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다 보니 낯익은 유명인사들의 부음도 자주 접하게 된다. 현지시간으로는 엊그제(26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배우 폴 뉴먼의 경우도 내겐 '낯익은' 유명인사다. 부음기사에서 그가 1925년생이었다는 걸 알고는 잠시 놀랐다. '멋진 악당' 혹은 '멋진 중년'을 상징하는 배우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기억에는 많이 잡아줘도 60대에서 멈춘 배우이건만). 그의 명복을 빌면서 부음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 1969년 만들어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한 폴 뉴먼(왼쪽)과 로버트 레드포드

한겨레(08. 09. 29) 행동하는 ‘멋진 악당’ 천상의 무대로

깊고 푸른 눈을 가진 인자한 얼굴의 노 신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봐 마이클. 눈을 크게 뜨고 보게!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인생이고, 끌고 온 인생이야.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거지.”(<로드 투 퍼디션> 중에서)

26일(현지시각) 숨진 할리우드의 노 신사 폴 뉴먼은 50여 년의 연기 인생 속에서 늘 세계와 불화하는 ‘악당’이자 ‘반 영웅’이었다. 1963년 <허드>에서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위해 병든 소를 파는 이중적인 인간 ‘허드’를 연기했고, 67년 <폭력탈옥>에서는 삐딱하고 쿨한 자기 파괴적인 죄수 ‘루크’를 맡았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는 유쾌한 은행털이 강도 ‘부치 캐시디’로 열연을 펼쳤다.

2002년, <로드 투 퍼디션>에서 77살의 노 배우는 젊은 톰 행크스를 앞에 놓고 1930년대 시카고 암흑가의 냉혈한 보스 ‘존 루니’를 섬뜩하게 재현해 낸다. <뉴욕타임즈>는 27일 인터넷판에서 그를 “어떤 배우도 그만큼 불완전한 인간을 많이 연기하진 못했다”고 평했다.

뉴먼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인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으며, 인권을 적극 옹호했다. 그래서 리처드 닉슨의 ‘블랙리스트’(enemies list)에 오르기도 했는데, 뉴먼을 이를 두고 자주 “내가 이룬 가장 자랑스런 성취”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 스콧이 78년 알콜과 약물 과용으로 숨지자 ‘스콧 뉴먼 재단’을 설립하고 약물 반대 영화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또 1982년 만든 ‘뉴먼즈 오운’이라는 식품회사가 크게 성공하자, 여기서 번 수익금 2억달러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했다. 암과 같은 큰 질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여름 캠프도 만들었으며, 항암 치료 탓에 머리털이 빠진 아이들을 위해 카우보이 모자를 직접 골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뉴먼은 또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를 여러 번 석권한 훌륭한 카레이서기도 했다.

뉴먼은 열정적인 배우였고, 행동하는 양심이었으며, 무엇보다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부부는 성명을 내어 “미국의 아이콘이자 박애주의자, 어린이들을 위한 챔피언이었다”고 그를 기렸다.(길윤형기자)

 

경향신문(08. 09. 29) [여적]폴 뉴먼

영화사상 최고의 ‘라스트 신’을 꼽으라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우선 떠올리게 된다. 1969년 개봉된 이 영화는 1890년대 전설적 갱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다. 현금수송 열차와 은행을 터는 강도 행각을 벌이면서도 인간적 냄새를 풍기는 두 젊은이는 탄광촌 은신처에서 군대에 포위되자 ‘이번엔 호주로 가자’고 다짐하며 권총을 치켜들고 뛰쳐나온다. 순간 화면이 정지되고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의 갱 영화이지만 인간미와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폴 뉴먼이 암 투병 끝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스팅’ ‘상처뿐인 영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허슬러’ ‘컬러 오브 머니’ 등 숱한 화제작으로 이름을 떨친 그의 강렬하고도 우수에 찬 푸른 눈은 반항적 젊은이, 차가운 승부사, 정의로운 중년, 관조적인 노년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낳으며 세계인들의 심금을 흔들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뉴먼은 더욱 멋진 매력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그는 ‘초현실적 기업 모델’을 창시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1982년 설립한 ‘뉴먼즈 오운’이 그것이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친환경 드레싱을 제조·판매하는 이 회사는 초기 자본금 1만2000달러에 첫해 수익만 92만달러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다음해 수익금 10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뉴먼은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최근까지 미국과 해외에 기부한 금액은 2억2000만달러(약 2200억원). 이밖에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산골짜기 캠프를 미국 31개주와 해외 28개국에 건설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레스토랑 경영에 나서는 등 나눔과 베풂의 삶에 정열을 바쳤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고 있다지만, 뉴먼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투철한 원칙과 신념을 가진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송충식 논설실장)

