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은, 성매매를 둘러싼 여성들의 인식의 딜레마를 "크레바스"라고 표현했다. <페미니즘의 도전> 3부에서 다루고 있는 성매매 문제에 대한 그의 분석을 읽고 있노라니, 성매매에 대한 내 입장이 다소 우왕좌왕 하였던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꺠닫는다. "성매매는 포주에 의한 착취이므로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다면 딱히 포주라 할 존재가 없는 개개인 사이의 성매매(주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에 봉착하였고, 이에 대해 애초에 성이 편향적으로 매매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깨달음과 <레이디 크레딧>의 구조 분석 덕에 어느 정도 내 안에서 정리가 되었던, 오랜 시간에 걸친 과정 말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성이란 곧 성매매라고 생각하는 남성 인식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여성주의 실천이 혹시라도 '가장 억압받는 민중 여성'인 성판매 여성의 목소리를 빼앗는 데 일조할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가장 '안전한' 방법인 침묵으로 일관했다. (...)

'근절 대 허용'이라는 이분법은 애초부터 어느 여성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래서 빠질 수밖에 없는 크레바스였다.  - 224쪽 


그러나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더 깊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성판매 여성의 인권' 측면의 문제로, 더욱 결론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反)성매매,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성노동자 인권,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대립 구도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이 성판매로 유입되는 근본적 원인들 - 남성의 수요와 이를 허용하는 남성성 문화, 여성의 경제적 어려움 등 - 을 그대로 둔 채, 성매매 외의 다른 길을 제시해 주지 않은 채 무조건 금지, 퇴출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정희진은 두 이론 중 무엇이 옳은지 보다는, 여성주의에서 성매매 당사자인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반성적으로 고찰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절대화"(233쪽)하는 것은 위험하고,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계속 업주(남성) 혹은 '일반 여성'의 이해로만 환원"(257쪽)하게 되면 성판매 여성을 껍데기로 만드는 것이며, "여성 억압의 동일성에 대한 강조"(257쪽)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여성주의자와 성판매 여성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에 의해 정해진다. 여성주의는 공통된 본질과 정체성을 지닌 경험적 집단의 투쟁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범주가 종속적으로 구성되는 복합적 형식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성매매 역시 다른 방식의 접근을 모색해볼 수 있다. 여성주의자의 입장이나 성판매 여성의 입장이나 모두 '부분적 진실'이고, '상황적 지식'이다.   - 259쪽 



그래서 결론이 뭐냐?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냐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이 책은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다른 목소리'(17쪽)다.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 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목소리'의 잠재적 주인공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17쪽)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39쪽)라는 말에서,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러 페미니스트 법 이론들을 마치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인 것처럼 생각해왔다. 어떤 이들은 바닐라만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은 로키로드를 좋아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 이론은 (그리고 그 정도는 덜하지만 실용주의는) 한 가지 맛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석을 위한 도구다. 그것은 아이스크림 스쿱과 같다.  - 58쪽 


포스트모던 철학에 관하여 모든 걸 해체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있다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아주 쬐~끔 퀴어이론을 통해 맛보기 한 내가 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요하다. 굳어진 생각을 깨뜨리기에 좋다고 할까? '답'을 제시하지 않는 정희진의 위 성매매 관련 페미니즘 분석처럼, 그것은 새로운 인식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1장에 나온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관한 위 설명- "스쿱"이라는 비유- 은 딱 이해하기 좋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방법론으로서 차용하면서도 실용주의 페미니즘처럼 실증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아 보인다. 


내가 퀴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가장 타자화 하기 좋은'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종은 섞일 수 있고, 국적은 변경될 수 있으며, 계급은 상승/하락할 수 있고, 누구나 사고나 질병에 의해 장애를 가질 수 있으며, 남성도 '여성화'된 모습으로 여성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라고 보는 것이 통론임을 감안할 때, '퀴어' - 대표적으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 는 '노멀'- 이성애자 및 지정성별과 성정체성 일치자 -과 서로 섞이거나 양자를 오갈 수 없는 '타자'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토록 '타자'로 보이는 것은 '젠더' 개념 자체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고착되어 있고 내 머릿속에 강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젠더 개념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퀴어에 대하여 "그들"이라 지칭하며 타자화 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퀴어들의 입장도 갈리는데, 우리는 당신들과 다르지 않아요, 정상가족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며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입장과, 보다 전복적으로 이분법적 젠더체계에 의문을 던지고 정상가족 개념 자체의 해체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위험하다'. 위험하다고 여겨져서 더 많은 거부를 불러온다. 그러나 젠더 이분법 해체, 정상가족 해체가 정말로 우리 사회를 흔들 만한 위험인가?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런 이데올로기가 해체되어야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이 보일 것이다. 저출산 문제도 그렇다. 낙태는 금지하면서(현재는 사실상 금지상태) 낳은 아이는 나몰라라 하는 사회, 오로지 정상가족에서 출산한 아이만 보호하고 미성년자, 비혼자, 동성부부 사이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 비난만 하는 사회에는 앞날이 없다... 


얘기가 왜 여기까지 왔지? 흠.  

마침 2년 전 오늘 쓴 글로 올라온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리뷰에 인용했던 글을 다시 소개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만약 성소수자의 노출과 애정표현 같은 모습이 불편하다면, 그래서 표현을 막거나 음지로 돌려보내고 싶다면, 사실은 지금까지의 '편함'이라는 것이 다수의 '편함'을 위해 소수자의 권리나 실존을 희생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그런 사회는 과연 윤리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조수미, '퀴어문화축제: 가시성과 자긍심의 축제,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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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7-12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괭님 다 읽으셨군요!
저 <페미니즘의 도전> 6월 30일에 다 읽었는데,,, 아직 페이퍼를 못써서… 주말에 좀 정리해야겠어요!
퀴어로 흐르는 결론 ㅋㅋㅋ

독서괭 2023-07-13 16:51   좋아요 1 | URL
역시 햇살님 저보다 먼저 읽으셨군요!! 주말 정리 페이퍼 약속하신 겁니다? ㅋㅋ
왠지 퀴어로 흐르네요? 주제독서에 의한 관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락방 2023-07-13 0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 님, 언제나 난잡한 저를 이해한다 하시지만, 이렇듯 글을 보면 세상 정리 잘하시는 분인데 말입니다. 저에게 선한 거짓말을 하시는건가요? 흑흑 ㅠㅠ

저는 여성주의 책들을 읽는 여러분들이 각자 자신만의 가장 큰 문제점 혹은 관심의 대상을 찾는게 너무 좋습니다. 독서괭 님은 퀴어에 꽂히셔서 여러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쓰시고 말이지요. 제 경우에는 성폭력과 강간에 대해 더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근데 이건 싫어요. 너무 괴로워서요. 사실 저는 퀴어에 대해서는 독서괭님과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독서괭님의 연속된 그리고 연결된 독서를 응원합니다. 그 독서로부터 파생되는 글쓰기는 물론이고요! 우리 특히 더 꽂히는 부분에 대해서 계속 읽고 쓰기를 멈추지 맙시다!

잠자냥 2023-07-13 09:05   좋아요 1 | URL
괭님과 퀴어에 대해서 갈리는 지점은 어디에서? 트랜스젠더 부분인가요?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3-07-17 10:35   좋아요 4 | URL
네 트랜스젠더 부분입니다. 저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성별 이분법을 없애놓으면 트랜스젠더가 디스포리아를 겪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신체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성주의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성별 이분법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기본적으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여성운동의 핵심은 여성도 농구를 할 수 있고, 남성이라고 해서 꼭 듬직할 필요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분노를 안으로 향하게 해서 우리 몸을 훼손할 것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향하게 해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야 할까? -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中

이 다음으로 넘어가면 저는 트랜스젠더 혐오자가 됩니다.


독서괭 2023-07-13 16: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 글이 정리가 잘 되어있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근데 다락방님 글은 난잡하지 않은데요(그렇다면 글 외의 것은..? 쩜쩜쩜). 자유연상식으로 쓰면서도 전달도 잘 되고 재미있는 글이라 참 좋아합니다. 헤헷
갈리는 지점 뭔지 알 것 같아요. 여성주의랑 퀴어이론이랑 부딪히는 지점들이 좀 있더라고요. 성별이분법을 없애면 트랜스젠더가 디아스포라를 겪지 않아도 된다, 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트랜스젠더의 경우 특정 성에서 특정 성으로 바꾸는 예가 대부분이니 - 그렇지만 성별이분법이 약화되어 젠더스펙트럼이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성별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당사자가 아니라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운동에 있어서는 무엇을 우선으로 하느냐, 에 따라 갈릴 수 있을 것 같고요. 그점에서는 저는 여성주의 쪽에 더 기울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제가 공부가 부족하여 스탠스가 확립이 안 되어..쿨럭
무튼 저에게는 퀴어이론이 도끼같은 존재였고, 정희진님 글이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좋았어요.^^

2023-07-17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7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7-17 13:45   좋아요 0 | URL
저도 괭님처럼 알아들음
ㅋㅋㅋㅋㅋ 아니 이 비댓 북플에서 왜 나한텐 보이죠?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7-17 13:52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에 그런 뜻으로 썼다가 아니 근데 그게 그건가 다른거이지 않았나 하고 찾아보다 보니 디스포리아 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디아스포라도 겪는 건 맞지 않나? 그러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3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 님의 문장을 끝까지 잡고 궁리하며 분석하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막 읽다 보니 나중에 쓰기를 해보려고 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ㅋㅋㅋ
아직 이론이 많이 부족한 것도 있구요.
요즘 조금 아???!!!!!! 이런 느낌이랄까요?ㅋㅋㅋ
안그래도 괭 님의 퀴어 이론에 대해 정리하시는 글들이 늘 인상적이었습니다. 괭 님은 늘 소외된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구요. 전 아직 퀴어나 트랜스젠더...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나보다! 그런 생각을 했었네요. 퀴어 소설을 읽다가 아...아직 나는...ㅜㅜ 그리됐었거든요.ㅋㅋㅋ
그래도 혐오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은 하고 있는데....^^;;;
괭 님의 글을 읽으면서 ‘타자화‘ 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는 교훈을 얻고 갑니다.
글 언제나 좋아요^^

