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코프스키와 파스테르나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서전과 단편소설을 묶은 <어느 시인의 죽음>(까치글방, 2011)이 재출간됐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선생의 번역으로 오래전에 나왔지만 절판됐던 책이다(안정효판 <의사 지바고>도 나는 갖고 있다). 예전에 몇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이기도 한데, 반가운 마음에 파스테르나크에 관한 강의록의 일부를 붙여놓는다. 세계문학전집판의 새로운 <닥터 지바고>도 곧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야코프스키의 자살은 어떤 상징적 의미도 갖습니다. 1930년에 자살했는데, <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도 29년에 심장마비로 죽거든요.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연도입니다. 29년에 스탈린 식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작가동맹이라는 게 만들어지고, 그런 식으로 체제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사회주의 체제로. 28년까지는 NEP(신경제정책)기였어요. <닥터 지바고>에서는 지바고가 상당히 모호한 시기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회주의 혁명 해놓고 자본주의 경제하고 있으니까.   

NEP라는 거는 상당히 어리둥절한 시기였어요. 물런 레닌을 비롯한 고위층에서는 전략적인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지만 지바고가 보기에는 혁명을 위해서 4년 동안이나 내전을 하고 서로 피를 흘렸는데 도로 자본주의하니까 상당히 어리둥절하고 넌센스죠. 그게 28년에 끝나고 29년부터 본격적인 사회주의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시기에 지바고가 죽는 걸로 설정한 건 상당히 의도적인 거죠. 주요 인물들이 지바고, 라라, 파샤. 지바고와 파샤는 라라가 사랑했던 두 남자이고, 지바고가 사랑했던 두 여자는 토냐와 라라, 그리고 나중에 같이 사는 마리나도 있죠. 라라의 경우도 코마로프스키가 있기는 하죠. 그래서 각각 세 남자, 세 여자하고 관계를 갖는데, 여기선  세 인물, 지바고, 라라, 파샤의 운명이 이 작품 메시지하고 직접 관계가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파샤가 죽고, 토냐는 추방당하고, 지바고가 죽고, 라라는 수용소에서 죽는 걸로 돼 있어요. 수용소에서 죽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죽었다는 거를 알 수가 없습니다. 추정만 할 수 있는 죽음이고, 스탈린 시기에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죽음이기도 합니다. 파샤는 러시아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파샤 안티포프가 스텔리코프라는 가명을 쓰죠. 저격수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그의 죽음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가 유형에 대한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생각을 알 수가 있고, 죽은 다음 무얼 남기는가, 이게 중요합니다.  

지바고 같은 경우에는 죽은 다음에 작품이 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지바고의 생애만 다룬다고 하면 죽음이 모든 거의 종언이라고 하면 죽는 데서 끝나겠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아요. 지바고의 무엇인가가 연속됩니다. 지바고의 어떤 삶이 부활해요. 죽음이란 게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건데 그게 지바고가 남긴 시입니다. 이작품의 주제 중의 하나는 혁명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 삶에 대한 생각, 죽음에 대한 생각 이게 더 중요한 주제를 구성합니다. 그 주제에 비하면 혁명은 차라리 부수적인 걸로 혁명이라든가 시대의 격변이라는 건 오히려 사소한 걸로 그려져요. 마치 지바고가 유리아틴에서 시를 쓰는데 밤에 바깥에서 늑대들이 울부짖는 것처럼, 그 정도. 시대의 소음, 시대의 울부짖음이라는 게 그 늑대들로 상징화되는데, 그런 게 중요한 거는 아니죠. 늑대들이 중요한 건 아니고 중요한 건 지바고가 쓰는 시에요. 파스테르나크가 가졌던 기본적인 생각들을 그런 장면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1929년은 스탈린이 ‘대전환의 해’라 부른 연도이자,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침묵이 시작되는 해이다. 많은 작가들에게 침묵이 강요됩니다. 그리고 침묵할 수 없었던 작가는 마야코프스키처럼 자살하기도 하고, 그리고 침묵이냐 자살이냐 하는 선택에서 우리의 목청 마야코프스키는 자살을 택한 것이다. 그 전에 1925년에는 ‘농민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의 자살이 있었다. 