08. 09. 28.

P.S. '폴 뉴먼'하면 <내일을 향해 쏴라>나 <스팅> 같은 영화를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개인적으론 장년의 그가 신예 톰 크루즈와 주연했던 영화 <컬러 오브 머니>(1986)의 인상도 강하다. 극장에서 폴 뉴먼을 본 최초의 영화였던 듯하다. 폴 뉴먼이란 배우의 존재감을 대형 스크린에서 맛보게 해준 영화(http://www.youtube.com/watch?v=U9rGDYjVr0c). 감독은 마틴 스코시즈였다. 그러고 보니 그맘때는 나도 당구를 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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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2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삶을 살단 간 배우군요.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라는 구절이 콕! 박히네요.

로쟈 2008-09-28 22:44   좋아요 0 | URL
네, 있는 사람들이 탐욕만 버린다면 좀 멋지게 사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조선인 2008-09-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로쟈 2008-09-29 22:33   좋아요 0 | URL
젊었을 때는 톰 크루즈보다 더 멋있더군요...

비연 2008-09-2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아가셨군요. 명복을 빕니다. 로쟈님의 브리핑으로 그의 생애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네요. 이제, 그 옛날 제 마음에 추억으로 남겨진 명장면 속의 배우들이 하나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로쟈 2008-09-29 22:32   좋아요 0 | URL
한 세대가 가는 거 같습니다...

sophia49 2008-10-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제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올려주신 폴 뉴먼의 이야기...넘 좋아요.

로쟈 2008-10-16 21:18   좋아요 0 | URL
네, 이건 제가 책사랑에 안 옮겨놓았던가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지난주 신간 중에 앤드류 달비의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2008) 같은 책은 단박에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두었지만(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읽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 !쿵족 여성의 삶을 다룬 <니사>(삼인출판사, 2008)나 교양과학서 <보살핌>(사이언스북스, 2008)은 '읽고 싶은 책'이지만 당장에는 여유를 갖기는 어려운 책이다(하여 '그림의 책'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뷰들을 옮겨놓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를 갈면서까지는 아니겠으나 속은 조금 쓰리다...

한국일보(08. 09. 27) 아프리카 '!쿵'族 여인들이 사는법

"대개 일생 동안 두 번 이상 결혼하며, 적어도 한 번은 장기간의 결혼을 경험한다. 이혼으로 결혼이 깨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이혼은 보통 결혼 첫 몇년 사이 아이가 생기기 이전에 여성 쪽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187쪽)

이혼과 동거가 다반사처럼 돼가는 이곳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오지인 칼리하리 사막 북부의 흑인 부족 '!쿵' 족의 생활을 손금 보듯 기록한 인류학의 고전 <니사> 중 한 구절이다. '!쿵'이란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나타내는 음성기호(!)를 사용해 표현한 아프리카의 독특한 발성법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이혼이 자유로운 !쿵족이지만 첫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남은 일생동안 자녀를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이 책은 '서구 문명'이라는 형식은 세계의 극히 작은 일부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인류학적 연구의 보고다. 서구 문명과 전혀 다른 세계를, 현지인들의 시각으로 올곧게 재현한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에게도 문화의 형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다. 책은 구미 사회의 대격동기였던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전문가들이 펼친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토대로 1981년 출간됐다.

저자는 여성주의의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 일, 정체성 등 여성성의 문제에 씨름하는 젊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그들과 나눈 수백여건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니사'는 그 중 특히 입심 좋은 여인의 이름이다.

