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이 제목 봤을 때, 우리 집에도 있어, 방해자! 이건 내 얘기일 거야, 라고 생각하신 분 손 드세요. 저요(손). 이 책은 창조적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창조성'과 '모성'의 충돌과 그 사이를 헤쳐나가며 "숲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하는"(53쪽) (주로)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엄밀히 말해 '창조'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창조의 개념을 넓게 볼 때 어느 정도는 일상적으로 창조를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어머니로서 - 업무에도 일정 부분 창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리뷰 하나를 쓰기 위해 끙끙대는 시간들 - "내 이야긴데?" 하는 지점들을 다수 발견한다. 


예컨대 이런 부분.


양육의 경험은 종종 분열(disintegration)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 버레이처는 "아이가 가하는 지속적인 공격"이 양육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같은 공격은 그야말로 "엄마의 말하기"와 "사고하고 성찰하고 잠자고 이동하고 맡은 일을 완수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받아 구멍이 숭숭 난 자기 서사" 안으로 난입한다. 결국 근본적으로 일관성 없는 일련의 분절된 경험만이 덩그러니 남게 된다.  (38쪽)


'분열'이야말로 일하는 엄마가 되면서 내가 느낀 가장 심각한 변화다. 나는 내 자아가 쪼개지는 것을 느낀다. 한쪽에는 사회 속에 내 자리를 가진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한쪽에는 아이의 똥을 닦아주며 동요를 불러주는 내가 있다. 아이가 없는 경우에도 업무와 사생활을 똑 부러지게 분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퇴근 후에도 업무 연락을 받거나 업무에 관해 고민하고, 출근 후에도 이런저런 사적인 고민을 놓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 그 분리는 거의 불가능해지는데, 위 인용문에서 말한 "공격"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나의 생각이나 고민, 일 처리가 아이에 의해 수시로 방해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에 출근해서도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에 가슴이 덜컥하거나 학원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등 내가 임의로 미루거나 조절할 수 없는 방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더 큰 문제는, 행위에 있어서는 분리가 더 어려우면서도, 존재에 있어서는 양자가 더 멀어져 있다는 점이다. 즉, 직장인인 나와 일상의 나 사이의 간격보다 직장인인 나와 엄마인 나 사이의 간격은 훨씬 넓다. 그 넓은 간격 사이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업무를 수시로 지시받아 교차수행할 때와 비슷하게 심한 피로감과 효율성 저하를 불러온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좋지 않은 결과가 "죄책감"이다. 이 부정적인 감정은 "구멍이 숭숭 난 자기 서사" 안에 쉽게 침입해 들어온다. 내가 어쩌자고 아이를 낳았을까? 내가 얼마나 잘났다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채 일에 매달려 있나? 아이가 어딘가 잘못되면, 그건 다 아이 곁에 없었던 내 탓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내용.


"모성은 하나의 정체성이다. 모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성인기에 발생하는 정체성 변화 가운데 가장 심대하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은 2013년에 발표한 심리학 박사논문에서 부모가 된 여성이 두 가지 새로운 관계에 대처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아이와의 관계이고, 둘째는 엄마가 된 스스로와 맺는 관계다. 이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일, 나아가 창작자 엄마로서 자기 직업과 맺는 관계를 재구축하는 일은 한 인간으로서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성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인지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일과 연관된다.  (52쪽)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일. 한마디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권정민 작가의 <엄마도감>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

사람은 일생 동안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사람'에서 '엄마'가 되는 일은 뭐가 더 어려울까? 옛날처럼 집안에서 여러 형제가 함께 자라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가 바로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 더 수월했을까? 어떤 면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기대하는 역할, 수행하는 역할이 일치하니까. 반면, 양육과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살던 사람이 엄마가 되는 일은 앞서 말한 '격차' 때문에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새삼 깨닫는다. 내가 이렇게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 고차원의 대화와 우아한 식사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나? 


약 1년 전 쓴 글에서 고백한 바 있다. 어렵게 마련한 나의 소중한 아침시간을 방해하는 둘째에 대해서. 하지만 둘쨰의 방해 자체를 루틴의 하나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그렇지만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에서 버레이처가 던진 화두, "부단한 탐사를 거쳐 재발견된 환경"에서 벌어지는 모성적인 무언가와의 분투는 나름대로 생산적인 것이 아닐까?"(39쪽)에 대하여, 나는 다소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그렇게 행해진 '분투'에서 분명 뭔가를 얻을 수는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 나아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 자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신선한 시각과 영감. 그렇지만, 자각과 시각과 영감을 모아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결국 고독이 필요하다... 자유가... 그리고 (고독하며 자유로운)시간!! 시간이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이 책 서두에서 보여준 "코르크판으로 모든 틈을 막은 방에 처박혀 침대에서 글을 끼적인 프루스트. 자기만의 탑에서 내려오다가 본인의 두 자녀와 마주치고는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물은 예이츠. '얘들은 누구지?', 음식 냄새의 미묘한 변화마저 사고를 방해할까 봐 수 주 동안 스위스 치즈 샌드위치만 먹은 비트겐슈타인."(25,26쪽)의 이미지는 직업인과 엄마 사이의 간격보다 더 넓은, 어질어질 해질 정도의 격차를 ('모성'과 사이에) 느끼게 한다.   

 

그런데 내가 더 많은 글을 읽고 쓸수록 한 가지 사실이 점차 명확해졌다. 양육과 창조성이 만나는 장소는 정체성들의 교차점이 아니라 일종의 네거티브 공간, 즉 불가능성의 자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 정신분석 이론가 리사 버레이처가 말한 "지적인 노동과 모성적 노동(maternal labor)은 왜 서로를 지워버리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 이유에 대한 난제"와 마주한 것이다.  (30,31)


이 책에서는 "창조적 모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왜 '모성'이어야 하는가? 양육이 문제라면, 양육을 담당하는 부성 또한 창조력과 씨름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모체가 담당하는 역할(수정을 제외하면 전부다)을 생각할 때, 나아가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와 아이의 기대치를 생각할 때, '모성'과 '부성'을 동등한 자리에 놓기는 무리다. 특히 이 책은 1900년대에 주로 활동한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애초에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선택의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을 이해할 때에는 '모성'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어떻게 모성이 우발적 사고이자 의무에서 하나의 선택이 되었으며, 그것이 여성들의 삶에 얼마나 심오한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성 작가들의 커리어에 관해 읽을 때, 그들이 얼마나 적은 선택지를 갖고 있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필수다. 앨리스 닐이 그녀의 첫 결혼에 관해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 나는 아이들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생겼다."  (67쪽) 


가장 처음 등장하는 예술가는 화가 '앨리스 닐(1900~1984)'이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이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에게도 결혼과 출산, 양육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앨리스 닐은 점차 주변 가족들을 자신의 예술에 동참하게 하면서, 예술과 모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토니 모리슨의 <술라>에서는 흑인 여성과 딸이 기차 여행을 하던 중, 흑인출입이 가능한 화장실을 찾지 못해 노상에쭈그려 소변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들은 더했겠지만, 백인 여성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던가 보다. 공중화장실 출입이 페미니즘 이슈였던 시절, 앨리스는 한 학술대회에서 치마를 들어 올리고 바닥에 오줌을 누면서 급한 볼일 때문에 안절부절하는 상황을 즉석 시위로 전환시키기도 했다."(110쪽)


이 책의 라인업은 화려하다.

앨리스 닐을 시작으로,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수전 손태그,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이들이 창조를 위해 어떤 분투를 했는지 살펴볼 앞으로의 여정이 몹시 기대된다. 