이것도 뭔가 상징적이에요. 그러니까 시인들은 뭔가를 상징해 주기 위해서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1921년에 알렉산드르 블로크가 죽고, 이어서 적당한 간격으로 죽어요. 예세닌이 25년에 마야코프스키가 30년에. 그렇게 해서 러시아 혁명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 시인들이 각자의 죽음을 통해서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파스테르나크의 자서전이 있습니다. 이게 요새는 구하기가 어렵게 됐는데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고 번역된 작품이에요. 원제는 그냥 ‘안전통행증’ 책인데 '어느 시인의 죽음'으로 의역된 제목이고 거기서 '어느 시인'이 가리키는 게 마야코프스키입니다. 자기 자서전에서 마야코프스키에 대해서 많이 쓰고 있어가지고 국내 소개될 때는 마치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책처럼 돼버렸어요... 

11.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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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좌파와 우파 아나키스트의 만남

단짝인 남자 둘이 나오는 영화가 '버디무비'라면 두 남자의 고백을 담은 책은 '버디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난주에 나온 버디북은 악셀 하케와  조반니 디 로렌초의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푸른지식, 2011)이다. 이름에서 풍기지만 독일 남자 둘이다(사실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보다 더 겸손한 표현은 '나는 가끔 성자일 때가 있다'이지만, 사람들은 전자가 더 겸손한 걸로 착각한다). 프랑스 남자 둘이 나오는 버디북 <공공의 적들>(프로네시스, 2010)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 둘이 아닌 남녀가 등장하는 책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정희와 유시민의 <미래의 진보>(민중의소리, 2011)도 같이. 악셀 하케와 조반니 디 로렌초가 제일 먼저 묻는 질문도 '나에게 정치란 무엇인가'이니 억지스런 연상은 아니다.  

  

한겨레(11. 06. 18) 우리의 투쟁은 젊은 날의 치기였을까

25년 친구인 두 남자가 작심하고 만났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50대 독일 남자들인 유명 작가 악셀 하케와 독일 유명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 편집장 조반니 디 로렌초다. 두 사람은 평생 남들에게 이야기 못했던 마음속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이 꽁꽁 마음속에 숨겨놓고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이야기 못했던 부끄러움은 끔찍하고 커다란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속물근성’이었다.

학창 시절 새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사회운동을 했고, 부조리한 현실을 글로 고발해왔던 그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해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인하며 살아왔음을 고해성사하듯 까발려 이 책을 썼다. 학생운동을 했으면서도 군대 신고식에선 신참에게 맥주에 담배가루를 넣어 마시게 했고, 환경을 걱정하면서도 가족이 많아 더 큰 차를 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나이가 들자 투표할 때 돈을 많이 버는 중산층한테 유리한 후보에게 표를 찍었던 등이 그들이 고백한 치부들이다.  

고백을 통해 두 사람은 비로소 외면해왔던 자기 모습을 주체적으로 대면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영웅은 어떤 사람이며 자신들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지 다시 돌아본다. ‘배울 점이 있는 한 누구나 영웅’이며, 설령 내 마음의 영웅을 잃더라도 삶의 지표가 될 ‘모범’은 결코 잃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고백록은 끝을 맺는다. 마지막에 자기를 돌아보는 점검표도 곁들였다. ‘나의 투쟁은 젊은 날의 치기였을까’ ‘나는 정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이 있는가’ ‘나는 삶의 즐거움보다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등등.(구본준 기자) 

11. 06. 20.  

P.S.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중문화 작가라는 하케의 책은 국내에도 여럿 소개돼 있지만 '인기'란 말이 무색하게도 대부분 절판된 상태다. 독일 역시 먼 나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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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1-06-20 22:0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요즘 하는 것 보면 이정희 유시민 사진을 보자마자 거부감이 드는군요.

로쟈 2011-06-21 07:34   좋아요 0 | URL
요즘 욕을 많이 먹는군요...

2011-06-21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읽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로 국내에는 소개된 로버트 영 교수가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했던 모양이다. 인터뷰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그의 책으론 <백색신화>(경성대출판부, 2008)와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박종철출판사, 2005) 두 권이 번역돼 있다. 간략한 입문서 시리즈의 <포스트식민주의> 같은 책도 소개됨직하다.   