이 책은 인류학 민족지의 모범을 구현한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오랫동안 무시돼온 토착민ㆍ문맹자ㆍ여성의 입장에 충실, 세계를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저자가 현지인들의 바람대로 담배를 줄 것인지, 인터뷰에 응한 대가로 돈을 줘야 하는지, 고유 문화를 보존한다면서 알게 모르게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 등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보편성은 특수성과 어떻게 결합하는가? 예를 들어 섹스 문제를 보자. "!쿵 사람들은 사람이 섹스에 굶주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365쪽) 거기 대한 책의 풀이는 이러하다. "식량 자원을 예측하기 힘들고 식량이 끊임없는 관심사인 사람들" 특유의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자인 남편의 현지조사를 따라 현장에 갔다가 원주민들의 삶에 매료돼 이 책을 썼다. 1990년 다시 니사를 만나러 현지에 갔던 저자는 장시간의 인터뷰를 남겼다. 그러나 1996년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 기록은 2000년에야 <니사에게 다시 가 보니>라는 유작으로 빛을 보았다.(장병욱기자)

문화일보(08. 09. 26) 인간 본성은… 따뜻하다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의학연구자 엘지 위도슨은 식생활이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에 들어갔다. 고아원 두 곳을 택해 한 곳에만 6개월간 빵과 잼 등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추가로 식품을 지원받지 않은 A고아원의 아이들은 잘 자란 반면, 식품을 지원받은 B고아원의 아이들은 거의 자라지 않은 것. 머리를 갸웃거리며 위도슨은 그 다음 6개월간 두 고아원의 조건을 바꿨다.

연구 결과는 또다시 연구자를 놀라게 했다. 더 이상 추가 식품을 지원받지 못한 B고아원의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 반면, 새롭게 지원받은 A고아원 아이들의 성장은 오히려 둔화되었다. 위도슨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고아원에 대한 직접 조사를 벌였고, 원인을 알아냈다. 이유는 식품이 아니라 원장이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 B고아원의 원장은 엄격하고 강압적인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6개월 후 A고아원으로 옮긴 것. 추가 식품의 지원 여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이 달라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원장의 강압적인 양육태도가 아이들 성장을 방해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런데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인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힘에 대한 인정을 넘어 보살핌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보살핌 본성론’의 출발은 두 가지 과학, 사회적 흐름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인간의 공격성,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 사회는 전쟁터라는 ‘투쟁’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살핌을 여성의 모성애와 연결시키고 모성애를 여성의 활동을 옥죄는 이데올로기 기제로 작용시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보살핌 본능을 ‘스트레스 상황’을 통해 설명한다.

즉 기존의 공격적인 인간 본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도피해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살핌의 본성이 작용,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어울려 보살피는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미와 아기의 강렬한 애착부터 차모임, 계모임 등 문화권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여성들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각종 모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보살피려는 인간 본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적의 위협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비해 여성, 특히 어머니는 자식들을 품에 안고 오히려 침착하게 다독이며 애정을 쏟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은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반면, 여성은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육아, 결혼, 사회생활 등을 넘나들며 보살핌의 본능을 추적한 뒤, 결국 인간이 태곳적부터 지니고 있는 보살핌 본성을 사회적 시스템화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긍정적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최현미기자)

08. 09. 28.

 

 

 

 

 

 

