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모 문화센터에서 문학 강좌를 수강하던 때였다. 나보다 몇 살 더 먹은 여자 수강생이 나를 자꾸 밟는다는 걸 느꼈다. 그의 악의를 느꼈다. 한번은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문화센터에 갔더니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며 나의 ‘센스 없음’을 지적했다. 봄에는 꼭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 딸의 이름을 바꾼 다음부터 딸의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며 나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그러면 팔자가 좋아진다는 말도 했는데, 그게 한두 번이면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여러 번 반복되는 것에 짜증이 나서 내가 한마디 했다. “제 팔자가 어때서요? 저는 제 팔자에 만족해요.”라고. 그런데 그 다음에도 그 얘기를 계속했다.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는 자리에서 내가 말하면 꼬투리를 잡아 무안을 주었다.

 

 

어느 날 집에서 밥을 먹다가그 사람이 생각났고 곧바로 밥이 얹히고 말았다. 그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밥이 얹히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전화 수화기를 들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말하면)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저, 문화센터 그만둘까요? 제가 그만두길 바라시고 저를 괴롭히시는 거죠? 제가 그만두면 되겠습니까?”

 

 

야구로 말하면 공을 느린 변화구로 던지지 않고 빠른 직구로 던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던지고 나자 그의 대답이 참 궁금해졌는데 (지금의 내 기억으로 말하면)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에요. 오해세요. 제가 000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의외였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이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말인 것 같아 내 기분이 풀렸다.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그다음부터 나를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 대신 다른 수강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기로 하여금 시샘이 나게 하는 사람만 괴롭히며 그렇게 괴롭힌 상대가 열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에겐 아마도 괴롭힐 누군가가 꼭 한 명은 있어야 했나 보다. 인간의 못된 구석에 눈살을 찌푸렸던 경험이었다.

 

 

 

 

 

 

2.
지난주에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친구가 보낸 한 통의 이메일에서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가해자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내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아닌데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그동안 잊고 있던 것, 나의 못된 구석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를 나는 잊었고 그 친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 내가 ‘무심코’가 아니라 ‘악의’로 말했을 것이다. 

 

 

가끔 착각한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다면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착각한다. 나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닌 줄 안다. 나는 늘 가해자 쪽이 아니라 피해자 쪽에만 서 있는 줄 안다. 그러다가 나의 못된 구석을 발견할 때면 내가 나를 잘못 보고 있구나,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데 애석하게도 자기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고 말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상기해 본다.

 

 

 

 

 

 

3.
나의 못된 구석이 또 발동할 뻔했다. 며칠 전이다. 어느 서재에 들어갔다가 악성 댓글을 발견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많이 읽는 척하지 마라. 기분 나쁘다.’ 대충 이런 뜻의 댓글이다.

 

 

순간, 확 눌러 버리고 싶었다. 그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의 서재에 들어가서 나도 악성 댓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충동만 느꼈다. 강하게 충동만 느끼고 실천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쓰고 싶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십니까?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서 많이 읽은 척해서 기분 나빴나요? 그러면 그 서재에 들어가지 않으시면 되지요. 해결책이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곳 알라딘 서재는 어떤 곳인가? 다른 데에서 책 얘기를 하면 잘난 척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지만 이곳에선 아무리 책 얘기를 많이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 이게 이곳의 장점이 아닌가? 왜냐하면 책 얘기를 하는 곳이니까. 난 그렇게 알고 있고 그런 점이 좋다. 그런데 책 읽는 척 좀 했다고 그게 뭐 그리 큰 죄라고 (나 같으면 상처 받았을) 그런 댓글을 받아야 하는가?

 

 

“왜 남의 일에 제가 흥분하냐고요?”

 

 

“흥분하게 되더라고요. 남에게 상처 주기 위한 댓글 같았거든요.”

 

 

그 악성 댓글을 받은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4.
....................
“신부님! 은그릇이 없어졌어요. 어제 쓰고 나서 찬장에 분명히 넣어 뒀는데……. 그 사람도 사라졌어요. 그 사람이 훔쳐 간 게 분명해요!“
하녀가 야단스레 말했다. 그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보니 경찰 세 명이 장 발장을 붙들고 서 있었다.
“신부님, 이 사람이 하도 수상해서 붙잡아 배낭을 뒤져 보니.......”
경찰 한 사람이 신부에게 말을 하자, 신부가 경찰의 말을 잘랐다.
“당신이군요! 마침 잘 왔소. 왜 은촛대는 두고 가셨소? 내가 은그릇하고 같이 가져가라고 했잖소.”
신부가 둘러댔다. 장 발장은 말없이 신부를 바라보기만 했다.
“배낭에 들어 있는 은그릇이 신부님이 쓰시던 물건인 것 같아 끌고 왔는데…….”
경찰들은 신부의 말을 듣고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오해를 했군요. 그 은그릇은 내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이오. 그러니 그만 돌아들 가십시오.”
경찰들은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 
장 발장은 경찰들이 돌아가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에서.
....................

 

 

배고픔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가족을 위해 빵을 훔치다가 19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 발장이 미리엘 신부를 만나 또 도둑질을 하여 벌어진 광경이다. 미리엘 신부는 은촛대를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보다 다시 감옥에 가게 될 장 발장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그를 감싸 준다. 장 발장은 신부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만약 신부가 장 발장을 배려해 주지 않았다면 장 발장은 다시 감옥에 가게 되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증오심이 생겨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지 모른다.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감옥에 가게 되는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까? 아니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감화를 주어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까?

 

 

물론 언제나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용서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분노할 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상대를 용서할 수만 있다면, 그런 넉넉한 마음은 상대만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행복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말해 타인에 대한 배려는 상대만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행복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용서나 배려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필요할 것이다. 용서나 배려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 편안한 행복의 길로 이르게 할 테니까.

 

 

 

 

 

 

5.
용서와 배려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리라.

 

 

....................
마음의 창

 

밤이 긴 겨울이라서 그런지 유독 어린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그 시절에도 겨울을 잘 나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방문에 창을 내는 것이었다. 방문에 창이라니. 별 건 아니다. 겨울에는 방문을 한 번 열었다 닫는 순간 거대한 손이 방안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삽시간에 온기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마당에서 개라도 짖으면 시골 사람들은 방문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손님이라도 찾아왔다면 어쩔 것인가. 방문도 열어보지 않는다며 무례를 탓해도 변명할 말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개가 짖을 때마다 방문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바로 창이었다. 앉았을 때 눈이 닿을 만한 높이의 문풍지를 조금 도려낸 뒤 거기에 투명한 비닐이나 유리를 대면 훌륭한 창이 완성되었다. (...) 그 창은 손바닥보다 작았지만 낯익은 것들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할 만큼 컸다. 사실 창의 크기는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작은 창일지라도 우리가 그 창에 눈을 가까이 대면 세상을 모두 볼 수가 있다. 마음에도 창이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 창을 통해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한다.

 

- 손홍규, <다정한 편견>, 46~47쪽. 
....................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남의 상처에 무심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같다.

 

 

 

 

 

 

6.
우리가 만약 어떤 친구와 둘이 음식점에서 밥을 먹게 되었을 때 서로 상대보다 빨리 밥값을 내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돈이 많아서인가? 부자라서 과시하고 싶어서인가?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인 체하며 과시하고 싶어서인가? 돈 쓰기를 좋아해서인가? 모두 아니다. 다만 한 가지다. 그 친구가 1인분을 먹었는데 2인분의 밥값을 냄으로써 갖게 될 경제적 손실을 헤아려서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에 집중하지 않고 상대의 경제적 손실에 집중한 결과다. 타인을 배려함으로써 넉넉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 결과다.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편견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절약과 인색함을 구별해야겠다. 겨울에 난방 비용을 적게 하기 위해 보일러가 가동되는 시간을 줄인다든지 여름에 냉방 비용을 적게 하기 위해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는 것은 ‘절약’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에겐 돈이 절약되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남에게 경제적 손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색함’이 된다.

 

 

돈을 쓰는 데에 인색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남에게 얻어먹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좀처럼 돈을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돈을 쓰는 데에 인색한 사람은 마음을 쓰는 데에도 인색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 편견으로 사람을 볼 때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의 이득이 아닌 타인의 손실을 먼저 헤아리게 되면 저절로 구두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돈을 쓰는 데 인색하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내 편견은 깨지리라.

 

 

결국 내 편견은 한 사람 안에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공존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게 되어 버렸다. 이런 글이 떠오른다.

 

 

....................
원망과 감사는 함께할 수 없어요. a라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동시에 b라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는 없어요. 한 사람에 대한 원한은 모두에 대한 원한이고,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모두에 대한 사랑이에요.

 

- 이성복, <무한화서>, 178쪽.
....................
 

 


위의 글로 에리히 프롬의 글이 생각났다.