교수신문(11. 06. 17) 번역불가능한 것은 새로운 실천을 낳는 '씨앗' 제공"

로버트 J.C. 영(61) 교수는 Colonial Desire : Hybridity, Culture and Race (1995), Postcolonialism: An Historical Introduction (2001), White Mythologies (2004) 등의 저서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 이론가로서 명성이 높은 석학이다. 특히 식민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을 제3세계라는 모호한 용어대신 트리컨티넨탈(tricontinental :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로 명확하게 지칭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식민주의를 트리컨티넨탈리즘으로 명명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와『백색신화』두 권은 포스트식민 시대에 재편된 세계질서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주의적 가치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로버트 영 교수의 저서들은 영문학자들 뿐 아니라 문화연구자, 여성학자, 사회과학자들에게 중요한 이론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화 혼종성과 유동적 정체성'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그를 이경란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가 기조강연 후 1차 대화를 나눈 뒤, e메일로 추가 대담을 진행했다.  

이경란: 로버트 영 교수님, 이화인문과학원 연구단을 대표해서 저희 국제학술대회에 함께 해주시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먼저, 저희 학술대회의 주제와 관련된 “혼종성”과 “문화번역”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영 교수님은 혼종성과 문화번역이 현재의 다문화 시대를 위해 가치있는 개념 혹은 이론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은 초국가적 결혼과 노동 이주 등의 영향으로 빠르게 다문화적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다문화주의”는 실패라고 말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혼종성”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새로운 대안적 가치가 될 수 있는지요? 또한 “문화번역”이 모든 다양한 문화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하는 가치인지, 아니면 “이국성”이나 “타자성”을 대면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문화적/언어적 개념들을 “목표 문화”에 설명하는 이론적 혹은 실용적 도구로 보시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Young: “혼종성”과 “문화번역” 개념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은 사실 다문화 시대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해해야할 것은 그것이 “다문화주의” 개념 그 자체를 비판하면서 발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독일, 영국 등의 정치지도자들이 다문화주의가 어떤 면에서 실패다,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마침내 수십 년 동안 인문학자들, 특히 영국 인문학 비평가들이 말해온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문화주의”가 캐나다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캐나다의 상황은 영국이나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다문화주의는 초국가적 결혼이나 노동 이민이 만들어낸 상황을 다루기 위해 창안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캐나다 퀘벡에서는 강력한 분리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퀘벡은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고, 그 지역의 유일한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였습니다. 그들은 16세기부터 그곳에 있었으며, 적어도 1960년대부터 많은 퀘벡 사람들이 캐나다로부터 독립한 독립국가로서의 통치권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계 캐나다 인들이 캐나다의 영어권 문화 안으로 동화되기를 확고부동하게 거절하는 상황에서 다문화주의는 발명되었습니다. 캐나다 안에 두개의 분리된 문화들이 있는 현실을 수용하려는 캐나다 정부에 하나의 모델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두 문화가 캐나다의 한 일부로서 상호 평등한 존중과 관용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줄 수 있는 모델을 찾아 발명된 것입니다. 

그 후 다문화주의 개념은 토착 원주민들뿐 아니라 이뉴잇(Innuit: 캐나다 에스키모인)들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80여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고, 그들 자신의 토착 문화들을 보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다문화주의는 캐나다 국가를 위한 정치적, 문화적 틀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 안의 서로 다른 문화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고무할 수 있었고, 각각의 문화가 자체의 자율성을 유지하도록 허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 상소 관용의 모델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듯했고, 그래서 유럽 국가들이 이민, 특히 비유럽 국가들에서 오는 이민의 정치적, 문화적 결과들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흔히 다문화주의 개념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들 국가 안의 서로 다른 공동체들 사이에 가능한 관계들을 생각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여러 다른 토착적 문화들이나 여러 세기 동안의 정착민 문화들이 있는 상황과 동시대 이민에 만들어낸 상황은 아주 다릅니다. 다문화주의가 가장 호소력을 가졌던 곳은 독일이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민자 집단들, 특히 터키인들을 결국은 독일을 떠날 일시적인 ‘손님 일꾼들’일 뿐이라는 가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문화주의는 독일 정부의 관점에 잘 맞았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민자 집단들을 일반인들로부터 분리 유지하고자했습니다. 그들을 분리된 집단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고무하고자했습니다. 그들이 전반적인 독일 문화 안으로 통합해 들어오는 것, 혹은 터키계 독일인들이 독일인이 될 수 있다는 독일인이나 이민자들의 인식을 억제했습니다. 이러한 태도, 즉 이민자들은, 그들이 2세대라해도, 독일인이 아니다,라는 태도는 널리 퍼져 유지되었습니다. 

