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한 장 넘기게 됐지만 하늘빛은 어제와 달라진 게 없다. 오늘도 비가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원고를 쓸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어서 점심시간까지 잠시 단순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작업이다(대부분은 '이달에 읽고 싶었던 책'이 되고 말지만). 여하튼, 7월이고 장마가 끝나면 뙤약볕이 시작되리라. 좀 '시원한 책'들로 골라봐야겠다. 이열치열이라고?..  

1. 문학 

정과리 교수의 추천작은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은행나무, 2011)다. 타임지 표지에도 등장한 예외적인 작가. "이 책의 선정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가의 전작인 <인생수정>(2001)이 큰 반향 및 논란을 일으키며,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데다가, 이 소설의 출간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가제본 상태의 책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위해 구입해서 화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작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세인의 예측에 부응하여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배경 설명이지만, 그렇다고 한국 독자의 눈길까지 사로잡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여하튼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라고 하니 견문을 넓혀봄직하다.  

이에 맞서는 한국소설은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2011)이다. 이미 알라딘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므로 군말은 필요하지 않겠다. 거기에 김이설의 <환영>(자음과모음, 2011)을 얹어놓아도 역시나 토를 달 사람은 없으리라. 두 작가도 '한국의 위대한 소설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전우용의 <현대인의 탄생>(이순, 2011)이다. "먼저 이 책은 참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밝혀야겠다. 1945년 해방에서 1950년 한국전쟁 시기 한국인의 질병과 위생, 그리고 치료 과정을 서술한 이 책에서는 한심하고도 불쌍한 한국의 의료 현실이 구구절절 제시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당시 모습을 다소 여유 있게 즐기며 읽을 수 있다."는 평이다. 병실에 누워서 읽기 딱 좋은 책이지 않을까도 싶다.  

한국전쟁기 얘기가 나온 김에 다소 묵직하지만 박명림 교수의 <역사와 지식과 사회>(나남, 2011)도 손에 들어볼 수 있겠다.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숲, 2011)다.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으로 이번에 나온 책. 같은 내전이라는 점에서 한국전쟁과 비교되기도 한다니 그런 관점에서도 읽어봄직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책은 피터 게이브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어크로스, 2011)다. 굳이 철학적 이유까지 알아야 할까 싶지만(진화심리학적 이유라면 몰라도), "철학자들은 조심해서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다. 질문만 던져 놓고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나름의 철학적 답을 제시한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답이긴 하지만,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저자는 친절한 철학자이다."는 게 추천자의 촌평이다. 내겐 좀 다른 이유를 묻는 책이 궁금한데, 매튜 스튜어트의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교양인, 2011) 같은 부류다. 아예 스티븐 내들러의 평전 <스피노자>(텍스트, 2011)에 빠져볼 수도 있겠고.   

4. 정치/사회 

정치/사회분야의 책으로 강정인 교수가 고른 건 임동우의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효형출판, 2011)이다. 도시설계를 전공한 건축학도가 하나의 도시 공간으로서 평양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책. 혹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점에서는 남북한이 차이가 없는 것일까.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2011)도 같이 읽어봄직하다. 이 책을 상반기의 주목할 만한 인문사회과학서로 꼽으며 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는 "아파트가 한국 사회를, 삶과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분석한 역작"이라고 평했다. 이택광 교수의 칼럼들을 모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자음과모음, 2011)도 최근 출간됐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도 눈에 익다.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21세기북스, 2011).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되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세계화의 모순을 지적한 책"으로 저자는 "세계화도 각국의 다른 여건들을 감안해야 하며, 이를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세계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그의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북돋음, 2011)와 같이 책상맡에 놓아두고 있다. 라즈 파텔의 <경제학의 배신>(북돋음, 2011)과 함께 일독해봄직하다.    

