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은 강제적이라는 (또는 적어도 설득을 강제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된 결론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남성작가가 반복적으로 규정해왔던 여성에 대한 은유를 (마치 그 은유가 암시하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라도 하듯) 자신의 작품에서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응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의 문학 연구 방법론은 문학사가 강력한 행위와 그에 대한 불가피한 반작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블룸의 전제에 기초한다. 나아가 가스통 바슐라르, 시몬 드 보부아르, J. 힐리스 밀러 같은 현상학 비평가들처럼 우리는 ‘은유를 낳는 경험’과 ‘경험을 낳는 은유‘ 둘 다를 묘사하고자 했다. - P21, 22


문학작품은 설득을 강제한다!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 바와 같이, 1장에서부터 저자들은 또박또박 18~19세기 여성작가들의 창조를 가로막았던 문학(문화)의 압력을 진술해 나간다.


과학이 강하고 우리가 부드럽다면, 그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우리가 캠퍼스에서 문화 변용과 사회화라는 점잖은 아내의 일을 하는 반면에, 남자 천체물리학자들은 화성에 우주선을 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상을 풍부하게 받는 과학자들이 습득하기 힘들고 어려운 그들만의 언어로 말하는 세계에서 이전에는 평범하게 말했던 소박한 우리 인문학자들 역시 어려운 사적 담론(말하자면 우리끼리 쓰는 특수 용어, 우리 영역의 신참자들에게 미생물학자와 지질학자의 전문성을 나타내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언어적 통달을 제공해줄 전문용어)에 대한 유일한 접근권을 열망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철학적 사회문화적 상투어를 파괴하는 흥분과 함께 ‘이론‘은 일상의 언어를 ‘의문시해‘ ‘사람‘ 대신 ‘주체‘나 ‘주체성‘으로, ‘책들‘ 대신에 ‘언어의 장들‘로 대체함으로써 전문성을 보증하는 ‘담론‘을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이론‘은 심지어 캠퍼스 밖 우리의 고객이었던, 울프가 말한 교양 있는 ‘보통 독자‘로부터도 우리를 유리시켰다.

(...)  반면, 시인으로서, 또한 평범한 독자로서, 작가이자 교수로서 나는 일상의 삶과 비평을 위해 에이드리언 리치가 품었던 ‘공통 언어를 향한 꿈‘에 공명한다. -P62, 63


이 부분은 저자들이 쉽고 대중적으로 문학사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밝힌 것인데, 뭔데, 에이드리언 리치,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라니 멋있고 난리람.. 읽고 싶어지게.. 


1장, 첫 부분에서는 펜=페니스로 여겨지는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에 관해 설명한다. 

철저히 가부장적으로 전개되는 문학작품에 몰입할 때, '존재의 용해'가 일어난다는 말은 흥미롭다. 

20대까지 읽은 책 대부분이 남성 작가의 작품이었다. 특히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필독서들은 거의 남성 작가의 것이다. 그 안에 나를 이입할 때,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여성 인물에 이입하든 마음에 드는 남성 인물에 이입하든 여성이 거기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전제에 깔린 남성 세계다. 여자아이들에게 우리는 여성작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더 많이 읽힐 필요가 있다.



핀치가 (빈정대는 어조이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심정으로 남성의 요구와 의도를 수용한다는 사실은 문화적 구속의 강압적 힘과 더불어 그 힘을 구현한 문학작품의 강압적 힘까지 뚜렷이 드러내준다. 왜냐하면 학식 있는 여성들은 ‘멍청해지라고 요구받고 그렇게 키워진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리오 베르사니가 말하듯, ‘글은 단순히 정체성 묘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정체성, 나아가 육체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 우리는 문학에 몰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종의 존재의 용해, 혹은 적어도 존재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 P85


남성 작가들은 대대로 ‘말의 그 무한한 일람표‘에 새겨넣은 여성 ‘인물‘에 대해 가부장적 소유권을 취했다.
(...) 역사상 소설을 소설로 반박할 수 있는 도구인 펜/페니스가 없었던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재산으로, 또 남성 텍스트에갇힌 인물과 이미지로 환원되어 왔다.  - P87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고에 따라 남성의 텍스트, 그림, 그래픽 속에 ‘갇혀' 있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우주론 속에서(죄 많은 결함투성이로) ‘날조되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자신이 문학작품의 소도구 이상이라고 느끼는 여성에게는 권위가 제기하는 문제가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일 수 없다. 여성에게 이 문제는 (앤핀치와 앤 엘리엇이 표현한 고통이 보여주듯이) 심리적이다. 여성은 그토록 철저하게 금지당했던 펜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가부장제와 문학작품에 의해 종속되고 감금당했기 때문에, 남성 텍스트들을 피해야 한다. 그 텍스트들은 여성을 ‘영’으로 규정하고, 여성에게 (여성을 가두고 펜을 들 수 없게 만드는 권위에 맞서 대안을 만들 자주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 P89


‘예술가는 경험을 죽여서 예술로 만든다. 일시적인 경험이 죽음을 피할 유일한 길은 예술 형식의 ‘불멸성’ 속으로 죽어서 들어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 속의 고정적 ‘삶’과 자연 속의 유동적 ‘삶‘은 속성상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펜은 칼보다 더 강할 뿐만 아니라 죽이는 힘(그 필요성)도 칼과 다를 바 없다. - P90


1장 후반부에서는 천사와 괴물이라는 대립적인 이미지로'만' 형상화될 뿐인 여성들에 대해 서술한다. 

작가에게 필수적인 '자아 정의', 그러나 남성 작가들의 시선에 의해 왜곡당한 문학들을 접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을 여성 작가들에게는 자아 정의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는 간단하게 '집 안의 천사' vs 혐오감을 자아내는 '괴물' 둘 중 하나다. 

이 부분을 읽으며 든 생각은, 예로부터 남자들이 "여자는 정말 모르겠다니까!" 하며 여성을 이해하기 어려워한 데는 자아상이 왜곡된 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실제 모습을 숨기고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을 추구해야만 하는 여성의 내면은 늘 복잡할 수밖에 없고 상반된 특성들이 불쑥불쑥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남성들 눈에는 그것이 여성의 변덕이나 복잡함, 비논리성으로 여겨질 뿐이었을 지도. 



(...) ‘천사‘와 ‘괴물‘ 이미지는 남성이 쓴 문학 전반에 퍼져 있을 뿐아니라, 두 이미지 중 어느 하나라도 확실하게 죽인 여성은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문학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 모든 작가에게 자아 정의는 자기주장보다 반드시 선행한다창조적인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한다면 언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에게 자아 정의의 본질적 과정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끼어든 모든 가부장적 정의 때문에 복잡해진다.  - P95


다시 말해 오노리어의 본질적 미덕은 그녀가 남자를 ‘위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녀 자신은 위대하지도 않고 뛰어나지도않다.  - P103


빅토리아 시대의 천사 같은 여자는 가정 안에 갇힌 채 남편의 ‘의미 있는 행위의 삶‘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피와 땀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신성한 안식처가 되어야 하며, ‘명상적인 순수함‘으로 신 같은 타자성을 상기시키는 살아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06


여성을 괴물로 만드는 가부장제적 심리를 설명한 부분은 <여성 괴물>에서 접했던 내용이다. 

*역시 보부아르는 날카롭다.. 내년에는 꼭 <제2의 성>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스펜서의 ‘에러’나 밀턴의 ‘죄‘처럼 여신 비판은 새끼 치고 먹고 토하고 먹이고 다시 먹어 치우는 영원한 생물학적 순환과 관련되어 있다. 세 시인 모두 이런 순환이 초월적 지적 삶에 파괴적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각각의 괴물 같은 어머니가 만들어낸 창조물은 전부 그녀의 배설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배설물은 전부 그녀의 음식이자 무기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새끼와 함께 자폐적인(서로를 잡아먹는 유아론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 P120


여성 괴물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본보기다. 남성이 자신의 육체적 실존, 즉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능감에 대한 모든 양가적인 감정을 바로 여성이 대변하도록 만들어왔다는 주장 말이다. 타자인 여자는 삶(파괴되도록 만들어진 삶)의 우발성을 나타낸다. ‘남자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육체적 우발성에 대한 남성 자신의 공포‘라고 보부아르는 말한다. - P121


모든 괴물 여자와 연관되어 있는 성적 혐오는 왜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여성 신체에 대해 혐오감을(또는 적어도 불안감을 끊임없이 표현해왔는지 설명한다. 예술 작품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치장하고 꾸미고 광적으로 거울을 보는 일, 냄새와 노화 걱정, 항상 너무 곱슬거리거나 너무 반듯한 머리카락 걱정, 너무 야위거나 너무 뚱뚱한 몸 걱정)은 여성이 천사가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성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입증한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여성의 변덕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남몰래 품고 있던 여성에게는 위압적인 훈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 P122


예로 드는 '릴리스' 이야기와 백성공주 동화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다. 

릴리스는 얼마전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바로 아담의 첫번째 부인이라고 알려졌다는 인(?)물. 호, 흥미로운데? 망겔의 책에서 봤을 떄는 신이 났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만 알고 있다가, 흙으로 직접 빚어졌다는 릴리스, 아담의 아래에 눕기를 거절하고 자기 마음껏 말하고 행한 아담의 부인이라니! 하지만 이 책에서 릴리스 이야기를 해석한 걸 보니 우울해진다. 여성의 주제넘음에 대한 잔혹한 처벌의 이야기라니.. ㅠㅠ 



릴리스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의 말과 여성의 ‘주제넘음‘ (남성 지배에 대한 분노에 찬 저항)은 불가분하게 뒤엉켜 있으며 필연적으로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는 물론 심지어 성경의 반신적인 공동체 연대기에서도 배제당한 릴리스는 여성이 자신을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보여준다. 실로 끔찍한 대가다. ‘달아났기‘ 때문에, 그리고 명명하는 행위에 암시된 문학의 권위를 감히 강탈하려 했기 때문에, 릴리스는 복수(아이 살해)에 갇히고 이로써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고통으로) 더욱더 고통스러워지는 저주를 받았다. - P123



백설공주가 가부장적 메시지를 듬뿍 담고 있는 동화라는 거야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 해석하는 내용을 보니 몰랐던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특히 백설공주와 여왕(왕비?)이 한 사람의 양면과 같다는 해석. 그리고 늘 왕은 코뺴기도 비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거울의 목소리가 왕의 목소리라는 것. 그리고 죽었다고 표현되는 백설공주의 친모와 마녀인 여왕이 같은 인물일 수 있다는 것(그림형제 원작에서는 친모=마녀라고 하니..)에 관해서, 이제 그녀는 왕, 즉 가부장제의 목소리를 완전히 내면화했기 때문에 더이상 왕은 등장할 필요가 없고 그녀를 비추는 거울로 충분하며, 또 여왕이 그처럼 변모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설공주의 결말 또한 같은 길을 따르리라는 해석이 아주 흥미로웠다. 