 

 

....................
만약 내가 한 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서 세계를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서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54쪽
....................

 

 

이상적인 인간은 그런 것인가?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지에 가게 되는 그런 사람인 것인가?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불완전한 존재여서 그렇지 못한 것인가? 불완전한 존재이다 보니 불완전한 사랑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사랑하고 있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의 진실한 자아를 돌보는 데 실패한 사실을 은폐하고 보상하기 위해 비성공적인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 이기적 인간이 남을 사랑할 수 없으며, 또한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68쪽.
....................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욕먹을 짓을 하지 않는다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 남에게 욕먹고 있는 자신을 참을 수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인가.

 

 

 

 

 

 

 

 

 

 

 

 

 

 

 

 

 

 

 

 

 

 

 

 

7.
나는 나에게 바란다.
돈에 집착하지 않기를...
구두쇠가 되지 않기를...

 

 

....................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

 

- 달라이 라마 | 하워드 커틀러,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서.   
....................

 

 

 

 

 

 

 

 

 

 

 

 

 

 

 

 

 

 

 

 

 

 

 

8.

누구나 이기심, 자만심, 생각 얕음,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 등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느껴지는 것들, 후회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도 후회하는 것들이 있다. 다음의 글을 읽으면 새 출발을 할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 손홍규, <다정한 편견>, 표지에서.
....................

 

 

위의 글을 지금 새 출발을 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고 새 마음으로 하루를 열어야겠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또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살겠지만, 그래도 반성과 다짐이 전혀 없는 삶보다 그게 낫겠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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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3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서는 이웃분들과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pek0501님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3-31 14:3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책 블로그는 그래서 좋은 거죠.

오늘 오후부터 미세먼지가 없다고 해서 모처럼 기분 좋은 날입니다.
좋은 하루 보냅시당...

hnine 2016-03-31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는 글이었어요.
마지막 손홍규님 인용글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 제 마음을 깨우는 한문장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려요 ^^

페크(pek0501) 2016-03-31 14: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셨어요?

가장 늦은 때가 사실 가장 빠른 때이죠.
무엇을 시작하든 바로 지금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반갑습니다.

후애(厚愛) 2016-04-0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 가득한 4월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4-03 11:32   좋아요 0 | URL
오늘 땅이 젖었던데 비가 더 오면 좋겠어요.

님도 행복 가득한 4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6-04-01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4-03 11:33   좋아요 1 | URL
즐거운 봄날 산책을 즐기겠습니다. 봄이 짧으니 부지런떨어야 할 것 같아요.

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성에 2016-04-02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마음 깊은 끌림을 주는 글, 최고 !

페크(pek0501) 2016-04-03 11:35   좋아요 0 | URL
호평에 감사드려요.

우리 초면 아닌 것 맞지요?
오랜만에 방문하신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미세먼지를 없애 줄 비가 더 오길 바라게 됩니다.

좋은 봄날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2016-04-05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6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4-28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정말 깨달음을 수도 없이 받는 글이네요. 특히 이 구절.˝가끔 착각한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다면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착각한다.˝ 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제게 있어 좋은 점을 딱 하나 고르라면, 계산을 잘한다, 입니다. 마음은 개미만한데 계산만 잘해요.... 그러니까 계산 안하면서 마음이 넉넉한, 과 완전히 반대지요.

페크(pek0501) 2016-04-28 18:2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은 계산을 잘하시는 걸로 봐서 학창시절 수학 과목을 잘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의대에 몸 담고 계시는 것이겠고요...

깨달음을 주는 책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긴 글쓰기가 쉽다면 매력이 없겠죠?

어려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당~~~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6-04-28 23:06   좋아요 0 | URL
앗....계산이란 게 그 계산이 아니라 모임 있을 때 하는 그 계산인데....ㅜㅜ

페크(pek0501) 2016-04-29 00:16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데염... 님이 타산적이다, 그런 뜻 아니었어요?
다만 제가 말한 건 유머였어요. 유머를 던졌는데... 하하~~~

 



유유코는 엄청난 요리 달인에다 넋 놓고 바라볼 정도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여자였다. 나는 수제 리버 페이스트를 유유코한테 배웠다. 친구와 유유코가 헤어지네 연을 끊네 하는 통에 내 주위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던 참이었다. (...) 나는 진도 7 정도의 재해를 입은 유유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리버 페이스트 만드는 방법 좀 알려줘.” 유유코는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리버 페이스트 레시피를 알려달라잖아. 사노 씨는 그런 사람인 거야!” 하고 격분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친구한테 “당신이랑 헤어져서 딱 하나 좋은 점이 있어. 이제 사노 씨랑 안 만나도 된다는 점이야”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까지 리버 페이스트를 만들고 있다.(17~18쪽)
-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에서.

 

 

1. 인간은 원래 그런 거다 : 사노 요코의 책을 읽으며 피식 웃었다. 남은 연인과 헤어져서 괴로워하며 마음의 지진을 겪고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음식의 레시피를 묻다니. ‘무엇보다 자기 일이 급하다. 자기 일이 제일 중요하다. 그게 인간인 것이다.’라는 걸 느꼈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다만 욕을 먹을 용기가 없어서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자기 일이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괴로워하고 있는 상대에게 음식 레시피를 묻는 것. 난 이렇게 해석해 봤다. 어쩌면 그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될 수도 있다고. “이봐, 누군가와 헤어졌다고 해서 이별의 아픔에만 빠져 있지 말고 내가 묻는 음식의 레시피를 알려 주면서 생각을 딴 방향으로 분산시켜 봐.” 하는 뜻도 있을 수 있으니까. “음식 레시피나 묻는 나를 흉보면서 심각한 상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봐.” 하는 뜻도 있을 수 있으니까. 이런 뜻으로 레시피를 물은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는 거잖아. 마치 작가가 A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쓴 소설을 읽고 독자는 B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듯이.

 

 

 

 

 

 

 

 

 

 

 

 

 

 

 

 

 

 

 

 

 

 

 


네,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적어도 오늘, 지금은 말이에요. 내일은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레에는 또 어떤 생각을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오늘은, 그래요, 완전히 동의해요.(316쪽)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 <보르헤스의 말>에서.

 

 

2. 오늘은 그래요 : 내가 이 서재에 올린 글 중 몇 편을 읽어 보고 든 생각. 오래전에 쓴 글을 가끔 읽어 보기도 해야겠다는 것. 올린 글을 올리지 않은 줄 알고 똑같은 내용으로 두 번 쓰게 되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다. ‘내가 이런 글도 썼구나.’ 하고 놀라게 되는 글이 있었다.

 

 

그래서 깨달은 것 하나. 거짓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것. 이 글에선 이렇게 쓰고 그걸 잊고서 저 글에선 저렇게 쓰면 안 된다는 것. 예를 들면 어느 글에서 ‘나는 작년에 책 백 권을 읽었다.’라고 써 놓고, 다른 글에서 ‘나는 작년에 책 오십 권을 읽었다.’라고 쓴다면 어떡하나? 어느 글에서 ‘나는 여름이 좋다.’라고 써 놓고, 다른 글에서 ‘나는 여름이 싫다.'라고 쓴다면 어떡하나?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난 여름을 매우 좋아하면서 동시에 매우 싫어한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느낀 것을 솔직히 쓰다 보면 거짓말로 보일 수 있다는 것.

 

 

지난여름에 여름이 싫었다. 낮에 청소기를 돌리면서 얼마나 덥던지 ‘이 여름이 빨리 가야 할 텐데.’ 하고 바라면서 여름이 싫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나서 밤에 슈퍼에 갈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더니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게 부는지 여름이 좋아졌다. ‘아, 이 맛이야.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이 시원한 맛. 그래서 난 여름이 좋다니까.’ 이랬다. 그러니 그때마다 느낀 것을 각각 다른 글에 쓸 경우가 생기면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면서 억울하게도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거짓말을 완벽하게 할 수 없으니 솔직함이 최선이라고 새삼 느낀다.

 

 

<보르헤스의 말>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오늘은 그래요.”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오늘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내일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뜻. 나도 이 말을 써먹어야겠다. 얘기를 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여야겠다. “저의 생각은, 오늘은 그래요.”라고.

 

 

 

 

 

 


3. 머릿속 인용구 : 보르헤스는 머릿속이 책의 인용구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같은 책을 반복해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인용구를 외우기도 하겠지. 내 머릿속에도 책의 인용구로 가득 차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 글을 쓸 때 되도록 인용구를 많이 넣을 것.
- 혼자 심심할 때, 텔레비전 광고가 지루할 때,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지하철 안에서 폰으로 내 서재에 들어가 내가 쓴 글의 인용구를 읽을 것.

 

 

서재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2009년에 쓴 인용구부터 오늘 쓴 인용구까지 쭉 읽는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 공부에도, 글쓰기 공부에도.

