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은 강제적이라는 (또는 적어도 설득을 강제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된 결론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남성작가가 반복적으로 규정해왔던 여성에 대한 은유를 (마치 그 은유가 암시하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라도 하듯) 자신의 작품에서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응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의 문학 연구 방법론은 문학사가 강력한 행위와 그에 대한 불가피한 반작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블룸의 전제에 기초한다. 나아가 가스통 바슐라르, 시몬 드 보부아르, J. 힐리스 밀러 같은 현상학 비평가들처럼 우리는 ‘은유를 낳는 경험’과 ‘경험을 낳는 은유‘ 둘 다를 묘사하고자 했다. - P21, 22


문학작품은 설득을 강제한다!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 바와 같이, 1장에서부터 저자들은 또박또박 18~19세기 여성작가들의 창조를 가로막았던 문학(문화)의 압력을 진술해 나간다.


과학이 강하고 우리가 부드럽다면, 그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우리가 캠퍼스에서 문화 변용과 사회화라는 점잖은 아내의 일을 하는 반면에, 남자 천체물리학자들은 화성에 우주선을 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상을 풍부하게 받는 과학자들이 습득하기 힘들고 어려운 그들만의 언어로 말하는 세계에서 이전에는 평범하게 말했던 소박한 우리 인문학자들 역시 어려운 사적 담론(말하자면 우리끼리 쓰는 특수 용어, 우리 영역의 신참자들에게 미생물학자와 지질학자의 전문성을 나타내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언어적 통달을 제공해줄 전문용어)에 대한 유일한 접근권을 열망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철학적 사회문화적 상투어를 파괴하는 흥분과 함께 ‘이론‘은 일상의 언어를 ‘의문시해‘ ‘사람‘ 대신 ‘주체‘나 ‘주체성‘으로, ‘책들‘ 대신에 ‘언어의 장들‘로 대체함으로써 전문성을 보증하는 ‘담론‘을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이론‘은 심지어 캠퍼스 밖 우리의 고객이었던, 울프가 말한 교양 있는 ‘보통 독자‘로부터도 우리를 유리시켰다.

(...)  반면, 시인으로서, 또한 평범한 독자로서, 작가이자 교수로서 나는 일상의 삶과 비평을 위해 에이드리언 리치가 품었던 ‘공통 언어를 향한 꿈‘에 공명한다. -P62, 63


이 부분은 저자들이 쉽고 대중적으로 문학사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밝힌 것인데, 뭔데, 에이드리언 리치,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라니 멋있고 난리람.. 읽고 싶어지게.. 


1장, 첫 부분에서는 펜=페니스로 여겨지는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에 관해 설명한다. 

철저히 가부장적으로 전개되는 문학작품에 몰입할 때, '존재의 용해'가 일어난다는 말은 흥미롭다. 

20대까지 읽은 책 대부분이 남성 작가의 작품이었다. 특히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필독서들은 거의 남성 작가의 것이다. 그 안에 나를 이입할 때,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여성 인물에 이입하든 마음에 드는 남성 인물에 이입하든 여성이 거기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전제에 깔린 남성 세계다. 여자아이들에게 우리는 여성작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더 많이 읽힐 필요가 있다.



핀치가 (빈정대는 어조이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심정으로 남성의 요구와 의도를 수용한다는 사실은 문화적 구속의 강압적 힘과 더불어 그 힘을 구현한 문학작품의 강압적 힘까지 뚜렷이 드러내준다. 왜냐하면 학식 있는 여성들은 ‘멍청해지라고 요구받고 그렇게 키워진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리오 베르사니가 말하듯, ‘글은 단순히 정체성 묘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정체성, 나아가 육체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 우리는 문학에 몰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종의 존재의 용해, 혹은 적어도 존재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 P85