다른 한편, 영국에서는 이민자들을 일시적인 집단, 즉 영국인이 될 수 없는 집단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어떤 공식적 정책도 없었습니다. 가술적인 면에서, 어떤 경우는, 1940년대와 50년대에 영국 제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이미 영국인이었습니다. 영국은 다문화주의 개념을 어느 정도 공식적 개념으로 사용했는데, 다문화주의가 서로 다른 소수민족 공동체들에게 그들 자신의 삶의 형식들, 예를 들면 종교 같은 형식들에 일종의 문화적 존중과 자율성을 제공한다고 가정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민자들이 가능한 빨리 지배 문화 안으로 문화적으로 변용되어 들어와야 한다고 가정되었던, 전통적인 미국식 ‘용광로’보다 진전된 대안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이 모델은 1960년대에 미국의 소수민족들에 의해 이미 도전되고 있던 모델입니다. 그러나 비판가들은 재빨리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자비로운 다문화주의 형식조차도 여전히 개별 집단들이 자신들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도록 고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 집단들이 모든 사람이 단지 그들의 민족성 때문에 속해야하는 “공동체”다,라는 가정을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정부나 지방 의회들은 그 공동체가 처음부터 공동체로 존재했다고 가정하고, 반드시 그 공동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닌, 흔히 스스로 임명한 “공동체 지도자들”과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혼종성과 문화번역은 바로 다문화주의 개념에 특유한 화석화에 대항하기 위해 호미 바바, 폴 길로이, 스튜어트 홀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제안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동화라는 오래된 개념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대안으로서였지요. 단순한 동화 안에서 이주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는 가치 없는 것으로 흔적도 없이 지워질 수 있었습니다. 바바의 개념인 “제3의 공간”은 문화들 사이의 상호작용 안에서, 전적으로 주인문화의 것도 아니며, 전적으로 이민자 문화의 것도 아닌, 새로운 문화적 형식들과 삶의 양식들이 발전될 가능성을 제안하기 위해 전개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이 세상에 들어오는 방법”에서요. 혼종성과 문화 번역은 그러므로 한 사회가 어떻게 자신을 변모시킬 수 있는가하는 이론들입니다. 다른 민족들의 존재를 수용하기 위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풍요롭게하는 문화적 환경과 긍정적이고 능력을 주는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생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경란: 한국 독자들은 주로 교수님의 White Mythologies와 Postcolonialism: An Historical Introduction의 한국어 번역본인 『백색신화』와  『포스트식민주의 혹은 트리컨티넨탈리즘』를 통해 만납니다. 특히 두 번째 책은 포스트식민주의를 “트리컨티넨탈리즘”과 동일시한 책의 제목으로 독자들의 눈을 끌곤 합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한국어판 제목이 “문화번역”의 관점에서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Young: 우선, 불행하게도 나는 한국어 제목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번역본의 표지가 보여주듯, 영어 제목은 White Mythologies입니다. 이 제목은 자끄 데리다(Jacque Derrida)의 에세이 “백색 신화”(La mythologie blanche)를 암시하면서 복수로 부드럽게 번역한 것입니다. 두 번째 책으로 말하자면, 한국어 제목 '포스트식민주의 혹은 트리컨티넨탈리즘'은 참으로 만족스럽습니다. 사실, 내가 그 책을 마무리했을 때, 나는 발행자가 부제의 “Introduction” 부분을 없애게 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사실 그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의그 “Introduction”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Introduction”들은 보통 아주 짧지요! 하지만, 그 책은 이미 그 이름으로 시장에 알려졌기 때문에 그는 그 말을 없애는 것을 꺼렸습니다. 우리는 결국 “An Historical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으로 타협을 했지요. 사실 한국어 제목이 그 책의 정신과 주장에 훨씬 더 충실합니다. ’트리컨티넨탈‘이라는 개념의 발전과 포스트식민주의 개념 사이에는 긴밀한 역사적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어 제목은 성공적인 문화 번역입니다. 실제로 원본 자체보다 더 원본의 정신에 진실한 제목입니다!