 

 

 

 

 

 


제아무리 애연가라도 암에 걸리면 담배를 끊는다지. 흥, 목숨이 그렇게 아까운가.(113쪽)
-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에서.

 

 

요전에 집에 놀러 왔을 때는 “사노 씨, 앞으로 1년 정도면 죽는데 무섭지 않아?”라고 묻기에, 산송장한테 그런 질문은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전혀, 언젠가는 죽는 걸.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거야? 두렵지 않아?“ ”안 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생각해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정말로 안 무서워?“ ”그렇다니까. 게다가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때가 되면 죽으니까. 훨씬 더 힘든 병도 얼마든지 있다고. (...)“(239~240쪽)
-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에서.

 

 

4. 병에 대한 의연한 태도 : 사노 요코는 유방암에 걸려도 담배를 피운다. 시한부 인생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가 암 얘기를 꺼내면 유머를 발휘한다.
   


보르헤스는 57세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기 시작해 나중엔 실명하게 되어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작가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 주위 사람이 책을 읽어 주는 것으로 독서를 하고 주위 사람에게 대필을 시켜 글을 썼다. <보르헤스의 말>을 읽어 보면 실명으로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각 장애인의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악의 상태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제일 닮고 싶은 건, 글 잘 쓰는 위대함보다 더 닮고 싶은 건 겁이 없는 위대함이다. 어떤 것에도 겁이 없다는 건 고통을 모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아닐까.

 

 

 

 

 

 


5.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 이 구절을 생각했다.

 

 

“인생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중요할 뿐 나머지는 다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는다.”

 

 

힐러리 클리턴이 한국에 왔을 때 이화여대 강연(2009년)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인생에서 ‘사랑’이 중요해지는 시간은 몇 년일 뿐이고 나머지 인생은 ‘직업과 취미’로 사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려면 그의 직업은 무엇인지, 그의 취미는 무엇인지 알면 될 듯하다. 더 정확히 알려면 그가 자기의 직업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지, 자기의 취미로 인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알면 될 것 같다.

 

 

돈 잘 벌고 가정적이고 애처가인 남편과 사는 아내 백 명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백 명 다 행복하다고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고민이 없고 하품이 나올 정도로 평화롭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아무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고 하더라도 부부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겁게 보낼 줄 아는 게 관건이라고.

 

 

자식들이 미래에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훗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어떤 직업과 취미를 가지고 사는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힐러리 클리턴이 한 말을 이렇게 수정하고 싶네.

 

 

“인생에서 (직업이든 취미든) 무엇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 나머지는 다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듯이 어떤 취미를 갖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되는 것은 아니고 취미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려면 ‘노력의 시간’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등산을 즐기기 위해선 등산 경험이 많아야 하듯이, 피아노 연주를 즐기기 위해선 피아노 친 경험이 많아야 하듯이, 독서를 즐기기 위해선 독서 경험이 많아야 하듯이 말이다. 경험이 쌓여 ‘제법이네.’라고 할 정도로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행복이란 것도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사람의 인생도 파란만장이에요. 그런데 기대했던 얘기가 재미없는 건 디테일이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에피소드를 무시하면 인생 전체를 무시하는 거예요. 디테일 없는 빤한 알레고리를 사용하지 마세요. 그러면 이야기가 두 쪽 나요.(63쪽)
- 이성복, <무한화서>에서.

 

 

6. 중요한 건 디테일 : <무한화서>는 문예창작과 교수였던 시인이 2002년부터 2015년까지 한 ‘대학원 시 창작 강좌’의 강의 내용을 아포리즘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유명한 시인의 강의 내용을 집에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얼마 전, 어떤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시간이 아까워서 혼났다. 어디 나가려고 하면 화장과 머리 손질 등에 걸리는 시간, 차를 타고 가는 시간, 강의 듣는 시간, 집에 돌아오는 시간 등 소요되는 시간이 많다. 그 많은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내가 얻는 정보와 지식의 양은 많지 않았다. 책으로 말하면 10쪽 정도의 분량이 되려나? 그나마 10쪽 분량이라도 얻은 게 있다면 다행이다. 예전엔 이런 적도 있었다. 어느 철학과 교수의 철학 강의였는데 내가 읽은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저)>의 책 내용과 동일한 내용의 강의였던 것. 공리주의, 칸트, 도덕적 딜레마 등에 대한 강의로 책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강의를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새로 얻은 게 없으니 헛수고렷다. 게다가 외출한 걸로 몸은 고단하다. 차라리 외출로 소요되는 시간 동안 집에서 책이나 볼걸 그랬다는 후회가 났다.

 

 

그러니 시간 절약, 체력 절약을 해 주는 <무한화서>는 얼마나 이득이 되는 책인가. 강의 내용을 말로 들으면 놓쳐 버린 걸 다시 듣기가 어려운데, 강의 내용을 글로 읽으니 반복해 읽을 수도 있고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책이 아닌가.   

 

 

<무한화서>에서 말한 디테일에 주목하기. 기대했던 얘기가 재미없는 건 디테일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서 디테일을 나는 ‘세부 묘사’라고 이해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디테일에서 생긴다고 알고 있다. ’살인 장면‘을 쓰는 소설로 예를 든다면 마치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는 사람이 쓴 소설처럼,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처럼 충실하게 묘사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나를 다른 사람과 견주는 것도 싫어했고 나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기고 앞서 가라면서 줄을 세우는 제도권 교육이 정말 싫었고 당연히 줄을 서지도 않았다. 문학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는 나의 이 같은 풍속이 더욱 확고해졌다. 나는 내가 참여하는 일에서 1등, 베스트원이 되는 걸 한 번도 원했던 적이 없다. 나는 동료 작가나 시인의 작품보다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다만 내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집중했다. 내 목소리와 색깔을 어떻게 낼 것인가, 이것만이 내 관심사였다. 그러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8쪽)
- 김도언, <소설가의 변명>에서.

 

 

7. 꼭 이겨야 하나 : 김도언 저자는 1등을 원했던 적이 없다고 한다.

 

 

행복한 일일까, 불행한 일일까? 나는 승부욕이 없는 편이다. 누군가와 겨뤄 이기거나 지는 게 결정 나는 ‘겨루기’ 자체가 싫다. 대형 마트에 가면 반액 세일을 십 분간만 하겠다는 마이크 소리가 들릴 때가 있는데 우르르 달려가는 사람들 틈에 끼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틈에 끼어 내가 다칠까 봐 싫은 것도 있지만 뭔가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제치는 게 재미없다.

 

 

나는 꼴찌가 되길 자처할 때가 있다. 몇 년 전 너도나도 스마트폰으로 바꾸던 시절에도 ‘난 꼴찌로 바꿀 거야.’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있다가 결국 주위에서 제일 늦게 스마트폰을 구입한 사람이 되었다.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가서 밤이 되어 샤워하는 순서를 정하게 될 때가 있었다. 나는 미리 말한다. “저는 꼴찌로 샤워할래요.”

 

 

사람들은 순서를 정할 때 꼴찌가 얼마나 좋은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샤워를 예로 들어 말하면, 꼴찌가 되면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은 단점이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장점이 있다. 우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샤워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단점이 있는 어떤 것을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의외로 장점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크게 손해 볼 게 없는, 그저 순서를 정하는 문제라면 난 앞으로도 ‘꼴찌’라는 자리를 싫어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내가 꼴찌를 지향하려는 심리 그 밑바탕에는 뭐든 타자를 이겨서 앞지르고 싶은 나의 욕망을 누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욕망이 내 마음속에서 쑥쑥 자라나 덩치 큰 식물이 되기 전에 싹을 잘라 버림으로써 편해지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도 어떤 욕망이 있다는 것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가질 수밖에 없는 조급함과 초조함이 나는 싫다. 조급함과 초조함에 치이는 삶보다 차라리 일등을 포기함으로써 갖게 되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게 때론 어려울 때가 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직장 동료들 중에서 가장 일을 잘해서 최고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블로거들 중에서 가장 글을 잘 써서 최고가 되어야 하는가? 왜 늘 일등만을 바라야 하는가? 왜 다른 이들에 비해 처지면 안 되는가? 우열의 평가가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인가? 이런 것들을 자문함으로써 내 마음속에 있는 뭔가를 덜어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외쳐 보고 싶은 것이다.
‘덜 유능하면 어떠랴. 행복했으면 된 거지.’라고.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어떠랴.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으면 된 거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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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1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지.라고 ㅡ에만 밑줄이 가 있어서..^^
저도 첫째가는 뭐를 압박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녀서
못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아녀도 된다고 뭐 그러죠.
주목받는 위치에 늘 있어보면 그게 좋지만은 않다는걸
알게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이말을 하려던 건
.아닌데...위글을 읽어 내려 오다..자신의 글에 음...여름을 싫어하다 ㅡ여름을 좋아한다 ㅡ하는 부분요.
거짓말이라고 까지 누가...생각할까...저는 그랬어요.
아마도 작가에 집착하는 스토커 정도? (저 지금 위험발언인거죠?)보통은 이 사람 여름을 싫어하는데 오늘 여름의 추억하날 만들었어..하고 인식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놓고 봐도 요...ㅎㅎ
디테일이 중요한데 지금 은 너무 스스로에 몰입하고 계신건 아닌가...멀리 보시는건 좋지만 .자신이 쌓을 만큼 잘 애써온 세월 그냥 그리 피곤케 말라고 하고파요.하하핫..주제넘죠!
제가 그래요.

