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견출판사 생각의나무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는데, 소식을 접하자 마자 절판이 염려돼 구한 책은 켄트 가이의 <사고전서>(생각의나무, 2009)이다(알라딘에는 이미 품절이어서 교보에서 구했다). 청 건륭제 때 편찬된 이 방대한 서물을 다룬 저자의 하버드대 박사학위논문이다. 건륭제 혼자만의 열람을 위해 편찬했다는 사고전서는 대략 3,600여 종, 36,000여 책, 79,000여 권 규모라 한다. 거의 책으로 쌓은 만리장성이라 할 만하다. 어제 교수신문에서 이 사고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접했다. 어림계산으로 200년이 걸리는 작업이라 한다. 한여름밤의 몽상일는지 모르지만 그럴 듯하게 여겨져 스크랩해놓는다.      

  

교수신문(11. 07. 18) 우리 학계에 존재하는 상상력의 빈곤

나는 2003년부터 7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朱子大全』과 『朱子語類』를 번역하는 연구팀의 일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고전의 번역 과정에서 역주의 필요성 때문에 참고문헌을 뒤적이는 일은 모든 번역자들이 마주치는 일상의 다반사다. 거기에 수반되는 두통과 지끈거림은 겪어본 이들은 모두 공감한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로 구축된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타이완 중앙연구원의 25사 원문 서비스, 그리고 문연각본 『四庫全書』를 디지털화 한 전자판 『사고전서』였다. 작업 도중에 정확한 서지사항의 표기를 위해 원문 확인이 필요한 경우 전남대 도서관 4층의 고한적실을 이용했다. 거기에는 상무인서관에서 출판한 『사고전서』의 영인본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거의 매일 도서관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고전서』에 수록된 책들을 다 번역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이 총서는 현대적인 제책으로 1천501권이고, 한 쪽 당 10행 20자 원문이 4면씩 축소 영인돼 있다. 실제로 전체 분량은 단행본 6천여권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평균 쪽수가 1천쪽이라고 간주하고 일반적인 한문 고전의 번역 관행을 적용할 경우, 1만8천 권 정도로 이뤄진 학술 총서가 발행된다. 어림잡아 2만여권 내외의 번역물이 예상되는 것이다.

연인원 200명을 기준으로, 개인당 2년에 단행본 한 권씩 번역한다고 가정할 경우 약 200년이 소요된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학술 연구 교수의 수준을 적용해서 1인당 연간 3천600만원의 인건비를 책정한다면 1조 4천400억 원이 필요하다. 결국 1조 5천억 원 정도와 연인원 200명, 200년의 시간이 번역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현재 기준으로 5조원 정도의 예산을 300년 정도 투입하는 선이면 가능할 것이다.

2만권의 번역본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만나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탄생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四庫學’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것의 내용은 중국학, 동양학, 고전학, 문화학, 신화학, 천문학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여러 가지 학문의 상호착종과 교차를 특징으로 삼는다.

현대적 용어를 빌리자면 ‘인지적 유동성(cognitive fluidity)’혹은 ‘개념 혼성(conceptual blending)’이라고 불리는 인지적 능력은 자신의 창발적 활동을 위해 이러한 지적 배경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포코니에와 터너가 말했다시피 ‘인간의 문화와 사고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인간의 문화와 사고는 이미 이용 가능한 정신적 구성물과 물리적 사물로부터 작동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이란 이런 현대적 이해를 예언하는 고풍스런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주된 이유가 하나 있다. 어째서 우리 학계에는 겨우 100년을 유지하는 학술 계획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 인문학의 전통을 최초로 개인 문집을 남긴 최치원의 『계원필경』으로부터 잡더라도 벌써 1천300여 년이 흘렀다. 이 학문의 역사 속에 겨우 1세기를 지속 기간으로 하는 비전과 목표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빈곤을 생각해보면 왜소함과 답답함에 현기증을 느낀다. 학술계에서조차 이런 상상이 불가능하다면 어느 영역에서인들 같은 것이 가능하겠는가.

1세대가 시작하고, 2세대가 골격을 세우며, 3세대가 지붕을 올려 완성하는 상상의 학술 생태계를 그려보는 우활한 몽상은 대체적으로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경ㆍ사ㆍ자ㆍ집의 四大江이 현대 한국어로 미래의 인지적 상상력과 만나서 문화의 꽃을 피우는 몽환경은 삽질이란 평이한 낱말의 사용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삽질이라는 낱말은 삽이 꽂혀야 할 곳으로서 대상화되는 저 자연의 사대강 속에서 자신의 깊은 의미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낱말의 의미는 가정된 대상과의 지칭 관계가 아니라 다양한 사용 속에서 발견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런 종류의 삽질을 위해서는 창조성이 폭발하는 무형의 문화 공간을 상상하고 그려내야 하는 도저한 상상력이 필요한 만치, 빈곤한 상상력에 감식안마저 무딘 누군가에게는 사대강이 콘크리트로 정돈되는 데 필요한 몇 년마저도 터무니없이 길게만 느껴지질 것이다.(이향준 전남대 박사후연구원·철학)  

11. 07. 23.  

