거의 떠나지 않은 채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면서” 작곡되었다니. 책을 읽으면서 글자 사이의 뜻,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듯, 음표 사이에서도 슈만의 감정의 흐름을 느껴보라니.
-내가 비밀을 갖는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마. 친애하는 클라라, 그건 내 고통의 내밀한 이야기야. -슈만
-로베르트는 가엾게도 극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에게는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변해서 들리는 모양이다. - 클라라
음악으로 모든 고통을 잠재웠던 독일 낭만파들과는 달리 슈만에게 음악은 고통의 표출이요 , 고통의 극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슈만의 삶은 노래와 고통 사이의 경계가 없는 삶이었다.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인식되던 작곡가였다.
하늘의 창문들 열려 있고
영혼, 밤으로부터 풀려났다.
폭풍우, 우리 땅을 압도해
대화를, 언어를 삼켜버렸다.
수많은 과도한 언어를, 그리하여
그 잔해가 굴러다닌다.
이 시각까지 -휠덜린 <가장 가까운 최고> (115~116쪽)
평범한 에세이와 다르다. 휠덜린의 시구를 7개의 장의 제목으로 삼고 슈만의 광기와 그의 음악적 내면을 그려냈다. 슈만의 전기적인 요소에다 작품 해설의 요소,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정신분석적인 요소들이 혼재하는 에세이다.
슈만의 음악 작품들인 유모레스크, 환상곡, 클라라 비크의 주제에 의한 즉흥곡, 사육제, 크라이슬레리나, 다윗동맹춤곡, 아베크 변주곡, 새벽의 노래 등의 작품 해설과 작품 속에 드러난 슈만의 내면 풍경을 비교하는 글이다.
슈만의 음악이 소멸의 음악인 이유들, 슈만을 괴롭혔던 불안 심리, 밤에 대한 강박증, 편집증 등이 음악으로 승화된 과정들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슈만 음악의 애호가인 미셀 슈나이더가 작가이자 평론가, 음악이론 전무가, 정신분석학자로서의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된 책이다. 슈만의 음악성에 바치는 오마주다.
천재와 광기는 통하는 걸까.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음악으로 분출했으니 말이다. 그는 음계를 따라 고통을 각인시키고 천부적인 음악적 끼를 음표에 새겼으리라.
슈만의 작품 속에 그의 고통이 스며들고 광기가 번득인다면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도 광기가 전이되지 않을까. 광기는 점염성이 강할 텐데…….
누구나 피와 땀으로 작품을 완성하지만 유독 슈만은 고통의 피로 완성하게 된 것 같다. 고통이 승화된 음악들은 본능적인 끌림이었을까. 아니면 몰입과 감정이입의 산물이었을까.
비통하고 암담한 내면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슈만의 음악 이야기가 가슴을 절이면서도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