오늘 오은 시인이 이성복님 의 그 시론 중에 좋은 문장은 눈물이 나게 하는 문장이 아니라 슬픔을 깊이 속으로 넘기는
문장 ㅡ이란...표현을 했던것 같아요.
잘 옮기지 못해 죄송한데..읽어보시면 그 부분이 나오겠죠?
언젠가. .우리가 왜 읽는 또 여기 쓰는 인간이 되었는지 는 모르겠어도.. 제가 좀 값싼 눈물의 문장이라면 페크ㅡ님은 깊이 숙 ㅡ 집어넣는 문장을 쓴다..정도..아닌가..뭐 그랬네요. 이 말이 하고 팠어요.^^

페크(pek0501) 2015-10-16 20:21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 저녁은 드셨는지요?

저를 마치 분석하는 듯한 댓글 같아서 순간적으로 ˝아, 내가 글로 나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준 건가?˝ 뭐 그랬네요. 하하~~ 그렇다고 해서 쫄지 않겠습니다.

직장인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불금입니다. 어제는 책을 많이 읽어서, 오늘은 글을 많이 써서 머리가 띵한 정도는 아니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지네요.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볼 생각입니다. 빈둥거리기라는 걸 해 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불금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님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
첫 댓글, 고맙습니다. ^^

[그장소] 2015-10-16 20:40   좋아요 0 | URL
으하하~^^
제가 책을 보면 은연중에 작가의 의도를 자꾸 찾나봐요..이제 꼭 의도 없이 정말 습관과도 같이
일로 글을 쓰는 것. 일 뿐 ㅡ그런다 해도 메세지가 없는 건 아니니.. 꼭 ㅡ이것 을 전하고 팠다던가 ,하는 그런 면을 찾다 보니 ..그리된거 같아요..
분석은 무슨요...얼치기...제가 늘 생각 할 거리 주셔서 고마운데...

페크(pek0501) 2015-10-18 13:05   좋아요 1 | URL
제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을 쓰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ㅋ

stella.K 2015-10-1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흡연도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거지 몸이 안 좋으면 흡연 욕구도 떨어진다고 하던데
담배를 안하는 저로선 알길이 없네요.ㅠㅋ

힐러리는 아직도 사랑 받고 하고 싶은가 보내요.
물론 저도 사랑을 거부하진 않지만 사랑이 전부는 아니라는 주의라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어야죠. 결국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거니까.ㅋ

인용구를 잘 쓰는 것도 능력이어요.
저는 좋아서 줄은 쫙쫙 잘 칩니다만 옮겨 놓지 못해서 인용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옮겨 놓는 것도 그것이 쌓이다 보면 어디다 적어놨는지
잊어먹을 것 같아요. 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겠지만.

강연회 가는 건 정말 큰 마음 먹어야죠.
몇년 전만해도 집에서 먼곳에서 해도 갔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어떤 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하는 강연회도 용기가 필요하죠.
강연회를 갔는데 내가 빤히 아는 걸 들으면 김이 빠질 것 같긴해요.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요약 정리를 위해 가는 거라면 모를까...

요즘은 날씨가 춥지 않아 좋긴한데 날이 너무 가물어서 큰 일이어요.ㅠ

페크(pek0501) 2015-10-18 13:25   좋아요 1 | URL
맞아요, 몸이 아주 나빠지면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하더군요.

힐러리가 의외의 발언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녀야말로 사랑 따위에 집중할 것 같지 않은 타입 같은데 말이죠.
사랑이 전부가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다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고 봐요. 그중 하나가 사랑일 뿐이라고 봅니다.

인용구. 그래서 저는 서재 태그에 저자 이름을 써 넣는답니다. 찾기 쉬우라고.

강연회. 제가 느낀 건데 독서광들은 굳이 그런 데에 쫓아다닐 필요가 없겠다 싶어요. 물론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강의 내용이 책과 겹치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강의 내용이든 책을 찾으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 - 종교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의를 찾을 게 아니라 차라리 책을 찾아 보는 게 낫겠다 싶어요. 시간 대비 효율 면에서요.

날씨. 가뭄도 문제지만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문제... 오늘 창문을 열고 청소해도 되나 검색해 보게 되네요. 안개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창밖이 뿌옇게 흐려 보입니다.
가을을 즐길 수 있도록 청명하기를...^^


[그장소] 2015-10-1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즐거울 때가 같을 것을 놓고 다양한 시각이 있을 경우 .
그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저는 재미있거든요. 각 각 같은 듯하면서 그 안에 욕망하는 의미가 다름을 알때..단어만 같았구나 ㅡ하는 .깨달음.. 그런세계..

페크(pek0501) 2015-10-18 15:26   좋아요 1 | URL
즐거운 경지에 계시는군요. 책을 반복해서 읽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그런 것 같아요. 같은 글이라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는 거요. 한 10년이란 시간 차를 두고 읽으면 그런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요...

[그장소] 2015-10-18 15:29   좋아요 0 | URL
지극한 동감!!^^
다 읽은 걸 왜 끌고 다니냐 하는데 전 두고두고 또
읽거든요.그때마다 어떤얘기든 건져지는 것이 달라요. 그러니 버릴 수가 없죠.

페크(pek0501) 2015-10-18 15:32   좋아요 1 | URL
보르헤스도 같은 책을 두 번 읽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ㅋㅋ

[그장소] 2015-10-18 15:3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보르헤스를 ...좋아하고..말예요.^^

페크(pek0501) 2015-10-18 15:38   좋아요 1 | URL
저도요...
 

 


1. 초라한 인간일 뿐
커트 보니것 저, <나라 없는 사람>을 다 읽은 줄 알았더니 뒷부분 20쪽쯤이 남아 있었다. 얼른 읽고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어야 되겠다 싶어 그 뒷부분을 읽었다. 이런 글에 밑줄을 그었다.

 

 

“솔, 나는 소설가이고 내 친구들 중에는 훌륭한 소설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그들이 아주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까요?”
육 초가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예술가엔 두 종류가 있는데 이건 결코 뛰어남의 차이가 아니야. 하지만 한 부류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역사에 대응하고, 다른 부류는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한다네.”(131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것.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이력에 우월감을 갖고 자기가 제일인 양 우쭐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는 인생 앞에선 그저 어리석은 실수나 하며 사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한 번쯤 비굴한 적이 있고, 한 번쯤 거짓말로 남을 속인 적이 있고, 한 번쯤 악의에 찬 행동으로 남에게 고통을 준 적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군가가 알까 봐 두려워하는 일, 싹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되는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것. 그런 인간일 뿐이라는 것. 아무리 예술가로선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하면 초라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예술가로서 작품의 역사가 화려하다고 우쭐대지 말고 초라한 인간일 뿐임을 알 것.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알 것.’ 


 
어느 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사람도 마찬가지.
 

 

 

 

 

 


2. 위대함이란 한계를 극복하는 것
“솔, 당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나요?”
육 초가 흔른 후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건 없다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진다네.”(131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재능으로 예술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 같네. 설령 재능을 타고났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고 그 지점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뜻 같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가에게 우리는 “당신은 재능을 타고났군요.”라고 말할 게 아니라 “당신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군요.”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 단지 재능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라면 우리가 우러러볼 이유가 없긴 하겠다.

 

 

 

 

 

 

 

 

 

 

 

 

 

 

 

 

 

 

 

 

 

 

 

3.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행위에 대하여
다 읽은 책은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습관이 있다. 저자 이름, 책 제목, 간략한 내용, 읽은 날짜(월로 표시함.) 등을 쓰는 것이다. 최근에 읽기를 끝낸 책 다섯 권을 이 노트에 써넣으면서 뿌듯했다. 다섯 권이 추가되는 기쁨을 누린 것. 다섯 권을 한꺼번에 읽은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읽기 시작해서 반 이상 읽은 책들로 어떤 책은 끝부분 몇 십 쪽을 읽지 못했고 어떤 책은 백 쪽가량을 읽지 못했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끝까지 다 읽고 노트에 쓴 것이다.