P.S. '쿵족'이 아니라 '!쿵족'이다. 예전에 인류학 관련서를 읽다가 '!쿵'이란 표기 때문에 인상에 남았던 부족이라서 이번에 출간된 <니사>가 반갑다. 언젠가는 나폴레옹 샤농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와 함께 꼭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다(오래전부터 미뤄놓은 '숙제'다). 한편, 셸리 테일러의 '보살핌 본성' 혹은 '보살핌 본능'이 떠올리게 해주는 책은 '보살핌의 윤리'에 관한 것들이다. 얼른 생각나는 건 한국현상학회에서 펴낸 <보살핌의 현상학>(철학과현실사, 2002). 레비나스의 윤리학 등이 다뤄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미 절판된 것으로 나오는데, 캐롤 길리건의 유명한 책 <다른 목소리로>(동녘, 1997).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도덕적 정향이 각기 다르게 설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성 대신에 관계지향성을 내세우는 여성은 '보살핌'에 더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보살핌>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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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출간됐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렸다가 오늘에서야 '발동'이 걸린 책이 있다. 과학저술가 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까치, 2008)가 그것이다. 책 표지만 보고 그렇고 그런 교양과학서겠거니 생각했지만 목차를 보니 좀더 근사한 책이란 걸 알 수 있다('사회물리학'이라니!). 최근에 나온 교양과학서들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읽고픈 책이다(우울한 것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지만). 아니 사회학 책인가?! 지난주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8. 09. 20) 인간행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물리학법칙

물리학은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이 분야에선 특별한 일이 진행되어 왔다. 물질세계를 이해하려고 개발했던 방법과 아이디어들이 뜻밖의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이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회의 물리학’(physics of society)이 부상한 것이다. 물리학은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결정하고 투표하며, 어떻게 집단과 조직을 형성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틀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이나 사회적·상업적 네트워크에 숨겨진 구조를 밝혀내고 갈등과 협력의 정치학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는 이처럼 물리학을 사회학·정치학·경제학 등에 결합시킨 새로운 사회물리학의 역사적 궤적과 최근 동향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토머스 홉스와 애덤 스미스에서부터 게임이론과 인터넷 네트워크에 대한 현대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풍부하게 제시하는 한편 사회물리학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살폈다.

사회물리학을 모색했던 최초의 인물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였다. 그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자명하다고 믿는 공리(公理)로부터 인간의 상호작용, 정치, 사회에 대한 과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대표작 ‘리바이어던’은 갈릴레오의 역학을 근거로 삼았다. 이 같은 홉스의 사상은 로크 등을 통해 후세의 사상가들에게 전해졌다. 책에는 애덤 스미스, 칸트, 콩트, 밀 등 홉스와 같은 아이디어를 추구했던 이들과 함께 사회물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리학을 통계적인 것으로 만든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사회통계학을 이용해 정치경제학을 연구한 윌리엄 페티.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이해라는 개념을 널리 확산시킨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 역사 자체를 과학으로 본 헨리 토머스 버클 등이다.

헬빙과 몰나르는 물리학을 바탕으로 보행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하나의 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은 일부가 한쪽으로 통과한 후에 다른 방향으로 통과하는 일이 번갈아 일어난다.

사회적 행동을 정량화하려고 시도한 현대 연구자들의 연구와 실험들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사회물리학은 보행자들의 흐름에서 전기 전하를 가진 입자들에게 작용하는 전자기 힘과 비슷한 사회적 압력을 읽어내고, 도시 팽창의 복잡한 유기적 성격의 실마리를 박테리아 군체의 비평형 성장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찾는다. 덩어리가 커질수록 더 빨리 성장하고 작은 덩어리들은 사라지거나 다른 덩어리에 의해서 삼켜지는 ‘오스트발트 성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기업인수와 세계화와 연결된다. 물리학은 왜 정체가 생기는지를 이해하고 주가의 움직임 등 경제를 예측하려는 시도들에도 개입한다.

책에는 상전이, 멱법칙, 자기조직화 패턴, 집단적 움직임, 무규모 네트워크 등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흥미로운 실험 사례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국 배우 케빈 베이컨이 다른 배우와 몇 단계를 거치면 아는 사이인지 파악하는 ‘케빈 베이컨 게임’의 다양한 ‘버전’들이 나오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17개 국가들의 제휴관계를 거의 흡사하게 재현해내는 실험도 소개된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더라도 그들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사회물리학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단언한다.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을 어떻게 정의하며,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사회물리학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김진우기자)

08. 09. 27.

P.S.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원서의 표지는 국역본 이상으로 심심하다. 찾아보니 좀더 근사한 다른 표지가 있다.

