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마지막이다. 9기 인문평가단으로서 추천 페이퍼를 쓰는 것이.
지금까지 열 권의 인문서를 받아서 9권을 읽고 글을 썼다. 이번 달 도서인 <사르트르와 까뮈>를 읽기 전에 예전에 뒤적이다 만 까뮈의 <이방인>을 넘기고 있다. 한 달에 두 권 씩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소설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던 듯하다. 덕분에 소설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적지 않은 것들을 얻었다. 관심도서 분야의 폭이 나도 모르게 넓어졌다는 것. 소설 때보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의 소통의 기회도 비례했다는 것. 그리고 맘에 안들거나 내 수준보다 어려웠던 책들도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는 것.(소설은 맘에 안들면 나중에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음 ㅋ) 그런데 벌써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니 새삼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건 지나간다는 것이구나 싶다.
아직 날씨상으론 늦여름이지만 가을은 워낙 짧으니 10월에 리뷰를 마무리 할 때 즘이면 분명 겨울이 다가오네, 연말을 준비하자 하면서 계절을 앞서가고 있을 터이다. 이번엔 가을에 읽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골랐다. 가을을 기다리는 심정이 꼭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될 듯하다. 이번엔 양질의 인문서적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다섯권에 들지 않는 책들 중에서도 마음가는 책이 많았다. (내가 택하지 않은 책들도 다른 분들이 많이 추천해주시면 좋겠다)
9월 말이면 그래도 찬바람은 불어 오겠지. 추석이 지나고 나면 남은 몇 개월은 이전 몇 개월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보름달에 소원을 빌었기 때문일까? 점점 소원스러운 소원도 생각해 내기가 쉽지가 않다. 까짓거 어짜피 이루어 지지 않을거 소원이라도 크게 잡을 수 있을텐데...이제 나는 지극히도 현실적인 중년이 되어간다.
1. 뇌를 훔친 소설가 ( 석영중, 예담 ).........................................인문학>교양인문학
이 책을 서점에서 슬몃 구경하고 일찌감치 찜을 해두었다.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신경과학의 메커니즘이 문학작품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뇌를 훔친 소설가로는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 톨스토이, 프루스트, 괴테, 체호프등이 등장한다. 저자는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소설 속의 캐릭터를 진단한다.
예를 들어, 푸슈킨의 작품 속 여주인공 타티야나는 감정이입에 관여하는 ‘거울뉴런’의 작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며(1부 ‘흉내’) 닥터 지바고는 자신의 온 삶을 통틀어 ‘시 쓰기’에 몰입한 인물로 분석한다(2부 ‘몰입’). 극도의 몰입 상태에서 도파민이 주는 행복감을 강조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은 감각과 회상의 연결고리를 푸는 실마리가 된다.(3부 ‘기억과 망각’) 4부 ‘변화’에서는 신경가소성을 평생학습으로 몸소 보여준 톨스토이와 고골의 삶을 들여다보고, 체호프가 진부한 삶에 대해 얼마나 역설적으로 비판했는지 보여준다.
지금 내가 <문학과 철학의 향연>(양윤덕, 문학과 지성사)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이 책에선 문학을 읽는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시도한 작품(포의 <도난당한 편지>, 카프카의 <법 앞에서>, 플라톤의 <향연> 등)과 철학자가(라캉, 데리다, 하이데거, 푸코) 워낙 만만치 않은 탓이다. 문학작품에 시도된 철학적 사유는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품과 철학자를 알고 있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작품과 철학자를 몰라도 잘 알려주는 책이 더러 있긴 한데 이 책은 <문학과 철학의 향연>보다는 눈높이가 편안해 보였다. 또 서구 고전문학과 현대 최첨단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문학탐구와 인간탐구를 동시에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 충분해 보인다.