 

 

이렇게 ‘독서 목록 노트’에 써넣는 행위의 형식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없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건 이 ‘독서 목록 노트’ 덕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꾸준히 독서하며 살 수 있는 건 이 ‘독서 목록 노트’ 덕분이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좌우할 때가 많다. 형식이 중요한 이유다. 

 

 

 

 

 

 

 

4. 나의 엉터리 기억력
앞으로 내 기억력을 믿지 않기로 하겠다. 커피 주전자가 뜨거운 걸 알고, 내 정신 좀 봐 커피를 안 마셨구나 생각하며 커피를 한 잔 탔는데 마시려고 보니 아까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 게 기억났다. 이미 커피를 탔으니 그냥 마셔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반 잔만 마시고 반 잔을 버렸다. 그래서 오늘 한 잔 반을 마신 게 되었다. 내 엉터리 기억력 때문이었다.

 

 

며칠 전, 어느 님의 서재에서 ‘위험한 독서’라는 단편 소설에 대한 글을 읽고 나도 그 단편을 읽었다고 댓글을 쓰고 나서 생각했다. ‘혹시 내가 그걸 읽지도 않고 읽었다고 착각한 건 아닌가?’ 그래서 확인 들어갔다. 이 소설은 ‘2006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있었고 내가 읽은 게 확실했다. 밑줄이 많이 쳐져 있고 뭔가를 써 놓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 내용이 뭐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아 책을 잡은 김에 한 번 더 읽었다. 내 엉터리 기억력 때문이었다.

 

 

 

 

 

 

 

5. 화장한 얼굴만 보여 줬다고 생각해 왔는데 착각이었어 
‘위험한 독서’라는 단편 소설에는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서치료사’라는 직업이 나온다. ‘독서치료사’인 화자는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하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게 하는 사람이다.(세상에 맙소사. 이런 직업을 궁금해 했는데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나온 적이 있었다니...)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한 것.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누구에겐 ‘유일한 긍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고통은 심리 치료의 시작이고 쾌감은 심리 치료의 끝이구나.
동일시는 자기 연민을 낳고 소외는 자기 부정을 불러오는구나.
독서하면서 자신을 읽어야 하는 거구나.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 독서를 통해 당신이 발견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감추어진 저자의 개인사나 메시지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김경욱 저, ‘위험한 독서’에서.)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 준다면 나는 당신이 품고 있는 지옥의 밑그림을 그려줄 수도 있다.(김경욱 저, ‘위험한 독서’에서.)

 

 

그래서였구나. 내가 책을 갖고 다닐 때 책 표지를 누군가가 볼까 봐 조심했던 게 그래서였구나. 지하철에서 사람 많을 땐 책을 펼쳐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게 그래서였구나.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게 될 어떤 것들에 대한 단서를 책이 제공하게 될까 봐 싫어서였구나.

 

 

그런데 알라딘 서재에서는 어떤가?

 

 

어머나, 이 서재에선 내가 읽은 책의 목록을 다 공개했으니 페크는 민낯을 공개한 셈이구나. 화장한 얼굴만 보여 줬다고 여겨 왔는데 착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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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0-0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언니 그 정도는 아니어요. 오히려 이 분은 어떤 책에 관심이 있나
그런 것을 통해 나의 관심의 폭을 넓힐려고 하는 뭐 그런 의도가 더 클 것 같은데요?
물론 그 이유도 있긴 하죠. 리뷰를 통해 자기 얘기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선 민낯보단 이 사람이 얼마나 글을 진솔하게 쓰고 있는가
그런 걸 더 크게 볼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와, 근데 언니는 책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저는 그저 김경욱이란 소설가를 뒤늦게 발견하고 좋아라 하는 정도였는데...
저도 예전에 상담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땐 독서 치료사란 직업은 있기도 전인데 알았더라면 지금쯤 독서 치료사가
되어 있을까요? 요즘엔 북 소물리에란 것도 있던데 그냥 상징적이로
붙인 이름인지 아니면 진짜 있는 직업인지 모르겠어요.
암튼 책만 읽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있다니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5-10-05 10:15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소설 속의 얘기일 뿐인 걸 저는 그렇게 읽은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ㅋㅋㅋ
실제로 독서 치료에서는 읽은 목록이 중요할 거라고 봐요. 상대의 관심사를 알게 되는 여러 변수 중 하나니까요.
강신주 저자도, 서재를 함부로 보여주지 말라고 했대요. 서재엔 영혼이 담겨 있대요.(세실 님의 댓글에서 알았음.)
아무래도 부동산 재테크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과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사람이 같은 부류일 순 없을 것 같죠?

소설에선 편지 형식을 빌려 쓰든 직접 말을 하든 사실이 아닌 엉터리 정보를 흘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 만한 것은 쓰지 않을 만큼 작가들은 영악하거든요. 그런 것 다 계산한다는 뜻이에요.

상담학 공부, 그거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공부까지만 좋고 일대일로 상담을 맡는 건 피로할 것 같아요. 얼마나 진이 빠지겠어요. 독서 치료 수업 정도라면 좋을 듯해요.

첫 댓글에 감사드려요. 스텔라 님 덕분에 무플 면했어요.
우리 좋은 가을 보내자고요..
(혹시 제가 님의 댓글을 오독한 부분이 있더라도 용서해 주시길..ㅋㅋ)

세실 2015-10-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 없는 사람>에서는 항상 6초를 기다려주나요? ㅎㅎ
독서목록노트 전 매년 다이어리에 적어요. 1년 100권을 목표로 하지만 50권 읽기도 바쁘네요.
그럼에도 계속 100권이 새해 목표^^
강신주도 자신의 서재는 함부로 보여주지 말라고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던데 굳이 그렇게까지? 전 지극히 평범해서 그냥 보여주고 살래요~~~~~

페크(pek0501) 2015-10-07 15:46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저도 6초 후에 대답하렵니다.
˝세실 님은 말씀도 재밌게 하십니다.˝라고.

뭐, 알라디너들은 다 서재를 공개하는 셈이죠. 쌤쌤인거죠.
그런데 사실 읽었으면서도 서재에 공개하지 않은 책이 많네요. 쓸거리를 못 찾은 경우죠. 앞으로 그런 책도 좋은 구절을 찾아서 올려야겠어요. 위의 이상문학상 작품집만 해도 그런 책에 해당하네요. 늘 최근에 읽은 책 중심으로 글을 쓰다 보니...

100권이 목표입니까? 저는 그보다 훨씬 적은 수가 목표랍니다.
그 수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그 독서 목록 노트를 1992년부터 써 왔다는 사실이에요. 사는 날까지 몇 권이나 읽고 죽는지 궁금합니다. 이 노트가 말해 주겠죠.
이 노트가 존재하는 한,
저의 책 읽기는 계속될 전망이옵니다. ^^
 

 


1.
내 서재의 ‘즐겨찾기등록’ 수가 202명이 되었다. 이 숫자에 황송하다.

 

 

그런데 저 숫자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하신 분들이 있으리라. 세 배 이상을 기록하신 분들도 있으리라.

 

 

늘 그런 것이다.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위에 나는 사람이 있는 게 인생인 것이렷다.

 

 

그러나 나, 202명에 대해 과분하게 생각한다. 올챙이 때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자신이 용케 모면한 불행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늘 떠올리고 있어야 할 일이다.(79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2.
내가 오래전에 모 문화센터에 소설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그 문화센터가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를 가장 많이 배출시킨 곳이라고 공공연히 광고하는 걸 봤다.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마치 기계로 좋은 소설 작품을 제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쓰기에도 분명히 어떤 기술이 필요한 건 맞지만 무슨 제품 생산하는 듯한 시스템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틀렸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은 좋은 글을 쓸지 모르나,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좋은 글이란 그렇게 해서 탄생할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술로만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의 관찰력, 통찰력, 지혜, 안목, 훌륭한 마음 등을 통틀어서 ‘고도로 발달한 정신’이라고 부른다면, 그런 정신의 세계 없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기술만 가지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글이 있다.

 

 

문장을 멋지게 쓰면 ‘글재주’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글재주’가 있으면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어느 정도 잘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글재주’만으로 공감을 일으키거나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258~259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방법만 배운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재주가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시사평론과 칼럼, 논술문과 생활 글은 더 그렇다. 은유와 상징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로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기술만으로 잘 쓸 수는 없다. 잘 살아야 잘 쓸 수 있다.(260~261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3.
권력은 어느 세계에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신경숙 표절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문학 세계에서도 권력의 힘이 막강해서 작가들이 인맥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작가는 글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맥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자기의 길을 가고자 묵묵히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문단과의 교류도, 인터뷰도 사양하고 게다가 저명한 문학상까지 거부했던 에밀 시오랑 같은 수필가(철학자이기도 함.)가 있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헤르만 헤세가 쓴 글 중에 기억해 두고 싶은 글이 있다.

