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지만 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검은 수사'에 나오는 예고르 세묘니치다. 그는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다. 나이 든 그는 집에 놀러온 젊은 코브린에게 정원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이런 모습은 나 없이는 단 한 달도 유지되지 못할 걸세. 이 정원이 성공을 거둔 까닭은 엄청나게 크고 일꾼이 많아서가 아니라네. 성공의 진짜 비밀은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데 있단 말일세"라고. 그리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접붙이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고 묘목도 심고 모든 걸 자기가 한다면서, "내가 죽으면 누가 그걸 다 돌볼까? 누가 일을 할까?"하고 걱정을 한다.
미셸 드 몽테뉴의 책 '에세'에는 돈을 갖게 된 때 근심을 가졌던 이야기가 나온다. 여행을 갈 때면 돈 가방 때문에 짐꾼들이 믿을 만한지 걱정되고, 돈 가방이 눈앞에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돈궤를 집에 두고 오면 항상 그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며,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고 몽테뉴는 썼다.
우리 주위에도 부유하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지인한테서 들은 70대 할머니는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었다. 계약보증금은 싸지만 월세가 비쌌기에 짭짤하게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되면서 월세를 몇 달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세입자들과 다툼이 일어나 속을 끓이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사했다. 소문에 따르면 노인은 젊은 시절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몇 년 전 건물을 샀다. 건물을 산 뒤에도 구두쇠였던 노인은 비싼 음식을 사 먹지 않았고, 비싼 옷을 사 입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돈의 노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불행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위의 세 가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재물은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고 마음에 그늘이 지게 만들기도 한다. 부자일수록 근심은 더 많다는 속담이 있다. 부자는 아무 근심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생활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가난한 사람보다도 더 근심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재물을 잃은 것은 작은 것을 잃은 것이고 벗을 잃은 것은 큰 것을 잃은 것이라는 속담도 있다. 훌륭한 벗은 그 어떤 재물과도 비길 수 없는 존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재물이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빈자로 사는 것보다 부자로 사는 것이 낫다. 부자라서 자신이 갖고 싶은 고급 자동차, 멋진 시계, 명품 가방 등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다면 행복감을 느낄 테니까. 문제는 그 행복감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에 눈을 돌려 고급 주택에서 살고 싶을 것이고, 그다음엔 다른 부동산도 보유하고 싶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한정이 없으니 재물로 행복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다. 첫째, 마음이 편해야 한다. 그러려면 돈 걱정을 비롯해 큰 걱정이 없고 건강해야 한다. 둘째,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절망에 빠지고 누군가는 희망을 갖는다. 이를 감안해 볼 때 비관주의자보다 낙관주의자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 셋째,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수영을 즐기고 싶다면 수영을 배워야 하고, 요리를 즐기고 싶다면 요리를 배워야 한다. 넷째, 가족과 친구를 포함해 가깝게 지내는 이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 외로움은 행복의 큰 적이다.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보도된 재벌가의 '가족 간 재산 싸움'은 많은 재물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했으나 많은 재물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셈이다. 이런 생각이 스친다. '행복하지 않다면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지금 행복하다면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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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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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91401000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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