남성 작가들은 대대로 ‘말의 그 무한한 일람표‘에 새겨넣은 여성 ‘인물‘에 대해 가부장적 소유권을 취했다.
(...) 역사상 소설을 소설로 반박할 수 있는 도구인 펜/페니스가 없었던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재산으로, 또 남성 텍스트에갇힌 인물과 이미지로 환원되어 왔다.  - P87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고에 따라 남성의 텍스트, 그림, 그래픽 속에 ‘갇혀' 있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우주론 속에서(죄 많은 결함투성이로) ‘날조되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자신이 문학작품의 소도구 이상이라고 느끼는 여성에게는 권위가 제기하는 문제가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일 수 없다. 여성에게 이 문제는 (앤핀치와 앤 엘리엇이 표현한 고통이 보여주듯이) 심리적이다. 여성은 그토록 철저하게 금지당했던 펜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가부장제와 문학작품에 의해 종속되고 감금당했기 때문에, 남성 텍스트들을 피해야 한다. 그 텍스트들은 여성을 ‘영’으로 규정하고, 여성에게 (여성을 가두고 펜을 들 수 없게 만드는 권위에 맞서 대안을 만들 자주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 P89


‘예술가는 경험을 죽여서 예술로 만든다. 일시적인 경험이 죽음을 피할 유일한 길은 예술 형식의 ‘불멸성’ 속으로 죽어서 들어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 속의 고정적 ‘삶’과 자연 속의 유동적 ‘삶‘은 속성상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펜은 칼보다 더 강할 뿐만 아니라 죽이는 힘(그 필요성)도 칼과 다를 바 없다. - P90


1장 후반부에서는 천사와 괴물이라는 대립적인 이미지로'만' 형상화될 뿐인 여성들에 대해 서술한다. 

작가에게 필수적인 '자아 정의', 그러나 남성 작가들의 시선에 의해 왜곡당한 문학들을 접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을 여성 작가들에게는 자아 정의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는 간단하게 '집 안의 천사' vs 혐오감을 자아내는 '괴물' 둘 중 하나다. 

이 부분을 읽으며 든 생각은, 예로부터 남자들이 "여자는 정말 모르겠다니까!" 하며 여성을 이해하기 어려워한 데는 자아상이 왜곡된 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실제 모습을 숨기고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을 추구해야만 하는 여성의 내면은 늘 복잡할 수밖에 없고 상반된 특성들이 불쑥불쑥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남성들 눈에는 그것이 여성의 변덕이나 복잡함, 비논리성으로 여겨질 뿐이었을 지도. 



(...) ‘천사‘와 ‘괴물‘ 이미지는 남성이 쓴 문학 전반에 퍼져 있을 뿐아니라, 두 이미지 중 어느 하나라도 확실하게 죽인 여성은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문학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 모든 작가에게 자아 정의는 자기주장보다 반드시 선행한다창조적인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한다면 언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에게 자아 정의의 본질적 과정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끼어든 모든 가부장적 정의 때문에 복잡해진다.  - P95


다시 말해 오노리어의 본질적 미덕은 그녀가 남자를 ‘위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녀 자신은 위대하지도 않고 뛰어나지도않다.  - P103


빅토리아 시대의 천사 같은 여자는 가정 안에 갇힌 채 남편의 ‘의미 있는 행위의 삶‘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피와 땀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신성한 안식처가 되어야 하며, ‘명상적인 순수함‘으로 신 같은 타자성을 상기시키는 살아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06


여성을 괴물로 만드는 가부장제적 심리를 설명한 부분은 <여성 괴물>에서 접했던 내용이다. 

*역시 보부아르는 날카롭다.. 내년에는 꼭 <제2의 성>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스펜서의 ‘에러’나 밀턴의 ‘죄‘처럼 여신 비판은 새끼 치고 먹고 토하고 먹이고 다시 먹어 치우는 영원한 생물학적 순환과 관련되어 있다. 세 시인 모두 이런 순환이 초월적 지적 삶에 파괴적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각각의 괴물 같은 어머니가 만들어낸 창조물은 전부 그녀의 배설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배설물은 전부 그녀의 음식이자 무기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새끼와 함께 자폐적인(서로를 잡아먹는 유아론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 P120


여성 괴물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본보기다. 남성이 자신의 육체적 실존, 즉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능감에 대한 모든 양가적인 감정을 바로 여성이 대변하도록 만들어왔다는 주장 말이다. 타자인 여자는 삶(파괴되도록 만들어진 삶)의 우발성을 나타낸다. ‘남자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육체적 우발성에 대한 남성 자신의 공포‘라고 보부아르는 말한다. - P121