독서괭 2023-07-14 17:20   좋아요 1 | URL
아니, 책나무님, 존경이라니... 부끄럽네요. 문장을 끝까지 잡고 궁리 잘 못하는데.. 읽기 바빠서.. ㅜㅜ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이것저것 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성주의 책이랑 퀴어 책을 꾸준히 읽다보니 조금씩은 알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늘 소외된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란 말씀은 너무 저를 높이 평가하신 것이고요 ㅋㅋㅋ 그리고 저도 퀴어‘연애‘소설은 거의 안 읽어봐서, 딱히 자신은 없습니다.. 유명한 <수영장 도서관>(?)은 읽을 자신 없고요;; 그저 왜 이게 그렇게 차별받을 일이지?? 하는 의문이 항상 듭니다. 그건 책나무님도 마찬가지이실 듯요^^

건수하 2023-07-14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괭님이 주제 독서 키워드로 ‘퀴어‘를 선택하신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은 했는데 확인하게 되었네요. 책나무님 말씀대로 독서괭님은 통합적으로 정리를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부럽고 본받고 싶습니다 :)

<페미니즘의 도전> 읽었을 때 저도 성매매 부분이 가장 혼란스러웠는데요. 얼마전 <정희진의 공부>에서 페미니즘이 가장 필요한 여성은 성매매 여성이라고 하셨을 때 <페미니즘의 도전>의 이 부분이 생각나더라고요. 정희진 선생님도 아직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2년쯤 전에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은, 그때는 성매매도 하나의 노동, 직업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주저했지만 이제는 성매매를 결국 없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마지막 인용문이 여러 곳에 적절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기본적인 것을 사람들이 내재화 할 때까지 갈 길이 멉니다..

독서괭 2023-07-14 17:23   좋아요 1 | URL
통합적으로 정리를 잘하는 것 같다니.. 이 글에 이렇게 과분한 칭찬들을 받을 줄이야. 좀 부끄럽지만, 감사합니다!
수하님은 성매매도 하나의 노동- > 성매매근절 쪽으로 이동하셨군요. 성매매여성의 ‘당장의 생계‘를 위한 부분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 길은 엄청나게 멀고 험난하겠지만요...ㅠㅠ
마지막 인용문 좋지요? 다시 읽어도 좋아서 갖다 썼습니다 ㅋㅋ

공쟝쟝 2023-07-14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저는 괭님의 이 페이퍼가 짜릿한 수준입니다! 이거예요! 그거예요! 제경우 약 2009년? 정도로 기억합니다만, 페미니즘이 필요해서 책을 읽으려다 시중에 풀린 책이 <퀴어> 뿐이라서 먼저 읽고 주저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성폭력문제 때문에 책을 읽는데, 왜 내 섹슈얼리티를 알아야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때 그 책들이 미리 열렸다면 인생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텐데요. 어쨌든 그 시절에 제가 반지성주의 테크를 타기 시작했던 까닭은 어려움이라기 보다는 지식에 대한 방어기제(+현실보다 어려운 지식의 언어) 때문이구나하는 반성도 하는 요즘입니다.

저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에 머물러있어요. (공부하고 싶어짐) 모든 것을 해체해서 싫은게 아니라 왜 해체해야하는 지를 몰랐어요. 나는 그 사상들을 반성문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과 약간 다를 수 밖에 없는 긴장이 거기서 나오는 구나. 어쨌든 서구의 반성문이 서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고구조라는 것까지 이해했고요, 안과 밖 혹은 겉과 속을 옳고 그름 좋과 싫음을 나누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폭력(적임)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있고 (난 이런 인간이라) 내 속을 긁어파는 중 입니다. 푸코 독후감 쓰려다가 서재를 또 유랑하고 있네요. 반갑습니다. 괭님.

저는 우리가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개념을 해체해야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개념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없는 개념을 만든 다음에 다시 해체해야하는 과제는 개념을 습득할 수 있는 조건이 기반인 사람들 이라는 거. 어떻게 얻어낸 정체성인지를 알기에 (적어도 여성에게는) 그걸 내려놓을 때까지 사유해야한다는 사실은 좀 아프지만... 나는 그걸 하며 살고 있는 사람 정희진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여서 개념의 해체 관념의 해체는 위험하지 않아요. 관념과 개념을 명확하게 집어 넣은 다음에 그걸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고 하는 일종의 무의식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건 무의식이잖아요? ..... (여기서 멈춤.) 암튼 계속해보아요. 괭님.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지바 마사야의 <현대사상 입문>은 해체라는 개념 보다는 데리다의 탈구축이라는 말을 활용하더라고요. 저는 지적언어/관념적 언어 사용에 대한 물음표도 가지고 있습니다.ㅋㅋㅋㅋㅋ 누가 알려주진 않을 거 같고 나 혼자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만 생각합니다. 조급증을 버려야하는데 ... 흑... 또만나요. 또올게요.

독서괭 2023-07-14 17:28   좋아요 2 | URL
쟝쟝님의 댓글이 저에게 짜릿하네요!! ㅋㅋㅋ 집나간 쟝쟝이 돌아왔다~~ 자주 나타나 주세요.
페미니즘 책이 그 당시 그렇게 없었나요? <퀴어>를 잡으셨다니 방향이 많이 달랐네요 ㅎㅎ 당장 폭력 앞에 여성들이 희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섹슈얼리티 고찰이라니? 싶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근본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쟝쟝님이 푸코에 빠지신 거라는?? ˝서구의 반성문이 서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고구조˝라는 말씀이 오호! 맞는 것 같네요.
아랫 부분 말씀은 좀 어려운데요. ˝관념과 개념을 명확하게 집어넣은 다음에 그걸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고 하는 일종의 무의식이 위험하다˝는 건 뭔지 알겠는데, 근데 그건 무의식이잖아요? 에서 멈추지 마시고, 계속 가주시기 바랍니다 ㅎㅎ
해체도 어려운데 탈구축이요..... (쩜쩜쩜)
저도 언젠가 푸코 읽을 수 있겠죠..? 쟝쟝님이 앞서서 읽고 쉽게 좀 풀어주세요. 흐흐. 계속 서재 유랑도 하셔야 하고요. 그러다 언젠가 정착하실 날도 오겠죠? 그날을 기다리며~~^^

건수하 2023-07-14 17:31   좋아요 1 | URL
저는 쟝님의 이 댓글이 (너무 어려운데) 짜릿합니다... 근데 너무 어렵다....

서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한국 사회에
관념과 개념을 명확하게 집어넣은 다음 그걸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
이 겹치네요.

포스트모던에 손을 대야 할 때가 온 걸까요?

공쟝쟝 2023-07-16 09:46   좋아요 1 | URL
제가 읽다 만 책은 퀴어 책 이었다기 보다는 버틀러를 따라 뭔가 논의를 급진화해야한다는 맥락의 여성주의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무슨 말인지 아예 이해를 못했고여. 지금도 논의를 급진화하자는 말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서 글쓴 적 있어요. (급진적으로 사유를 재구성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로 이해) 할튼 그때는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말이 어렵고 불편하고 나는 공부가 싫었어요. 이미 답이 없다는 데 공부를 왜해요. 어려운 지식을 공부하기는 싫고 누가 해결해줬음 한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분명있었던 거 같고요. 근데 이건 태도라고 생각하는 데… 당장 급한 불 끄러 왔는데… 우리는 질문을 더 해야한다! 이런식으로 대답하면 누가 좋겠어요… 내가 그 책들을 읽기로한 건 페미니즘 리부트 + 제가 먹고 살만한 이후라는 걸 확실히 일단 해둬야할 거 같아요. 페미니즘이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페미니즘은 가장 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리고 진짜 페미니즘적 시각이 확고해지면 되려 사실 페미니즘 필요없어지고요. (제 경우 인생에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요구가 아예 사라짐 ㅋㅋㅋ 남자가 아예 필요가 없습니다. 걸리적 거림. 이견은 안받겠습니다. 같이 살기 위한 휴먼으로서 대국적으로 공존 모색해야하는 데 아직 대국 안됨)

번역의 문제인데 해체(어감에서 오는 어떤 불편함)를 탈구축으로 말하는게 좋겠다고 지바 마사야가 그러더라고요. 그건 데리다. 데리다를 여러분께 데리다주기 위해 ㅋㅋㅋ <현대사상 입문>을 추천드리고요. (게을러서 독후감은 못씀…) 어렵지 않아요. 겁내지마세요.

제가 포스트구조주의를 서구의 반성문이라고 거칠게 통칭하고 공부해보마 하는 것은 미백남(+인셀)때려잡기 위해 (하 반지성주의 언어사용ㅋㅋㅋㅋ) 그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인데… 때려서 잡아지는 건 아니지만… 이것과 이어지는 답은… 마지막 무의식과 덧붙여 부연하면

무의식은 언어가 없지만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지금부터는 약간의 라캉주의) 그것이 비의식이 아닌 무의식 즉 - 억압되어있는 것이라면… 징후에 대한 해답은 거기에 맞는 언어/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의식화) 그건 새로운 언어고요. 누군가에게는 약간의/막대한 고통을 선사하는 언어일겁니다. 새로운 언어는 언제나 위험하게 느껴지죠. 모두가 불편해질지도 몰라요. 직면하지 않기 위해 억압해둔 것들이니까. 어쨌든 언어로 이루어진 인간의 무의식을 포함한 복잡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혹은 근대적)지식생산자인 서백남의 이해를 초과하는 부분이 있고 지들 외의 인류들에게 저지른 일들도 있으니 이제 그거까지 포함해서 훑는게 근대성에 대한 비판담론이라고 치면요.(반성문) 페미니즘 혹은 탈식민주의는 (여기에 현대의 급진적인 물리학과 뇌과학도 섞어볼까요? ㅋㅋㅋ 근데 지금 뇌과학은 자계러들이 다 챙겨 먹었음… 그것까지 통제해서 성공등식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ㅠㅠ) 그걸 가장 빨리 전면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방식같다는 생각이 저는 들고요. (여성억압이야 말로 5천년치 무의식적 억압이 쌓여있다고 봅니다. 일단 글자와 역사 자체가 남자꺼ㅋㅋㅋ) 우리에게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 이쪽이니까요.