이경란: 교수님은 포스트식민주의를 대신해서 “트리컨티넨탈리즘”을 제안하셨습니다. 나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지만, 세 대륙을 “트리컨티넨탈리즘”으로 묶고 자본주의, 신식민주의, 신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연대를 상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 가능은 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습니다. 세 대륙의 역사와 현재의 경험이 아주 다르고, 같은 대륙 내에서의 경험도 다양하니까요. 한국의 경우 비서구 국가인 일본에 의한 식민지 경험도 있습니다. 세 대륙 안에서 국가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그들의 모순된 이해관계와 가치들에 기반한 어떤 ‘번역불가능성’이 있겠는지요?

Young: “트리컨티넨탈”(The Tricontinental)은 “북”(the North)의 대륙, 즉 유럽과 북아메리카와 대립되는 “남”(the South)의 세 대륙,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를 나타냅니다. “북”은 자본주의와 많은 식민주의의 역사적 기원이었습니다. 물론 이 구분은, 당신이 지적한 것처럼 불완전합니다. 특히 일본 같은 나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남(비-서구)의 일부였지만 스스로를 제국적 강국으로 만들고 남동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식민지화함으로써 식민지가 되는 것을 모면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 대국 중 하나가 되었지요. 이러한 것은 이러한 분류가 결코 견고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경제적 조건에서 “북”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일인당 GDP가 전 세계 180여 국 중 30번대 중반에 놓여있습니다. 더 부유한 국가들과 더불어 상위 사분의 일 안에 들어있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북”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북과 남을 나누는 다른 방식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별 국가의 국민이 그들의 국가와 문화가 더 지배적이라고 느끼는지, 아니면 더 강력한 나라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느끼는지 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나라가 비교적 번성하다해도 전지구화의 전 과정에서 종속국가가 되고 있다고 느끼는지, 글로벌 경제의 상대적으로 분리된 그리고 제한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자본의 흐름의 일부라고 느끼는지 혹은 그것에서 베제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등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트리컨티넨탈리즘‘이 넓게는 지리적 참조틀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입니다. 그들의 나라가 충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기보다는 국경 밖의 힘들에 의해 의존적이고 착취되는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제휴입니다. 그것은 또한 글로번 문화 시스템을 지배하지 못하는 그러한 문화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가치들, 언어들, 그리고 문화적 규범들에 자신들을 맞추라고 요구받고 있다고 느끼는 나라들을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합니다.

이경란: 현재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혼종성과 문화번역, 그리고 트리컨티넨탈리즘에 관한 이론들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혹 새로운 개념 혹은 변화된 개념은 없으신지요?  



Young: 나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Colonial Desire: Hybridity in Theory, Culture and Race (1995)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양을 새로 쓰고 새로운 장이 더해질 것입니다. 새로운 판에서 나는 그 책 이후 발생한 변화와 발전을 반영하기 위해 혼종성에 대한 나의 개념들을 정교하게 할 것이다. 나는 또한 번역에 대한 새 책을 쓰고 있습니다. 번역과 문화 번역의 개념들을 함께 다루고, 그것들을 개념적으로 비교하면서 두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을 전개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역불가능성의 개념이 이 시도의 중심입니다. 언어적 번역에서, 특히 철학의 영역에서, 번역불가능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번역의 가능성들을 결정합니다. 

