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 서 있고 빈 좌석이 없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뭔가를 펴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예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린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쓴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여성처럼 누구나 따끔한 충고를 해 주고 싶을 때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가 가벼운 솜을 무거운 짐으로 잘못 알아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한 결과를 낳았듯이, 충고자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충고를 하려고 할 때 우리 대부분은 상대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말하더라도 듣는 이의 성품에 따라 충고를 고맙게 들을 수도, 불쾌하게 들을 수도 있으니 충고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러분에게 도박에 빠져 있거나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따끔한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가, 따끔한 충고를 삼가야 한다고 보는가? 이에 대해 갑과 을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자.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 갑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친구가 가서는 안 될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도박에 빠진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재산을 탕진할지 모릅니다.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를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충고가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충고가 필요한 이에게 충고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친구와의 사이가 나빠지고 본인이 인심을 잃더라도 방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충고를 하는 것이 참다운 친구입니다"라고.



충고를 삼가야 한다고 보는 을은 이렇게 말한다. "도박에 빠지거나 외도를 하는 이들은 본인이 떳떳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음을 알지만 그 유혹의 힘이 너무 세서 중단할 수 없는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박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외도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오거나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어야 끝낼 수 있을 뿐, 누구의 충고도 먹혀들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충고를 환영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성과 없이 친구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기 십상이니 충고를 삼가야 합니다"라고.



이번에는 나의 의견을 말하련다. 예전엔 갑의 의견과 같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도박이나 외도뿐만 아니라 어떤 일로도 당사자가 충고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아니면 친구 간에 따끔한 충고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충고가 친구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 사람의 안팎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친구의 안팎을 속속들이 안다고 해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시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간은 대체로 남의 충고에 따르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친구에게 충고를 할 게 아니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을 갖는 게 좋을 듯싶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충고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올해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2023 꼰대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꼰대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굳이 안 해도 될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가 1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조언이나 충고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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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종이 신문에는 내일 날짜로 게재됩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121501000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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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올린 글을 끝으로 24개월간의 칼럼 연재가 끝납니다. 

그동안 저를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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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2-14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여섯 가지로 정리된 이유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 편안한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3-12-14 20:57   좋아요 1 | URL
서곡 님, 감사합니다.
이런 인사를 받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듯합니다. 칼럼 연재가 오늘의 글로 끝나니까 말이죠.
앞으로는 독서와 리뷰 쓰기, 로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서곡 2023-12-14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원섭섭 감개무량하시겠습니다 그간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페크pek0501 2023-12-14 21:08   좋아요 1 | URL
저로선 좋은 경험이었어요. 많이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고, 글을 계속 쓰려면 앞으로 깊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3-12-15 0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한테 뭔가 말하는 건 많이 생각해야겠네요 아니 안 하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뭔가 말해도 그걸 따르는 사람보다 따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니... 자신이 잘못한 거나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스스로 깨달아야죠 자신한테 따끔한 말 해주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사람 많지는 않겠습니다

페크 님 그동안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글을 쓰셔서 홀가분하면서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겠네요 쓰던 곳은 아닐지라도 글을 아주 못 쓰는 건 아니니 앞으로도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3-12-15 22:57   좋아요 1 | URL
충고는 해 주고 싶을 때가 있고 누가 충고하면 듣기는 싫고 그럴 것 같네요.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면 다행이지만
잘못하면 사이가 나빠질 수 있으니 신중할 일이에요.
1년만 연재하려던 게 1년 연장 제의를 받고 욕심이 나서 2년동안 하게 됐어요. 근데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다른 신문에 쓰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경인일보가 좋아요. 내년은 쉬겠지만 아마 또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1~2년은 쉴 생각입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3-12-15 0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24개월이 흘렀군요. 처음에 연재하신다고 좋아하시던게 생각나는데 시간이 참 빠른거 같습니다 ㅜㅜ

충고는 참 어려운거 같아요~ 내가 듣기는 싫은데 내가 하고는 싶은? ㅋㅋ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페크pek0501 2023-12-15 22:59   좋아요 2 | URL
시간이 정말 빠르죠? 그런 말 있잖아요.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 이틀은 길고 2년은 짧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나는 듣기 싫은데 하고 싶은 충고!!!
새파랑 님,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3-12-15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충고 안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에 찬성입니다.

페크님 24개월 동안 수고 많으셨네요.
귀한 시간들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페크pek0501 2023-12-15 23:00   좋아요 2 | URL
저도 충고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저에겐 연재가 좋은 경험의 시간이었어요. 자기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 순간도 많이 경험했고요.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12-15 0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년이란 세월동안 칼럼을 쓰는게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는 말 드리고 싶어요
그동야 수고 많으셨어요.