그런데 ….
여기까지 쓰고나니 이걸 쓴 내가 좀 이걸 누가 알아먹냐 ㅋㅋㅋㅋ

정리할게요.
새로운 언어를 향해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5권의 제목이네요)

페미니즘은 훈련예여. 내 위치에서 나를 보는 훈련. 내가 말하지 못하거나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말을 만들어보는 훈련. 말하고 써보는 훈련. 우리에겐 언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훈련을 하다보면 내가 누군가의 말을 어떻게 듣고 있고 묵살하는지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담론의 효과나 언어에 대해서도 계속 민감해지고(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을 읽는 건 먼저 그런걸 한 사람들의 사유를 읽는 훈련이요. 마치 외국어를 습득하듯. 좋은 독자가 되는 것. 어제보다 더 복잡하게 인간을 이해하는 것. 복잡한 인간을 선악 옳그 이분법으로 강화하는 언어나 생각을 중단시키고 재빠른 판단만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것. 그걸로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바로 그 목적이자 과정이 평범한 우리들이 해야할 공부인것 같아여. 물론 이 모든 건 나의 생존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조건 하예요.

우리 이미 충분한 부분도 있잖아요.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이기고 지는 싸움의 언어보다 많아질 때, 그때 이 성공지상주의 한국이 조금 나아질거라고 믿어요.

잘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힘내자^^

마지막 관념 무의식 어쩌고는 정리해서 꼭 쉽게 써볼게여. 남성특권 독후감으로 쓰려던 건데 아직도 못썼음 ㅠㅠ

독서괭 2023-07-19 17:46   좋아요 1 | URL
쟝쟝님 댓글을 여러번 읽었는데요, 저는 아직 쟝쟝님만큼 깊이 고민해보지를 못해서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없지만.. 일단 ˝데리다를 여러분께 데리다주기 위해˝ 에 빵터지고 ㅋㅋ 저는 탈구축보다는 해체가 나은 것 같은데(쪼끔은 익숙해서인지?) 흠. <현대사상입문> 안 어렵다고요..? 일단 믿고 담아두겠습니다.
무의식에 관한 단락은 다시 찬찬히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희진이 ˝새로운 대안적 인식론으로서 여성주의˝를 강조한 것과 통하는 것 같고,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31쪽)라는 부분과도요. 그래서 가부장제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구나 싶기도 하네요.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이기고 지는 싸움의 언어보다 많아질 때, 그때 이 성공지상주의 한국이 조금 나아질거라고 믿어요.˝라는 쟝쟝님 말은 정희진의 말만큼이나 감동적이예요.
따로 글 길게 써보신다는 말씀 꼭 지키시고요^^

 



'혼밥생활자의 책장' 팟캐스트를 한창 들으며 손희정님에게 마음의 하트를 뿅뿅 날리던 때(그런 것치곤 책은 안 샀....),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시고 책으로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권은 못 사고 2권만 샀네. 손희정님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함께 기획했다.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라는 부제가 마음에 든다. 

내용은 더 마음에 든다. 한명씩 게스트를 초청하여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인데, 

학자,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등 다양한 게스트들의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분투'를 잘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지막, 난민 문제를 다룬 김현미 교수편, "'여기'를 확장하는 정치를 꿈꾸며"가 가장 인상적. 



# 아직도 짐만 싸면 신이 나 - 장영은

 

 얼마 전 읽은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은 문학연구자. 프로필을 보니 저서가 꽤 많다. 나혜석 책을 감명깊게 읽었기에 더욱 마음에 닿았던 인터뷰. 이미 일부를 페이퍼에 옮겼었는데, 그중 일부만 다시 인용한다.


영은  (...) '사람은 누구한테나 자기만의 힘이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아무리 가진 것 없고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기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힘이 한 가지, 혹은 두 가지가 있다.' 이런 말도 해요. 저는 그 말이 어떤 글보다도 크게 다가왔어요. 이혼 후 아이들까지 다 뺏기고, 하는 일마다 망하고, 정말 생계가 막막해지죠. 그래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게 있는 힘이 뭘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끝까지 쓰고 그렸죠. 생의 마지막에 양로원에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많이 썼다고 해요.

      (...) 끝까지 뭐라도 하려고 노력했던 나혜석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사람들이 흔히 나혜석이 폐인이 되어 길 위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거죠.    - 42쪽 


지금 읽고 있는 <페미니즘의 도전>에도 나혜석 이야기가 나와서 반갑다. 나혜석과 비슷하게 무연고자로서 병원에서 생을 마친 이중섭에 대한 평가와 나혜석에 대한 평가가 방향을 달리한다는 것. 


장영은님이 쓴 다른 책들. 이외에도 공저로 쓰신 책들이 여럿 있다.

















# 우리가 몸속에 품은 수많은 동사들 - 김혼비


 김혼비!!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아닌가. 이 책을 처음 배송받았을 때도 제일 먼저 김혼비 작가 부분을 펼쳐 보았었다(읽지는 않...). 

 어떻게 축구를 하고 그 얘기를 글로 옮기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무엇인지 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 좋았다. 


 혼비  (...)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건, (...) 몸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된 여자들이 그라운드를 넓게 쓸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 52쪽


 혼비 (...) 여자다움이라는 미션이 여자아이들에게 내면화되는 순간, 움직임부터가 확 쪼그라드는 것 같아요. - 60쪽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이렌: 불의 섬>을 2회 보고는 더 못 보고 있지만(재미없어서는 결단코 아니다..ㅠㅠ), 출연한 인물들의 면면에 가슴이 뛰고 막 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소방팀 리더 김현아님의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고 너무 멋져서 쓰러질 뻔. 


-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제가 그럼 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할게요. 포기하지 마세요. 체제는 뒤집으라고 있는 거예요. 체격은 키울 수 없어도 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 변화시키고 개혁하세요. 저도 항상 먼저 뛰어들겠습니다." 


언니...!! 멋있으면 다 언니다. 



# 이 세계의 스테레오 타입은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 전고운

# 익숙하지 않은, 예상되지 않는 - 이경미

# 페미니스트 감각이 다큐멘터리가 된다면 - 김일란

# 마음의 능력을 믿는 영화 - 윤가은



영화감독 전고운. 영화감독 이경미. 영화감독 윤가은. 영화 별로 안 보는 나도 이 분들 이름은 들어봤다. 전고운님은 <소공녀>로 팟캐스트 출연하셨을 때였나.. 이경미님은 책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출연하셨던 기억이 난다. 윤가은님은 어디 나오셨더라.. 혼밥생활자였나? 아무튼 이분의 <우리들>은 귀에 익다. 

김일란 영화감독은 이름은 낯설지만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은 들어본 듯. 

지가 영화까지 보기엔 너무 시간이 없어요.. 언젠가 꼭 볼게요 ㅠㅠ 

윤가은 감독님 영화들은 어린이 내지 청소년을 다루고 있어서 아이들이 초고 쯤 되면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희정  (...) 예술은 내 고통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의 고통에 대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경미  내 고통으로부터 출발하더라도, 내 고통에 머물면서 그것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통으로부터 출발해서 내 고통이 누군가의 고통과 닿는 순간을 찾아서 그걸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131쪽 


일란  (...) 저에게 페미니즘은 정체성이기도 하고 삶의 지향이기도 하고, 또 계속 훈련해 온 인식론이거든요. 무엇보다 질문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두 개의 문>을 구상할 수 있었던 건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어요. 왜냐하면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을 넘어서 보려고 했기 때문에 국가 폭력의 문제가 눈에 들어온 거니까요. - 161쪽


전고운 감독님 책들
















이경미 감독님 책















윤가은 감독님 책

 















#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질문한다 - 배윤민정


친인척 사이 호칭 차별 개선을 위내 싸우는 과정을 담은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로 알려진 작가. 휴, 남편 및 시가 식구들과 호칭 문제로 다투다니, 생각만 해도 나는 피곤한데, 그냥 넘어가고 싶은데, 이걸 해내시다니 대단하다고 느꼈다. 


지혜  서열과 위계가 반영되어 있는 호칭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런 관습에 저항하는 까닭은 그 관습이 우리의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쓰셨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

민정  한 사람이 불만을 꾹 참고 나머지 사람들만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행동이 사랑을 지키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관계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갈등을 너무 두려워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저는 이런 것을 '갈등' 대신에 '역동'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어요.  - 222, 223쪽 


민정  저는 싸우자고 결심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방향타를 딱 잡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같은 사건을 놓고 더 많은 경험을 얻은 쪽이 이기는 거죠. 갈등이 있을 때 내가 상대를 바꿔야만 이긴 걸로 생각하지 말고, 이 갈등을 통해서 내가 또 누구와 연결되고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또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발견하고 얻는가에 집중한다면 우리가 싸움을 해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231쪽 



그런데 2021년 출간된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소개를 보니 이혼 과정을 담았다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때까지 이분이 원없이 노력했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평이 많이 갈리던데, 어떨지. 


배윤민정님의 책


 














# 내 '이야기'가 정치적 '담론'이 될 때 - 은하선


TV 안보고, 인터넷 기사도 별로 안 보는 나도 EBS 방송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회차에 대한 이슈는 들어 알고 있다. 은하선님이 바로 그 회차 출연진 중 한명이었다. 그 여파로 겪은 일들을 조곤조곤 풀어 놓는데, 참 우리 사회 갈길 멀었다. 