 

 

작가란 직업은 조용히 눈을 뜨고 기다리면서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 일은 땀과 불면의 밤을 요구할지라도 귀중한 것이며, 더 이상 ‘일’이 아닌 것이다.(95쪽)
- 헤르만 헤세, <헤세의 문장론>에서.

 

 

긴 시간 동안 글을 열심히 쓰다 보면 어느새 좋은 작품이 탄생하여 명성을 얻게 되는 게 작가라는 직업이다. 명성은 작가의 고독한 노력 뒤에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인맥 관리나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4.
올해 만난 책 중에서 좋은 책 다섯 권을 뽑는다면 그중 하나로 에밀 시오랑의 책을 뽑겠다.

 

 

작가는 자기만이 아는 진실을 말하고 싶어 책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에 따르면, 에밀 시오랑은 이런 진실을 말하고 있네. 

 

 

자살에 관한 진실.

 

 

내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살한다면, 그렇다,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온 인류가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33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도 주체적이어야 한다. 나 때문에 죽을 수는 있어도 타인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는 것.

 

 

기대에 관한 진실.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246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기대할 게 없으면 실망도 불행도 없다. 실망도 불행도 따지고 보면 ‘기대’라는 놈 때문에 생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태어남을 하나의 파멸로 보고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이 되리라.

 

 

희망에 관한 진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는 새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 의식하지 못하는 희망은 그가 내던져 버린 혹은 고갈시킨 다른 모든 명백한 희망을 보상해 주고 있다.(78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희망 없이 살겠다는 것도 알고 보면 ‘희망’일 테니까,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다.

 

 

성공에 관한 진실.

 

 

모든 성공은 치욕스러운 것이다. 그 치욕에서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242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직장에서 승진했다는 것은 과장해서 말하면, 경쟁자를 짓밟았다는 걸 의미한다. 경쟁자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의미한다. 성공이란 이렇게 영광스럽기보다 치사하고 치욕스러운 것이다. 성공의 자리는 누군가를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5.
남의 얘기에 공감해 주는 일은 왜 중요할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심하게 다툼을 한 부부가 랍비를 찾아왔다. 자기네 부부 중에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 달라는 것이다. 랍비는 먼저 남편을 불러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겠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랍비는 남편의 말에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들어 주었다.

 

 

잠시 후, 랍비는 아내를 불러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맞습니다.”

 

 

이렇게 랍비는 아내의 말에도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들어 주었다.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는 아무 결론도 내려 주지 않고 부부를 돌려보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랍비에게 물었다.

 

 

“랍비 님, 서로의 주장이 다른데 왜 랍비 님께서는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맞장구쳐 주었습니까?”

 

 

그러자 랍비가 웃으며 말했다.

 

 

“부부가 싸울 때에는 누가 옳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돼요. 부부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달아오른 감정을 식히는 것이랍니다. 제가 서로의 말이 옳다고 들어 주기만 하면 두 사람은 화가 식게 되지요. 제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그렇게 화해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랍니다.”

 

 

공감의 힘은 위대하구나.

 

 

 

 

 


6.
육아에 전념하던 옛날에 쓴 일기를 보니 깜짝 놀랄 만한 글이 있었다.

 

 

‘일을 갖고 글을 쓰면서 늙어 갈 것.’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의 내 생활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란 말이지?

 

 

일기 쓰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런 거지. 시간이 많은 흐른 뒤에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게 일기장이라는 것. 그래서 내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은 이가 있다면 그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자기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수 있다는 것.

 

 

 

 


7.
어느 님이 댓글로 쓰셨다. 죽으면 ‘자기가 쓴 글’이 쓰레기가 되고 만다고.

 

 

그렇겠다. 그러니까 죽은 뒤에 ‘자기가 쓴 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 거다.

 

 

내가 죽은 뒤에 내 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글, 내 개인용 넷북에 저장해 놓은 글, 유에스비에 저장해 놓은 글, 노트에 볼펜으로 쓴 글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가족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내 글은 모두 불태워 줘.”

 

 

(하하~~. 이렇게 쓰고 보니 웃음이 나오네. 설마 출판사에서 나온 누군가가 내 미발표 원고를 묶어서 책으로 내자고 할까 봐서?)

 

 

(하하~~. 그게 아니고요. 아파트 공동 ‘폐품 쓰레기통’에서 내가 쓴 일기장이 굴러다니다가 누군가의 눈에 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싫잖아요. 싫은 정도가 아니라 끔찍하잖아요.)

 

 

그러니까 종이 일기장은 불태우고, 컴퓨터에서 내 글 전부 삭제하고, 내 유에스비도 부숴 버려야 한다고 유언을 해 놓아야 하는 거다. 이 알라딘 서재는 폐쇄하라고 해야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무섭네. 그리고 슬퍼지네. 하지만 그런 날이 오긴 올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으니...

 

 

 

 


8.
오십 대의 직장 동료가 내게 말했다.

 

 

“요즘 책을 안 읽으니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덧붙인다.

 

 

“나이 드니까 순발력이 없어지고 판단이 느려져요.”

 

 

아, 그거였구나. 내가 독서를 하며 살아도 바보 같은 짓을 자꾸 한다고 느꼈는데 그게 나이 탓이었구나.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내가 푼수 병에 걸린 거였구나.

 

 

내가 요즘 푼수 짓을 해서 죽겠다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나이 때문이라는 것. 이삼십 대에 잘 돌아가던 두뇌가 이젠 잘 안 돌아가는 이유가 나이 때문이라는 것.  

 

 

내가 예전에도 어떤 글에 쓰지 않았던가. 독서를 해도 왜 똑똑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답을 동료가 가르쳐 주네.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지나 봐.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남겼지. 

 

 

노인이 젊은이보다 못하지 않고 노자老子가 부처보다 못하지 않으며, 파랑이 빨강보다 못하지 않다. 노인이 젊은이처럼 굴려고 할 때만이 보잘것없어진다.(130쪽)
- 헤르만 헤세, <헤세의 문장론>에서.

 

 

나이 듦은 그것대로 장점이 있다는 말로 읽혀지네.  

 

 

 

 


9.
어느 님이 서재에 새 글을 올려놓고 가림막용으로 올린 글이라고 해서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이 창피해서 그걸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새 글을 올렸다는 말이다.

 

 

나랑 똑같잖아. 하하~~. 나도 그렇다. ‘저 글이 창피하니 빨리 새 글을 올려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서재에 들어와 (가장 최근에 올린) 내 글을 보면 마치 나의 발가벗은 몸을 공중에 높이 매달아 놓은 걸 보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이런 걸 극복해야 할 텐데. 뻔뻔해져야 할 텐데. 뻔뻔해지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내 글을 읽은 분들 중 한 분이 내게 말한다.

 

 

“이봐, 뭐 이런 걸 글이라고 올려? 여기가 개인 낙서장인 줄 알아?˝

 

 

내가 답한다.

 

 

“예, 여기는 개인 낙서장이에요. 제게는...”

 

 

물론, 가상해 본 물음과 답이다. 이 서재를 나의 낙서장으로 알고 앞으로 뻔뻔하게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10.
이 글의 마지막은 에밀 시오랑의 글로 장식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내 자신을 견딥니다.(53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나도 견디고 있다.

 

 

여러분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는 각자 생각해 보는 걸로... 

 

 

 

 

 

.............................................
(위 10번의 인용문에서 ‘내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써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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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6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5-08-16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거하신 모든 부분에 공감을 표시합니다! 고로 추천 10개 쾅!^^

페크(pek0501) 2015-08-16 13:50   좋아요 0 | URL
공감하신다니 안심이 됩니다.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어디쯤에 위치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추천 10개 잘 받았습니다...^^

순오기 2015-08-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요~~페크님!^^
공감으로 끄덕끄덕~ 인사 남겨요!♥

페크(pek0501) 2015-08-16 13:5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뵈네요, 순오기 님.
끄덕끄덕 해 주셔서 좋습니다.
저는 글을 올린 지가 오래되었네, 그러면서 땜질용으로 글을 올리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5-08-1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금창고 2015-08-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책 얼마전에 읽었어요
읽고 글잘쓰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5-08-19 14: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유시민 저자의 책이라면...
맞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져요.
그런 걸 느끼기 위해서 이런 류의 책을 찾아 읽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반가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세실 2015-08-1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아 둡니다.
`일을 갖고 글을 쓰면서 늙어갈 것` 굿 입니다~~~ 저도^^

페크(pek0501) 2015-08-19 14:30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제가 읽은 책은 모조리 님이 읽으시고
저는 님이 읽으신 책을 읽지 않고...
이러면 제가 밀리잖아욧... 호호~~
그냥 밀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승부욕 없는 여자랍니다.
뒤따라가겠습니다.
월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라 좋지 않습니까?