'엄마'와 '영웅'이라는 단어를 함께 입에 올리면, 대부분은 자기희생의 이미지를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모성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쟁이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창조적 모성은 자기발견의 여정에 나선 어느 중심인물의 이야기다. 그녀는 빵 부스러기(그러니까 일화와 종잡을 수 없는 여러 순간)로 표시한 길을 따라 나선 뒤로 지하 세계까지 떨어졌다가 되돌아온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스스로 길을 발견하는 주인공이다. (...) 그리하여 나는 반란의 정신으로, 말소에 대한 거부로, 제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한 젊은 오이디푸스를 향한 일격으로, 엄마들의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써내려 가려고 애썼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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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성과 창조성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3-09-30 07:39 
    독서괭님의 ‘불가능성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고 씁니다. 너무 좋은 글이라서, 또 제게 폭풍처럼(?) 여러 생각을 불러온 글이라서 천천히 2번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친구에게 선물받았는데,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 마지막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 나아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 자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신선한 시각과 영감. 그렇지만, 자각과 시각과 영감을 모아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건수하 2023-09-21 14: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창조적인 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느끼는 바가 많네요.

요즘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를 읽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성, 여성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사실 저는 그런 긍정적인 건 다른 사람 하라고 하고 그냥 나 하고싶은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서 말이지요..

투덜거리기도 하고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고는 있는데, 어젠가 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는 속이 좁다며... -_-
할머니는 훨씬 너그럽다고 한 걸로 봐서는 제가 무조건 포용해주고 희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 말 같은데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전 그냥 그런 사람으로 살려구요....

잠자냥 2023-09-21 15:30   좋아요 4 | URL
좁수하... ㅋㅋㅋ
집사3이 은근 엄마 디스 많이하네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9-21 15:34   좋아요 3 | URL
그러게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놓고 잘 때는 엄마 좋아 이러면서 막 껴안고 -_-

그냥 속좁게 서로 디스하며 살려구요 흥..

독서괭 2023-09-21 16:4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건수하님. 저도 그리 너그러운 엄마는 아니랍니다. 엄격한 편인데요. 그래서 애들에게서 비슷한 말 들어봤어요. 할머니/이모(님)은 착한데 엄마는 안 착하다 뭐 그런 말? ㅋㅋㅋ 속으로 ˝이녀석아, 그분들은 너희를 훈육할 책임이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했지만 아 그래 하고 말았죠.
어떤 분들은 아이들 보는 게 너무 좋다고 육아휴직 할 때 너무 좋았다고 하시던데, 저는 복직할 떄 엄청 좋았거든요 ㅋㅋ 저도 나 하고싶은 대로 살고 싶습.. 일단 내가 가고싶은 식당에 좀 가고싶다.. ㅠㅜ
잘 떄는 엄마 좋아 이러면서 껴안는 게 집사3의 진심입니다 ㅎㅎ 귀여운걸요?

건수하 2023-09-21 19:59   좋아요 2 | URL
독서괭님 공감해주셔서 기쁘구요 ㅋㅋ 저도 온가족 중 제가 젤 엄하기 때문에 (…)

지금은 뭐 괜찮은데 사춘기 본격 시작되면 마상을 좀 입을 것 같아요. 지금을 즐겨야겠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3-09-22 08:54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그래도 님들의 아이들은 어려서 엄마 디스를 귀엽게 하고 있네요.
안 착하다. 속 좁다.ㅋㅋㅋ
사춘기가 되면요.....ㅜㅜ
엄마의 내면을 분석하면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ㅜㅜ
지금 제가 마상 입고 있는 중입니다.ㅋㅋㅋ
아이들의 불만은 곧 친구네 엄마 아빠와 비교 시작되며 다른 엄마는 된다는데 왜 엄마는 안 되냐고 질문을 해대는데...음...너무 엄격하게 키우다 보면 사춘기가 되었을 때 가슴에 총알 많이 박히더이다. 그래도 잘 고쳐지지 않으니 전 이제 녀석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입을 마상을 두려워하는 중입니다.ㅋㅋㅋ
상처받지 말고 즐기세요.
엄한 엄마라도 결국은 엄마 찾는 듯해요.
두 분은 좋은 엄마 잘 하고 계십니다.^^

건수하 2023-09-22 08:59   좋아요 2 | URL
전 꼭 저 안 찾아도 되는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ㅋㅋㅋ
(배부른 소리일까요?)

책읽는나무 2023-09-22 09:14   좋아요 3 | URL
그 때가 되면 애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해서(방문 닫음) 괜찮을 거에요.ㅋㅋㅋ
근데 하루에 딱 바쁜 그 시간이 매일 매일이니....
이런 것도 고딩 졸업하면 끝! 곧 해방이다! 생각하며 참고 살아요.
근데 이웃집 보니깐 대학 졸업하니까 다들 집에 들어와 다시 가족 완전체가 되어 있던데....아??!!!! 싶은 맘이 들어서...좀 불안하네요.

독서괭 2023-09-22 21:14   좋아요 1 | URL
대학 졸업 후 다시 완전체라니 윽..;; 근데 요즘 정말 많더라고요. ㅠㅠ 육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만요잉. 역시 지금 젤 귀여울 때를 즐겨야겠습니다^^

건수하 2023-09-22 21:24   좋아요 1 | URL
대학 졸업후 완전체요….?;;
미리미리 얼른 독립하라고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안되면 제가 가출해야겠네요 🤪

다락방 2023-09-21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나니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독서괭 님 굉장히 지혜로운 분이신 것 같아요. 음, 그건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데에서 오는데요, 저는 올해에 이 ‘받아들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거든요. 받아들임이 굉장히 많이 그리고 크게, 내 고통을 줄여준다는 생각을 해서요. <인생 수업>에도 surrender 로 표현되는데, 우리가 대부분 힘들고 고통스러운 까닭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도망가려고, 맞서려고 해서잖아요. 그런데 피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하려고 하니까 힘든것이고, 이럴 때 받아들인다면 아예 다른 식의 길이 열린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어요. 저는 이걸 올해 깨달은 것 같은데, 독서괭 님은 아마도 훨씬 오래전에, 그도 아니라면 엄마가 되고나서부터 깨달으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참 지혜롭고 따뜻하셔요.

독서괭 님, 참, 이런 페이퍼에 이런 댓글은 쑥스럽지만,
좋아합니다.

잠자냥 2023-09-21 15:29   좋아요 4 | URL
뭐야 벌써 한 잔 했어?!

건수하 2023-09-21 15:34   좋아요 2 | URL
아 이 댓글에 위 댓글을 단 제가 부끄러워지고...

하지만 현명하다는 것은 하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독서괭 2023-09-21 16:58   좋아요 2 | URL
아휴, 피곤한 오후시간인데 다락방님 댓글 보고 힘이 납니다.
그런데, 훨씬 오래전에 아니고요.. 작년에 저 글 쓰면서 깨달았던 거랍니다? ㅋㅋㅋ 그 무렵 남편이랑 싸우고 심란했는데 마음가짐을 바꾸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고.. 1년 지난 지금, 남편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헤헷. 뿌듯하네요. 다락방님은 항상 배우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으시잖아요. 부장님쯤 되면 그게 참 어려운 거잖아요. 심지어 알라딘 셀럽이신데.. ㅎㅎㅎ
제가 많이 좋아하는 건 이미 알고 계시죠?(찡긋)

독서괭 2023-09-21 16:58   좋아요 2 | URL
건수하님/ 부끄럽다뇨. 위에도 달았지만 전 매우 공감합니다. 하트수하님 ㅎㅎ

잠자냥 2023-09-21 1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농담 창조 괭
웃음 창조 괭

독서괭 2023-09-21 16:58   좋아요 2 | URL
아니 이런 엄청난 칭찬을??

