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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ㅣ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평점 :
멋진 언니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5060(한분은 48년생이다) '평범한' 언니들의 '평범한' 인생사 하나하나가 다 드라마인데, 정작 당신들은 자신의 인생이 책에 실릴 수 있는 이야기임에 깜짝 놀란다. 10대 혹은 20대 초반부터 일을 시작하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벌이를 위해 또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손에서 놓지 않은 당신, 엄마로서 아내로서 집안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온 힘을 다했으면서도 "내가 무슨 일을 했냐"며 손사래 치는 당신, "집에서 논다"는 평가를 듣는 데 익숙한 당신 들...
한두 개가 아닌 직업과 경력들이 빼곡 적힌 명함을 당신들께 쥐어드리는 이 프로젝트는,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의 작품이다.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짐작된다. 인터뷰이 중 마지막에 책이 실리는 것을 마다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책에 실린 11명의 이야기만으로 이 세대 여성들의 노동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는 없다. 기획자도 "소위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만 담았다."(291쪽)고 인정하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개인의 인터뷰에 덧붙여 기록과 통계로 보여주는 5060 여성들의 노동 상황을 함께 적어두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사를 음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대다수 여성들이 처했던 어려움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해준다. 근대사를 공부할 때 함께 읽어도 좋을 책이 아닐까 싶다.
엄마를 둔 딸이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가장 울컥했던 부분은 역시, 엄마와 딸이 함께 인터뷰한 윤순자씨와 혜원씨 부분이었다. 혜원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보냈다는 편지에 담긴 내용을 적어본다.
저는 엄마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더 늦지 않게 알게 되어 얼마나 배가 부른지 몰라요. 무엇보다 엄마의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엄마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오던 엄마는 도대체 무슨 힘으로 버텨왔을까. 그날 이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엄마는 본인이 가진 자갈, 바위, 돌이 섞인 미운 흙들을 온몸으로 고르고 골라 고운 흙만 저에게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장갑조차 낄 틈 없이 맨손으로 고르고 골라내느라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는데, 저는 엄마의 상처를 보려 하지 않고 내가 물려받은 흙들이 아직도 너무 거칠다고 불평만 했어요. 곱고 예쁜 흙들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자식들에게 쥐어준 흙이 아직도 부끄럽고 미안한, 그게 일하던 엄마들의 마음이 아닐까 감히 가늠해봅니다.
- 132,133쪽
이 책의 또 한 가지 멋진 점은, 사진들이다. '노동하는 여성'을 담은 사진. 예쁘게, 곱게, 얌전해 보이게 찍은 사진이 아니라 노동으로 스스로와 가족을 먹여 살린 사람의 긍지가 엿보이는 사진들.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 표지에 실린 이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다리 탁 꼬고 앉은 과수원 언니의 포쓰도 멋지다.
여성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제법 멀다는 것.
'필수노동'으로 분류되는 노동의 대부분을 중년의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2021년도에 시행되었음에도 시행규칙이 만들어지지 않아 필수업무에 관한 정의조차 모호한 상태라고 하니, 코로나 시국에 반짝 관심 줬다가 이제 식어버린 모양이다. 휴..
총평: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합니다.
+ 이 책을 기획한 젠더기획팀의 팀장이었던 장은교님은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중인데,
검색해보니 이런 책들을 내셨다.
....아, 리뷰에는 책 링크 넣는 게 없지..?
<오늘도 당신이 궁금합니다>
<인터뷰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