P.S. <사고전서>의 번역자는 중국사 전공자로 <사고전서> 외 유익한 책을 여럿 우리말로 옮겼다. 벤저민 엘먼의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예문서원, 2004)도 그중 하나인데, 나머지 책들도 모두 구해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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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7-27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있는 글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정사 24사를 누군가 나서서 번역했으면 합니다. 사기는 완역이 나온 것 같은데 한서 삼국지쯤 가면 초역이고 그 이후는 번역이 아예 없는듯합니다. 만일 중국 정사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으면 여러 후속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20년간 한국학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조선왕조실록 완역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중국과의 교역이 이미 미국을 넘어선 시점에서 중국역사 연구의 시초는 바로 중국 24사의 번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꿈일까요.

중국 정사 24사는 뉴욕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 공립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데 한문으로 된 것이라 전혀 접근이 불가합니다. 쩝 (미국 공립 도서관은 정말 놀랍죠, 대학 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고요)




로쟈 2011-07-27 22:10   좋아요 0 | URL
24사 번역은 20년쯤 걸릴까요?^^;
 

잠깐 마트에 나가는 길에 우편함에서 꺼내든 책은 평소 두 권 분량으로 나온 '기획회의'(300호)이다. '한국의 저자 300인' 특집에 차출돼 나도 인문 분야 저자들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다. 다행이다 싶은 건 분량상 길게 언급하지 못한 저자들을 다른 코너들에서 '체크'해주고 있다는 점. '키워드별'로 살펴보고 '분야별'로 다시 한번 걸르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 시대의 저자들이 궁금한 독자라면 유용한 자료로 삼을 만하다. 11개의 '분야별로 살펴보는 한국의 저자' 가운데, 내가 맡았던 '인문' 꼭지를 옮겨놓는다. 명단이 주어진 상태에서 몇 명을 더 얹어 작성한 것이다. 제목과 소제목은 편집자가 붙였다.

    

기획회의(11. 07. 20)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그들

한국의 저자 300인’에 특집에서 내게 ‘인문 분야’가 맡겨진 것은 '전문가 리뷰'의 인문 꼭지를 담당하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내부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면 이런 무리한 일이 맡겨질 리 없을 테니까. 여하튼 청탁은 거절하지 못했고, 다만 너무 많은 저자가 할당된 이 분야를 조금만 더 한정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역사분야를 제외한 인문분야를 다루게 됐다. 그래서 여기서는 주로 ‘문학’과 ‘철학’을 근거지로 한 저자들을 짚어본다. 물론 여전히 분야별 경계가 모호하며(가령 역사학자의 사회비평은 ‘인문’ ‘사회과학’ ‘에세이’ 모두에 걸린다) 저자에 따라서는 여러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기에 형식적인 분류가 궁색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에 한국 인문출판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역사와 함께한 지난 14년, 그리고 <기획회의>의 발자취와 나란히 한 지난 13년 동안 활발히 활동한 대표 저자들을 더듬어보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감회를 느끼게 한다.   

비평, 그리고 비평가들 
오래전 일이지만 러시아문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인문대학’은 학과보다 한 단계 큰 소속기관일 뿐이었다. 집회가 있거나 교련교육이 있을 때만 ‘인문대’는 따로 호명됐다. 나는 문학개론이나 종교학개론 같은 인문교양과목을 많이 듣긴 했지만 나의 자의식은 인문학 전공자라기보다는 문학 전공자, 내지는 외국문학 전공자 쪽이었다. 애초에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기에(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고3때 읽었다) 나는 문학과 철학분야의 저자들을 즐겨 읽었는데, 문학평론가 김현(불문학)과 김윤식(국문학), 그리고 김용옥(동양철학)과 박이문(서양철학)이 내가 길잡이로 삼은 이들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의 지속적인 학문적 욕심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김현을 제외하면 지금도 모두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그때 받은 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김윤식은 자서전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이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 등을 통해서 근대문학 연구자, 현장비평가로서의 삶을 한국 문학사 자체와 중첩시키고 있다. 그러한 ‘중첩’이 가능한 것은 그가 펼쳐온 열정적이고 지속적인 글쓰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관은 이미 ‘전집’을 출간한 대가 비평가들에게도 공통적인 것이다. 한국 인문주의의 새 지평을 열었던 비평가 김우창은 시평집 <시대의 흐름에 서서>와 <정의와 정의의 조건> 같은 정치철학적 에세이를 통해 성찰의 보폭을 꾸준히 이어갔고, 유종호는 <나의 해방전후>, <그 겨울 그리고 가을>과 같은 자전적 회고를 통해서 지나온 삶의 ‘결’과 ‘세목’을 재현해냈다. 비평가로서 그가 늘 강조해온 덕목을 몸소 보여준 것이면서,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의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비평가적 신념을 직접 실천한 것이다. 신념의 비평가로선 백낙청도 빼놓을 수 없다. 전집의 버금하는 <백낙청 회화록>을 간행한 이후에도 그의 쉼 없는 관심과 열정은 나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는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를 묻고,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을 되새긴다. 첫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와 같이 묶어서 다시 펴낸 것은 그가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의 ‘초심’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현재의 비평가’임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개인적으론 20년 전에 읽은 비평가들의 신간을 여전히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론 ‘비평’과 ‘비평가’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격세지감도 갖지 않을 수 없다. 누구의 어떤 시집이 나왔고 누구의 평론집이 새로 출간됐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게 80년대 대학가 하숙집 풍경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시대는 변하는 것이니까 왈가왈부할 수도 없다. 어쩌면 ‘지식인 시대의 종언’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은데, 지난 80-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비평가들의 이름을 지금은 자주 들을 수 없고 비평의 영향력도 쇠잔하다. <장소의 탄생>, <이상과 모던뽀이들> 같은 저작들은 계속 펴내는 시인이자 비평가 장석주는 오히려 ‘글쟁이’로 분류하는 게 타당할 듯싶다.   