희정  최근에 한 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싸움, 투쟁, 운동이란 거는 내가 싫은 걸 끌어내리기 위해서 하면 오래 못 간다. 네가 사랑하는 걸 지키기 위해서 해야 오래간다."   - 265,266쪽 


은하선님의 책(이외에도 공저로 여러 권의 책들이 있음)















# '소녀'와 '할머니'의 이분법을 넘어 - 허윤


소제목 보면 느낌 오시겠는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챕터. 위안부 문제에 얽힌 논쟁들이 많고, 저변에 깔린 논리가 매우 반페미니즘적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페미니즘의 도전>에 나오는 위안부 누드 사건이 문제를 잘 보여주는 듯. 



허윤  (...) 사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강력한 역사의 행위자로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왔는데, 소녀상이 그분들을 '돌보고 지켜 줘야 하는 소녀'로 고착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가 특별하다고 하는 게, '위안부' 피해자 여성이 욕쟁이 할머니로 그려진 적이 이전에는 없었거든요.  - 285, 286쪽 



허윤님의 책들(그 외 여러 공저들과 옮긴 책들이 있음)

검색하니 최근에 발간된 <지금의 균형>이라는 책이 제일 위에 뜨는데 전혀 다른 분이다. 

오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 흥미로워 보이지 않나요?(누구한테 말하냐) 
















# '여기'를 확장하는 정치를 꿈꾸며 - 김현미


다른 주제와 비교할 때 난민 부분은 관심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이 챕터가 굉장히 좋았다. 난민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달까.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에게 정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때, 제주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원센터를 만들고 일자리를 찾아주고, 그렇게 애썼다는 내용은 감동적이다.


현미  '무임승차론'은 가짜 뉴스에 의해 확산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평등, 다양성, 인권 존중같은 내재적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난민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다 보면,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국민 중심주의도 극복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도 높아지겠지요. 저는 난민들을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제기해 주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옥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 중요한 행위자라니, 난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네요. 


현미  적대와 환대의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에요. 낯선 것과 대면하면 히스테리적 적대감을 품게 되죠. 하지만 서로 알아 가는 과정에서 적대를 멈추는 순간이 오게 되고, 그 순간 환대가 일어나는 거잖아요. 환대와 적대가 그렇게 극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 324, 325쪽 



김현미님의 책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출간되었을 때 담아두었던 것 같은데, 이분 책이었군! 















주제별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 그런 페이퍼.. 였다면 좋았겠지만, 능력부족으로 정리만 해둔다. 

멋진 페미니스트들의 존재를 아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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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7-03 18: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엉?? 잠깐….
이책이 무슨 책인지 적지 않고 책링크도 안 올렸다. 급하게 올리니 이런 사태가 ㅋㅋㅋ
이책은 <을들의 당나귀 귀2> 입니다 여러분…..

잠자냥 2023-07-04 00: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김혼비 작가 좋아한다면서 왜 펼치기만 했어요? ㅋㅋㅋㅋㅋ

내 글도 좋다면서 펼치기만 하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7-04 15:01   좋아요 1 | URL
아껴 두려고요? ㅋㅋㅋㅋ
잠자냥님 글은 정독하려고 아껴뒀다가 가끔 못 읽고 넘어가는 때가 있기는 합니다만, 대체로 다 읽습니다 ㅋㅋㅋㅋ

기억의집 2023-07-03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랫시누이가 결혼초기때 자기를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큰 엄마가 뭐라 하신다며 아가씨라고 부르라길래 들은 척도 안 했어요. 남편집이 아들만 셋이고 주변에 다 아들인지라 공주공주 떠 받들고 자라서 그런지.. 아가씨라고 불러달라는 요청에 거부감이 느껴더라고요. 지금은 아가씨 도련님이란 호칭을 아예 안 하니깐.. 이십오년전만해도 시댁 우선주의가 만연하니깐 저런 요구도 나오지 싶어요

독서괭 2023-07-04 15:03   좋아요 0 | URL
어우 기억님 그러셨군요. 아가씨 도련님 진짜 싫더라고요~ 저도 결혼하고 나서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냥 언니라고(남편 동생인데 저보다 나이가 많음) 불러달라고 해서 편하게 그렇게 불렀네요. 저는 시어머니가 ‘새아가‘라고 부르는 게 참.. 아가..아직도 내가 아가인가 ㅋㅋㅋ 다정하게 불러주시니 그냥 듣는데 이상하긴 합니다.

건수하 2023-07-03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제가 6월에 왜 그렇게 피곤했나 생각해보니 출장가서 하루 거의 밤새고 사이렌: 불의 섬을 몰아본 뒤 며칠을 골골거렸었네요. 집에 있었으면 이어 보지 못했을텐데 1박 출장이라 가능한 일이었어요. 소방팀 리더가 특히 멋지긴 한데 다른 분들도 모두 멋지더라는요… 나도 운동 열심히
해 볼까? 아주 잠깐 생각만 했었답니다 ㅎㅎ

그러고보니 4월인가 5월인가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읽어야지 했었는데 까먹었네요. 다시 기억해둬야…

멋진 페미니스트들의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독서괭 2023-07-04 15: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출장 가서 밤새고 사이렌 보다! 밤 한번 새면 그 대가가 며칠을 가죠 ㅠㅠ 너무 슬픕니다.
소방팀 리더가 특히 멋지군요. 저는 활약상을 못 봐서 잘 몰랐어요. 첨에 소개하는 장면에서 운동하고 그런 거 나올 때 다들 넘 멋지더라고요~
오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 수하님 독서목록에 있었군요! 읽으시고 소감 부탁드립니다 ㅋㅋ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건수하 2023-07-04 15:46   좋아요 1 | URL
네.. 언젠가...
일단 80년대생 학부모 읽고 .... ㅋㅋㅋㅋ

독서괭 2023-07-04 18: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놈의 80년대... 대충 훑고 치워버리세요!

자목련 2023-07-04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두 멋진 언니들이네요!
원도의 <아무튼, 언니>가 떠오르네요.
이경미 감독의 책은 저도 읽었어요. 장영은 저자의 책에 눈이 가네요^^

독서괭 2023-07-04 15:06   좋아요 0 | URL
<아무튼, 언니>라는 책도 있군요! 아무튼 시리즈는 별 게 다 있네요 ㅋㅋㅋ
이경미 감독 팟캐스트 출연했을 때 인상적이었어서 계속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도 장영은 저자의 책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궁금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7-04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렌 소방팀 리더가 현아씨였던가요?
저 사이렌 보구나서 그 현아씨의 리더십이 계속 아른아른 했었어요. 어떻게 저런 멋진 인성과 기지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각팀의 팀원들도 훌륭했지만 저는 팀의 리더들이 눈에 들어왔었거든요.
오...모두들 👍
여성들이 리더가 되어도 어쩌면 이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변화될 수 있을텐데...여성들의 자리 배분이 참 힘든 세상입니다.
암튼 사이렌을 보구서 뜨거워진 가슴을 주체못하여 밖으로 걸으러 나갔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ㅋㅋㅋ

저도 이경미 감독의 책은 읽었어요. 여성 감독들도 파이팅! 응원하게 되더군요.
예전에 메릴 스트립 대배우도 중년이 되었을 때 부러 여성 감독들 영화를 연기하겠다고 선언한 적 있었다고 해서 그 후로 영화 찾아볼 때 감독이나 대본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한 번 들여다 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되었네요^^
그렇게 느껴서인지, 대사가 좀 남다르게 들릴 때가 있더군요. 좀 뭐랄까? 배려가 깃든 대사랄까???? 그리고 여성이라서 느끼는 감정들도 종종 대사에 포함된 듯한 생각도 들었구요.

암튼 괭 님의 독서 흐름은 참말로 야무딱집니다^^

독서괭 2023-07-04 15:10   좋아요 1 | URL
오 책나무님도 사이렌에서 소방팀 리더를 눈여겨 보셨군요. 여성들이 운동하고 싸우고 단합하는 모습도 좋았지만, 여성리더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좋은 기획이었네요!
뜨거워진 가슴을 주체 못하여 ㅋㅋㅋㅋ 밖으로 걸어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막 뛰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 저도 그 이후 홈트를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근육 만들고 시퍼영
이경미 감독 책 많이들 읽으셨군요. 여성감독들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좋습니다. 메릴 스트립 얘기 몰랐어요. 멋지네요?^^ 배두나님도, 감독을 보고 출연을 결정하고, 상업 영화 몇 편 출연하면 좋은 독립영화에도 출연하고, 비밀의 숲에서도 로맨스 빼자고 주장하셨다는 얘길 들었어요. 멋있습니다.
독서계획은 야물딱진데 과연 실행은 어떨지?? ㅋㅋㅋ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3-07-04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멋진 분들이 정말 한가득이네요. 저는 김혼비님 글만 읽어봤고 다른 분들은 잘 모르는데 독서괭님이 정리해 주셔서 소중한 ‘이름만‘이라도 얻어 들었습니다. 아! 이경미님 저 책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급 뿌듯해집니다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7-05 21: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단발님, 단발님도 멋진 분인 거 아시져?😘 전 김혼비 책밖에 안 읽었는데 단발님이 위너십니다 ㅎㅎㅎㅎ

은오 2023-07-05 0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가 사이렌 보면서 결혼신청을 몇 번이나 했던지.........

잠자냥 2023-07-05 09:44   좋아요 2 | URL
군인팀에도 신청했어요?

은오 2023-07-05 10:03   좋아요 1 | URL
전 소방팀이랑 운동팀 위주로 신청을 ㅋㅋㅋㅋ 군인팀은 뭐 거기서 과몰입하면 좀 과격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하지만 소방팀이 너무 멋진 주인공이었음 ㅋㅋㅋㅋ

잠자냥 2023-07-05 10:11   좋아요 2 | URL
난 처음에 군인팀 그 리더 언니 넘나 멋져가지고... 군인팀 좋았는데.... 소화기 던지는 거에 돌아서버림.
그래도 군인팀 리더 언니는 멋있긴 함.