두 여성은 가부장제가 그들 스스로를 죽여서 예술로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권하는 도구(마법의 거울, 마법에 걸린 유리 관, 마법을 거는 유리관 등)를 무기로 휘두르며 솜씨를 부려 문자 그대로 서로를 죽이려 한다.  - P125


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 거울의 목소리는 분명 왕의 목소리다. 그것은 여왕의 (그리고 모든 여자의 자아 평가를 지배하고 심판하는 가부장적인 목소리다.   - P127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백설공주에 대한 증오심을 야기한 것은 자아도취 의식을 행하는 여왕의 강한 절망인 것 같다(또는 증오심인 것 같다). 순결하고 수동적이며 여왕을 소모시키는 거울에 대한 광기로부터 자유로운 자아-부재 상태의 백설 공주는 이야기 서두에서 여왕이 진작 내버렸던 체념의 전형을 표현한다.   - P128


여왕은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할 양으로 세이렌의 빗과 이브의 사과 같은 여성적 계략을 전복적으로 사용해 천사같은 백설 공주를 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술수는 딸을 통해 자신이 실현하려던 바와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백설공주가 수동적인 처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공주를 영원히 아름답고 생명력 없는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바로 가부장적 미학이 젊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광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왕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인습적인 기술은 죽을 만큼 고통을 준다. 그러나 온순하고 자아가 없는 공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여성의 기술이, 그 기술이 자기를 죽이긴 해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이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 수단을 제공한다. - P130


일곱 난쟁이는 그녀 자신의 위축된 권력, 발육 부진의 자아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베텔하임이 지적했듯, 그들은 백설 공주를 여왕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순종적인 여성성을 교육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백설 공주는 난쟁이들을 돌봐주면서 봉사, 이타심, 온순성이라는 기본 교훈을 배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백설 공주가 작은 집에서 집안일을 해내는 천사라는 사실은 ‘여자의 세계와 여자의 일‘에 대해 이 이야기가 취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가정 영역이란 최상의 여자가 난쟁이처럼 되고 난쟁이의 하녀가 되는 왕국의 축소판이다. - P131


사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백설 공주가 드러내는 유일한 이기심은 변장한 살인자가 주는 코르셋의 끈과 빗과 사과에 대한 ‘자아도취적‘ 욕망이다.   - P131


백설 공주가 처한 운명의 순환은 냉혹하다. ‘명상적 순수성‘을 거부한 백설 공주는 이제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여성에게 그런 삶은 바로 마녀의 삶이라 규정된다. 그런 삶은 매우 괴물 같고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에러, 두에사, 루시페라처럼 기괴한 백설 공주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방에서 잘못된 기술을 연마할 것이다. 릴리스나 메데이아처럼 자기 파괴적인 백설 공주는 자녀 살해와 그 시도에 내재한 자기 살해를 결심한 살인자가 될 것이다. 결국 그녀 자신이 고안한 빗과 코르셋처럼 확실하게 여성의 복식인 불타는 구두를 신은 채 백설공주는 이야기, 거울, 자아상으로 만든 투명한 관 밖에서 끔찍한 죽음의 춤을 말없이 출 것이다. 이 죽음은 그녀의 유일한 행위는 죽음의 행위이며 자아 파괴라는 치명적인 행위임을 암시할 것이다. - P133, 134


「노간주나무」는 남자아이가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자기 확신과 자기표현을 향한 성장이며 언어의 힘을 발전시키는 일임을 암시한다.   - P134


여자아이가 주인공일 때(백설공주)와 남자아이가 주인공일 때(노간주나무)의 차이를 지적한 점도 흥미롭다.

1장 마무리는 멋있게 끝내는 저자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밑줄을 많이 그어서 옮기는 것만도 한참 걸렸다(물론 이 많은 걸 타닥타닥 치지는 않았고, 북플의 기능을 이용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신난다. 이런 멋진 책 읽자고 한거, 대체 누구야? 누구?



 오늘 아침에는 4:30경 깨는 바람에(물론 귀염둥이 둘째 때문이다) 둘째는 금방 다시 잤지만 나는 금방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게다가 둘째가 또 6시쯤이면 깰 것 같아서, 그냥 책을 읽었다. 둘째가 6:30에 깨준 덕에 <아그네스 그레이>를 절반 정도 읽었고, 둘째와 함께 조금 더 잤다. 

 브론테 자매 중 막내인 앤 브론테의 작품 <아그네스 그레이>는 표지에 쓰인대로 '모슬린처럼 수수한' 작품이다(특히나 언니들 작품에 비교해보면). 작가 자신이 가정교사를 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풀어낸 걸로 보이는데, 전반부는 대체로 고생한 이야기다. 당시 가정교사는 집안마다 달랐겠지만 종종 하녀와 유사하게 무례한 취급을 당한 듯한데, 처음 간 집에서 어린아이들 (6세, 7세)을 맡게 된 아그네스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신분과 관계없이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덕성, 품행, 배려심 등)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당연히 그 부모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중반부, 드디어 아그네스의 높은 도덕적 품성과 어울리는 남성 목사보가 등장하는데..! 둘 사이에 로맨스가 펼쳐질 것인가? 수수하지만 쉽게 술술 읽히고 나름 재미도 있다. 




오늘 저녁엔 얼른 퇴근해서 아이들과 개기월식을 봐야 한다. 잘 보일까? 두근두근!!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는 (사회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불가능하기에) 여성이 문학에 관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문학 권력과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사상가 오토 바이닝어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은‘ 문학 권력이 없기에 ‘존재론적 실재를 [남성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부권/창조성 은유가 나타내는 암시는 또 있다. 여성은 문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능의 대상으로서 남성의 행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바이닝어와 사우디의 편지에 공히 드러나는) 생각이다. - P81

다시 말하면, 여성은 펜이 나타내는 자율성(주체성)을 부정당하기 때문에 문화로부터 (문화의 상징은 펜이니) 배제되는 한편 스스로 신비한 타자와 비타협적인 타자라는 양극단을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이 타자를 숭배와 공포, 사랑과 혐오로 마주한다. 여성은 ‘유령, 악마, 천사, 요정, 마녀, 정령‘으로서 남성 예술가와 미지의 것 사이를 중재하며, 동시에 남성 예술가에게 순수함을 가르치고 그의 타락을 지적한다. - P99

여성의 순종하는 삶, ‘명상적인 순수한 삶은 침묵의 삶이요, 이야기도 없고 펜도 갖지 못한 삶인 반면, 반항하는 여성의 삶,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은 침묵을 강요받고 괴물 같은 펜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말하는 삶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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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08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장 길지만 저도 잼나게 읽었어요^^ 아그네스 그레이 수수해서 소소한 포인트가 있군요ㅎㅎㅎ

독서괭 2022-11-09 11:00   좋아요 0 | URL
아그네스 그레이는 아직까지는 뛰어난 소설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그래서 언니들만큼 안 유명한가) 그 시대 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좀 귀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다락방 2022-11-08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부르셨어요? 데헷~

많이 읽으셨네요 독서괭님! 부럽.. 공통 언어를 향한 꿈 멋있고 난리람~ 네 풋 웃었어요 ㅋㅋ
독서괭님 이 글에서 독서괭님이 재미있어 하시는게 뽝 느껴집니다. 계속 화이팅!!

독서괭 2022-11-09 11:01   좋아요 0 | URL
오셨군요! ㅋㅋㅋ
1장 읽었을 뿐인데 많이 읽었다니 ㅎㅎㅎ 다락방님은 맘 먹으면 진도 쭉쭉 빼실 텐데요. 페미니즘 책 읽으며 멋진 언니들 많이 발견해서 좋습니다^^
다락방님, 함께 화이팅해요~!

책읽는나무 2022-11-08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미친 듯 재미나게 읽으시는 미친 독서괭님!!ㅋㅋㅋ
이런 내용이란 거죠??
저도 천천히 최대한 빨리 읽겠습니다.
브론테 자매들 작가 DNA는 참 대단하군요?
둘째는 엄마 책 읽도록 알아서 코~ 자 주고^^
괭님 몸 상할라~ 건강 잘 챙기세요^^;;;

독서괭 2022-11-09 11:04   좋아요 1 | URL
ㅎㅎ 책나무님, 제가 애들이랑 동화책을 많이 읽다보니 동화속 성차별 메시지에 관심이 많은데, 백설공주 자세히 분석한 내용이 너무 재밌었어요^^ 책나무님도 곧 시작하시겠군요!
브론테 자매들이 함께 책읽고 쓰고, 참 좋습니다. 하지만 에밀리브론테 죽고 얼마 후 앤브론테도 29세(?)쯤에 사망했다고 해요 ㅠ 찾아보니 그나마 샬럿 브론테가 38세로 가장 오래 살았네요..
걱정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겨야쥬!!

잠자냥 2022-11-08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요미 둘째는 엄마를 책 읽게하는군요! ㅋ

독서괭 2022-11-09 11:05   좋아요 1 | URL
엄마 책 읽으라고 깨운 걸까요. ㅋㅋㅋ 요즘 말썽 많이 부리는 귀요미 ㅠㅠ

잠자냥 2022-11-09 12:1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문제는 우리 귀요미 둘째도 요즘(?), 늘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저를 깨운다는 것입니다!
화장실 간다고 문 열어 달라고 하고는.......턱시도 입고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 -_-;;;
저는 그 시간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생각뿐... 괭님 대단해요. ㅋㅋㅋ

바람돌이 2022-11-08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전에 먼저 읽으신 분들 글 보면서 미리 열심히 예습중입니다. 역시 약삭빠른 바람돌이!!! ㅋㅋ

독서괭 2022-11-09 11:06   좋아요 1 | URL
오 바람돌이님, 예습 후 바람처럼 빠르게 진도 나가시려고요! ㅎㅎ 같이 읽어요^^

공쟝쟝 2022-11-09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찌지뽕! 저와 진도 같습니다! 저도 1장 끝내고 2장 넘어가기 전에 제인 오스틴 밀린 거 읽을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오늘 밤에 책을 정리하면서 글을 쓸까 말까도 고민 중입니다...
독서괭님이 적어주신 릴리스, 저도 너무 흥미롭게 읽었어요. 릴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더 읽고 싶은 데,(악마의 자식을 백을 낳았다니 ㅋㅋㅋㅋㅋ) 있나 없나... 호홋.

독서괭 2022-11-09 11:09   좋아요 2 | URL
찌찌뽕! ㅋㅋ 제인 오스틴 저는 <오만과 편견> 밖에 안 읽어서.. 하지만 이 책 서문에 메인이 샬럿 브론테라고 한 걸 보고 <빌레뜨>를 주문했습니다. <제인에어>는 옛날에 두번 읽어서.. 안 읽어도 되겠..져? ㅋㅋ
릴리스 정말 놀라웠어요. 릴리스 관련 이야기 발견하면 공유하자구요 ㅎㅎ

잠자냥 2022-11-09 12:11   좋아요 2 | URL
쓰라!쟝쟝
쓰라쟝!

단발머리 2022-11-10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설공주 이야기 무척 인상깊었어요. 저는 왕비가 사실은 친모다... 이런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거울의 소리가 왕의 목소리다, 그 부분이 참... 가부장제의 내면화, 여기랑 닿아서 신기하면서도 놀라웠어요.