그리하여 비평가 김영찬의 평론집 제목을 빌면 <비평의 우울>이 우리시대의 한 가지 표정이다. 중견 비평가들의 이름이 묻힌 가운데에서도 ‘젊은 피’를 느끼게 해주는 건 새로운 세대의 비평가들이다. <몰락의 에티카>와 <느낌의 공동체>로 김현 비평의 ‘레전드’를 재현할 기세인 신형철이 대표적이다. 그의 명민한 감각과 세련된 문체의 비평은 비평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으며 독자와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방향타이다. 가라타니 고진 ‘전담’ 번역자로 이름을 알린 조영일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에서 시작된 ‘한국문학비판’ 연작을 통해 한국문학 ‘주류’와 ‘문단문학’에 대한 ‘얼터너티브 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문학의 구조>로 계속되고 있는 작업이 그가 표방한 ‘장편비평’과는 별개로 비평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제시해줄지 관심거리다. 더불어 <시네필 다이어리>의 정여울도 대중문화 세례를 받은 세대의 비평가로서 영화와 철학,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비평’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들과 더불어 우리는 중후한 비평(혹은 무게 잡는 비평) 대신에 더 경쾌하고 더 확장된 비평의 세계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문학비평이 독자들의 시야에서 한걸음 물러나면서 비평의 카테고리를 장악한 것은 문화비평과 고전비평이다. 김용석의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그러한 경계의 지표가 될 만하다. 그는 문화전반과 일상에 대한 문화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일종의 ‘블루오션’을 개척했고 <깊이와 넓이 4막 16장>과 <서사철학> 같은 유례없는 책을 낳았다. ‘해리포터에서 피버노바까지’ 아우르는 넓이에서만큼은 견줄 만한 저자가 드물다. 좀 더 엄밀한 의미에서 문화비평 쪽의 새로운 강자는 이택광이다. 김용석이 ‘성찰’에 주안점을 둔다면 이택광의 방점은 ‘비평’에 놓인다.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통해서 그는 문화비평의 ‘이론과 실제’가 어떤 것인지 보다 본격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사회학자 정수복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식 문화를 낯선 성찰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최근 작업은 파리라는 도시의 인문학에 집중되고 있다.    

고전 읽기와 철학 하기
자칭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란 ‘리라이팅’을 통해서 고전 읽기의 새로운 붐을 만들어냈다. 아마도 신영복의 <강의>와 함께 우리 고전과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한문학자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18세기 조선의 문화사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것은 부지런한 한문학자들이 ‘잡문’을 쓰는 데에도 기꺼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문제적인 학술서도 여럿 펴냈지만 강명관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등의 책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와 선조들의 생각을 한층 친숙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안대회도 <선비답게 산다는 것>과 <고전 산문 산책> 등의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이러한 학술대중화에 자기 몫을 보탰다. 다산학 권위자인 박석무의 <조선의 의인들>도 이 분야에서 꼽을 수 있는 책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동양고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제고에는 김용옥의 역할이 가장 컸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절차탁마 대기만성> 등의 저작과 대중강연을 통해서 동양고전의 현재적 의의와 함께 번역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설파해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병행해왔지만 <논어한글역주>, <중용한글역주> 등 최근의 한글역주 작업은 그가 자신의 ‘본령’을 찾았다는 인상을 준다. 김용옥 못지않은 다작의 저술가 박이문은 불문학박사이자 철학박사라는 독특한 경력을 갖고서 일찍부터 쉽고 명징한 언어로 다양한 주제의 교양서와 철학입문서를 펴내왔다. 개인적으론 대학시절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에서 예술철학과 과학철학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사유를 그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절판됐지만 특히 <시와 과학>은 내게 강한 인상을 준 책이다). 그의 여정은 ‘둥지의 철학’으로 마무리되고 있는데, <통합의 인문학>과 <둥지의 철학>이 그 결과물이다.   