페넬로페 2023-09-21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참 이상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독서괭님같은 시절에 더 많이 책 읽고 더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을 해봐요.
아이가 자라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도 삶이 더 타이트하게 느껴집니다.ㅠㅠ

프루스트나 비트겐슈타인은 우리랑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냥 우리가 사는 세계가 더 나아요^^

독서괭 2023-09-22 21:29   좋아요 1 | URL
앗 페넬로페님 정곡을 찌르심 ㅋㅋㅋㅋ 저도 지금 젤 부지런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자라 시간이 많아졌는데 삶이 더 타이트하다고요…? 제게 희망을 주소서 ㅠㅠ
여기 작가들은 창조하는 직업이라 더 힘들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온힘을 다해 빠져들어야 해낼 수 있는 작업일 테니까요? 프루스트는 아팠으니까 안 부럽네용^^

미미 2023-09-21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내용 같은데 괭님의 글을 보니 좀 더 이해가 되네요. 엄마들에게 고독의 시간을 더 주고 아빠들에게 ‘창조성‘의 경험을 더 주기 위해서 직장 내 어린이집을! 특히 아빠 직장에!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건수하 2023-09-22 09:00   좋아요 2 | URL
아빠 직장에!!! 직장 어린이집 데리고 다니는 아빠들이 참 힘들어하더라고요 :)

미미 2023-09-22 09:14   좋아요 1 | URL
아 수하님 말씀에 찾아보니 직장 어린이집 이곳저곳에 있네요! 사업체 지원금도 60% 받고 있고요. 윤석열스럽게 있는걸 만들자고ㅋㅋㅋ😳

독서괭 2023-09-22 21:30   좋아요 2 | URL
직장 어린이집 없는 곳도 많긴 한 것 같아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빠들의 부성을 응원합니다 ㅋㅋ 요즘은 남자들 육휴도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은오 2023-09-21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은 역시 멋있으십니다.

독서괭 2023-09-22 21:30   좋아요 2 | URL
내세에는 은오님을 두고 잠자냥님과 겨뤄야겠다.

책읽는나무 2023-09-22 0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괭님 멋있다는 말에 저도 한 표!^^
이 아침에 어제 테이크 아웃 해 온 커피 넘 많아 반 남겼다가 지금 다시 데워 마시면서 괭 님 글 읽었어요.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네요.
괭 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전 스트레스 수치에 좀 민감한 편이라 일찌감치 큰 아이 가졌을 때 입덧도 시작되어 직장을 나왔어요. 체력적으로도 안 될 것 같아 그냥 아이 키우기에 올인하고 싶기도 했었구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육아를 한다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는데 괭 님은 두 가지를 다 하면서 직장인과 엄마 두 세계를 넘나들며 느꼈을 고단함과 고민과 자책감이 공감되면서 한 편으론 어쩌면 나보다도 괭 님이 더 어른스럽단 생각을 해 봅니다.(저 정신연령 검사했는데 33세!)
저도 이 책 괭 님과 같은 마음으로 샀어요.ㅋㅋㅋ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작가들이 이 방해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궁금했어요. 예상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용문을 읽어 보니 사길 잘 했단 생각이 듭니다.
늘 괭 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독서괭 2023-09-22 21:37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커다란 기쁨이라니 저야말로 커다란 행복😍
“분열”이란 말이 딱 워킹맘인 제 마음을 저격해서 그렇지, 전반적으로 전업주부가 일하는 엄마보다 편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ㅜ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직장과 집을 왔다갔다 하는 게 기분전환(?)이 되거든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창조하는 일을 하니 더 힘들었을 것 같고요.
아 저 정신연령 검사 28살입니다. 언니…!!!ㅋㅋㅋ
책나무님도 같은 마음으로 사셨군요^^ 전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말이 서문에 많아서 신났어요. 여러 작가들의 다른 경험들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합니다.
저도 언제나 책나무님 응원합니다😘

단발머리 2023-09-29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이에요. 아, 독서괭님…. 너무 너무 좋아요. 시댁에서 밥 먹는 사이 시간에 읽는데 넘 좋아요. 알라딘 이웃님들 댓글들도 심금을 울립니다. 집에 가서 댓글 달게요.
긴 댓글이 될 거 같아요…. ㅎㅎ
고마워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3-09-29 13:43   좋아요 0 | URL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9-30 07:43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먼댓글 달았어요^^ 손 잡자는 내용입니다.
오늘 좋은날 되세용!!

독서괭 2023-09-30 08:18   좋아요 0 | URL
잠이 번쩍 깨서 읽고 왔어요. 단발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9장 뉴라이트가 벌이는 원한의 정치


오호. 9장은 매우 흥미롭고, 역시나 열받는 내용 투성이다. ㅋㅋ 페미니즘은 열뻗침과 함께합니다. 

대놓고 여성의 권리에 반대하는 게 어려우니 오히려 '여성해방'의 용어를 가져다 쓰면서 여성들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준다는 - 뜯어보면 결국 그 선택이란 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지만 - 궤변을 외치는 방식은 앞서도 저자가 누누히 말해왔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뉴라이트라는 집단이 어떻게 '가족 친화적', '모성 친화적'이라는 등의 용어로 자기들 이미지를 세련되게 포장했는지 보다 자세히 알려준다. 

뉴라이트 여성들이 얼마나 페미니즘에 유해한지 생각하면 아찔하고 씁쓸하다. 이들 중에는 '마슈너'라는 사람처럼 진심으로 여성이 능력만 있으면 차별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화려한 성취로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누린 기회들을 처음부터 박탈당한 이들도 있다는 점을 외면하고 그냥 "하면 된다"라고 외치며 여성들에게 명예 남성이 되길 권한다. 자신은 아주 적극적인 외부활동을 펼치면서도 여성은 가족의 품에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사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페미니즘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의적이다. 


읽다가 궁금했던 점, "오웰식 말장난"이 뭘까? 조지 오웰일텐데. 오웰이 이런 말장난을 즐겨했던 걸까?



* 인용문



오늘날의 반격에 출생지가 있다면 아마 이곳 뉴라이트 집단 속일 것이다. 바로 여기서 반격은 처음으로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의제를 가진 운동으로 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대표 주자들은 여성평등은 여성의 불행을 낳는다는 반격의 핵심 주장을 만들어 낸 최초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널리 인용되지만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죄, 도덕적 가치보다 물질주의를 더 드높이는 (그러니까 여성들을 탐욕스러운 여피로 만드는) 죄와 전통적인 가족지원 시스템을 뒤흔드는(그러니까 여성들을 생활 보조금에 기대 사는 엄마들로 전락시키는) 죄를 저질렀다며 페미니즘을 비난한 최초의 집단이기도 했다. 주류에서는 이들의 과열된 비유와 지옥불의 이미지를 거부했지만 이들의 핵심적인 정치적 메시지는 살아남아서 미디어의 ‘트렌드‘로 변질되었다. 362,363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과 얼람은 현대 미국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이런 주기적인 현상을 연구하면서 ˝반격의 정치는 자신들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집단에 의한 반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전적인 보수 세력과는 달리 이런 ‘사이비 보수층(이는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e Adomo가 이런 현대의 우익 운동 세력을 지칭한 표현이다)‘은 스스로를 현 상태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회적 외톨이라고 인식한다. 이들은 지배 질서를 옹호하려 하기보다는 철이 지난 질서나 상상 속의 질서를 복원하려 한다. 363

이는 뉴라이트의 이상을 상징하는 최초의 법안 발의였다. 이들은 이 법안을 가족보호법Family Protection Act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이들이 1981년 의회에 소개한 법안은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는 무관했다. 사실 이 법안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여성운동의 거의 모든 법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 법안에서 제안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남녀 평등 교육의 근간이 되는 연방법들을 없애고, ˝모든 스포츠나 여타 학교 관련 활동에서 남녀가 섞이는 것˝을 금지하고, 결혼과 모성이 여학생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고, 비전통적인 역할을 맡는 여성을 담은 교과서를 사용하는 모든 학교에 연방의 자금을 중단시키고, 구타당한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보호하는 모든 연방법을 폐지하고, 낙태에 대한 조언이나 이혼을 원하는 모든 여성에게 연방의 자금으로 법적 원조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것. 이 법안은 전체적으로 무언가를 금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기나긴 금지 목록에서 유일하게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기혼 여성이 아이를 낳고 집에서 지내도록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 인센티브 뿐이었다. 369,370