표지에 국역본에서와 마찬가지로 '2005년도 아벤티스 과학저술상 수상작'이라고 적혀 있다. 그게 어떤 상인지 일반독자로선 알 수가 없지만, 스티븐 호킹의 <호두껍질 속의 우주>(2002년)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4년)가 이전 수상작이라고 하니 허튼 상은 아니다. 역자인 이덕환 교수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03)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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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국일보에 실린 글을 옮겨놓는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9/h2008092702460884210.htm). '책과 인생' 코너에 5매짜리 원고를 청탁받고 쓴 것이다. '거창한' 주제를 짧게 쓰려고 하니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도 드물어서 어제 새벽에 책장 가까이에 있는 니진스키의 책을 펴놓고 예전에 쓴 글도 참고하여 몇 자 적었다. '눈물의 바다 러시아 문학'이란 '과장된' 제목은 물론 나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일보(08. 09. 27) [책과 인생] 눈물의 바다 러시아 문학

능글맞기도 하지만 괜히 잘 우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을 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갖고 있다. 물증을 대라고 하면 내가 만났던 러시아인들이 아니라 내가 읽은 러시아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가령 전설적인 무용가 니진스키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란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제목은 조금 과장된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으며 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니진스키가 아예 정신을 놓기 전에 쓴 일기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나온 같은 역자의 첫 우리말 번역본에는 그냥 <니진스키의 고백>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몇년 전 모스크바에서 구한 러시아어본의 제목은 <감정>이다. 물론 이 제목들이야 편집자의 작품일 것이다.

20대 초반의 어느날 나는 지방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니진스키의 고백>을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이건 뭐 달리 대책이 없다. 읽으면서 같이 우는 수밖에.

니진스키는 고기를 먹으면서 울고, 사랑의 시를 적으면서 울고, 아내의 울음 때문에 또 운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예술가' 이전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은 단순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고통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신조차도 가여워한 한 영혼의 고통이다. 어느 시인을 위해 울어주던 버드나무처럼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운다. 그 생각만 하면 나도 눈물이 난다.

아직 능글맞은 중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빈들거리는 일이 잦은 나는 그런 때마다 반쯤 정신 나간 무용가의 눈물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문학은 그런 눈물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들은 삶을 너무 사랑한 것이 아닐까?

08. 09. 27.

P.S. 니진스키의 일기 얘기를 꺼낸 김에 관련서들의 이미지도 옮겨놓는다. 먼저 내가 제일 처음 읽은 <니진스키의 고백>(문예출판사, 197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발췌본의 번역이어서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와는 번역대본이 다르다. 제대로 된 완역본이 1995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1999년에 영역본이 나왔다. <절규>는 그것을 옮긴 것이어서 <고백>과는 차례도 다르다. 내가 아는 러시아어본이 나온 것은 2000년이 돼서다.

이 <고백>은 나중에 구하려고 하니 눈에 띄지 않아서(지금이라면 구할 수 있을 듯싶지만) 한 시립도서관의 책을 복사해서 갖고 있다. 그의 여동생이자 안무가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책 <나의 오빠 니진스키>(문예출판사, 1988)와 아내 로몰라 니진스키가 쓴 회고록 <천재는 어디로: 무용의 신 니진스키>(까치, 1981)도 이덕희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니진스키 3종 세트'라 할 만하지만, 나는 따로 갖고 있지 않다.

  

러시아에서 출간된 니진스키 관련서를 오래만에 검색해보았다. 먼저 그의 일기의 러시아어본인 <감정>(2000).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표지는 두 종이 있다. 왼쪽이 더 마음에 들지만 내가 갖고 있는 건 오른쪽.

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Чувство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Чувство

그의 아내 로몰라의 회고록도 두 종이 눈에 띈다. 그밖에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의 전기 번역서 등이 더 있다. 관련서가 많지는 않은 것이다.

Ромола Нижинская 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Воспоминания NijinskyРомола Нижинская 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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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7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8-09-27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러시아어 책 표지들을 보니까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야말로 '러시아 문학도의 뜨거운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 잘 읽었습니다(글을 읽고나니 제목을 붙인 편집자의 선택이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로쟈 2008-09-27 23:24   좋아요 0 | URL
원인 제공은 했지만 포커스가 거기에 맞춰질 줄은...^^;

Ritournelle 2008-09-2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서재는 러시아적 세계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쏫기도 한답니다.