저술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철학자로는 이정우를 꼽을 수 있다. 푸코 전공자이면서 들뢰즈 철학 연구자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철학사1>을 통해서 자신의 역랑과 함께 학문적 포부를 드러냈다. 김진석과 김영민은 한국적 현실에 착근한 사유와 고유한 개념어의 창출로 눈에 띄는 철학자다. <더러운 철학>을 통해 ‘한국에서 철학함’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김진석의 철학적 화두는 ‘포월’과 ‘소내’이다. 90년대에 탈식민적 글쓰기를 문제로 내걸었던 김영민은 <동무론>, <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 등을 통해서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으로서 ‘동무’라는 자신만의 주제를 탐구한다. ‘인이불발, 당기되 쏘지 않는다’라는 그의 <공부론>은 장정일의 <공부>, 고미숙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이 촉발한 ‘공부론’ 유행 가운데에서도 이채롭다. 공부론과 관련해서는 장회익의 <공부도둑>과 김열규의 <공부> 같은 원로 학자들의 체험적 공부론도 눈길을 끈다.   

동양철학 전공자이면서 서양철학을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신주는 <철학, 삶을 만나다> 이후 ‘삶과 만난 철학’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등은 철학이 삶, 그리고 대중과 만나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문교양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대표 저자로 강유원도 빼놓을 수 없다. 서양고전의 강의와 마르크스 저작 번역에 힘쓰고 있는 ‘지식주의자’로서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 <인문고전 강의> 등의 책을 펴냈다. 고전 읽기 바람을 타고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베스트셀러 저자도 탄생했는데, <철학콘서트>의 황광우,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김용규 등이 대표적이다.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김용규는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을 필두로 보다 본격적인 인문교양서 저술에 나서 앞으로도 기대를 갖게 한다.  

고전과 함께 신화 관련서 또한 고정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분야인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져온 열풍은 그것을 비판하는 박홍규의 <그리스 귀신 죽이기>까지 낳았을 정도다. 이윤기에 이어서 신화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저자로는 <영혼의 역사>의 장영란을 들 수 있다. 더불어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의 정재서, <문학의 숲에서 동양을 만나다>의 김선자, <살아있는 우리 신화>의 신동흔 등이 신화 전공학자로 우리의 신화 읽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저자들이다.     

서평과 번역에 대한 관심
2000년대 들어서 고전 읽기와 함께 인문출판의 중요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건 책에 대한 책, 곧 서평집이다(이러한 풍경은 마치 비평의 시대가 저물고 서평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베스트셀러 30년>), 한미화(<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외에 최성일, 이권우(<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표정훈(<탐서주의자의 책>) 같은 출판평론가 1세대의 활동이 2000년대 벽두를 장식했고, 중반 이후로는 고명섭(서평기자), 이현우(인터넷 서평꾼) 등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최성일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시리즈를 통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서평 영역을 구축한 글쟁이다. ‘책에 대한 책에 책’은 ‘책벌레들에 책’으로도 영역이 확장되었는데, 강명관의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김풍기의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김상웅의 <책벌레들이 동서고금 종횡무진> 등이 그에 속한다. 서평과 함께 번역에 대한 관심도 200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여겨지는데, 박상익의 <번역은 반역인가>,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은 그 두드러진 성과다. 더불어 <개념어 사전>을 <철학>, <역사> 등을 펴낸 남경태는 전문 번역자가 일급 저술가의 자격도 갖추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몇 가지 범주로 얼기설기 나누어서 인문 저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독특한 색깔의 저자나 독립군적인 저자들은 이런 ‘그물망’을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나무인문학의 강판권(<나무열전>), 풍수인문학의 최창조(<최창조의 새로운 풍수이론>), 스토리텔링 인문학의 최혜실(<스토리텔링, 그 매혹의 과학>) 등이 그렇고, 에세이스트로서 이어령(<문화코드>)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 하나의 장르인 고종석(<감염된 언어>)과 전방위 공부꾼 고병권(<화폐, 마법의 사중주>) 등이 그렇다. 그러니 이 모든 저자들에 대한 얘기는 모두 흐트러트렸다가 다시 지어내야 온당할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동시대 저자로서 그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11.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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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7-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그려진 지형도를 보는 느낌인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로쟈님^^

로쟈 2011-07-22 14:06   좋아요 0 | URL
그런 걸 그려보고는 싶었어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7-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좀더 큰 캔버스에 그려주시길...

로쟈 2011-07-22 14:50   좋아요 0 | URL
멍석이 먼저 깔려야 캔버스를 올려놓고 그려볼 텐데요.^^ 생각만 하고 집어넣진 못했는데, 저자 유형학도 다뤄봄직합니다. '학자-지식인-글쟁이'론입니다...

anathema 2011-07-2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석주 문학에 대한 평가는 문단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11-07-23 00:35   좋아요 0 | URL
'독립군'이죠...

park6 2011-07-2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ㅎㅎ 그런데 로쟈씨께서 박이문씨 책을 인상깊게 읽으셨다니, 저도 한번 읽어봐야 겠어요.