2. 번역의 미로 (김욱동, 글 항아리) ..............................................인문학 > 언어학
가끔 번역된 인문서적, 소설을 읽을 때 해석이 안되더라도 원문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색한 문장은 둘째치고서라도 문장 자체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될 때, 그러나 비슷한 패턴의 번역이 반복될 때 책 내용과는 별도로 독서를 이어가기 정말 힘이 든다. 작년에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읽을 땐 내가 독어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문으로도 충분히 문학적이었지만 원문으로 읽는다면 더 완벽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한국소설을 읽을 때면 이 책을 번역하게 되면 과연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영미, 유럽권의 문학에서 벗어난 우리 문학의 한계는 바로 번역을 거쳐야 한다는 장애물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번역의 철학적, 기술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의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사유해 이론화하였다고 하니 의미있는 토픽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가운데 “Why I Write?”라는 유명한 글이 있다. 그런데 한국 번역가들은 이 글을 번역하면서 하나같이 “왜 나는 쓰는가?”로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 동사 ‘write’는 목적어를 생략하고 자동사로 ‘(책 ·시·기사를) 쓰다, 집필하다, 저술하다’의 뜻으로 자주 사용한다. 그러니 한국어 동사 ‘쓰다’는 반드시 목적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다’ ‘책을 쓰다’ ‘기사를 쓰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웰의 그 에세이도 그냥 “나는 왜 쓰는가?”가 아닌 목적어를 넣어 “나는 왜 글을 쓰는가?”로 번역해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의 경우는 "글을"의 목적어를 빼는 것이 더 공감가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원제목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제목으로 둔갑한 소설, 원제는 부제로 밀려나고 우리네 트렌드에 맞추어 타이틀을 변형하는 행위들을 인문서에서 확인할 때도 있다. 번역하면서 책의 방향성을 바꾸어 버리는 권력행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사태에 대한 이유있는 변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3. 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고경태, 서해성, 한홍구 / 한겨례출판)....................... 사회과학>한국사회비평/칼럼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 진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이명박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대해 터놓고 말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란다. 목차를 보니 약 마흔 명의 유명인사들이 그 목록이다. 故 리영희, 백기완, 고은 선생을 비롯해 박지원, 정동영, 강기갑, 문재인, 김두관등의 정치인, 유홍준, 김제동, 김영희, 안철수, 류승완등 각계 분야의 전문가들로 풍성하다. 얼마나 직설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려운데는 긁어주지 않을까 싶다.
김영희: 지난해 책임 PD로 있으면서 후배들 연출하는 걸 본 게 오히려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그들의 생각과 트렌드가 읽히는 거예요. 한마디로 TV는 진짜 올드 매체가 됐어요. 젊은 사람들은 TV 안 보고 다른 데로 떠났어요. 스태프들에게 “'나가수'의 타깃은 마흔두 살 아줌마”라고 공언했어요. 그냥 ‘사십대 아줌마’면 임팩트가 없어요. ‘마흔두 살 아줌마’라고 정하면 ‘그들이 뭘 하지?’ 생각하게 돼요. 1980~1990년대 문화에 향수를 가진 사람, 지금 애들이 중학생 정도 되는 부모, 하고 여러 의미를 발견하게 되죠.
서해성: 오늘날 대중은 텔레비전을 어떻게 소비하는 것 같나요?
김영희: 가치 없는 것으로.(웃음)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재미라도 있어야 보죠. 그런 걸 주지 않으면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없어요. 이번에는 ‘노래를 통한 감동’을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된 거예요. 기분 좋더라고요.
서해성: 여느 쇼에 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를 한 무대에서 만나기는 힘들죠. '나가수'는 보여주는 가수가 아니라 부르는 가수들 중 진짜 꾼들이 모인 거고. 그런 점에서 퀄리티로 승부를 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향도 그렇고.
김영희: 가수들 섭외할 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가수에 맞춰 음향감독만 다섯을 붙여줬어요. 음향에 쓴 돈만 보통 음악 프로의 다섯 배라는 거죠. 출연진들은 다른 음악 프로에 다 나가본 사람들인데, 한결같이 정말 고맙다고 하고 무대를 내려갔죠. - p90~91
나가수의 타깃은 마흔 두 살 아줌마라는 김영희 PD의 발언이 눈에 띄어 이 책을 훑어 보고 싶다. 원래 이런 인터뷰 모음집은 각개별로 읽으면 재미난데 다 모아놓고 덮으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경우가 있다. 책 넘길 땐 좋으나 다 덮고 나면, 그래서 할 말은 별로 없다, 인 경우가 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하게 되더라도 또 좋은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저들이 ‘한국 사회의 위선과 부당함을 향해’ 얼마나한 ‘직설을 쏘’아 대었는지는 부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날 지식인층에서 누가 누구를 향해 위선적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정도인데 만약 직설이 아니라면 한마디 붙여주기 더없이 좋을 것 아닌가.