뉴라이트는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 생명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여성들이 새롭게 포용한 성적 자유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순결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 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여기에 ˝모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는 그들 자체, 그러니까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과거 남녀평등헌법수정안에 반대했던 집단인 이글포럼은 자신들을 공식적으로 ˝여성해방의 대안'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80년 선거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수식어를 “1972년부터 가족 친화적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으로 바꿨다. 과거 웨이리치는 자신의 적을 ‘여성해방‘이라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웨이리치는 자신의 원수를 ‘반가족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그였고, 페미니스트들이 그의 프로그램에 반발할 차례였다.
이런 오웰식의 말장난은 뉴라이트 지도자들을 수동성이라는 궁지에서 꺼내 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날로 증가하는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이들의 분노를 감춰 주는 기능도 해냈다. 이는 성공적인 마케팅 수단이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라는 깃발 아래 행진할 경우 이들은 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더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373

마슈너는 그 모욕을 잊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개인적인 상처를 다독거릴 줄 알았다. 스스로를 ‘여자애‘의 하나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그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 여성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명예 남성 중 한 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순전히 재능만으로 그곳까지 갔다. ˝난 한 번도 직업 시장에서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난 모든 걸 내 능력을 통해서 얻었어요.” 그녀는 여성에게는 공적인 영역에서 성공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다는 법칙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은 ˝아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어차피 실력이 있으면 성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81

그녀를 비롯한 다른 많은 주부들은 ˝상당히 형편없는 자아상˝과 ˝수동성˝, 그리고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가지고 ˝장점˝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교회에 도전하거나 남편을 위협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일 자신이 ˝영적인 힘˝만을 추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권위에 대한 갈망을 ˝성령의 힘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틀에 끼워 넣으면 용인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의 야망이 종교의 테두리 안에 있기만 하면 복음주의 공동체 내의 그 누구도 그녀의 야망에 반대할 수 없었다 388

뉴라이트 여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반격의 소용돌이에 갇힌 좀 더 진보적인 ‘여피‘ 자매들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주류 직장 여성들이 내부적으로 반격이 만들어 낸 자기 의심과 비난에 맞서면서 페미니즘의 원칙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편이었다면, 뉴라이트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자기 결정과 평등, 선택의 자유라는 여성운동의 교의를 자신의 사적인 행동에 말없이 녹여 내면서도 반페미니즘 관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396,397

미국을걱정하는여성모임의 활동가들은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나가 보고를 하고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도 절대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성 정치에 대한 공적인 입장을 분리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개탄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이 실제로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건 다른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하게 저지하는 일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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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미용 산업과 생명을 얻은 마네킹


'미용 산업'이라고 통틀어 말할 수 있는 화장품업계와 성형업계에서도 역시나, 페미니즘의 해방의 언어를 사용해 반격을 한다. 주름개선크림 따위를 팔면서 "난 매 단계마다 싸워서 물리칠 것"이라는 말을 하는 여성 모델이라니. 늙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개념을 여성들은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삼아야 했고, 그게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여전히 주름 하나 없는 젊은 여성들이 TV에서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팔아먹기 위해서 여성의 불안을 이용할 뿐 아니라 건강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는 극악무도하다. 여성의 몸을 이리저리 쪼개어 자기 이상에 맞추고 이렇게 저렇게 잘라내고 흡입하고 집어넣으면서, 그것이 "여성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성형외과의들의 태도는 소름이 돋는다. 


이 장에서 빵 터진 것은 "미국 가슴협회Breast Coundil의 전국 대변인 로버트 하비 박사"(340). 가슴협회가 뭐냐 ㅋㅋㅋ 있을 수 있다 쳐도, 가슴협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남성이라는 것은 많은 걸 말해준다. 7장에서 레이스 속옷을 사는 건 남자라고 했듯, 크고 처지지 않는(크면 당연히 처진다, 그것이 중력의 법칙) 가슴을 원하는 건 남자들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젊음을 돌려 준다' 며 광고하는 화장품들. 젊음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일지라도, 그게 유독 여성에게만 부담이 되는 건 분명한 성차별이다. 여성의 머리 속을 거울로 가득 채워버리는 반격의 결실은 물론 매출과 여성의 가정복귀일 테다. 넘어가지 말자. 정신 바짝 차리자!! 



인용문


1980년대에 미의 트렌드를 결정하는 건 마네킹들이었고, 실제 여성들은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인체 모형이 ‘ 생명을 얻은‘ 반면 숙녀들은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미용 산업은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여성성의 부활이기라도 한듯 ‘여성성으로의 복귀‘를 홍보했다. 페미니즘이 득세하던 1970년대에 억눌렸던 모든 선천적인 여성적 속성들을 다시 꽃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323

미용업계는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직업 정신이라는 병에 걸린 환자라고 설득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적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324

미용 산업은 여성들이 겪는 문제가 사회적 압력과는 무관한 순전히 개인적인 병폐일 뿐이며 이는 개별 여성이 자신의 육체를 바꿈으로써 보편적인 기준에 몸을 맞추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치유 가능하다는 재현을 강화함으로써 1980년대의 많은 여성들이 느낀 심리적 고립감을 악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325

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초에는 여성 운동선수들이 미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전형으로 영화 스타들을 능가했다. 햇볕에 그을은 피부가 코코샤넬Cabrielle Coco Chanel을 통해 패션의 상징으로 부상하면서 건강한 아웃도어 패션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헬레나루빈스타인의 밝은 색 화장품들은 화려하고 대담한 색조를 퍼뜨렸다. 하지만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이르러 미용지는 얼굴에 태닝을 한 여성들을 비난했고 회사들은 화려한 색조 화장을 하고서 출근하는 여성들을 해고했다. 그리고 다시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햇볕에 몸을 그을린 활기 넘치는 미녀들이 온갖 찬사를 받았다. <하퍼스바자>는 “1943년 뉴 아메리칸 룩˝을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그녀의 얼굴은 바깥에 나와 있고 그녀 역시 그렇다. 그녀의 손가락은 유연하고 튼튼하다. 그 선은 활동적인 선이다. 글래머는 이제 안녕.˝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미용 산업은 다시 글래머를 불러들였고, 구매 동기 분석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업종의 사람들이 이를 부추기며 화장품 회사에 좀더 수동적인 여성성의 이미지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326

많은 주요 화장품 회사들은 노화된 여성의 피부를 아기처럼 젊고 뽀얗게 되돌려 놓고, 거친 환경과 특히 일자리가 남긴 온갖 황폐한 흔적들이 여성의 ‘민감한‘ 안색에 고착되는 걸 막아 준다고 주장하는, 의료용품과 유사한 이름의 값비싼 묘약을 팔기 시작했다. 화장품 산업은 점점 나이를 먹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베이비붐 인구 내에서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공포를 이용해(물론 그중에서도 여성들에게만 공포를 이용했다) 결국 재정적인 지위를 끌어올리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332,333

올레이오일의 성공적인 1980년대 캠페인(이 회사의 초점을 실제 주름이 있는 나이 든 여성에서 아직 있지도 않은 주름을 사서 걱정하는 베이비 붐 여성들로 옮겼다)을 만들어 낸 광고 기획사는 이 회사 임원들의 표현에 따르면 ˝통제 개념˝을 차용했다. 노화를 겁내면서도 이에 당당하게 맞서고자 하는 이 광고의 여성 모델은 ˝난 우아하게 나이 들지 않을 거야. …… 난 매 단계마다 싸워서 물리칠 것˝이라고 맹세했다.
(…) 미용 제품 기업들은 전통적인 향수와 화장품보다 주름을 예방하는 묘약을 더 잘 팔았다. 이 영역의 반페미니즘적 주장들이 실제로 나이를 먹고 있는 베이비 붐 세대 여성들에게 나이 든 여성에 대한 해묵은 문화적 공포를 주입하는 데 대단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효과가 큰 결합이었다. 334

한 세기 전, 여성들은 비소가 함유된 여드름 크림인 파울러용액 Fowlers Solution 으로 노화되고 있는 피부에 활기를 북돋우라는 속삭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결국 병에 걸렸고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에는 미용사들이 노화 방지 성분이 있다는 처방용 여드름 연고를 조제했다. 하지만 레틴-A 는 실험용 쥐에서 암을 일으켰고 이 약의 구강용 버전인 아큐탄AC cutane은 선천성 결손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35

세실리아는 브렉 걸 직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모델 중개인을 고용했고 마라톤사 Marathon Company의 보트 거래상 회의에 참석하면 매달 3,000달러를 벌 수 있는 계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조이는 몇 달 뒤 이 계약을 취소시켰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전 세실리아가 흔자서 다른 도시로 가 버리는 거였어요. 난 집 안의 모든 게 잘 정리되어 있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되면 무질서해질 게 뻔하잖아요.˝ 세실리아는 결국 남편의 관점을 체화하게 되었다. ˝모든 걸 다 하려니 조금 정신이 없어졌던 것 같아요.˝ 이제 그녀는 주방 테이블을 치우며 말했다. 그리고 조이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거실로 사라졌다. 340  * 완전 빡치는 사례.. 