나중에 내 동생이 자긴 군인팀이 최애라고 해서 아니 넌 그 비윤리적인 팀을 좋아하냐? 하고 말다툼 ㅋㅋㅋㅋㅋ

은오 2023-07-05 11:01   좋아요 1 | URL
동생분께 전 윤리적인 잠자냥님이 최애라고 전해주시죠

독서괭 2023-07-05 21:12   좋아요 2 | URL
저 2회까지만 봐서 군인팀 멋있다 했는데 보니까 소화기에 말이 많더라고요. 윤리잠자냥은 돌아섰다.. ㅋㅋ
은오님 이분 진짜 결혼신청 남발 ㅋㅋㅋㅋ
 

2021년 4월경, 중구난방식으로만 책을 읽지 말고, 관심 가는 주제 하나를 정해서 꾸준히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주제독서. 첫 주제가 젠더퀴어였고 원래 계획은 두달 정도씩 주제를 바꾸는 거였다.

그러나 읽다보니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한달에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또 딱 이 주제 책만 읽는 건 아니니, 결국 기간은 계속 연장되었다. 

2022. 1.경 <퀴어이론 산책하기>를 완독한 후, 사둔 젠더퀴어 관련 책들 중 <퀴어, 젠더, 트랜스>, <조선의 퀴어> 두 권을 완독하지 못한 상태로 일단락 짓고 다른 길로 빠져버렸다.

사 읽은 관련 책들을 처분하기 위해 책탑을 미리 사진 찍어두면서, 빨리 나머지 두권을 마저 읽고 마무리 페이퍼를 써야지 했던 것도 어언 1년이 넘은 지금.. 드디어 마무리를 했다! 

우선 책탑 사진부터. 




후후후, 다른 분들 책탑 사진 보며 부러워하기만 하던 나날.. 

드디어 나도 책탑 사진을 올려본다. 물론 한번에 산 책들은 아니다. 

맨 위의 책부터 간략히 소개하고, 마지막에 몇 권을 추천드릴 예정.


1. <내 이름은 샤이앤>, <내 이름은 말랑> (에세이/만화)

 아주 가볍고 친근하게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려주는, 트랜스젠더가 직접 만든 만화다. 

 예전에 남긴 백자평을 보니 샤이앤을 먼저 읽고 말랑을 읽는 편이 낫다고 써 놨다. 

 트랜스젠더가 뭔지 궁금하고, 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입문용으로 좋다. 















2. < 같이 산 지 십 년> (에세이)


 타이완의 동성커플 이야기다. 이들은 결혼한지 10년만에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인 저자가 써내려간 사랑의 기록이며, 타이완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된 결말에 기뻐하게 된다. 별로 재미있지는 않다..^^;















3. <올랜도> (소설)


 ㄷㄹㅂ님에게 완독의 기쁨을 좀체 안겨주지 않고 있는 문제의 그 작품..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작품 중에서도 재미없는 편에 속하는 듯하다^^;; 몇백년에 걸쳐 성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아주 상징적인 작품인데, 모든 걸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문장과 모험적인 시도에 멍하니 집중하면 읽어나갈 수 있다..;;; 















4. <몽마르트르 유서> (소설)


 힘들게 읽었다. 화자가 같은 여성인 연인과 헤어진 후 그녀를 향해 쓰는 편지 형식인데, 군데군데 아름다운 문장들이 눈에 띄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아련함이나 감동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감성이 메말라서일지도... 















5. <딸에 대하여> (소설)


 이 소설은 레즈비언인 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엄마의 시선에서 쓰였다.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왜 저를 낳아 준 나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들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84쪽

 이런 시선은 다큐영화 <너에게 가는 길>과 일맥상통한다. 두 작품 모두 좋았다.  

 이 소설은 내게 첫 이달의 리뷰 당선의 기쁨을 안겨주기도..ㅋㅋ 















6. <고독의 우물>1,2 (소설)


 FTM(Female To Male)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이다. 작가 래드클리프 홀 그 자신이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1928년 출간작으로, 위의 <올랜도>와 같은 해에 나왔다. 당시 여성인 스티븐이 '감히' 남성 흉내를 내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응징당하는지 잘 보여주는,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7. <젠더 모자이크> (사회학/여성학)


 이건 나의 주제독서와는 결이 좀 다른 책이었고, 글이 별로였던 기억이 난다.















8. <LGBT+ 첫걸음> (사회과학)


 음? 내가 살 땐 이 표지가 아니었는데.. 

 젠더스펙트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 처음엔 흥미롭게 읽다가 뒤에 가서는 너무 다양한 젠더가 등장하는 바람에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긴 했는데.. 이렇게 다양할 수 있어?? 하면서, 내 안의 젠더이분법적 사고를 흔들어 볼 수 있는 책이다.
















9. <조선의 퀴어> (역사/사회과학)


 주제독서의 대미를 장식한 책! 

 근대 조선의 성규범, 젠더규범을 꼼꼼하게 분석한 책으로, 아주 흥미롭다. 
















10. <퀴어, 젠더, 트랜스> (사회과학)


 생각보다 가볍고 쉬운 책이었는데, 의외로 잘 읽히지는 않았다. 16년전 출간된 책이어서 버틀러의 이론 해석 등에 오류가 있음을 해제에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론을 간단간단히 쉽게 설명해주는 건 좋지만, 이론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에서 소개할 <퀴어이론 산책하기> 쪽을 추천한다. 이 책은 퀴어 운동에 앞장서온 운동가가 쓴 책이니 그 점에 주목해 본다면, 젠더라는 문제가 다만 규범에서 벗어난 소수의 트랜스젠더만의 문제는 아닌데도 페미니즘 운동도, 동성애 운동도 그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 현실에 문제제기 하는 내용을 곱씹어 볼 만하다.

















11.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사회과학)


 한국의 성소수자 문제를 총망라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젠더퀴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들이 벌이는 운동에 대해, 뭐가 문제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한꼭지씩 썼기에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좋았다.
















12. <퀴어 이론 산책하기> (사회과학)


 퀴어 이론을 총망라한 개론서!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이제 하산해야겠다.." 싶어 주제독서를 접었었다..ㅋㅋ 

 산책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두껍고 본격적이긴 한데, 저자가 글을 잘 썼다. 한국 학자가 썼기 때문에 글이 잘 읽혀서 좋고, 예시가 착착 이해되어 좋고, 악평이 자자한 버틀러 저작들의 번역오류를 꼼꼼하게 지적해주어 좋다(그렇다고 내가 버틀러를 읽겠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 이 저자가 번역해준다면 읽어볼 생각이 있다..). 

















휴, 많이 읽은 것 같은데 12권이고 막상 추천할 만한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론 입문용으로는 <내 이름은 말랑>+ 샤이앤 시리즈, 한권만 읽는다면 말랑이 더 나았던 듯. 그리고 <LGBT+ 첫걸음>을 추천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론을 알고 싶다면 <퀴어 이론 산책하기>! 벽돌책이지만 감히 추천해본다.

이론보다는 사회운동, 정책 분야를 알고 싶다면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를 추천. 

소설 중에는 <고독의 우물>과 <딸에 대하여>를 추천한다. 고독의 우물은 분량이 많아 조금 부담스럽지만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므로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그리고 두루두루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추천할 수 있을 책은 <조선의 퀴어>. 한번 읽어보시랑게요! 

*진한 표시는 특히 추천하는 책들*


책탑 사진을 그냥 버리기 싫어서 늦게나마 쓴 주제독서 정리 페이퍼. 여기서 끝~ 다음 주제로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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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6-0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니 내이름은말랑 시리즈는 “이론” 입문서로 보긴 어려울 듯.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알고 이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다.

페넬로페 2023-06-08 0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제독서 넘 유익하고
그런 독서를 하시는 독서괭님, 엄청 멋져요.
저는 ‘올랜도‘와 ‘딸에 대하여‘ 읽었는데 공감되네요^^
다음 주제, 궁금합니다^^

독서괭 2023-06-08 14:05   좋아요 1 | URL
엄청 멋지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제는 고민중입니다. 원래 주제독서를 다시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응원해주시는 거 보니 해야겠다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3-06-07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책 몇 권 있어 반가운 페이퍼! 말랑, 딸, 첫걸음, 조선, 무지개~!
진짜 <LGBT 첫걸음> 번쩍거리는 은색인데, 표지 바뀌었네요~ 이렇게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줄은^^
샤이엔도 읽어봐야겠고요. 퀴어 이론 산책하기도 언젠간…


독서괭 2023-06-08 14:07   좋아요 0 | URL
햇살님 많이 겹치네요! 말랑,첫걸음,무지개도 읽으신 걸 보면 햇살님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저도 LGBT+ 번쩍이는 은색 표지 ㅋㅋㅋ
퀴어이론 산책하기는 모범우수생 햇살님이라면 충분히 금새 읽으실 겁니다^^

얄라알라 2023-06-08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1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리신 탑을
한층 한층 분석해주시기까지 하다니^^ 성은이 망극...ㅋ감사드리옵니다.

3번 ㄷㄹ ㅂ님을 언급하신 <올랜도> 파트에서 독서괭님의 문체를 다시금 확인하며
끌리기로는 9번이 가장 끌리네요^^

앞으로도 독서괭님의 주제독서, 응원하고 다음 페이퍼도 기다리겠습니다!

독서괭 2023-06-08 14:08   좋아요 1 | URL
얄라님 과찬에 저야말로 성은이 망극합니다 ㅋㅋㅋ
<올랜도> 읽고 나서 울프 다음 책 읽겠다고 <등대로> 사놓고 계속 못 읽고 있네요;;
9번 <조선의 퀴어> 한번 읽어보세요~ 재미있으실 겁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다음 주제 고민해야겠어요^^

그레이스 2023-06-08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저 감탄! 입니다 👍
어떤 분이 드릴식 독서라고 하던데, 독서괭님이야말로!