로쟈 2011-07-23 00:35   좋아요 0 | URL
주로 학부시절에 읽었고요. 평이하게 쓰시기 때문에 입문용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1-07-23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3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07-2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시대의 인문 저자들이 한눈에 잡히는 글 정말 잘 봤습니다! 넘 감사합니다. 하상 궁금했던 분야인데 한 번에 정리 됐네요^^

그나저나 저도 박이문 선생님 글을 처음 접하고나서 출간된 책을 거의 다 컬렉션화 했는데, 이사오면서 엔날에 출간된 반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어졌네요...현재는 7권만 보유중입니다. 엔날 국어 교과서에 '길'이라는 에세이가 실린 적도 있었죠.
저는 처음 단행본으로 <이성은 죽지 않았다>를 첨 접했네요...도서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쉬지도 않고 읽은 책은 이 책이 유일할 겁니다..ㅎㅎ 근데, 제일 좋았던 책은 <노장사상>이었네요~ 로쟈님 서재에서 박이문 샘의 글을 보니 넘 반가운 나머지..ㅎㅎ

로쟈 2011-08-04 07:39   좋아요 0 | URL
<이성은 죽지 않았다>는 아마도 '중기 박이문' 정도 될 거 같아요. 저는 데뷔작인 <시와 과학>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서전 <사물의 언어>도 반가운 책이었죠. 모두 지금은 '없는' 책들이네요...

미국사람 2011-08-04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같이 오늘은 무슨 책이 나왔나하고 들어왔다가 이 글은 오랬만에 꼼꼼히 읽어보았네요. 참 훌륭한 글입니다. 대충 저자들 그림이 그려지는 군요.

그리고 박이문 선생이 아직 살아계신가 보군요. 대학시절 학교 강연회에서 뵌 적이 있는데 말보다는 글이 훨씬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읍니다. 외국에 오래 사셔서 그런지... 1930년생이시니까 우리 나이로 82살이시군요.

로쟈 2011-08-04 07:37   좋아요 0 | URL
네, 달변은 아니신 분이죠. 그리고 초기 글들이 더 좋구요...
 

아침에 주문한 책의 하나는 강준만 교수의 신작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 2011)다. 애초에 '강남 좌파'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이 강 교수라고 하니 원조 & 본격 '강남 좌파'론쯤 되겠다. 부제는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칼럼으로 쓸 만한 거리가 있는 듯싶어 챙겨놓는다. 흔히 조국 교수가 강남 좌파의 대표주자처럼 언급되는데, 칼럼집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21세기북스, 2011)와 같이 일독해도 좋겠다...  

한겨레(11. 07. 22) "강남좌파, 정치불신의 벽 못뚫는다”

최근 정치권과 사회운동 진영에서 부쩍 자주 쓰이는 용어가 ‘강남 좌파’다. 소득수준은 높으면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진보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나를 강남 좌파로 불러도 좋다.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려면 강남 좌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논쟁적 사안을 책으로 꾸준히 살펴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이 ‘강남 좌파’를 도마 위에 올렸다. 강 교수는 최근 펴낸 책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에서 강남 좌파는 결국 또다른 엘리트주의일 뿐이며 극복해야 할 일종의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조국 교수를 언급하며, 그가 갖는 강남 좌파 이미지만으로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벽을 뚫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란 강남과 비슷한 일정 수준의 생활 양식을 보이고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칭한다”며 “기존 학벌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그걸 바꿀 뜻이 없으면서 외치는 좌파의 비전, 그것이 바로 강남 좌파의 한계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실은 강남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벌은 물론 생활수준까지 강남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우파 정치인이어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포퓰리즘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기회주의적 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강남 좌파라는 말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좌파’가 아니라 ‘강남’이어야 하며, 이런 이유로 강남 좌파의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 문제로 비판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국 교수는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강남엔 모두 우파만 있고 좌파는 모두 지방과 강북에만 있어야 하느냐”며 “중요한 것은 지역을 떠나 모든 좌파의 연대”라고 지적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30년 전 미국에 등장한 ‘여피 좌파’가 한국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강남 좌파란 말은 좌파의 보조역량이어야 할 고소득 전문직들이 자칫 좌파의 주력인 것처럼 비칠 수도 있어 민주화를 주도한 노동자나 중간계급에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권은중 기자)  

11. 07. 22.  

P.S.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하는' 리무진 진보주의자에 대한 풍자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 시리즈에서 읽을 수 있다. '보보스'는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줄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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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리트주의 청산과 추첨민주주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8-01 21:42 
    내일자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낮에 쓴 칼럼인데, 강준만의 <강남좌파>(인물과사상사, 2011)의 문제의식을 풀어놓고 싶었다. 같이 참고한 책은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가 쓴 <추첨민주주의>(이매진, 2011)다.경향신문(11. 08. 02) [문화와 세상]엘리트주의 청산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비판함으로써 소위 ‘강준만 한국학’이란 걸 세워온 강준만 교수가 최근 <강남좌파&g

출판동향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원고 발굴이 새 통로로 SNS도 활용되고 있다는 기사다. 출판계에 종사자들에겐 새로운 소식이 아니지만 최근에 구체적인 성과들도 나오고 있어서 '동향'으로 짚어봄직하다. 더 자세한 진단은 이번주에 나온 기회회의(300호 특집호)에 실린 한기호 소장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페이스북, 트위터 출판 등으로 눈길을 끄는 이현우(블로그), 이외수(트위터), 이건범(페이스북)씨.   