6. 과학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실장의 추천서는 정준호의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후마니타스, 2011)이다. 이미 알라딘에서는 마태우스님이 격찬을 하며 소개한 책. 기생충을 제목에 단 책들이 아주 드문데, 이미 최강자의 위치에 올랐다.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궁리, 2004)이 뒤를 따르고 있는 형국이다. 마태우스님의 <기생충의 변명>(단국대출판부, 2002)을 넘어서는 역작을 기대해봐야겠다. 

 

과학분야의 책으론 '기생충' 외에 DNA'도 읽어봄 직하다. 인 그래도 제임스 왓슨과 함께 이중나선의 발견자로 유명한 프랜시스 크릭의 평전이 얼마전에 출간됐다. 매트 리들리가 쓴 <프랜시스 크릭>(을유문화사, 2011). 크릭의 책은 몇권 더 출간된 게 있었는데, <인간과 분자>(궁리, 2010) 정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 권 나와 있는 왓슨의 책 가운데서는 <DNA를 향한 열정>(사이언스북스, 2003)을 <프랜시스 크릭>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언젠가 헌책방에서 반값에 산 책인데, 어디에 둔 것인지...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영미의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두리미디어, 2011). 방송가의 세시봉 열풍이 출판쪽으로도 번져온 셈인데, 대중문화연구자가 쓴 버전에서는 "이 열풍 현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트로트에서 포크음악, 그리고 댄스음악과 록에 이르기까지 시대성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정리하였다." 세시봉 멤버인 조영남의 <셰시봉 시대>(민음인, 2011), 그리고 김종철의 <세시봉 이야기>(21세기북스, 2011)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온 책들이다. 30년 후에 서태지는 누구와 함께 '난 알아요'를 부를 것인지 궁금하다(가능하긴 한 건가?).    

음악책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술책도 꼽자면 손철주의 <옛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현암사, 2011)가 먼저 손에 잡힌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미술동네 글쟁이이지만, 나는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하고 글솜씨가 놀라워 전작 두 권,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와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도 같이 구입했다. 따로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구수하고 맛깔나는 미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니 한여름의 즐거움 한 가지이다.

8. 교양 

탁석산 철학자가 추천한 교양서는 <주석달린 월든>(현대문학, 2011)이다. '주석 달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책. 주석자의 말을 재인용하면  “1854년에 첫선을 보인 <월든>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소로의 원문을 다시 편집하고 주석을 붙였다. 이 책의 주된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150년 전에 출간된 <월든>의 원문을 연구와 해설이라는 관점에서 재조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뢰할 수 있는 원문에 최대한 포괄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훨씬 깊이 있는 <월든>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호사를 부려봄직하다.   

9. 실용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고른 책은 임형남/노은주의 <나무처럼 자라는 집>(교보문고, 2011)이다. "저자 부부는 ‘건축이란 근본적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생각, 건축가는 사람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라는 생각을 아름다운 수채화와 함께 담담한 에세이로 풀어냈다"고 한다. 집 얘기라고 하니까 구본준/이현욱의 <두 남자의 집짓기>(마티, 2011)도 떠오른다. 3억으로 집짓기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올해 나온 책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읽어본 사람은 다 읽어본 책. 일단은 3억을 마련해야겠다. 이런 집짓기라도 필요한 우리네 속사정에 대해선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연재를 묶은 <어디 사세요?>(사계절, 2010)를 참고할 수 있다.  

 

10. 성호사설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성호사설'이다.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 분류해도 될 테지만, 읽어보려는 게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한길사, 1999)이 아니라 강명관 교수의 <성호사설> 읽기, <성호, 세상을 논하다>(자음과모음, 2011)이기에 맛보기라고 해야겠다. <성호사설> 입문서라고 해야 할까. 새삼 눈길이 간 것은 저자가 <성호사설>을 읽을수록 "나는 성호가 살던 조선후기 사회가 아니라, 지금 세상을 다시 곱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해놓아서이다. 그래서 좋은 기분이냐고? 천만에! "오늘 나는 옛글을 읽으며 갑갑하고 슬프고 화가 치민다." 양반과 상것은 사라졌지만, 양반과 상것 사이에 놓여 있던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고전의 이런 현재성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읽어봐야 한다... 