심지어 <미즈>마저 성형수술은 자신의 이미지를 ˝ 재발명˝ 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보았다. “감히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여성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이 돌고 도는 선전의 순환 고리가 완성되었다. 마치 미디어의 관심이 자신의 직업적인 우수함을 입증하는 증거라도 된다는 듯 미용성형 의사들은 이런 기사들을 오려서 자신의 이력서와 광고에 추가했다. 345

1988년 다우코닝사 Dow Corning Copporation 가 실리콘 젤이 실험용 쥐의 23퍼센트 이상에서 암을 유발한다고 밝혀냈지만 식의약청은 이 연구 결과를 일축했다. 식의약청의 관련 국장인 프랭크 영 Frank Young 박사는 ˝인간에 대한 위험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많은 연방의 연구들이 발포제에 코팅된 보형물과 암의 연관성을 밝히고, 국회의 소위원회가 개입한 뒤인 1991년 4월에야 식의약청은 결국 태도를 고쳐먹고 보형물 제조업체에 90일 이내에 자신들의 제품이 안전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347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의사들은 성형수술이 실제로 필요한 여성들의 시술은 하지 않았다. 1980년대 말 화상 피해자와 유방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재건 수술의 숫자는 실제로 줄어들었다.  많은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여성의 자존감을 북돋는 것은 직업적으로 그렇게 썩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광고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의 통제감을 향상시키는 것보다는 환자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향상시키는 데 더 눈이 멀어 있었다. 자기 아내의 몸에 아홉 번이나 시술을 한 성형외과 의사 커트 와그너 Kurt Wagner는 ˝나에게 수술은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마취된 여성들은 말대꾸를 못하니까. 35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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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0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형외과 의사들은 마치 신이라도 된듯이ㅋㅋㅋ그런데 그 신들은
하필 다 남자ㅋ

독서괭 2023-09-05 23:36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도 성형외과 광고 보면 남자가 훨씬 많지 않나요? 진짜 필요한 화상환자나 유방암 환자 재건수술은 뒷전이라는 게 씁쓸하더라고요 ㅠㅠ

잠자냥 2023-09-05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슴도 없는 것들이 무슨 회장을 하는지… 그러니까 괭님은 잠사모 회장 자격이 충분합니다. 고양이니까.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9-05 23:37   좋아요 1 | URL
지금 퇴근해서 쓰러졌는데 잠자냥님 댓글에 웃습니다. 잠사모 회장 자격 충분하다고 막 띄워놓고 은사모로 보내려 하기 있긔??

잠자냥 2023-09-06 00:00   좋아요 2 | URL
있긔 ㅋㅋㅋㅋ 귀엽잖아요

독서괭 2023-09-07 13:32   좋아요 0 | URL
제가 좀 귀엽습니다. 괭이니까요.

잠자냥 2023-09-07 13:43   좋아요 0 | URL
응? 은오가 귀엽단 소린데?! 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9-07 14:28   좋아요 1 | URL
독서괭 자뻑 들통나…

잠자냥 2023-09-07 14:39   좋아요 2 | URL
다락방이랑 어울려서 그래.....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9-08 13:54   좋아요 1 | URL
알라딘을 자뻑 월드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흠.

페넬로페 2023-09-06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통 가슴전문 성형외과의사는 남자들이잖아요 ㅎㅎ
레이스 속옷을 남자들이 많이 사는것도 아이러니고요~~

잠자냥 2023-09-07 13:43   좋아요 4 | URL
빅토리아시크릿 자기들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T팬티.

독서괭 2023-09-07 13:33   좋아요 1 | URL
흐흐흐
저도 20대때는 그런 속옷 좀 입었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노와이어 심플한 걸로!
가슴전문 성형외과 남자들이 하는 게 참, 그 목적 자체가 남자의 시선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3-09-07 13:44   좋아요 1 | URL
괭! T를?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9-07 14:25   좋아요 1 | URL
“그런”이 T는 아니었습니다 ㅋㅋㅋㅋ 레이스요 레이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9-07 15:45   좋아요 2 | URL
저도 T인줄 알았어용!

독서괭 2023-09-07 18:58   좋아요 1 | URL
악 이런 오해가...!!!
 



6장 10대 천사와 결혼하지 않은 마녀


6장에서는 TV드라마를 다룬다. 

미드 별로 안 본 데다가 특히나 1980년대작은 본 게 없지만, 그래도 재밌네. 

아래 퀴즈에 빵 터지면서도 씁쓸했다. 드라마에서 일하는 엄마는 사망이 디폴트여.  


《뉴욕우먼>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시즌에는 텔레비전 작가들이 일하는 엄마라는 개념을 불편하게 여기는 게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잡지는 이런 불편을 담담하게 기록한 퀴즈를 냈다. ˝일하는 엄마들˝이라는 퍼즐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황금 시간대 드라마와, 거기에 나오던 일하는 엄마 캐릭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연결시켰다. 정답은 다음과 같다.

<인생의 1년A Year in the Life> - 사망.
<풀 하우스>- 사망.
<나는 도라와 결혼했다 Married Dora> - 사망.
<아빠가 둘>-사망.
발레리네 가족 Valeries Family> - 사망.
(서른 몇 살>-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가 됨.
<모든 게 상대적>-드라마가 취소됨.
<마마보이Mamas Boy> - 드라마가 취소됨.     - 241



우리나라 드라마는 요즘 이런 경향은 아닌 것 같지만- 넷플릭스 이런 데 말고 아침드라마는 어떨지 궁금 - 과거 우리나라 드라마 가지고 분석해 보면 재밌겠다. 누가 좀 해줘요. 

워킹맘을 열심히 죽이는 한편, 간혹 나오는 강한 여성들을 내세운 드라마에는 가차 없이 공격이 쏟아진다. 

<로잔느 아줌마>와 <머피 브라운>- 호, 궁금한데? 


드라마의 주시청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강하고 흥미로우며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높은 반면, 싱글 여성과 일하는 엄마를 매도하고 가정주부만을 칭송하는 드라마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광고주들이 여전히 후자의 드라마를 선호한다는 건 흥미롭다. 그들이 팔아먹고자 하는 많은 물건들이 가정주부와 외모치장을 중시하는 이들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 

여기 대응하려면, 자본주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쇼핑을 유도하는 가장 큰 동기 가 바로 개인의 불안이기 때문이다. 283



7장 인형옷 입히기


7장은 패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패션은 더더욱 나의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 매우 흥미로웠는데, 그말인즉슨, 개소리와 쓰레기짓이 난무했다는 소리다.