한국일보(11. 07. 21) SNS '글맥'을 캐라 될성부른 작가가 보인다 

"공식적으로 알립니다. 작년 9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석 달 동안 페이스북에서 '징역'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더랬습니다. 제가 20대 때 두 차례에 걸쳐 3년 가까이 징역살이 했던 내용을 복기한 글이었습니다. 함께 읽던 선후배나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고, 책을 내라는 격려가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단행본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출판기획자 이건범씨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옥살이한 경험을 담은 <내 청춘의 감옥>(상상너머 발행)을 지난 달 초 내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처음부터 출판까지 생각하며 쓴 글은 아니지만 페이스북 지인들이 적극적으로 책 내기를 권해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출판계의 원고 발굴 통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무명의 '글쟁이' 발굴 매체로 주목 받기 시작한 블로그에 이어 최근 들어 국내 출판계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글맥'으로 눈여겨 보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0일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서 이 같은 국내 출판계 변화를 소개하면서 "이제 누구나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해 글을 쓰고 저자가 될 수 있는, 누구나 소비자(독자)이면서 생산자(저자)가 되는 프로슈머 시대"라고 지적했다.

한 소장에 따르면 국내 '페북'(페이스북 글로 만든 책)의 원조는 4월 출간된 <페이스북 담벼락에 희망을 걸다>(북셀프 발행). 페이스북을 통해 소망과 나눔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온 출판인 권영민씨의 글을 묶은 책이다. 권씨는 5월에도 몇몇 필자들과 함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썼던 글을 묶어 <희망에 입맞춤>이라는 책을 냈다. 페이스북은 블로그처럼 긴 글쓰기가 가능한데다 저자나 출판사가 출판 전에 잠재 독자의 반응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블로그처럼 다양하게 글들이 올라 오고, 출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기대된다. 



트위터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2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려 국내 트위터계의 '대통령'으로 통하는 소설가 이외수씨의 트위터 글을 모아 지난해 4월 나온 에세이집 <아불류 시불류>(해냄 발행)는 지금까지 15만부가 팔렸다. 명언ㆍ잠언을 모아 1990년대 나왔던 그의 책에 트위터 글을 더해 1월 새로 낸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 주기>(해냄 발행)도 반년 새 8만부가 나갔다. 

 

하지만 트위터 글이 단행본으로 소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황소자리 출판사 지평님 대표는 "인기 있는 트위터 글을 책으로 만들려고 해 봤지만 한 주제에 '140자'라는 분량이 한계로 다가오더라"며 "당장 출판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감성과 글 재주 있는 저자를 발굴하기 위한 장 정도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블로그 연재글을 묶어 책으로 내는 '블룩(Blook)'이라는 말까지 있고 실용 분야에 치우쳤던 책 내용도 <로쟈의 인문학 서재>(이현우), <하하 미술관>(김홍기)처럼 인문, 미술 등으로 폭이 넓어지고 있는 블로그 출판만큼 정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11. 07. 21. 

P.S. 개인적으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일이 너무 많다는 것과 '과도한' 소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블로그도 후임자만 있다면 좋으련만... 

P.S.2. 기획회의(300호) 특집을 다룬 한겨레 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07. 22) 한국을 대표하는 300명의 저자는?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격주간·사진)가 최근 발간한 통권 300호에서 특집기획으로 ‘한국의 저자’ 300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된 저자들은 문학을 제외한 인문·사회·문화 등 논픽션 부문에서 최근 5년 동안 단행본 저서를 1종 이상 펴낸 생존 필자들 가운데 뽑았다. 300명 명단에는 백낙청, 김우창 등 원로급부터 젊은 인터넷 논객 한윤형 등 대중적 저자들까지 고루 포함돼 있다.

저자들 면면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활성화로 책 생산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글쓰기의 장으로 활용해 책을 펴내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획회의> 발행인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최근 베스트셀러 동향을 분석한 결과 블로그 연재 글을 책으로 묶은 ‘블룩’(blook: 블로그와 책을 합친 말)의 강세가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쓴 이현우씨, <샤넬, 미술관에 가다> 등을 쓴 패션미술 저술가 김홍기씨 등이 이런 블로그 기반형 저자들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연재한 글을 출간하는 ‘페북’도 등장했다. 지난 4월 출간된 <페이스북 담벼락에 희망을 걸다>(권영민)와 출판기획자 이건범이 쓴 <내 청춘의 감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기호 소장은 1981년 이후 30년 동안 국내 독서 시장 흐름을 네 시기로 정리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은 인문사회과학의 시대, 1997년 외환위기까지는 개인주의 발흥의 시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를 자기계발의 시대로 구분했고, 그 뒤 지금에 이르는 시기는 대안의 삶 추구의 시대로 보았다. 전체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문사철’ 중심의 교수 저자에서 현장 활동가로 저술의 중심이 옮겨갔다고 그는 분석했다.(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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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1-07-21 13:12   좋아요 0 | URL
과도한 소통이 문제입니다.

로쟈 2011-07-21 15:59   좋아요 0 | URL
소통도 극과 극인 듯해요...

페크pek0501 2011-07-21 14:51   좋아요 0 | URL
친구들 몇이 저를 페이스북으로 초대한다는 이메일을 보냈어요. 블로그만으로도 벅차서 가입하지 않았는데, 로쟈님도 같은 생각인 점이 반갑네요. 공짜로 해답을 얻은 셈...