11. 07. 01.  

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아주 쉽게 골랐다. 카뮈의 <이방인>이다. 김화영본이 평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에 새로운 번역본 두 종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열린책들과 문학동네 세계문학판으로도 출간됐기 때문이다. 문학동네판은 <이인>이란 새로운 제목을 달고 있다. 여하튼 그래서 다시금 '이방인'과 조우하고 싶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부조리한 생의 감각 또한 여전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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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07-05 16:51 
    7월의 읽을 만한 책 — 조너선 프랜즌의 (은행나무, 2011) 등.. (via 로쟈)
 
 
페크pek0501 2011-07-0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는 제가 쓴 페이퍼에도 올린 책인데요, 이번 여름에 읽을 예정입니다. 이런 매력적인 책 몇 권 골라 읽으면 이 무더운 여름이 지루하지 않을 듯...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11-07-01 21:30   좋아요 0 | URL
무덥지 않은 곳에서 읽어야 더 좋은데요.^^

세실 2011-07-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알찬 페이퍼 감사합니다^*^
일단 두근두근 내인생,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 두권 찜 했습니다.

금방 환영 읽었는데 혼란스러워요. 기분도 가라앉고요.

로쟈 2011-07-02 22:21   좋아요 0 | URL
그 두 권은 저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세실님의 독후감도 참고해야겠군요.^^
 

이번주 시사IN은 '여름의 책꽂이'가 특집이다. 분기별 서평코너인데(계졀별이군), 인문사회과학쪽 추천위원을 맡고 있어서 이 분야의 서평을 쓰게 됐다. 중복추천을 받은 책이 없어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돌베개, 2011)를 골랐다. 지난해 '정의'에 이어서 올해는 '분노'가 사회적 화두가 됨직하다는 생각에서다. 서평은 지면에 나간 대로 고쳐놓았다(약간 어색한 대목도 있다). 

  

시사IN(11. 07. 02) 늙은 투사가 노래하는 '폭력적 희망'

인문서로서 2010년 최고의 화제작은 100만부가 넘게 팔려나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덕분에 ‘정의사회’ 같은 관제적 구호, 혹은 ‘사법정의’ 같은 전문가 용어에서나 구경하던 ‘정의’를 한국사회의 언중은 되찾아 쓸 수 있었다. 모두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무엇이 정의인가를 토론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낳을 수 있는 효과로선 충분하지 않았을까.   

기대를 모은 건 ‘정의 이후’였는데, 독자들의 선택은 정의에 대한 사회 관심에서 한걸음 물러나 자신의 처지를 돌보는 쪽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보이는 젊은 세대의 호응은 공적인 관심과 사적인 고민 사이에 놓인 그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던지는 조언과 위무의 수신자이고자 했다. 사적인 고민에만 매몰된다고 부정적으로만 볼일은 아니다. ‘홀로 선’ 청춘들이 공감의 공동체로 묶일 수 있는 가능성도 주어지는 것이니까. 그 공감이란 ‘아픔’이다.  

그리고 그 아픔이 ‘사회적 고통’이기도 하다는 인식까지는 한 걸음이다. ‘반값 등록금 투쟁’은 우리시대 ‘사회적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시험대이다. 그것은 대학생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대졸자가 80%를 넘어가는 사회에서 등록금 투쟁은 곧 사회 전체의 투쟁이다. 단순히 ‘반값’의 쟁취가 핵심인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사느냐이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이냐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이러한 고민과 투쟁에 힘을 보태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로 읽힌다. 프랑스에서만 200만부가 넘게 팔린 이 소책자에서 1917년생 레지스탕스 투사는 오늘의 프랑스 사회가 과거 레지스탕스가 꿈꾸던 세상에서 비켜났다고 비판한다. 특정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며, 노동이 창출한 부는 정당하게 분배하는 것이 스테판 에셀 같은 이들이 기획한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없었다.” 그의 판단에 이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사회’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할밖에……”라고 말하는 것은 최악의 태도라고 에셀은 질타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다. 자연스런 분노이면서 동시에 자각적인 분노.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가 바로 분노였다고 말하면서 에셀은 그 정신을 되살릴 것을 젊은 세대에게 호소한다.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 한국어 번역판은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총대’라고 할 만하다. 사실 분노의 용도라면 사르코지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많은 게 우리의 자랑 아닌 자랑 아닌가.    