<보그>에 실린 ˝숨은 기쁨˝이라는 제목의 패션 지면에는 코르셋 끈으로 눈 가리개를 질끈 동여맨 모델과, 다리가 묶인 또 한 명의 여성, 그리고 옷을 입지 않은 몸통과 팔을 끈으로 결박시킨 또 다른 여성이 크게 실렸다. 다른 주류 패션 잡지들도 목에 개 목걸이를 한 채 구속복을 입은 여성이나 벌거벗은 채 비닐 쓰레기 봉지에 담긴 여성들로 패션 기사란을 채웠다. 동일한 맥락의 패션 광고들도 확산되었다.
한 여성이 다리미판에 누워 있는데 어떤 남자가 이 여성의 가랑이에 다리미를 대고 있거나(에스프리Esprit), 여성이 구속복을 입고 있거나 (세루치Seruchi), 어떤 여성이 닭처럼 어떤 남자의 주먹에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코틀러Cotler‘s, 이 광고의 제목은 ˝올바른 태도를 위하여˝다), 한 여성이 셔츠가 찢어진 채 바닥에 때려눕혀져 있거나 (폭시 레이디Fory Lady), 아니면 어떤 여성이 아예 관에 들어가 있는 식이다 (마이클만 Michael Mann). 312


와, 진짜 미쳤다 패션잡지들... 

예전에 다락방님이 우리나라 잡지 표지에 차 트렁크 안에 들어간 여자 다리만 빠져나와있고 그 앞에서 남자가 서 있는.. 뭐 그런 황당한 게 있다고 올려주셔서 봤는데, 저기서 배워온 거군? 도대체 그런 표지는 뭘 위한 걸까? 남자들은 그런 표지를 보면서 뭘 느끼나? 웩이다 진짜.. 

게스 이야기도 충격이었다. 게스... 엉덩이 뒷태를 강조하는 광고야 알았지만, 이런 뒷얘기가? 헐. 


이 장의 명대사는 이거임.


그러면 레이스 장식이 달린 빅토리아풍의 속옷은 누가 사는 걸까? 존슨이 말했다. ˝남자들이요.˝309


ㅋㅋㅋㅋㅋㅋ 



인용문



다음 시즌이 되자 프로그래머들은 한발 물러나 두어 편의 강한 여성 주인공을 황금 시간대에 출연시켰다. 모두 거침없는 여성들을 내세운 <로잔느 아줌마 Roseanne> 와 <머피 브라운 Murphy Brown> (그리고 두 드라마 모두 제작자가 여성인데 이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럽다)은 곧바로 대대적인 흥행을 거뒀다. <로잔느 아줌마>는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시리즈물 중 하나가 되었고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강한 여성 두 명은 너무 많다고 인식되었다. <뉴스위크>는 1989년 커버스토리에서 독립적인 여성들이 ˝황금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다고 투덜거렸다.  - 245

이 코믹 드라마를 향한 분노와 히스테리는 그녀 자신의 도발과 기이할 정도로 균형이 맞지 않아 보였다. 미디어는 마치 (위험한 정사의) 요부처럼 그녀가 ˝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성˝이라고 발표했고, 방송국 임원들은 지면에서 공개적으로 그녀를 깔아뭉갰다. 246

새로 방영된 서른 세 편의 드라마 중에서 일을 하는 여성이 나오는 작품은 두 편 뿐이었고 나머지 드라마의 여성들은 아내이거나 귀여운 소녀이거나, 아니면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독립적인 여성들을 상대로 한 텔레비전의 반격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텔레비전 산업 자체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양가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금 시간대의 텔레비전 프로그래머들은 영화 제작자들보다는 여성들의 인정에 더 많이 매달리지만, 바로 이런 의존성 때문에 더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247

일부 프로그래밍 임직원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텔레비전에서 독립적인 여성들을 몰아내기를 바라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아직도 주부를 이상적인 쇼핑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광고주들은 이를 대놓고 요구한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 프로그래머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광고주들이 원하는 메시지는 현대 여성들에게 가장 매력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시청자들은 지도자, 여걸, 코미디언 같은 비전통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일관성 있게 가장 많이 시청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최대 광고주인 가공식품과 생활용품 제조업체들은 20년간 사실상 변함없이 구매를 권유하는 데 알맞은 전통적인 가족물을 원한다. 광고주들은 가정 주부를 말 잘 듣는 수동적인 소비자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리고 주부에겐 아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그저 이들이 이런 구태의연한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가정주부 시청자들을 비춰 주는 걸 더 선호한다. 248

<캐그니 앤 레이시>관련.
로젠즈위그는 가는 곳마다 똑같은 불만을 들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여자들은 충분히 부드럽지 않잖아요. 이런 여자들은 충분히 여 성스럽지 않아요.” 250,251
CBS 임원들은 싱글 여성 캐릭터에 집착하면서 그녀의 여성성을 강화하고 말투와 외모를 순화하고 좀 더 존경할 만한 ‘상위 계층‘으로 만들라는 끝없는 요구로 프로그램의 작가들을 괴롭혔다. ‘더 고급스러운 의상‘에 1만 5,000달러의 예산이 추가로 지출되었고, 여성 캐릭터의 페미니즘은 침묵당했으며, 그녀의 가족 이력에는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상류층 출신이라는 설명이 추가되었다. 
CBS 임원들은 특히 이 캐릭터의 다양한 연애사를 참아 내지 못했다. 252
이들은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두 여성 모두가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고 있는 데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로젠즈위그 는 대본에서는 그저 70퍼센트가 낙태 선택에 찬성하는 실세계 직장 여성들의 관점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지만 소용없었다. 253

텔레비전에서 싱글 여성들이 추방된 것은 텔레비전에서의 마지막 반격에서 확립된 패턴을 답습한 것이다. 초기의 텔레비전은 사실 싱글 여성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상당히 많이 제공했다. 대부분이 <개인 비서Private Secretary), 〈엘라 미스Ella Miss), <내 친구 어마 My Friend Irma), <우리의 미스 브룩스Our MissBrooks), <밀리를 만나다 Meet Milie) 같은 작품에 나오는 타이피스트, 하녀, 운 나쁜 여성 교사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에 이르자 싱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던 모든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결혼하지 않은 삶이 얼마나 고된지를 알려 줄 목적에서 부수적인 인물로만 등장할 뿐 주인공으로는 1960년 대 초• 중반 내내 보이지 않았다. <딕 반 다이크 쇼The Dick Van Dyke Show)에서 싱글인 샐리 로저스는 반 다이크의 사랑을 흠뻑 받는 아내(메리 타일러 무어Mary Tyler Moore가 연기하는)의 여성성과 행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의사와 병원이 나오던 1960년대의 많은 프로그램에서 싱글 여성들은 환자로만 등장했고, 이들의 병은 보통 낙태를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가장 빈번하게는 의사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과 같은 어떤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비롯되었다. 260


1960년대 병원 드라마에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웠던 싱글 환자들처럼 1980년대의 연속극에서 결혼행진곡을 거부한 여성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1988년 실세계에서 에이즈 환자 중 여성은 8퍼센트뿐이었다. 하지만 낮 시간대 텔레비전에서 에이즈 환자는 전부 여성이었다. <더 영앤 더 레스트리스 The Young and the Restles)에서는 일을 위해 아이를 버린, 출세 지향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전직 매춘부가 에이즈에 걸린다(그리고 결국 그녀는 딸까지 감염시킨다). (올 마이 칠 드런AlIMy Children>에서는 에이즈가 한 이혼녀를 덮치고, 병상에서 여성성이 확연하게 살아난 그녀는 다시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결혼에 굴복하면 에이즈 환자의 섹스도 안전해지는 걸까? ‘사회적으로 책임감이 있는‘ 이 연속극은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263

<서른 몇 살> 관련

이런 열광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25위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첫 시즌 이후로 꾸준히 밀려났다. 하지만 광고주들마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들은 이 드라마가 '고급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시청률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기꺼이 눈에 보이는 사실을 외면했다. 고소득 시청자들을 놓고 텔레비전 산업이 사용하는 이 용어는 업계에서 시장 지분이 줄어들고 있음을 감추려고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었다. (서른 몇 살>의 시청자 다수는 연 가계소득이 6만 달러 이상이었고 게다가 절반 이상이 3세 미만 자녀가 있었다. 그래서 반격을 통해 재미를 본 업종들은 (서른 몇 살)이라는 시류에 편승했다. 267