페이스북 관리할 시간 있으면 책 좀 더 읽고 글 좀 더 써서 블로그에 올리렵니다. ㅋ

로쟈 2011-07-21 15:59   좋아요 0 | URL
저도 초대장이 많이 오곤 했는데, 응답이 없어서인지 요즘은 뜸하네요.^^;
 

정년 퇴임을 앞둔 두 문학평론가의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국문학자 김인환 교수와 불문학자 오생근 교수가 화제의 주인공이다(각각 <에로스와 문명>, <감시와 처벌>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두 분의 데뷔 평론집을 읽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데, 어느덧 정년이라... 

한국일보(11. 07. 20) 정년 퇴임 앞둔 문학평론가 김인환·오생근 교수

30여년 강단과 문학현장에서 왕성한 연구와 비평 활동을 펼쳐왔던 두 문학평론가가 8월 나란히 정년 퇴임을 맞는다. 오생근(65) 서울대 불문과 교수와 김인환(65) 고려대 국문과 교수. 1946년생 동갑내기로 대학 졸업을 전후해 평론가로 등단한 이들은 김현 선생의 소개로 인연을 맺어 4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눈 벗이다. 첫눈에 봐도 보스형과 선비형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 불문학자와 국문학자라는 이들의 간극을 메워준 것은 문학과 삶에 대한 순정한 열정과 고민일 터이다. 초현실주의 연구자이자 미셸 푸코를 국내 본격적으로 소개한 오 교수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서 주역과 동학까지 동서양사상을 넘나든 김 교수 모두 폭 넓은 사상적 주유를 거름 삼은 탄탄한 토양에서 저만의 섬세하면서도 우직한 비평적 세계를 펼쳐왔다. 어느 글에서 김 교수는 오 교수를 "속됨을 견딜망정 거짓은 감히 못하는 사람으로 사려 깊은 순수성이 있다"고 했고, 오 교수는 김 교수에 대해 "그처럼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며 "올곧고 유연한 사람으로 그와 만난 시간들은 언제나 즐겁고 빛나고 풍성했다"고 적었다.

15일 이들을 만나 지난 세월의 소회와 문학에 대한 변치 않는 고민을 들었다. 최근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한 오 교수는 "마라톤 골인 지점에 들어온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다"고 했고, 김 교수도 "30여년의 숙제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라고 입을 열었다.

 

-30여년의 강단 생활을 되돌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어떤 것인가.

오생근="1995년부터 4년간 학내 대학신문 주간을 했는데, 그 때 학생기자들과 많이 싸웠다. 한 자리에서 대여섯 시간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늘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당시 학생기자 20여명이 모여 내 정년을 축하해줬다. 선물에다 공연도 해주고 '스승의 은혜' 노래까지 부르더라.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학교에서도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종강 파티에서 '스승의 은혜'를 불렀는데, 한 달에 세 번 그 노래를 들은 거다.(웃음) 요즘에 그런 노래를 누가 부르나. 너무나 행복하게 퇴임하는구나 싶었다."

김인환="나도 1980년대에 학내 신문사 주간을 했는데, 당시 학생들과는 지금도 일년에 한번씩 모인다. 신문이 배포 금지 당하던 어려운 때였는데, 학생들과 늘 싸웠어도 밑바닥에선 서로 걱정하는 동지의식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학생이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인데, 선생 정년 퇴임한다고 얼마 전에도 찾아와 밤새 술을 마셨다. 운동권 학생들과 논쟁을 하면서 어떤 면에서 배운 것도 많다. 나는 <자본론>을 책으로만 읽었는데, 학생들이 현실에서 노동문제로 시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념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체험한 것이다. 그들과의 관계가 늘 현실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했다." 



-학문 활동을 돌아보면 어떤가. 가장 보람된 일을 꼽는다면.

오="내가 초현실주의를 전공하게 된 것은 폴 엘뤼아르의 시 때문이었다. 군대 시절 읽은 그의 시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과 용기, 자유의 정신을 얻었다. 지난해 말 초현실주의를 정면으로 접근한 책을 내서 나름대로 정리한 기분이고, 그 책으로 학술원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 미셸 푸코에 대해서도 조만간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책을 낼 계획이다. 프랑스 유학시절 이런 사상가를 국내에 꼭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귀국 후인 1984년에 쓴 권력과 지식에 대한 글은 아마 푸코에 대한 첫 소개였지 싶다. 번역한 <감시와 처벌>은 지금도 1년에 두 번 인세가 들어올 정도로 장기 베스트셀러다.(웃음)"