저는 읽는데 치중하느라 ㅋㅋㅋ 정리를 못 하면서 읽고 있는데 독서괭님 페이퍼 읽으니 쫘악 정리가 되서 넘 좋으네요. 앞으로도 많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근데, 어느 집이든 둘째들은 왜... 전부 귀염둥이인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1-17 15:55   좋아요 0 | URL
아이고 pc 접속이 오랜만이라 이제야 대댓을 답니다. 단발님 잘 지내시죠? ㅎㅎ
거울의 소리가 왕의 목소리라는 말에 소름이 쫘악 =ㅁ=;;
정리하면서 읽어가지 않으면 이 벽돌을 소화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ㅋㅋ 정리를 계속 하려고 하는데요, 지금 4장 읽는 중인데 2, 3장 묶어서 정리해야지 하고는 못하고 있습니다.
막내들은 귀엽둥이로 태어날 운명인가봐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2-11-1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네스 그레이 오래전 읽었는데 수수하지만 똑부러지죠. 앤의 화신 아그네스. 앤도 너무 일찍 죽어서 안타까워요.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언니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을 냈을건데요. 불쌍한 세 자매. 1장 총체적이고 의미있는 내용이었어요

독서괭 2022-11-17 15:57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이미 오래전에 읽으셨군요! 자전적 소설이라는 게 딱 느껴지더라고요. 진짜 브론테 자매들 더 오래 살았다면 좋았을텐데 안타까워요 ㅠㅠ 셋이서 같이 작품활동도 하고 우애가 깊었을 듯한데..
1장 좋았어요. 4장은 오스틴 작품 여러개가 막 섞여나와서 예습을 할걸 그랬다 후회중입니다^^;;

레삭매냐 2022-11-1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타인의 해석이 아닌 자신
만의 고유한 해석을 추구하는
게 바로 독서인이 아닌가 싶네요.

독서괭 2022-11-17 15: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레삭매냐님! 어떨 땐 같은 책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우리가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만큼 서로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고 중점을 둔 부분이 다르고 받아들인 해석이 다를 때가 있어 깜짝 놀랍니다.
나만의 고유한 해석을 한다는 게 매력적이네요~^^
 



그로부터 2주 후, 캐시는 내 심리상담실을 방문했다. 강간을 당하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맹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캐시를 성폭행한 남자아이는 재판을 받아야 했기에 소속된 육상팀에서 출장정지 명령을 받았다. 그의 친구들은 캐시가 그 아이를 곤경에 빠뜨렸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다른 아이들은 그런 파티에 참석했으니 자업자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한 술 더 떠 캐시가 그 아이를 유혹했다고 수근댔다.  - <내 딸이 여자가 될 때> 143쪽


1993년, 열다섯살이었던 캐시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간다. 파티가 진행될수록 점점 술에 취하고 섹스하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캐시는 파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코트를 가지러 2층 침실로 향했다. 몰래 따라온 남자아이가 그녀를 강간했다. 

이 이야기가 2015년에 샤넬 밀러에게 일어난 일과 얼마나 비슷한지, 소름이 끼친다. 샤넬 밀러는 성인이었고, 파티에 갔다가 인사불성 상태에서 성폭행(아마도 유사강간)을 당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지만, 그후 주변의 반응은 유사하다. 샤넬 밀러에게, 사람들은 유망한 운동 선수인 가해자 브록 터너의 앞날을 망쳤다며 비난한다.  

샤넬 밀러는 사람들이 유독 성범죄에 있어서만 피해자의 행동을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는 강간 사건에서 사람들이 왜 그 남자에게 맞서 싸우지 않았어요?라고 묻는 게 이상하다. 집에서 자다가 눈을 떴는데 강도가 물건을 훔치고 있는 경우에 사람들은 왜 그 남자에게 맞서 싸우지 않았어요? 왜 그 남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고 묻지 않는다. 이미 무언의 규칙을 위반하고 있는 남자가 왜 갑자기 이성을 신봉해야겠다고 결심하겠는가. 어째서 그 남자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그 남자가 그만둘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경우 난 의식이 없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질문이 쏟아질 수 있는가? 

나를 긁어대는 주장은 또 있었다. 남자애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소리. 마치 그 남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듯. 나는 대학에 가는 내 딸들에게 말했어요. 대형 트럭 앞을 지날 때는 차에 받힐 걸 예상해라. 트럭 앞으로 걸어 다니지 마라. 네가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에 가면 술과 마약에 취해서 강간당할 걸 예상해라.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는 가지 마라. 네가 남학생 사교클럽에 가서 폭행을 당한 거라고? 뭘 기대한 거야? (...) 남학생은 인간이다. 그들에겐 정신이 있고, 법이 있는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몸을 더듬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구조화된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인지 행위이다.   - <디어 마이 네임> 86, 87쪽  * 진하게 표시된 부분은 원래 책의 음영을 그대로 반영한 것임


성범죄에 한해서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마치 남자에게는 이성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남자는 자제할 수 없다고, 그러니 네가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아니 이성과 합리성에 있어서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해 온 긴 역사가 이때만은 홀랑 잊혀지는가? 이렇게 주장할 거면 스스로의 열등함을 인정하고 짐승 유사한 지위를 인정해야 모순이 없는 거 아닌가?

샤넬 밀러는 성폭행 사건을 겪기 바로 전해, 엘리엇 로저가 저지른 '산타바바라 총기난사 사건'을 겪는다. 직접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친구들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 엘리엇이라는 인물이 남긴 유서인지 선언문인지를 보면 기가 찬다. 남탓의 끝판왕이랄까. 



나는 엘리엇의 137쪽짜리 선언문의 시작 부분 일부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이건 나 엘리엇 로저가 어떻게...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비극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 때문에 내 손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잔혹함에는 서사적인 기승전결이 있었다. 마치 자신은 절대로 자기가 한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억지로 떠밀린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를 힘들게 만든 건, 그가 징벌의 날을 거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건 여자들이었다. 영상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외로움과 처벌과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존재 상태를 견뎌야 했어. 그게 다 나한테 전혀 매력을 못 느낀 여자애들 때문이야. 그의 적개심은 자신에게는 마땅히 권리가 있다는 믿음과 자기연민 속에서 태어났다.

내게서 섹스를 박탈한 범죄를 저지른 모든 여자들을 처벌할 거야. 엘리엇의 세상에 있는 무언의 규칙에 따르면 여자들은 그와 섹스를 해야 했고, 우리는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만 존재했다.   - <디어 마이 네임> 148쪽  * 진하게 표시된 부분은 원래 책의 음영을 그대로 반영한 것임


야! 왜 내가 너랑 섹스를 해야하냐! 네가 매력 없는 게 내 탓이냐! XX*@#$%^&*!!XX (자체 심의 삭제) 

누구나 엘리엇 로저를 제대로 미친놈이라고, 로저가 아니라 루저라고 생각하겠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이별살인, 스토킹 등의 저변에는 가해자의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네가 감히"라는 생각. 네가 감히 나를 거부해? 네가 감히 나를 우습게 봐? 네가 감히 나를 무시해? 그리고 "네가 감히'라고 '감히'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물론, 여성이라는 존재를 아래로 보기 때문이다. 




<토지>에도 아주 한심한 인물이 나온다. 자신의 불행을 여자탓으로 돌리는 인물, 윤이병이다. 윤이병은 금녀와 좋아하는 사이였으나 금녀는 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술집으로 팔려간다. 거기서 김두수에게 넘겨져 원치 않게 끌려다니던 금녀는, 도망쳐 윤이병에게 의탁한다. 그러나 찾아온 김두수에게 윤이병은 매수당하고 어찌저찌하여 결국 파국을 맞는데.. 이자는 모든 게 금녀 때문이라고, 너만 아니었어도! 하며 지랄을 한다. 안 그래도 못났던 인간이 가장 못나 보였던 순간.(이건 8권 내용은 아님. 6권인가..) 


윤이병과 김두수를 생각하면서 문득 든 의문이 있다. 나는 악한 인간보다 약하고 멍청한(한심한) 인간을 더 미워하는가? 김두수는 악인이지만 자기 자신이 나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 금녀에게 집착하면서 "너만 나를 받아줬어도.."하는 남탓 모드를 잠깐 보이지만 자기도 그게 아닌 건 아는 것 같다. 윤이병은 김두수에 비하면 피라미, 환경에 따라 악인도 될 수 있고 그냥 무해한 자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다만 약해서 강자에게 무릎을 꿇는 그런 인간이다. 어쩌면 훨씬 평범한 인간. 그런데 왜 나는 김두수보다 윤이병이 더 싫을까? 아무리 윤이병이 한심해도 더 나쁜 놈은 김두수임이 명백한데?


<토지> 8권에서 김두수가 약해지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을 들으며 아, 내가 왜 윤이병보다 김두수가 덜 미운지 깨달았다. 그건 작가가 인물들에게 지닌 애정의 크기 탓이다. 그전부터도 느꼈지만 이 김두수라는 인물은 작가님이 상당히 애정을 가지고 만든 캐릭터라고, 엉엉 우는 그를 보며(들으며) 확신했다. 윤이병이라고 내게 연민을 느끼게 할 면모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작가가 보여주는 만큼 볼 수 있는 나는, 나쁜 놈이지만 성장환경부터 어머니에 대한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지닌 복잡한 한 인물을 이모저모 보여주면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윤이병에 대해서는 애정이 별로 없으셨던 듯 ㅎㅎ 

물론 김두수는 자기가 나쁘다는 걸 인식하고 있고, 윤이병은 못한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지가 나쁘다는 것조차 모르고, 잘못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남탓을, 그것도 강자가 아니라 약자를 탓하는 인간은 혐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성범죄자들이 그렇다. 


나쁜 놈들을 지칭할 때 '개새끼'라고 하는 말을 반대한다. (개한테 미안하니까)

나쁜 놈들을 지칭할 때 '미친놈'이라고 하는 말을 반대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나쁜 놈들을 지칭할 때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는 말도 반대하겠다. (벌레한테 미안하니까)

요즘 벌레 관찰을 즐기는 아이들을 위해 간만에 신간을 구매했다. 역시나 아주 좋아한다. 




그림이 참 귀여운데, 실제 벌레보다 훨씬 귀여우니 징그러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는 애들 앞에서 티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는 중. 

(하지만 '바퀴벌레는 ................ ' 이건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을 분들을 위해 ...처리 ㅋ ) 

이렇게 슬쩍 신간 소개를. 





이제 피해자 탓하는 가해자는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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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0-20 1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망도서 찾아가래서 오늘 도서관 다녀왔는데 <내 딸이 여자가 될 때> 있더라고요. 제목만 보고 대출 안 했는데요. 독서괭님 이 글 읽고나니 아까비...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독서괭님의 생각에 저도 공감합니다. 이별살인을 비롯한 가정폭력의 기본은 ‘감히 네가...‘라고 지점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건 여자가 남자보다는 못 하다‘는 생각이 바탕인 게 맞는 것 같아요. 무시당해서, 가 또 다른 이유가 될 텐데요. 다시 연결되는 건, 네가 감히 나를 무시해? 라는 생각이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것 같습니다. 덩치 큰 남자, 젊은 남자에게는 큰 소리 못 치지만, 상대가 여성이라면 언제든지 막 해도 되고, 남자에게서는 무시당할 수도 있지만 여자에게서는 무시당할 수 없다는 확신.... 흐미...

<벌레팬클럽> 책 너무 귀엽네요. 동화책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던 예전이 생각납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주말에 혼자 커피숍에서 책 읽는 날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0-21 16:32   좋아요 1 | URL
제목이 초큼.. 그렇죠? 원제는 <Reviving Ophiie>(오필리어 되살리기?) 라는데요. 이게 우리나라에서 잘 안 와닿을 거라는 건 알겠지만 번역 제목도 책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ㅋ vita님은 이미 읽으신 것 같던데, 사춘기를 앞둔 여자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이 읽기 좋은 내용입니다.
도대체 ˝네가 감히˝ ˝네까짓 게 감히˝가 얼마나 강하게 내재되어 있으면 ˝내게 매력을 못 느낀 너희 여자들 탓˝이라며 총기 난사를 정당화 하는 걸까요? 너무 끔찍하지요.
벌레 팬클럽 책 귀엽습니다. 바퀴벌레는 너무 싫지만요 ㅋㅋㅋ 주말에 책 읽을 그날을 기다리며!!^^ 단발님 감사해요~~

건수하 2022-10-20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레팬클럽으로 어쩜 이렇게 매끄럽게 이어지는거죠?! ㅎㅎ 저 얼마전 깻잎순에서 귀뚜라미가 뛰어나와서 혼자 비명 지르고 난리가 났었답니다 (….)