〈서른 몇 살)은 집에 틀어박혀 더없이 행복해하는 엄마에서부터 신경증에 걸린 노처녀, 위협적인 싱글 직장 여성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반격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펼쳐지는 신전과 같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여성운동을 직접 겨냥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매정한 인물은 페미니스트다. 268

이보다 더 기분 나쁜 싱글 여성의 초상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서른 몇 살>은 두 번째 시즌에 이르러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낸다. 바로 유머 감각이라곤 없는 페미니스트 수재나다. 수재나는 빈민가의 복지센터에서 노숙자와 구타당한 여성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전일제 사회복지사다. 수재나는 이런 이타적인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그녀를 인간미 없이 차갑고 뻣뻣하며 툭하면 으르렁대는, 친구 하나 없는 관념적 페미니스트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호프 무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녀를 싫어하고 ‘과도한‘ 독립성과 쿨하지 않은 정치적 열정을 조롱한다. 심지어 천사 같은 호프마저 뒤에서 수재나를 비웃는다.
결국 이 페미니스트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건 독신남인 게리다.
게리의 아이를 임신한 수재나는 낙태를 결심한다. 하지만 병원에 간 그녀는 생물학적인 시계가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난 항상 미루기만 하면서 살았어˝라고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게리에게 고백한다. “미래에 대해 더 이상은 가정만 하면서 살지 않을 거야.˝ 게리는 득의만면하고 수재나는 아기를 낳는다.
<서른 몇 살>의 전속 작가 앤 해밀턴은 이렇게 말한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모든 싱글 여성들이 불행하다는 느낌을 갖게 돼요. 이 여성들을 보면서 ‘아, 이젠 싱글로 살고 싶지 않아‘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 생각해 보면 겁이 나요.”  제작 회의에서 해밀턴은 ˝젖을 떼다˝ 에피소드에 반대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해밀턴은 아이를 낳고 난 뒤 일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건 마치 ‘다시 일하러 가면 넌 나쁜 엄마야‘라고 말하는 거였기 때문에 기분이 끔찍했죠.˝ 그리고 그 에피소드는 은밀하게 아내의 복종을 선전했기 때문에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 호프는 마치 마이클이 원하는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274



패션업계는 반격의 나팔을 울릴 때마다 가혹하게 몸을 구속하는 옷을 토해 냈고 패션계 언론은 여성들에게 이런 걸 입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후기 빅토리아시대 언론에 실린 코르셋에 대한 많은 남성들의 추천사 중 하나는 ˝소녀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자태와 감정으로 성숙하기를 원한다면 그녀를 꽉 묶어 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282

반격의 문화에 기여한 다른 공로자들처럼 패션계 상인들은 현대 여성은 여성성을 고갈시킨 과잉 평등 때문에 고통받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패션의 측면에서 반격의 주장은 여성해방은 여성들이 여성적인 옷을 차려입을 권리‘를 부정했고 1970년대의 출근복은 여성의 정신에 족쇄를 채웠다는 식이었다.
(…) 어찌나 절박했던지 패션업계는 유서깊은 관행마저 부정하기 시작했다. 패션계 홍보 담당자들은 여성성은 여성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오랫동안 침이 마르게 예찬해 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잘못된 옷을 입으면 이 영원한 여성적 본성이 지워질 수 있다고 여성들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쇼핑을 유도하는 가장 큰 동기 가 바로 개인의 불안이기 때문이다. 283

의류 제작자들은 여성들이 푸프 스커트를 입으려 하지 않으면 ‘또 다른 비하성 패션을 강요하곤 했다. 중요한 건 스타일의 내용이 아니라 그걸 강제로 입힌다는 사실이었다. 여성 소비자층의 고령화에 대한 시장 보고서가 넘쳐나는데도 이들의 디자인이 여성의 영아성으로 자꾸 퇴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성의 형태를 최소화하는 것이 여성에 대한 디자이너의 권위를 극대화하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980년대 말 런웨이에서 많은 이들이 그랬듯 테디베어를 안고서 아장아장 걷는 여성은 지시를 따르는 어린애였다. (1988년에 가장 인기 있는 런웨이 배경음악이었던) 조지 마이 클George Michael의 파더 피겨 Father Figure˝에 맞춰 통로를 걸어다니는 여성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딸이다. 어떤 여성복 디자이너는 몰 로이에게 현대 미국 여성들은 ˝이제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들이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이라고 생각하도록 설득할 수만 있다면 이들은 다시 고분고분해질지 몰랐다.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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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0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의 패션 잡지들과 시즌 별 유행 스타일들도 여성들에게 특정한 분위기를
주입하고 있다고 느껴요. 아직도 드레스 같은 옷들과 어딘지 인형의 옷 같은 레이스 달린
성인 의상들이 많으니까요. 레깅스도 그렇고요.

이런 책을 청소년기에 읽을 수 있었다면 많은 여성들이 (완전히는 아니어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교과서 따위...

독서괭 2023-09-02 15:4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패션잡지를 볼 기회가 적어서 잘 몰랐어요. 일단 마네킹 체형부터 바꿔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네킹 입은 옷이랑 내가 입은 옷이랑 같은 옷 맞나 싶을 때가 많아서 ㅋㅋㅋㅋ
청소년기 한창 외모 예민할 때 광고에서 주입하는 가치를 잘 걸러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은오 2023-09-01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으니까 미국페미들은 백래시 읽으면 얼마나 빡치고 시원하고 재밌을까 했던게 생각나요 ㅋㅋㅋㅋㅋ 전 백래시에서 인용하는 드라마 영화 잡지 인물 거의다 잘 모르니까 그냥 그랬구나 할뿐..ㅠㅠ

독서괭 2023-09-02 15:49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미국에서 그렇게 인기였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누군가 자료를 집적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당. 이 책 해제 쓰신 손희정 평론가님이 혹시..?

페넬로페 2023-09-01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부분은 지금 현재에도 계속 ing 중인거잖아요
오히려 더 심해진 듯 하기도 해요.

독서괭 2023-09-02 15:56   좋아요 1 | URL
초등학생 화장 거식증 이런 얘기 들으면 심난합니다 ㅠㅠ

햇살과함께 2023-09-02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장, 7장 재밌으면서도 너무 어이없는 사례들에 정말 욕이 한 바가지로도 부족한!
저도 오늘 8장 시작하렵니다!

독서괭 2023-09-02 15: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너무 어이없고 욕나오고!!
햇살님 저랑 진도가 비슷하시군요^^
 



5장 치명적이고 치기어린 상상

5장에서는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화 별로 안 보는 나에게도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특히 <위험한 정사>가 이 지경(?)이 된 과정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 영화를 안 본 것 같지만 안 봐도 알 것 같은 내용인데, 처음 작가가 썼을 때는 "바람 핀 남성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것! 그러나 이 인간 저 인간 간섭하고 뜯어 고치며 결국 개봉한 내용은 180도 뒤바뀌었다. '바람 핀 남성'의 윤리적 책임 같은 건 온데간데 없고, '유부남을 꼬신 꽃뱀'의 처참한 말로와 가정을 지켜낸 승리만이 남았다. 남자의 아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순종적 여성상이 되고(원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캐릭터였다고), 먼저 유혹을 한 것도 여자 쪽이 되며(원래는 남자가 파티에서 받은 여자의 번호가 적인 수첩을 찾아 전화를 거는 거였다고), 유혹한 싱글 여성은 완전 미친년이 되고, 그 말로는 부부에게 살해당하는 것(원래는 혼자 집에서 자살하는 거였다고). 영화 개봉 당시 관객들 중 남자들은 흥분하여 제발 저 나쁜 년을 죽여 버리라고 외쳐 대고, 여자들은 침묵했다는, 1980년대 영화가 추구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풍경까지. 