모든 괴물 여자와 연관되어 있는 성적 혐오는 왜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여성 신체에 대해 혐오감을(또는 적어도 불안감을 끊임없이 표현해왔는지 설명한다. 예술 작품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치장하고 꾸미고 광적으로 거울을 보는 일, 냄새와 노화 걱정, 항상 너무 곱슬거리거나 너무 반듯한 머리카락 걱정, 너무 야위거나 너무 뚱뚱한 몸 걱정)은 여성이 천사가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성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입증한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여성의 변덕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남몰래 품고 있던 여성에게는 위압적인 훈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 P122


예로 드는 '릴리스' 이야기와 백성공주 동화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다. 

릴리스는 얼마전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바로 아담의 첫번째 부인이라고 알려졌다는 인(?)물. 호, 흥미로운데? 망겔의 책에서 봤을 떄는 신이 났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만 알고 있다가, 흙으로 직접 빚어졌다는 릴리스, 아담의 아래에 눕기를 거절하고 자기 마음껏 말하고 행한 아담의 부인이라니! 하지만 이 책에서 릴리스 이야기를 해석한 걸 보니 우울해진다. 여성의 주제넘음에 대한 잔혹한 처벌의 이야기라니.. ㅠㅠ 



릴리스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의 말과 여성의 ‘주제넘음‘ (남성 지배에 대한 분노에 찬 저항)은 불가분하게 뒤엉켜 있으며 필연적으로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는 물론 심지어 성경의 반신적인 공동체 연대기에서도 배제당한 릴리스는 여성이 자신을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보여준다. 실로 끔찍한 대가다. ‘달아났기‘ 때문에, 그리고 명명하는 행위에 암시된 문학의 권위를 감히 강탈하려 했기 때문에, 릴리스는 복수(아이 살해)에 갇히고 이로써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고통으로) 더욱더 고통스러워지는 저주를 받았다. - P123



백설공주가 가부장적 메시지를 듬뿍 담고 있는 동화라는 거야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 해석하는 내용을 보니 몰랐던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특히 백설공주와 여왕(왕비?)이 한 사람의 양면과 같다는 해석. 그리고 늘 왕은 코뺴기도 비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거울의 목소리가 왕의 목소리라는 것. 그리고 죽었다고 표현되는 백설공주의 친모와 마녀인 여왕이 같은 인물일 수 있다는 것(그림형제 원작에서는 친모=마녀라고 하니..)에 관해서, 이제 그녀는 왕, 즉 가부장제의 목소리를 완전히 내면화했기 때문에 더이상 왕은 등장할 필요가 없고 그녀를 비추는 거울로 충분하며, 또 여왕이 그처럼 변모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설공주의 결말 또한 같은 길을 따르리라는 해석이 아주 흥미로웠다. 



두 여성은 가부장제가 그들 스스로를 죽여서 예술로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권하는 도구(마법의 거울, 마법에 걸린 유리 관, 마법을 거는 유리관 등)를 무기로 휘두르며 솜씨를 부려 문자 그대로 서로를 죽이려 한다.  - P125


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 거울의 목소리는 분명 왕의 목소리다. 그것은 여왕의 (그리고 모든 여자의 자아 평가를 지배하고 심판하는 가부장적인 목소리다.   - P127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백설공주에 대한 증오심을 야기한 것은 자아도취 의식을 행하는 여왕의 강한 절망인 것 같다(또는 증오심인 것 같다). 순결하고 수동적이며 여왕을 소모시키는 거울에 대한 광기로부터 자유로운 자아-부재 상태의 백설 공주는 이야기 서두에서 여왕이 진작 내버렸던 체념의 전형을 표현한다.   - P128


여왕은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할 양으로 세이렌의 빗과 이브의 사과 같은 여성적 계략을 전복적으로 사용해 천사같은 백설 공주를 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술수는 딸을 통해 자신이 실현하려던 바와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백설공주가 수동적인 처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공주를 영원히 아름답고 생명력 없는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바로 가부장적 미학이 젊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광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왕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인습적인 기술은 죽을 만큼 고통을 준다. 그러나 온순하고 자아가 없는 공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여성의 기술이, 그 기술이 자기를 죽이긴 해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이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 수단을 제공한다. - P130