반면, 문화 번역은 역설적으로 실제로 번역할 수 없는 바로 그 특정한 문화적 실체나 실천을 말합니다. 하지만, 두 경우에서, 내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처럼, 번역불가능한 것은 단순히 막다른 골목, 장애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실천들을 발생시키는 “씨앗”을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나는 폭력과 관용에 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특징인 폭력에의 파괴적인 충동에서 나아갈 길을 마련할 수 있는, 관용에 관한 역사적 사례들과 이론적 모델들을 다시 생각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경란: 좀 사적인 질문인 듯 합니다만, 많은 한국 독자들은 교수님이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이 어떤 계기에서 촉발되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아마도 그 호기심은 교수님께서 “백인 앵글로-색슨 남성”이라는 문화적, 민족적 배경에서 오는 듯합니다.

Young: 그 질문에 적절하게 대답하는 것은 긴 답을 필요로 할 것이며, 아무리 많이 답을 한다해도 아마도 결국에는 대답할 수 없음을 증명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내게, 어떤 의미에서는, 번역불가능한 질문입니다. 나는 여러 번 그것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White Mythologies의 두 번째 판 서문에 약간의 논의가 있습니다. 한국 번역본에 포함 되어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쓴 것이 그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할 정도인가의 점에서는 진정으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영국의 허트포드셔(Hertfordshire)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의 가족사에 식민지나 비서구와 연결된 고리는 없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런던에서 성장하였고, 그의 가족 배경은 영국 북부와 스코틀랜드입니다. 두 곳의 문화는 내가 성장한 남부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리고 두 문화는 내게는 여전히, 아마도 세계의 먼 곳의 다른 문화들보다 더,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나의 어머니의 배경은 아일랜드입니다. 그녀의 가족은 1860년대 대기근 때 서부 아일랜드에서 이민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나 자신의 연구 조사로 발견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뉴캐슬(Newcastle) 바로 바깥에 있는 항구, 노스 쉴즈(North Shields)에 정착 했고, 1930년대의 경제적 불황 동안 남부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사용한 언어의 용어 “앵글로-색슨”(Anglo-Saxon)으로 보자면, 더 적절하게는 오스르테일리아에서 그들이 부르는 “앵글로-켈틱”(Anglo-Celtic)인 셈입니다. 비록 이 두 개념들 모두 내가 나의 책 The Idea of English Ethnicity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처럼 19세기의 창조물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나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나는 늘 아일랜드를 좋아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삶의 방식에 즉각적이고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것들 어느 것도 적절한 방식으로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에 대한 나의 관심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나의 지속적인 경향, 즉 나 자신을 내가 성장한 것들과 아주 다른 관점들 속으로 반직감적으로 투사하는 경향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한 내가 많은 다른 문화적 배경들에서 온 사람들과 교우 관계를 쉽게 발전시키는(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에 온지 아주 짧은 그 몇일 동안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할 듯합니다. 나는 단지 어떤 의미에서는 언제나 나 자신의 문화적 조건화의 결실을 거슬려 가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힘을 가진 사람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더 손쉽게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말을 하기보다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 그들의 개인적인 관점을 발견하는 것, 다시 말해, 사물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무엇이 그들의 인간됨의 지반인지 발견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11.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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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눈에 띄는 책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주인데, 그래도 분야별로 한권씩은 꼽아볼 수 있다. 경제쪽이라면 리오 휴버먼의 <휴버먼의 자본론>(어바웃어북, 2011)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란 베스트셀러의 저자 휴버먼이다.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원제가 <자본론>으로 탈바꿈한 게 얼핏 이상해 보이지만 목차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본주의가 어째서 지속가능하지 못한가에 대한 설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명쾌한 구분의 출처가 휴버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경향신문(11. 06. 18) 먼저 이해한 후 싫어하라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미국의 진보 잡지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사회주의자 리오 휴버먼(1903~68·사진)은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제목을 ‘사회주의의 ABC’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담론이 아니라 쉬운 말과 사례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란 뜻이었다. 



책은 [The Truth about Socialism](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악마의 도구’로 여겨지던 사회주의의 참뜻을 알리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책은 첫장 ‘계급’으로 시작해 잉여가치-축적-독점-분배-공황-전쟁-국가-효율-합리성-몽상가(오언, 푸리에 등)-두 사람(마르크스와 엥겔스)-계획-자유-권력을 거쳐 ‘인간’을 다룬 마지막 장으로 이어진다. 제목 흐름만 봐도 책의 구성과 내용, 지향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큰 줄기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으로 분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일반 대중은 매우 가난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그해 펴낸 <미국의 소비역량> 중 ‘1929년 미국의 소득분포’ 표를 보면, 미국 전체 가구의 42%인 1200만 가구가 국민소득의 13%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의 0.1%인 상위 3만6000가구의 소득도 13%였다.