저도 딸이 있으니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던 책인데 반가워요.

섹스가 아니라도 데이트 부터도 거부당하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네요 (부들부들)

독서괭 2022-10-21 16: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수하님도 벌레 무서워하시는군요. 전 다리 많으면서 빠른 벌레들(지네, 돈벌레)이 정말정말 싫고요, 나방처럼 크면서 날아다니는 것도 싫고, 바퀴벌레는 정말 너무 싫습니다 ㅠ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은 그런 벌레들이 별로 안 보여요.. 애들이 동네에서 관찰하는 건 주로 공벌레나 지렁이, 개미, 파리, 거미, 그 외 이름모를 쬐끄만 벌레들이라 다행입니다;;
<내 딸이 여자가 될 때>는 하나하나의 얘기는 인상적이고 좋은데 이걸 하나로 모아가는 힘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끝까지 읽고 평가해보려고 합니다^^
과거의 일들 주마등 ㅠ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이 여러사람 피해주는 거 아닌가 싶네요 ㅠ

미미 2022-10-20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결같죠. 외국도 우리도. 특히 성범죄에 있어서는 유독 꽃뱀이다, 무고다부터...
강자위주의 논리,사고방식.
말씀끝에 귀여운 벌레그림으로
욕에도 이미 약자(동물,장애인,벌레,...)에 대한 비하가 들어있다는걸
알려주신 괭님👍

독서괭 2022-10-21 16:38   좋아요 2 | URL
네 정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 같아서 슬펐어요 ㅠㅠ
그래도 샤넬 밀러 곁에는 좋은 가족과 훌륭한 남친(믿을 수 없을 만큼!)과 배려깊은 수사관 등이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예요. 조금씩 더 나아지겠죠?
개나 장애인은 전에도 인식을 했었는데, 벌레 팬클럽 책을 보다보니 벌레에게도 미안해지더라고요 ㅋㅋ 대체용어로 ‘썩을 놈‘, 더 강하게는 ‘찢어 죽일 놈‘을 제안해봅니다 ㅋ 미미님 감사해요~

mini74 2022-10-20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화가 나네요. 그런데 여전히 그런 말 하죠. 창창한 앞길을 막았다는 둥 ㅠㅠ 벌레는 너무 싫어요 ㅎㅎㅎ 그나마 벌레 그림책하면 혼자서도 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 ㅎㅎ 아이랑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 생각나네요 *^^*

독서괭 2022-10-21 16:42   좋아요 2 | URL
‘창창한 앞길‘ 진짜 ㅠㅠ 아니 피해자의 멀쩡했던 앞날은 어쩌라는 건지요.
오 혼자서도 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 라는 책이 있군요! 찾아보니 권윤덕 작가님 책이네요? 절판됐지만 ㅠ 도서관에 있으면 봐야겠습니다. 미니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10-21 0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하면서 또 미간주름 팍!!! 그리면서 앞부분 읽다가, 점점~~ 벌레 그림책에서 미간주름 가로, 세로 주름들이 다 펴졌어요ㅋㅋㅋ
피해자 탓하는 가해자들!!!ㅜㅜ
벌레들아!!!!!!
출동해서 우리 가해자들 혼내주러 갈래???

독서괭 2022-10-21 16:43   좋아요 2 | URL
포르노랜드 읽느라 힘드신 분에게 제가 미간주름을 더 드려버렸군요! 하지만 벌레팬클럽으로 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ㅋㅋ 벌레들이 출동해서 응징해주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요 ㅎㅎ 책나무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10-21 07: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벌레...>로 끝나는 것은 독서괭님의 은유법으로 읽힙니다.
참고 읽으셨다는 말도, 위에서 더 참기 힘드셨다는 뜻으로...ㅠ

독서괭 2022-10-21 16:44   좋아요 2 | URL
어설픈 글을 은유법으로 곱게 해석해주시는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ㅎㅎㅎ
샤넬 밀러 책에도 열받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내 딸이 여자가 될 때>에도 곳곳에 여자애들이 당하는 성희롱이 등장합니다 ㅠㅠ

공쟝쟝 2022-10-22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찢죽놈…. !
니가 감히… 족속들은 왜 태어나는 걸까… 죽이지만 않을 뿐 비슷한 인간 너무 많이 봄… 어디 감히….

독서괭 2022-10-24 13:13   좋아요 2 | URL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내심에 있는 것 같아요. 어디 감히~~

독서괭 2022-10-24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르노랜드>를 읽다보니 ˝그들은(...) 포르노의 세계관이 여성을 언제나 접근 가능한 존재로 그리는 탓에 거절에도 몹시 당황한다. 그들은 대개 여자와 자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깊은 수치심을 표출하며, 이 수치심은 ‘야동녀‘와는 다르게 ‘싫어‘라는 어휘를 가진 여자 학우들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196쪽)라는 내용이 나온다. 포르노의 유해성은 어디까지인가 ㅠㅠ

공쟝쟝 2022-10-24 13:27   좋아요 1 | URL
진짜 어휴 ㅡ ㅋㅋㅋ
 

경향신문에서 연재되는 이진송 작가의 '아니 근데'를 가끔 읽는다. 

이번에는 "프메 인기몰이 이동욱부터 청담부부 정우성·이정재까지…‘아저씨 열풍’의 이면"

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2,30대 젊은 여성들이 40대 이상의 남성 배우를 좋아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기사 링크: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9231558005


그냥 ‘아재 열풍’이라 착각마라…# 무해함 # 헛물안켬 # 사리분별


이라고 첫줄에 써 있듯이, 과거 나이 많은 남성이 젊은 여성과 교제/결혼하면 능력 있다고 추켜세워지고,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나이 많은 남성들이 젊은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던 것과 최근의 아저씨 열풍은 결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즉 '무해한' 남성상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요즘 어린 여성들이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렌다면, ‘떼잉!’ 거기서부터 탈락입니다. 이는 결국 ‘무해한 남성상’에 대한 열망과도 통한다.

(...)

무해한 남성상의 인기에는 절박한 측면이 있다. 2022년의 이성애자 한국 여성에게 연애, 남성, 구애는 위험하고 두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

모르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 한 잔도 긴장하게 되고, 안전하게 이별하는 ‘꿀팁’을 공유하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이다. 아저씨 열풍은 이러한 맥락에서, 단순히 ‘나이 많은 남자’가 아니라,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춘 남자’를 안전하게 사랑하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  - 이진송 칼럼 중 


* 꼭 원문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주 재미있고 공감가는 글입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의 두번째 글, 백지연의 '불안에도 불구하고'는 이런 여성들의 불안을 분석한다. 김예란의 첫 글이 정동이론을 바탕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몸'들의 투쟁으로서 미투를 분석했다면, 백지연의 이 글은 이론보다 조금더 직관적으로 여성들의 불안을 설명하여 공감이 쉽다. 그렇다고 직관만 내세우는 엉성한 글은 물론 아니다. 현대 여성의 집단적 불안을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고, 불안의 근본적 원인이 '젠더간 권력차이'에 있으며, 이런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선택하는 도피는 결국 불안을 증폭시키게 될 뿐이므로, 여성들은 '미러링 전략' 등을 통해 싸우기를 택하였다는 전개를 통해, 싸우는 여성들의 정동을 논리적으로 지지하는 글이다.



가령 미디어는 ‘세상은 너희에게 이렇게 무서운 곳‘임을 알려주는 정보를 늘어놓으면서도, 동시에 여성이 느끼는 불안을 개인적 사연의 형식을 빌려 소비시킨다. 여성들은 언제나 당하고, 울다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런 이야기 구조 내에서 여성의 불안은 사회적인 실체를 가진 사실로 구성될 수 없다.
반면, ‘시스템‘은 남성의 불안 원인을 설명하는 단골 기제다. 예를 들어, 2015년 초반 즈음부터 온라인 공론장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여성혐오를 다룬 많은 기사들이,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이유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린다(백지연, 2017). 남성의 경제적 불안(문강형준, 2016.1.15), 결혼에 대한 불안(조한혜정, 2016.2.16), 여학생과 경쟁하는 남자 청소년의 불안(백승찬, 2015.8.12), 여성과 마찬가지로 약자인 남성의 불안(박권일, 2014.8.11)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기사들은 사실로서 확인해주었다. 이와 같은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은 엉성하지만, ‘여성혐오는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 ‘여성은 성격적으로 예민하다‘는 ‘문화적 전제 (Van Gorp, 2007)‘가 그 공백을 메워주면서, ‘불안‘이라고 이름 붙여진 감정을 대하는 사회의 방식에 개입한다. - P53


감히 확신하건대, 모든 여성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겪었던 불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기억은 개별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주요 에이전트인 미디어 (박동숙·이재원·정사강·강혜원 · 김해원, 2014)는 여성 집단이 불안의 기억을 축적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 p55


나 또한 감히 확신한다. 모든 여성은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겪었던 불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옛날 교과서에 실렸던 글 중 이런 게 있었다(지금 찾아보니 계용묵 작가의 '구두'라는 수필이다). 화자는 남성인데, 어느날 밤 집으로 걸어간다. 그의 앞에는 한 젊은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방향이 같아 앞뒤로 걸어가던 중, 여성이 불안한 기색으로 힐끔거리기에 화자는 앞서가려고 빨리 걷고, 그러나 여성도 더 빨리 걷다가, 결국 골목으로 들어가 달아난다. 남성은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집에 간다.. 

대충 이런 스토리였던 듯. 문제는 이 글에 여성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공감같은 건 없이,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당함으로써 느끼는 억울함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니, 내 기억이 대충 맞다. 이 글은 계속 생각나면서 내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켰다. 


한국일보 기사: 왜 사회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구두'를 신는 법을 가르칠까 

                      기사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80410470004832


일전에 같이 일하던 남성이 억울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한손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바로 앞 의자에 앉아있던 여성이 가방인지 뭔지로 다리 부분을 가리더라는 것이다. 본인은 그 사람이 있는지 인식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억울할까? 그전에 수많은 불법촬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여성이 핸드폰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에 그렇게 불안을 느꼈겠는가? 