2차 대전 이후에는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한 에셀은 분노를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론 격분을 경계한다. 격분이란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이며 그 격분의 한 표출방식이 테러리즘이다. 그가 테러리즘 같은 폭력적인 수단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폭력적인 투쟁과 평화적인 봉기를 권유한다. 그가 유일하게 허용하는 폭력은 희망의 폭력, 혹은 폭력적인 희망이다. 아폴리네르의 시구를 빌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93세의 노투사가 희망을 노래한다면 우리에게도 절망은 없다. 

11. 06. 28.  

P.S. 아폴리네르의 시구는 번역본을 따른 것인데, 문맥을 살려 “희망은 어찌 이리 폭력적인가!”라고 해도 좋았겠다(이 시구는 '미라보 다리'에  나오는 것으로 번역본 시집 <알코올>에서는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라고 옮겨졌다). 한편, 레지스탕스 노투사의 책을 언급하니까 자연스레 '저항'을 주제로 한 책들도 떠오른다. 레지스탕스 총서로 나온 <호모 레지스탕스>(해피스토리, 2011)와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해피스토리, 2011)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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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노와 기쁨과 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7-04 23:39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돌베개, 2011)에 대한 지난번 리뷰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대목을 마저 적었다.경향신문(11. 07. 05) [문화와 세상]분노의 기쁨‘분노하라’는 메시지로 프랑스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레지스탕스 투사 스테판 에셀의 올해 나이는 94세다. 1917년생인 그가 지난해 가을에 펴낸 <분노하라>는 30여쪽밖에 되지 않는 소책자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페크pek0501 2011-06-28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신문 보니깐 그 책을 샀다는 사람은 많은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은 드물다고 하던데, 전 이 책을 끝까지 정독했어요. 그것도 밑줄 그어가면서... 꽤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ㅋ 다른 책 세 권쯤을 읽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할까요.

제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세상엔 인간이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문제들 또는 상황들이 있다는 거예요. 문제의 답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 제시가 훌륭했어요. 이 책에 해법은 나와 있지 않지만, 최고의 결정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또는 나 자신이 늘 옳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책이에요.

로쟈 2011-06-29 20:41   좋아요 0 | URL
일단 독파하신 데 의의가 있습니다.^^

2011-06-2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9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11-06-2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가장 경계한 것은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력성임 최근에 느겼는데요.

로쟈 2011-06-29 20:43   좋아요 0 | URL
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잔혹성'이라고 부르죠...

seti83 2011-06-3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습니다. 분노하고 있어요~!

로쟈 2011-07-01 21:33   좋아요 0 | URL
책을 낸 보람이 있네요.^^;
 

피터 윈치의 <사회과학의 빈곤>(모티브북, 2011)을 서가에 꽂아둔 지는 꽤 됐는데, 아직 책을 펼쳐보진 못하고 있다. 지난주 교수신문에 편역자인 박동천 교수가 책의 의의를 짚어주는 기사를 실었기에 옮겨놓는다. 편역자 해제에도 적혀 있지만, 책은 <사회과학이라는 발상>이란 단행본과 <원시사회의 이해>라는 논문을 같이 묶은 것이다. <사회과학이라는 발상(The Idea of a Social Science)>은 1958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며 1990년에 2판이 나왔다고 한다(2판에 붙이는 머리말 정도가 더 붙었을 뿐이라고). 편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의 철학>(서광사, 1985), <사회과학의 이념>(현대미학사, 1997)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번역된 바 있기에 이번이 세번째 번역서이다(나는 현대미학사판도 갖고 있다). '철학에서 이념으로, 그리고 이념에서 다시 발상으로'가 번역서명의 변천사이다. 피터 윈치의 사회학을 해설/옹호하는 책의 제목이 <사회과학 같은 건 없다>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교수신문(11. 06. 15) 사회연구, 과학적 탐구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까