로쟈 2008-09-28 20:36   좋아요 0 | URL
1년만 배워도 니진스키는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며칠전에 마땅한 리뷰가 없어서 올려놓지 못한 책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의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에코의서재, 2008)이다. 루디네스코는 전기 <자크 라캉>(새물결, 2000)의 저자이며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저자 소개란에는 "프랑스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평가받는다"라고 돼 있는데(파리 7대학이라면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동료인 것 아닌가?), 헤겔과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최고'는 '최고'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주제보다는 저자에게 이끌린 것이다('악의 쾌락'이란 제목도 유혹적이긴 하지만). 주말 북리뷰들에 예상했던 것보다 자세한 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9. 27) ‘비천’한 것인가, ‘숭고’한 것인가 도착(倒錯)

사디즘·마조히즘·소아성애증·페티시즘·관음증·노출증·의상도착증·분변음욕증…. 도착(倒錯)은 때로는 ‘비천’하고 때로는 ‘숭고’하다. 퇴폐, 악마성, 인간성 상실, 잔인성 등을 특징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조적이고 복종을 거부해 숭고함을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도착증이 ‘인류만의 소행’이라는 사실이다. 15세기 프랑스의 질 드 레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인간만이 쾌락을 위해 300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도착증은 일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게 아니다. 인간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구조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감추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어두운 일면을 보란 듯이 내보이는, 우리의 일부이자 인류의 일부분이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파리 7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한 번도 정식으로 다뤄진 적이 없는 ‘도착의 역사’를 추적하는 이유다.

도착증은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도착자들은 누구인가. 저자가 정의하는 도착자는 악행을 저지를 뿐만 아니라 악에서 쾌락을 느끼고 스스로 그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책은 중세를 시발점으로 도착증과 도착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천사를 조명하면서 도착에 대한 사회의 ‘도착적’인 강박관념을 허무는 작업을 진행한다. 아울러 우리 내면의 감춰진 어두운 부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성찰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책을 따라 ‘도착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온갖 변태적이고 잔악한 행위들을 실천한 도착자들이 잇따라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신비주의 성직자들은 배설물을 먹거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를 통해 비천함을 숭고함으로 바꾸고자 했다. 질 드 레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사지를 자르고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사정을 했다. 18세기의 저주받은 작가 사드는 수음, 펠라티오, 항문성교를 조장한 사상 최악의 패륜아로 일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도착을 자유를 향한 해방과 혁명으로 묘사한 위대한 성애문학 작가로 칭송받기도 한다.