-푸코의 사상이 우리 지식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지만, 대안 부재란 점에서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오="푸코의 사상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정보 사회가 발전해 편리함을 누릴수록 반대급부로 자유가 축소되고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정보 사회는 고도의 기록 사회인데, 개인에 대한 기록이 광범위하게 쌓일 수록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일례로 내가 대학 갈 때인 60년대는 아무리 문제 학생이더라도 마음잡고 공부하면 대학 갈 수 있었다.(실제 오 교수는 학창 시절 문제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지 못하다. 개인을 심사하는 자료가 점점 더 정교화하고 시기도 더 앞당겨진다.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게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교사가 학생의 수업태도를 평가할 땐 자의적 판단이 계속 개입한다. 주관적인 평가가 기록이 되면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인양 착각하게 된다.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누적되는 그 기록 속에서 점점 더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로 봉사활동 등도 점수화한다는 데 이런 게 과연 한 인간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안기부가 중요 인사들만 정보 관리를 했는데, 지금은 온 국민의 정보가 기록화하고 있다. 특히 이런 정보 관리 시스템은 국가 중심이 아니라 도처에서 무차별적으로 작동한다. 보통 때는 안 드러나지만, 한 개인이 약간이라도 사회 질서에 어긋나거나 약한 존재가 되면 그를 공격하는 데 이용된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가 예전에는 분명했지만, 지금은 기록을 통해 모두가 모두를 도처에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푸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 교수는 국문학자로서 주역 번역까지 했는데.

김="우리는 모두 마르크스 이후의 역사를 살고 있다. 마르크스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따를 수도 없고. 대학 시절인 60년대 전세계적으로도 학생 시위가 퍼졌는데, 당시 마르크스, 마오쩌둥, 마르쿠제를 '3M'이라 불렀다. 그 관심으로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도 번역했다. 우리의 지성사를 보면서는 동학에 주목하게 됐다. 동학이 신분질서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계몽주의라고 여겼다. 동학의 사상적 근거가 주역이어서 공들여 번역했다.(그간 통용된 주역 번역의 틀을 깬 것으로 최고의 번역이란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주역을 한편의 장편시로 읽을 것을 권한다.) 동학은 철학과 대중운동이 함께 한 아주 드문 예인데, 동학의 등장으로 성리학 단극체제가 성리학과 동학 양극체제로 바뀌었고 이는 현재의 좌우파 양극체제로 이어지고 있다. 동학에 대한 연구서가 아직 신통치 못한데 퇴임 후에도 좋은 책을 쓰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정년을 맞아 최근 펴낸 <소설의 문법(the Grammar of Fiction)>이란 영문 저서에선 소설 이론에 마르크스와 정신분석학을 접목했다고 들었다.

김="대개 서양이론을 도입하는 걸 문학이론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내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싶었다. 서양 이론 책에는 없는 아이디어여서 영문으로 낸 것인데, 본격적인 소설이론이 되려면 많이 보충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체제이긴 하지만, 핵심에는 부조화를 안고 있다는 것을 내 식대로 정리했고, 그래서 문학도 이 자본주의의 부조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문학의 허구 개념이나 문장의 가정법 등을 부재와 결여를 탐구하는 정신분석의 욕망이론과 연결했다." 

-예전에 비해 지금 문학의 위상은 상당히 추락해 있다. 위기란 소리도 끊임없다.

오="고등학교 때는 사실 살아가는데 자신이 없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문학을 하면 삶의 태도와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 정립하면 충분했다. 돌아보면 내게 문학이 없었으면 의미 있는 삶을 제대로 찾아서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인문학이 밥벌이가 안 된다고, 또 독자와 멀어진다고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단견이다. 물론 지금 문학이 위기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위기가 문학이 궁핍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문학은 과잉의 상태다. 요즘처럼 문학상 상금도 높고 문학상이 많은 때도 없다. 작품도 많이 쏟아진다. 여기에 위기 조짐이 있다. 위기는 풍요의 형태로 나타난다."

김="나에게 문학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큰 것'이라는 거다. 문학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노자에 나오는 '不可名 復歸於無物 無物之象(불가명 복귀어무물 무물지상ㆍ이름을 말할 수 없으니/ 만물이 무물로 돌아간다/ 없는 것의 그림)'는 구절이다. 문학이란 없는 데서 나오는 그림인 것이다. 요즘 젊은 비평가들이 서양 이론에 많이 의존해 비평을 하는데, 그 이론들이 장식인 경우도 많다.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문학 공부는 자기를 위해서 해야 한다. 내가 좋아서 해야 평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좌절하거나 위기가 와도 넘어설 수 있다." (송용창기자) 

11.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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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7-2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읽기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책을 올리시는군요. 제맘대로 골라 읽을랍니다. <의미의 위기>는 관심이 동하는 책이고 <감시와 처벌>은 읽고 있던 책하고 함께 읽는 게 도움이 될 듯하네요. 몇 권은 주문했는데 조만간 책깔고 책덥고 책사이에서 자야할 듯. ㅋ

로쟈 2011-07-20 15:27   좋아요 0 | URL
책이 그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죠.^^;

파고세운닥나무 2011-07-2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인환의 비평을 대하고 그의 학문적 깊이에 놀란 적이 많았어요. 이념적 지향이야 다를테지만 최원식에 못잖은 이론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최원식이 어느 자리에서 자신을 두고 지인 한 분이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을거라고 했다던데 김인환도 같은 평가가 아깝지 않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로쟈 2011-07-20 21:37   좋아요 0 | URL
그런 분들이 인문학계에 더러 계시죠. 학문적 변방언어의 한계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