피터 윈치의 짧은 책, 『 사회과학이라는 발상』에 담겨있는 성찰들은 심오한 만큼 대단히 넓은 방면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함의를 가진다. 윈치는 이어 발표한 논문 「원시사회의 이해」에서 다시 사회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일과 관련해서 과학이라는 탐구 방법이 가지는 의미의 한계를 분명하게 구획했다. 이 두 작품을 모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고, 나는 거기에 『사회과학의 빈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두 편의 작품에서 윈치가 말하는 주요 논지 중에 하나는, 실재라는 것이 언어의 바깥에 언어와 무관하게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구분이 언어 안에서 이뤄진다는 논증이다.  “습도라는 개념을 가지지 않은 언어를 상상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길이 전혀 없는 언어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242쪽).” 이 때문에 실재/비실재의 구분은 언어에 의존하는 관습적 구분이 아니라 언어 바깥에서 저절로 존재하는 구분인 것 같은 착각이 쉽게 발생한다.

사회 연구에서도 과학적 탐구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무제한적 발상의 바탕에는 이처럼 ‘객관적 실재’라는 개념의 논리적 지위를 분별해내지 못한 착각이 작용한다. 이는 과학이 무엇인지,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과학과 철학이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등을 분명하게 식별해내지 못한 혼동의 소산이다. 이러한 혼동과 착각을 윈치는 베버, 파레토, 밀, 에반스-프리차드 등등, 일급 지식인들의 강점을 최대한 인정한 위에서 착오가 일어나는 지점만을 추려내는 세밀한 언표에 실어 부각하고 비판한다.

사회연구와 자연과학의 차이를 윈치는 이렇게 표현한다. 내 나라가 전쟁 중이라고 할 때, “ 전쟁이라는 개념은 나의 행태 안에 본질적으로 소속돼 있다. 하지만 중력이라는 개념은 낙하 중의 사과가 보이는 행태에 그와 같이 본질적으로 소속돼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그 사과의 행태에 대한 물리학자의 설명에 소속된다(217쪽).”설령 사과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사과의 행태에 관한 물리학자의 설명에서 사과의 생각은 적실성을 가질 수 없다.

이처럼 자연과학이 목표로 삼는 설명에서 정당하게 사용돼야할 개념들은 연구 대상과 단지 외부적인 관계만을 가진다. 이와는 달리,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싸우는지가 본질적인 요소로서 고려에 포함돼야 한다. 군인과 정치인과 후방 민간인들의 행태에 관한 통계적 일반화로써 이해가 완결된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어의 단어 각각이 나타나 쓰이는 지점에 관한 통계적 확률을 간파(201쪽)”하는 것으로써 중국어에 대한 이해가 완결됐다고 치부하는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연구 도중에 제기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문제 가운데 많은 수가 과학에 속하기보다는 철학에 속한 문제이고, 따라서 경험적 탐사에 의해서보다 개념적 분석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종류(73쪽)”임을 윈치가 지적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회 연구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행동 및 제도와 관습을 이해하는 데 있다. 물론 도중에 과학적 탐구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실상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 연구에서 과학적 탐구 방법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낳는다. 왜냐하면 사회 연구와 관련되는 수많은 주제들 가운데 과학적 방법이 유용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분별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줄 뿐이기 때문이다. 이 분별은 전형적으로 과학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철학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회과학의 빈곤』에는 과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윈치의 입장만이 아니라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그의 입장도 함께 들어 있다. “인간의 정신이 실재와 어떤 종류라도 접촉을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이고, 나아가 만약 가질 수 있다면 그 점으로 인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런지가 또한 문제인 것(62쪽)”이라고 한 버넷의 지적을 윈치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철학은 모든 것을 원래 있던 자리에 그냥 놓아둔다(185쪽)”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언표 또한 그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정신, 즉 개념은 실재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접촉하지 못하기도 한다. 각 개인이 가진 생각이 실재와 접촉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나아가 접촉한다면 어떻게 접촉하며 못한다면 어떻게 못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또한 달라진다. 이때 철학의 역할은 어떤 정신이 어떤 실재와 어떻게 접촉하는지 또는 어떻게 접촉하지 못하는지를 분별하고, 또 그러한 접촉 여부와 양태에 따라 당사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개념적으로 해명하는 데서 그친다. 실재와 접촉하지 못하는 개념은 폐기하라든지,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 편이 다른 식으로 접촉하는 편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등의 권고는 철학에 속하는 사항이 아니다. 어떤 방식의 삶이 더 좋은지에 관한 판단이나 선택은 각 개인이 실제 생활에서 내리고 스스로 인생을 통해서 결과에 책임질 사항으로 철학자도 물론 생활인으로서 그러한 결정에 일상적으로 봉착하게 되지만, 철학의 일환으로서 그리하는 것은 아니다.