책은 특히 19세기 도착자들을 정의하고 통제하기 위해 다듬어진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도착증은 ‘공포의 대상’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저주받은 종족’과 치료가능성이 있는 이들로 나눴다. 모든 비정상적인 행위들을 목록화해 단속했고 특히 자연을 거스르는, 즉 번식을 거부하는 자위하는 어린이, 동성애자, 히스테리 여성을 가장 도착적인 인간들로 규정했다. 저자는 이 같은 실증주의적 정신의학 담론들이야말로 강박적이고 나아가 도착적이라고 일갈한다. 아이들의 자위를 막기 위해 발기 방지 상자나 음경의 외과시술 등 기괴하기까지 한 각종 치료법이 유행했던 당시 모습이 또다른 도착이 아니냐는 것. 개개인의 욕망에 대한 사회와 권력, 그리고 과학의 억압도 도착이라는 주장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 같은 억압과 차단의 가장 극단적이고 도착적인 결말이 20세기의 아우슈비츠다. 그곳은 “한 국가가 어떻게 계몽주의의 이상과 정반대 방향으로 작업한 끝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지, 어떻게 과학을 도구로 삼아 인간성 자체를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아우슈비츠의 살인마들이 “끔찍할 정도의 정상상태”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들의 정상상태가 “도착증 전체를 포괄하는 도착적인 체계에 대한 집착의 증후”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그들은 대량학살을 자행하고도 합리화하거나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는 심지어 “희생자들 스스로가 자기 파괴를 갈망했다”고까지 이야기하는 도착증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21세기 우리 사회의 도착증은 어떨까. 소아성애자와 테러리스트가 도착증의 가장 극악한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소아성애자에게 약물을 처방하려는 시도에서도 ‘도착적인 무언가’를 읽어낸다. 잠재적 범죄의 위험도가 높은 아기들을 식별하려는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근절시키겠다는 과학만능주의의 귀환이자 생체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다. 저자는 “유기적인 삶을 차분히 관리하기 위해 악·갈등·운명·무절제를 제거하는 것, 도착증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도착증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결국 책이 ‘도착의 역사’를 통해 사유하고자 하는 것은 점차 도착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시대다. 저자는 “오늘날 산업기술사회는 때로 신체를 외설적으로 물신숭배함으로써, 때로는 도착증 개념을 폐지하는 청교도적인 의학담론을 통해서” 점점 도착적으로 변해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특히 “현대의 새로운 안식처”인 양 인기를 모으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문제삼으면서 “투명함과 감시를 예찬하고 자신의 저주받은 부분을 소멸시키는 일에 혈안이 된 사회야말로 도착적인 사회”라고 꼬집는다. 논쟁적인 주장들을 담은 이 책은 우리 내면의 도착적 욕망을 새롭게 호명하면서 우리가 맞서야 할 더 큰 문제는 개인적인 도착자가 아니라 도착적인 체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의 맺음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더 이상 도착증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된다고 가정하면 숨어 있는 그것의 변형과 마주치는 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어둠을.”(김진우기자)

08. 09. 27.

P.S. 북페이지의 저자 인터뷰도 참고할 만하다. 유튜브에는 인터뷰 동영상들도 올라와 있다(http://kr.youtube.com/watch?v=9D7DqI1U49w 참조).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몇몇 자료 화면들을 참고가 될 수 있겠다.

이번 책의 목적은 선과 악에 대한 탐색이더군요. 그 질문 속에서 도착증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떤 겁니까?
도착증의 특징은 그것이 악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즐긴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부 범죄자들은 도착적이지 않습니다. 악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딱히 범죄자가 아니면서도 악을 즐기는 도착자들이 있습니다. 그 형상은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질 드 레의 사례에 대해서 오랫동안 언급하시더군요.
질 드 레는 그 역전 가능성의 증거입니다. 대단히 복잡한 인물이죠. 그는 진정한 반항인이었던 잔 다르크에게 매료되어 선을 향해 이끌립니다. 그러나 잔 다르크가 국가의 이상을 구현했음에도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면서 그 영웅주의의 세계가 무너지자 질 드 레는 그때부터 악에 빠져듭니다. 그는 약 300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살인마로 여겨지고 있죠. 그의 재판을 계기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악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악의 세력을 추궁받은 질 드 레는 자신이 받았던 교육이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인류의 역사 위를 맴돌던 질문이 비로소 제기됩니다. 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 질문은 요즘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악은 인간의 타고난 속성일까요?
우리가 속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속성이죠. 동물의 세계에는 악과 도착증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파괴충동을 선에 대한 이상으로 탈바꿈시켜서 최악의 짓거리들을 저지를 수 있죠. 동물은 결코 나치주의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잔인한 동물이라 해도 악을 즐기지는 않으니까요. 악을 즐기려면 악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동물계에 속해 있다고는 해도 동물은 아니죠. 난 우리를 동물과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도착증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사드는 별도의 경우죠.
사드는 좀 특별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일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범죄에 빠져들었으리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죠. 사드는 성도착증의 목록을 최초로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도착증에 대한 질문을 이론으로 정립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법칙을 완전히 전복시킵니다. 계몽시대 인간이었던 그에게 있어서 선이란 지옥에 내동댕이쳐져야 마땅한 것이죠. 사드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정치체제 속에서 살았습니다. 구체제, 혁명기 그리고 제정시대 말입니다. 그는 늘 자신이 살던 시대와 괴리되어 있었습니다. 구체제에서 그는 매춘부들에게 저지른 가혹한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성모독과 계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죠. 그 두 가지 범죄는 혁명을 통해 폐지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신에게 맞서다가 로베스피에르가 다시 신권을 확립시키면서 제정시대 체제에서는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죠. 하지만 사드가 미쳤던가요? 처음으로 사람들은 미치광이와 반미치광이를 구분하게 되죠. 사드와 함께 유럽 의학은 도착증을 점령하게 됩니다. 도착적 행동은 그때부터 악마의 화신으로서 악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에 속하게 되죠.