일곱 난쟁이는 그녀 자신의 위축된 권력, 발육 부진의 자아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베텔하임이 지적했듯, 그들은 백설 공주를 여왕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순종적인 여성성을 교육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백설 공주는 난쟁이들을 돌봐주면서 봉사, 이타심, 온순성이라는 기본 교훈을 배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백설 공주가 작은 집에서 집안일을 해내는 천사라는 사실은 ‘여자의 세계와 여자의 일‘에 대해 이 이야기가 취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가정 영역이란 최상의 여자가 난쟁이처럼 되고 난쟁이의 하녀가 되는 왕국의 축소판이다. - P131


사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백설 공주가 드러내는 유일한 이기심은 변장한 살인자가 주는 코르셋의 끈과 빗과 사과에 대한 ‘자아도취적‘ 욕망이다.   - P131


백설 공주가 처한 운명의 순환은 냉혹하다. ‘명상적 순수성‘을 거부한 백설 공주는 이제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여성에게 그런 삶은 바로 마녀의 삶이라 규정된다. 그런 삶은 매우 괴물 같고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에러, 두에사, 루시페라처럼 기괴한 백설 공주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방에서 잘못된 기술을 연마할 것이다. 릴리스나 메데이아처럼 자기 파괴적인 백설 공주는 자녀 살해와 그 시도에 내재한 자기 살해를 결심한 살인자가 될 것이다. 결국 그녀 자신이 고안한 빗과 코르셋처럼 확실하게 여성의 복식인 불타는 구두를 신은 채 백설공주는 이야기, 거울, 자아상으로 만든 투명한 관 밖에서 끔찍한 죽음의 춤을 말없이 출 것이다. 이 죽음은 그녀의 유일한 행위는 죽음의 행위이며 자아 파괴라는 치명적인 행위임을 암시할 것이다. - P133, 134


「노간주나무」는 남자아이가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자기 확신과 자기표현을 향한 성장이며 언어의 힘을 발전시키는 일임을 암시한다.   - P134


여자아이가 주인공일 때(백설공주)와 남자아이가 주인공일 때(노간주나무)의 차이를 지적한 점도 흥미롭다.

1장 마무리는 멋있게 끝내는 저자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밑줄을 많이 그어서 옮기는 것만도 한참 걸렸다(물론 이 많은 걸 타닥타닥 치지는 않았고, 북플의 기능을 이용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신난다. 이런 멋진 책 읽자고 한거, 대체 누구야? 누구?



 오늘 아침에는 4:30경 깨는 바람에(물론 귀염둥이 둘째 때문이다) 둘째는 금방 다시 잤지만 나는 금방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게다가 둘째가 또 6시쯤이면 깰 것 같아서, 그냥 책을 읽었다. 둘째가 6:30에 깨준 덕에 <아그네스 그레이>를 절반 정도 읽었고, 둘째와 함께 조금 더 잤다. 

 브론테 자매 중 막내인 앤 브론테의 작품 <아그네스 그레이>는 표지에 쓰인대로 '모슬린처럼 수수한' 작품이다(특히나 언니들 작품에 비교해보면). 작가 자신이 가정교사를 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풀어낸 걸로 보이는데, 전반부는 대체로 고생한 이야기다. 당시 가정교사는 집안마다 달랐겠지만 종종 하녀와 유사하게 무례한 취급을 당한 듯한데, 처음 간 집에서 어린아이들 (6세, 7세)을 맡게 된 아그네스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신분과 관계없이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덕성, 품행, 배려심 등)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당연히 그 부모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중반부, 드디어 아그네스의 높은 도덕적 품성과 어울리는 남성 목사보가 등장하는데..! 둘 사이에 로맨스가 펼쳐질 것인가? 수수하지만 쉽게 술술 읽히고 나름 재미도 있다. 