실증주의 사회과학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타자화의 문제라든지, 지식이 권력과 유착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고발, 그리고 문화적 상대성과 같은 논제들은 오늘날 한국의 지성계에서도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그러나 「원시사회의 이해」에서 윈치가 비판의 과녁으로 삼은 에반스-프리차드 역시 문화적 상대성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인정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사람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막스 베버 역시 단순한 실증주의의 신도가 아니었고 오히려 사회 연구에서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미를 이해할 필요를 선구적으로 강조했던 인물임에도 과학에 관한 착각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해 『사회과학이라는 발상』에서 윈치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만큼 이들에 대한 윈치의 세심한 비판은 동시에 그들의 자취에 대한 깊은 존경의 표현임을 모든 독자가 알아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바른 길을 가려고 의지했고 또한 실제로 바른 길을 향해 여러 발걸음을 떼었다는 업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 뗀 걸음을 비판할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지적 주장의 가치를 곧 비판할 만한 가치에서 구하는 자세 역시 윈치가 철학을 이해한 방식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에 해당한다. 인간의 삶에서 과학의 유용성이 어디까지 인정돼야 하는가, 그리고 철학의 정당한 역할은 무엇인가에 관해 윈치가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입장만이 아니라, 지식 공동체에서 동료에 대한 비판과 경의가 어떤 식으로 표명되는 것이 지적 탐구의 본령과 어울리는지에 관해 행간과 문체를 통해 대변되는 그의 입장까지도 한국 지식인 사회의 현재에 대해 풍성한 함축을 지닌다고 나는 믿는다.(박동천_전북대 정치외교과)   

11.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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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에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문학평론가(이자 가라타니 고진 번역자) 조영일의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 2011)이다. 개인적으론 보론으로 실린 '세계문학전집의 구조'의 학회 발표 때 토론을 맡은 인연이 있다. 더 보태자면, '문학들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강의를 위해 백낙청의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창비, 2011)과 같이 읽어보려고 한 책이기도 하다. 몇권 더 얹어서 문학과 세계문학에 대한 생각거리를 만들어놓는다. 저자가 번역중인 가라타니 고진의 신작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기대도 덧붙이면서, 리뷰기사도 옮겨놓는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한국일보(11. 06. 25) 한국문학에 대한 비판… 설득력은 '글쎄'

한국문학은 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 했을까. 대개의 대답은 '훌륭한 작품은 많지만 지원과 관심 부족으로 번역이 제대로 안 된 탓'이다. 한 걸음 더 나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 세계 수준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자기비판적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여기서 더 비딱하게 나간 답변은 이렇다. '한국에는 근대문학 자체가 없었다.' 이 과격한 주장을 펴는 이는 소장 문학평론가 조영일(38·사진)씨다. 제도적 문단의 바깥에서 '비평고원'이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문단 주류를 거침없이 비판해온 그는 올해 초 소설가 김영하씨와의 논쟁으로 대중적 인지도까지 얻었다. 네티즌들에겐 그의 인터넷 필명인 '소조'가 더 익숙할 터다. 