좋은 하루 되세염. ^^
 

 

1. 작가의 표절 논란

 

 

지난 6월 16일 이응준 작가는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글(소설)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기고했다. 요즘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표절 논란’이 시작된 이유이다.

 

 

다음의 글이 그 문제의 글이다.

 

 

A.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에서.

 

 

B.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에서.

 

 

A와 B의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2015년 06월 16일에 게시됨.)에서 가져온 글이다. (‘우국’과 ‘전설’은 단편 소설이다. 이 글 말고도 표절 의혹이 일고 있는 작품이 몇 더 있다.)

 

 

다음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에서 가져온 글이다. (A와 C는 각각 번역자가 다르다.)

 

 

C.
두 사람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 돌아온 중위는 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다가 그 틈도 참지 못해, 집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새댁의 가는 허리를 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꼬도 곧잘 이에 응하였다.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말까 할 때, 레이꼬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끼오, 황요찬 옮김, ‘우국’에서.

 


A와 B의 글을 비교해 보면 문장은 물론이고 문장의 순서까지 같아서 누가 봐도 표절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표절한 게 맞다고 본다.) 표절이 맞다면 그 무엇이 신경숙 작가로 하여금 표절하게 만들었을까?

 

 

그에게 묻고 싶다.

 

 

1) 위의 문장이 작가로서 해서는 안 될 표절을 하고 싶을 만큼 탁월한 문장인가?
2) 이 부분이 그 소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인가?
3)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여러 문학상을 휩쓴 작가로서 이 정도의 문장을 자기 식으로 쓸 능력이 당신에겐 없었는가?
4) 이 세상에 얼마나 눈이 많은데 표절이 발각되지 않을 줄 알았는가?
5) 끝까지 유지되는 비밀이 있다고 믿었는가?
6)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 적이 한 번도 없는가?
7) 표절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는가?
8) ‘금각사’ 외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인가?
9)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왜 이응준 작가를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지 않는가?
10) 이제 표절했음을 인정하고 반성 · 사과해서 그동안 안고 살았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신 작가의 표절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작가들이 침묵했음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침묵하는 것은 자기 입장이 곤란해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아서, 막강한 문단 권력 때문에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 문단을 향해, 그런 사회를 향해 어렵게 용기를 내어 혼자서 십자가를 진 이응준 작가가 앞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뜻으로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신경숙 작가도 정직한 태도로 용서를 빌고 이 시련을 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2. 글을 잘 쓰려면 어떤 삶인가가 중요

 

 

신경숙 작가는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 작품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일까?

 

 

성형 수술에도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표절에도 중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닐까? 성형 수술을 한 번 하고 나서 얼굴이 예뻐졌다고 느끼면 한 번 더 성형 수술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듯이, 한 번 표절해서 글이 나아졌다고 느끼면 한 번 더 표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말함이다.

 

 

작가든 아니든 누구든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표절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글을 도둑질하듯 가져와서 제 것인 양 글을 쓰는 비양심적인 삶에서는 좋은 글을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격 없는 필자가 인격 있는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옳지 않은 삶을 살면서 옳은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없지 않겠는가?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260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그렇다면 좋은 삶을 살면서 어떤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되는가?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기만 하면 최소한 못나지 않은 글은 쓸 수 있다. 여기에 나름의 개성을 입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면 훌륭한 글이 된다.(175쪽)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쉽게 쓰되 필자의 개성을 입혀라.’

 

 

말로는 쉬우나 이렇게 쓰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3. 글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글감 선택으로 고민할 때가 있다. 무엇에 대해서 쓸까? 하고.

 

 

재료 선택은 잘했는데 완성된 음식으로선 실패한 느낌이 드는 음식이 있다. 재료 선택은 잘하지 못했는데 선택을 잘하지 못한 것 치고 완성된 음식으로선 괜찮은 음식이 있다. 이 둘의 차이.

 

 

글감 선택은 잘했는데 완결된 글로선 실패한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글감 선택은 잘하지 못했는데 선택을 잘하지 못한 것 치고 완결된 글로선 괜찮은 글이 있다. 이 둘의 차이.

 

 

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러러볼 것은 시시한 글감을 가지고 잘 요리한 듯한 느낌의 글일 듯. 즉 무엇에 대하여 쓰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일 듯.

 

 

좋은 글감을 찾는 데에만 주력하다 보면 소재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기억해 둘만 하다.

 

 

 

 

 

 

 

4. 무슨 글이든 만들어 내는 재능이 필요하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면 대략 세 가지 경우일 가능성이 많다.

 

 

첫째, 다른 일에 열중하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둘째, 열중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경우.
셋째,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지만 슬럼프에 빠져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

 

 

어떤 경우가 되었든 ‘역시 난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다만 글쟁이가 되고 싶은 것이겠지.)

 

 

요즘 내가 글을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글을 자주 써서 올리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 하나.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요즘 새롭게 느낀 것이다.

 

 

글쟁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것.

 

 

무슨 글이든 만들어 내는 재능. 이게 꼭 필요한 것 같고, 사실 이 재능이 글쟁이에게는 제일 필요한 것 같다. 그러므로 글쟁이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한 문단씩이라도 꼭 쓸 것.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글을 쓰고 있다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잘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글쟁이’란 말이 좋은 뜻을 담고 있지 않으나 나는 이 말을 좋아해서 즐겨 쓴다. 글쟁이의 뜻 :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억지로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일이 있으니. 바로 독서이다. 난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지만 타고난 독서인인 것 같다.

 

 

(독서인(讀書人)의 뜻 : 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독서인이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독서인이다. 여기서 나는 전자의 뜻으로 썼다. 

 

 

독서인으로서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인데 지금 읽어도 재밌다. 홍세화 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이다.

 

 

 

 

 

 


5. 글쓰기는 수학과 관련이 있을까?

 

 

글쓰기는 수학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글쓰기를 잘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까? 수학을 잘하지 못해도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홍세화 저자의 글을 보자.

 

 

토론은 주로 글쓰기에 필요한 논리력, 추리력, 분석력, 정확성의 추구 등이 수학교육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길러진다는 주장과, 수학적인 차가운 논리가 오히려 창조적 감성이나 미적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 사이에 벌어진다. 반론자들은 하나의 좋은 예로 괴테를 내세운다. 독일의 으뜸가는 시인인 괴테가 수학에는 아주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토론에는 한 가지 흥미있는 재치응답이 있다. 반론자가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수학과 글쓰기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라치면, 상대방이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192~193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

 

 

하하~~. 재밌네.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반론을 편 사람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네.

내 생각엔, 글을 쓸 때에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수학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쓸 때엔.

 

 

글을 쓰면서 글쓰기는 수학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6.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건 마음가짐

 

 

세상을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프랑스엔 ‘비아제’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내가 죽고 나면 내 집을 줄 테니 내가 죽을 때까지 내게 매달 생활비로 얼마씩 달라는 것’이 되겠다. 121살까지 생존하여 세계에서 나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잔 칼맹’이라는 할머니의 사연이 웃게 만든다.

 

 

121살까지 살았던 그녀.

 

 

그녀가 80여 세일 때 그녀보다 (당연히) 훨씬 젊은 공증인이 그녀와 비아제 계약을 맺었다. 할머니에게 매달 꼬박꼬박 연금을 지급했던 그 남자가 먼저 사망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155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그 남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머니가 당연히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 할머니보다 먼저 죽었다는 얘기다.

 

 

잔 칼맹 부인은 그 비아제 계약에 관해 코멘트를 요청받고, “사람이 살다 보면 손해볼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세계 최고령이 될 사람과 비아제 계약을 맺었으니 그 남자는 말 그대로 재수없는 사람이었다.(155쪽)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저자의 말대로 그 남자는 정말 재수 없는 사람이었을까? 할머니보다 먼저 죽어서 집을 차지하는 행운을 얻지 못했으니 불행한 사람일까? 아니면, 사는 동안 노후 대책에 대한 걱정 없이 편히 살았으니, 또는 집을 팔아서 멋진 자동차를 살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어 살았으니 행복한 사람일까?

 

 

만약 그가 “왜 이렇게 할머니가 빨리 죽지 않는 거야?”라고 불평하며 살았다면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겠고, “할머니가 언제 죽든 상관없어. 난 노후 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니 참 다행이야.”라고 만족하며 살았다면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겠다.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

 

 

마음가짐.