저런 수필이 교과서에 실리고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만 가르치니 이모양이 되었나 보다.. 요즘 교과서에는 여성작가의 글이 많이 실려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나 집단 간의 권력 차이와 이를 유발하고 유지하는 구조적인 조건이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의 주된 원인이다(Ohman, 2008;Barbalet, 2001; Flam, 1993; Kemper, 1978). 여성이 느끼는 불안은 젠더간 권력차이에서 발생하고, 남성중심적인 사회 구조가 이 원인을 존속시킨다는 뜻이다. 불안은 다양한 강도를 가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정도가 변하며 내면적이거나 환경적인 상황에 의해 구체적인 양상이 달라질 수 있지만(Spielberger, 1966), 남성과 여성의 권력의 차이가 지속적이고 안정화되어 있다면, 이를 고질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한국 여성들의 불안은 한국 사회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지속된다. - P56

궁극적으로 도피는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탓에(Bourne, 2010) 안타깝게도 도망의 결말은 언제나 비슷하다. - P59

더불어 미러링의 발화자들은 자신의 언어가 남성 청자에게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러링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원본이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고, 미러링(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중잣대와 이를 만든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보이는 것을 통해 젠더권력의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잡음 없이 받아들여졌느냐‘는 기준은 미러링의 성공적 수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잡음과 거부감의 유발이 미러링의 목적 달성을 돕는다.
미러링을 통해 표현된 언어의 원본은 ‘일간베스트‘ 뿐만 아니라 ‘디시인사이드‘, ‘오늘의 유머‘, ‘엠엘비파크‘ 등 온라인 공간의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생산되고 누적되어온 여성혐오 발언과 철저하게 대립쌍을 이루고 있다. 이 대립의 구조는 미러링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순간 그의 원본이 되는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함께 비판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짜여진 언어적 전략이다. 못마땅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러링을 수용하는 사람의 존재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성차별주의자로 만드는 구도인 것이다.
 - P72


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때만 해도 '여자 남자 편가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왜 여성혐오라는 말로 편가르기를 하냐'는 남성상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사람이었다. 미러링에 대해서도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같은 말로 되받아쳐봐야 나까지 수준낮은 인간이 되는 거 아니냐는, 약간 도덕군자 같은 마인드가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뒤 페미니즘을 자세히 접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가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글에서 백지연이 미러링의 의의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니 좋았다. 



여성들은 두려움에 얼어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불안과 함께 말하며, 불안을 없애기 위해 싸우기를 선택했다. 여성의 불안은 젠더 권력의 차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어디서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여성들의 싸우기는 계속될 것이다. - P74, 75


"서로 다른 수준의 관여도를 가진 여성들"(67쪽)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이들이 자신의 관여도 수준에 따라 적절하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열리게 되었다는 점도 강조하는데, 공감가는 부분이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거나 '마녀D'처럼 연대활동을 하지 못해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 피해자에 대한 지지의 의사를 작은 목소리나마 표현하는 것, 주변 사람들과 이런 생각을 나누는 것도 싸움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제 읽기 시작하는 <디어 마이 네임>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원치 않는 법정 싸움에 나서야만 했고(가해자가 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해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를 인정하였음에도 판사가 구형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낮은 형을 선고하는 꼴을 봐야 했던 저자가, 몇 년 동안의 가명 사용을 그만두고 자기 이름을 찾아 쓴 책이다. 자신 같은 피해자가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책을 사 읽는 것 또한 싸움을 지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사생활을, 연애를, 과거를, 가족을 난자하는 불쾌하고 날 선 질문들, 내 이름을 물어보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나를 반라의 상태로 만들어놓은 이 남자를 위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시시콜콜 쓸데없는 사실들을 쌓아 올리고 있는 무의미한 질문들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육체적인 폭행 이후 나는 나를 공격하도록 설계된 질문에 공격을 당했습니다. 보세요, 그 여자가 사실이라고 하는 말들이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녀는 정신이 나갔어요. 사실상 알코올중독이고, 어쩌면 꼬시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 남자는 멀쩡한 운동선수고,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했고, 뭐라도 했겠죠. 그녀가 기억하는 병원 관련 일들은 사실과는 관련 없는 일이고, 그걸 왜 고려해야 합니까. 브록에겐 많은 게 걸려 있고, 그래서 그는 지금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고 던지는 질문들에 말입니다.  - 523쪽 (책 맨 뒤에 실린 피해자 진술서 중)


관련 기사 링크: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848102.html




 '법대로'가 만능의, 최선의 선택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사법 시스템을 이용해 싸우길 선택한다면, 그럼에도 당신이 피해자와 함께 싸우길 선택한다면, 

 혼자 싸우지 말자.

 혼자 싸우게 두지 말자.   -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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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9-26 15: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일보 젠더살롱은 꼭 챙겨보는 코너예요. 토요일마다 실려서 주말의 시작을 더 의미있게 만든답니다.
저는 이제야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는 사람으로써 아직 제 입장이 무어다 정리는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씩 발을 담그다보니 제가 남성 주류의 입장에 철저히 묻어가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심지어 여사친보다 남사친이 더 편했던 사람입니다.

독서괭 2022-09-27 15:07   좋아요 0 | URL
오 화가님은 젠더살롱을 챙겨보시는 분이군요! 저도 들어가 좀 훑어보니 글들이 좋아보이더라고요^^ 종종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도 아직 페미니즘 초보자로서 이론적인 입장이 정리된 건 아니지만, 화가님 말씀대로 ‘남성 주류의 입장에 철저히 묻어가던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은 저도 느낀 바입니다! 저도 한때 남자들이 편하다고 생각했어요ㅎ 중,고,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남자들은 다 어디갔는지 사라졌지만 ㅋ 지금 직장 동료들 중에는 좋은 분들이 많아서 잘 지내긴 하는데, 그래도 갈수록 여자들이 좋네요^^

단발머리 2022-09-26 1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생각이 참 묘하게 겹쳐집니다. 독서괭님 말씀처럼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러 여성들에게 ’각성‘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전 정희진선생님의 ’메갈은 일베에 맞선 유일한 당사자다‘라는 한겨레 신문 게재글, 게임업게의 여성 성우 퇴출과 관련된 글이 오래도록 인상깊었습니다. 솔직히 지난한 여성혐오의 역사 자체가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이걸 가시화하는 것 자체도 너무 어려울 일일테고. 이번의 신당역 사건 같은 불행한 경우가 반복되는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읽고 쓰고 말하는 것… 이외에 정치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작점이 어디가 될런지요.
저도 서둘러야겠어요. 좋은 글이라 천천히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2-09-27 15:10   좋아요 0 | URL
단발님, 이전에 여성혐오범죄라고 생각 못하고 그냥 ‘묻지마 범죄‘라고 퉁쳐졌던 것에 대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인식의 전환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좀 늦었지만요^^; 정희진 선생님께서 그런 말을 하셨군요. 메갈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신당역 사건도 여혐범죄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요 네 ㅠㅠ 구조적 차별이라는 게 얼마나 뿌리뽑기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네요.
단발님 천천히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달 안에 책 마무리를 목표로 달려보아욧^^

단발머리 2022-09-26 16: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네요, 그 글이요^^

공쟝쟝 2022-09-26 23:40   좋아요 2 | URL
이런 정희진 마니아! ㅋㅋㅋ >,<

독서괭 2022-09-27 15:11   좋아요 1 | URL
아 저 정희진선생님 글 읽어야 하는데.. 하는데... 여성주의책읽기 도서 읽기도 벅차네요 ㅠㅠ
 


존재의 취약성, 그로부터 빚어지는 고통과 슬픔이 정치윤리적 가치로 생성되고 전환될 수 있다면, 강함과 약함, 능동성과 수동성, 긍정성과 부정성, 기쁨과 슬픔처럼, 마치 대립 관계에 있는 듯이 설정되어 있었던 논리의 축이 흔들리게 된다. 나아가 만약 정동의 역능이 다수적이고 이질적이고 변화적인 것들의 결합과 선택으로서 개진되는 긍정화로의 변환 과정이라면, 이 원리에 따라 취약성 역시 능동의 강도로 고양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버틀러와 아흐메드의 논의에서 취약성과 고통이 오히려 강건하며 공존적인 정치윤리로 전화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29, 30쪽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의 첫번째 글, 김예란의 '행복을 향한 그녀들의 움직임: 디지털 페미니즘의 정동'에서는 버틀러와 사라 아메드(김예란은 '아흐메드'라고 표기했으나 알라딘에서는 아메드라고 쳐야 나오기 때문에 아메드로 표기함)의 정동이론을 가져와 미투운동의 의의를 해석한다. 위 인용문의 바로 앞에서 저자가 간단히 버틀러와 아메드의 논의를 요약해 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실 이해가 어렵다.

 존재는 취약하다 -> 그러나 그 취약성은 긍정화/능동성으로 고양될 수 있다 -> 이로써 공존을 위한 정치윤리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대체 이런 논리가 어떻게 나온 건지 <퀴어이론 산책하기>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정동이론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정동'의 의미에 대해서는 사유/느낌(감정)/정동을 모두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구별에 반대하는 견해(사라 아메드)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느낌(감정)과 구별은 어려워 보이고, 다만 그런 느낌(감정)을 보다 (능)동적인 상태로 이해한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이 정동이라는 걸 왜 탐구해야 하는가, 퀴어이론의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예를 보자.



(...) 이성애적 연애 관계였다 할지라도 여성 혐오에 기초한 이별 폭력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뒤섞일 때, 내가 이별에서 겪는 감정은 처음부터 기존의 권력 체계 안에서 매우 구조적으로 직조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를 둘러싼 권력 위계가 감정을 조건짓고 그 감정의 지향이 사람과의 관계, 나아가 내가 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 481쪽 

아메드는 '내게 이롭나 아니면 해롭나?'를 인지한다는 것엔 "사유와 가치평가"가 수반되고, 동시에 이러한 인지가 "몸에 의해 느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감각(느낌)/감정이 별개로 나뉘어져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느낌이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 '접촉'에는 접촉을 하는 사람(주체) 뿐 아니라 그 접촉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데 바탕이 되는 '역사'가 수반된다. (...)

어떤 대상을 보고 무섭다고 느낄 때를 생각해보자. 한편으로, 무언가가 무섭다는 인상은 과거사에 영향받는다. (...)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역사가 항상 본인이 직접 겪은 역사는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개와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라도 주변 어른들과 사회가 '개는 무섭다, 개는 문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주입할 경우 개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으로 개와 맞닥뜨렷을 때 '무섭다'는 느낌/감정이 올라오게 될 공산이 크다. (...) 다시 말해 우리가 직접 겪어 몸에 각인한 개인적 역사뿐 아니라, 그 개인의 탄생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개개인을 공기처럼 둘러싸고 있는 더 넓은 사회적 역사와 규범도 우리의 느낌과 감정을 조건 짓는 것이다. - 485~487쪽

따라서 감정은 주체나 대상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다.  - 489쪽


퀴어 정동 이론은 정동과 무관하다 생각되던 사안들에 정동이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하며, 어떤 정동이 그리고 어떤 식의 정동 표현이 기존의 규범에 영햡하여 규범의 생산과 강화에 일조하는지, 정동에 대한 긍정/부정의 가치 위계가 어떻게 지배 체제의 재생산에 이용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우리가 어떠한 인식틀을 통해 감정을 차별적으로 느끼는지, 달리 말해 어떠한 인식틀을 통해 감정이 차별적으로 생산되고 배치되는지를 탐구한다.  - 489쪽 



이 말인즉슨, 그저 사적인 것으로 보이는 나의 감정 역시 사회적 역사와 규범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것이므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의 가치 체계가 불평등할 경우 감정 역시 차별적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별살인이 자꾸만 일어나는 걸 지켜보면서, 스토킹이 구애로 포장되는 행태를 지켜보면서, 디지털성착취가 끊이지 않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감정은 어떻게 형성될까? 여자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에게 몸사진을 찍어 보내는 행위 밑에는,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여자는 성적 존재로서만 쓸모가 있다', '여자는 성적으로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이 사회의 메시지가 깔려 있지 않은가? 


이제 버틀러와 사라 아흐메드가 이 정동이론을 어떻게 펼쳐가는지 살펴보자. 퀴어이론 책에는 상당히 자세하게 나오지만, 나는 김예란의 글과 관련되어 보이는 부분 위주로 러프하게 요약했다.