오늘 저녁엔 얼른 퇴근해서 아이들과 개기월식을 봐야 한다. 잘 보일까? 두근두근!!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는 (사회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불가능하기에) 여성이 문학에 관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남성의 섹슈얼리티가 문학 권력과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사상가 오토 바이닝어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은‘ 문학 권력이 없기에 ‘존재론적 실재를 [남성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부권/창조성 은유가 나타내는 암시는 또 있다. 여성은 문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능의 대상으로서 남성의 행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바이닝어와 사우디의 편지에 공히 드러나는) 생각이다. - P81

다시 말하면, 여성은 펜이 나타내는 자율성(주체성)을 부정당하기 때문에 문화로부터 (문화의 상징은 펜이니) 배제되는 한편 스스로 신비한 타자와 비타협적인 타자라는 양극단을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이 타자를 숭배와 공포, 사랑과 혐오로 마주한다. 여성은 ‘유령, 악마, 천사, 요정, 마녀, 정령‘으로서 남성 예술가와 미지의 것 사이를 중재하며, 동시에 남성 예술가에게 순수함을 가르치고 그의 타락을 지적한다. - P99

여성의 순종하는 삶, ‘명상적인 순수한 삶은 침묵의 삶이요, 이야기도 없고 펜도 갖지 못한 삶인 반면, 반항하는 여성의 삶,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은 침묵을 강요받고 괴물 같은 펜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말하는 삶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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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08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장 길지만 저도 잼나게 읽었어요^^ 아그네스 그레이 수수해서 소소한 포인트가 있군요ㅎㅎㅎ

독서괭 2022-11-09 11:00   좋아요 0 | URL
아그네스 그레이는 아직까지는 뛰어난 소설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그래서 언니들만큼 안 유명한가) 그 시대 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좀 귀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다락방 2022-11-08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부르셨어요? 데헷~

많이 읽으셨네요 독서괭님! 부럽.. 공통 언어를 향한 꿈 멋있고 난리람~ 네 풋 웃었어요 ㅋㅋ
독서괭님 이 글에서 독서괭님이 재미있어 하시는게 뽝 느껴집니다. 계속 화이팅!!

독서괭 2022-11-09 11:01   좋아요 0 | URL
오셨군요! ㅋㅋㅋ
1장 읽었을 뿐인데 많이 읽었다니 ㅎㅎㅎ 다락방님은 맘 먹으면 진도 쭉쭉 빼실 텐데요. 페미니즘 책 읽으며 멋진 언니들 많이 발견해서 좋습니다^^
다락방님, 함께 화이팅해요~!

책읽는나무 2022-11-08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미친 듯 재미나게 읽으시는 미친 독서괭님!!ㅋㅋㅋ
이런 내용이란 거죠??
저도 천천히 최대한 빨리 읽겠습니다.
브론테 자매들 작가 DNA는 참 대단하군요?
둘째는 엄마 책 읽도록 알아서 코~ 자 주고^^
괭님 몸 상할라~ 건강 잘 챙기세요^^;;;

독서괭 2022-11-09 11:04   좋아요 1 | URL
ㅎㅎ 책나무님, 제가 애들이랑 동화책을 많이 읽다보니 동화속 성차별 메시지에 관심이 많은데, 백설공주 자세히 분석한 내용이 너무 재밌었어요^^ 책나무님도 곧 시작하시겠군요!
브론테 자매들이 함께 책읽고 쓰고, 참 좋습니다. 하지만 에밀리브론테 죽고 얼마 후 앤브론테도 29세(?)쯤에 사망했다고 해요 ㅠ 찾아보니 그나마 샬럿 브론테가 38세로 가장 오래 살았네요..
걱정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겨야쥬!!

잠자냥 2022-11-08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요미 둘째는 엄마를 책 읽게하는군요! ㅋ

독서괭 2022-11-09 11:05   좋아요 1 | URL
엄마 책 읽으라고 깨운 걸까요. ㅋㅋㅋ 요즘 말썽 많이 부리는 귀요미 ㅠㅠ

잠자냥 2022-11-09 12:1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문제는 우리 귀요미 둘째도 요즘(?), 늘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저를 깨운다는 것입니다!
화장실 간다고 문 열어 달라고 하고는.......턱시도 입고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 -_-;;;
저는 그 시간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생각뿐... 괭님 대단해요. ㅋㅋㅋ