앞서 <한국문학과 그 적들> 등 한국문학을 비판하는 두 권의 비평집을 통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잘 쓴 통속소설'이라거나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노년의 자아도취적 넋두리다' 등 일급의 작가들을 대놓고 비판했던 그가 2년 만에 낸 새 비평집 <세계문학의 구조>에서는 한국문학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진단한다.

한국의 근대문학은 애초에 국민문학의 토양인 국민 공통의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식된 문학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근대문학이 근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체였다는,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리타니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특히 조씨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의 사례를 열거하며 국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통의 경험이 다름아닌 '제국주의적 전쟁'이었고, 이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로선 제대로 된 근대문학이 나올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그가 겨냥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세계화하자'거나 '민족문학을 발전시켜 세계문학에 기여하자'는 식의 한국문학 응원가들이다. 대개가 출판상업주의적 구호거나 한국문학 권력자들의 공허한 담론이라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을 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조씨는 근대국가와 공생관계인 근대문학을 지양하는 세계문학을 추구하자고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과격한 그 주장의 설득력은 둘째치고 그가 파괴하려는 것이 제도권 문학을 넘어 문학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 떨떠름한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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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구조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1년 6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1년 06월 2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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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史の構造 (單行本)
가라타니 고진 / 巖波書店 / 2010년 6월
41,740원 → 38,810원(7%할인) / 마일리지 1,17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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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그 적들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09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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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08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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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지도에 별로 관심을 가진 바 없어서 지도의 역사에도 둔감한 편이다(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지리 대신 세계사를 고른 탓인지도 모른다. 지리와 역사가 상호배제적이라니!). 그래서 올해가 대동여지도 15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도 몰랐다. 게리 레드야드의 <한국 고지도의 역사>(소나무, 2011)의 출간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저자의 학덕과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해외 한국학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한국 고지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도 내세울 만한 학술적 업적이 있는 것인지?).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문학동네, 2009)에까지 관심이 생겼다...

  

서울신문(11. 06. 25) “콜럼버스 ‘강리도’ 가졌다면 동쪽으로 항해 떠났을 것”

올해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세상의 빛을 본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4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특별전시회와 학술대회를 시작했고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전시, 강연행사를 가진 뒤 오는 10월 20~21일 서울대에서 종합학술대회를 연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기념학술사업준비위원회’가 마련한 150주년 기념행사의 결정판이다. 성대하면서도 꼼꼼히 김정호를 기념하고, 그의 손길이 깃든 성과의 현재적 의미를 따져 보는 자리다.

‘조선 후기까지 조정에 제대로 된 지도가 한 장도 없어 김정호는 10년 동안 조선팔도를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8번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지한 조정은 나라의 기밀을 적들에게 알려줬다며 김정호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지도와 판목은 압수해 불살랐다.’

이제껏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을 만든 김정호에 대한 보통의 인식이었다. 시대와 불화한 삶 속에 관련 문헌의 부족, 게다가 비극적 최후까지 더해졌다니 ‘전설’ 또는 ‘영웅’이 될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는 1934년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독본’에 실린 내용이 해방 이후 교과서에까지 이어지며 빚어진 오해와 편견이다.

일제는 김정호 이전에는 제대로 된 지도 한 장조차 없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며 왜곡하는 식민사관을 주입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김정호 바로세우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이뤄져 온 인식의 벽은 여전히 두껍다.

최근 번역 출간된 ‘한국 고지도의 역사’(장상훈 옮김, 소나무 펴냄)가 반가운 이유다. 한국역사학의 권위자인 게리 레드야드(79)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석좌명예교수가 쓴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한국 지도학의 발달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 세계 지도학계에 알린 노작(勞作)이다. 레드야드 교수는 책을 통해 자신을 ‘김정호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하며 ‘김정호 이전의 성과’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 22~23일 두 차례에 걸쳐 레드야드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사 전문가인 그는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지만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 전화 인터뷰는 불가능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한국사와 한국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글이글했다. 