휴버먼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전하면서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비용을 구성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60년 전 분석이지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4대강 사업장에서 수십명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 한국 자본·권력과 노동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자본의 속성을 적확히 진단하고 있다

책의 또 다른 큰 줄기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다. 휴버먼은 로버트 오언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혹한 환경에 저항했던 이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가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다. 자본과 노동의 ‘조화’는 있을 수 없고, 두 계급 간 갈등이 필연적이라고 본 휴버먼은 “특혜와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자본계급의 주된 관심사다. 반면 노동계급의 관심사는 비하와 수모에 저항하고,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일”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휴버먼은 “사회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것이고, 공산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고 둘을 구분하면서 공산주의적 분배 원리는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주의적 분배 원리는 즉각 시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봤다. 공산주의 전 단계로 토지·원료·공장·기계 같은 생산수단을 우선 공적 재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버먼은 책의 여러 곳에서 자유와 수정헌법 같은 미국의 가치를 역설하는데, ‘노동 계급의 생산수단 소유’ 주장도 미국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증기기관이 가난한 이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파괴하는 존재로 비쳐진다면, 그들로서는 그것을 장악해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혁명적 제안이 담긴 토머스 스키드모어의 <재산에 관한 인간의 제 권리>는 마르크스가 11살 때 나온 것이다.

휴버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윤 동기가 음울한 종말을 맞을 운명이라고 진단하고, 사회주의 시스템의 목도를 예견했다. 책 출간 이후 60년 동안 벌어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감안하면, 그의 예견은 성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백년 전 ‘왕권신수설’이란 개념에 대한 도전이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그의 예견은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파탄이 목도되고 운위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모습이 그 진행형을 증거하는 것일 수 있다.(김종목 기자) 

11. 06. 18. 

 

P.S. '자본주의의 종말'을 다룬 책으로 엘마 알트파터의 <자본주의의 종말>(동녘, 2007)과 함께 김수행 교수의 <세계대공황>(돌베개, 2011)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사이'가 부제라서다. 안토니와 네그리의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그린비, 2009)까지 나란히 읽어봄직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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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6-21 06:27   좋아요 0 | URL
The truth about socialism는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인데 번역이 나왔군요.(이 블러그에서 보고 그런 책이 있는 걸 처음 알았읍니다.) Man's Worldly Goods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라는 이름으로 나온 듯 합니다. 1936년 초판인데 아직까지 미국에서 출판이 되고 있으니 거의 명저나 고전에 반열에 속한 책이라 할 수 있읍니다. 경제사 관련 있으신 분은 읽어보기를 권하고요. 70년-80년대에는 이 책 영문 해적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요즘 한국의 번역서를 보면 정말로 엄청난 양의 책이 나오는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번역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번역자의 사정들이 별도 좋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로쟈 2011-06-21 07:36   좋아요 0 | URL
네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꽤 지명도가 있는 책입니다. 번역서가 쏟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인문번역서로 먹고사는 건 굉장히 어렵고 드문 게 이곳 현실입니다. 독자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어서요. 반전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4:24   좋아요 0 | URL
겨우내 아내와 아내의 전공인 철학 영문서 번역에 매달렸습니다. 저는 영어가 짧아서 교정을 보았는데 며칠전 출간이 되었구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번역료 한 푼 못받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같은 저자의 책을 같은 출판사에서 두번째로 번역하는 건데 3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네요. 지인들은 책을 구입해 준다는데 구입비가 역자에게 오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영어 공부한 걸로 자위해야 할테죠?

로쟈 2011-06-21 15:03   좋아요 0 | URL
인세로 계약을 하신 건가요? 번역료를 못받으신다고 하시는 게 이해가 안되는데요. 인세라고 해봐야 아주 소액일 테지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9:21   좋아요 0 | URL
출판사 말은 저자가 로열티를 많이 부른탓에 그 금액을 충당하느라 번역료는 따로 없다고 한답니다...