[버틀러]


먼저 버틀러는 근대적 주체 개념을 해체한다. 왜냐하면, 근대적 주체는 책임을 자율성-독립성-행위성-선택의 연쇄로 묶어놓고,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는데, 이런 논리에 의해 "모든 맥락과 권력 위계들을 무시한 채 남자랑 단둘이 술 마시고 모텔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만한 나이의 여자가 따라갔으니 성폭력 아니고 화간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빠지는 식으로 바로 그 은폐된 권력 위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527쪽)기 때문이다. 

버틀러는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주체를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로 정의하며, 취약성을 이러한 주체의 실존적 조건으로 이론화한다(521쪽).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윤리적 폭력 비판』의 영문판 제목은Giving an Account of Oneself,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다. 자율성과 일관성이 근대적 주체에게 요구되는 기본 특성이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는 이 주체가 갖는 역량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보통 우리가 ‘행위성‘을 발현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내 의지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즉 방금 일어난 내 행동이 무슨 의도였고 어떤 의미인지를 내가 주저 없이 설명할 수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틀러는 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가 결코 완벽히 성공할 수 없으며 주체는 항상 박탈dispossession의 경험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내가 나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이유, 즉 나 자신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나를 초과하고 항상 이미 나보다 앞서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큰 틀로 작용하는 사회적 규범과의 관계 때문이다.  - 523쪽


그리고 버틀러가 주체가 조건지어지고 근본적으로 주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논증한 것은, 이를 근거로 '책임감'과 '윤리'를 내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우리의 취약성을 인정함으로써 나는 약해~ 암것도 못해~어쩔 수 없어~라는 결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더욱 연대해야 하고, 주체의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는 구조를 인식함으로써 누군가가 받는 고통이 나와 관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윤리의식을 갖자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틀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타자들에게 양도되어 있고 노출되어 있다는 이 취약성을 상대에게 선제공격을 날리고 보복 테러를 돌려줄 정당성의 근거로 이용하는 대신에 "윤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출처로 사유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상처 입힐 수 있다는 "불가피한 상호의존성"을 "전지구적 정치공동체의 토대로 삼는다면 우리는 어떤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 529쪽



[사라 아메드]



여자만 보면 분노 조절을 못 해서 욕설과 폭력을 내지른다는 남자들이 왜 마동석 앞에선 얌전한강아지가 될까?

(...)

감정의 이러한 차별적 할당과 편파적인 인식/인정은 이성과 감성을 가르는 이분법적 위계가 결코 중립적인 진실이 아님을 보여줄 뿐 아니라, 감정이 어떻게 기존의 권력 구도를 따라 생산되고 표출되는지, 나아가 어떻게 기존의 권력 구도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공고히 하는 동시에 그럼으로써 권력 구도 자체를 은폐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메드는 사회를 바꾸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건 이처럼 권력 관계에 감정이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542, 543쪽


맞다, 정말. 나는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다혈질이지만 뒤끝은 없다'는 식으로 포장해주는 걸 싫어하고, 소위 말하는 다혈질 성격의 사람도 안 좋아하는데, '화가 나는 것'과 '화를 표출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고 그걸 곧바로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 구도에서 위쪽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드물게 누가 봐도 갑인 사람에게도 막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나 그쯤 되면 정말로 분노조절장애라 할 법하고. 대체로 그 분노는 여성과 약자를 향한다. 권력 구도에서 위쪽을 차지할수록 화를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도 넓어진다. 다혈질이라는 말을 여성에게는 잘 쓰지 않는데, (나만 그런가? 여성에게 다혈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남성에게 붙이는 것에 비해 많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성이라고 화가 안 날까. 오히려 전형적인 여성 폄하 관념 중에 '여자는 감정적이다'가 있으니, 화도 더 벌컥벌컥 내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 일관적인 거 아닌가? 여성의 화를 히스테리, 신경질이라고 깎아내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은 화를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에게 화냈다가 어쩌려고, 살해당하면 어쩌려고? 결국 여성이 맘 놓고 화를 표출할 수 있는 상대는 아이들이다..(플러스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을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이 때문인데, 화표출을 잘 안 하는 편인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결국 얘네들은 이렇게 해도 나를 떠날 수 없고,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출근시간 다가오는데 유치원 안 가겠다고 소리지르며 누워 있으면 화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유.. ?;;) 

결국 의식의 흐름은 육아 하소연으로 흐르나. 그만 멈추고, 아메드 이론을 더 살펴보자.



『행복의 약속』에서는 ‘행복‘에 초점을 맞춰 이러한 정동의 경제를 다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아메드는 사회가 무엇을 ‘행복‘으로 규정하는지, 어떻게 ‘행복‘이 사회 규범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며 불평등·억압· 차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지를 탐구한다. 영어 단어 happy에는 ‘행복한'이란 뜻만 있는 게 아니라 (말, 생각, 행동 등이) 적절한 유의어(suitable)이란 뜻도 있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개념이 도덕적 위계와 범위를 결정하는 가치 개념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절해야만 행복하리라는 어떤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깔려 있는 셈이다. - 559 쪽


이런 의미에서, "불행할 자유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동 이방인들은 불행/행복 중 어느 한쪽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그 이분법적 분리 자체를 문제시하고 갈아엎는 사람들이고, 그 틈새에서 대안적인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아메드는 행복을 우리가 반드시 쟁취해야 할 궁극의 목표로 여기지 말고 그저 우리가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불행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과되고 강제되는 것들을 판단하여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정서적으로 피력하는 의사표시로 보자고 제안한다. "괴로워한다는 건, 좋다고 판단되어왔던 것들에 당신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행동할 역량을 고양시킬 수 있는 감수성이 될 수 있다. - 562쪽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 이 표현 참 마음에 든다. 부적절하다는 것은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 규범에서 벗어난 것을 말할 테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상에 맞지 않게 행동하며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아메드의 아래 글을 보면, 아메드는 고통을 쉽게 자기 것으로 차용한다거나, 고통조차 '적절한 가이드라인' 안에 있을 것을 요구하면서 고통의 진정성을 경쟁하는 걸 경계해야 하며(이 부분에 대해서도 <퀴어이론 산책하기>에 자세히 적혀 있다). 

, 우리는 '동류의식의 불가능성', '화해의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아메드의 글 재인용: 고통은 심지어 우리의 가장 절친한 타자들조차 느낄 수 없는 것으로 환기된다. 동류의식의 불가능성이 그 자체로 상처의 확증이다. 그러한 고통을 공감을 통해 공유할 수 없는 고통으로 불러내는 것은 단지 주의 깊게 경청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거주inhabitance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는 행동하자는 요청이자, 집단적 정치에 대한 요구이다. 이때 요구되는 집단정치는 우리가 화해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근거한 정치가 아니라 화해의 불가능성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에 기초한 정치, 혹은 우리가 서로와 더불어 살고 서로의 곁에 살아가지만 우리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정치이다. - P574


* <퀴어이론 산책하기> 중 정동이론 부분에 대한 밑줄 긋기 페이퍼: https://blog.aladin.co.kr/703039174/13326306


다시 디지털 페미니즘으로 돌아가보자.

'정동의 역능'이라는 측면에 미투운동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취약성을 능동성으로 전환하고, 지지와 연대를 구성하는 것! 이것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서 포스트잍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연대활동에서도, 최근 아마니 사망 사건에 분노해 일어난 시위(관련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2010130005969?did=NA)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동이론 자체가 그렇고, 김예란은 정동이론으로 최근의 미투운동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런 지지와 연대활동을 독려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자신에게 취약성을 부당하게 부여한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능동적 요소를 동시에 함축하게 된다. 왜냐하면 단지 그 취약하고 비참한 몸의 "드러남"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노출 혹은 고발의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약성이 규범에 대한 저항을 발현시키는 정치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취약한 몸들이 서로 뭉쳐 지지와 연대를 구성함으로써, 그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저항력을 구성하고 발휘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Athanasiou, 2016: Butler, 2016).  - 32쪽

(...)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은 결코 완료될 수 없으며, 그녀의 말은 열린 상처를 안고 행복을 향해 새롭게 움직이려는 의지의 발현으로서 존중되고 지지되어야 마땅하다. 비참으로부터 행복으로의 정동적 전환은 고통 아래에서 처절했던 자의 급전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며 그 결론이 미정의 것으로 열려 있기에 더욱 자유롭다.  - 38쪽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에서 두 꼭지를 먼저 골라 읽었는데, 썩 감흥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들 말씀하시는 이 첫 꼭지는 좋았는데, 특히나 정동이론? 이거 나 아는건데(이름만 아는 수준이지만)? 하는 마음이 있어 더 그랬다 ㅋㅋ 

다시 보다보니 버틀러와 아메드의 책도 궁금하긴 한데.. 검색해보니 버틀러 올해 책 한권이 나왔네? 개정판으로 번역을 많이 손봤다고 하는데, 어떨지. 그래도 왠지 <혐오 발언>이라니, <윤리적 폭력 비판>보다는 훨씬 쉬워보이지 않나? 음......

사라 아메드 책은 <행복의 약속>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두 권이 나와 있는데, 후자는 이론서는 아닌 것 같아서 읽기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정동이론>이란 책에도 사라 아메드가 들어가 있다. 저런 본격 이론서까지 읽을 생각은 차마 ㅋㅋ 


















자다 깨는 바람에 이 밤에 갑자기 글을.. 낼 너무 피곤하고 그럼 후회하겠지만 ㅠㅠ 

어느 정도는 쟝쟝님의 지적 냄새 풀풀 나는 글에 책임이 있다. 잠깐 북플 들어갔다 그 글을 보고 잠이 깨버림 ㅋ 아직 댓글을 못 달았는데 지금은 자야겠다. 이글이 정동이론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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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9-23 08: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쟝쟝이 좋아합니다! 지적인 냄새가 풀풀 여기서도 나는 군요!? ㅋㅋㅋㅋ 저의 감정적 (미친) 지적임에 비해 정제된 아름다운 지적임 입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나도 정동이론 궁금하니 퀴어이론 산책하기 사야겠어요~ 버틀러 이론은 아름답지 않나요? ㅋㅋㅋ 아름다워 ㅋㅋㅋ

독서괭 2022-09-23 16:09   좋아요 4 | URL
저의 지적 냄새는 모두 저 책 덕분이죠 뭐 ㅋㅋ 어려운 책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있어 보이는 것처럼요 ㅎㅎ
정동이론은 퀴어이론 산책하기의 매우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버틀러 이론 살펴보시기엔 괜찮을 듯요. 이 분은 퀴어이론가라서, 페미니즘이랑 결이 다르거나 동의하지 못하실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은 감안하셔요^^

공쟝쟝 2022-09-23 16:44   좋아요 3 | URL
매우 일부라고 하니까 더 사야할 것만 같다!!! 퀴어에 대해서는 못마땅하지 않아요! 되려 더 공부해야한다는 쪽이고!! 다만 대중화된 페미니즘에 어떤 라벨링을 하면서 혐오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못마땅해요! 분명 그런 (혐오적인 ㅋㅋ 나 조차도) 부분이 있겠지요. 저는 그래서 더 공부를 해야하겠다라고 마음 먹었는 데, 제 결론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열린 결말예여ㅋㅋㅋ 다만 지금은 메갈-워마드-터프로 이어지는 멸칭에 대해서는 매우 불편한 감정이 먼저 앞섭니다. 터져나오는 여성들의 (비언어적)언어를 분석하기도 전에 외국이론 가져온 것 처럼 느꼈어요, ㅋㅋㅋ 암튼 전 동의 못해도 잘 읽는 편입니다 ㅋㅋㅋ (비위가 강햌ㅋㅋ)

독서괭 2022-09-23 18:11   좋아요 2 | URL
ㅎㅎ 퀴어에 대해 쟝쟝님이 못마땅해 하실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다만 이 책에 ‘터프‘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와서요^^; 동의 못해도 잘 읽으시는 편이라면 걱정 없습니다! 좋은 이론서라고 생각해요.

