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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는 사람들 - 우리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읽기와 뇌과학의 세계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5월
평점 :
읽기는 신경가소성에 크게 의존하는 후천적 기술이자, 훨씬 이전에 다른 인지 작업을 위해 설계된 회로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읽기가 수많은 감정적·인지적·언어적·지각적·생리적 과정을 동기화하며 일어나는 복잡한 행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 66,67쪽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읽는다'는 행위를 당연하게 치부하는 나를 비롯한 '신경전형인'들에게 읽기 행위를 다시 보게 한다. 읽기라는 게 이렇게 복잡한 행위였다고?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글자를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5-6세 무렵 한글을 익혔다고 들었을 뿐 그 과정은 전혀 기억에 없다. 4-6세 사이 한글을 익힌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읽기는 당연한 행위가 되었고, '읽지 못하는' 사람은 놀라운 대상이 되었다.
'읽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를 떠올리게 되는가? 나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숱한 사연 속 노인(특히 여성 노인)들이 떠오른다. 환경의 뒷받침이 없어 발생한 불운한 문맹.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람들은 배움이 없어 읽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이들이 아니다. '신경다양인'(일반적인 뇌신경 체계의 발달이나 연결과 차이가 있는 사람)이 겪는 다양한 형태의 읽기 장벽을 보여준다.
영리하게도 난독증, 자폐증을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책의 흐름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실독증', 타고나는 '공감각자', 환각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쳐 누구나 노년에는 맞이할 수 있는 인지저하로 인한 읽기 장벽으로 마무리 된다. 특히 실독증과 노년의 인지저하 부분을 읽으면 "지금 내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느끼게 된다.
실독증 파트에서 등장한 소설가 엥겔은 뇌졸중을 겪은 후 문맹이 된다. 작가가 아닌 나도 내가 문맹-문해력 상실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만 같은데, 그 심경이 어땠을지. 그 비통함이 아래 인용문에 담겨 있다. 그는 그 자신을 상실한 것이다.
읽기는 그저 어떤 행위가 아니다. 읽기는 정체성이다. 엥겔에게 뇌졸중은 무작위로 일어난 생물학적 사고가 아니라 책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비뚤어진 표적으로 삼은 '인간적인' 사건이다(...). 엥겔은 신경학적으로 글을 읽을 수 없지만 자신을 독자라고 정의한다. 그만큼 읽기라는 말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문맹'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뒤에도 계속 책을 산다. 작가로서 또 다른 자아를 상상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그도 문해력 상실인이라는 정체성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독자였다. 뇌가 터져버렸지만 다른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읽기는 내 안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심장을 멈출 수 없듯 읽기도 멈출 수 없었다. 읽기는 내게 뼈, 골수, 림프, 피였다. - 197쪽
노년의 인지저하-치매 파트에서도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읽던 사람이 읽지 못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실독증과 유사하지만, 실독증에 비해 증상이 느리게 나타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므로,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하여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젊어 죽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지나게 될 읽기 장벽이라는 혼란에 관해, 읽기라는 행위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다른 방법의 읽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끔찍하게 느껴질- 대안을 제시한다.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관한 증언을 살펴보면 줄거리나 회고적 서사 이해 등에 비해 저평가된 읽기의 측면이 드러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치매 환자의 읽기는 전체 서사를 이해하는 것부터 한 페이지, 문장, 구문에 빠져들어 그저 계속 읽어나가는 것까지 다양하다. 책에 얹힌 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가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로 글자를 발음하면서 단어를 읊조리거나, 책 속의 그림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저 책을 곁에 두는 것에 만족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장은 읽는 방법을 잊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읽기를 중단한 지 한참 뒤에도 계속 읽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295쪽
책의 첫 부분인 '들어가며'에는 갑자기 전문용어들이 연달아 튀어나오고 압축적인 서술에 놀랄 수 있다. 이 부분이 지루하다면 대충 훑은 후 본문으로 들어가기를 권한다. 본문은 읽기 어렵지 않고 당사자 증언이 많아서 더 흥미롭다.
+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웃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여러 가지 연구 결과와 당사자의 증언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지만, 그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게리 우즈라는 목사가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다음 했다는 이야기- 죽은 친구를 따라 천국의 도서관에 갔고, "벽은 순금으로 되어 있고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돔 천장이 높게 솟아 있었으며 그사이로 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리고 수백 권의 책이 보였다. 천사들 여럿이 책을 읽고 있었다." - 를 읽으면서는 틀림없이 저자도 천국을 그렇게 상상했거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거라 여겨졌다. 나는 천국을 믿지 않고 상상도 안 해봤지만 이 부분을 읽으니 괜찮다 ㅋㅋ
+ 또 이런 부분. 환각 파트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어느 날 밤늦게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를 읽다가 어깨 너머로 어떤 여자가 함께 책을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뒤 이 유령은 자주 찾아와 어깨 너머로 책을 읽었다. 결국 그는 인내심을 잃고 '아, 좀 저리 가!'라고 버럭 화를 냈다"(252쪽) 는 부분을 읽으면, 와, 이거 진짜 짜증 나서 나라도 유령한테 화내겠다 싶었다. ㅋㅋ 우리 첫째도 책 읽는데 둘째와 옆에 와서 기웃거리면 되게 짜증 낸다...
+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는 것 중 하나가 책이라는 이야기는 신기하다.(286쪽).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겠지? 문득 <스토너>의 마지막에도 책이 나왔던 것 같은데, 싶어 찾아보니 맞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스토너>
+ 이 책에서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공감각이었는데.. 세상에, 성인 인구의 4퍼센트가 조금 넘는 사람이 읽기라는 평범한 활동 도중에 색을 지각하는 등 독특한 정신반응을 겪는다(207쪽)니? 저 4퍼센트의 사람이 읽을 때마다 색을 지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알파벳마다 특유의 색이 있다고 지각한다는 것이다. 공감각자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작가 나보코프를 예로 들어 인상적.
+ 아, 부디 생의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기를.. 단순히 읽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기를. 읽기 장벽이 찾아오더라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를. 이야기가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 ㅈㅈㄴ이 리뷰 쓰라고 해서 썼다. 말 잘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