바람돌이 2022-11-08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전에 먼저 읽으신 분들 글 보면서 미리 열심히 예습중입니다. 역시 약삭빠른 바람돌이!!! ㅋㅋ

독서괭 2022-11-09 11:06   좋아요 1 | URL
오 바람돌이님, 예습 후 바람처럼 빠르게 진도 나가시려고요! ㅎㅎ 같이 읽어요^^

- 2022-11-09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찌지뽕! 저와 진도 같습니다! 저도 1장 끝내고 2장 넘어가기 전에 제인 오스틴 밀린 거 읽을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오늘 밤에 책을 정리하면서 글을 쓸까 말까도 고민 중입니다...
독서괭님이 적어주신 릴리스, 저도 너무 흥미롭게 읽었어요. 릴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더 읽고 싶은 데,(악마의 자식을 백을 낳았다니 ㅋㅋㅋㅋㅋ) 있나 없나... 호홋.

독서괭 2022-11-09 11:09   좋아요 2 | URL
찌찌뽕! ㅋㅋ 제인 오스틴 저는 <오만과 편견> 밖에 안 읽어서.. 하지만 이 책 서문에 메인이 샬럿 브론테라고 한 걸 보고 <빌레뜨>를 주문했습니다. <제인에어>는 옛날에 두번 읽어서.. 안 읽어도 되겠..져? ㅋㅋ
릴리스 정말 놀라웠어요. 릴리스 관련 이야기 발견하면 공유하자구요 ㅎㅎ

잠자냥 2022-11-09 12:11   좋아요 2 | URL
쓰라!쟝쟝
쓰라쟝!

단발머리 2022-11-10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설공주 이야기 무척 인상깊었어요. 저는 왕비가 사실은 친모다... 이런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거울의 소리가 왕의 목소리다, 그 부분이 참... 가부장제의 내면화, 여기랑 닿아서 신기하면서도 놀라웠어요.

저는 읽는데 치중하느라 ㅋㅋㅋ 정리를 못 하면서 읽고 있는데 독서괭님 페이퍼 읽으니 쫘악 정리가 되서 넘 좋으네요. 앞으로도 많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근데, 어느 집이든 둘째들은 왜... 전부 귀염둥이인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1-17 15:55   좋아요 0 | URL
아이고 pc 접속이 오랜만이라 이제야 대댓을 답니다. 단발님 잘 지내시죠? ㅎㅎ
거울의 소리가 왕의 목소리라는 말에 소름이 쫘악 =ㅁ=;;
정리하면서 읽어가지 않으면 이 벽돌을 소화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ㅋㅋ 정리를 계속 하려고 하는데요, 지금 4장 읽는 중인데 2, 3장 묶어서 정리해야지 하고는 못하고 있습니다.
막내들은 귀엽둥이로 태어날 운명인가봐요 ㅎㅎㅎ

프레이야 2022-11-1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네스 그레이 오래전 읽었는데 수수하지만 똑부러지죠. 앤의 화신 아그네스. 앤도 너무 일찍 죽어서 안타까워요. 더 오래 살았더라면 언니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을 냈을건데요. 불쌍한 세 자매. 1장 총체적이고 의미있는 내용이었어요

독서괭 2022-11-17 15:57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이미 오래전에 읽으셨군요! 자전적 소설이라는 게 딱 느껴지더라고요. 진짜 브론테 자매들 더 오래 살았다면 좋았을텐데 안타까워요 ㅠㅠ 셋이서 같이 작품활동도 하고 우애가 깊었을 듯한데..
1장 좋았어요. 4장은 오스틴 작품 여러개가 막 섞여나와서 예습을 할걸 그랬다 후회중입니다^^;;

레삭매냐 2022-11-1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타인의 해석이 아닌 자신
만의 고유한 해석을 추구하는
게 바로 독서인이 아닌가 싶네요.

독서괭 2022-11-17 15: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레삭매냐님! 어떨 땐 같은 책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우리가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만큼 서로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고 중점을 둔 부분이 다르고 받아들인 해석이 다를 때가 있어 깜짝 놀랍니다.
나만의 고유한 해석을 한다는 게 매력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