페크pek0501 2023-12-15 23:01   좋아요 3 | URL
4주 1회도 힘든데 1주 1회로 쓰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칼럼 글감 구하기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습니다. 매달 숙제를 매달고 살다가 해방되었으니...
페넬로페 님, 고맙습니다.^^

yamoo 2023-12-15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양질의 글을 써주시는라..^^
2년은 정말 긴 시간인데, 페크 님의 도전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일취월장 하셔서 다음에는 단행본으로 만나뵙기 기대합니다!

페크pek0501 2023-12-15 23:03   좋아요 1 | URL
보다 좋은 글을 써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에요.
정말 저로선 도전이었어요. 연재 덕분에 책 반 권 분량의 글을 썼습니다.ㅋㅋ
야무 님, 고맙습니다.^^

cyrus 2023-12-15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했습니다. 페크님의 글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지면이 또 생길 거라 믿습니다. 내년에도 건필하세요. ^^

페크pek0501 2023-12-15 23:04   좋아요 1 | URL
글이 빛을 발한다는 표현, 참 좋네요. cyrus 님, 고맙습니다. 님도 건필하십시오.^^

stella.K 2023-12-15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의 예는 정말 웃겨요. ㅎㅎ
근데 이 자리 양보가 참 어렵더군요.
얼마 전, 사람 많은 버스를 타게 됐는데 전 그저 빈 자리가 없나 둘러 봤을 뿐인데
어느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를 양보해서 좀 민망했어요. 금방 내릴 거라서 슬쩍 일어나는 거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고 바로 제 옆에 서서 가길래 어찌나 민망하던지.ㅋㅋ
근데 충고에 대해선 저도 언니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감이긴 한데 그래도 전 제 친구가 도박이나 외도를 한다면
충고를 할 것 같아요. 그건 윤리와 도덕의 문제고 나중에 왜 나한테 따끔하게 야단쳐 주지 않았냐고
친구 맞냐고 원망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친구가 좋은 삶을 살 길 바란다면
때론 담대하게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그 친구가 나중에 어떤 삶을 살지 너무 보이잖아요.
그런 거 외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그냥 지켜봐 줘야죠.ㅋ

24개월 쉽지 않죠. 수고 많으셨어요. 아쉬운 마음은 접으시고 자유를 만끽하시길.^^ .

페크pek0501 2023-12-15 23:09   좋아요 2 | URL
웃긴 이야기를 스텔라 님이 언급해 주시네요. 저는 저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막 웃었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는 진지한데 - 금각사에서 보듯이 - 에세이는 정말 웃깁니다. 알라딘에 딱 맞는 책이 없어 못 넣었어요. 오래된 책이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저는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양보할 때 내리는 척하고 다른 문 앞으로 가 서 있어요.ㅋ
스텔라 님의 의견도 일리 있어요. 친구를 위해 충고하는 게 좋다는 의견, 나올 법합니다. 칼럼의 특징 상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지라 저는 안 하는 쪽을 택해 썼어요.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잘 안 고쳐지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충고를 수렴할 사람은 스스로 상의를 해 와요. 그럴 땐 솔직히 말해 줄 수 있겠지요.

어느 새 24개월이 흘렀을까요? 저도 너무 시간이 빠른 것 같아 놀랍기도 하답니다.
아쉬움보단 자유로움을 느낀답니다. 스텔라 님, 긴 댓글 고맙습니다.^^

2023-12-15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5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나리자 2023-12-15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4개월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하셨군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페크님.^^
처음 도입부 글을 읽다가 기억이 떠올랐어요. 일본여행 때 전철 안에서 양보할라치면 사양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노인의 대국 답게 정말 건강하고 허리도 꼿꼿하시고요. 미시마 유키오의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있었다니
읽고 싶어지네요.
오랫동안 글을 연재하셨으니 다른 곳에서 또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ㅎ
아무튼 시원섭섭하실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없는 것 같은 자유도 맛보시길요.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12-16 12:21   좋아요 2 | URL
24개월 동안 두 번의 공포를 경험했어요. 마감날은 다가오는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어찌나 무섭던지 이젠 더 하라고 해도 못하겠더라고요. 또 연재를 하더라도 1~2년간의 재충전 시간을 가진 후에나 가능할 듯요.
제가 더 유능했더라면 더 연재를 할 수 있는 건데...ㅋㅋ 이 부분은 좀 아쉬워요.
벌써 연말 인사를 나눌 시간이 왔군요. 이달 중순이 넘었으니까요.
모나리자 님도 행복한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12-15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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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7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7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3-12-16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마지막 칼럼 기고네요. 고생한 만큼 성장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곧 연말인데 당분간 푹 쉬세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3-12-17 10:55   좋아요 1 | URL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죠. 망신당할까 봐 최선을 다해 쓰긴 했어요. 내가 이렇게 집중형 노력파인가, 처음 알았어요. 자신 없는 일을 벌여 놓으면 인간은 노력하게 되어 있나 봅니다.
당분간 쉴 생각이에요. 쉬면서 책이나 읽으며... 맛있는 거 많이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