중세에 신비주의자들은 악의 세력을 내세워 신에게 도전했습니다. 18세기에 자유사상가들은 기존의 도덕을 무시했고요.
신비주의자들은 완전히 도착적인 희생의식(채찍질, 오물 삼키기)을 치르며 전대미문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에게 자신들의 육체를 바쳤습니다. 반대로 자유사상가들은 쾌락의 도덕으로 질서에 맞섰습니다. 그들은 모든 형태의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의 자유를 포함해서 말이죠. 고대부터 도착증은 먼저 성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절대적인 도착증으로 평가되는 계간은 모든 세기를 관통하는 것이었고요. ('저자와의 인터뷰', <리베라시옹> 200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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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9-27 11:00   좋아요 0 | URL
저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주제로군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보사르(Bossard) 신부가 "정확히 잔 다르크의 반대"라고 평가했던 질 드 레(Gilles de Rais)의 재판에 관해서는 바타이유도 장문의 서론을 붙여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의 분석을 남기고 있죠. 루디네스코가 저 책에서 바토리(Bathory) 또한 언급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리뷰를 읽으니까 사드에 대해서라면 저 정도의 평가와 분석은 사실 예전에도 이미 많이 나와 있던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루디네스코의 '새로운' 시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리베라시옹> 사이트에서 인터뷰를 검색해보니 '계간'으로 번역된 원어는 'sodomie'였군요... 보통 요즘은 '남색(男色)'이라고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계간(鷄姦)'이라는 용어를 선택하신 <리베라시옹> 인터뷰 번역자의 언어관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기사를 보니까 마지막 두 문장("고대부터 도착증은 먼저 성적인 영역에... 모든 세기를 관통하는 것이었고요.")은 루디네스코의 말이 아니라 인터뷰어의 언급이더군요(그리고 인터뷰 전체를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궁금한 점: 사드의 초상 위에 있는 그림은 '푸른 수염'인가요...?

로쟈 2008-09-27 12:50   좋아요 0 | URL
네, '푸른 수염'입니다. 원기사에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번역에 대한 지적이 재미있네요. 저는 '계간'이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람혼 2008-09-27 16:35   좋아요 0 | URL
그림은 처음 보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푸른 수염'일 것 같아 여쭤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저 그림이 매우 '정겹게' 느껴지네요... 갑자기 머릿속으로 '계간지(鷄姦紙...?)'라는 단어를 만들어보고는 저 혼자 또 '살짝 맛간 사람'처럼 즐겁게 웃었더랬습니다.^^

로쟈 2008-09-27 23:26   좋아요 0 | URL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6:08   좋아요 0 | URL
계간,남색...다들 고색창연한 단어들이네요.요즘은 남색이란 단어도 잘 안 쓰던데...동성연애라는 단어보다 운치가 있죠?

람혼 2008-09-27 16:3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동성애"는 "homosexuality"의 번역어로 굳어진 경향이 있기도 하거니와, 또한 그보다 더 세밀히 보자면,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지닌 '역사'와 '유래'를 고려했을 때, "sodomy"는 단순히 "동성애"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중립적'인 단어로 옮기는 것보다는 '남색', '비역' 등의 단어로 옮기는 것이 보다 번역의 '층위'에 더 합당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그래도 "계간"은 참 '色다른' 번역어라는 생각은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7 22:23   좋아요 0 | URL
맞아요.비역살이란 단어에서 나온 비역질도 있죠.엉덩이 살을 비역살이라고 하죠.