→한국사 전문인데 지도학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저는 사실 평생에 걸쳐 한국사를 연구해왔고 한국의 지도학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공부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차에 1990년 위스콘신대 지리학부로부터 한국의 지도학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습니다. 바로 ‘세계 지도학 통사’(The History of Cartography)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해당되는 원고였죠. 애초 60쪽 정도로 예상했으나 정리하다 보니 300쪽에 가까워졌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 편집위 또한 한국 고지도의 중요성을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세 권을 펴낸, 전 세계와 고금을 아우르는 세계 지도학의 종합연구서 시리즈입니다.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제2권의 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수록돼 있습니다. 모두 8권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적어도 20년 더 걸려야 마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작업이죠. 애초 위스콘신대에서 편집기획을 시작한 영국 출신 지리학자인 J B 할리 교수와 데이비드 우드워드 교수는 이미 돌아가셨고 새로운 편집기획위원을 선정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디지털 과학기술의 발달도 반영할 생각입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서관이 이 책을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김정호 팬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도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부터 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연결 고리였군요. 그런데 왜 대동여지도의 팬이 되신 겁니까.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세계의 학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대동여지도와 같이 구체적인 성취에 대한 것은 잘 모르죠. 제가 ‘세계 지도학 통사’ 원고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그는 이것을 ‘동아시아 최초의 진정한 세계지도’라고 일컬었다-에도 관심이 남다릅니다. 아시아편 표지 사진으로 ‘강리도’를 실은 이유이지요. 아마 콜럼버스가 1492년 이 지도를 갖고 있었다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항해를 떠났을 겁니다. 세계사도 많이 바뀌었을 테고요. 



→한국의 옛 지도를 연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글을 쓰는 데만 2년 반이 걸렸습니다. 한국의 많은 저작은 물론 일본, 중국, 유럽 학자들의 이론도 충분히 검토하고 종합했어요. 그 과정에서 김정호나 대동여지도 외에도 한국 지도학에 많은 성취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대동여지도에만 관심을 쏟으며 다른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앞서서 노력한 이들, 예컨대 양성지(梁誠之·1415~1482), 정척(鄭陟), 정상기(鄭尙驥·1678~1752) 등에 대해 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날마다 한국 뉴스를 챙겨 본다.”는 레드야드 교수는 “김정호와 같은 천재를 둔 한국인 여러분에게 축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정겹게 말했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행사에 대해서도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국내판은 흑백 도판을 쓴 원서와 달리 컬러 도판으로 바꿨다. 번역을 맡은 장상훈 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박록삼기자) 

11. 06. 25.  

P.S. '06. 25'란 날짜를 적고 보니 한국전쟁에 관한 책도 언급해둔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 3개국의 학자가 쓴 <흔들리는 동맹: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한국전쟁>(일조각, 2011)이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원제는 'Uncertain Partners: Stalin, Mao, and the Korean War"(1993)이다.   

다소 오래된 책이긴 한데, 부제대로 소련과 중국, 스탈린과 마오의 '미덥잖은' 파트너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자세한 리뷰는 '6.25전쟁 관련저서'를 특집으로 다룬 <해외 한국학평론2>(일조각, 2001)에 수록된 이완범 교수의 서평을 참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김학준의 <한국전쟁>(박영사, 2010)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중국쪽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 관련서도 몇 권 나와 있다. 하지만 스탈린과의 관계는 <흔들리는 동맹>이 가장 자세히 다룬 듯싶다. 책의 집필 자체를 러시아의 외교관이자 중국문제 전문가 세르게이 곤차로프가 주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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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1-06-25 17:12   좋아요 0 | URL
빗소리 들으며 로자님의 글을 읽으니 좋네요. 이제 산에서도 들에서도 잠시 로자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로쟈 2011-06-26 12:23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을 쓰시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