로쟈 2011-06-21 20:21   좋아요 0 | URL
그건 말이 안되는 조건인데요. 그런 걸 알고도 맡으셨다면...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20:54   좋아요 0 | URL
5년간 미국을 다녀오면 인문학 출판계의 이런 현실이 바뀌어 있을까요? 그러길만을 바라야죠^^
 
푸른역사 아카데미 목요강좌

푸른역사 아카데미 강좌에 대해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아카데미의 설립 취지와 기획에 관한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 이 강의공간과 강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한겨레(11. 06. 15) 새로운 ‘역사 대중화’ 위해 학계·출판계 뭉쳤다

<대장금>을 비롯한 텔레비전 사극들의 높은 인기가 보여주듯, 역사는 대중들이 누리는 인문교양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분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학계나 출판계에서 활발하게 펼쳤던 ‘역사 대중화’ 작업들이 큰 구실을 했다. 반면 한껏 높아진 대중의 열기에 견줘 지금 학계·출판계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발걸음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성찰도 나오고 있다. 역사 분야의 석·박사 전공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역사 대중화를 선도해왔다고 평가받는 출판사인 푸른역사가 지난 4월부터 ‘푸른역사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시민 교육기관을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책장과 책상, 세미나실 등 공부에 필요한 공간을 갖추고, 독서모임이나 각종 강좌를 펼치고 있다. 중소 규모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사랑방 모임’이라는 세미나 모임을 통해 꾸준히 교류해왔던 박혜숙(사진 오른쪽) 푸른역사 대표와 푸른역사 아카데미 원장을 맡은 임기환(왼쪽) 서울교대 교수를 만나 아카데미의 취지와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 설립의 기본적인 취지에 대해 “역사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만남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 교수는 “이미 다듬은 생각을 전달만 하는 책이나 특정 시기와 장소에만 열리는 강좌들로서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모두 끌어안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존의 출판 방식만으로는 깊고 다양해지는 대중들의 관심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학계와 출판계 모두 새로운 시도를 위해 대중들과 직접 만나는 소통 창구를 원했다는 얘기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두드러진 특징은 역사적 사실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시민교양의 한 분야로 삼아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목요일마다 열리는 고정강좌다. 여기에선 노성두 박사의 미술사, 김수영 연세대 강사의 철학, ‘인터넷 서평꾼 로쟈’란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의 문학,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씨의 클래식 강좌가 열린다. 강좌마다 40~50명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한다.

기획강좌의 내용도 새롭다. 15일 처음 열리는 ‘논쟁-대담’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에서는 역사학자인 김영미 국민대 교수와 정치학자인 이광일씨의 발표를 중심으로, 박정희 체제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역사학자와 정치학자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견줘볼 예정이다. 지난 13일부터 열린 기획강좌 ‘역사가가 편집자에게’ 역시 새로운 시도다. 출판시장에서는 주로 대중이 어떤 역사서를 원하는가에 눈을 맞추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스스로 거둔 연구 성과를 단행본으로 만들기보다는, 대중들이 읽기 편한 주제를 중심으로 기존에 나온 학계의 성과들을 엮고 짜맞추는 출판 기획이 많다. 이에 대해 아카데미는 지식 생산자인 학자들은 어떤 책이 만들어지길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임 교수와 함께 김기봉 교수, 한명기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서, 역사대중서는 왜 팩션과 미시사에 열광하는지, 학계에서 보는 한국사의 새로운 트렌드는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아카데미는 이런 새로운 시도들 속에서 학계와 대중, 학계와 학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매개체’ 구실을 할 것이라고 한다. 박혜숙 대표는 “현재 이른바 ‘학술진흥재단(학진) 시스템’이라 불리는 연구·글쓰기 시스템에서 나오는 결과물, 즉 논문은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학계에선 대중들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학자인 임 교수는 “기본적으로 학자에겐 연구의 신뢰도를 검증받기 위한 시스템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학계와 대중 사이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기획’ 역량이 그만큼 절실하다”고 말했다.(최원형 기자) 

11.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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