단발머리 2022-09-23 0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의 첫번째 글, 김예란의 ‘행복을 향한 그녀들의 움직임. 저도 읽었거든요.
근데 어머나, 이런 고퀄의 페이퍼라니요! 역시 우리는 아는만큼 볼 수 있는가 봐요.
설거지 마저 하고 정제하고 앉아서 다시 댓글 달게요. 어려워보이는데 넘나 흥미롭습니다^^

독서괭 2022-09-23 16:11   좋아요 3 | URL
목 빼고 기다리는데 왜 안 돌아오시나요? ㅋㅋㅋ
저도 지난번 퀴어이론 책 읽을 떄는 정리가 어려워서 밑줄긋기만 해놨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으니 쪼오끔은 머릿속에 남을 듯 합니다. 단발님 글도 올라온 것 같은데 보러가야겠어요!

단발머리 2022-09-23 16:20   좋아요 4 | URL
저 이제 왔습니다 ㅋㅋㅋㅋ 죄송해요, 아침이었는데 오후네요 ㅠㅠㅠ
제가 천천히 꼼꼼히 읽었는데 참 어렵네요. 독서괭님은 쉽게 써주시려 노력하셨는데 제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다만 버틀러의 ˝불가피한 상호 의존성˝에 관심이 생기네요. 약간 희망적이라고 할까요?
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챕터가 <행복>이라서요. [행복의 약속]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정동이론 모를 때마다 독서괭님에게 물어볼게요. 넘나 행복한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9-23 16:26   좋아요 3 | URL
아니요,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제게 그런 걸 요구하시면 ㅋㅋㅋ 아니 되고요 ㅋㅋ
제 나름대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발췌하고 한 건데 사실 중간중간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것이므로.. 직접 읽으시는 게 나으리라 사료됩니다.
버틀러 이론은 뭔가 멋진데 .. 멋진데 잘 모르겠어! 그런 느낌이예요 ㅋㅋ

단발머리 2022-09-23 16:29   좋아요 4 | URL
헤헤헤. 근데 저, <퀴어이론 산책하기> 독서괭님이 밑줄이나 정리 페이퍼 올려주실 때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저자가 한국 사람이네요. 전, 당연히 외국 저자일거라 생각했어요. 흥해라, 페미니즘! 장하다, 코리아! 이런 느낌입니다.

독서괭 2022-09-23 18:12   좋아요 3 | URL
네 한국 사람이 쓴 거라, 번역에 의심을 품지 않고 시원하게 읽을 수 있어 더 좋았어요! ㅋㅋ

책읽는나무 2022-09-23 19:30   좋아요 3 | URL
저 이제 김예란 교수님편 다 읽었습니다. 만세~^^
다 읽고 다시 괭님 글 또 읽으니까 조금 이해가 갈 듯 합니다.
그래도 <퀴어이론 산책하기> 저 책은 사질 못했는데 정말 여러 번 인용하시는 분들 보면 아주 대단한 책이지 싶네요.
책도 책이지만 정동이론...모를 때마다 묻겠다는 단발님의 발언에 저두요!!! 하려고 했더니, 독서괭님의 단호한 답변!!
아니오,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
아....저 심각하게 글 읽고, 댓글들에서도 얻을 지식이 있나? 심각하게 읽다가...한참 있다가 혼자 빵 터졌네요.ㅋㅋㅋㅋ
정말....명쾌한 독서괭님!!ㅋㅋ
오늘 밤은 푹 주무셔요^^

독서괭 2022-09-26 12:44   좋아요 3 | URL
책나무님 만세~^^
퀴어이론~책은 두꺼워서 저도 정말 큰 맘 먹고 완독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이론(메인은 버틀러)을 다루는 해설서 치고는 읽기가 수월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자가 글을 잘 썼고요, 예시로 든 것들이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것들이라 이해가 잘 돼요!
음 제가 좀 단호합니다 ㅋㅋㅋ 거절 못하는 성격과 거리가 멀어요 ㅋㅋㅋ
우리 나머지 글도 힘내서 같이 읽어요!^^

다락방 2022-09-23 09: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학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까? 너무 고퀄의 페이퍼라서 제가 막 울것 같네요. 독서괭 님, 사랑합니다..

독서괭 2022-09-23 16:12   좋아요 4 | URL
우리 모두 나름대로 학자가 되십시다! ㅎㅎㅎ 저는 학자라기보다는 학생..이지만요;;
다락방님의 사랑,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ㅋㅋ 성덕된 느낌이닷 ㅋㅋ

거리의화가 2022-09-23 09: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탄성이 나오는 페이퍼입니다! 제가 1장 앞부분 읽으면서 이론이 부족하여 답답했던 부분들이 해소가 되었어요. 멋진 분들이 많아서 정말 알라딘 서재 오는 것이 행복합니다*^^* 정성스런 페이퍼 감사합니다 괭님.

독서괭 2022-09-23 16:13   좋아요 3 | URL
과찬 감사합니다 화가님~ 역시 책은 사서 소장해야 하는 것일까요? 퀴어이론 읽고 소장 중인 덕을 봤네요 ㅎㅎ 저도 덕분에 다시 보니 공부가 되었습니다^^

미미 2022-09-23 0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퀴어이론 산책하기> 꼭 읽어야겠네요! 사라 아메드의 책은 한 권 사두었어요 헷
이 글을 읽고 괭님도 페미니즘 연구자가 되실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행복, 선택,...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기본권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여성에게는 외부적으로 규정되어진 것임을 요즘 계속 깨닫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독서괭 2022-09-23 16:16   좋아요 2 | URL
ㅎㅎ 미미님, 퀴어이론 산책하기 제가 읽으면서 한창 홍보를 했었는데, 저자가 어려운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해보려고 많이 애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버틀러 이론에 대해 해석 오류까지 요목조목 짚어가며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버틀러 입문용으로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메드 책, <행복의 약속>사두셨나요? 미미님 감상이 기대됩니다^^

미미 2022-09-23 16:35   좋아요 2 | URL
아앗! 그 책 아니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요^^*

책읽는나무 2022-09-23 12: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쁜 괭님 자꾸 이렇게 계속 이뻐지시면 어찌합니까???
독서괭님은 뇌도 이뻐~♡
어렵다고 밀쳐뒀던 디지털책 다시 처음부터 정독해야겠습니다.
요즘 절반으로 줄였던 오천보를 오천보로 늘려 걸었더니 며칠 헤롱헤롱하고 이제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고 책 다시 읽고 괭님 글 다시 읽고 참고해야겠습니다.
정동이론!!!! 넘 반가운 단어에요^^

독서괭 2022-09-23 16:17   좋아요 4 | URL
이쁘다니 ㅋㅋㅋㅋㅋㅋ 이런 칭찬은 서재에서 처음이야 ㅋㅋㅋㅋ
책나무님 감사해요 ㅋㅋ 디지털 페미니즘 이 책, 이 첫 꼭지는 어려운데 제가 뒤쪽에 두개를 봤는데 그건 어렵지 않았어요. 관심가는 주제부터 먼저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오천보 열심히 걷고 열심히 읽으시는 부지런나무님 응원해요^^

난티나무 2022-09-23 1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어젯밤에 이 글 일등으로 보고 감동받은 느낌을 다른 분들이 댓글로 남겨주셨네요.^^
저 아직 1장 안 읽어서 ㅎㅎㅎ 독서괭님 글도 다시 찬찬히 읽고 1장 읽기에 참고할게요!!! 👍👍❤️

독서괭 2022-09-26 12:46   좋아요 2 | URL
난티나무님이 1등으로 봐주셨군요. 감사합니다 ㅎㅎ
이미 책 진도는 많이 나가신 것 같은데, 1장도 읽으셨나요? 참고가 되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건수하 2022-09-27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페이퍼 감사해요. 저번에 한 번 읽고, 1장 읽고 마지막 부분에 대충 이해가 되었다 생각하고 다시 와서 읽었는데... 다시 머리가 멍해지고 있어요 ^^;;
이론적 토대가 많이 부족하네요 흑흑...
그치만 ‘정동‘ 이란게 뭔지 처음에 좀 설명해주면 좋았을텐데...

<퀴어이론 산책하기> 담아뒀는데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일단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로 ^^


독서괭 2022-09-27 15:14   좋아요 2 | URL
오 재독까지 해주시다니 수하님 제가 영광이네요.
제가 많이 요약해놔서 더 이해가 어려우실 거예요. 원본(퀴어이론)을 읽은 저도 그냥 아스라하게 이런 건가 하고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ㅋㅋㅋ
김예란님은 글 분량 때문이겠지만 다들 이거 알쥬?하고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느낌이 있죠? ㅋㅋㅋ 그거 아닙니다 선생님 정동이론 이런 거 우린 몰라요! 하고 외치고 싶은 기분 -_-;;
 


7장까지 읽었다. 중간 기록.

7장 <여신들>에서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이 개념들(*창조, 이름짓기)이 처음으로 나타난 시대는 서법이 ‘발명‘되고, 서법과 함께 역사가 발명된 시대다. 기록으로 남기기와 상징체계의 정교화는 추상작용(abstraction)의 권력을 보여준다. (…)​
여성의 다산성이라는 상식적이고 관찰 가능한 사실에서 이탈하는 것과, ‘이름‘과 ‘개념‘ 속에 표출될 수 있는 상징적 창조력을 개념화하는 것은, 말하자면 더 높은 수준의 사고이다. 그것으로부터 우주의 ‘창조적 정신’(creative spirit) 개념으로 옮겨가는 것은 그다지 큰 비약이 아니다. 그러나 추상성을 만들어내고 추상적 개념들을 대신하는 상징들을 창조하는 능력에서의 일보전진은 분명 일신주의로 향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사람들이 그런 ‘창조적 정신‘을 체화한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힘을 상상할 수 있게 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의인화되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수많은 남신들과 여신들을 유일한 하느님(One God)으로 축소시킬 수 있었다. - P269


신의 모습을 상상한 인간들이, 처음에는 자기들과 비슷한 모습의 신들을 만들어 냈으나, 점차 상징과 추상의 세계가 발전하면서 이들을 완전히 인간과 분리하여 초인적인 유일신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 또한 그 추상의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지위가 격하된 것은 여성 신이다. 


문명화된 사회의 제도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원시적 조건 아래서 유아에 대한 어머니의 실제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오직 어머니의 팔과 보살핌만이 유아에게 추위로부터 피난처가 되었고, 어머니의 모유만이 생존을 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무관심이나 유기는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생명을 주는 어머니는 정말로 삶과 죽음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놀랍고도 신비로운 여성의 힘을 관찰한 여성들과 남성들이 어머니-여신을 숭배하게 된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P75

  '생명을 주는 어머니' 이것은 자연적인 것으로, 관찰을 통해 쉽게 도출되는 결론이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생명 탄생에 관여하는 남성의 역할을 보다 잘 알게 된 남성들은 점점 더 생명을 주는 신의 모습에도 남성을 투여하고, 끝내는 여성을 밀어내고 '생명을 주는 아버지 신'을 만들어낸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과정은 눈 앞에 보이는 데 비하여 정자가 생명 탄생에 기여하는 모습은 육안으로 관찰이 불가능하므로, 남성을 생명 창조에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상상력- 육체 자체 뿐 아니라 뭔가가 더 필요하다는(예컨대 영혼을 불어넣기) 현실 너머의 사고와 '개념화'를 비롯한 추상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대조적 속성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고대인들과 달리, 개념화가 발전하면서 각각의 개념들, 유사어, 반대어 같은 것들을 분류하게 되면서 대여신의 속성들도 더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을까. 