독서괭 2023-06-08 14:09   좋아요 1 | URL
드릴식 독서라면, 한군데 파고 들어가는 독서인가요? 재밌는 용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얄라알라 2023-06-13 12:57   좋아요 2 | URL
드릴!! ^^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추진력이 느껴지는 표현인데요!

자목련 2023-06-08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올랜도>와 <딸에 대하여>도 있네요. 김혜진의 소설은 특히 좋았는데 더 반갑고요.
<고독의 우물>은 책장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찾아봐야겠습니다.
주제가 있는 독서, 멋지네요.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독서괭 2023-06-08 14:10   좋아요 0 | URL
역시 자목련님, <딸에 대하여> 읽으셨군요. 읽고 여러 생각이 드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고독의 우물> 가지고 계시다면 시작해보시면 좋겠네요!
기대해주신다니 새 주제로 또 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책먼지 2023-06-08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 큐레이션, 맞춤형 추천까지 그저 완벽ㅠㅠ 이 페이퍼 두고두고 참고하기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괭님 다음 주제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독서괭 2023-06-08 14:10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과찬과 기대 감사합니다 ㅎㅎ
다음 주제 뭘로 할지 고민하는 것도 재밌네요~~^^

새파랑 2023-06-09 0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퀴어분야의 대가 독서괭님~!!
예전에도 그랬지만 <퀴어 이론 산책하기> 표지는 왜 저런건지(개?) 의아합니다 ㅋ

저 <고독의 우물> 사놓고 못읽었네요 ㅜㅜ

독서괭 2023-06-13 14:1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새파랑님, <퀴어 이론 산책하기>의 저자가 개 산책 시키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유머러스하게 넣었는데요, 제목이 ‘산책하기‘이다 보니 표지도 개로 하지 않았나.. 어려운 이론을 친근하게 느껴지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독의 우물>이 좀 길지만, 한번 시작해보시죠^^

은오 2023-06-13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건 그냥 책탑이랑 비교할 게 아닌데요? 크.... 별로 재미있지는 않다, 힘들게 읽었다, 별로였다 나오는데 결국 다 완독하신 거 짱이고요. ㅋㅋㅋㅋㅋ 주제독서 정말 하고 나면 얻는 게 굉장히 많을 것 같습니다. 근데 힘들 것 같아요 ㅜㅜ 괭님의 고생과 멋짐에 박수를....

독서괭 2023-06-13 14:18   좋아요 0 | URL
네 완독하는 거 힘들었는데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오님 ㅎㅎㅎ 새롭게 관심이 생긴 분야를 한권 한권 탐독해가는 거,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사둔 책 읽기 바빠서.. 사둔 책을 분야별로 모아서 읽어나갈까도 생각중입니다ㅠ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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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대한 양의 책에 관해 띄엄띄엄 글을 써놓기도 했고, 내용을 총망라한 리뷰를 쓸 엄두는 나지 않아서 택한 방법.

총 16장의 각 장마다 내가 꼽은 한 문장..아니 단락을 옮겨 적어 보았다. 내게 인상적이어서 밑줄 그어 두었던 내용을 쭉 훑어보고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작업은 시간이 꽤 걸렸지만 재미있었다. 읽으신 분들은 보면 딱 아, 이런 내용 있었지! 하며 즐거워하실 수도 있을 듯^^



1장 여왕의 거울


여성은 펜이 나타내는 자율성(주체성)을 부정당하기 때문에 문화로부터 (문화의 상징은 펜이니) 배제되는 한편 스스로 신비한 타자와 비타협적인 타자라는 양극단을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이 타자를 숭배와 공포, 사랑과 혐오로 마주한다. 여성은 '유령, 악마, 천사, 요정, 마녀, 정령'으로서 남성 예술가와 미지의 것 사이를 중재하며, 동시에 남성 예술가에게 순수함을 가르치고 그의 타락을 지적한다.  - 99쪽 


2장 감염된 문장


심지어 표면상으로는 가장 보수적이고 얌전하게 보이는 여성 작가들조차 대단히 독립적인 인물들을 강박적으로 창조했으며, 이런 인물들은 작가나 작가의 순종적인 여자 주인공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이는 모든 가부장적 구조를 파괴하고자 한다.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 189쪽 


3장 동굴의 비유


배반당한 에우리디케는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주디스 셰익스피어'처럼) '무덤 동굴'이라는 감옥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시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여성 예술가는 이시스와 에우리디케를 복원하면서 문학 유산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즉 가라앉은 대륙을 재정의하고 되찾는다.   - 223쪽 


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 오스틴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젠더와 장르


남성 상속자가 여자 형제들에게서 집을 빼앗는 『이성과 감성』을 비롯해, 남성에게만 세습되는 재산이 베넷의 딸들을 정략결혼으로 몰아가는 『오만과 편견』에 이르기까지, 제인 패어팩스가 부자 남편과 약혼하거나 가정교사가 되어야 하는 『에마』를 비롯해, 과부가 된 스미스 부인이 가난과 헛되이 싸워야 하는 『설득』에 이르기까지, 헨리 틸니가 열렬하게 공표하듯이, 오스틴은 독자들에게 영국의 관습과 법이 아내 살해는 막아주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나 아내가 아닌 여자에게는 최소한의 안전 이상은 제공하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 280쪽 


5장 제인 오스틴의 겉 이야기(와 비밀 요원들)


오스틴의 자아분열(상상력의 매혹과 그것이 비여성적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불안)은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경험하는 사춘기 이후에는 대상이라는 지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모든 여성에게 고유한 딜레마에 대한 의식을 드러낸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오스틴의 모든 여자 주인공들이 묻는 질문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단지 타자로서만 성취를 이룰 수 있다면, 어떻게 나의 에고를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 320쪽 


6장 밀턴의 악령 - 가부장적 시와 여성 독자들


'만성 우월주의적'이고 교부적이며 신 이원론적인 교회의 품 안에서 성장한 예민한 여성 독자에게 『실낙원』같은 강력한 작품의 내용은, 숨어 있든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 있든, 상처를 줄 정도로 생생하다. 그런 여성들에게 신, 예수, 아담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를 악마적으로 흉내내는 사탄, 이브, '죄'의 불경스러운 삼위일체는 18세기와 19세기에도 여성적 원칙을 역사적으로 박탈하고 격하시켰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예증한다.   - 378쪽 


7장 공포의 쌍둥이 - 메리 셸리의 괴물 이브


괴물의 서사는 '영혼'이나 역사 없이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명상이며, '움직이고 말하는 추악한 덩어리', 물체, 타자, 제2의 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가에 대한 탐색이다.   - 437쪽 


8장 반대로 보기 - 에밀리 브론테의 지옥의 바이블


여자의 타락과 그녀를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자아인 사탄에 대해 밀턴과 서구 문화의 주요 이야기를 반항적으로 뒤집어서 다시 말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 브론테는 이 추락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추락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 추락하는 것이며, (종교적인 의미에서) 은총으로부터 추락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의미에서) 은총으로 추락한 것이다. 더욱이 추락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순수에서 경험으로 고통스러운 이행을 알려주는 것은 신의 상실이라기보다 사탄의 상실이다.  - 468쪽


9장 비밀스러운 마음의 상처 - 『교수』의 학생


이 작품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여자가 그렇게 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그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하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때 정중하게 말하기', 소문 퍼뜨리기, 뒤에서 험담하기, 새롱거리기, 추파 던지기. 이 모든 것은 결국 노예의 특성, 즉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복종하지 않는 방식, 남자의 권력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또한 도덕적으로 '괴물적인' 특성이며, 따라서 다시 한번 천사 같은 여자의 외관 뒤에 괴물-여자가 나타난다.  - 575쪽 


10장 자아와 영혼의 대화 - 평범한 제인의 여정


수많은 타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제인의 이야기는 감금과 탈출 이야기이자 확실한 여성 교양소설이다. 제인이 성숙한 자유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어린 시절의 감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칠 때 부딪치는 여러 문제 - 억압(게이츠헤드에서), 굶주림(로우드에서), 광기(손필드에서), 추위(마시엔드에서)- 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모든 여성이 직면하고 극복해야 하는 곤경의 징후다. 제인이 맞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로체스터가 아니라 그의 미친 아내 버사로, 제인과 버사의 대면이 이 책의 핵심 대결이고 만남이다.  - 601, 602쪽 


11장 굶주림의 기원, 『셜리』를 따라


브론테는 가장 고결한 가부장조차 기만적이고 모순되는 여성의 이미지, 즉 메리 케이브의 죽음을 초래하기에 충분한 치명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다고 암시한다. 따라서 메리 케이브는 하나의 상징, 즉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의 운명은 자멸적인 자기부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경고를 제시한다.  - 662쪽 


12장 루시 스노의 파묻힌 삶


비록 어떤 반가운 축하도 없고 풍성한 보상도 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브론테는 『빌레트』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살아갈 의지를 빼앗긴 모든 여성을 위한 정직한 비가를 제공했다.   - 703쪽 


13장 상실감이 빚은 예민함 - 조지 엘리엇의 숨겨진 비전


엘리엇에게 의식의 타락 상태와 여성의 내밀한 상처는 자기혐오로 인한 무력감과 관련된 주제일 뿐 아니라 속박이기도 하다. 이런 자기혐오는 여성이 자신의 탁월성 때문에 (말하지는 않을지라도) 불가피하게 얻는 인식과 모순되는 가부장적인 가치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 803쪽 


14장 파괴의 전사 조지 엘리엇


엘리엇은 이 여성들을 통해 마치 남성 사회의 불의가 어떻게 부패한 사회질서로 인해 권리를 박탈당한 채 태어난 여자에게 특별한 힘과 미덕, 특히 감정의 능력을 부여하는지 탐색하는 것 같다. 샬럿 브론테가 저항했던 모든 부정적 전형이 조지 엘리엇에 의해 미덕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855쪽 