4. 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꾸리에) .............................................................사회과학>교육비평
이 책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이계삼 선생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와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곽노현 교육감을 보면서 그가 정치는 하되 교육자는 아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은 도덕이 아니지만 교육자는 도덕적이어야 한다. 교육은 어떤 하찮은 나라에서도 미래를 출산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자는 일반사람보다 더 냉혹한 도덕적 수위가 요구된다. 출판사의 소개를 보니 이 책이 시적이며 문학적 울림이 깊다고 한다. 다가오는 계절, 영혼의 아름다움위에 세워진 인문학적 깊이를 통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다음의 문장을 보시라. 이분은 시인을 하시는게 더 낫지 않았을지.
“우리는 한때 저 강물이었고, 강변을 스치는 바람이었고, 꼬리 치는 한 마리 어린 송사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때의 우리들 몸이었던 강이 사라져가고 있다. …… 축구장 대여섯 개는 됨직한 말쑥한 호수. 바람이 부니 연둣빛의 물결이 일렁인다. 물풀 하나 없고 송사리, 소금쟁이, 벌레 한 마리 없는, 생명이 완벽히 사라진 곳. 물이 가두어져 일렁이면 그것으로 충만한가? 그 속에 아무것도 살지 않는데도? …… 공허하다. 헛것을 보는 듯 허망하다. 이 헛것의 물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헛것의 물길 위로 요트가 지나다닐 것이고, 유람선이 다닐 것이고, 좀 이어 화물선도 다닐 것이다. 실버타운이 들어서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이 헛것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다. 헛것이다. 헛것으로 구축된 헛것들의 파노라마이다. 오직 헛것의 풍경을 위해, 지금 온 지축을 울리며, 강바닥을 탕탕 때리며 뒤집어엎고 파헤치는 이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
5. 방황의 기술 - 불확실한 삶이 두려운 이들을 위한 철학 연습
(레베카 라인하르트, 웅진 지식하우스) .....................................인문학 > 교양철학
인문 에세이, 교양 인문학, 치유철학의 장르에 속한다는 이 책은 ‘철학 상담(Philosophical Counseling)’소를 운영한다는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저작이다. 삶의 치유와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저자는 이미 <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예문, 2011)를 통해 국내 독자와 교류를 한 바 있다. 철학이 상담이 될 수 있는 장르일까?
철학 상담은 심리치료가 아니다. 이는 창조적인 형태의 자기성찰이자 상호적이고 협력적인 교류이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사와는 달리, 철학 상담가는 스스로를 아헨바흐가 말하는 “보편적 교양인(General Dilettant)”이라고 생각한다. 철학 상담가는 규정적인 이론을 제쳐두고 되도록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상담 의뢰인(Client)을 대한다. 또한 상담 의뢰인의 애로 사항이나 문제를 신속히 제거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특수한 문제들은 그 사람만의 유일성과 특수성을 탐색하는 데 항상 도움이 된다.
-<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
심리치료건 철학상담이건 독서하는 입장에선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강신주 교수는 방황이 자발적 여행이며 방황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이라 말하는데 결국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부정이 아닌 긍정의 효과로 인식되는 개념들을 알려줄 것 같다. 이 책이 다가오는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릴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인문 MD의 소개 http://blog.aladin.co.kr/bookeditor/5027357)
요즘 선거철이 다가옴에 따라 정치인의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당분간 반짝 인기를 누릴 조짐이 보인다. 나는 인문쪽 평가단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설에 마음이 쓰인다.
상반기는 정유정, 하반기는 김애란이라고 하는데 더이상 대박형 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아니 독자들이 소설을 집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 한국 소설은 최인호 작가외엔 이렇다할 베스트셀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선거기획용 정치서적들이 소설과 인문서에 적잖이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걱정이다.(근데 내가 왜 걱정을 하는거지? 아무래도 출판계 트친이 많아서 인듯 ㅠ)
가을엔 더 성찰하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이 방황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을 더 많이 알 것 같아도 그 속에서 더 많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계절이여, 방황하라.
가을이여, 발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