고대인들은 이러한 대조적 속성에서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대여신의 이중성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이중성을 대변하였다―밤과 낮, 출생과 죽음, 밝음과 어두움.
따라서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숭배 단계들 속에서 여성적 힘은 놀랍고 강력하며 초월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 P264, 265

  심지어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원전 3천년~2천년 사이의 모습에 의하면 '사원매춘'이라는- 매춘이라는 용어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지만- 역할이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졌을 만큼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 여기서 신성하다는 것은 처녀성, 순결성을 유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용이랄까, 효용에 있다고 보인다.  


사원매춘부는 사회가 인정한 역할이다. 그녀의 역할은 영예로운 것이다―사실상 야성의 남성을 문명화시키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바로 그녀이다. 여기서의 전제는, 섹슈얼리티는 문명화시키는 것이며, 신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매춘부는 ‘여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직업으로 인해 다른 여성들로부터 구분당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야성의 남성을 길들이는 일종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문명의 도시로 따라온다. - P237
 
 여성의 섹슈얼리티로 남성을 길들여 문명화시킨다는 생각. 그렇다면 여성은 어떻게 되지? 그녀는 이미 문명화 되어있기 때문에 남성을 문명화 시킬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성을 문명화 시키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자 효용일 뿐이고 여성은 그대로 자연에 남아 있는가? 섹슈얼리티라는 것이 자연에 속한다면 답은 후자가 되지 않을까. 이런 관념을 바탕으로,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창조의 위대함은 빼앗고, 창조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육체성만 남기고, 자연을 야만으로 취급해가면서 여성을 남성보다 하급의 존재로 밀어낸 것이 아닐까? <여성 괴물>에서 보았던 '원초적 어머니', 그녀의 상징들이 '비체화' 되어가는 과정이 떠오른다. 출산의 과정인 아름답지만은 않다. 지금은 깔끔한 병원에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뒷처리까지 끝나 버리므로, 출산한 당사자마저도 피와 오물로 범벅된 아기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옛날에는 관장 같은 거 미리 하지도 않았을 테니, 출산은 그야말로, 똥, 오줌, 피, 양수 등으로 아주 강렬한 시각적, 후각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문명화 과정에서 안 보이게 치워버리고 비체화하면서, 여성 그 자체까지 비체화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상류층의 규범적 선언에 의한 것이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어머니-여신으로부터 천둥-남신으로의 이동은 설명적이라기보다 규범적이다. 그것은 실제로 평민들이 무엇을 믿었는가보다는, 왕실 신하, 관료들, 그리고 전사들로 이루어진 상류층이 평민들이 믿기를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더 많이 말해 주고 있을 수 있다. - P279

 거다 러너에 따르면, 최초 성별에 따른 분업은 분명히 편리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많은 역할을 했고 그것은 생물학적 성차에 따른 것이긴 하나 무엇이 더 우월하고 저급한지와 같은 판단은 개입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여성의 종속이 시작되게 된 것일까? 레비-스트로스는 '여성교환'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여성이 교환된 이유는 다시 그 망할 '생물학적 성차'에 있다. 여성의 재생산력 말이다. 농경시대에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고 새로운 노동력을 생산해 낼 수 있고 그 자신도 많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여성은 중요한 재산이 되었으며, 이렇게 교환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사물화 된다.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는 표현은 슬프지만 정확해 보인다. 여성은 몰랐고, 남성 역시 모르는 상태로, 다만 부족의 이익을 위해 하던 행동들이 여성을 패배시켰는데, 깨닫고 난 뒤에는 늦어버렸다. 

세계 여러 지역의 부족사회들에서 발견되는 현상인 ‘여성교환’(exchange of women)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여성종속의 선도적 원인으로 규정되었다. 그것은 여성들이 속한 부족에서 그들을 강압적으로 제거하거나(신부 훔치기), 의례에 의한 능욕 혹은 강간,정략결혼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을 구성하는 교환의 총체적 관계는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로 구성된 두 집단들 사이에서 성립된다. 그리고 여성은 동반자 중 한 명이 아니라, 교환의 대상물건 중 하나일 뿐이다. (...)

레비-스트로스는 이 과정에서 여성이 ‘사물화‘된다고 한다. 여성은 탈 인간화되며 인간이라기보다 물건으로 생각된다. - P84
생산에 관한 지식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남성 연장자들은 이 ‘비밀‘을 신비화하고, 식량 · 지식 · 여성을 통제함으로써 젊은 남성들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여성교환을 통제하고 여성들의 성적 행위에 제한을 가하며, 여성들을 사유재산으로 취득한다. 젊은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접근기회를 얻는 특권을 갖기 위해 나이든 남성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전사들을 위한 전리품이 되며 그 공동체에 대한 연장자 남성들의 지배를 장려하고 강화시킨다. 결국 모계제와 모처거주의 전복을 통해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가능해지고, 이는 그것을 달성하는 부족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 P89
한번 교환되면, 여성들은 더 이상 평등한 인간적 존재로 보이지 않았고, 대신 상품과 같아져서 남성들의 기획을 위한 도구로 되었다. "남성들은 그들이 정복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사물화를 행하는 주체가 되는 데 비해, 여성들은 그들이 정복당하고 보호받기 때문에 사물화된다." 지배당할 수 있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낙인은 애초의 구분을 강화시키며, 오래지 않아 여성들은 열등한 집단으로 인식된다. - P172

남성이 여성을 종속시켜 본 이 경험은 노예제를 가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노예'라는 개념 또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타인을 지배할 수 있고, 그 타인의 집단을 지정할 수 있다는 관념, 별다를 것 없는 너와 나 사이에 선을 긋고 너는 나보다 아래에 있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여성을 향하던 그것이 이제 다른 사람, 전쟁에서 패배한 다른 부족 사람이나 채무를 갚지 못한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까지 확장된다.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P138


사회가 계급화 되는데, 남성들은 그 자신이 가진 요소에 의해 계급이 분류되는 반면, 종속된 여성들의 지위는 성적 서비스에 의해, 혹은 아들을 낳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높은 지위에 있던 여성이라도 남편에게 만족할 만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내쳐질 수 있다.

 

거의 천년 동안 ‘노예제‘에 대한 관념은 ‘여성‘이라는 바로 그 정의(definition)에 반영되는 양식으로 현실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 이전 시기의 결혼교환에서 자신들의 성적 · 재생산 서비스가 사물화된 여성은 공적 사적 영역과의 관계가 남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되면서 그 시대의 막바지를 맞이하였다. 남성은 그 계급위치가 강화되고 재산 및 생산수단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었다면, 여성의 계급위치는 성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 P166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가족 내에서 가부장에 의해 이루어지던 것을 넘어서 국가에 의해 제도화 되는데,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를 요구하고, 베일을 쓸 수 있는 것을 특권으로 지정하며, 위반한 자에게 국가가 처벌을 가하는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거다 러너는 왜 여성의 섹슈얼리티 통제가 국가가 간섭해야 할 문제가 되었는지 설명한다. 


고대국가는 가부장제의 형태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계와 계급특전은 국가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데 근본적이었다. 따라서 감히 베일을 쓰고 거리에 나타나는 매춘부는 불온한 병사나 노예만큼이나 사회질서에 큰 위협이었다. 딸들의 처녀성과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정절을 지키는 부인들은 사회질서의 중요한 특성이되었다. 그때까지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가장들에게 남아 있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MAL§40을 통해 국가에게 맡겨졌다. 기원전1250년경부터 줄곧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쓰는 것에서부터 산아제한과 낙태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는 가부장적 권력의 본질적 특성이 되어왔다.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계급형성의 기초이며,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 중 하나이다. - P249

며칠전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허용했던 로 vs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낙태를 처벌해 온 유구한 역사의 기초는 가부장제다.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보다는 "네가 감히" 하나님(아버지)가 주신 생명을 네 맘대로 죽이느냐라는 심사 아닐까 싶다. 태아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고 보기에는, 이 사회가 일단 태어난 아이와 양육자에게 제공하는 보호막이 너무 얇지 않은가? 이번 미국의 판결이 다시 한번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왜 자꾸 우리를 통제하려 하는지를 말이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자가유발된 낙태는, 반드시 왕(법정)에게 알려야 하는 공공범죄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말뚝에 꿰찔리는 형과 매장거부는 중기 아시리아법 체계에서 처해진 가장 심한 형벌들이며, 그것들은 극심한 상급 범죄에 대한 공적 형벌이다. 왜 여성의 자가유발 낙태가 상급 반역죄나 왕에 대한 공격과 동격이라 할 수 있는 심한 범죄로 간주되어야만 하는가? 중기 아시리아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 중요시되는 드라이버와 마일즈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원치 않는 유아의 유기를 허용하고, 낙태에는 가장 심한 처벌을 내리는것은 일관성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결혼한 어머니의 경우, 이것은 아이를 살리거나 유기하는 남편의 선택권을 아이의 어머니가 그에게서 뺏을 권리​가 없는 반면, 유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버지라는 토대에서 설명될 수 있다.   - P 210​


밑줄을 잔뜩 그어가며 읽고 있다. 휴~ 이번 달이 가기 전에 완독하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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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6-27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국의 상황이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기폭제가 되길 바래요!
이 책을 읽으며 유구한 가부장제
역사의 뿌리가 얼마만큼 강력한
것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며칠 안남았는데
저도 서둘러야겠습니다. 괭님
화이팅!!!✊✊

독서괭 2022-06-28 15:25   좋아요 2 | URL
미미님, 가부장제의 깊고 깊은 역사를 함께 읽어나갈 수 있어서 기쁘네요^^
미국의 각 주들이 부디 여성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길 바라며..
미미님 화이팅입니다~!!^^

공쟝쟝 2022-06-29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아직 많이 남았어요 ㅜㅜ 오늘도 열나 달려야지.. 아주 이번 주 빡세다.. 죽겠ㄷ...

독서괭 2022-06-30 18:23   좋아요 1 | URL
다 읽었습니다아아🥳

공쟝쟝 2022-06-30 20:08   좋아요 1 | URL
아 앙대 ㅜㅜㅜㅜㅜㅜ 저 일 갑자기 몰려와서 ㅠㅠㅠㅠ 아 앙대 ㅠㅠㅠㅠㅠ 암튼 꼭 다 읽겠어요!!

공쟝쟝 2022-07-07 11:08   좋아요 1 | URL
나두 다읽었지롱 🤭

독서괭 2022-07-07 11:19   좋아요 1 | URL
ㅍㅎㅎ 축하합니다!! 어제 글 봤는데 넘 길어서 피씨로 읽으려고.. 근데 자버렸서 아직 못 읽었어요 ㅠㅠ

공쟝쟝 2022-07-07 11:21   좋아요 1 | URL
전 오늘 밀린 페이퍼들 다 읽으려고 오전 비워둠 ㅋㅋㅋㅋㅋ (알라딘 서재 여성주의 책읽기에 진심인 사람ㅋㅋㅋ) 길게써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잘쓰면서 길게써야하는데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