15장 체념의 미학


의미심장하게도 『오로라 리』는 『제인 에어』가 멈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제인은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자는 존의 청을 거절하고 자기만족적인 세속의 낙원으로 들어간다. 브론테는 이 낙원을 상세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오로라는 그녀 앞에 자신의 전 생애를 펼쳐놓는다. 오로라의 직업(시)은 그녀가 예언하듯 '나의 청춘의 악마'라고 말했던, 콧대 높은 '그것'과 관련된 과장된 자기 확대의 위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제인의 자기주장이 정체성을 찾는 기나긴 투쟁의 산물이었다면, 오로라의 자기주장은 오래 지속될 정체성의 포기 또는 억압이 시작되는 선결 조건이다. 제인은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고, 오로라는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 976쪽 


16장 흰옷을 입은 여자 - 에밀리 디킨슨의 진주 실


이 모든 시는 여성의 예술이 거의 필연적으로 비밀의 예술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 같다. 그 예술은 '정체 모를 아버지'의 집 다락방에서 조용히 행해지는 정신의 피루엣이고, 깊은 바다에서 눈에 띄지 않게 생성되는 보석, 특히 거미가 눈에 띄지 않게 짜놓은 진주 실이다.   - 1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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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2-06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워낙 방대한 책이라 각 장의 인상깊은 구절을 하나씩 모아놓고 보니 또 근사한 리뷰가 되네요^^*
참고 도서를 워낙 못 읽고 본서를 읽어서 이해하기 쉽진 않았지만~ㅎㅎ 그래도 저는 빌레트를 건져서 나름 보람찬 읽기였습니다. 괭님도 읽으면서 힘은 들어도 즐거운 시간이 되셨을 것 같아요!

독서괭 2023-02-07 12:11   좋아요 1 | URL
화가님, 저도 참고도서를 별로 못 읽어서 아쉬웠어요. 빌레트!! 저도 빌레트 읽은 건 참 좋았습니다. 폭풍의 언덕 재독도요^^ 제인에어, 오만과 편견 재독 마치고 나면 조지 엘리엇도 한권 읽어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미미 2023-02-06 13: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방법 괜찮네요! 책의 영향력, 어떤 위압감 때문에 어떻게 독후감을 써야할지 막막할 때가 종종 있어요. 좋았는데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숙제 안하고 넘긴 것처럼 찜찜한데 역시 영민하신 괭님~^^ 주옥같은 발췌문들입니다~♡

독서괭 2023-02-07 12: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미님. 위압감!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갈팡질팡.. 앞으로 벽돌책은 이렇게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ㅎㅎ
주옥같다니, 칭찬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3-02-06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신한 리뷰... 좋은데요 ^^!

독서괭 2023-02-07 12:13   좋아요 0 | URL
품만 들고 내 글은 없어서 리뷰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요 ㅎㅎㅎ 감사해요 수하님^^

페넬로페 2023-02-06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방법 좋으네요~~
독서괭님 인용해주신 문장,
잘 읽어 보겠습니다^^

독서괭 2023-02-07 12:13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줄 친 부분이 많아서 뽑기가 힘들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3-02-06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고하면서 읽어봐야겠어요

독서괭 2023-02-07 12:13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참고가 되신다면 좋겠네요.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3-02-06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새롭고 신박한 방법 발견입니다. ㅎㅎ

독서괭 2023-02-07 12:1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스스로 정리하기 엄두가 안 날 때? 한번 써보세요 ㅋㅋ 감사합니당^^

단발머리 2023-02-06 16: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이 꼽아주신 잠언집이에요 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7 12:14   좋아요 2 | URL
오 잠언집이라니, 멋진 말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님^^

책읽는나무 2023-02-07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멋져요^^

독서괭 2023-02-07 12:14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 감사해용>ㅁ<

자목련 2023-02-09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벽돌책이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정리 참 좋습니다. ‘다미여‘는 아니더라도 언급해주신 작가의 소설을 골라 읽어도 좋을 것같아요^^

독서괭 2023-02-09 15:16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정말, 저도 여러 서친님들과 함께 읽지 않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습니다^^;; 나온 작가들 책을 많이 읽고 나서 읽으면 지금의 200% 이해가능 할 것 같아, 나중에 다시 도전해보려고요!

페크pek0501 2023-02-09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 쪽이 넘는 책의 리뷰를 쓰시다니 큰 일을 하셨습니다.
저도 방대한 분량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님의 리뷰 방식으로 써 보고 싶군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사실 책을 사기 전에 리뷰를 볼 때 어떤 글들이 있는지가 가장 궁금하거든요.
이 리뷰는 프린트를 해서 꼼꼼히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천천히 음미해 보겠습니다..^^

독서괭 2023-02-09 15:18   좋아요 2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천쪽이 넘는 책을 완독한 게 얼마만인지;;; 뭔가 남기고는 싶은데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다가 이런 방법을 시도해봤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하시니 기쁘네요^^ 완전히 흡수를 못했지만 좋았던 책들의 경우, 이렇게라도 남겨두면 좋을 듯 합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기에 정신이 팔려, 오랫동안 미뤄두고 있었던 <워드슬럿>을 다시 폈다.

느낌상으로는 많이 읽은 것 같았는데, 이제 겨우 3장이라니? 

3장, "흠......네 말이 맞아." 남성들은 결코 하지 않지만 여성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 

이 장은 통째로 옮기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통쾌했다. 

장의 제목에 나타나듯, 이 장에서는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의 대화의 차이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통해, 여성들의 말하는 방식을 폄하하는 남성사회의 편견을 논박한다.

 


영어 발화 방식 가운데 가장 흔히 오해받는 것은 여성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 즉 남성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말하는 방식이다. '걸 토크'에 대한 생각은 문화 전반에 걸친 가정, 즉 여성들이 더 감정적이고,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이 적으며, 립글로스나 카다시안 일가같이 소위 경박한 주제에 자연적으로 끌리기 마련이라는 가정에 의한 것이다. '걸 토크'는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뇌가 비어 있다고 가정한다. 모든 여성이 같은 방식으로 말한다는 전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재판 중간에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도 '걸 토크'로 칠 수 있는 걸까?   - 104쪽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십'이라는 말로 폄하된다. 그러나 가십은 남성들 사이에도 빈번히 일어나며, 이는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요소라는 것. 그 예시로, 도널드 트럼프와 연예 프로그램 <액세스 할리우드>의 전 호스트 빌리 부시가 2005년 연예인인 낸시 오델의 등 뒤에서 벌였던 대화의 녹음본을 제시한다 ㅋㅋㅋ 이 대화 예시가 실려 있지만 너무 내용이 더러우므로 옮기지 않는다. 이 책 (108, 109쪽)을 보시거나, 인터넷을 찾아보시면 되겠다.  



'라커룸 농담'은 그저 가십의 조금 더 남자처럼 들리는 버전이다. 데버라 캐머런이 말했던 것처럼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친목을 다지는 행위인 것이다. (110쪽) 여성혐오적인 언사의 목적은 일종의 유대를 만드는 의례인 것이다.(111쪽) 이때 큰 문제는 그들의 언설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여성들을 향한 성적 공격이 교환됨으로써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강화된다는 게 문제다.(130쪽) 


위 대화에서 트럼프는 자신을 과시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여자를 꼬시려다 실패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혐오가 섞인 허위.과장의 언어를 구사하는데, 이는 타자를 배제하고 소외시킴으로써 '우리'끼리의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은밀하고,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말을 나누는 관계로서 친목을 다지는 것. 그러나 여성들 사이의 유대는 이런 식으로는 형성될 수 없다고 한다. 여성들은 허구를 바탕으로 유대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여성들이 자주 쓰는 언어의 기술들에 대한 오해를 타파한다.

일단 여성과 남성의 대화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남자 대 남자가 대화하는 구술 기록을 몇백 개 분석하고 나면, 누가 지배적인 화자인지 알게 된다. 상황에 종속된 이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는 수직적 구조다. 그러나 여성들은 보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모두가 평등한 플레이어인 셈이다. 남성들이 대화를 개인의 성취를 겨루는 경기장으로 활용하면서 위계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 반해서, 여성들은 다른 화자의 말을 지지하고 연대를 구축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서로가 한 말을 점진적으로 쌓아 올린다.   - 106쪽 

여성들은 다른 대화 참여자를 대화의 장 안에 올려 주고 흐름이 계속되도록 한다.(119쪽) 여성들의 대화는 차례를 번갈아 맡는 구조, 코츠가 음악에서 잼 세션(jam session, 즉흥 연주)에 비견하는 방식의 구조를 띤다.(119쪽) 

이런 잼 세션 구조는 남성들 사이에서는 거의 보기 어렵다. 사실상 코츠는 남성의 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위계 구조의 유지를 돕는 특징으로 번갈아 하는 독백을 꼽았다. (...)이는 '전문가 흉내 내기' 혹은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의 지식을 전시하는 방식이다. (...) 이런 이유로 남성들은 여성의 잼 세션 방식의 대화 겹치기를 무례한 침입으로 해석한다.  (119,120쪽) 


여성의 대화를 재즈 연주에 비유한 것이 아주 흥미롭다. 이런 방식의 여성 사이 대화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이걸 보면 딱 느낌 오실 것. 