 

 

그가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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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6-20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절자에게 묻는 10가지 질문은 정말 꼼짝을 못하게 만드는군요.
신 신작가뿐 아니라 적지않은 작가들이 표절을 하는 거 보면
탐나는 건 내것으로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과 같은 건가 봅니다.
예전에 시나리오 배울 때 강사님이 늘 그런 말씀하셨죠.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구.
글에는 감성과 논리가 함께 있으면 좋은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아, 글쓰기는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ㅠ

페크(pek0501) 2015-06-21 15:02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첫 댓글에 감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 혹시 아시는지요?
표절 건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 누구나 어느 한쪽으론 나사가 풀려 있다는 거예요. 모든 면에서 훌륭하긴 힘들다는 거죠. 세종대왕도 잔인한 구석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도 인간미 없는 독한 구석이 있었죠. 그게 인간이라고 봅니다. 신경숙 작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글쓰기, 어려운 것에 동의함. 오죽하면 10일만에 글을 올렸겠습니까? 캭캭~~

qualia 2015-06-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작가(?)한테 이곳 알라딘은 비판 무풍지대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선 유시민 작가도 ‘벼라별’ 비난을 다 얻어먹더군요.
인간성 측면에서요.
과연 유시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수 혹은 수구 쪽에서의 비난과 음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 혹은 민주 진영 쪽에서 나오는 극렬한 비난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고종석 작가도 유시민 비난의 선봉에 있을 겁니다.
글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시민과 고종석 두 분이
서로 적대관계라는 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고종석 작가가 약간 더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합니다만...

페크(pek0501) 2015-06-21 15: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어 보면 정말 인간성이 의심되는 것 있어요. 나쁜 글의 예를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뽑아 왔거든요. 그것도 실명을 거론하면서요. 그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얼마나 불쾌하겠어요.
좋은 인품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가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셈이죠.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는 책을 쓰다니...

이곳 알라딘에선 주로 책 이야기이니까 유시민 저자의 좋은 글을 발췌, 소개할 뿐이지 그렇다고 팬이 많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아요. 님의 말씀처럼 그래도 이곳이 책 이야기하는 곳이라 비판 무풍지대일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책보다 더 좋은 게 <청춘의 독서>였어요. 독후감을 잘 썼어요. 무슨 정치인이 이렇게 글을 잘 쓰나, 하고 감탄했죠. 이젠 아예 글쟁이로 발 벗고 나섰다고 하네요. 잘 쓴 글에 대해선 우러러봅니다. 글만요...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5-06-2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글 한 편씩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작가들 중에는 다작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을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작가 체호프는 무명 시절부터 잡지에 글을 투고할 정도로 젊은 나이에도 제법 글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평가가 젊은 체호프의 다작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글 쓰는 재능은 있으나 필요 이상 다작을 하는 바람에 읽을 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투입에 비해 산출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죠. 이 일을 계기로 체호프는 글을 쓰되, 좀 신중하게 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그의 실력은 인정받았고 단편소설의 대가에 오르게 되었어요. 체호프는 몇 백 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남겼는데, 여기서 우리가 읽는 단편소설은 고작 수 십 편에 불과합니다. 체호프 말고도 다작에 능숙했던 다른 작가들도 그래요. 독자는 작가가 남긴 모든 작품들을 무조건 좋다고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오랫동안 읽혀지고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는 반면에, 나머지 작품들은 독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대표작에 비하면 인정을 못 받습니다. 한 사람이 매일 글을 써서 그 수가 100편 이상 되어도 100편 이상의 글이 모두 잘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페크(pek0501) 2015-06-21 15:10   좋아요 0 | URL
하하~~ 시루스 님이 저에게 위안을 주려는 댓글입니까? 위안은 일단~ 감사하게 접수합니당~~.
그러나 어쩌나요. ㅋ 님의 댓글에선 이미 제가 주장하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걸요. 체호프가 단편 소설의 대가가 된 것은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 보내던 세월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다작을 하던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체호프는 없었을 거라고 봐요.

님의 말씀이 맞아요. 다작을 해도 수작이 되는 건 몇 편에 불과해요. 그러나 몇 편의 수작을 건지기 위해선 다작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제가 위의 글에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잘 쓰는 사람이다, 라고 한 것은 알라딘 서재를 둘러보니 정말 그랬기 때문이에요. 자주 글을 올리고 방문자 수가 많은 알라디너의 글을 보니 잘 쓰는 게 맞더라고요. (님도 포함됩니다.) 아마 통계를 내도 그럴 것 같아요. 글을 백 편 쓴 사람과 천 편 쓴 사람의 역량을 비교하면 제 생각이 맞을 듯해요.
저는 오히려 님의 댓글을 보니 체호프처럼 다작을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으음~~ 다짐해야징...다작 다작!!)

시루스 님은 이 댓글로 하루에 한 문단 쓰기를 실천하셨습니다. 이 댓글도 좋은 글이에요. 페이퍼로 쓰셔야 할 글 같은데요...ㅋㅋ

cyrus 2015-06-22 20:52   좋아요 0 | URL
페크님의 답글을 읽은 뒤에 제가 쓴 댓글을 읽어 보니 제가 생각 정리를 안 하고 막 썼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5-06-23 10:50   좋아요 0 | URL
ㅋㅋ 무슨 말씀을요...
시루스 님의 댓글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글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신중하게 써라. 여러 글을 쓸 생각 말고 하나의 글에 집중해서 깊게 파라. 이런 말이죠. 좋은 말씀입니다.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누구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 차이라고 보겠습니다.

독서로 말하면, 님은 정독이 좋다고 하고 있고 저는 다독이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 권을 읽기보다 한 권을 잡고 제대로 깊게 읽어라. - 이것 중요하죠.
(저도 요즘 다독보단 정독을 하고 싶어요. 다독보다 정독으로 얻는 게 훨씬 많은 것 같거든요.)

오늘 아침 신문 펼치니 신경숙 작가 인터뷰 기사 실렸네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자주 뵙기를 ...


AgalmA 2015-06-2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관련해서 글을 썼습니다.
pek0501님에 대한 반론이라기 보다 언급된 작가들의 표현에 대한 몇 가지 의문사항입니다.

http://blog.aladin.co.kr/durepos/7606618

페크(pek0501) 2015-06-21 15: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셔서 우선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1. 괴테가 수학 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저는 이해했어요. 맞습니까? 학창 시절에 수학 성적이 나빴던 괴테가 글은 잘 썼다, 는 것이죠.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수학 성적’과 ‘수학적 사고’의 차이에요. 이 둘은 같은 의미가 아니죠. 홍세화 저자는 괴테의 수학 성적을 언급한 것 같고 글쓰기에 필요한 것은 수학으로 길러지는 수학적 사고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괴테는 학창시절에 수학을 못했어도 나이 들어서는 수학적 사고가 발달할 수 있겠죠. 삶에서 길러지는 것도 있으니까요. 또는 독서를 통해서 길러지기도 하겠죠. 정확히 말하면 괴테는 수학 과목은 잘하지 못했지만 훗날 나이 들어서는(책을 쓸 때는) 수학적 사고가 발달해 있었다, 고 볼 수 있죠. (학교를 다닌 적인 없는 할머니가 돈 계산을 잘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괴테가 수학을 못했어도 글은 잘 썼다고 말할 거예요. 글쓰기에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니 수학 과목을 열심히 해 두는 게 좋다, 라고도 말할 거예요.

2 .저는 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입으로만 부르지 말고 온몸으로 불러 봐. 그러면 훨씬 잘 불러져.” 제가 표절한 걸까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 있다. 토끼가 깡충깡충 뛰었다. 이런 것도 이미 우리 뇌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말들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온몸으로’는 김수영 시인 전에 누군가가 먼저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요.
유시민 저자가 문장 배열까지 똑같다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는 님의 말씀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3. 홍세화 저자는 괴테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해야 한다? : 님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괴테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쓸 땐 생각나지 않았으니 저의 실수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는 많은 정보 중 어떤 것은 그냥 삭제합니다. 주제에 벗어나거나 주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면 ‘썼어야 했어.’라고 아쉬워하게 될 때가 있죠.

4. 제가 위에 쓴 페이퍼의 제목이 ‘단상’이에요.
(단상의 뜻 :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제가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라는 것이죠. 요렇게 저는 빠져 나갑니다. 하하~~
이것저것 따져야한다면 결함 없는 글이나 책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말도 자유롭게 하지 못할 거예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가 맞으니까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오류가 많다고 합니다.

5. 님의 글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전문성이 느껴지는 유익한 글입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오늘 공기가 맑네요. 좋은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5-06-2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가 수학과 유사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글쓰기에는 체계화시키는 능력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 앞뒤 매락을 끌어가서 마무리짓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머리에 아무리 좋은 착상이 있다는 것과 적절하게 표현해낸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느끼면서 어릴 때 좌절감을 느끼곤 했었거든요. (제가 글쟁이가 되고팠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

그러나 그 이전에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묻어난다는 말씀이 더 와닿아요.
언니의 글을 늘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삶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으셔서 좋아요. ^^

페크(pek0501) 2015-06-21 15:19   좋아요 0 | URL
마고 님의 말씀 모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지막 멘트는 최고의 찬사네요. 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잊을 뻔한 한마디! 반가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