인용문


1970년대 여성 영화에 열광한 여성들은 남자 품귀 현상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30세를 넘긴 싱글 여성들이 아니라 복종과 억압, 고되고 단조로운 일상과 멸시에 살짝 맛이 간 교외의 주부들이었다. - 214

1970년대 여성 영화에서 분석의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미국의 결혼이었고, 대화는 전통적인 결혼 관계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헤집는다. ˝나 같은 여자는 두 배 더 열심히 일하지. 그래서 얻는 게 뭔지 알아? (업 더 샌드박스)에서 주부 마거릿으로 나오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는 역사학 교수인 남편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임신선과 정맥류라고. 당신은 한 가지 일을 하지만 난 아흔일곱 가지 일을 해. 어쩌면 난 〈타임> 표지에 실려야 할 사람이야. 올해의 걸레질 선수! 세탁실의 여왕! 팅커토이 전문가!˝   - 215

1980년대 미국 영화 산업은 독립적인 여성을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으로 묘사하고, 쾌락을 좇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영화 프로젝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싫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위험한 정사> 직후 개봉된 <패티 록스 Patti Rocks>(1988)를 제작한 그웬 필드Gwen Fiald 의 경험은 1980년대에 이런 주제에 대한 할리우드의 적개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척도라 할 수 있다. 필드의 영화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한 싱글 여성은 결혼을 피하고(˝결혼하면 살찐단 말야˝ 하고 그녀는 농담을 한다), 성관계를 즐기고, 흔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선택을 하지만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그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패티 록스>는 비평가들로부터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할리우드의 수호자들로부터는 반감과 거부감 말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필드는 영화사들로부터 차례차례 외면당했는데, 매번 이유는 같았다. 이들은 영화가 아무하고나 즐기는 성관계에 탐닉하는 싱글 여성을 보여 주기 때문에 메시지가 ‘무책임‘하다고 그녀에게 말했다(발정난 총각들이 아무데나 씨를 뿌리고 다니는< 세 남자와 아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같은 도덕적인 우려를 표출하지 않았다). - 229

1980년대 말 이런 류의 많은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은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더 이상 끝까지 노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똑같은 영화에서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다. 반격 성향의 1950년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여성들은 결국 스크린에서 밀려남으로써 침묵당한다. 1980년대 말에 만개한 터프가이 영화에서 남성 주인공은 남자밖에 없는 전쟁 지역과 황량한 서부로 향한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전쟁 영화와 액션 영화의 폭력 수위가 올라가면서 (<프레데터>, <다이하드>, <다이하드 2>, 〈로보캅>, <로보캅 2>, 〈리쎌 웨폰>, <폭풍의 질주>, <토탈리콜〉) 여성들은 말없고 부차적인 캐릭터로 축소되거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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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23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장에도 영화 ‘위험한 정사‘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오는데 저는 둘 다 봤거든요
해리~~는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봐야 할 것 같고
위험한 정사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유부남이었다는 게 문제였죠~~
5장에서 어떻게 서술되어 있을지 궁금해요.

건수하 2023-08-23 21:07   좋아요 3 | URL
해리~ 를 어릴때 봤을 때 멕 라이언이 ㅇㄹㄱㅈ 연기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2장에 나왔던 건… 그사 기억이 안 나네요?;;;

독서괭 2023-08-23 21:17   좋아요 1 | URL
저 해리는 봤을 것 같은데 정말 기억이 안 나요 ㅋㅋ 맥라이언 영화 한때 많이 봤는데..^^
저도 2장에 해리가 나왔던가 기억이 안 납니더 ㅋㅋㅋ

미미 2023-08-23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에일리언>같은 영화는 여성이 다 쓸어버리니 뭔가 통쾌했는데 시리즈 전체로 보면 진짜 힘은 역시 남성사회에 있더군요. 한참 앞서 나가고 계신 괭님 파이팅입니다.^^
저는 슬금슬금 거북이처럼, 그러나 흥미진진해서 잘 읽고 있어용.ㅎㅎㅎ
괭님 백래시 관련해서 쓰신 글들 다 너무 좋아요!

독서괭 2023-08-23 21:18   좋아요 1 | URL
전 그 유명한 에일리언도 안 봤네요^^;;; 시리즈 전체로 보면 느낌이 다르군요? 쩝…
워낙 두껍다 보니 다 잊어먹을 것 같아서 한장 읽을 때마다 정리중입니다. 대충이나마^^ 감사해요 미미님, 미미님도 꾸준히 끝까지!

미미 2023-08-23 21:47   좋아요 0 | URL
음음 괭님! 제가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며 좀더 생각해보니 함께 읽은<여성괴물>도 떠오르고 에일리언은 (본래 만든 목적이 어떻건)기존의 통념을 깨는 측면이 더 강하네요. 정정합니다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3 19: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킴 베이싱어 주연 나인하프 위크 부분 읽고 분노의 페이퍼 썼던 기억이 나네요. 위험한 정사는 백래시 읽다 보려고 다운 받고 보진 못했네요. 여자가 유혹했어도 어차피 남자가 아내 두고 바람핀 건 사실인데 가정 지킴 운운하다니. 아 짜증나..

건수하 2023-08-23 21:04   좋아요 1 | URL
게다가 부인이 죽이는 결말도 싫더라구요!

독서괭 2023-08-23 21:20   좋아요 1 | URL
분노의 페이퍼 찾아봐야겠네요 ㅋㅋㅋ 저 옛날에 나인하프위크 봤었는데.. 그나마 기어다니며 돈 줍는 거 시킨 후에는 여자가 떠나죠? 그것도 결말을 요상하게 바꾸려고 했었다니 거참…

잠자냥 2023-08-23 22:47   좋아요 2 | URL
이 책 읽으니 킴 베이싱어 불쌍… ㅠㅠ 요새 같으면 폭로해서 그 감독 묻어버렸을 텐데!!

건수하 2023-08-23 22:48   좋아요 1 | URL
킴 베이싱어 LA 컨피덴셜에서도 불쌍했는데 ㅠㅠ

건수하 2023-08-23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어제 오늘 5장 듣고 다시 또 들으며 열받았습니다…. 😤

독서괭 2023-08-23 21:21   좋아요 1 | URL
부인이 죽이는 결말이 딱~ 가정을 복구하는 건가봐요 그자들 생각에는? ㅋㅋㅋㅋ 6장에는 tv시리즈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수하님 고고!!

건수하 2023-08-23 23:41   좋아요 1 | URL
그니깐 지가 잘못해놓고 복구는 왜 부인이 하냔 말이죠 진짜 무책임함…

잠자냥 2023-08-23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많이 봤어서 그런지 이 장하고 광고 다룬 장(특히 게스 청바지 18놈들 -.-)이 흥미롭더군요…..

건수하 2023-08-23 23:41   좋아요 1 | URL
아 그 모델 생각나네요 ㅜㅜ 안나 니콜 스미스… 집사2가 좋아하는 -_-

독서괭 2023-08-27 08:22   좋아요 0 | URL
역시 잠자냥님, 영화 부분 아시는 게 많았을 듯요! 게스 청바지 18놈들 아직 못 읽었는데 궁금하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3-08-27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거의 안 봐서 그런지ㅋㅋㅋㅋ 이 책 읽을 때 영화랑 감독, 배우이름 나올 때 좀 멀게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가끔 검색해 보기는 했지만 계속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보면서 아~~ 하고 있어요. 백래시 같이 읽으시니 이런 점도 좋네요!!

독서괭 2023-08-27 08:24   좋아요 0 | URL
저도요.. 통 몰라서 ㅋㅋ 다음 장 드라마는 더 모르겠는데 그래도 꽤 재밌더라구요. 미국상람들은 훨 재밌게 읽었겠지요? 여성주의책읽기 모임에서 이 책 예전에 같이 읽으신거죠?

단발머리 2023-08-27 08:51   좋아요 0 | URL
네~~~ 무려 첫번째 책이었습니다^^ 쪽수 계산하며 헉헉대며 읽었던 기억이 어제 같네요 (2018년) ㅋㅋㅋㅋ 독서괭님이 반장이신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도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