남자들의 대화에서 지배구조를 찾을 수 있다는 말, 남자들은 독백을 번갈아 하고 침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은 위와 같은 여자들의 끼어들고 겹치기 방식의 대화를 무례한 침입으로 여긴다는 것 너무 공감간다. 한동안 나는 남편과의 대화에 엄청난 불만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전문가 방식의 독백' 말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재미 없었다. 이게 대화인가, 강의인가? 싶었던 것이다. 같은 주제- 예를 들어 정치나 경제 - 에 관해 이야기 해도 여성동료들과 이야기할 때랑은 느낌이 너무 달랐다. 근데 뭔가 지적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입을 다물었는데, 그러다보니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그렇게 파국으로..응? 아니고, 다행히 ㅋㅋ 한번 펑 터진 후로 훨씬 낫다. 남편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둘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자들의 대화방식이란 걸 한번에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어린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훨씬 친밀하고 감정적인 유대가 오고가고 언어 역시 여자아이들 사이와 유사하다는 것. 결국 가부장제 사회가 변화하면 남자들의 언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여성들이 많이 쓰는 '헤징hedging'이라고 불리는 기술: '있지just, 그치you know, 음well, 그래서so, 내 말은I mean, 그런 거 같아I feel like' 등의 사용이 있다.(112쪽)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이런 말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자신감이 결여된 인상을 준다고 여기지만, 사실 여성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이런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매끄럽고, 개방적이며, 듣는 사람의 관점을 초대하고, 다른 관점이 끼어들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114쪽) 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특별히 그런 의식 없이 그냥 습관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여자들이 통상 대화에서 위 언어들을 많이 쓰는 것에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제 사흘째 목표치(하루 25~30쪽)를 달성하고 있는 <제2의 성>이다. 처음에는 25쪽 정도야 뭐 쉽지! 했는데 빽빽한 편집으로 인해 쉽지 않다. 일반책 50쪽 읽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여자도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서는 성性을 무시한 채 자신이 누구라고 주장할 수 없다. (...)

만일 암컷 기능으로 여자를 정의하는 게 불충분하고 우리가 '영원한 여성'으로 여자를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렇지만 우리가 지상에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잠정적으로라도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는 질문해야 할 것들이 있다. 여자란 무엇인가?  - 27쪽 

우리가 채택한 관점은 실존주의 윤리의 관점이다. 즉, 모든 주체는 계획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체적으로 초월로 확립한다. 그는 다른 자유들을 향한 영속적인 초월에 의해서만 자신의 자유를 완성시킨다. (...) 초월이 내재 상태로 떨어질 때마다 존재는 '즉자卽自' 상태로 퇴보하고, 자유는 사실성(사물의 상태)으로 타락한다. 만일 이 전락이 주체에 의해 동의된 것이라면 도덕적 과실이고, 주체에게 강요된 것이라면 박탈감과 억압의 형태를 띤다. (...) 여자도 모든 인간처럼 자율적인 자유이면서 남자들이 타자로서 살도록 강요하는 세계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 여자의 비극은 자기 자신을 언제나 본질적인 것으로 확립하려는 모든 주체의 기본적인 주장과, 여자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구성하려는 상황의 요구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에 있다. 이러한 여성 조건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 42쪽 



이렇게 유려하게 제기되는 질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책에, 어떻게 매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에. 보부아르 천재 맞나보다. 이제 고작 90쪽 정도 읽었지만, 질문을 던지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기존의 이론들- 생물(리)학, 정신분석학, 유물사관론 - 이 제시한 여성의 종속에 관한 이론들은 차근차근 까는 논리전개는, 눈부신 지성을 보여준다. 

밑줄 그어둔 부분이 너무 많지만, 특히 <워드 슬럿>과 관련하여 <제2의 성>에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은 아래다. 


두 경우에 주인 계급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사실 상태에서 논거를 끌어낸다. 버나드 쇼의 재담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요지는 "미국 백인은 흑인을 구두닦이의 지위에 보내놓고 흑인을 구두 닦는 데만 쓸모 있다고 결론짓는다"는 것이다. (...)

'하다'라는 것은 '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드러나는 것처럼 되었다라는 의미다. 그렇다, 오늘날 여성들은 총체적으로 남자들에 비해 열등하다. 즉, 여자들의 상황이 여자들에게 가장 적은 가능성만을 열어 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영속적이어야만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37쪽


<워드 슬럿>에는 여성혐오를 담고있는 단어가 과거에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였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어떻게 언어가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여 변화하는가를 많은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버나드 쇼의 말처럼, 현상을 가지고 이유를 도출하는 방식의 논증은 비합리적이지만, 실상 널리 통용된다. 여성들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걸 보면 여성들은 업무상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하거나, 출산 후 여성들의 업무능력이 저하되는 걸 보면 여성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관한 욕구는 남성보다 약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거나. 은연중에 많은 편견이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흑인은 게으르다는 명제, 여성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명제 - 실제로 흑인이 백인에 비해, 여성은 남성에 비해 그렇다고 관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현상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과정(역사)에 관한 고찰이 없이 흑인과 여성이 '본래' 그러하다고 존재론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은 명백히 비약이다.  


<제2의 성>을 읽으면서 <가부장제의 창조>가 많이 생각났다. <제2의 성>의 엄청난 영향력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가부장제의 창조>도 나중에 재독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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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2-03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2의 성> 읽을 때 한달 내 읽느라 거의 매일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참 좋습니다. 제가 여성주의 책을 아직 몇 권 읽지는 못했지만 <제2의 성>과 <가부장제의 창조>가 최고거든요~ 맥락이 이어져서인 것 같습니다. 둘 다 재독하고 싶은 책들이에요.
워드슬럿, 여성간의 대화법 흥미롭습니다^^

독서괭 2023-02-06 12:16   좋아요 1 | URL
오오 한달 동안 들고 다니며 읽으시다니. 역시 그 정도는 해야 완독 가능한 책인가요! ㅎㅎ 저는 오늘은 아침독서에서 목표량을 채웠기에 안 들고 왔습니다. 오예~
화가님이 꼽으신 최고의 두권 중 한권을 읽었고 나머지도 읽고 있는 중이라 뿌듯하네요.
워드슬럿 재밌는 책입니다. 화가님 감사해요^^

잠자냥 2023-02-03 14: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 저도 놀랬어요. 이제 겨우 3장이라니? 느낌상으로는 괭님이 많이 읽은 것 같았는데........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6 12:1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잠자냥님도? 한참 전에 1,2장 읽고 글 올린 적 있어서 그런가봐요. 그 사이 다락방미친여자 읽느라 완전 뒤로 밀려났던 워드 슬럿... ㅠㅠ

햇살과함께 2023-02-03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책 <여성, 인종, 계급> 뒷면 속지에 나온 아르떼 페미니즘 시리즈에 있던데 독서괭님 읽고 계시군요!
<가부장제의 창조> 재독도 꾸려주세요! 저도 좀 따라 읽게요^^


독서괭 2023-02-06 12:18   좋아요 1 | URL
오 아르떼 페미니즘 시리즈 중 하나군요. 작가가 위트가 있어서 재미납니다.
<가부장제의 창조>는 작년에 읽었기 땜에 재독하기에는 너무 이르네요 ㅎㅎㅎ 햇살님께서 따로 꾸려보시는 건 어떨지요!!^^

책읽는나무 2023-02-03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 3 장!!!! 심오합니다^^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2의 성!!! 완독으로~
파이팅입니다.
눈 운동도 열심히 하시구요!!!^^

독서괭 2023-02-06 12:19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 꼭 읽어보셔요. 재미납니다^^
제2의 성 진짜 너무 빽뺵해서 볼 때마다 놀라는데 ㅋㅋㅋㅋㅋ 그래도 글을 잘 써서 재밌네요. 밑줄 엄청 긋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3-02-04 0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워드슬릿도 읽고 싶고, 제2의 성도 읽어야 하고.... ㅎㅎ 저는 어려운 책 2권 한꺼번에 못읽으므로(사실은 거의 무조건 다른 책을 같이 읽는거 잘 못해요. ) 일단 2월의 책 먼저 읽겟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독서괭님의 글들을 읽으면 저의 든든한 자양분을 마련하겠네요. ^^

독서괭 2023-02-06 12:19   좋아요 2 | URL
오 바람돌이님은 한번에 한권, 집중해서 읽으시는군요. 저도 어려운 책 2권은 한번에 못 읽겠더라고요;; 그래서 병행하는 책은 주로 소설입니다^^; 2월의 책 쭉쭉 읽으시고 제2의 성도 쭉쭉!! 화이팅입니다^^

은오 2023-02-04 0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여자가 최고다... 이 말 안통하는 무례한 족속들... 이대남들 보면 나 죽기 전까지 내 또래남들은 안 변할 것 같은데, 지금은 또 대화 스킬도 스킬이지만 어릴 때부터 인방 유튜브 게임하면서 여혐에 젖어 있는 어린 남자애들이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바뀔지도 모르겠고 조금 답답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워드 슬럿 재밌어보여요!

독서괭 2023-02-06 12:22   좋아요 1 | URL
최근 부모들이 성평등 교육에 노력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초고~중등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비중을 넓히는 또래문화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 유튜브 너무 문제예요 ㅠㅠ 그게 멋있는 줄 알고.. ㅠㅠ 잘못된 또래문화에 휩쓸리지 않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요. 워드 슬럿 재밌습니다 은오님.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3-02-04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남자 연예인들 단톡방 사건 생각난다 ㅋㅋㅋ 진짜 남자들 대화 개별로 ㅋㅋㅋ ㅋㅋㅋ

독서괭 2023-02-06 12:23   좋아요 1 | URL
어휴 그건 진짜 너무.. 더럽.. ㅠㅠ 성격은 다른데 전문가 독백형 대화도 너무 별로죠? 여자들과 잘 어울리는 남자들 보면 여자들의 대화법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3-02-09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2의 성, 두 권짜리를 완독했던 제 젊은날이 떠오르는군요.
그때 읽지 않았더라면 궁금해 죽을 뻔...^^

독서괭 2023-02-09 15:15   좋아요 1 | URL
페크님, 일찌감치 이미 읽으셨군요!! 저도 읽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명성이 자자한 고전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건수하 2023-02-16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2의 성> 의 어느 부분 읽으며 이 문제의식이 <가부장제의 창조>로 이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 잘
이어지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